경영서적 중 명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꼽히는 《In Search of Excellence, 한국어 번역판 “초우량 기업의 조건”》. 경영학의 구루(Guru)인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터만이 1980년대에 저술한 이 책에는 세계 최고의 62개 기업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말 그대로 “엑셀런스(excellence)” 그 자체인 이들 기업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시어스(Sears), 제록스(Xerox), IBM, 코닥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 기업들 중 상당수는 이 책이 나오고 불과 20여 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물론 일부는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지만 현재까지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곳도 많다. 최악의 경우, 일부는 파산했고 현재 파산 직전에 몰린 기업들도 있다.
매출, 시스템, 탁월한 경영자와 임직원, 최고의 상품 등 모자랄 것 없던 이들 기업이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터만의 얼굴이 붉어질 만큼- 왜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이들은 성공 기업들이 빠지기 쉬운 자기 파괴적 습관에 젖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 파괴적 습성 때문에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기업이 순식간에 재앙의 소용돌이에 빠진 것이다.
이런 습관을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기업이 최고에 자리에 오르면, 종국엔 성공을 좀먹는 자기 파괴적 습관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타나곤 하는데, 이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학습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그 결과 중독이 되면 파국을 향해 점점 더 가속이 붙게 된다.
이때 이를 인식하고 파괴적인 습관을 타파한다면, 기업은 곧고 좁은 성공가도로 다시 되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외부 상황이 현저하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이 습관을 바꿀 능력이나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탁월한 기업일지라도 급격히 쇠락하게 된다.
자, 그렇다면 기업을 자기 파괴로 몰아가는 습관에는 무엇이 있는가? 다음과 같은 7가지가 있다.
첫번째 습관은 “부정(Denial)”의 습관이다. 부정이라는 현상은 기업이 초심을 잊은 채 역사와 성공에 대한 신화를 억지로 만들고자 할 때 시작된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신화는 정설과 관행이 되며, 마침내 보수적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상황이 바뀔 경우, 이런 경직화는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할 대처 방식을 저해하게 된다.
두번째 습관은 “오만(Arrogance)의 습관”이다. 오만함은 자기 자신에 대한 우쭐함으로 생기는 우월성 또는 자만심, 자부심, 또는 경멸감의 무례한 표현방식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만, 또는 지나친 자신감을 영웅호걸을 몰락으로 이끄는 “비극적 결함”이라고 여겼다. 이는 기업이 취하는 행동과도 매우 흡사하다.
세번째 습관은 “자기만족(Complacency)의 습관”이다. 이 습관은 성공이 양산하는 실패라 할 수 있다. 즉 과거에 이룬 성공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든든함과 편안함이 이 습관을 잉태한다. 현상 유지를 선호하며 “성공 기업에서는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여기는 “불굴의 유전인자”가 주범이다.
네번째 습관은 “역량 의존(Competency Dependency)의 습관”이다. 이것은 소위 ‘현직의 저주’라고도 불린다. 대부분 기업들은 성공을 위해 핵심역량에 의존하고 집중하는데, 간혹 이러한 핵심 역량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경쟁력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그 핵심 역량에만 다시 의존하게 되는 데, 이때 그 역량은 핵심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결국 이 습관은 의사결정자의 시야를 제한하고 사람들에게 다른 기회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결국 자기 파괴적 습관이 되고 만다.
다섯번째 습관은 “경쟁적 근시안(Competitive Myopia)의 습관”이다. 이것은 경쟁이 만든 편협한 시각을 말한다. 자신의 경쟁상대를 너무 편협하게 한정하고 직접적이며 가까운 경쟁업체만을 인식할 때, 기업은 “경쟁적 근시안”으로 고통을 받는다. 이는 확실하지 않은 도전 상대(레이더망에는 잡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며 위협적인 상대)를 인식할만한 주변 시야를 갖지 못했거나 부족한데서 기인할 수 있다.
여섯번째 습관은 “양적 강박관념(Volume Obsession)의 습관”이다. 쉽게 설명하면, 늘어나는 지출과 줄어드는 마진을 뜻하는데 “높은 마진의 선구자”였거나 “고속성장”의 경험이 있는 기업일수록 이 습관에 빠지기 쉽다. 지출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너무 높은 경우 이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쓰게 된다.
마지막 일곱번째 자기 파괴적인 습관은 “영역 다툼(The Territorial Impulse)의 습관”이다. 대립과 텃세 문화가 발생하면 위험 신호가 켜진 것이다.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기업은 스스로를 “기능적”으로 조직한 다음 나중에 “지역적 모임”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내부에서 기능적, 그리고 지역적 라인으로 나뉜다. 성공적인 성장에는 체계화와 조직의 규칙, 정책, 그리고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다양한 사업단위가 모여 기업을 구성한 곳에서는 여러 이유로 서로가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기 파괴적 습관을 기업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가?
① 부정의 습관 : 항상 사업 예측 및 일반적 관행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경영자는 ‘미래에 집중하는 법을 가르치는 실질적인 리더십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② 오만의 습관 : 오만이라는 함정을 상기시켜줄 수 있는 전문 경영 코치를 채용하고, 개인적인 홍보활동을 제한하며, 적절한 억제와 균형을 통해 누구도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없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
③ 자기만족의 습관 : 자기만족의 수준을 판단하기 위한 강력한 평가기준을 개발하고, 성과 기반 보상 제도를 마련하며, 리더급들이 다양한 업무를 체험하도록 순환근무를 시켜야 한다.
④ 역량 의존의 습관 : 끊임없이 기존 세대의 기술에서 차세대 기술로 진보하고, 다른 제품과 시장으로 핵심 기술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시장 또는 시장 분야로 역량을 다각화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
⑤ 경쟁적 근시안의 습관 : 독립적인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팀을 통합하고, 대체 경쟁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또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 주변 기업이나 틈새 기업을 인수하여 미래의 경쟁업체가 나타날 것 같은 신흥 시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
⑥ 양적 강박관념의 습관 : 수익 계산을 토대로 영업 인력을 위한 보상 시스템을 만들고, 행정적인 것이 아닌 전략적 기능에 대한 절차를 마련하며, 시종일관 적극적으로 포트폴리오에 새롭고 마진이 높은 제품을 추가해야 한다.
⑦ 영역 다툼의 습관 : 계승 계획에 있어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방법을 실행해야 한다. 또한 한 기능이 다른 기능보다 우월하지 않은 문화를 만들고,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기능을 운영하기 위해 외부 요인에 집중해야 한다. 회사 내에 지배적인 하위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면, 다양한 기능적 모임 내 사람들이 번갈아가면서 그 문화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도 빼서는 안 된다.
디지털 인화 비즈니스가 트렌드를 형성할 때, 코닥은 그 트렌드를 리드할 만한 기술과 포지션을 점유하고 있었음에도 전통적 비즈니스 방식을 고수했다 엄청난 실패를 맛봐야 했다. 세계일류기업과 독보적 선두주자라는 오만과 자기만족, 경쟁적 근시안이라는 습관에 빠진 탓이다.
IBM은 세계 최고의 컴퓨터 기업이라는 오만에 빠져 경쟁기술 개발을 등한시했고, 당시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기업에 대한 눈먼 정책을 계속 펼쳤으며, 거대 규모인 만큼 느리고 복잡하고 다툼이 잦은 조직 문화를 오랫동안 방치했다. 이로 인해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공룡 기업은 거의 파산 일보직전까지 몰렸으며, 거느리고 있던 굵직한 대형 사업부를 해외 기업에 매각까지 해야 했다.
성공 기업일수록 더 빠지기 쉬운 이러한 자기 파괴적인 습관들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시작된다는 점, 그리고 학습을 통해 확산되고 전염된다는 점은 오늘늘 성공을 구가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스스로 발가벗고 스스로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