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 나에게

   
이근상 (지은이)
ǻ
몽스북
   
11000
2025�� 07��



 

■ 책 소개


명상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가이드

누구에게나 인생의 방향을 흔드는 순간이 온다. 저자 역시 부정맥이라는 생소한 진단을 들은 날, 당혹감과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담당 의사는 ‘절대 금주’라는 처방을 내렸지만 그는 금주 처방 대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커피를 줄이는 타협에서 시작해 차 문화로, 채식으로, 그리고 명상으로 이어지는 삶의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이다. 저자는 명상이 좋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늘 ‘언젠가’의 리스트에만 넣어두고 있었다. 그러던 반나절 리트릿에서 처음 명상을 체험했고 새벽마다 호흡에 집중하며 쌓아간 명상 루틴은 그의 일상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바꾸었다.

‘명상’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지루함의 선입견은 내려놓아도 좋다. 이 책은 고리타분한 명상 이론서와는 거리가 멀다. 생활 속 실천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관한 친절한고도 생생한 기록이다. 저자는 직접 부딪히고 쌓아가며 체험한 결과들을 설득력 있게, 매력적인 문장으로 들려준다. 거창한 철학 없이 ‘그냥 숨 쉬기’부터 집중하면 되는 일이라니, 읽는 이들은 ‘나도 한번?’ 하며 마음이 동할 것이다.

■ 저자 이근상
10년 차 명상인. 본업은 광고인.

잘나가는 광고 마케팅 전문가로 화려한 삶을 살며 좋은 옷, 좋은 집, 비싼 차를 ‘탐’하던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10년 전 시작한 명상을 통해 삶의 다른 지향점을 갖게 됐다. 그 변화가 좋았기에 지인들에게 종종 명상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 확장판』,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 실전편』 등의 책을 출간했다.

 


차례
1 부정맥과 명상 5
2 우리의 불쌍한 친구, ‘뇌’ 11
3 나의 스승, ‘아잔 브람’ 17
4 두 번째 화살 23
5 호흡에 집중 30
6 머릿속 원숭이의 정체 36
7 나이 듦에 대하여 42
8 ‘나’라는 게스트 하우스 48
9 마음이 책으로 만들어지나요 54
10 채식 3년 61
11 식탁을 떠나는 순간 67
12 기상 캐스터처럼 74
13 달리기와 명상 80
14 주문진 바다 1 86
15 주문진 바다 2 90
16 사람이 바뀝니까 95
17 얼굴빛이 달라요 101
18 윤 교수님, 거기선 명상하세요? 107
19 밥 먹기 명상 113
20 마음이 바쁜 겁니다 119
21 명상, 별것 아닙니다 124
22 슬픈 메뉴, 짬짜면 129
23 몰입이 주는 기쁨 135
24 FOMO 극복하기 141
25 빚지고 살지 않는 방법 147
26 치과에서 154
27 설거지, 청소, 세차 그리고 명상 159
28 바닷물 마시기 165
29 일어서려고 너무 애쓰지 마 171
부록 당신의 명상을 도와줄 수 있는 것들 177

 

 




명상이 나에게


부정맥과 명상

7년 전쯤 부정맥 판정을 받았다. 이렇게 거창한 이름이 붙은 병이 내게 찾아오는 일은 아버지가 나 모르는 거액의 유산을 남겨놓으셨다는 스토리만큼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여기며 살았기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철저한 금주론자인 당시 의사 선생님께서 "앞으로 술은 한 방울도 안 됩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내리신 터라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느꺼움이 더해지며, 현실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마치 나에게 잘못 배달된 병명을 조만간 반송이라도 할 것처럼 몇 주를 보냈다. 병이 나에게 왔다는 현실감이 생긴 것은 쇼핑백 가득 약을 받아 들고 약국을 나서면서부터였다. '앞으로 술은 한 방울도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지침이 무리한 것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구글과 네이버를 샅샅이 뒤졌다. '된다'라는 결과를 염두에 둔 주관적 검색의 결과, 부정맥과 음주와의 완벽한 상관관계를 증명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는 몇 줄의 문장을 찾아내긴 했지만, 검색의 부작용으로 '커피를 멀리하는 것이 좋다'는 혹을 얻었다. 하루에도 '물 적게 넣은' 아메리카노를 서너 잔 이상 마셔온 인간에게 이 역시 중형 선고에 해당되었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타협점을 만들었다. 술은 줄인다. 대신 커피는 끊어본다.


내가 사는 동네에 티하우스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차를 마시러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나와는 별 관련이 없는 부정맥 같은 존재였다. 어느 토요일, '커피 대신 차를 마시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그 티하우스의 문을 열고 들어갔고, 수십만 원어치의 다구와 차를 사가지고 나왔다. 다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티 클래스에 참가해 차 공부도 했다. 커피를 끊을 수 있을 만큼의 매력적인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에 일어나 물을 끓이고 차판을 펼쳐 차를 우려 마시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차마시기는 나의 생활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커피가 각성이라면, 차는 침잠이었다. 커피를 내리려면 재주가 필요했지만, 차를 우리기 위해서는 정성이 중요했다. 무언가를 가까이하기 시작하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차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주 비싼 보이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도 만났고, 차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 예를 들자면 채식주의, 미니멀리즘, 요가와 같은 것을 실천하며 사는 분들을 접하는 기회가 늘어났다. 다행히 보이차는 썩 입맛에 맞지 않아' 이 보이숙차가 얼마짜립네' 하는 대화의 자리는 멀리하였지만, 육식이나 소유욕 같은 것들을 내려놓고 사는 이야기에는 점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일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꽤 들어서야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가를 깨닫게 된 느낌이었다. 옷장의 절반 이상을 비워냈다. 수납장의 불필요한 그릇들도 덜어내고, 다시 읽지 않고 책장을 차지하고만 있던 책들을 중고 서점에 팔았다. 삶이 한결 가벼워졌다. 몸무게가 줄기 시작하면 운동 욕구가 상승하듯, 삶의 무게를 덜어내니 더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일주일에 하루를 채식의 날로 정했다. 삼시 세끼 고기가 없으면 식사의 낙을 찾지 못하던 인간에게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런 변화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한 것은 인스타그램이었다.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사는 인스타그램 친구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그들을 통해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옳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들의 추천으로 관련된 콘텐츠를 보거나, 새로운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다.


넷플릭스에서 본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와 그 영향으로 읽게 된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은 나를 3년간의 채식주의 생활로 인도했다. 완벽한 미니멀리즘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것을 덜어내고 살려고 애쓰게 되었다. 자동차 사용도 가급적이면 줄이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즈음 생긴 인스타그램 친구 중에 명상이나 요가 관련자들이 있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상위 1퍼센트의 비유연성을 자랑하는 신체 특성상 요가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명상에 호기심은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언젠가' 리스트에 올려만 놓고 있던 차였다. 그 '언젠가'의 날은 곧 왔다. 반나절 동안 진행되는 리트릿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했다. 명상과 간단한 요가 그리고 채식 점심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다.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인원이 모인 리트릿(retreat, 일상에서 벗어나 집중적인 명상, 휴식, 창작 ,조직 활동 등을 하는 시간)은 서울 삼청동의 한옥 공간에서 진행되었는데, 한 시간 정도의 명상 세션이 끝나자 몇몇 참가자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도 뭔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함에 하마터면 따라 울 뻔 했다.


그렇게 명상은 부정맥 진단에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게 왔다. 세상일이 다 이런 것 같다. 어떤 일의 원인은 멀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 위에서 일어난 접촉 사고는 급작스레 차선 변경을 해 끼어든 차가 직접적인 원인처럼 보이지만, 그 차 앞으로 갑자기 끼어든 또 다른 차가 이전 원인 제공자이고, 그렇게 끼어든 차의 운전자는 새벽 축구 중계 시청 탓에 잠시 졸음운전을 했기 때문일 수 있다.


바삐 살다보면 멀리 있는 원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니 눈앞의 원인만 바라본다. 대증적 처치만 하고 살기에도 바쁘다. 중요한 회의에서 버럭 화를 내며 잘 진행되어 오던 프로젝트를 망친 경우, 나를 화나게 만든 상대방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일단 책임을 돌릴 대상을 찾아 '내 잘못은 아니었어.'라고 자위한다고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버럭 화'의 원인은 당신이 잘 알지 못하는 아주 먼 곳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당신이 잘 알지 못하는 아주 먼 곳이 명상의 출발점이다.


호흡에 집중

명상 앱을 깔고 새벽 명상을 시작했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했다. 10분짜리 가이드 명상 프로그램의 주제는 매일 바뀌는데, 방법은 늘 똑같다. 우울함에 대한 명상도, 불안함에 대한 명상도, 집중력 향상을 위한 명상도 앞부분은 항상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에 집중합니다."로 시작해서 7~8분 정도를 숨쉬기만 하는 것이었다. 하다 보면 뭔가 새로운 방법이 나오겠지 싶어서 1주일 이상을 계속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일 년 치 연회비를 이미 결제했으니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대로 된 길을 놔두고 혼자만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중에 명상 고수들로부터 '아니 왜 하필이면 그 앱을 써요? 명상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죠.'라는 지적을 받을 것 같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명상 스승 아잔 브람을 만나 뵈었던 유튜브에 도움을 청했다. '명상법'을 치고 들어가니 갖가지 명상 관련 콘텐츠가 올라온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라는 확증 편향을 가지고 콘텐츠를 뒤졌지만 다 거기서 거기다. 모두 '호흡에 집중'하란다. 결국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연회비를 날린 것도, 혼자 엉뚱한 길에서 헤매고 있던 것도 아니니 일단 다행이었다. 소득도 있었다.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명상과 호흡은 떼어낼 수 없는 짝 같은 관계이다. 나처럼 생활 명상을 하는 사람들, 즉 명상의 목적이 득도와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뇌의 상태로 살기 위함인 사람들에게 호흡에 집중하는 것은 피곤한 뇌를 편안하게 만드는 최고의 기본기이다. 죽기 전에는 작동을 멈출 수 없는 뇌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지런히 생각을 하거나 차분히 인지하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중 에너지를 적게 쓰는 인지에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하는 것이 뇌를 편안하게 만드는 기본이고, 인지중에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방법이 기본이자 최선이다.


물론 에너지 소모량이 많은 사고 대신 인지를 위해 뇌가 작동하도록 하는 방법은 '호흡에 집중'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눈을 뜨고 눈앞의 사물이나 경관 등을 바라보거나, 주변의 소리나 냄새를 알아차리는 명상법도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런 방법들은 초보 명상자들에게는 쉽지 않다.


눈앞의 사물이나 소리, 냄새 등은 '생각하기'로 이어질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조용한 숲속에 앉아 가벼운 바람에 이파리를 기분 좋게 흔들고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바라본다고 상상해 보자. 나무에 집중하고 싶지만 흔들리는 나뭇잎, 나뭇가지에 날아온 종달새, 나무둥치를 타고 올라가는 청솔모 한 마리 등이 명상자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뇌의 기억 저장소에 머물러 있던 갖가지 추억들을 불러내고, 일단 소환된 추억이나 정보는 그와 관련된 다른 것들을 끄집어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는 느티나무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버린다(느티나무, 춤추는 나뭇잎, 리듬감,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들었던 팝송의 한 대목, 그 노래 제목이 뭐더라......, 아 샌프란시스코 뭐였는데, 이런 식의 꼬리 물기를 통해서).


멍 때리기와 명상은 좀 다르다. 불멍, 물멍과 같은 멍 때리기를 힐링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뇌가 쉬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장작이 타들어 가는 모습이나 처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넋을 놓고 바라보면서 복잡한 현실을 벗어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여행을 하는 것이 기분 전환을 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기분 전환을 위해 뇌는 또 일을 해야 한다.


반면에 '호흡에 집중'하는 일은 '다른 곳으로 샐'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코끝으로 들숨을 알아차리고, 가볍게 벌린 입술로 더워진 날숨을 알아차리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 뇌는 오롯이 '알아차리기'에만 에너지를 쓰게 된다. 물론 호흡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의도하지 않은 생각이 쳐들어온다. 하지만 그 경로가 단순해서 호흡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비교적 쉽다.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최고의 기본기인 또 다른 이유는 호흡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과학적 뒷받침 없이도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어느 정도 증명이 된다. 평소에도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던 직장 동료가 면전에서 속을 뒤집는 말을 꺼내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면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호흡이 가빠진다. 어떤 현상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웃는 얼굴을 유지하면서 호흡만 가빠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귀가 타오를 듯 빨갛게 변하는 가운데 호흡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몸과 마음과 호흡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순서보다 중요한 사실은 호흡이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거나 프레젠테이션 직전 긴장감이 진정되지 않을 때 하게 되는 심호흡이 그 증거이다. 심호흡 몇 번 하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 완전하지는 않아도 응급 조치는 된다. 깊게 몇 번 호흡을 하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몸에서 일어났던 반응들도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살아 있는 한 호흡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살아'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인 호흡을 무의식적으로 하며 산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호흡을 의식적으로 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여기'에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소중한 작업이다. 즉, 호흡에 집중하는 행위는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명상의 시작은 '호흡에 집중'이다.


머릿속 원숭이의 정체

자세를 잡고 앉아 명상을 하다 보면 두 가지 방해 요인을 만나게 된다. 졸음과 잡념이다. 졸음은 늘 오는 것도 아니고 좀 졸고 나면 피로도 풀리니 굳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문제는 잡념이다. 잡념은 말 그대로 잡스러운 생각인데, 생각의 중요도나 가치와 상관없이 명상 수행을 방해한다는 의미에서 잡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잡념이 무엇인지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지금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 보면 1분 안에 알 수 있다.


분명 자신의 의지는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이었는데, 의지와 상관없는 엉뚱한 생각을 따라가게 된다. 방금 전 있었던 일, 지난주 친구와 나눴던 대화, 다음 주 약속 장소에 대한 걱정, 출근길에 들었던 음악의 한 소절, 현실과는 동떨어진 백일몽 등이 자신을 끌고 다닌다. 정신 줄을 놓고 있다 보면 아주 먼 곳까지 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분명 몸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만 생각은 먼 바다를 항해한다.


명상은 이런 잡념을 없애는 수련이 아니다. 잡념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잡념이 나에게 찾아왔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이 명상이다. 수련의 과정은 단순하다. 자세를 똑바로 잡고 앉아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한다. 대부분의 경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잡념이 떠오른다.


중요한 것은 빠른 시간 안에 잡념이 찾아왔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넋을 놓고 있다 보면 첫 번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을, 두 번째 생각이 세 번째 생각을······. 이런 식으로 n번째 생각까지 따라가게 된다. 일종의 끝말잇기게임 같은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호흡은 온데간데 없고(물론 호흡은 계속하고 있지만), 몇 분간 잡념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이때 집중력을 잃지 않고 호흡으로 빠르게 돌아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생각의 내용이나 생각을 한 것 자체에 대해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생각했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하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면 된다.


몇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의도하지 않은 잡념이 찾아오는 것일까? 잡념이 찾아온 것에 대해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잡념 뒤에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 일까? 머릿속 원숭이의 정체를 아는 것이 이런 의문에 답하는 출발점이다. 머릿속 원숭이라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잡념을 명상에서는 '몽키 마인드(Monkey Mind)'라 부른다. 이는 아마도 도교나 불교에서 사용하는 '심원의 마'라는 말에서 따온 것인 듯하다. 마음은 원숭이 같고 생각은 말과 같다는 뜻이다. 즉 생각이 원숭이나 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원숭이고 말이고 간에 왜 날뛰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뇌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하는데, 나는 전문적 지식을 들어 그것을 설명할 능력이 없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기반으로 상식적인 선에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뇌에 저장된 기억을 기반으로 사고한다. 사고에 대한 수행 명령이 떨어지면 뇌에 저장된 다양한 정보를 이용해 명령을 실행한다. 미팅에서 상대방의 날카로운 질문에 현명한 답을 내놓으라는 명령이 입력되면 뇌는 그와 관련한 여러 가지 정보를 순차적으로 소환, 결합하는 수십 차례의 과정을 거쳐 답을 생각해 낼 것이다. 뇌는 이런 일을 아주 잘한다. 심지어 자주 일어나는 명령에 대해서는 자율 주행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눈앞의 컵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 동작의 경우를 보면 컵을 잡고, 들어 올리고, 입에 대고,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넣고, 목으로 넘기는 과정을 일일이 뇌에게 명령하지 않는다.


이전에 학습된 패턴에 맞추어 오토파일럿 기능이 수행된다. 알고 보면 우리가 매일 하는 일 중 많은 것은 뇌의 자율 주행 기능에 의존하고 있다. 숨쉬기, 걷기와 같은 기본 동작을 비롯해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행동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다. '늘 하던 대로'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런 일들의 대부분은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하게 된다. 몸의 주인인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뇌의 자율에 맡기고 사는 것이다. 물론 뇌에게 많은 것의 전결권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피곤해서 견디지 못하거나, 하루 중 할 수 있는 일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뇌가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명상을 위해 눈을 감으면 머릿속 원숭이들이 제 세상을 만난 양 마구 뛰어다니는 것이다. 머릿속을 원숭이 세상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원숭이를 조련해야 한다. 생각이 나타난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은 원숭이를 진정시키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원숭이의 출몰 횟수나 시간을 줄여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나 생각한 행동 자체를 평가하지 않는 것은 뛰어다니는 원숭이와 일일이 싸우지 말자는 것이다. 원숭이가 왜 날뛰었는지 다그치며, 다시는 뛰어다니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는 피곤한 일을 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뇌의 에너지 소모량을 늘릴 뿐이다. 머릿속 원숭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잘 지내는 것이 명상의 목표이다.


명상, 별것 아닙니다

명상은 인간을 개조하거나 특별한 능력을 갖게 해주는 묘법이 아니다. 명상은 이 닦기 같은 것이다. 방법이 대단히 어렵거나 효과가 놀랍지는 않지만, 규칙적으로 하지 않으면 티가 나는 일이다. 바로 이런 반문이 가능할 법하다. "그렇다면 명상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티가 나는 것을 모르고 산다는 것인가?"


그렇다. 요즘은 하루 세 번 이를 닦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 되었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이는 아침에 한 번 닦으면 끝이었다. 입냄새나 치과 질환에 예민하지 않던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하고 살았다. 명상을 하지 않으면 명상을 했을 때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티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냥 누구에게나 당연히 감정의 변화는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을 표출하면서 사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검색 기록을 추적해 광고가 따라붙는 기술 탓에, 필요하다 싶은 것이 생기면 귀신같이 광고성 피드가 뜬다. 덕분에 욕실이나 주방을 청소할 때 스펀지가 닿지 않는 틈새를 닦을 수 있는 빗처럼 생긴 물건을 샀다. 그 효과가 기막히다. 욕실 수전 틈새를 닦아내니 시커먼 때가 쏟아져 나온다. 수전 겉만 닦는 것이 좀 찜찜하긴 했지만 그 속이 이렇게 더러운지 몰랐다. 명상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가 이런 것이다. 수전 틈새를 닦아내는 효과를 경험했으니 더 이상 모른 체 하고 넘어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이 또 나올 법하다. (실제로 많이 듣는 말이다.) "꼭 그리 피곤하게 살아야 하나?" 피곤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이를 닦지 않고 살면 귀찮은 일 하나 덜어낸 듯하지만 입냄새는 물론이고 치과 환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 빗처럼 생긴 솔로 주방과 욕실의 틈새까지 닦는 일을 하면서까지 피곤하게 살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려면 깨끗한 욕실과 주방에서 사는 기쁨을 포기해야 한다. 명상도 똑같다. 명상을 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티는 명상을 해보지 않으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감지하지 못하는 티가 쌓여 시간이 흐른 후에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명상을 한다고 해서 인생의 문제가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하루의 삶을 조금 느린 속도로 차근차근 알아차리며 제대로 사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불필요하게 화를 내서 나와 남의 하루를 망가뜨리는 일을 하지 않게 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후회의 여운이 하루를 흔드는 일도 줄어들게 된다. 하루를 마감하는 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일기를 쓰는 일이 가능해지고, 고마웠던 사람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게 된다. 점이 이어져 선을 만들 듯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꽤 의미 있는 삶이 이어져 나간다.


'한 번에 하루씩'. 너무 멀리 보며 큰 꿈을 꾸기보다 하루를 충실히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멋진 미래를 담보로 오늘을 허비하거나 망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 애쓴다. 명상은 그런 하루를 위한 이 닦기 같은 일이다. 오래 닦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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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