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나태주 (지은이)
ǻ
열림원
   
18000
2024�� 12��



■ 책 소개


“이것이 이 봄에 또 살아갈 이유다”
독자들이 꼭 한번 따라 써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나태주 시인이 2025년으로 등단 55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하여 그간 수많은 독자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시 「풀꽃」을 비롯하여 대중들의 가슴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진 주옥같은 시 88편을 골라, 시를 읽고 또 따라 써보는 라이팅북으로 엮었다. 시인은 이번 시집 출간을 두고, 읽고 베끼는 과정을 통해 “나태주의 시집을 떠나 시집을 베끼는 독자분의 시집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글을 베끼다 보면 그 글이 나의 마음 안으로 들어와 안기는 것을 느끼는데, 이것은 참 신비로운 경험”이라면서 이번 시집을 통해 그런 ‘신비한 경험’을 해볼 것을 권한다. 『오늘은 이것으로 좋았습니다』는 위로, 사랑, 행복, 희망 등 4개 키워드에 각각 22편의 시, 그리고 1편의 산문으로 구성되었다. 특별히 이번 작품에는 꽁꽁 언 마음에 들려주는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선물 같은 시인의 필사 시 4편도 함께 수록되었다. 반세기를 훌쩍 넘은 시인의 내공이 잔잔한 감동과 함께 짙은 울림을 준다. 지나온 삶의 내력을 구구절절 읊어내기보다 일상의 빛나는 찰나들을 단 몇 마디 순일한 시어로 뽑아낸 생의 하이라이트 같은 글들이다.

■ 저자 나태주
1945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4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출간한 후 『꽃을 보듯 너를 본다』『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고, 산문집 그림시집 동화집 등 190여 권을 출간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풀꽃」을 발표해 ‘풀꽃 시인’이라는 애칭과 함께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소월시문학상, 흙의 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부터는 공주에서 ‘나태주풀꽃문학관’을 설립·운영하며 풀꽃문학상을 제정·시상하고 있다.

■ 차례
1. 통통통 가볍게 살아가주길 바라요
그 아이
오늘 하루
풀꽃 1
풀꽃 2
풀꽃 3
11월
혼자서
나무 1
오늘의 약속
세상에 나와 나는
꽃 3
들국화 2
돌멩이
대숲 아래서
귀로
눈사람
마지막 기도
대답
별 1
문득
그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산문 나처럼 살지 말고 너처럼 살아라

2. 가끔은 나도 예쁜 사람이 되기로 한다
너를 두고
사랑에 답함
눈 위에 쓴다
첫눈
내가 사랑하는 계절
바람 부는 날
그리움
내가 좋아하는 사람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아무래도 내가
말하고 보면 벌써
그래도
이 가을에
바람에게 묻는다
사랑은 비밀
못난이 인형
나에게 너는
비파나무
아버지 1
못나서 사랑했다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기다리마
꽃 2
별을 사랑하여
사랑에의 권유
산문 꽃은 왜 피는가

3. 아름다운 하루였다고 말하고 싶어요
좋다
행복그런 사람으로
아끼지 마세요
꽃들아 안녕
한 사람 건너
섬에서
지상에서의 며칠
사막의 향기를 드립니다
꽃 피우는 나무
인생
네 앞에서 1
그것은 흔한 일이다
가을 서한
사막을 찾지 마라
풍경
선물
잠시
여름의 일
근황
외출에서 돌아와
어여쁜 짐승
사는 일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산문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

4. 우리는 서로가 기도이고 꽃
들길을 걸으며
멀리서 빈다
별들이 대신해주고 있었다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떠나와서
꽃그늘
나무에게 말을 걸다
서로가 꽃
능금나무 아래
겨울행
살아갈 이유
응?
여행
등불
가보지 못한 골목길을
묘비명
어머니 말씀의 본을 받아
잠들기 전 기도
너에게 감사
유언시
눈부신 세상
하나의 신비
버킷 리스트
길 1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산문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오늘도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통통통 가볍게 살아가주길 바라요

그 아이

겉으로 당신 당당하고 우뚝하지만

당신 안에 조그맣고 여리고 약한

아이 하나 살고 있어요


작은 일에도 흔들리고

작은 말에도 상처받는 아이

순하고도 여린 아이 하나 살고 있어요


그 아이 이슬밭에 햇빛 부신 풀잎 같고

바람에 파들파들 떠는

오월의 새 나뭇잎 한 가지예요


올해도 부탁은 그 아이

잘 데리고 다니며

잘 살길 바라요


윽박지르지 말고

세상 한구석에 떼놓고 다니지 말고

더구나 슬픈 얘기 억울한 얘기

들려주어 그 아이 주눅 들게 하지 마세요


될수록 명랑하고 고운 얘기 밝은 얘기

도란도란 나누며 걸음도 자박자박

한 해의 끝 날까지 가주길 바라요


초록빛 풀밭 위 고운 모래밭 위

통통통 뛰어가는 작은 새 발걸음

그렇게 가볍게 살아가주길 바라요.



혼자서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보다

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이

도란도란 더 의초로울 때 있다


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대숲 아래서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득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러고도 간신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 자국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나처럼 살지 말고 너처럼 살아라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아니어도 좋다. 풀꽃을 그릴 때 나는 한송이의 풀꽃, 한 낱의 풀 이파리가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내가 무아경에 이르는, 나 자신을 초월하는 신비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는 사물의 본질에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닿았다가 되돌아오곤 한다. 거기서 느낌이 생기고 모습과 소리가 따르고 또 몇 줄기 말씀이 눈을 뜨기도 한다. 그때의 그 황홀감이라니!


조그맣고 보잘것없는 풀들도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제각기 다르게 살고 있으며, 산과 나무들의 모습도 제 나름대로 품격을 지니면서 서로 어울려 살되 제 타고난 본성을 잃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이래서야 쓰겠는가. 특히 난초 이파리를 봐라. 엇비슷한 이파리들이 하나도 닮거나 비슷한 것이 없고 그 이파리들은 또 제가 뻗어야 할 마땅한 허공을 찾아 뻗으면서 좌우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 않는가.


나이 든 사람, 위에 있는 사람, 앞선 사람, 힘 있는 사람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젊은 사람, 아래에 있는 사람, 뒤따라오는 사람, 힘없는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 모든 생명체들은 제 나름대로 몫이 있기 마련이다. 제 목숨의 몫만큼 살 권리가 있다. 그리하여 부디 '나처럼 살지 말고 너처럼 살라'고 등 두드려 각자의 방식대로 살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 '제각각'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로 어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가끔은 나도 예쁜 사람이 되기로 한다

사랑에 답함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예쁜 너

사람은 언제 예쁜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

앞에 있을 때 예쁘다

마음 놓고 웃을 때 예쁘고

마음 놓고 말할 때

더욱 예쁘다

너는 언제 예쁜가?

네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

있을 때 예쁘고

내 앞에서도 가끔은 예쁘다

너를 예쁘다고 생각하므로



꽃은 왜 피는가

꽃들도 필연성을 지니고 피어나는 것이고 꼭 피어나고 싶어서 피어나는 것이다. 해마다 피어나는 꽃이 아니다. 올봄에 피어나는 꽃은 오직 올봄에만 피어나는 꽃이다. 작년에 핀 꽃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꽃이 예쁘게 피어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 생명의 위기라 할지 결핍이라 할지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한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겨울을 필요로 하고 얼마간의 추위도 필요로 한다. 그런 것을 통해서 아쉬운 점, 모자란 점이 있을 때 그 보상으로 꽃은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다. 따뜻한 겨울,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는 결코 꽃이 눈부시게 피어나지 못한다.


실은 올봄에 피어나는 꽃들이 이토록 유난히 아름답고 찬란하게 보이는 것은, 지난해 우리가 꽃을 전혀 보지 못하고 봄을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것도 실은 결핍의 한 소산이다. 올해의 꽃이 유난히도 아름답게 보이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아내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녀 또한 나를 간호하느라 병원 생활을 길게 하여 봄을, 한 해의 봄을 고스란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아내는 때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여보, 우리가 지난해 꽃을 보지 못했으니 올봄엔 꽃을 실컷 보라고 꽃들이 이렇게 예쁘게 피어나는가 봐요.”



아름다운 하루였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막의 향기를 드립니다

사막은

무색

아무런 색깔도 없는 건 아니지만 단순한 몇 가지 색깔


사막은

무취

그냥 모래 마르는 냄새 풀잎 마르는 냄새


사막은

무한

하늘이 그렇고 모래밭이 그렇고


사막은

투명

하늘이 또한 그렇고 사람 마음이 다시 그렇다


사막의 향기를 드립니다


무색무취 무한 투명의 냄새를 드립니다

그건 이미 당신 마음 안에도 있는 것들입니다


부디 상처 나지 않게 조심조심

밖으로 꺼내시기 바랍니다

이쪽의 것도 조금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선물

나에게 이 세상은 하루하루가 선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빛이며 새소리,

맑은 바람이 우선 선물입니다


문득 푸르른 산 하나 마주했다면 그것도 선물이고

서럽게 서럽게 뱀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강물을 보았다면 그 또한 선물입니다


한낮의 햇살을 받아 손바닥 뒤집는

잎사귀 넓은 키 큰 나무들도 선물이고

길 가다 발밑에 깔린 이름 없어 가여운

풀꽃들 하나하나도 선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지구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지구에 와서 만난 당신,

당신이 우선으로 가장 좋으신 선물입니다


저녁 하늘에 붉은 노을이 번진다 해도 부디

마음 아파하거나 너무 섭하게 생각지 마셔요

나도 또한 이제는 당신에게

좋은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어여쁜 짐승

정말로 좋은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란 말이 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란 말도 있다

그러나 젊은 시절엔 그런 말들을 듣고서도

미처 그 말의 뜻을 깨치지 못했다

처음부터 귀를 막았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사랑이란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란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나 많이 나이를 먹고 난 뒤의 일이기 십상이다

그것은 행복이 자기한테 떠나갔을 때 비로소

자기가 행복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어리석음과 같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그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네 옆에 잠시 이렇게 숨을 쉬는 순한 짐승으로 나는 오늘

충분히 행복해지고 편안해지기로 한다

너도 내 옆에서 가만가만 숨을 쉬는 어여쁜 짐승으로

한동안 행복해지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

우리는 감사할 줄 몰라서 행복해하지 못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고 만족을 가져온다. 연구자들은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온다고 말한다. 세로토닌은 우울증을 막아주고 마음의 평정을 주며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끝내는 행복한 마음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감사해야 한단 말인가? 작은 일에 감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 오래된 것, 가까운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을 '가난한 마음'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런 가난한 마음만 있다면 만족과 감사가 저절로 이루어지리라고 본다.


그다음은 나의 일들을 남의 것과 지나치게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불행감의 절반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뜬구름 같은 것이다. 그 뜬구름을 과감히 떨쳐내야 한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고 내게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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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