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파는 양과자점 달과 나 1

   
노무라 미즈키 (지은이), 이은혜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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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북스
   
17800
2025�� 02��



■ 책 소개


수상한 디저트 가게, 다양한 고민을 안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
한 스푼의 마법이 일어난다!

이 책은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작은 양과자점 ‘달과 나’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저마다 고민과 사연을 안고 이곳을 찾은 다양한 사람들. 그들에게 특이한 직업을 가진 남자, 스토리텔러 쓰쿠모가 매력적인 디저트를 추천하며 달이 전하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토리텔러가 전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손님들이 간직한 고민과 아픔, 그리고 삶의 무게를 어루만지는 진심 어린 위로와 통찰이 담겨 있어 어느 순간 찾아온 이들의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고 치유받는다.

달콤한 디저트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그곳을 찾은 이들의 고민을 살며시 녹여내는 따뜻한 이야기. 지친 일상 속 작은 휴식과 위로가 필요하다면, 따뜻한 차와 함께 ‘이야기를 파는 양과자점 달과 나’의 문을 두드려 보라.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닌 삶을 반짝이게 할, 한 조각의 달콤한 디저트다.

■ 저자 노무라 미즈키
저자 노무라 미즈키는 후쿠시마현 출신이다. 어릴 적부터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해서 작가를 꿈꾸게 되었다. 

2001년 ‘아카기야마 탁구장에 노랫소리가 울린다’로 제3회 엔타메 대상 소설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해서 인스타그램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 역자 이은혜
역자 이은혜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행복한 인생을 찾아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다시 번역을 공부했다. 현재는 엔터스코리아에서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나는 뭘 기대한 걸까’, ‘따뜻한 세상은 언제나 곁에 있어’, ‘피곤한 게 아니라 우울증입니다’, ‘출근길 심리학’ 등이 있다.
  
■ 차례
첫 번째 이야기: 새콤달콤한 옷을 입은 촉촉하고 상큼한 보름달 ‘위크엔드’
두 번째 이야기: 폭신한 부드러움 속에 상큼함을 품은 케이크, 설렘이 가득한 ‘샤를로트’
세 번째 이야기: 빨간 라즈베리의 향긋함 속에 독을 감춘 ‘레이어 케이크’
티 타임: 아릿하게 혀를 찌르는 ‘후추 비스퀴’
네 번째 이야기: 장미와 달이 품고 있는 시원한 과즙 ‘비치 멜바’
다섯 번째 이야기: 진한 버터의 풍미와 캐러멜옷의 바삭함을 지닌 ‘퀸아망’
여섯 번째 이야기: 진화와 결별의 ‘미제라블’

일곱 번째 이야기: 달콤하고 바삭한 초승달 ‘바닐라 킵펠’

에필로그
외전: 레이지의 일기

 




이야기를 파는 양과자점 달과 나 1


새콤달콤한 옷을 입은 촉촉하고 상큼한 보름달 ‘위크엔드’

오카노 나나코는 온종일 쏘인 에어컨 냉기 탓에 다리가 퉁퉁 붓고 몸이 무거웠다. 퇴근길, 그녀는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노을이 내려앉은 육교 위를 걸었다.


올해로 서른셋이 된 나나코는 공간을 대여하는 렌탈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정규직이 아니라 시간제 아르바이트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한 지도 올해로 벌써 10년째다. 나나코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는 불경기로 어느 회사나 다 사정이 어려워 취업이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만 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일 년이 되면서 자연스레 눌러앉아 버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애사심 따위는 티끌만큼도 없다. 그런데 오늘은 진상 고객까지 응대하느라 완전히 녹초가 됐다.


‘그냥 결혼이나 해 버려...?’


생각은 늘 똑같은 망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남자친구조차 그저 그런 실력으로 일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다.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건 조금도 품을 수 없는 그저 그런 남자. 그와 결혼하려면 그가 돈 한 푼 제대로 벌지 못해도 자신이 먹여 살리겠다는 각오가 서야 했다.


게다가 일이 불규칙해서 시간이 맞지 않을 때도 많았다. 벌써 안 만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딱히 연락도 없다.


‘아..., 저녁 만들기도 귀찮다. 뭐라도 사갈까?’


문뜩 근처에서 본 케이크 가게가 생각났다.


‘그런데 가게 이름이 뭐였더라? 케이크 가게답지 않은 이상한 이름이었는데....’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시원한 바다색 바탕에 레몬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입간판이 나나코의 시선을 붙잡았다.


들어서자마자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어서 오세요. 스토리텔러가 있는 양과자점입니다.”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키 큰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나이는 서른 살 전후로 보였고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올백 스타일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러니까 저기... 집사 카페로 바뀐 건가요?”

“그럴 리가요, 저는 집사가 아닙니다. 이곳의 판매를 담당하는 직원이자 스토리텔러입니다.”

“스토리텔러요? 스토리텔러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죠?”

“상품 설명과 상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며 고객님의 구매를 돕고 있습니다.”

“이야기...요?”

“네, 이쪽 쇼케이스를 봐 주시겠습니까?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고객님들이 많이 찾아 주셔서 견본으로 내놓은 상품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선 초승달 모양을 한 이 케이크는 ‘무랑그 샹티(Meringue Chantilly)’를 응용해 만든 제품입니다.”


그가 긴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 쪽에 초승달 모양의 하얀 케이크가 있었다. 이름은 ‘무랑그 샹티 레몬’이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가벼운 머랭(Meringue) 쿠키 사이에 잘게 다진 레몬필을 섞은 생크림을 듬뿍 넣었습니다. 달콤한 머랭 쿠키와 상큼한 크림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드시면 우아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이죠.”


이름과 모양만으로는 어떤 케이크인지 알 수 없었는데 설명을 들으니 머랭 쿠키의 바삭한 식감과 레몬필의 상큼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점원은 지름이 20센티미터쯤 되어 보이는 둥근 홀케이크를 가리켰다. 하얀 설탕 옷을 입은 홀케이크는 셋 중에 가장 단순한 모양이었다.


“보름달을 표현한 이 케이크는 ‘위크엔드(Weekend)’라고 합니다. 촉촉하게 구운 소박한 버터케이크를 ‘글라스 아 로(Glace a l‘eau)’라는 새콤달콤한 레몬 풍미의 얇은 설탕 옷으로 코팅했죠. 입에 넣는 순간 설탕 옷을 품은 레몬의 새콤한 산미와 상큼한 향이 퍼지면서 와삭하고 가볍게 부서지는 식감이 매력적인 제품입니다. 저희 가게 스페셜 메뉴로 자신 있게 추천하는 상품이기도 하죠.”

“그래도 이건 너무 큰데....”

“고객님, 이 제품은 일주일 정도 두고 드실 수 있습니다. 3일째부터는 더 촉촉해지고 맛이 깊어져 색다른 맛을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위크엔드에는 소중한 사람과 주말에 함께 나누어 먹는 케이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하, 멋지네요. 그런데 저는 혼자 살아서 같이 먹을 상대가 없어요.”


정확히 말하면 남자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한 달이나 감감무소식이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미 남자친구가 아닐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이 케이크를 고객님께 꼭 추천해 드려야겠네요. 저희 가게의 위크엔드에는 소중한 사람을 부르는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거든요.”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던 집사가 노래하듯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직하게 울리는 매혹적인 목소리로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자기 일에 한계를 느끼고 답답해하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나나코는 순간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흠칫 놀랐다.

“그녀는 자신을 아주 작고 힘없고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죠. 무슨 일을 하든 잘될 리가 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대로 하던 일을 계속해도 괜찮을지 늘 고민이었습니다.”

‘맞아. 나도 그래. 내가 회사를 그만둬도 곤란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무도 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니까. 남자친구조차 한 달이나 연락이 없는걸....’

“그러던 어느 날 절망한 여자는 한밤중에 혼자 자전거를 몰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딱히 갈 곳이 없었지만 깜깜한 길을 따라 페달을 밟고 또 밟으면서 계속 달렸죠.”


언젠가 나나코도 차라리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그와 동시에 외로움과 초라한 기분, 살면서 포기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그녀를 괴롭히는 고독과 초조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칠흑 같은 밤의 어둠이 그녀를 덮었고 그 안에서 녹아 없어질 듯한 공포를 느꼈지요. 그렇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습니다. 시간이 지나 하늘이 하얗게 밝아 올 때쯤에는 다리가 퉁퉁 붓고 숨은 턱 끝까지 차서 괴로웠습니다. 머리는 몽롱했고 더는 페달을 밟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죠.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자신이 처음 보는 장소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죠. 그녀는 여전히 무력했고 외로웠습니다.”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너무나 잔인한 현실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정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죠.”


남자가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그리고 온화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 속 여자가 무엇을 보았는지 전해 주었다.


“그녀의 뒤에는 하얗게 밝아 오는 하늘과 그 안에서 점차 빛을 잃고 사라져 가는 둥근 달이 있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다정했기 때문일까? 그 풍경 또한 한없이 다정하고 따스했다. 어딘지 후련하기도 했고.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자기 뒤에는 계속 달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 밤만이 아니라 항상.... 낮에도 말이죠. 달은 햇빛이나 구름에 가려져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낮이든 밤이든 변함없이 언제나 지구 옆을 지키고 있습니다.”


남자는 말을 잠시 끊더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일렁이던 나나코의 마음이 고요해졌다. 맑은 달빛이 몸 안을 가득 채운 기분이었다.


“그녀는 이른 아침 길가에 나와 장사하는 농부에게 신선한 레몬을 샀습니다. 자전거 바구니에 레몬을 가득 싣고 다시 페달을 밟아 집으로 돌아왔죠. 돌아오자마자 달빛을 머금은 듯 노랗게 빛나는 레몬 사이에 파묻혀 죽은 듯이 잠을 잤습니다. 긴 잠을 자고 일어나서 사 온 레몬으로 케이크를 굽기 시작했죠.”


남자의 입술에 해사한 미소가 걸렸다. 그가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쇼케이스를 향해 우아하게 손을 뻗었다.


“그 케이크가 바로 여기 있는 위크엔드입니다.”


하늘에 떠 있던 다정한 달이 땅으로 내려와 달콤한 과자로 변신한 것처럼 보였다.


“이 케이크에는 지구 옆을 지키는 달처럼 항상 고객님 곁에 머무는 과자를 만들고 싶다는 파티시에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달에 인력이 있듯이 저희 가게의 위크엔드에도 소중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스토리텔러의 이야기가 끝났다.


“고객님은 어떤 제품이 마음에 드시나요?”


매혹적인 목소리로 던져진 질문에 홀린 듯 대답이 흘러나왔다.


“네. 이 위크엔드 주세요.”


나나코는 마법의 힘을 품고 땅에 내려온 달을 가져가고 싶었다.


“다녀왔습니다.”


습관처럼 인사하며 빌라 3층에 있는 좁은 원룸으로 들어온 나나코는 손을 씻고 편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아껴 두었던 홍차와 평소에는 쓰지 않는 예쁜 꽃무늬 접시를 꺼내 하얀색 접이식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귀찮아서 늘 대충 우려먹던 홍차도 오늘은 기본을 충실히 지키며 정성스럽게 우렸다. 접시와 세트인 꽃무늬 찻잔에 맑은 향기가 올라오는 예쁜 호박색 차가 채워졌다


새콤달콤한 설탕 옷을 입은 위크엔드를 올려놓으니 테이블 위에 둥근 달이 뜬 것 같았다. 살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먼저 설탕으로 코팅된 케이크 한쪽을 포크로 떠서 입에 넣었다.


와삭. 집사 점원의 설명대로 가벼운 소리와 함께 설탕 옷이 부서지고 곧바로 상큼한 레몬 향과 새콤달콤한 맛이 혀 위에서 춤을 췄다. 거기에 촉촉한 반죽의 달콤함과 버터의 풍미가 더해지자 황홀한 맛의 하모니가 완성됐다.

“달은 햇빛이나 구름에 가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낮이든 밤이든 변함없이 언제나 지구 옆을 지키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늘 같은 자리에서 지구에 사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죠.”


촉촉한 레몬 케이크에 집사 스토리텔러가 들려준 이야기가 스며 있었다.


나나코 역시 자신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세상에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는 생각에 늘 우울했다. 하지만....


상큼한 맛이 입안에 퍼질 때마다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조금씩 말랑하게 풀어졌다.


나나코는 포크를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들어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야. 응, 응. 난 잘 지냈어. 넌? 아, 일이 바빴구나. 고생했겠네.”


상대를 위로하는 다정한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에 기분 좋았다. 모두 위크엔드에 깃든 마법의 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케이크 먹고 있었어. 위크엔드라는 케이크인데 위에 코팅된 새콤달콤한 레몬 설탕이 와삭하고 부서지는 식감이 일품이야. 빵도 촉촉해서 진짜 맛있어. 응? 먹고 싶다고? 아직 많이 남았는데... 괜찮으면 지금 올래?”


나나코는 핸드폰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이 이 남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이, 뺨이, 입술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바로 갈게! 나, 사실 이번 주 내내 네 생각만 했어. 보고 싶어.”


기다렸다는 듯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쩌면 내 옆에도 줄곧 나를 지켜봐 준 사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설탕 옷을 입고 땅으로 내려온 달이 달콤한 향기로 테이블 위를 채웠다. 이제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나나코도 조용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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