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내가 궁금하다

   
권지안(솔비)
ǻ
열림원
   
17500
2023�� 03��



■ 책 소개


인생의 다음 챕터를 열어가는 사람, 권지안이 전하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용기 내어 달려보는 법

K-Pop 가수이자 방송인, 솔비. 회화ㆍ조각ㆍ설치미술 예술가, 권지안.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듯 보이는 둘은 한 인물이다. 저자는 솔비로 살아오며 불안과 변화의 연속인 삶 가운데 스스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아프고 위축되는 시간을 오래 겪었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것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기회가 됐다. 미술 작가, 권지안으로서의 삶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는 상처받은 과거, 남과 비교되는 현재, 성공할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만드는 데 집중하며 삼십 대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저자는 자신이 바라던 사람으로 성장했다.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만이 갈 수 있는 길을 꾸준히 찾은 결과였다.

『나는 매일, 내가 궁금하다』에는 상처로 깨어지고 부서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인생의 다음 챕터를 성실히 넘기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이끈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겼다.

‘나’라는 콘텐츠의 디렉터가 되어 내가 행복한 길을 스스로 만들어나간 저자의 이야기에서 도전과 용기, 응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오늘도 여전히 수많은 어려움과 고민 앞에 서 있는 독자에게, 자신과 대화하며 길을 찾는 권지안식 생각법을 권한다.

■ 저자 권지안
솔비(Solbi)로 활동하고 있는 K-Pop 가수이자 방송인. 회화, 조각, 설치미술, 행위예술,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솔비로 살아오며 불안과 변화의 연속인 삶 가운데 아프고 위축되는 시간을 오래 겪었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 새로 도전을 시작한 것이 그림 작가, 권지안으로서의 삶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는 상처받은 과거, 남과 비교되는 현재, 성공할 미래에 갇히거나 얽매이지 않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만드는 데 집중하며 삼십 대를 보냈다. 나와 대화하고, 나만 갈 수 있는 길을 꾸준히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를 궁금해하고 질문을 쉬지 않으며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 애썼던 지난 시간의 조각들을 모아, 수많은 위기 앞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응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고통의 시간이야말로 성장이 시작되는 타이밍이라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 차례
프롤로그 - 여전히, ‘나’라는 작품을 그리는 중입니다

PART 1 인지하기 - “캔버스 앞에 서듯, 낯선 나와 마주본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타인이다
그냥 남들처럼 살면 안 돼?
쓸모 있는 인간
나다운 것이 뭔데?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니?

PART 2 기록하기 - “물감의 색을 선택하듯,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진다”
몰라서 용감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내가 나를 만나는 과정
나에게 던지는 돌조차도 관심인 줄 알았다
스스로에게 외우는 주문, “특별해”

PART 3 화해하기 - “무엇을 그릴지 결정하듯, 나만의 뮤즈를 찾는다”
미움받고 미워할 용기
새로운 자아와의 만남
‘진짜 나’를 이해하는 시간
상처는 지워지지 않지만, 덮어진다
어디까지가 예술이지?
왜 착한 사람은 바보여야 해?
무엇이 우리의 클래스를 높이기 위한 최선일까?
인생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

PART 4 공존하기- “첫 획을 그리듯, 내 삶의 기준을 세운다”
말하면 이뤄지는 기적의 힘
관계 맺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결국, 사랑
암흑 속 찰나의 빛이 내게 알려준 것
소통이 많을수록 좋은 관계가 만들어질까?
행복의 자리 비워놓기

PART 5 확장하기 -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하듯, 삶이라는 작품을 기록한다”
이별의 노래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
성공의 기준을 다시 정리하다
모든 일은 때로 예상 못 한 방향으로 향하지(feat. 호기심)
세상과 맞서는 방법
편견에 대처하는 자세
사과는 그릴 줄 아니?
솔비도 하는데, 나도 해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답게 살아갈 거야

Video Artworks
추천의 글

“남과 비교하며 남이 가는 길을 따라가려고 하기보다
내가 좋은 길, 내가 행복한 길을 걷는 용기를 내보면 좋겠다”

 




나는 매일 내가 궁금하다


인지하기 - “캔버스 앞에 서듯, 낯선 나와 마주본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타인이다

“너는 꿈이 뭐니?”

“연예인이요!”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한순간도 바뀐 적이 없다. 꿈을 적는 칸에는 한결같이 연예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만큼 확고했고, 분명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리듬체조를, 중학교 때는 극단에서 연극을, 고등학교에서는 메이크업을 배웠다. 꿈을 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현재보다 미래를 위한 시간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학창 시절 내내 바빴던 기억만 난다.


그러나 내 노력과 별개로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누구도 내 꿈을 환영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정해진 틀을 벗어난 딸을 못 미더워하셨고, 선생님은 허무맹랑한 꿈을 꾸는 신기한 학생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내 주위의 어른들은 나를 믿지 않았다. 일반적인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린 나의 꿈은 어이없는 이야기였고, 나를 위한다고 포장한 말들은 내게 상처만 줄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시간을 버텨 결국 꿈꾸던 길을 걷게 됐다. 데뷔를 하며 나를 의심했던 사람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선물한 것이다.


상황이 바뀌자 어른들의 말도 달라졌다. “잘한다, 잘한다”라며 나를 부추겼다. “순수하고 착하고 특이해, 너는. 참 재미있어”라며 칭찬인 듯 아닌 듯 모호한 말을 했다. 지금 와서 하나씩 떠올려보면 칭찬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는 언제나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나를 가르쳤지만, 착하다는 것은 험한 사회에서 좋은 먹잇감이 되는 조건이기도 했다. 물론 어른들의 이야기에 배워야 하는 점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나와 가장 가까운 부모님이라도, 나를 보호하려는 어른이라도 내가 될 수는 없다. 나와 같은 꿈을 꿀 수 없고, 나만큼 내 인생에 절실하지 않다. 내가 겪는 현실을 그대로 겪을 수도 없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결국 타인이라는 말이다.


최근에 데뷔 초의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던 당시의 내가 참 안쓰러워 보였다. 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꿈을 이루기 위한 길에서 나를 지켜줘야 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에게 따뜻한 칭찬 한 번 해주지 못했기에 꽤 오래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꿈이라는 장벽 앞에서 얼마나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지, 내 몸을 소중히 다루고 있는지, 마음을 혹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도 안 되는 일들로 스스로를 잃어가는 건 아닌지 꼭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꿈을 꾸는 건 아름다운 것이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은 꽃길이 아닌 수많은 고난과 시련이 존재하는 가시밭길을 걷는 것에 가깝다.


마음처럼 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견뎌내야 작은 성과라도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길이기에 꿈 앞에서만큼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내가 먼저여야 한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면 꿈을 이루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늘 스스로 점검해봐야 한다. 타인으로 인해 꿈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혹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형 놀이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라는 사람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남이 하니까’ ‘남이 원하니까’라는 이유로 무수히 많은 나를 잃게 된다. 아무도 나를 위해 독이 든 사과를 걸러주지 않는다. 깨물어보거나 모양을 유심히 살펴 독이 든 사과를 골라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것이 생존의 길이다.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니?

가수로 데뷔한 내가 예능을 열심히 하게 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개인적인 이유이다. 중학생이던 시절, 우리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고 그때마다 나는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나면 그간의 걱정이나 슬픔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때마다 속으로 ‘내가 연예인이 되면 꼭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사람들을 웃겨줄 거야. 지금의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다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데뷔 후 목격한 한 장면 때문이었다. 당시는 예능 프로그램 PD가 음악 프로그램 PD를 겸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음악 프로그램에 나가 무대를 서고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예능 프로그램 PD에게 가수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했다. 이런 이유로 예능 출연에도 소위 목숨 걸던 시절이었다. 방송국에 도착했는데 한쪽에서 매니저 실장님이 PD를 붙잡고 연신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타이푼 CD를 건네고 있었다. “저희 솔비 잘 부탁드려요. 한번 출연시켜주세요, PD님.”


그러나 앞에 선 PD는 귀찮음이 잔뜩 묻어난 얼굴로 시큰둥하게 매니저 실장님을 보고 있었다. 신인이니까, 모르는 얼굴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오기가 생겼다. 나 때문에 애쓰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실장님을 보는 맘도 편하지 않았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지만, 실장님에게 “진짜 고마워요. 한 달 안에 꼭 PD들이 나를 찾게 만들게요”라고 웃으며 진담 섞인 농담을 건넸다.


그때부터 내 마인드가 확 바뀌었다. 열정이 넘치고 에너지가 과하다 못해 흘러넘쳤다. 한마디로 전투력 맥스 상태가 된 것이다.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우리 팀을 알리려고, 어떻게든 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었다. 원래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은 마음의 있었는데, 웃음을 넘어 아예 나를 각인시키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였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을 때 마침 출연한 프로그램이 <엑스맨>이었다. 방송 중에 피구를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여자 연예인이 머리로 공을 받고 악착같은 모습을 보여주니까 화제가 됐다. 당시만 해도 그런 캐릭터가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말했던 딱 한 달이 지나고부터 여러 예능 프로그램 PD들이 나를 섭외하려고 연락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출연 요청이 많은 것보다 매니저 실장님에게 내가 한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그렇게 무명 시절 없이 데뷔 한 달 만에 인지도가 올라가는 행운을 얻었다. 연예인이 되려고 애쓴 시간은 십 년 가까이 되는데 막상 데뷔를 하니까 한번에 모든 것이 이뤄진 기분이었다.


당시에 솔직하고 발칙한 캐릭터가 없었기 때문에 PD들은 나를 좋아했다. 나는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그저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주변에서도 너무 좋다는 말뿐이었다. 날것의 모습이 많이 나올수록 칭찬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디까지, 어떻게 나를 보일 것인가’ 하는 기준을 잃었다. 무조건 잘되어야 하고, 무조건 한 번의 기회라도 더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작 ‘나’는 어떻게 되는지 돌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뷔하고 처음으로 친구를 만났다. 신나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가서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친구가 내 눈치를 보며 “너는 왜 그런 캐릭터로 방송을 하는 거야? 사람들이 다 네 욕만 해”라고 말을 꺼냈다.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다들 좋다고만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반응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이 일을 계기로 포털 사이트 댓글의 존재를 알게 됐다. 댓글의 영향을 받으면서 혼란스러웠다. 분명 좋은 분위기로 방송을 마쳤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안 좋았다. 나는 마치 사건 사고를 일으킨 사람처럼 온갖 악플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자존심이 상하고 슬펐다. 혼란스러워서 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댓글을 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앞으로 조금이라도 덜 욕먹고 싶었으니까.


그런 상태로 시간은 착실히 흘렀고, 삼 년쯤 지나고 나니 많은 스케줄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온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정체성도 존재 이유도 잃어버렸다. ‘나는 왜 연예인이 되고 싶었지?’ ‘내가 가수가 된 이유가 뭐지?’ ‘나는 어떤 모습이고, 내가 바라던 것은 무엇이었나?’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제일 마지막 질문은 ‘지안아, 너 잘 살고 있는 거 맞니?’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보지 않고, 모른 척하면서 스케줄대로 움직이던 삶은 끝났다. 내가 모른 척했던 나의 시간은 결국 칼이 되고 화살이 되어 돌아왔고, 끝없이 살을 파고들어 상처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긴 슬럼프가 시작되었다.



화해하기 - “무엇을 그릴지 결정하듯, 나만의 뮤즈를 찾는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지만, 덮어진다

예술가라는 단어는 가볍지 않다. 그러니 방송하고 노래하던 내가 그림 그리는 예술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대책 없어 보였을까? 아마 내 지인의 일이었다면 나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런 반응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난이나 비웃음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절실했다. 살기 위해 잡은 동아줄이자 유일하게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치료제를 앞에 두고 그런 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미술은 내게 그런 선물 같은 존재였다.


2009년부터 찾아온 슬럼프는 나를 갉아먹었고, 나는 우울에 삼켜졌다. 그때부터 기약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어떻게든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뭐든 했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관심이 생겼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눈길이 갔다. 모두 그림의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고, 나의 이야기를 넘어 사회의 이야기를 전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미술을 시작하면서 세상을 보는 기준과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다. 미술을 통해 알게 되는 역사, 인문 지식들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조금씩 이해해갔다. 나의 경험과 이야기를 사회적 시선으로 옮겨 더 많은 이와 나누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여자 연예인으로 살면서 겪은 뜻하지 않은 상처와 시련들이 있었기에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상처로부터 완전하게 안전할 수는 없다. 지우려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도 있고, 흉이 남아 오래도록 기억되는 상처도 있고,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상처도 있다. 나에게도, 모든 여성에게도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한 작품이 <하이퍼리즘 레드>다. 하이퍼리즘은 온라인상의 과도한 정보 때문에 공허함, 우울감을 느끼는 현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온라인으로 인해 생긴 현대 여성들의 상처를 더 깊게 바라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상처 입은 여성들의 삶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 꽃으로 탄생하기를 바랐다. 여성의 삶과 그들의 상처를 형상화하며 나 역시 내 안의 상처들을 하나씩 만지고, 치유했다. 어떤 것은 미세한 흉이 남았으며, 어떤 것은 여전히 아프지만 고통의 강도가 줄었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지만, 덮어진다.


평생 어떤 상처도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상처가 생길 때마다 삶의 의지를 잃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상처는 언제든 생길 수 있고, 상처가 없었던 시절로 돌아갈 순 없어도 치유하고 낫게 만들 수는 있다. 흉터는 지워지지 않아도, 새살이 돋고 옅어지게 할 수 있다. 상처와 함께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사실을 나 자신에게도, 상처 입고 힘들어하는 주변 모든 이에게도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왜 착한 사람은 바보여야 해?

“그것도 몰라? 바보네, 바보야.”

“수학 시간에 다 배웠던 내용이잖아요. 기억 안 나요?”

“머릿속이 아주 꽃밭이네.”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말이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묘한 반발심이 고개를 든다. 왜 다양한 지식을 알지 못하면 바보가 되는 걸까? 왜 동심을 가진 이들은 딴 세상 사람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까? 똑똑해지기 위해서라면 착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동심을 가지고 있어야 꿈과 희망도 있는 것인데 많은 이가 그 사실을 놓치고 있다.


반드시 이뤄지지 않아도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보는 시도, 꿈을 꾸겠다는 의지 같은 것들이 더 소중할 때가 있는 법이다. 과정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런 시작이 없으면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주변에서 자꾸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너는 바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말이다.


꿈을 꾸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런데 꿈을 꾸는 것조차 계급에 따라, 재산 정도에 따라 누구에게는 있고 누구에게는 없는 듯 보인다. 옛날에는(옛날이라는 단어를 쓰니까 꼰대가 된 기분이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연예인을 꿈꾸던 시절에는 당장 밥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파도 나는 분명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 있어서 살 수 있었다. 배고픔도 잊고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 스스로 꿈꾸기를 선택했고, 다른 것들을 포기하면서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꿈이 현실이 되기도 하고, 꿈으로만 남은 것들도 있다. 이런 경험은 스스로 선택하고 시도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미 다 정해진 길이 있고, 그 길을 걷지 않으면 바보 같은 사람이 된다. 좋은 대학, 좋은 결혼 상대, 많은 재산 등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이 정답처럼 여겨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개인의 선택권이 다양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오히려 상실된 측면이 크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선택이 강요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미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인식을 만들고,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기보다 원하는 인식을 인지시키기 바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편협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되기도 하고, 꿈과 희망 대신 재물에 열광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조금 손해를 봐도 괜찮다고 양보하는 사람은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살게 된다.


나는 이런 틀을 흔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나 역시 저 안에 갇혀봤다. 반대로 꿈을 꾸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만들기도 했다. 이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생각의 방향을 다르게 해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작품의 주제를 정할 때도 이런 생각들이 바탕이 된다. 꾸준하게 자신을 인식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은폐된 나를 바라보고, 사이버불링에 맞서고,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중이다. 작품을 통해 이런 이야기들을 사회적 화두로 던지며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나는 미술을 통해 나와의 관계를 새롭게 써나가고 있다. 작품을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나조차 숨기고 보지 않았던 나를 만난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왜 바보냐는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고, 똑똑함보다 동심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기도 한다. 길을 잃고 반성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나라는 사람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이 과정에서 믿을 사람은 나뿐이다. 나를 믿으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사회와 공유하는 것,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까지 내 자신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착한 사람은 좋은 사람일 뿐 바보가 아니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용기 있게 꿈을 꾸는 사람이지 바보다 아니다. 미련한 것도 아니다. 더불어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때 모든 이는 최대의 가능성을 가진다. 남과 같은 나는 그저 무리 중 한 명, 집단 속 한 명일 뿐 고유하지 않다. 그러니 남과 비교하며 남이 가는 길을 따라가려고 하기보다 내가 좋은 길, 내가 행복한 길을 걷는 용기를 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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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