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한 엄마와 거친 남미로 떠났다

저   자
조헌주 외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가   격
15.800원(340쪽)
출판일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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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우연찮은 계기로 급작스레 떠나게 된 엄마와 딸의 날것 그대로의 여행기
그리고 떠나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하여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인 엄마.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와 엄마는 남미 여행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갔다.

살아온 방식이 달라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딸로서는 엄마의 방법이 답답하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엄마와 3개월간 함께하면서 저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고, 해묵은 감정들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남미 여행을 끝낸 후 저자는 말한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보시길. 그리고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보시길.

그녀는 오늘도 다른 여행지로 엄마와 함께 떠나기를 꿈꾸고 있다.

■ 저자 
조헌주
자유기고가/칼럼니스트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편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 여행을 통해 나답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글을 쓰며 그 깨달음을 나누고 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그녀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저서로는 《자존감 있는 글쓰기》, 《무작정 떠나는 산티아고, 나답게 뜨겁게》, 《여행, 가장 나답게》, 《혼자 만화영화 좀 보는 게 어때서?》, 《어쩌다, 해방촌》 등이 있다

이명희
엄마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져,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 습관으로 수필작가가 되었고, 예술인상을 받았으며, 현재는 증평 문인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에 딸과 함께한 자유 여행으로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상황과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여행하며 살고 싶은 바람이다

■ 차례
프롤로그: 친하지도 않은 엄마와 남미 여행이라고?

한국
그 모든 건 사고로 시작되었다

브라질
이제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다
여행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엄마가 호텔에서 쫓겨났다

파라과이
드디어 시작된 생활 여행자 모드
위험천만 범죄의 소굴로
옷이 젖어도 상관없다

아르헨티나
첫인상, 과연 전부일까?
괜찮은 게 아니었다
땅고, 시리도록 매력적인
두려운 24시간 장거리 버스

칠레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항구 도시
사막 위로 별이 쏟아진다
제발 그것만은 돌려주세요

볼리비아
그래도 소금 사막은 찬란했다
엄마가 활기를 띨 때
최상의 시간 vs 최악의 순간

페루
페루까지 와서 마추픽추를 못 간다고?
한 번만 더 받으면 날아갈지도 몰라
이제 여한이 없다
버스가 없으면? 비행기를!
타지에서 처음 맞는 엄마 생신
오아시스에서 스트레스를
더 이상 20대의 체력이 아니다

쿠바
기대는 실망이 되어
살사 대신 말레콘 걷기
종합 선물 세트가 바로 이런 걸까
합리적인 호사를 누려보다
쿠바에 의한, 쿠바에 대한 내 작은 바람
아디오스 쿠바, 올라 칸쿤

멕시코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우리는 세 번 멕시코 천사들을 만났다
자유 섬 투어 vs 패키지 섬 투어
더할 나위 없는 천국

에필로그: 여행의 추억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도서요약


서먹한 엄마와 거친 남미로 떠났다


한국

그 모든 건 사고로 시작되었다

어느 평화로운 평일 저녁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몇 번 울리고 말았을 전화가 계속해서 울려댔다. 전화를 받자마자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엄마가, 교통사고를 냈어. 빨리 보험회사에 연락해봐.” 엄마의 안위를 걱정하기도 전에 끊긴 전화.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난 다급하게 하던 일을 정리하고 양해를 구한 뒤,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든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엄마가 괜찮기를 바라는 것.


바로 사고가 났다는 장소로 갔다.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말로만 듣던 ‘급발진’이었다. 직진으로 가면 건물 벽에 부딪혀 차가 박살이 나는 거였는데, 엄마는 순간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앞에 있던 차 두 대를 박고 차가 정지한 곳은 전봇대와 건물 사이의 공간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이 정도인 게 천만다행이었고, 하늘이 도우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차는 폐차되었다.


엄마라는 존재. 항상 옆에 든든하게 계실 줄만 알았는데 이번 일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하게 됐다. 엄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뭘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뭔지에 대해 말이다. 엄마와의 추억도 그리 많지 않았다.


며칠 뒤, 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지금 제일 해보고 싶은 거 있어요?”

“해보고 싶은 것보다는... 외삼촌이 사는 곳에 가보고 싶어.”


외삼촌은 엄마에게 있어선 동생이자, 아들 같은 느낌의 존재다. 외삼촌은 한국에서 사시다가 일 년 전에 남미에 있는 파라과이로 이민을 가셨다. 엄마는 본인이 뭘 하고 싶냐고 묻는 질문에도 자신보다는 외삼촌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아니면 엄마는 동생이 살고 있는 땅을 밟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미는 오래전부터 내가 꿈꿔왔던 여행지이기도 했다. 난 엄마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엄마, 남미 갑시다. 3개월 정도 시간 내요!” “한 달만 갔다 오면 안 되나?” “한 달은 안 되지. 비행기를 얼마나 타고 가는데.”


어떤 사고든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인생에서 말하는 ‘우연’이라는 것들은 어쩌면 교통사고와도 같이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생각지도 못하게. 아주 갑자기. 그리고 그 사건들로 인해 행동해야 할 목표와 방향이 설정되는 게 아닐까. 그대로 앉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어딘가로 움직일 것인가! 우린 움직이기로 선택을 했고, 그렇게 남미로 나아가기로 했다.


브라질

이제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다

수고보다는 간편한 게 최고이고 선물도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나와는 달리, 엄마는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을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기에 엄마는 외삼촌댁에 간다는 들뜬 마음으로 외삼촌이 좋아하지만 파라과이에서는 구하기가 힘들다는 미숫가루를 방앗간에서 빻아 오셨다. 그리고 외삼촌께서 직접 부탁했던 짐까지 더하니 30인치 캐리어 안이 꽉 찼다.


브라질로 향하는 여정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멀고도 험난했다. 미국에서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 안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 그렇게 하루 꼬박 넘는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우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다.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웬걸!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의 짐이 나오지 않는다. 우려하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의 짐은 다른 곳에 격리되어 있었고, 공항 직원은 캐리어를 열어보라고 했다. 의심되는 물건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내가 걱정했던 미숫가루였다. 난 이들이 ‘가루’에 얼마나 민감한지 안다. 그래서 친절하게 미숫가루를 담은 봉투에 mixed grain(섞인 곡물)이라고 써 놨건만. 이들은 못 믿겠다는 눈치다. 가루에 들어간 성분을 하나하나 묻기 시작했고, 직접 가루를 찍어 맛을 보기도 했다.


검사를 받고 공항 밖을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을 땐 난 이미 탈진 상태였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린 듯하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이제 시작이고, 난 이제부터 엄마의 보호자다. 새삼 내가 너무 순식간에 커버린 것 같다.



파라과이

드디어 시작된 생활 여행자 모드

파라과이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는 여행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매력이 없어 그냥 지나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설렐 수밖에 없다. 외삼촌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니 말이다. 어디든 연고가 있는 곳을 갈 때는 기대감이 생긴다.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는 배낭여행자가 아닌 ‘생활 여행자’가 될 것이다. 단순히 관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진짜 삶을 볼 것이다. 여행지가 생활지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엄마와 나는 그곳에서 새벽마다 한인교회로 새벽기도를 다녔다. 앞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엄마는 목사님이시다. 어렸을 때 여느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가정환경에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엄마는 네 남매를 키워 놓고 본인이 하고 싶었던 신학 공부를 계속하셨다. 그래서 환갑 전에 목사 고시를 보고 목사님이 되셨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다 포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엄마는 본인의 꿈을 사부작사부작 이뤄가고 계셨다. 아직도 엄마 안에는 아주 커다란 ‘열정’ 나무가 자라고 있는 듯하다.



칠레

사막 위로 별이 쏟아진다

아타카마는 마을 끝에서 끝까지 걸으면 20분 정도 걸리는 진짜 작은 마을이었다. 진흙을 굳혀 벽돌을 만들어 쌓아 올린 아도베 양식으로 지어진 흙집이 대부분으로, 마을 전체의 빛깔은 황토색이었다. 특색이 있어 좋은 곳, 아기자기함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그래서 큰 이벤트가 없어도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편안하게 며칠 동안 머무르며 휴식을 취해도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물가는 조금 비싸다는 느낌!


이곳은 마을 자체의 구경거리보다는 주변을 여행하는 투어 상품이 많았다. 일단 가장 유명한 달의 계곡 투어를 신청했다.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과 비슷한 곳’이라고 한 후 달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는 남미를 여행한 후에 남미에는 두 개의 달이 존재한다고 했다(또 다른 하나는 볼리비아에 있다). 실제로 달과 환경이 비슷해 우주 비행사들이 훈련을 받기도 했던 곳이다.


투어 시간이 되어서 메인 거리로 갔다(메인 거리라고 해봤자 하나의 길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거리엔 사람이 없다. 왜? 그 시간에 축구 경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칠레 사람들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만사를 제치고 경기를 본다.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자 우리는 걸어서 봉고차가 있는 곳까지 갔다. 가이드는 각 나라의 언어로 인사를 건네며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했다.


봉고차를 타고 가는 길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영화 <마션>에 나올 법한 풍경들. 외계 생명체가 있을 것도 같았다. 투어는 오후 4시에 시작해서 소금 바위들을 헤쳐 나가고, 세 개의 마리아상(기도하는 마리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을 지나, 해가 질 무렵에 달의 계곡에 도착했다.


‘자연보다 위대한 예술가는 없다’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곳. 그 어떤 화려함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거친 모습과 황량함 자체를 바라보게 되는 곳. 살아있는 지구가 만들어 낸 환상적인 지형이었다. 무엇보다 황량함 속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풍경은 예술이었다. 오로라 빛을 머금으며 은은하게 사라지는 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이드는 그 사이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점프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꽤 만족스러운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서 숙소를 가는 길, 가로등도 하나 없고 정말 깜깜했다. 가다가 잘못하면 넘어지기 좋은 곳. 오늘도 난 숙제 하나를 마친 기분이었다.



페루

페루까지 와서 마추픽추를 못 간다고?

여행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특유의 낙관성을 잃지 않는 나였다. 그러고 옆에 있는 사람을 다독이는 것 역시 항상 나였다. 그런데 엄마와 여행하면서는 나의 다른 모습이 보였다. 조그만 일에도 온갖 불만을 가지고 투정하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걱정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나도 나의 이런 모습이 낯설었다. 아무래도 엄마가 옆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엄마라는 존재만으로 무장 해제되어 내가 가지고 있던 본 모습이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도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엄마는 그 모습까지도 품으며 다독이고 격려해 주셨다. 계속해서 놓이는 낯선 환경들에 긴장되는 건 나보다 엄마일 텐데......


여행은 이렇게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만든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이렇게 세세하게 서로에 대해 알 기회가 많지 않다.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쁘니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적인 사건이 많이 없으니까. 그런데 여행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지나고 나면 둘만의 추억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둘만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엄마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지금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만들어 갈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버스가 없으면? 비행기를!

다음날 우리는 새벽부터 나가서 콜카캐니언 투어를 하고 왔다. 깊은 협곡에 날아다니는 콘도르를 보고, 화산 마을에 있는 온천에서 몸도 담그고, 몇십 년 전에 화산으로 인한 폐허가 되기도 한 마을을 돌아봤다.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 주인아저씨가 바비큐 파티를 한다고 우리를 초대했다. 배고프던 차에 좋은 소식이었다. 숙소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여기엔 한국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네 앞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두 명의 20대 청년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들은 콜카캐니언 투어 3박 4일을 걸어서 다녀왔다고 했다. 역시 젊기에 할 수 있는 도전이다. 나는 그들에게 대단하다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한테 더 대단하다고 한다. “어떻게 여행을 엄마랑 둘이 다녀? 그것만큼 대단한 건 없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그거 칭찬 맞는 거지?”


나는 내가 언제나 행운이 뒤따른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엄마의 기도가 가져오는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한국 사람들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말수가 줄어든다. 그런데 나는 그런 엄마가 귀엽다. 한국에서는 호랑이처럼 강하고 억세게 보였었는데, 엄마의 이런 모습은 소녀 같기도 하고 천사 같기도 하다.


타지에서 처음 맞는 엄마 생신

페루 리마에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난 숙소로 한인 민박을 선택했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의 날씨가 꽤 흐리다. 도착하니 숙소 매니저가 리마는 항상 이런 날씨라고 한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하는 나이이도 한데 내가 있는 동안은 조금이라도 맑은 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아레키파에서 버스가 있었다면 이카를 거쳐 리마로 왔을 것이다. 이카는 사막 버기 투어가 유명한 곳이다. 버기라고 하는 차를 타고 하는 투어인데 TV 프로그램에서 많이 소개되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막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 가운데 오아시스가 있는 풍경 사진을 많이 봤던 터라 너무나도 궁금했다. 일주일 동안 엄마는 리마에 계실 거고 난 리마를 거점으로 남쪽에 있는 이카와 북쪽에 있는 우아라스(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곳)에 다녀올 것이다.


리마 숙소에 도착한 엄마가 조용히 말씀하신다. “나 오늘 생일이야.”


아뿔싸! 엄마의 생신은 음력이라 매번 날짜가 달라지니 정확하게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가족이 모여야 하니 매번 생신 당일보다는 그즈음의 주말에 모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생신을 맞는 건 엄마 생애 최초가 아닐까 싶었다. 생신인데 아무거나 먹을 순 없고, 페루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 뭘까 생각해보았다. 바로 ‘세비체’다. 세비체는 해산물을 얇게 잘라 레몬즙이나 라임즙에 재운 후 먹는 중남미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페루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으로 해산물이 풍부하고 값이 싸다는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엄마와 나는 해산물을 좋아한다.


마침 숙소에 있던 매니저님께서 유명한 세비체 집을 추천해 줘서 그곳으로 갔다. 진짜 유명한 곳은 유명한 곳인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다른 데 갈까 했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기에 그 시간을 기다려 식사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어놓고 주변 산책을 다녀왔다. 조금만 걸어가니 바다가 보였고, 거기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다. 날씨만 우울할 뿐이었다.


다시 레스토랑으로 가서 기다리다가 우리는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엄마의 특별한 생신 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20대까지만 해도 생일이 마냥 신나고 좋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된 것 같다. 특별해야 할 날에 쓸쓸함이 더 생기는 건 기대감이 너무 커서이지 않을까 한다. 그 특별한 기대감으로 생일을 맞이하다가 지나면 또 허무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떤 특별한 날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매일이 특별한 날인 것처럼 살자고 말이다. 엄마는 생신 때 무슨 마음이실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그 모든 생각을 접고 우리 앞에 놓여있는 음식들에 대한 맛을 음미해야 할 때다. 엄마는 자칫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게 맛을 보셨다. 그러더니 계속 드신다. “뭔가 특이한데 맛있어.”


엄마가 맛을 음미하면서 맛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타국에서 맞는 엄마의 생신 파티는 이로써 나름 성공한 것 같다. 엄마도 다음 생신을 맞을 때 지금 이 순간이 평생 기억나겠지.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많이 쌓인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지금 난 엄마의 그 풍성한 추억에 일부가 되어 있고, 그동안 떨어져 있어서 다 알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내 삶을 산다고 하지 못했던 엄마에게 효도를 하는 듯해서 조금은 뿌듯하다.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음식과 문화가 우리에게 당연했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만약에 우리가 남미에서 태어났다면 남미 문화가 당연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들을 속단할 수 없다. 나에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 그건 폭력이 될 수도 있기에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난 이런 감정인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지 문득 궁금해졌다.



멕시코

더할 나위 없는 천국

칸쿤은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호텔 존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고급 호텔과 리조트들이 해변가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여행객들을 상대로 하는 비싼 관광 지역이다. 다른 하나는 해변가에서 버스를 타고 한 번 더 들어가야 하는, 칸쿤의 일반 주민들이 주로 살고 있는 다운타운 지역이다.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칸쿤으로 이동하면서 고민이 되었다. ‘올 인클루시브 호텔에 가고 싶은데 신혼여행으로 미뤄둬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올 인클루시브 호텔을 예약하기로 했다. 언제 신혼여행을 가게 될지도 모르고, 엄마와 함께 가는 것도 의미 있겠단 생각이었다. 금액은 쿠바 바라데로에서 갔던 호텔보다 무려 5배가 비쌌다(굳이 이렇게 비교를 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내 삶의 방식도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합리적인 가격을 선택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최고는 왜 최고가 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에는 과감하게 투자를 한다. 그 선택을 하기까지 고민도 많이 하지만 말이다. 칸쿤이 마지막 여행지였기 때문에 호사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무엇보다 이제껏 여행하느라 고생하신 엄마께, 그리고 날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엄마께 최고의 선물을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낮에는 뷔페식당에서 선택을 해서 먹을 수 있고, 저녁에는 원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할 수 있다. 한식, 중식, 일식 등 레스토랑 자체가 다채롭고 고급스러웠다. 음식의 퀄리티도 남달랐다. 먹고, 놀고, 쉬고...... 그야말로 한량 놀이에 딱 맞다. 시간이 한정되어 다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오후의 햇살은 너무나도 강해서 숙소에서 쉬다가 해가 질 때쯤 해변으로 가본다. 칸쿤의 바다는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예쁘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엄마가 하얗고 고운 모래를 보더니 ‘떡가루’ 같다는 표현을 하셨다. 해가 질 때까지 잔잔한 에메랄드빚의 카리브해 해변에서 우린 수영을 즐겼다. 무한으로 제공되는 칵테일과 함께. 이곳은 아이들과 함께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다 위로 지는 일몰을 바라본다. 엄마와 함께 이런 근사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우리는 코스별로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선택해서 들어갔다. 정말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한데 금방 배가 불러 다 못 먹는다는 사실이 슬펐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메인 광장에선 멕시코 전통 공연이 진행되고 있어서, 공연을 구경하고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하루의 일정이 다 끝났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야외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바람도 솔솔 불어온다. 계속 기분이 좋아진다. 많은 표현이 없던 엄마가 이런 말을 하신다. “너무 좋다. 너무 좋아. 진짜 좋아.”


이 말을 백 번쯤은 하신 것 같다. 엄마가 행복해하니 나도 행복하다. 자식들을 키워 내느라 억척스럽게만 살아오신 엄마.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부모님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건데, 살아온 환경이 달라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며 그냥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해주신 것이 많은데, 안 해준 것만 생각하면서 부모님에게 억울한 마음을 갖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생각지도 못했던 엄마와의 남미 여행, 교통사고처럼 정말 갑자기 왔지만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위해 계획된 일인 것만 같았다. 비로소 이 여행의 끝에서 그 어떤 일도 우연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렇게 엄마와 단둘이 지상 천국이라는 칸쿤까지 와서 바람을 함께 맞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격스럽기만 하다.


명령 한 번 하지 않으시고, 불평 한 번 없이 자신이 짊어야 할 짐을 지고 아픈 무릎에도 아프다고 내색하지 않으신 엄마. 끝까지 나를 인정해주시며 그 험하다는 남미 여행을 다 마치셨다.


“내 엄마가 되어줘서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전하는 딸의 마음이기도 하다. 남미 여행을 끝내고 떠나는 이 시점에 나는 또 다른 곳에서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을 꿈꿔 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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