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길

   
레이너 윈(역:우진하)
ǻ
쌤앤파커스
   
15000
2021�� 03��



■ 책 소개


1년 동안 두 사람의 발자국으로 채워간
회복과 치유의 소금길 1,000킬로미터

열여덟에 처음 만나 서른두 해를 함께한 중년 부부 레이너와 모스는 불과 일주일 만에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두 사람이 스무 해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관리했던 집과 농장은 지루하게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모두 빼앗겼고, 남편 모스마저 치료제도 없이 진통제로만 버텨야 한다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더는 내몰릴 곳 없는 벼랑 끝에 선 두 사람은 내일을 위해, 희망을 되찾기 위해 배낭 하나씩만 메고 영국 남서부 해안의 절경을 품고 이어지는 내셔널 트레일 코스인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로 향한다.

평범한 주부였던 저자가 쉰이 넘어 쓴 첫 번째 책이기도 한 『소금길』은 1년여 동안 1,0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묵묵히 걷는 동안 경험한 가지각색의 사람들, 쉽지 않은 여정 그리고 자연이 두 사람에게 선물한 진심 어린 위로와 희망을 담았다. 영국에서는 출간 직후부터 수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선물하며 여러 매체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관찰 예능을 보는 듯한 현실감 넘치는 부부의 살아 숨 쉬는 이야기와 함께 영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유려하게 묘사한 문장으로 가득한 이 책은 유례없는 세계적 팬데믹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이들에게 위로와 함께 다시 한 걸음 내디딜 용기를 준다.

■ 저자 레이너 윈
저자 레이너 윈은 자연의 치유력과 캠핑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이자 장거리 워커(walker)이다. 3년여 동안 지루하게 이어진 법정 공방은 손수 일군 집과 농장 등 모든 것을 앗아가고 말았다.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되었다고 느꼈던 그때, 남편 모스와 함께 영국 남서부 해안에 위치한 약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내셔널 트레일인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를 무작정 걷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걸음을 옮기면서 경험한 자연이 준 위로와 희망을 첫 책『소금길』에 담았다. 출간 직후부터 수많은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며 위로를 선물한 이 책은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코스타 북 어워드’와 생태와 환경 분야 도서에 수여하는 ‘웨인라이트 프라이즈’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소금길』 이후 새로운 터전에서의 정착 과정을 담은『와일드 사일런스』가 있다. 

■ 역자 우진하
역자 우진하는 삼육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 테솔 대학원에서 번역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성 디지털대학교 실용외국어학과 외래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출판 번역 에이전시 베네트랜스에서 전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와일드』 『나의 기억을 보라』 『2030 축의 전환』 『붕괴』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1부 빛을 향하여
1. 인생의 먼지
2. 상실
3. 대변동
4. 부랑자들과 방랑자들

2부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
5. 노숙자
6. 걷기
7. 굶주림
8. 우리가 있는 곳

3부 머나먼 길
9. 도대체 왜
10. 초록색, 파란색
11. 살아남기
12. 바다의 댄서들
13. 살가죽
14. 시인들

4부 소금 맛이 살짝 밴 산딸기
15. 바다를 바라보는 땅
16. 또 다른 길을 찾아서
17. 추위

5부 선택
18. 양털 깎기

6부 경계선에서
19. 생명의 기운
20. 받아들이기
21. 소금길

감사의 글

 




소금길


빛을 향하여

상실

나는 법정에 앉아 모스가 앞에 놓인 검은 탁자 위에 있는 하얀 자국을 손으로 문지르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우리에게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걸어온 남자와 모스는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왔고 다른 친구들과도 다 같이 어울리는 사이였으며 그렇게 축구도 하며 뛰어놀며 십 대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다른 친구들이 다 떨어져 나갔을 때도 두 사람의 관계는 변치 않았다. 그렇게 성인이 된 모스와 친구는 이윽고 각기 다른 길을 찾아 삶을 꾸려나가게 되었는데, 친구인 쿠퍼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상쩍은 금융 관련 일을 하게 되었을 때도 모스는 연락을 끊지 않고 관계를 유지했다. 쿠퍼를 그만큼이나 신뢰했기에 그가 관여하고 있는 회사 중 한 곳에 투자할 기회가 생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우리는 그 회사에 적지 않은 돈을 맡겼다. 그리고 그 회사는 막대한 부채를 남기고 도산하고 말았다. 도산한 회사의 부채에 대해 투자자인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이 어디선가 조금씩 들려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그냥 무시했지만, 쿠퍼는 투자 계약 내용 때문에 우리도 부채를 갚아야 할 책임이 있다며 점점 더 강경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모스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정이 깨진 것에 대해 크게 절망했고 그렇게 둘 사이에는 몇 년에 걸친 불화와 다툼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회사 부채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확신했다. 처음 투자 계약을 할 때 그런 내용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스는 결국 문제가 다 잘 해결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믿음도 어느 날 법원의 강제 집행 명령서가 집으로 날아오자 끝장나고 말았다.


대변동

순리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일을 더 열심히 하며 셋방이라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살던 집뿐만 아니라 휴가객들을 상대하던 일거리마저 다 잃은 상태였다. 어디서도 돈이 나올 구석이 없었다. 삶을 다시 꾸려나가기 위해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했지만,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그나마 양호한 건강 상태로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다 모스의 몸이 점점 마비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모스를 떠나 일을 하러 갈 수는 없었다. 나는 그나마 건강이 남아 있을 때 이 귀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모스와 함께 있고 싶었다. 혼자 견뎌야 할 외로운 미래를 위해 그와 함께 하는 기억이라면 어떤 것이든 만들어놔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근처에서 머무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아. 웨일즈 지방을 떠나 어디 멀리 가던지 해야지. 이대로 있기는 너무 힘들어. 얼마나 오래 떠나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나한테 얼마나 시간이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어디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 새로 집으로 삼을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어.”


나는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 배낭을 꾸려서 어디든 떠나보자고.”

“그래, 우선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로 가보자.”


머나먼 길

바다의 댄서들

트레보스의 등대가 늦은 오후의 햇살 아래 눈부신 모습으로 서 있었다. 푸른 바다와 너무 환하게 대조가 되어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마른 풀밭 위에 누워 코의 허물을 벗겨 내고 있으려니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것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예컨대 배도 덜 고프고 목도 덜 마른 식이었다. 우리는 초저녁이 될 때까지 푹 잠을 잤다. 서늘한 바람에 잠에서 깬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 물대로 덮인 모래 언덕을 배경으로 한 완벽한 모습의 바닷가를 향해 내려갔다. 우리는 짙은 녹색의 튼튼한 풀들이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냉기를 어느 정도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며 풀밭 위에 텐트를 쳤다. 그리고 젖어 있는 텐트 내부를 바람에 말리기 위해 텐트 문을 열어두었다.


물때가 바뀌면서 바닷물이 다시 무섭게 육지 쪽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왔다. 네오프렌으로 된 매끈한 옷을 입고 서핑 보드를 들고 그들이 몰려들었다. 도로와 SWCP 그리고 모래 언덕 등 사방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은 바람에 서핑 보드가 밀리면서 어색한 모습으로 비틀대며 움직이기도 했다. 그들은 파도 너머까지 헤엄쳐갔고 거기에서 검은색 물고기 떼처럼 함께 모여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각자 흩어져 서핑 보드 위에서 일어선 뒤 치솟아 올랐다. 떨어지는 파도와 하나가 되어 우아한 모습으로 물살을 헤치며 다시 돌아왔다. 인간이 바다의 댄서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서쪽으로부터 강한 바람이 계속해서 차갑고 맹렬하게 불어 왔다. 파도는 근처에 있는 작은 바위섬들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점점 크기가 커지는 바위들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면 베드루단 스텝스가 나온다. 거대한 바위들이 흡사 계단과 같은 모양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베드루단이라고 부 르는 거인이 바위들을 쌓아 올렸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그 전설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혹시 아주 예전의 콘월 사람들이나 아니면 SWCP와 근처 가게들을 채워주는 수많은 관광객을 겨냥해 새로운 관광 상품을 개발하려 했던 내셔널트러스트는 아닐 까. 우리는 지역 사람들이 뭔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내셔널트러스트가 프로젝트 넵튠을 통해 해안선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데번과 콘월 해안선의 삼분의 일 이상을 매입한 것을 마뜩잖게 여기고 있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가로막는 일들이 너무 많고 지역 사람들의 생계유지에 무관심하다는 불만이었다. 나는 이곳에 산 적이 있어서 일거리를 찾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또한 마더 이브스 베이에도 있어 봤는데 바닷가 근처의 난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차들이 꽉 들어찬 주차장이며 거리에 늘어선 가게들을 따라 걷고 있으려니 뭔가 대단히 모순적인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야영장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는 말을 싣는 화물차, 가축을 나르는 트럭 그리고 곡물을 쌓아두는 저장고 등이 늘어서 있었고 주변은 온통 길게 자란 풀투성이었다. 가만 보니 여름 내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 같았다. 나무들을 따라가다 보니 오두막 몇 채, 돼지 방목장, 당나귀 두 마리 그리고 커다란 텐트 하나가 보였다. 턱수염이 험상궂게 자란 한 남자가 닳아 빠진 옷을 걸치고 뒤에 있는 오두막에서 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나왔다. 하룻밤에 5파운드 그리고 몸을 씻을 수는 있지만 뜨거운 물은 없다는데,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기에 우리는 두말 않고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했다.


자크리섬으로 향하자 수많은 홍합으로 덮인 바위들이 파란 색으로 보였다. 우리는 홍합을 냄비 가득 채워 끓인 후 통통한 살을 주머니칼로 꺼내 먹었다. 이따금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우리는 구경만 할 뿐 말을 걸지는 않았다. 축축한 하늘에는 까마귀들이 깍깍거리며 나타났고 그 소리는 절벽에 부딪혀 기괴한 울림으로 다시 돌아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의 여정이 우리를 바다와 하늘 그리고 바위 사이로 이끌면서 막바지라고 느꼈던 상황들이 점점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게 변해갔다. 우리는 자연의 한쪽 가장자리와 하나가 되어갔고 우리가 밟고 지나가는 소금길을 따라 우리의 영역은 새롭게 정의되었다.


살가죽

사방으로 뻗은 뉴키의 모습은 그동안 산길과 바닷가만 거쳐온 뒤라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도시의 느낌은 포스에서 시작되어 가넬까지 계속해서 펼쳐져 있었다.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땅들이 여럿 있고 그 사이를 모래사장이 가로지르며 이 나라에서 서핑을 즐기기 가장 좋은 지형이 만들어져 있었다. 뉴키는 1960년대에 새롭게 인기를 끌었던 서핑 문화를 바탕으로 그 명성을 쌓았지만, 당시의 그런 전성기는 지나갔고 조금씩 쇠락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남자들만 있는 모임 그리고 여자들만 있는 모임들이 점점 늘어나 그런 사람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요란한 술판을 벌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지역 주민들은 물론 가족 단위 관광객이나 서핑을 하러 온 사람들이 딱히 달가워 할 상황은 아니었다. 사실 일반 가게의 주인들로서는 이런 사람들이 더 장사에 도움이 되었다. 반면에 술집이나 식당 입장에서는 관광철이 끝난 겨울에도 계속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그런 모임들이 필요했다. 이러한 갈등은 뉴키를 어색하고 모순된 상황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서핑 관련 가게들만이 과거의 모습과 미래에 대한 최선의 희망을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오랜 시간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느라 사람들을 대할 때의 인내심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이렇게 잠시 또 사람들과 마주하면 그들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다. 비록 잠깐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뉴키는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을 만한 안전한 장소이기도 했다. 나는 방수 웃옷의 지퍼를 끝까지 단단하게 올리고 어느 지하도를 통해 뉴키를 바라보았다.


시인들

사라지는 빛 속에서도 세인트 아이브스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북쪽을 향하고 있지만, 삼면은 대서양에 둘러싸인 이 마을은 바다에서 반사된 강력한 자외선에 휩싸였고 그 때문인지 해가 거의 져 가는데도 마을의 집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빛을 띠고 있었다.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1920년 이곳에 정착해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고 지금도 도자기가 생산되고 있다. 뒤를 이어 조각가 바바라 헵워스도 이곳으로 와 조각상을 만들었다. 이 마을이 품고 있는 빛이 전 세계의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작은 어촌 마을은 어느덧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예술가들의 마을이 되어갔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라는 이름의 미술관도 건립되었다. 관광객들이 더 많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어업은 중단되면서 마을의 운명도 그렇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콘월 최고의 관광지.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이제 어선으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곳. 예술가보다 미술관이 더 많이 생기는 곳. 그렇지만 이 마을이 품고 있는 빛은 좁다란 거리와 어부들이 살고 있는 집 앞뜰에서 여전히 지중해의 은은한 백색 불빛처럼 환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확 트인 공터 쪽으로 향했다.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모스는 식료품을 파는 가게 근처에 멈춰 서서 자리를 잡고 『베오울프』를 펼쳐 들었다. 붉은색으로 제목이 적힌 평범한 모양의 짙푸른 표지가 내게는 너무나 익숙했다.


모스는 벽에 편하게 등을 기댔다.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익숙한 일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모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공사장에서 일할 때도,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서도 그리고 우리 농장을 찾아온 손님들과 견학을 온 아이들에게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앉아서 이야기를 들을 만한 시간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역사에서 식물에 이르기까지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여기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찬 길거리였지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청중이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평범한 관광객들이 아니라 이곳의 축제를 즐기러 온, 예술을 꽤나 안다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런 맙소사. 엄청나게 당황한 나는 뒤로 숨으려고 했다. 모스는 항상 그렇게 조용히 말하는 건 모르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었다.


모스가 내게 쓰고 있던 모자를 던졌다. 나에게 정말 그걸 시키는 건가? 모자 안으로 동전들이 떨어졌다. 1파운드나 2파운드짜리도 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동전을 받았다. 20펜스, 50펜스…….


조용한 항구 끄트머리로 돌아온 우리는 모자를 뒤집어 동전들을 세어보았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동전들이었다. 우리는 동전들을 세고 또 셌다. 28파운드 하고 3펜스였다. 28파운드라니! 우리는 춤이라도 추듯 웃으며 펄쩍 뛰어올랐다가 아까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며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소금 맛이 살짝 밴 산딸기

바다를 바라보는 땅

젠노에는 인어에 대한 유명한 전설이 있다. 마술과도 같은 매혹적인 목소리를 지닌 어느 아름다운 여인이 이따금 젠노에 있는 세인트 세나라 교회를 찾았다. 어느 날 그 여인은 매티 트레웰라라는 남자를 처음 만나게 된다. 매티 트레웰라는 즉시 여인에게 매혹되어 그녀와 함께 사라졌고 땅 위에서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서쪽 바다에서 안개가 피어오를 때 바다에서 그 모습을……. 여기까지가 세인트 아이브스에 있는 무메이드 아이스크림 가게의 여종업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어쨌든 마을 사람들은 이 두 남녀를 기리는 의미에서 여인이 앉아 있었다고 알려진 교회의 나무 의자 위에 인어의 모습을 조각으로 새겨두었는데 이 조각만큼은 아무리 봐도 15세기에 만들어진 진짜로 보여 적어도 관광지와 아이스크림 홍보를 위해 급조된 건 아닌 듯 싶었다.


하늘이 내려와 바닷물을 빨아들여 그대로 땅 위로 뱉어내자 우리는 바위투성이의 험한 산길을 따라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된 채 미끄러져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비가 우리를 두들길 동안 거대한 파도는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땅을 두들기고 있었다. 빗물이 방수 처리되지 않은 옷 틈 사이를 파고들어 흘러내리다 등산화 안에 고였고 진흙과 땀이 범벅이 되어 다시 등산화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오후도 중반쯤 이르자 우리는 그만 포기를 하고 들판에 텐트를 치고 완전히 젖은 옷들을 벗은 후 그나마 덜 젖은 옷들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쌀밥을 먹고 숨을 곳도 없으면서 텐트 안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랜즈엔드까지 간 후에 뭘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했다. 이것도 텐트 안 숨바꼭질처럼 딱히 별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저 거기서 더 걷든지 아니면 멈추든지 둘 중 하나였다. 우리는 또 하릴없이 좁아터진 텐트 안에서 베오울프 흉내를 내다가 내리 열두 시간 동안 잠을 잤다.


지보는 주석 광산으로 1991년에 문을 닫았다. 비슷한 시기 영국의 마지막 남은 주석 광산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갱도는 폐쇄되었다. 광부 중 일부는 멀리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일거리를 찾아 떠나기도 했고 또 다른 일부는 영불 해협 터널 공사장으로 떠나기도 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던 콘월의 광산 개발 역사는 이 시기를 즈음해서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콘월의 다른 지역들이 대부분 그렇게 된 것처럼 이 주석 광산 역시 콘월 광산 세계 문화유산 지역 중 하나로 지정되어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더 이상 땅 속에서 광석을 캐내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들의 주머니 속을 캐내며 좀 더 장기적인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변모한 것이다. 광산 개발은 끝이 났지만 그 유산은 그대로 남았다. 그 유산마저 없었다면 콘월은 더 어려운 상황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결국 처음에 광산이 있었기에 지금의 관광 산업도 그리고 콘월을 배경으로 한 <폴다크> 같은 다양한 역사 드라마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문을 닫은 이후 인적 하나 없이 조용히 버려져 있던 주석 광산은 완벽한 상태로 복원이 되었다. 지보 말고도 SWCP를 따라가다 보면 사라진 산업화 시대의 유물들을 사방에서 볼 수 있다. 문이 잠긴 동력실이며 무너진 지붕 등 파괴된 흔적만 남아 있어 전쟁터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인간은 대지와 싸웠고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 남은 상처들은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초현실적인 모습의 풍경과 그 안에 있는 관광객들을 가능한 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자, 드디어 랜즈엔드에 왔네.”


영국의 땅끝 마을. 장대한 여정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인 이 곳. 여행자들의 성지. 심미적인 측면에서는 재앙에 가깝고 생태학적으로는 공포에 가까운 이곳. 절벽을 따라 나 있는 길을 구름을 해치며 어렵사리 가다 보니 콘크리트 건물로 뒤덮인 마을이 나타났다.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늦은 오후였고 심지어 존 오그로츠까지 가는 길을 알려준 이정표 옆 사진관 주인도 그만 포기하고 문을 걸어 잠갔다. 우리는 울타리 위로 올라가 비를 맞으며 휴대 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환영 행사도, 인파도 없었고 그저 빗물에 푹 젖은 두 사람이 이정표 옆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전시관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도 오늘은 아서왕 기념관 근무를 포기하고 어디 따뜻하고 마른 곳으로 떠나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외롭게 콘크리트 장벽 안에 서 있었다.


고통과 탈진, 배고픔, 야영 그리고 협악했던 날씨로 점철되었던 400여 킬로미터가 우리 뒤에 있었다. 우리는 버스에 올라타 멀리 떠나버릴 수도 있었다. 다시 우리의 고향인 웨일즈로 돌아가 임대 주택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싸구려 야영장에서 겨울을 날 수도 있었다. 모스는 내 손을 붙잡았다. 버스의 문이 닫혔다.


또 다른 길을 찾아서

다시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다시는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돌로 된 마룻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고, 고양이 먹이를 주고, 풀을 베며, 별이 빛나는 밤에 뜰 앞으로 나가 북쪽 산 위에 걸려 있는 북두칠성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북두칠성은 산 위가 아닌 그냥 북쪽 하늘에 머물러 있었지만,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 있었다. 아니, 사실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리라. 내 앞으로는 육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그곳은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지금 나에게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나 혹은 가질 수 없는 미래보다 더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는 사실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나는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내딛으며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 위를 움직여가고 있으며 폭이 겨우 두 뼘이 될까 말까 한 좁은 이 진흙탕 길이 이제는 나의 집이었다. 차가워진 공기와 짧아진 해 그리고 탁해진 이슬방울이나 갑자기 절박해진 새들의 울음소리 말고도 내 안의 무엇인가가 계절이 바뀐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기 위해 싸우거나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우리가 붙잡을 수 없는 삶에 대한 걱정으로 안달하지 않았고, 또 진실을 꿰뚫어 보기에 너무나 관료적인 권위주의 체제에 대해 분노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계절의 느낌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렇게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뜨거운 태양과 사나운 폭풍우를 겪으면서 그렇게 된 것일까. 나는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그 안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고통이라는 균열 없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기뻐할 수 있었다. 나는 전체의 일부였다. 그렇다고 그런 일부가 되기 위해 땅의 한 조각을 소유할 필요는 없었다. 바람 속에 서 있을 수 있다면 내가 곧 바람이었고 비였고 바다였다. 모든 것들이 바로 나였고 그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안의 정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길을 한 걸음씩 지나갈 때마다 내 안에서는 뭔가가 점점 더 힘을 얻어 가고 있었다.



경계선에서

생명의 기운

북쪽에서 여정을 시작했던 것과 비교하면 남쪽은 상대적으로 더 쉬웠다. 이따금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다시 또 그만큼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을 뿐, 그 뒤로는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고사리며 가시금작화로 뒤덮인 완만한 비탈길이 길게 이어졌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애초에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를 걷기로 했을 때 우리는 남쪽에서부터 시작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안내서를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런데 지금은 안내서며 지도를 바로 읽던 거꾸로 읽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패디 딜런의 책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이제는 책을 거꾸로 읽는다고 해도 무슨 뜻인지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댄싱 레즈 근처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붉은 사슴을 보았다. 그 밑에 있는 절벽에서는 암벽 등반가들이 등반을 하고 있었다. 사슴이나 등반가들 모두 다른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보였다. 우리는 그 둘 사이를 지나갔다. 사슴에게도 등반가들에게도 우리는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면 모스의 왼쪽 다리가 남기는 흔적이 아닐까. 모스의 무겁고 불편한 왼쪽 다리는 길가의 먼지 위에 균형이 맞지 않은 발자국을 남겼다.


웨이머스는 1년 전 뉴키를 갔을 때 말고는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에서는 처음 보는 가장 번화한 지역이었다. 우리는 조지 3세 동상 근처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고 여름휴가 시즌의 첫 번째 일주일을 맞아 요란하게 흥청거리고 있는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외식을 하러 나온 가족들이 보였다. 저렇게 지친 아이들은 그냥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모와 사위들은 앞으로 다시는 서로 보게 되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갑자기 뱃속에서 이상한 느낌이 올라왔다. 흡사 위장이 완두콩 크기만큼 줄어들었다가 축구공만큼 확 커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냥 피곤했거나 넘어졌을 때 많이 긴장했던 게 풀려서 그런지도 몰랐다. 아니면 허기 때문이었을까? 이렇게 위장이 줄어들었다 늘어나는 증상이 더 빠르게 반복되면서 나는 온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그러다 한 번 격하게 통증이 오더니 방금 먹은 아이스크림과 아침에 먹은 소시지 샌드위치의 잔해를 게워내고 말았다. 30분쯤 지났을까, 내 위장은 거품이 이는 녹색의 기묘한 담즙을 다시 만들어내기 시작했지만, 토악질은 멈춰지지를 않았다. 모스는 택시를 불러 가까운 야영장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소금길

SWCP가 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다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우리는 트리젠틀 요새에 도착했다. 19세기에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세워진 이 요새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화학 무기 관련 전술 훈련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병사들에게 적군의 독가스 공격에 대비하는 훈련을 시킨 것이다. 우리는 수정처럼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계속 걸었다. 전쟁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포트링클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 너머로 절벽들이 더 가팔라지고 험준해졌다. 거기에 덤불숲까지 무성해져 그야말로 더 콘월다워진 모습이었다. 가시금작화들을 뚫고 지나가 망가진 울타리를 넘자 바람이 강해지면서 구름이 두텁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마도 절벽 위에서 가장 높고 사방이 확 트인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그럭저럭 평평한 땅을 찾아냈다.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텐트를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돌풍과 함께 비까지 뿌리기 시작하자 우리는 기도를 하며 몸을 웅크렸다. 귀가 먹먹해질 만큼 무서운 자연의 위력 앞에 얄팍한 천과 접착테이프로 때운 텐트 지지대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하고 언제 지지대가 부러져나가 텐트가 이리저리 뒤틀리게 될지 전전긍긍했다. 그렇지만 텐트는 버텨냈고 동틀 무렵 바람이 잦아들면서 우리도 겨우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보니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해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지난밤 폭풍우 속에서 텐트는 실컷 두들겨 맞고 흔들리고 휘어지기까지 했지만, 결국 어디가 부러지거나 찢겨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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