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

   
이광기
ǻ
다연
   
14000
2021�� 01��



■ 책 소개


12년 만에 아들에게 쓰는 편지, ‘아들아, 아빠 지금 잘하고 있지?’ 

‘아들이 살 줄 알았다.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면 살 줄 알았다!’ 신종플루로 말미암아 금쪽같은 아들을 갑작스레 떠나보낸 탤런트 이광기. 그가 12년 만에 조심스레 아들의 추억담부터 그간의 자기 삶에 대한 반성문, 그리고 인생의 희망 메시지까지 끌어모았다. 

그토록 아픈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절절히 깨닫는다. 아들 석규와 함께한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되뇌며 생을 다하는 날까지 매일매일 가족은 물론 나아가 사랑이 필요한 세상 사람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일을 만들어주겠노라고. 이제 그는 수많은 희로애락의 순간을 마주하면서 아들을 향한 애틋한 부정을 더 큰 사랑으로 승화하고 있다. 

이 책을 마지막 장까지 따라가다 보면 이광기 개인의 아들 이야기에 그치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가족을 돌아보며 이해하며 새삼 사랑한다 고백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나아가 작지만 강한 선한 영향력이 지금 이 시기에 얼마나 필요한지 생각해보는 시간도 갖게 될 것이다.

■ 저자 이광기
1985년 KBS 드라마 〈해돋는 언덕〉으로 데뷔했다. 〈전설의 고향〉 〈야인시대〉 〈정도전〉 등에 출연했으며 〈태조 왕건〉으로 데뷔 15년 만에 신인상을 타기도 했다. 또한 깨알 같은 입담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해 원조 1세대 ‘탤개맨’으로 불렸다. 

그런 행복을 누군가가 질투한 것일까. 어느 날 갑작스레 금쪽같은 아들 석규를 잃고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는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아니 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눔과 기부에 앞장서게 된 것. ‘세상을 원망하며 매일같이 쏟아내던 눈물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는구나’라는 깨달음 끝에 11년 만에 이 책의 집필도 시작되었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아들을 기리며 그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끝끝내 나눔으로 승화한 그의 이야기가 내 가족을 돌아보고 이해하며 새삼 사랑한다 고백하는 계기가 되길, 나아가 작지만 강한 선한 영향력이 지금 이 시기에 얼마나 필요한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차례
추천사 
Prologue 눈물로 묻은 가슴에 ‘꽃’이 피었다 

우리 가족은 시든 꽃 
2009년 11월 6일 금요일 
2002년 녀석의 탄생 
미친놈처럼 울었다 
필리핀에서 지낸 2년 
천사가 됐을 거야 
장례식이 끝났다 
아내가 실신했다 
취학 통지서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미련 
추모공원 
속 깊은 연지 
부활, ‘생각이나’ 

삶은 꽃이더라 
아들의 사망 보험금 
2010년 1월 12일 아이티 
험난한 여정 
내 이름은 세손 
100일 만의 꿈 
해외 봉사를 마치고 
선물을 주고 간 아들 
월드비전 홍보대사 
학교를 짓자 
아버지니까 멈출 수 없다 
NGO 홍보대사는 꿈같은 일 
삶이 꽃이라면, 죽음은 삶의 뿌리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지금도 울컥한다 
믿음으로 사는 나 
하늘에서 십자가를 봤어요 
아내가 임신을 했다 
준서는 내 복덩어리 

내 이름은 이광기, 끼 있는 남자 
요즘 드라마 안 해요? 
인생은 하륜처럼 
내려놓으니 마음 편하다 
1985년, 〈해돋는 언덕〉으로 데뷔하다 
젠장, 마이너스 인생 
첫눈에 반한 그녀, 박지영 
연기자로 돌아갈래 
아내는 내 인생의 열쇠 
포장마차 주인, 전직 탤런트입니다 
드라마 〈인수대비〉로 컴백 
36년 차 배우 이광기 
끼 많은 남자 
내 부케는 유튜버 
예술과 나눔, 까짓것! 
한국의 키스헤링 
배우는 모든 길로 통한다 
계획하지 말고 순리대로 가라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Epilogue 소중한 사람과 ‘눈맞춤’을 하다 
Special Thanks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시든 꽃

미친놈처럼 울었다

생때같은 내 새끼가,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뒀다.


한없이 울었다.

누가 보든 말든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내내 아들의 이름을 목청껏 불렀다.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전날까지 너무나도 멀쩡하던 아이였는데,

미처 손써볼 틈도 없이 내 새끼를 허무하게 보내다니…….


폭풍 치는 광야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눈 오는 걸 참 좋아했던 석규,

이번 겨울에 눈 오면 꼭 스키 타러 가자고 약속했는데…….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미련

집에 들어가면 아이가 소파에 자동차 장난감을 잔뜩 어질러놨던 모습이 떠오르고,

너무 괴로워서 이사를 가버릴까 싶다가도,

그렇게 떠나면 혹시 석규의 흔적이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서 그조차도 못했다.


갖고 놀던 장난감, 속옷 하나조차도 아이의 숨결이 느껴져 차마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억지로 슬픔의 보따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간 애를 썼지만,

아들의 사망 신고를 하는 날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주저앉았다.


사망 신고를 하기 직전,

‘이석규’라고 이름이 있는 주민등록등본을 15통을 뗐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석규가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만 같았기에…….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초등학교 앞은 지나질 못하고 돌아서 다녔다.

지금도 여전히 학교 앞을 지나는 건 힘들다.


어느 날 새벽,

홀로 차를 운전하며 달렸다.

갑자기 추모관에 잠들어 있는 아들이 보고 싶어졌다.

미치도록 보고 싶은 내 아들.

‘정말 아이가 천사가 돼서 천국에 갔겠지? 혹시 못 가고 추위에 떨면서 배회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점점 불안한 마음이 커지더니 나중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느샌가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꾹 밟은 채 핸들을 마구 돌렸다.

새벽이라서 도로에 차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나는 영락없는 만취 운전자의 꼴이었다.


손 가는 대로 CD플레이어 버튼을 눌렀다.

이내 스피커에서 CCM이 흘러나왔다.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광기야 너는 내 아들이야.’

‘네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다 지켜줄 거야. 내가 너와 함께할 거야.’

노랫말이 온통 내 어지러운 마음에 쏙 들어왔다.

가사가 마치 내게 하는 말로 들렸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나서는 갓길로 차를 세웠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추모공원

“우리 석규 잘 있지?”

석규가 떠나고 거의 1년은 날마다 갔던 것 같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추모공원에서 아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고 나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여전히 나와 아내는 가끔 석규 사진을 꺼내어 보면서 울컥한다.


그리움에 사무치다가도 생각하면 서럽고,

좋은 곳에 먼저 가 있을 거라며 애써 마음을 위로했다가도 혹시 잊을까 봐 미안해진다.

“석규야, 기다려. 아빠도 곧 갈게. 나도 따라갈 거니까 엄마 아빠 배웅 나와라.”


그립고 그리운 내 아이,

늘 그렇듯 오늘도 내 가슴속에는 애잔함이 진하게 머물러 있다.



삶은 꽃이더라

2010년 1월 12일 아이티

카리브 해 아이티에서 7.0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30초가량 아이티 전역을 초토화한 엄청난 지진이었는데,

이 재앙으로 31만 6천여 명이 사망하고 150만여 명이 다쳤다.


아이티 지진 뉴스에 아내와 정말 많이 울었다.

우리 가족은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았지만,

아이티의 아이들은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는데 누구의 위로를 받을까…….


죽음이라는 단어가 싫었다.

주변에서 죽음에 관한 얘기를 하면 신경이 곤두서 짜증부터 났다.

각종 사망 사건이 TV 화면으로 나올라치면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그런 내게 KBS에서 연락이 왔다.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그램의 담당 PD였다.

NGO 월드비전에 기부금을 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직후였다.

아이티 특별모금 방송을 할 예정인데 함께 아이티로 가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선뜻 가겠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주변에서도 반대했다.

아내도 딸 연지도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아이티 여진이 계속되고 있고,

폭동까지 일어난 마당이라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아이가 떠난 지 3개월도 채 안 된 상황에서,

무엇보다 나부터 그들을 위로해줄 자신이 없었다.

일곱 살 남자아이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곱슬머리 뒤통수만 봐도 달려가 얼굴을 확인할 만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시기였으니까.

거절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그쪽을 향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다쳤을 아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아들 하나를 잃었지만,

그곳에선 수십만 명이 한순간에 가족을 잃고 운명이 바뀐 것 아닌가.

부모를 잃고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먹으며 굶주림과 병마에 싸우는 아이티 아이들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아내와 마주 앉았다.


“우리 아들이 떠난 지 세 달이 다 되어가네. 살았다면 올해 여덟 살인데, 내 기억에는 여전히 일곱 살로 남아 있거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들은 일곱 살에 머물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슬퍼지더라. 그런데…… 아이티, 저기 멀리 떨어져서 살지만 아들 또래의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여보, 석규를 돌보는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위해서 챙겨주고 싶은데…… 여보, 나 다녀와야 할 거 같아.”


거실 한편에 커다란 여행 가방이 보였다.

“그냥 가지 말고 우리 석규가 입던 옷 갖고 가. 갖고 있으면 꺼내 볼 때마다 슬프기만 하잖아. 석규 옷이 우리에겐 슬픔이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내는 구호품 대신 아들 석규가 입던 옷을 가방에 이미 싸놓았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내 이름은 세손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해서 한 고아원에도 방문했다.

그곳에는 지진으로 갑자기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선물을 받아서 기뻐하는데, 유독 한 아이만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쟤는 뭐지?’ 까만 얼굴에 너무나 마른 몸의 아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눈이 보석처럼 빛이 났다.


아이 앞으로 다가가서는 무릎을 반쯤 굽히고 내려다보니 울고 있었다.

커다란 눈 아래에 맺힌 눈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났다.

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 녀석은 정말 깡말랐다.

눈물이 핑 돌았다.


“몇 살이야?”

“여덟 살.”

여덟 살!

여덟 살 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석규가 살아 있다면 올해 여덟 살이다.

“네 이름이 뭐야?”

“세손(Cerson).”

“세손, 이리 와봐. 아저씨가 안아줄게.”


두 팔을 벌리자 아이는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힘껏 안겼다.

온 힘을 다해서 부서지게 말이다.

그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도 엉엉 울었다.


분명히 이 아이는 내 자식도 아닌데,

그냥 아이가 내 품에 안긴 게 꼭 석규를 안고 있는 것 같았다.

세손도 마치 제 아빠를 만난 것처럼 폭 안겼다.

‘너무 갑작스레 보낸 내 아들의 체온을 한 번만 느끼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여기로 온 이유가 있었어. 이 아이를 품기 위해서 내가 왔구나.’


NGO 홍보대사는 꿈같은 일

내가 NGO 홍보대사를 하게 될 줄이야.

친구 만나 놀 시간도 없는데,

아이들을 위한 자선 미술 작품 전시를 하다니!

과거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나눔을 실천하려면 뭔가 부담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처음엔 10분의 1을 나눔에 쓴다는 게 아쉬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0을 내놓으면 또 다른 게 그 빈자리를 채운다.

비우면 채워지는 것!

그게 내가 경험하고 얻은 진실이다.


‘나눔이라는 건 어렵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지나친 나눔으로 삶에 부담되거나 의무가 돼버리면 안 된다.

생활 속의 나눔이 되어야 하는 거다.

나눔이 의무가 되는 순간, 짐이 될뿐더러 진정성은 사라진다.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내가 받은 만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적더라도 나눔이라는 것 자체가 내 일부분이 되어야 하는 거다.

바로 진정성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내가 좋아하는 성경 말씀인데,

기도할 때는 물론 늘 마음속에 담고 있다.

이 성경 구절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힘이다.


석규를 떠나보낸 후 그저 모든 상황이 원망스럽고 화가 났다.

하지만 어느샌가 석규는 또 다른 사랑의 실천 방아쇠가 됐다.


모든 것에 감사함과 기쁨으로 바뀌었고,

세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다.


거듭 말하지만,

내 아들 석규를 통해 나눔을 알게 되었다.

석규가 나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고 간 거다.


나는 항상 힘들 때마다 하늘을 향해 묻는다.

“아들아, 아빠 잘하고 있지?”

그러면서 버텨온 것 같다.


남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다가,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 꼭 하고 싶은 말…….

“아빠, 잘했지? 아빠, 괜찮았어?”


용기를 줘, 이석규!

힘을 내자, 이광기!



내 이름은 이광기, 끼 있는 남자

내려놓으니 마음 편하다

생각해보면 한창 잘나가던 30대엔 이미 많이 갖고도 더 붙들기 위해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힘들고 어렵게 얻은 인기를 내려놓기도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리 가져도 만족은커녕 행복이라는 걸 모르겠더라.

드라마를 포함해 예능까지 6개를 하다가 5개로 줄면 그게 더 괴로웠다.

어쩌면 연예인으로 사는 사람들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삶은 달라진다.

매사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더란 말이다.


과거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예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활동하던 시절보다 사진작가, 유튜버, 미술 컬렉터로 활동하는 요즘이 개인적으로는 행복 지수가 더 높다.

게다가 수익보다는 공익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에 이웃과 더불어 나눔을 실천해간다는 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돌아보면 지금의 내 길은 운명이었던 것 같다.

예전보다 더 단단해진 나를 얼마나 더 크게 하나님이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10여 년 사이에 내 삶의 방향과 목표가 완전히 바뀌었다.


얼룩진 가슴에 눈물을 묻게 한 꽃,

내 아들 석규를 당신께 보낸 후 바로 당신을 만났기에!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으며 절대 뒤돌아 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길을 갈 것이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각자의 길이 있다.

물론 그 길이 순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심지어 나아가면서 의도치 않은 길들도 자꾸 보일 것이다.

나는 올바른 길로 가려 하지만 변수가 생길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순탄치 않은 길…….

여태 걸었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지만,

나는 이 길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것이다.

내 아내 지영이가 있고,

우리 석규와 연지 그리고 준서가 함께하니까.


우리 가족,

사랑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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