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

저   자
장예원
출판사
21세기북스
가   격
15,000원(192쪽)
출판일
2202년 11월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


간판 아나운서가 아니라 8년차 직장인입니다

물든다는 것

어느 날, 국장님이 따로 부르셨다. 큰 사고를 치거나 프로그램에서 잘리는 일이 아니고는 좀처럼 호출하는 일이 없으신 분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왜 부르시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예원아, 이 자리에 오래 있다 보니 노파심이 생긴다. 신입 아나운서로 풋풋하던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쓰이더라. 내가 아끼는 너는 조금 천천히 물들었으면 좋겠구나. 그래도 지금까지 지켜본 너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평범했던 아나운서 지망생이 방송사 공채에 합격했고, 내 이름 앞에 ‘아나운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갑작스럽게 바뀌었고, 때로는 그 변화의 틈바구니에서 순수한 열정이 식어버린 느낌도 들었다.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국장님 앞에서 태연한 척 대답했지만,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나운서는 연예인과 직장인, 그 경계선에 위태롭게 서 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을 사는 동시에 공인이라는 이름으로 대중 앞에 선다. 대중이 기대하는 모습에 어긋나지 않게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스스로 내 정체성은 직장인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수시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면 순간순간 마음이 무너지기도 했다.


신입 때는 아침 방송에서 짧은 코너만 1년 남짓 진행했다. 그 당시 유일한 일거리였는데, 그때는 언제쯤 사람들이 많이 보는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까 조급했다. 방송 개수가 늘지 않으면 계속 아침 방송을 해야 한다기에 마음 졸이기도 하면서. 물론 이제야 돌이켜 보니 그 시간을 보낸 덕분에 김치가 땅에 묻혀 숙성되듯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장예원’이라는 이름을 사람들이 기억해주기 시작했다. 얼굴을 알아보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면서 방송 스케줄도 제법 늘었고,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서 김밥이나 빵으로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가장 바쁜 목요일은 숨 돌릴 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녹화가 끝나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곧장 <풋볼매거진 골!> 촬영장으로 향했다. 두 시간가량 찍고 나면 저녁 7시. 다시 <접속! 무비월드> 스튜디오에서 촬영과 영화 내래이션 녹음이 이어진다. 이윽고 밤 9시, 라디오국으로 향할 시간이다. 라디오 방송 두 편을 녹음하고, 두 시간짜리 생방송 <장예원의 오늘 같은 밤> 진행까지 마쳐야 비로소 퇴근 시간.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겼다.


짧은 기간에 주목받고 아나운서로 이름을 알린다는 건 커다란 행운이다. 대중의 사랑과 관심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다만 어렸던 나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관심을 즐길 만한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움츠러들기 바빴다. 모르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에 의기소침했고, 반짝 주목받다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밑천이 드러날까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무서웠다. 연예 뉴스에 댓글을 달 수 있던 때에는 기사에 자주 노출될수록 악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보지 않으려 해도 기사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댓글 창에 손이 갔다. 악플에 관한 연예계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이후에 포털사이트에서 댓글 창이 사라졌지만,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악플을 다는 파렴치한 일은 커뮤니티든, SNS든 어딘가에서 계속된다. 검증되지 않은 루머와 근거 없는 댓글들로 부정적인 여론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상처받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로 말이다.


이미 국장님은 알아차렸다. 많은 글 가운데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이 전 국민의 여론처럼 여겨지던 때, 아직 아나운서로서의 또 다른 자아가 성립되지 않은 내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내 위치는 어딘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헷갈렸다. 시청자가 기대하는 모습과 실제 성격의 괴리감.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치중하다 보니 점차 나를 잃어갔다. 방송에 대한 열정은 다른 문제였다.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워 뭐든지 적당히만 하다 보니, 어느새 무색무취 아나운서가 되어 있었다.


보이는 삶에 젖어들기보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진짜 행복을 좇으려고 노력하는 것.

남의 시선에 사로잡히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내는 것.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 동경 어린 눈빛, 시기와 질투, 달라지는 대우. 나쁜 게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변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는 나다’라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임하려면 오래 걸릴 테지만, 매일 다짐한다.


조금 더디게 스며들기를, 더 천천히 물들기를.



삶이 꼭 모범 답안대로 흐르지는 않잖아?

당신의 마음은 안녕한가요

열세 살부터 간절히 바라던 아나운서가 된 이후 한동안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앞으로 내 꿈은 무엇일까?’

‘이렇게 간절하게 또 꿈꿀 수 있을까?’


제 복에 겨운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춘기는 꽤 당황스러웠다. 재수를 결심한 이유도,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살았던 이유도 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였다. 오로지 단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그 꿈을 이루고 나니 불현듯 공허해진 거다.


아나운서 8년 차. 아직 못해본 게 더 많은데 쓸데없는 생각에 빠진 거라며 나의 오만함을 꾸짖어도 보고, 주어진 일들을 해치우기에 바빠 이따금 휘몰아치는 고민을 멀찌감치 미뤄두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게 섣불렀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더 큰 파도가 밀려왔다.


“장예원 씨, 병원에 다시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왜요?”

“혈액 검사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서요.”

“그게 뭔데요?”

“큰 병원을 가봐야 알 것 같아요. 암일 수도 있어서.”


급하게 대학 병원을 예약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지금껏 부모님께 반항 한 번 없이 착하게 살았는데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만약 진짜 암이면 어떡하지. 왜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게 평소에 채소 좀 많이 먹을걸. 이대로 아나운서 생활도 끝나는 건가.


그때 나는 휴식이 절실했다. 몇 년째 동시에 네다섯 프로그램을 진행하니 링거를 맞고 촬영장에 가는 일이 많았는데도 아픈 줄 몰랐다. 오히려 일거리가 하나라도 줄어들면 다른 프로그램도 없어질까 봐 불안했고 조급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 2년마다 신입 아나운서를 뽑고, 나보다 어리고 예쁜 후배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며 가장 많은 프로그램을 하고 있으면서도 더 욕심을 냈다. 아나운서는 일이 많아도 힘들고 없어도 힘들다는 선배의 맒에, 없어서 힘들 바에 일 속에 파묻혀 쓰러지는 게 더 낫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검사 결과가 나왔고, 암은 아니었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더는 무리라는 몸의 신호를 무시할 수 없어서 결국 5년간 진행하던 스포츠 뉴스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치열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잠깐 멈춰야 할 때였다. 몸에 혹이 생긴 건 알아차리지 못했어도 그보다 먼저 마음의 병이 찾아왔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기에 나를 돌보아야 했다. 처음에는 괜히 내려놓았다는 생각에 잠도 오지 않았다. 혹이야 떼면 그만인데 워커홀릭인 내가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말하다니...... 시간이 많아졌는데도 마음을 내려놓기 못해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선배들은 이제 저녁 약속도 잡고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라고, 연애도 적극 추천한다며 소개팅 자리도 알아봐 주셨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일이 곧 놀이였던 바보 같은 어린 양은 늦게까지 회사에 남는 일이 일쑤였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남들보다 먼저, 빨리 가는 게 괜찮은 인생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시간에 쫓겨 김밥으로 때우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꽤 열심히 잘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일에 쫓겨 주변 친구들과 점점 멀어지면서도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다는 불변의 진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하고 되묻게 되는 날이 있었다. 밥벌이를 위해 하루를 살아내기도 버거운데 그 와중에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느니, 연애와 결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느니 하는 말들. 그 나이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채널을 돌릴 때마다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자니 소확행을 찾지 못한 나는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도 개미처럼 일하는 우리. 잘 살고 있는 건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며, 그게 도대체 뭐기에 서로서로 잘 살자고 혹은 나 대신 너라도 제발 잘 살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사람마다 각자 살아가는 목적과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르니 좌절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는 일하며 행복을 찾고, 누군가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다시 말해 그저 각자의 인생을 즐기면 그만인 거다.


누구 하나 말해주는 사람 없으니 나라도 해야지.

가볍게 살아, 때로는 막 살아도 괜찮아.



서른, 다시 꿈꾸기에 딱 좋은 나이

무계획의 미

“앞으로 뭐할 거야?”

“계획 없는데요?”

“뭐? 빨리 회사도 계약하고, 프로그램도 찾아야지. 나가면 정글이야!”


회사를 관두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명확한 계획이 있다거나 당장 할 일이 있다면 자신 있게 말할 테지만 딱히 없다. 다들 거짓말이라고. 장예원이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이다. 꼭 계획이 있어야 하나. 30년 동안 계획한 대로만 살아온 나다. 자유를 얻은 도비가 된 지금, 이제는 빡빡하게 살고 싶지 않다.


직장인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애정이 있어야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나에게 쉼은 불안이었다. 놀 시간이 많다는 건 나를 찾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쉴 새 없이 달리는 게 행복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쉼에도 훈련이 필요한 모양이다.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데 익숙해져서 뭐하고 놀아야 할지 막막하다. 쉬는 날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집에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일하는 것처럼 휴식도 철저한 계획에 따라 놀아야 할 지경이다. 하지만 마음 단단히 먹고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겠다고. 침대에 널브러져 매일을 보내다 노는 게 지겨워질 즈음 일을 시작할 생각이다.


아무 계획 없이 사는 게 무책임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마 우리 엄마는 등짝 스매싱을 날리며 앞으로 뭐 먹고 살 거냐고 재촉할 게 뻔하다. 이럴 때일수록 계획성 있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계획한다고 다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건 아니다. 거창한 무언가를 그려내지 않아도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나의 성격상 가는 길마다 그 길을 찬란한 꽃길로 만들 거다. 이런 각오도 없이 무턱대고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아, 유일하게 결심한 한 가지는 있다. 쉴 때만큼은 제대로 쉴 거라는 거! 동네방네 소문날 정도로 맛깔나게 쉬어 볼 거다. 나의 이십 대를 오롯이 바친 직장 생활에서, 힘차게 달리기 위해서는 숨 고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꼭 한 번씩 쉬어가야 다시 집중할 에너지가 생긴다.


다가올 나의 인생은 분명 다를 거다. 더 달리고 싶지만 뜻하지 않게 긴 휴식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반대로 너무 바빠서 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당연히 후자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든 내 앞에 펼쳐진 긴 레이스에서 지치지 않도록 나만의 속도를 지키며 꾸준히 달려 나가고 싶다. 지금 당장 앞날을 계획하지 않아도 조금도 두렵지 않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나를 믿는다!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자. 이제 너 혼자 건너 봐. 어른이 된다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돼.”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스무 살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래. 그 나이가 되면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겠지. 친구랑 놀다가 늦어져도 허락받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부모님에게 이 물건을 사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더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바라던 나이보다 10년이나 더 지난 지금,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매일 아침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오백 원 받아들고 아이스크림 사러 달려가던 그때가 그립다.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순수했던 시절의 소중함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어른이 되면,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줄 알았다. 물론 그 폭은 넓어졌지만 선택한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핑계로 생떼를 부려서 얻어낼 수 있는 게 더 많았다. 나의 결정에 아무도 훈수를 두지 않는 나이가 되고서야 알았다. 누군가 책임을 대신해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속 편한 일인지.


어른이 되면,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척척 나오리라 기대했다. 남들보다 한 세대를 먼저 살았다고 해서 이 세상살이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똑같이 실수하고, 다시 일어나고, 앞으로 이 과정을 수백 번 더 반복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 처음이니까, 실수해도 괜찮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마 그런 거겠지.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것.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나고 주름이 생긴다 해서, 더는 부모에게 용돈을 받지 않고 스스로 밥벌이를 한다 해서, 꼬박꼬박 지키던 통금 시간을 어겨도 눈치 볼 사람이 없다 해서 우리 모두가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느 순간 누구나 얻게 되는 타이틀이 아니다. 내가 꿈꾸는 진정한 어른이란 나의 삶에 완벽히 책임을 지는 것과 더불어, 자라나는 새싹들에 본보기가 되는 걸 의미한다.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될 건지 묻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닮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잘 살아야 한다. ‘나만 한다고 달라지겠어?’ 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부터 해야 한다’고 실천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저 그런’ 어른이 아닌 ‘현명한’ 어른이 되고 싶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힘들죠?

아닌 척하지만, 내 눈엔 보여요.


얼마나 지쳤겠어.

그 동안 고생 많았어요.


누가 뭐래도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만 생각해요.


아무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아요.

다 말만 번지르르.

위해주는 척하지만,

아무도 당신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아요.


흘러가는 시간 속에

당신을 외로이 내버려두지 마요.


괜히 씩씩한 척하지 말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요.


안 그럼

다 괜찮은 줄 알잖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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