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고양이는 없다

   
이용한
ǻ
북폴리오
   
14000
2011�� 11��



■ 책 소개 

 

길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 춤>의 원작
<안녕 고양이>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

 

세상에 나쁜 고양이는 없다. 가끔씩 미운 짓을 일삼는 미운 고양이는 있을지언정 나쁜 고양이는 없는 법이다. 평균 2년 반밖에 되지 않는 짧은 삶. 길고양이는 생존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 나쁜 고양이란 없다. 봄이 되면 꽃밭을 거닐며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면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는 우리처럼 따뜻한 심장이 뛰는 길고양이. 이 책은 그들의 연대기와도 같은 묘생의 기록이다.

 

책에는 시골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배경으로 그들의 갈구와 절망과 슬픔, 때때로 그들의 맑음과 갸륵함까지 가슴 먹먹한 길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겨있다. 시골로 간 여행가는 시골의 따뜻한 인심을 기대했지만 그것도 고양이에게만은 예외였다. 시골에서는 고양이에 대한 천대와 멸시가 당연한 것이어서 종종 쥐약을 놓거나 줄을 매 고양이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절망감으로 탄식했지만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해 주고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 책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이자 고양이를 좋아하는 수많은 작은 사람들에게 길고양이가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다. 그리고 인간을 원망하며 떠난 모든 고양이들에게 전하지 못한 작가의 마지막 인사이기도 하다.

 

■ 저자 이용한
이용한은 지난 15년간 길의 미식가이자 바람의 여행자로 국내외 숨겨진 곳들을 떠돌았고, 최근 4년간은 길 위의 고양이를 받아 적는 또 다른 여행을 하고 있다.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집 <안녕, 후두둑 씨>, <정신은 아프다>, 고양이 에세이 <명랑하라 고양이>,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여행 에세이 <물고기 여인숙>,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 <바람의 여행자: 길 위에서 받아 적은 몽골>, 문화기행서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꾼>, <장이>,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 <이색마을 이색기행>, <옛집 기행> 등을 펴냈다.

 

■ 차례
고양이 영역 지도
등장 고양이

 

제1부 가을: 마지막 숨바꼭질
소냥시대: 장난을 치기 위해 세상에 왔다
아기 고양이의 필살기
꼬리가 짧아서 슬픈 아기 고양이
좀 놀다 가라는 고양이
가을에 물든 고양이들
마지막 숨바꼭질
고양이 숲
고양이의 사랑과 전쟁
포토카툰 1 길고양이 귓속말
포토카툰 2 커피 한잔 하실 야용?
아포리즘 1 하늘을 보라

 

제2부 겨울: 죽지마 얼지마 봄이 올거야
더 춥다, 삼남매 고양이의 겨울
폐차장으로 간 고양이
손자 데려다 키우는 고양이의 사연
아기 고양이 시절은 빠르게 지나간다
전원고양이의 폭설 적응기
벼랑에서 손 잡아주는 고양이
눈이 내린 비밀의 숲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발라당 종결묘
흥미진진 나무타기 캣쇼
기막힌 고양이 판박이 자세
고양이 너머 하염없이 눈은 내리고
죽지 마 얼지 마 봄이 올 거야
할머니, 같이 가요
길고양이 야식집
포토카툰 3 솔로 고양이의 심술
포토카툰 4 입큰냥이 vs 혀긴냥이
아포리즘 2 폐차장 고양이의 독백

 

제3부 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봄은 고양이의 게절
고양이 삼남매를 찾습니다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
고양이의 나르시시즘
엇갈린 아기고양이의 운명
전원고양이라서 다행이야
길고양이 해방구
이게 우리 집 고양이유!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고양이 밥 주지 말라는 이웃 할머니
고래고양이 수난의 기록
액자에 걸어놓고 싶은 고양이의 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포토카툰 5 고양이 황당 몸 개그
포토카툰 6 나 올라가면 안 돼?
아포리즘 3 저 골목

 

제4부 여름: 고양이가 보내온 SOS
개울을 떠나 가장 위험한 곳으로
고양이가 보내온 SOS
작은 구멍 속의 더 작은 고양이
쫓겨난 고양이의 귀환
아기 고양이 대란
달타냥 닮은 아기 고양이
바보 고양이, 고망치지 그랬어
구름 氏네 고양이 식당
고양이, 이별 뒤에 오는 것들
행방불명 고양이, 아기 고양이와 함께 돌아오다
Bravo Cat as Life
잘 가라 고양이
포토카툰 7 고양이, 나란히
포토카툰 8 고양이 열매
아포리즘 4 개울의 날들

 

에필로그 우리 집 고양이의 사생활

 

 




나쁜 고양이는 없다


가을: 마지막 숨바꼭질

소냥시대: 장난을 치기 위해 세상에 왔다

세상의 모든 어린것들은 귀엽다. 설령 이 녀석들이 열없이 자라서 철없는 사고뭉치가 될지언정, 감히 만질 수도 없이 작고 어린것들을 보면 너무 애틋해서 눈시울이 시큰하다. 우리 동네 전원주택에 사는 아롱이가 지난 늦여름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았다. 고등어가 한 마리, 나머지는 모두 노랑둥이다. 종종 전원주택 할머니는 양육 박스를 열어 꼬물꼬물 바글거리는 아기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가을이 되면서 이 육남매 아기 고양이들은 더 귀엽고 더 발랄해졌다. 여섯 마리가 단체로 깜찍하고 앙증맞은 고양이 인형이다. 그래서 나는 유치찬란하게도 이 녀석들을 뭉뚱그려 소냥시대로 불렀다. ‘소녀시대’도 울고 갈 고양이계의 소냥시대! 여섯 마리 어여쁜 아기 고양이와 열두 개의 보석 같은 눈동자! 오늘도 나는 녀석들의 개인기와 재롱 잔치에 빠져 한참이나 넋을 잃었더랬다.


잔디마당에서 삼촌과 이모 고양이를 상대로 물어뜯고 올라타고 밀치고 다리 걸고 꼬리를 물며 장난을 치던 하룻고양이들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테라스에 올라와 숨을 골랐다. 양육 박스를 뒤로하고 올망졸망 그루밍도 하고 해바라기도 했다. 저녁이 가까워진 말랑한 햇살 속에서 녀석들은 그렇게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체온과 체온을 나누면서, 여섯 마리가 한 몸같이. ‘절묘하다’는 표현은 이를 두고 한 말일까.


나는 돌마루에 올라앉아 아예 터를 잡고 찬찬히 녀석들을 구경했다. 녀석들은 그런 나와 눈을 맞추려는 듯 동그란 눈을 반짝거리며 눈싸움을 했다. 개중에는 데굴데굴하던 눈을 게슴츠레 뜬 녀석도 있고, 어느새 사르르 눈꺼풀을 내리는 녀석도 있다. 나는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때마다 녀석들은 찰칵찰칵 놀라곤 했지만, 그 소리도 반복되자 자장가로 들리는 듯했다. 집단 최면에 걸린 듯 녀석들은 모두 골아떨어졌다.


그러나 곧 이 평화로운 적막은 깨졌다. 어미 고양이 아롱이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어미가 테라스에 나타나자 녀석들은 일제히 앙냥냥거리며 자다 말고 어미 품을 파고들었다. 적막한 평화는 순식간에 시끌벅적 난장판으로 바뀌었다. 어미에게 뛰어오르는 녀석, 움직이는 어미를 따라 필사적으로 젖을 무는 녀석, 어미의 꼬리를 잡아채는 녀석, 꼬리 잡는 녀석을 뒤에서 넘어뜨리는 녀석, 뒹굴고 자빠지고 나동그라지고 그런 난리가 없었다.


아기 고양이는 하루의 3분의 2를 잠으로 보내고, 나머지 3분의 1을 빈둥거리거나 장난으로 소일한다. 소냥시대 멤버들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장난을 치기 시작해 다시 잠들 때까지 내내 장난질이다. 보아하니 이 녀석들 꼭 장난을 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만 같다. 장난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녀석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물어뜯으려 한다. 올라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 올라가려 한다. 눈 속에는 언제나 호기심이 그렁그렁하다. 자기 앞으로 큰 고양이라도 지나가면 그냥 놔두지 않는다. 기어이 꼬리라도 잡아당겨야 직성이 풀린다. 다리 걸고 올라타고 물어뜯고. 그러나 역시 아기 고양이들은 자기네끼리 노는 게 가장 재미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싸움놀이. 술래잡기 꼬리잡기 뜬구름 잡기. 심지어 녀석들은 제 꼬리를 잡는 데도 엄청난 시간을 할애한다. 제 꼬리 잡아다가 어디다 쓰려는지 모르겠다. 한번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장난이 장난을 불러서 장난이 자꾸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가만있는 고양이는 공격의 대상이 될 뿐이다.


아기 고양이 때문에 테라스에 놓아둔 스티로폼은 성할 날이 없다. 박스는 어딘가 몇 군데씩은 뜯겨져 있다. 나무는 긁혀 있고, 화분의 화초 잎들은 너덜너덜하다. 그런데도 이 녀석들을 혼낼 수가 없다. 혼을 내면 일제히 쪼르르 도망쳤다가 혼낸 사람이 사라지면 또 같은 장난을 친다. 갑자기 조용해져 주변을 살펴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근새근 천사처럼 잠들어 있다. 꼬물꼬물 서로 엉켜서 잠든 녀석들을 보면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겨울: 죽지마 얼지마 봄이 올거야

더 춥다, 삼남매 고양이의 겨울

지난 초여름 아기 고양이 여섯 마리를 낳은 여울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여섯 마리 중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도 함께. 하루아침에 네 마리가 한꺼번에 사라질 줄은 몰랐다.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영역을 떠난 것인지 통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여울이와 아기 고양이 육남매에게 그동안 급식을 해온 개울집 캣맘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말았다. 영역을 옮긴 줄로만 알았던 여울이가 사실은 쥐약 때문에 죽었다는 얘기였다. 새끼 세 마리도 함께 세상을 떠났다고. 오래전 쥐약을 놓아 여울이의 어미인 까뮈와 덩달이의 단짝인 봉달이를 죽인 그 아주머니가 이번에도 쥐약을 놓았다고 한다. 쥐약을 놓기 전에도 개울집 캣맘에게 고양이들이 텃밭을 파헤치니 쥐약을 놓겠다고 여러 번 엄포를 놓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제 이곳에는 개울냥이 중 유일하게 노을이만 남았고, 여울이 새끼 중에는 육남매 중 삼남매만 남았다. 간다는 말도 없이 여울이가 떠난 자리에는 삼남매 고양이와 노을이만 남았다. 나는 녀석들이 오래오래 씩씩하고 명랑하게, 무던하고 무심하게 잘 살기 바라는 뜻에서 각각 무럭이, 무던이, 무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다행히 이들 삼남매 곁에는 노을이가 남아서 보디가드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노을이는 녀석들과 친족 관계는 아니지만, 여울이의 단짝으로 이제껏 함께 살아온 고양이다. 어미가 떠나고 난 뒤, 삼남매는 노을이에게 부쩍 많이 의지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으로 나설 때에도, 근처에 있는 폐차장으로 나들이를 갈 때도 녀석들 곁에는 언제나 노을이가 있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았다. 육남매 아기 고양이를 위해 몇 번이고 꽁치를 물어 나르던 여울이. 임신을 하고도 아랫배 동생들과 주변의 고양이들에게 늘 구박받던 여울이. 그래도 꿋꿋하게 새끼를 낳아 건강하게 키워냈던 여울이. 늘 밝은 표정으로 묘생을 살던 여울이. 오래전 봉달이가 살아 있을 때 자주 함께 어울렸던 성격 좋은 고양이. 그 여울이가 고양이별로 떠난 까닭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고, 새삼 마음이 아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보다 나은 고양이의 현실을 위해 사료 배달도 하고, 고양이 책도 내고, 블로그에 꾸준히 길고양이 보고서도 올리고 있지만, 이럴 때마다 참 절망스럽다. 사람들은 그래도 길고양이의 현실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런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더더욱 도심과 달리 이런 시골에서는 달라진 길고양이의 현실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시골 사람들은 고양이를 잡기 위해 쥐약을 놓는다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 자기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동물이면 새가 됐든 고양이가 됐든 죽여도 상관없고, 도리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고양이의 목숨 따위는 오이 한 개, 쌀 한 톨보다도 못하다. 먹고살 게 없어서 굶어 죽는 세상도 아닌데, 여전히 그들이 인정은 참 고약하기만 하다.


그동안 녀석들을 보살펴온 개울집 캣맘은 또 캣맘대로 상심이 크고, 원망이 더했다. 고양이를 그렇게 죽여 놓고도 이웃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쥐약으로 협박을 하고 있단다. 어쨌든 살아남은 고양이는 살아남은 고양이의 슬픔으로 떠난 고양이의 묘생까지 짊어지고 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야 한다. 더 춥다. 이번 겨울은. 녀석들은 이제 엄마 없이 생의 첫 번째 겨울을 나야 할 것이므로.



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전원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전원고양이는 전원주택이 영역이라서 다행이다. 전원주택 마당가에는 나무 울타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 울타리가 너무 높지 않아서 다행이다. 마당 한가운데 감나무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 감나무에 올라가도 할머니가 혼내지 않아서 다행이다. 늘 고양이가 가여워 밥을 내오는 할머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자신을 고양이 엄마로 여기는 처녀 개 반야가 있어서 다행이다. 전원고양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전원고양이를 만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처음 전원주택에 들렀을 때 전원고양이 식구는 열다섯 마리 정도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의 식구 수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녀석은 쫓겨났고, 어떤 녀석은 스스로 척박한 영역으로 떠났다. 어쩌면 이것이 전원주택 할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녀석들의 자구책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억울하게 쫓겨났든, 스스로 묘구 밀도를 조절하기 위해 떠났든 떠날 때가 되어 떠날 줄 아는 녀석들의 행동은 갸륵할 따름이다. 그런 고양이를 지금까지 보살펴온 할머니도 그저 아름답다. 전원주택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할머니의 형편이 이 많은 고양이를 돌볼 만큼 넉넉하지는 않다. 할머니는 말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어묵도 먹이고 남는 밥도 먹이면서 그렇게 사는 거지 뭐. 며칠 전에는 글쎄 사료가 똑 떨어져서 한밤중에 고양이들이 문 앞에서 그렇게 울더라고. 그래서 내 그랬어.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만 해주자. 남은 우유도 주고, 멸치도 주고, 계란 프라이도 해주고, 그러면서.”


사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료 한 포대를 전원주택에 배달하고 있지만, 그것이 충분할 리가 없다. 그래도 할머니는 그게 그렇게 고맙다며 갈 때마다 나에게 커피며 간식을 내오곤 한다. 한번은 우리 아들이 백일이 되었을 때인데, 할머니가 손수 뜨개질을 해서 아기 옷 한 벌을 떠주었다. 모자는 물론 양말까지 풀세트로 옷을 떠주었다. 또 한 번은 간장과 된장에 절인 깻잎을 정성스레 싸주는 거였다. 이래저래 전원고양이를 만나서 정말로 다행인 것은 나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지구의 한 귀퉁이, 궁벽한 시골에도 전원주택 할머니처럼 고양이를 긍휼히 여기고 보살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보살핌 아래 전원고양이는 그 어떤 고양이보다 명랑하다는 것. 전원주택 마당에도 어김없이 봄은 와서 전원고양이 녀석들은 하나같이 봄 햇살에 나른나른 노곤한 묘생을 핥고 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지난 초봄 이웃 할머니들이 우리 집을 찾아와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간 뒤부터 나는 우리 집 마당에 고양이 밥을 주면서도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이 녀석들이 또 옆집의 텃밭을 파헤쳐 이웃 할머니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게 아닌가, 언제나 전전긍긍 노심초사였다. 고양이가 선물한 쥐를 부러 할머니에게 보여주면서 쥐약을 놓겠다던 할머니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언제 다시 마음이 돌변해 쥐약을 놓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고양이를 유해한 것으로 여기는 분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설득하거나 이해를 바라는 건 한계가 분명했다. 봄이 지나면 채소와 농작물이 어느 정도 자랄 테니까 그때까지만이라도 고양이의 안전을 보장받을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시골에서 장인어른이 손수 재배한 무공해 표고버섯을 한 박스 보내주었다. 나는 그중 최고로 좋은 것들을 선별해서 세 봉지로 나눠 담았다. 두 봉지는 옆집 할머니들에게 선물하려는 것이고, 나머지 한 봉지는 전원주택 할머니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표고를 선물 받은 이웃집 할머니들의 반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표고가 동글동글하니 너무 좋다며 흐뭇해하셨다. 고양이의 안전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고양이가 무탈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컸다. 뇌물의 효과는 있었다. 이웃집에서는 쥐약을 놓는 대신 텃밭에 고양이의 출입을 막기 위한 그물을 둘러쳤다. 그 그물은 작물이 어느 정도 자란 뒤 걷어냈지만, 난 그분들의 아름다운 타협이 고마웠다. 고양이가 밭에 나타나면 여전히 돌멩이를 던지고 고성을 질러 쫓아내긴 했지만,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쓰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 됐든 그렇게 우리 집을 찾아오는 고양이는 무탈하게 봄을 났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이란 어쩌면 인간이 배려심을 통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시골고양이에게 가장 위험한 계절은 겨울이 아니라 봄이다. 무사히 봄을 났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한 해의 고비를 넘겼다는 얘기다.



여름: 고양이가 보내온 SOS

고양이가 보내온 SOS

지금부터 나는 며칠 전에 일어난 믿지 못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며칠 전 여느 때처럼 사료를 한 포대 들고 전원주택에 들렀는데, 대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냐앙냐앙 울고 있었다. 산둥이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녀석!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대문 앞에서 뒹굴며 한참을 발라당을 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고 대문을 열어주자 녀석은  처녀 개 반야 앞에 납작 엎드려 또 한참이나 몸을 맡겼다. 반야는 마치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온 것처럼 오랜만에 찾아온 산둥이의 몸을 구석구석 핥아주었다.


때마침 밖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를 듣고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할머니는 산둥이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고, 우리 순둥이 왔네, 잘 왔다, 잘 왔어!” 하면서 사료 그릇을 내밀었다. 할머니에 따르면 그동안 여러 번 산둥이가 머무는 우사에 들러 사료를 내려놓고 오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사 주인이 사료를 치워버리고, 고양이가 드나드는 구멍조차 돌멩이로 다 막아버렸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최근에는 몇 번이나 산둥이가 대문 밖에 찾아와 냐앙냐앙 할머니를 부르더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사료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가 산둥이에게 먹이곤 했다고.


그날도 산둥이는 무척이나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내민 사료 그릇을 보자 산둥이는 허겁지겁 그것을 먹어치웠다. 한껏 입을 벌리고 다급하게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아롱이가 올까 봐 그런다고 했다. 산둥이는 순식간에 먹이 그릇을 비우고도 현관 앞에서 또 냐앙냐앙 울었다. 이번에는 할머니 무릎에 얼굴을 부비고, 다리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는 안으로 들어가 양손 가득 굵은 멸치를 들고 나왔다. 멸치를 그릇에 내려놓자 여기저기서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다른 고양이를 다 막고서 산둥이에게만 멸치를 먹였다.


다른 녀석들이야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 오랜만에 온 산둥이가 우선인 것이다. 산둥이는 거의 절반 가까지 멸치를 먹고도 할머니를 쳐다보며 냐앙냐앙 울었다. 할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녀석은 그 앞길까지 막고 계속해서 울었다.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결국 할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산둥이는 이제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냐앙 냥 울었다. 바지춤에 얼굴을 부비고,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도 하면서. 내가 카메라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가려 대문을 나서자 녀석을 내 앞에 드러누워 아예 시위를 했다. 나는 그것이 그저 만져달라는 것인 줄 알고 목덜미와 등을 쓸어주었다. 하지만 녀석의 눈빛이 어쩐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녀석은 발라당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몇 미터쯤 앞서 가서는 뒤돌아보고 또 냐앙냐앙 울었다. 내가 서너 걸음 쫓아가자 다시 또 몇 미터쯤 걸어가 뒤돌아보고 냐앙냐앙거렸다. 그제야 나는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녀석은 나를 부르고 있었던 거다. 어디론가 나를 데려가려는 거였다.


나는 “무슨 일이 있구나! 그래, 가자!” 하면서 녀석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이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녀석은 걸음을 재촉했다. 묏등 아래 시멘트길을 지나서 과수원으로 들어서자 산둥이는 잰걸음을 거두고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과수원 건너편에는 문 닫은 비닐하우스 우사가 한 동 있는데, 거기가 목적지임에 분명했다. 할머니가 말하던 우사가 바로 그곳이었던 거다. 그런데 한참을 앞서 나가던 산둥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라가던 나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었다. 과수원 고랑에서 우사 쪽을 바라보니 놀랍게도 그곳에는 조막만 한 아기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모두 다섯 마리였다. 산둥이 녀석이 나에게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이 바로 저 녀석들 때문이었던 거다. 내 맘대로 이해하자면 산둥이는 “우리 아이들이 며칠째 굶고 있어요. 우리 애들 좀 살려주세요!” 하고 내게 SOS를 보낸 것이다. 먹이원정을 다니기에는 너무 어리니, 저 불쌍한 아기들에게 사료 좀 주고 가라고.


내가 주머니 속에서 사료 봉지를 꺼내느라 바스락거리자 우사 앞에서 놀던 아기 고양이들이 일제히 놀란 토끼눈을 하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우사 앞에 갑자기 낯선 사람이 떡하니 서 있자 녀석들은 기겁을 하고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왕 녀석들을 놀라게 한 김에 씩씩하게 사료 봉지를 들고 녀석들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 적당한 곳에 사료를 부어주었다. 사료를 부어주고 산둥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 산둥이는 나를 보고 냐앙 하고 길게 울었다. 고맙다는 말일 테다. 갑자기 내 앞에서 격하게 발라당도 선보였다.


저 많은 녀석들 내일까지 먹으려면 사료 한 봉지로는 부족할 듯했다. 나는 차로 되돌아가 봉지에 가득 사료를 더 담아 왔다. 그것을 한 번 더 부어주고서야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이제 멀찍이 물러서서 나는 망원렌즈를 통해 녀석들을 구경하는데, 이 녀석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고 작은 꼬물이들이 꼬물꼬물 바닥에 엎드려 낮은 포복으로 기어오는데, 기어와서는 아작아작 인상을 써가며 사료를 씹어대는데, 카메라의 찰칵 소리에 놀라서 우르르 배수구 속으로 다시 숨기도 하는데, 다시 사료 앞으로 헤쳐 모여 냠냠냠냠 소리까지 내가며 맛있는 식사를 즐기는데, 보는 내가 다 배가 불렀다.


어느새 산둥이는 새끼들 앞으로 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내가 사진 찍는 시간이 길어지자 산둥이는 보초도 때려치우고 나에게 다가와서는 무릎에 고개를 대고 나를 밀어냈다. 이제 그만 가보라는 거였다. 그래 알았다 인석아! 간다 가!


사람과 고양이 사이가 서로 대화가 통할 리 없지만, 아주 가끔은 의사소통이 될 때가 있다. 산둥이가 내게 했던 행동처럼 고양이도 위급하거나 도움이 절실할 때면 사람에게 구조 신호를 보낸다. 만일 어떤 고양이가 당신에게 이런 구조 신호를 보내온다면, 당신은 그 고양이가 아주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당신은 그런 고양이의 간청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