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빠는 딸들의 첫사랑이었다

   
이경모
ǻ
이야기나무
   
15000
2013�� 10��



■ 책 소개
어떤 광고주보다 까다로운 두 딸에게 물려주는아빠의 아이디어 노트!

치열한 광고회사에서 25년 넘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살아온 까칠한 남자 이경모가 두 딸에게전하는 아이디어 노트로, 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빠가 딸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아냈다. 어느새 직장인이 되고, 곧 집을 떠날 딸들에게 평생아이디어라면 남부럽지 않은 기획자로 살아온 아빠의 아픈 경험과 지혜가 담긴 노트를 건넨다.

고교생 딸이 가출을 했을 때, 문자로 죽고 싶다고 했을 때, 처음 남친을 데려왔을 때, 피어싱을 하고 나타났을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등 가슴 무너졌던 ‘선배 딸바보 아빠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 아픔을 통해 태어난 50가지 이야기가 담겼다.말로 하기는 쑥스러워 노트에 담은 글은 “아빠가 살아보니 이렇더구나” 하며, 이제는 짝사랑이 된 딸들에게 삶의 지혜를전한다.

■ 저자 이경모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1987년 말 LG에 입사해홍보 및 PR, 전략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1995년부터는 광고대행사 제일기획과 TBWA KOREA로 자리를 옮겨 프로모터로서 커뮤니케이션전략기획과 프로모션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2003년 이후에는 PR회사와 프로모션회사에서 기획 디렉터의 역할을 하면서 20년 넘게 기획과프레젠테이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부산예술대학에서 겸임교수를 지낸 바 있으며, 현재 오산대학의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여러 학교와단체에서 기획과 프레젠테이션에 관련된 강의를 했으며, 최근에는 ‘인큐베이터(incubator)’라는 브랜드를 통해 기획과 프레젠테이션 구조설계의 코치로, 사람과 프로젝트의 인큐베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이외 저서로는 『모든 아빠는 딸들의 첫사랑이었다』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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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머리말 - 정을 끊으며 잔소리를물려줍니다

1장 누구의 인생도 카피하지 않기
아빠의 인생노트 1: 철없는 남자, 철없는 아빠가 되다 

2장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아빠의 인생노트 2: 공부보다 사랑을 잘 하는 사람으로

3장 일상에서 느끼고 발견하기 
아빠의 인생노트3: 힘들어도 간다, 아빤 슈퍼맨이야! 

4장 다른 생각존중하고 배려하기 
아빠의 인생노트 4: 기른 건 난데, 가르친 건 너희였다 

5장 오래오래 함함하게 살아가기 
아빠의 인생노트 5: 사춘기 딸 바보 아빠, 이제는 짝사랑

맺음말





모든 아빠는 딸들의 첫사랑이었다


머리말 - 정을 끊으며 잔소리를 물려줍니다

아이들이 커 가면 부모의 사랑도 변해야 한다지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따뜻하게 돌보는 게 사랑이고, 사춘기 때는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이 사랑이고, 스무 살이 넘으면 냉정하게 끊어주어야 사랑이라 합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온 바를 되돌아보면 이도 저도 제때에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따뜻해야 할 때 소홀했고, 지켜봐 주어야 할 때 참견했으며, 끊어주어야 하는 지금, 정을 부여잡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상 모든 딸에게 아빠는 첫사랑이었습니다. 어린 딸들은 커서 아빠와 같은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 환상은 깨지고 그녀들에게 첫사랑은 쉬 잊히고 맙니다. 이제 딸들은 스무 살을 훌쩍 넘어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로서 딸에 대한 짝사랑을 품고 사는 건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일을 하면서 딸아이들 또래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들 역시 저마다의 삶을 다양한 모습으로 꾸려 가고 있었죠.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현실의 벽 앞에 힘겨워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건 제 딸아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녀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거침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정직한 속내를 두런두런 책으로 담았습니다. 이 책은 딸의 첫사랑인 아빠가 딸에게 전하는 눈 먼 사랑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딸아이들과 나는 냉정하게 보면 다른 인생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것보다는 ‘살아보니 내 인생에는 이런 것들이 문제였다’ 혹은 ‘이렇게 해 보니 잘되는 것 같더구나, 너희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니?’와 같이 생각 거리를 던져주고 싶었습니다. 답은 그녀들이 구해야 할 테니까요.


책의 소재들은 평범합니다. 어쩌면 잔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들과 보낸 시간 가운데 모아 두었던 기록과 생각들, 제가 세상과 더불어 50여 년을 살면서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통해 얻은 작은 깨달음을 이야기로 엮은 것뿐입니다.


이제야 사랑을 새롭게 익혀가는 모양입니다. 이제야 정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의 인생도 카피하지 않기

아빠의 인생노트 1: 철없는 남자, 철없는 아빠가 되다

장남으로, 큰 손주로 태어나 귀여움받고 자란 사람. 중학교 때 여자를 처음 알았고, 고2 때 담배를 피기 시작했으며 70명 정도이던 학급에서 5등 안팎은 했으니 공부도 그럭저럭 한 사람. 재수하고 대학교에 가서 공부보다는 최루탄 냄새 맡으며 데모에 더 열중이었던 사람. 너희들 아빠가 되기 이전의 나는 그렇게 세상 물정이라고는 모르는 철없는 남자였다.


그렇게 철없던 남자는 영락없이 철없는 남편, 철없는 아빠로 이어졌다. 대학교 4학년 때, 덜커덕 결혼을 해 버린 것이다. 돈 한 푼 벌지 못하고, 여전히 졸업 후 장래에 대한 아무 대책도, 고민도 없으면서 가정을 꾸린 셈이었다. 결혼이 무슨 소꿉놀이도 아닌데 말이다. 속도위반을 의심하면서 ‘왜 그리 서둘러 결혼을 일찍 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사랑했으니까’ 라고 답을 했다만, 가정이란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리고는 덜컥 큰 녀석이 세상에 나왔다. 계획하지 않은 탄생이었다. 남자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산부인과에서는 너나없이 축하인사를 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달랐다.


“저…… 애기 보세요.”


아들이 대접받던 시절이었다. 작은 녀석이 보면 실망스럽겠지만 그 녀석을 배 속에 둔 엄마는 ‘득남을 희망한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졌을 정도였으니까.


이후 주변 사람들은 내게 아들 낳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나는 흔들림이 없었고, 쓸데없는 사명감마저 가졌다. 철없는 아빠다운 철없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2010년에 태어난 남자아이 가운데 5명 중 1명은 혼자 살아야 할 운명이란다.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고, 실제 직장에서 업무 능력을 봐도 여성이 훨씬 잘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아빠가 철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당시의 풍토와는 다른 기준으로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들 없이도, 남의 시선이나 눈치 안 보면서 ‘딸딸 아빠’로서 잘 살아왔고, 세상은 마침내 딸들의 시대를 화려하게 열어 준 셈이니 아빠에게 참 고마워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니?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자

사람은 본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원본’으로 태어나 죽을 때는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복사본’으로 죽는다는 말이 있어. 하지만 가장 행복한 삶이란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르게’ 사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나답게, 남다르게 살아가는 일체의 삶은 하나의 잣대로 감히 평가하기 어려운,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리라.


이젠 기술이나 지식의 크기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나 시선의 차이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리라 믿는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 결정되는 거니까.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되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우물쭈물하지 말고 네 생각대로 살아가기 바란다.


먼 훗날, 눈을 감을 때 이렇게 생각하며 눈 감으면 그게 행복한 일생 아닐까?


“아 참 세상 재미있게 살았다. 잘 있거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이 세상에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법이란 없거든


항상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달라지지 않아

내가 달라지기 전에,

내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전에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그렇게 세상을 향해

‘메롱’하며

개기고 시비 걸고 딴지를 걸어 보렴


뭔가 변화가 시작될 테니까!


아빠의 인생노트 2: 공부보다 사랑을 잘 하는 사람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결혼반지도 나누지 못한 채 시작한 아빠였기에 우리는 1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녀야 했다. 그래도 아빠 역할은 좀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아무 조건 없이 많이 안아 주고 대화가 통하는 아빠로. 가난했지만, 엄마 젖을 6개월이나 먹고 자란 너희는 건강하게 잘 커 주었다.


적어도 너희가 미운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아빠로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역할은 한 것 같다. 그러나 해 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나도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건 내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무언가를 외워 발표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억지로 외우는 네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외우지 말고, 그냥 네 생각대로 말하렴. 이해도 안 되는 걸 외라고 하는 말을 꼭 따를 필요는 없어.”


언제나 틀 밖에서 자유롭기를! 그랬었다. 아빠는 너희가 어떤 틀에 맞춰 자라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냥 자유롭게 자라기를 바랐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관계는 이때가 절정이었던 것 같구나. 이후 우리들의 관계는 서서히 악화되기 시작했으니까.


느리게 몰입해야 할 때가 있다

모두가 다 바쁘다고 한다. 세상이 바쁜 건지, 자기가 바쁜 건지 모르겠지만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아. 뭐 물론 실제로 바쁜 사람도 많지만 뭔가에 쫓겨 다니거나, 쫓아다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해.


아빠가 살아온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아. 봄이 오고 꽃이 핀 지 한참 지났는데, 늘 다니던 길에도 피어 있었을 텐데, 무슨 생각과 고민이 그리 많았던지 제철에 본 기억이 별로 없어. 또 뭐가 그리 바빴던지 정작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거나,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못하고 지낸 것도 많고. 물론 너희에게도.


늘 어딘가에 오르려고 앞만, 위만 보고 달려온 듯 해. 주위의 꽃이 보이지 않았어.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물살을 가르려 노만 바삐 저었으니 물이나 경치가 보일 리도 없었고. 뭔가 골똘히 생각은 하는데, 바삐 스쳐 지나가니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겠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걸어 올라온 길을 되돌아볼 여유가 점차 생기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구나. 생각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생각은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크기가 훨씬 중요하구나.”


아빠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딸아, 너희도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해보렴.



일상에서 느끼고 발견하기

아빠의 인생노트 3: 힘들어도 간다, 아빤 슈퍼맨이야!

안주가 풍족하지 않아도 집에서의 한 잔 술은 늘 유쾌했던 것 같다. 쓴 소주에 김치찌개 안주 하나여도 그 어디에서보다 행복한 기분을 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이랑 ‘놀아 주러’ 가야 한다며 일찍 귀가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했다가 아빠 친구한테 혼난 적이 있었어.


“회사에 ‘일해 주러’ 오나? ‘일하러’ 오지. ‘놀아 주러’ 가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놀러’ 간다가 맞지.”


그랬다. 놀아 준다는 마음으로 집에 가면서 우리 사이에는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너희가 세상을 익혀 가면서 아빠가 가졌던 절대 권력은 서서히 힘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 같아. 좀 더 어릴 적에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때론 무력을 앞세워 아빠의 권위(?) 유지가 가능했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너희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피곤해졌다. 명령이 아닌 대화가 필요해졌고 너희의 합당한 질문에 나는 늘 구차한 논리로 일일이 설명해야만 했다.


아빠는 무지 바빴었어. 그 시절 아빠 마음을 어느 가수의 노랫말이 대신해 주더구나.


“어느새 자식들 머리 커서 말도 안 듣네. 제 자식 밥그릇에 청춘 걸고, 새끼들 사진 보며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고. 힘들어도 털고 일어난다. 얘들아 걱정 마라, 아빤 슈퍼맨이야. 아무것도 모른 채 뒹굴거리는 새끼들의 장난 때문에 나는 산다. 아빠 출근한다.”


그래도 딸 키우는 재미에 살았던 시절이었단다. 귀엽고 예쁘게 자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살갑게 몸을 부대낄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안타까웠다. 아빠와 딸로서는 함께 목욕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기에.


여전히 아빠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단다. 너희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하나, 뭐 특별한 아이가 되기보다는 그저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착하게,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녀석들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것 있으면 힘닿는 데까지 뒷바라지해 주마 하는 각오뿐. 아직까지는 품 안의 자식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생각을 시각화하면 상상력이 살아난다

일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가 있었어. 여러 아이디어는 떠오르는데 도대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없었던 거지.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말로, 글로 전달하다 보니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적도 많았고. 그래서 늘 입에 달고 산 말 중의 하나가 있어.


“우씨, 다시 태어나면 꼭 디자인 배우고 만다!”


그런데 그건 다음 세상으로 미룰 일이 아니었어. 그림을 그리는 젊은 친구에게 무작정 드로잉을 배우기 시작했지. 놀라운 변화가 생기더구나. 늘 보던 길거리가 다르게 보이고. 스쳐 지나갔던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어. 자연스럽게 집중력도 생기고 따분한 일상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했지.


드로잉이라는 것이 3차원 일상을 2차원 평면에 옮기는 일이라 쉽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원근감과 입체감, 명암과 구도에 대한 원리만 익혀도 호기심도 생기고, 어떻게 그려야 할까 고민하면서 상상력이 되살아나는 느낌과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았어.


그림은 상상력을 깨우는 힘이 되어 주거든. 초보 단계이지만 나는 드로잉을 하면서 다시 생각이 자라는 것을 느꼈어. 그래서 스스로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어. 드로잉을 배워 보라고.



다른 생각 존중하고 배려하기

아빠의 인생노트 4: 기른 건 난데, 가르친 건 너희였다

너희가 중고등학생 시절, 아빠는 한참 바삐 일하던 시절이었다. 슈퍼맨처럼 살아야 했다. 안팎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으며 지구는커녕 가정 하나 지키기도 버거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밤늦게 술 먹고 들어오고 주말에는 퍼져서 자는 보통의 아니 어쩌면 평균 이하의 아빠였다.


그 무렵, 너희에게도 마침내 그 분이 오셨다. 바로 사춘기. 아이가 성인이 되는 시기에 찾아온다는 그 분. 사람마다 사춘기를 겪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하던데 너희도 만만치가 않았다. 딸아이의 몸에 변화가 올 때 꽃 한 송이나 속옷을 선물해 줄 만큼 세심한 아빠도 있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마음 씀씀이 없이 딸들의 사춘기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사춘기 딸들의 민감함과 예민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 한마디라도 하면 문을 쾅 닫고 들어가고, 나는 종종 감정 섞인 큰소리를 해야 했다. 나는 너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전형적인 어른의 잣대를 들고 너희와 맞섰다.


대화와 소통. 믿음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는 참 못나디못난 아빠였다. 잘 품어 주고 보듬어 주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을, 어른답지 못 했음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


시련의 시기를 잘 이겨내고 알아서 제 갈 길 잘 갈 아이였는데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도 나온다.


고맙다.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 내고 잘 자라 주어서.


뺄셈은 덧셈보다 강하다

화투 칠 때 비, 풍, 초, 똥, 팔, 삼 순으로 버리라는 것은 손에 들고 있어 봐야 별 쓸모가 없기 때문이야. 아빠도 강의 자료를 만들 때 그렇거든. 일단 강의 주제와 관련된 걸 다 모아서 흐름에 맞춰 다 배치해 놓지. 그런 다음 이번 강의에서 하고 싶은 말의 요지와 강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인상이나 메시지를 남길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정리해. 그리고 주제와 상관없는 것들을 솎아 내거든. 그리고 그런 작업을 몇 번씩 반복해. 더 버릴 게 없나 살펴보면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있어. 여기에서 무소유라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야.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말라는 거지. 예를 들면 욕심, 이기심 같은 것들.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의 애플에 열광하는 이유는 또 뭘까? 그들의 제품에서 느껴지는 단순함 때문 아니겠니? 남들은 이런저런 기능을 자꾸 더하려 할 때 그들은 꼭 핵심적인 기능을 극대화해 디자인을 단순하게 만들어 왔잖아.


자기가 가진 생각과 아이디어를 틀에 담아 남에게 건넬 때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어. 핵심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 인생에서도 덧셈보다 뺄셈이 중요한 법이거든. 곁가지를 치고 버려야 오히려 분명해지고 강해진단다.



오래오래 함함하게 살아가기

아빠의 인생노트 5: 사춘기 딸 바보 아빠, 이제는 짝사랑

언제인가 기억이 흐릿한데 큰 녀석, 네가 남친을 데려왔다. 참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기분 더러웠다는 게 좀 더 솔직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아, 딸 가진 아빠 마음이라는 게 이럴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으니까.


아빠는 기본적으로 사랑에 있어서는 전과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다. 첫사랑과 결혼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급적 많이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보고, 또 이런저런 기쁨과 아픔도 겪어 봐야 사람이 성숙해진다고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너는 내 바람에 충분히 부응해 준 것 같다. 첫 남친 이후로 여럿 바꾸더구나. 말도 안 통하는 외국놈까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너의 그런 남친 편력이 네 인생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너희도 결혼을 하겠지. 네 결혼 상대도 너처럼 많은 경험과 아픔이 있는 놈이면 좋겠다. 이유는 마찬가지다. 그런 놈이라면 오히려 너를 잘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줄 수 있으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연애야 그렇다고 치자. 결혼은 차원이 다르다. 사랑 없이 할 수는 없지만 사랑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게 결혼이 아닌가 싶다. 돈 많은 놈도 좋고 잘 생긴 놈도 좋으리라. 그러나 긴 인생 함께 해야 할 놈이라면 그것보다는 너희와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고 함께하면 편한 사람이 남편으로서 적격이 아닐까 여긴다. 기회가 오면 네가 남편으로 삼고자 하는 놈에게 물어보리라.


"자네는 평생 내 딸아이만 사랑하며 살 수 있는가?"


이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는 놈에겐 너를 맡기진 않으련다. 이유가 궁금하겠지.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언제 우리가 그런 자리를 맞았을 때 이야기 나누도록 하자.


사람의 됨됨이는 사람을 대할 때 보인다

웨이터 테스트라는 것이 있단다. 외국에서는 상대방이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적절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할 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그가 어떻게 웨이터를 대하는지를 본다고 하더라. 반말을 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면 절대 사업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해. 지금이야 서로 동등하게 비즈니스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만일 그 사람이 좀 더 높은 위치에 서게 되면 웨이터 대하듯 자신에게도 함부로 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거지. 반면 웨이터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대한다면 어떤 입장에 있더라도 서로 신뢰하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고 의사결정을 한다고 하더군.


웨이터 테스트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결국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이나 처지 그 자체보다는,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녹아들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어.


사람의 처지와 입장은 늘 변하는 거란다. 세상 사람 모두가 항상 동등하게 수평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살 수 없는 거지. 하지만 사람들의 관계는 달라지게 마련이거든. 예전에는 내가 일을 주고, 상대방은 부탁을 했지만 반대로 내가 권력을 가진 상대방에게 부탁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는 거야. 그래서 이런 말들을 많이 하게 된단다.


"세상 참 좁구나, 참 잘 살아야겠더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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