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 시인의 코드

   
지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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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술정보
   
18000
2009�� 12��



■ 책 소개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

대학시절부터 계속 대구경북 지역에 머물러온 저자가 대구 경북 지역 시인에 대해 연구한것을 모았다. 이 책에 소개된 시인들은 대구 경북에 연고를 두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이 책은 이들의 작품에 대해 새롭게읽기를 시도하고, 문학관과 관련한 자료를 정리하며, 시비의 사진과 설립 취지 등의 원문을 정리해 싣고 있다. 

■ 저자 지현배
경남 마산 출생으로 경북대학교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경북대학교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문학예술’로 등단했다. 한국 현대시와 대구 경북 지역문학, 독서와 작문, 한국어교육분야의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실용작문』『한국의 언어와 문화(공저)』 『디지털 시대의 독서와 작문』 등과 『시 읽기와 시 교육』『삶의그림으로서의 시 창작 강의』 등의 저서가 있다. 

■ 차례
제1부 
1. 이육사 : 광야에울리는 초인의 노래 
2. 이상화 : 희망이 피워 내는 부활의 꿈 
3. 김동리 : 경주에 떠오른 금빛 무지개 
4. 박목월 :자하산 아래 보랏빛 나그네 
5. 조지훈 : 지조로 새겨진 선비의 표상 
6. 권정생 : 빌뱅이 언덕에 내리는 햇살 
7. 구상: 영원의 길, 구원의 길 찾기 
8. 정완영 : 고향의 마음과 전통의 문맥 

제2부 
1. 도동 시비동산 : 측백수림 길 
2. 현대시 육필공원: 시인의 길 
3. 두류공원 인물동산 : 산책길 
4.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오솔길 
찾아보기 





폭등 시대

대구 경북 시인의 코드


제1부

김동리 : 경주에 떠오른 금빛 무지개

동리는 한국 서사문학사에서 큰 맥을 형성한 작가이다. 「등신불」「을화」「무녀도」「황토기」「역마」를 비롯하여 데뷔작인 「화랑의 후예」 등 숱한 작품이 그의 품에서 나왔다. 그는 천년 고도의 경주에서 가장 한국적인 글 꽃을 피워올린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34년 시 「백로」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이후 서정주, 김달진 등의 시인부락에 동인으로 가입하여 시작 활동에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1935년과 이듬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와 「산화」가 당선되기 전에 시인의 길을 걸었고, 생전에 『바위』와 『패랭이꽃』이라는 시집을 냈다. 그는 소설가로서도 울창한 숲을 형성했지만, 시의 샘에서도 단물이 쉼 없이 솟아나는 작가였다.


「패랭이꽃」

파랑새를 쫓다가

들끝까지 갔었네

흙냄새 나무 빛갈

모두 낯선 타관인데

패랭이꽃

무더기져 피어 있었네

(갑자년 초여름에 김동리 짓고 씀)


동리문학관에는 작가의 친필 「패랭이꽃」이 걸려 있다. 족자에 갇혀 벽에 매달린 작품이 피워 내는 경지는 놀랍게도 패랭이꽃 만발한 들의 풍광을 끌어다놓기에 손색이 없다. 이 작품은 시인이 회갑을 맞아 묶었던 첫 시집 이후 십 년 만인 1983년에 나온 시집의 이름이기도 하다.


파랑새가 쫓아가는 길은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것도 되겠지만 인생으로 수렴된다. 들의 끝에 이르렀을 때는 특정한 사태의 끝도 되겠고, 삶의 길에서의 끝점도 되겠다. 흙이며 나무까지 낯선 상태, 더구나 그 냄새와 빛깔이 이질적인 상황은 가장 원초적인 토대로부터의 이탈이다. 그런 혼돈의 상태에서 등장하는 패랭이꽃은 익숙함이고, 안도감이자 파랑새를 쫓아온 행위에 대한 보상이다. 그래서 아무리 낯선 곳일지라도 낯설지 않다. 여기에 이르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 무의미해지는 경지에 도달한다. 바로 우주적 동질성이 형성되는 지점이다.


* 연보

1913년 음력 11월 24일 경북 경주시 성건리에서 김임수와 허임순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남.

1920년 경주 제일교회 부설 계남소학교 입학.

1926년 대구 계성중학교 입학. 부친 별세.

1929년 4학년 때 중퇴하고 귀향. 동서양의 고전 철학 및 문학에 심취. 「매일신보」와 「중외일보」에 시 「고독」「방랑의 우수」 및 수필 발표.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로 입선.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화랑의 후예」 당선. 경남 사천으로 이사.

1937년 서정주, 김달진 등과 시인부락 동인에 참여. 해인사의 말사였던 다솔사 부설 광명학원에서 교편생활.

1938년 11월 김월계와 혼인.

1942년 광명학원 폐쇄. 이후 절필 선언. 8.15 해방까지 침묵.

1946년 조선공산당 계열의 문학가동맹에 맞서 서정주, 박두진, 조지훈, 곽종원, 박목월, 조연현 등과 함께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에 피선.

1951년 한국문총 사무국장.

1968년 「월간문학」 창간.

1973년 중앙대학교 예술대 학장 취임. 명예 문학박사학위 받음.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에 피선.

1983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에 피선.

1995년 6월 17일 별세.


박목월 : 자하산 아래 보랏빛 나그네

박목월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조지훈, 박두진 시인과 함께 『청록집』을 떠올린다. 시대의 절망적 현실에 향토적인 것으로 맞선 시인이 목월이다. 그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만들고 조선문필가협회 등에 참여하고, 출판사를 운영하고, 「시문학」 같은 잡지들을 간행했다. 현실을 피해가지 않았다. 문학에서도 늘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였다. 


<나그네>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야, 지훈(芝薰)


강(江) 나루 건너서/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나그네」는 목월의 초기 작품으로, 흔히 대표작으로 이야기된다.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조지훈의 「완화삼」에 대한 화답시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시인 특유의 유유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구름 사이로 달이 흘러가는, 한국적 정서까지 잘 품고 있다.


나그네의 이런 이미지는 고통스러운 현실의 고착을 완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언중들에게 나그네는 변화의 아이콘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며,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로의 역할을 한다. 저녁놀은 그런 점에서 나그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일기(日氣)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 작품에서 성숙의 이미지로 드러난 것이 저녁놀과 술 익는이다. 그것은 오랜 기다림의 결과이기도 하고, 완성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숙이라는 저녁놀, 그리고 그것과 부합하는 나그네가 연결되어 생성하는 의미는 현실 변화의 에너지요 희망이다. 그것은 일상에 지친 민중에게는 위안이면서 일상에 지친 몸을 기댈 언덕이고, 새벽을 기다리는 희망이 된다.


「하관(下棺)」


관(棺)이 내렸다./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주여/용납(容納)하옵소서/머리밭에 성경(聖經)을 얹어주고/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좌르르 하직(下直)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턱이 긴 얼굴이 나를 알아보고/형(兄)님!/불렀다./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이제 네 음성(音聲)을/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어디로 갔느냐/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형님!/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다만 여기는/열매가 떨어지면/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목월이 아버지 상을 당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아우마저 30대 초반의 나이에 폐결핵을 앓다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에는 동생에 대한 안타까움과 고통스러운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생의 이름 대신 그라고 지칭한 것은 그만큼의 거리가 생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연에서, 꿈에서 만난 동생이 형님이라고 불렀고, 전신을 다해 답했지만 "그는 못 들었으리라"고 말하는 대목은 시인의 의식을 그림으로 그리듯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대목은 존재 소멸의 아픔보다 소통 불가의 현실이 주는 고통이 시인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눈과 비가 오는 세상이라는 표현은 아픈 현실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드러난 구절이다. 셋째 연에서 "열매가 떨어지면/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에서, 열매는 나무의 핵심 가치요 노력의 결실이요 성과다. 생명줄이 툭 끊어지는 순간의 당혹감과 낭패감이 증폭되는 소리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 연보

1915년 1월 6일, 경북 경주시에서 출생. 본명은 영종(泳鐘).

1929년 경주군 건천 보통학교 졸업.

1930년 계성학교 3학년 재학 중 동요 「통딱딱 통짝짝」과 「제비맞이」가 각각 「어린이」지와 「신가정」지의 현상공모에 당선되어 동요시인으로 등단.

1935년 3월 계성학교 졸업. 경주군 동부 금융조합에 취직.

1939년 정지용에 의해 「문장」지 9월호에 추천.

1945년 해방 직후 금융조합의 부이사로 승진했으나 사임. 대구로 이사하여 모교인 계성학교에서 교편을 잡음.

1946년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3인 시집 『청록집』 발간.

1949년 이화여고 교사로 초빙. 서울대 음대 강사로 출강. 한국문학가협회 결성에 참여. 출판사 산아방을 경영하면서 학생잡지 「여학생」 창간.

1950년 「시문학」 창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구로 피난.

1953년 환도 후 서라벌예대와 홍익대 강사로 출강.

1962년 한양대 문리대 국문과 조교수.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1976년 한양대 문리대 학장에 취임.

1978년 3월 24일 아침 산책에서 돌아와 영면. 용인 모란공원 묘원에 안장.


권정생 : 빌뱅이 언덕에 내리는 햇살

권정생은 이미 브랜드가 되었다. 1974년 『강아지똥』으로 출간된 동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노래로 만들어지고, 시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작가는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이야기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 적이 있다. 자전적 이야기 「별똥별」은 동화이지만, 글 전체가 환유로 꾸려지고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떼어놓으면 시가 된다. 그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고, 소설이나 시 창작에 대해 따로 배우거나 강의를 들은 적도 없지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여 경지에 도달했다. 그를 품은 독자들을 보면서, 교육과 창작에 대한 교훈과 삶에 대한 조언을 얻는다.


「소 1」

보리짚 깔고/보리짚 덮고/보리처럼 잠을 잔다.


눈 꼭 감고 귀 오그리고/코로 숨쉬고


엄마 꿈 꾼다./아버지 꿈 꾼다./커다란 몸뚱이,/굵다란 네 다리.


- 아버지, 내 어깨가 이만치 튼튼해요./가슴 쫙 펴고 자랑하고 싶은데/그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는 보릿짚 속에서 잠이 깨면 눈에 눈물이 쪼르르 흐른다.


「소」 연작은 권정생의 시 세계를 폭넓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움의 기저에는 가졌던 것의 상실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의 관계에서 형성되었던 것이 현재에 결여로 작용하게 되고, 그것에서 박탈감을 느끼게 될 때 그것은 그리움이다.


튼튼한 어깨를 가진 훌륭한 일꾼이자 청년으로 자란 소가 부모님을 만나고 싶지만 그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깔고 덮은 보릿짚 속에서 꿈꾸는 순간은 부모님과 함께하는 고향의 품이다. 꿈에서 깨면서 결여의 현실을 각성하게 되면 쪼르르 눈물이 흐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복원되지 않은 원초적 가치가 외로움으로 표출된 것이다.


작가의 「토끼」 연작이나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에서도 외로움을 형상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시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책에서 보듯 "정들어 자라온 땅을 떠난다는 것은 가슴이 쓰리고 서러운 일이었다."


권정생 선생이 작성한 유언장에서도 외로움의 기조를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의 유언 중 2005년 5월에 작성된 것을 보자.


A.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중략)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B.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에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A에서 주목할 부분은 아픔, 슬픔, 외로움은 죽음으로 끝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작가의 생을 통해서 가장 절실한 문제였거나 일생을 두고 가장 큰 화두로 삼았던 것이 이들이라는 점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B는 환생이라는 코드를 빌려서 작가의 희망 또는 꿈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연애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간절한 희망도 포기할 수 있다는 구절을 통해 폭군이나 전쟁 등으로 대변되는 사회구조적 착취와 억압 구조가 주는 모순과 아픔에 저항하고 있다. A와 B에서 드러나는 중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건강한 남자는 아픔 없는 삶에 대한 희망이고, 연애는 외로움 없는 삶에 대한 설계이자 희망이다.


유언장에서 보듯, 「소 1」 등의 작품에 표현된 외로움은 작가와 평생을 함께했던, 그의 가장 친근한 벗이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익숙하게, 습관처럼 운명처럼 그렇게 자리 잡고 있었다. 부모 형제와 친구는 늘 그리움 속의 존재였고, 배우자도 자식도 만들지 못했던 작가에게 외로움은 인생의 동반자였다. "연애는 수없이 했지요. 할아버지 할머니하고도 아이들하고도 강아지하고도 생쥐하고도 개구리하고도 개똥이하고도……."라는 그의 고백은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봤음을 고백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생쥐와 강아지와 나무와 온갖 미물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는 인간의 측면에서 작가의 외로움을 부각시키는 내용이다.


* 연보

1937년 8월 18일 일본 도쿄 시부야의 헌옷장수 집 뒷방에서 태어났다.

1938년 7월 안동군 일직면 조탑리에서 둘째 형 목생이 세상을 떠났다.

1943년 거리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가져온 『이솝이야기』『그림동화집』 등을 혼자 읽고 세상을 배웠다.

1944년 도쿄 시부야 혼마치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해 8개월을 다녔다. 12월, 폭격으로 집이 모두 불탔다.

1945년 해방을 맞아 후지오카로 이사했다. 두 형이 조선인연맹에 가입한 뒤 끝내 귀국하지 않았다.

1946년 3월에 귀국하여 식구들이 흩어져, 권정생과 어머니·큰누나·동생은 칭송 외가로 가 화목국민학교를 5개월 다녔다.

1947년 12월 식구들이 아버지의 고향인 안동 일직에서 모여 살게 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나 식구들은 뿔뿔이 헤어져 생사도 모르게 되었다.

1953년 3월23일, 안동 일직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1956년 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늑막염에 폐결핵이 겹쳤다.

1957년 2월, 어머니에게 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동생은 돈 벌러 집을 나갔다.

1963년 병세가 호전되고, 교회 학교 교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1966년 5월, 콩팥을 들어내는 수술을 했다.

1968년 2월,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살게 되었다. 「깜둥바가지 아줌마」가 「새벗」8월호에 실렸다.

1969년 월간 「기독교교육」의 기독교아동문학상 현상 모집에 「강아지똥」이 당선되었다.

1971년 이오덕과 교우가 시작되었다.

1990년 장편소설 『몽실언니』를 MBC에서 36부작 드라마로 제작하여 9월1일부터 1991년 1월5일까지 방영되었다.

2007년 5월 17일 오후 2시 17분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서 별세했다.



제2부

현대시 육필공원 : 시인의 길

한국 현대시 육필공원은 대구시 동구 도학동에 있다. 백안삼거리에서 동화사로 가는 길에 신라시대의 고찰이었던 북지장사 입구에 자리 잡았다. 2006년 11월에 문을 연 육필공원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대시 작품을 돌에 새겨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시인들의 육필 작품을 한자리에 집중적으로 모아 놓은 곳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시인의 육필을 통해서 시인의 정취도 느낄 수 있다. 길 입구 표지석에서부터 방짜유기박물관 입구까지 비석이 이어지고 있다.


공원을 조성한 이는 채희복 씨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자연석을 수집하여 2천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 돌, 그리고의 운영자이다. 자연석으로 조성된 공원 주변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공원은 시를 사랑하는 일반인들과 학생들이 즐겨 찾는 문학기행이나 체험학습 코스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백석의 <모닥불>, 윤동주의 「봄」, 김춘수의 「하늘수박」, 미당의 「동천」, 천상병의 「귀천」, 김지하의 「황톳길」, 고은의 「시인」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동순, 이태수, 안도현 등 지역 출신 시인들의 시와 고월의 친필도 전시되어 있다. 


두류공원 인물동산 : 산책길

두류공원은 대구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 속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대규모 놀이 시설과 체육 시설, 공연 시설 등이 갖춰져 있고, 접근성이 뛰어나 시민들의 쉼터로 거듭나고 있다. 대구의 랜드마크인 우방 타워가 있고, 문화예술회관도 두류공원에 있다. 야외 음악당 등 공연 시설도 갖춰진 대규모의 공원으로, 넓은 산책로와 한국식으로 잘 정돈된 정원의 조경도 우수하다. 두류공원에 있는 인물동산은 산책길에 만날 수 있는 문화시설의 하나다. 문화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코스라서 주말이면 소규모로 무리지어 찾는 학생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두류공원의 인물동산은 지역을 빛낸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시인 이상화, 소설가 현진건, 애국지사 박희광, 대구사범 학생운동 기념탑, 애국지사 조기홍, 화가 이인성, 한시인 최양해, 시인 백기만, 시인 이장희 등이 현재까지의 주인공들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오솔길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대표적인 민족운동이다. 전국적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주인정신에서 일어난 애국운동으로, 남녀노소, 빈부귀천, 도시농촌 등을 초월하여 전 국민이 참여한 운동이었으며, 여성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한 첫 여성운동으로서도 의미가 깊다. 자발적인 NGO 운동으로, IMF 극복을 위해 벌인 금 모으기 운동 등도 그 정신의 뿌리는 국채보상운동에 닿아 있다. 이러한 정신을 기리고 시민들의 휴식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1999년 12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 도심에 조성되었다.


공원에는 대구 시민의 얼과 기상을 온 누리에 전할 달구벌 대종이 있다. 또한 시민들의 솟대와 풍경, 조형 분수와 단풍 거리 등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시상의 오솔길이 마련되었다. 이 오솔길을 따라 조지훈의 「봉황수」, 윤동주의 「서시」, 이육사의 「청포도」, 이호우의 「달밤」, 박목월의 「사투리」 등 주목할 만한 현대 시인들의 시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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