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 설명서

저   자
나오미 스태들런(역:김진주)
출판사
윌북
가   격
17,800원(408쪽)
출판일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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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나만 이런가?’ 엄마가 처음인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의 심리학,
혼돈 육아의 진통제

오늘날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은 막다른 곳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맘충’, ‘노키즈존’처럼 아이와 엄마에 대한 미움을 표현하는 언행이나 ‘과잉보호’, ‘간섭’, ‘통제’ ‘학대’ 등의 부정적 개념들 속에서 엄마가 아이를 돌보며 드는 생각을 온전히 전달해줄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 책은 아이를 키우고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양육 종사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위로받을 ‘육아 업무’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엄마들과 심리치료사의 대화는 거의 모든 ‘엄마’들의 걱정과 고민을 직접 듣고, 이론이 아닌 실제적 삶과 경험을 살피고 보듬습니다. 이 다양한 양육자들의 진짜 육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설령 수많은 고민과 걱정거리가 뒤따르기는 해도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힘들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혼돈의 육아 속에는 분명 아이가 한없이 사랑스러운 순간과 고통이 번갈아 듭니다. 이 생생한 현실의 이야기들은 엄마 당사자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우는 가족이나 친구를 아끼고 염려하는 이들에게도 주 양육자가 맞닥뜨리는 여러 상황과 감정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줄 것입니다. 

■ 저자 나오미 스태들런
영국 공인 심리치료사로서 주로 육아에 지친 엄마들을 상담한다. 그녀는 상담을 통해 엄마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주고자 한다.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한 그녀는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두 아이의 할머니로서 공감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28년 넘게 런던의 능동분만센터에서 엄마들의 대화 모임인 ‘마더스토킹’을 운영 중이며, 국제 모유 수유 연맹인 ‘라레체리그’에서 30년 이상 에디터 겸 상담사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엄마 마음 설명서』, 『엄마의 감정수업』, 『What Mothers Learn』이 있다.

■ 역자 김진주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성격 및 사회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글밥아카데미 영어 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했고, 지금은 여덟 살, 다섯 살 아이를 키우면서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네덜란드 소확행 육아』, 『꿀잠 자는 아이』, 『슈퍼노멀』 등이 있다. 

■ 차례
일러두기
서문

1. 누가 알까요?
2. 아무런 준비 없이
3. 온갖 책임감
4. 불려가고 또 불려가고
5. 위로의 힘
6. 온종일 아무것도 못 했어
7. 피곤해 죽겠어
8. 아기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요?
9. 모성애란 무엇일까요?
10. 예전의 나는 어디 갔을까?
11. 남편이 너무 미워요
12. 엄마가 보고 싶어

후기: 엄마들의 대화
감사의 글
추천의 글: 육아의 지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석
참고문헌

 



도서요약


엄마 마음 설명서


누가 알까요?

“엄마들을 위한 책을 한 권 쓰고 있어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가엽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런 책은 이미 충분히 나와 있지 않나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못다 한 말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압니다. 엄마들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여태껏 엄마들의 삶을 제대로 대변해주는 말이 없었으니까요.


엄마들은 외로운 생활에 불만을 토로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생깁니다. 영국 소설가 레이철 커스크는 “엄마가 되자 난생처음으로 내 마음을 표현할 언어가 없어졌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다른 사람이 이해하게끔 전달할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작가마저 엄마로 살아가는 경험을 말로 전달하기가 버거웠다니 다른 엄마들은 오죽할까요?


‘엄마’라는 단어는 하나의 관계를 일컫습니다. 이 관계는 엄마가 된 여성이 이미 맺고 있던 모든 관계 사이를 뒤흔들어놓습니다. 대개 엄마는 이미 누군가의 아내 혹은 동반자이고, 친구, 동료, 이웃, 딸, 누이이며, 새엄마나 대모, 이모일 것입니다. 대체로 여성들은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자기 자신을 ‘엄마’라고 지칭합니다. 엄마는 우리 주변 곳곳에 존재합니다. 거리에서 한 쌍의 엄마와 아이가 지나쳐갈 때, 우리 눈에는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


엄마가 느끼는 강렬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다시 직장에 출근해도 엄마는 여전히 아이를 책임지고 돌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그 기분을 동료들에게 설명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기로 한 엄마는 자신이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걱정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엄마라는 역할에 담긴 본연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말로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먹이고 재우는 것과 같은 돌봄 행위는 엄마 역할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것만으로는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의 깊이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엄마의 삶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독자 여러분이 나와 팀을 이뤘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는 엄마에게 그녀와 아기가 어느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낸 뒤인 일요일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합니다. 시간이 흘러 약속 시간에 도착하자 아기를 안은 그녀는 초췌해 보입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는데, 난관에 부딪힙니다. 엄마는 질문의 의미를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엄마는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이 무엇일지를 가장 잘 기억합니다.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일은 아주 기본적인 것도 못 챙기고 있고, 집안일을 다 끝마치지 못해서 곤욕입니다. “우리가 오기 전에는 아기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그러면 엄마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라든가 “그냥 있었어요”라든가 “시간이 죄다 어디로 흘러가버렸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것도 안 했다? 시간이 죄다 ‘흘러가’버렸다? 엄마는 샤워도 점심 식사도 모두 포기했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기에게 온전히 바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생활에서는 아주 명확하고 정확하게 언어를 씁니다. 하지만 자기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엄마가 아기에게 기울인 관심을 제대로 표현할 언어를 찾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반면 엄마들의 잘못은 어렵지 않게 찾아냅니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엄마를 일컫는 단어는 아주 많습니다. 부주의하다, 이기적이다, 무심하다, 무정하다, 방치한다, 학대한다, 욕심이 많다. 너무 풀어준다, 지나치게 낙천적이다 등 얼마든지 더 적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구체적입니다. 모든 엄마가 과잉보호와 방임이라는 두 부류로 나뉘지는 않습니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우리에게는 ‘자녀를 적당히 보호한다’는 표현이 필요합니다.


엄마들은 정신분석학 용어를 끌어오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것은 자신의 경험을 개선해보려는 노력일 것입니다. 엄마들은 자신의 행동에 ‘신경증’, ‘강박증’, ‘공포증’ 같은 꼬리표를 붙이곤 합니다. 더 안전한 선책을 내리려는 시도입니다. 이러한 정신분석학 용어는 프로이트가 비이성적인 행동을 잡아내려고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분석학 용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은 별로 도움 되지 않습니다.


최근까지 엄마들에게는 육아를 설명하는 구체적인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육아와 관련된 표현이 많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여성들은 서로서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그들은 핸드폰과 인터넷을 들여다 볼 것입니다. 육아 정보는 예전과 달리 언어로 전달됩니다. 그러니 마땅한 언어가 없다면 정보 전달에 지장이 생깁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중요합니다. 언어는 엄마에 관한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이 시대의 언어가 전달하는 엄마의 이미지는 일그러져 있습니다. 여성들은 잘못된 이미지를 접하는 탓에 직장에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지만, 엄마로서의 삶은 너무 벅차서 제대로 해내기가 어렵다고 믿습니다. 지금보다 더 진실한 이미지를 전해줄 수 있다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아기를 돌보기로 한 여성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엄마에게 아기의 탄생은 자신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이 아니라 엄마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놀라운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엄마가 침착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아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기면서 아기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갓난아기와 친숙해져가는 과정을 한마디로 표현해주는 단어가 없습니다.


엄마에게 출산 후 가장 난감한 시기는 아기와의 관계가 막 시작되는 무렵입니다. 엄마는 아직 아기가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지 못하며, 아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들은 육아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건을 겪을 때보다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너무나도 부족했다는 사실을 절감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엄마들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키워드는 ‘책임’입니다. ‘책임을 진다’는 뜻의 영어 단어 ‘responsible’은 ‘응답’이라는 뜻의 ‘response’에서 파생되었는데, 엄마가 하는 일이 바로 응답입니다. 엄마는 아기에게 응답하는 법을 배워나갑니다. 인간관계에서 이 응답은 대부분 언어로 이뤄집니다. 예컨대 해외에서 온 낯선 손님을 맞이할 때는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나라 언어로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기를 돌볼 때는 아기가 보내는 비언어적인 ‘신호’를 관찰하고 포착해야 합니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엄마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은 말 한마디로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줄 일류 전문가가 아닙니다. 엄마들에게 필요한 건 갖가지 확고한 ‘규칙’이 아니라 약간의 실용 정보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고 해도, 그것은 육아서 수십 권을 읽어서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은 자기 스스로 배워가는 사람이 품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첫째를 길러봤다고 해서 모든 아기의 전문가처럼 행세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아이가 저마다 조금씩 다르며 엄마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줍니다. 유연한 태도를 지니기 위해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가 되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설령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고 해도 ‘막막한’ 심정을 느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불확실성은 엄마들에게 훌륭한 출발점이 되어줍니다. 엄마는 불확실함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아기가 커갈수록 엄마의 자신감도 커져갑니다. 엄마는 적어도 몇몇 기본적인 육아에는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곧 새로운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육아에 자신감을 지니게 된 것은 굉장한 일이지만, 그러한 자신감을 오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기르는 첫해는 가파른 비탈길의 연속입니다. 아이에게 독립성이 생기는 신호를 처음으로 접하는 순간, 막중한 책임감에 미묘하게 변화가 생기는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무거운 책임감이 엄마를 영원히 따라다니지는 않습니다.


위로는 인간이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쓰다듬거나 미소를 짓거나 몇 마디 말을 건네거나 아니면 그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위로는 매우 큰 힘을 발휘합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위로를 받으면 문제를 마주할 힘을 얻을 수는 있습니다.


위로라는 행위는 서서히 쌓여가면서 효과가 나타나서 처음이 가장 어렵습니다. 갓난아기는 특히 지금, 이 순간에 국한된 삶을 살아가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그 순간에 몰두해서 울기 시작하는 아기는 달래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앞에서 아이가 울면 우리는 넋이 나갑니다. 아기는 엄마에게 의존해서 살아가기에 엄마의 주의를 끌 수 있어야 합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서는 밤마다 깊은 잠에 빠져드는 엄마를 깨울 수 없습니다. 아이는 울음소리로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우는 아기와 관련된 육아서는 육아 기술에만 집중합니다. 하지만 우는 아기를 달랠 때는 육아 기술 이상이 필요합니다. 엄마의 행동은 평소에 엄마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엄마의 무의식은 엄마가 내리는 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기를 신뢰하는 엄마는 아기를 안아 가슴에 품습니다. 반면 아기의 울음소리를 훈육의 신호로 보는 엄마는 아기와 거리를 유지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엄마를 무지하거나 편협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두 엄마는 그저 같은 생각을 공유하지 않을 뿐입니다. 엄마라고 해서 모두가 명확한 세계관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중에는 자신의 신념에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봅니다.


대개 아기를 길들이려는 엄마는 아기를 신뢰하려는 엄마와 비교해 원하는 결과를 훨씬 빨리 얻습니다. 길이 든 아기는 엄마가 정해놓은 일관된 규칙을 훨씬 빨리 습득합니다. 덕분에 엄마의 일상생활은 비교적 예측 가능하고 질서가 잡혀 있습니다. 반면, 아기를 신뢰하려는 엄마는 혼란 속에서 헤매는 듯한 심정을 느낄 것입니다. 무엇하나 예측 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아기를 신뢰하는 엄마들은 아기를 길들이는 엄마들과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군가가 달래줄 때 아기는 흥분한 상태입니다. 아기는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된다는 걸 배워본 적이 없어서 수선을 떨고 보살핌을 받으며, 그 보살핌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아기는 서서히 그 보살핌에 의지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엄마가 항상 아이를 잘 달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많은 엄마는 자신이 서툴렀던 기억, 아이 곁을 지켜주지 못했던 기억, 곁을 지켜주기는 했으나 아이가 무슨 이유로 고통스러워하는지 알아채지 못했던 기억만을 유독 또렷이 기억합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아이들을 충분히 보살펴주는 엄마가 이 세상에는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보살핌을 받고 자란 아이는 고통을 대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영국의 오랜 속담에는 “아이를 보살피는 건 당연하지만 아이에게서 위로를 받게 될지는 불분명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을 부모가 어린 자녀와의 관계를 암묵적이고, 일방적인 계약 관계로 여기지 않도록 해줍니다. 이 세상에는 부모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아이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엄마에게 위로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타인을 위로해주는 어른으로 자라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기를 달래는 방법을 터득한 엄마들은 아이가 틀림없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법을 깨우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아직 너무나 어릴지 몰라도 그들의 몸짓에는 상대방을 따스하게 위로해주는 힘이 깃들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행동은 자신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받은 대로 돌려줍니다. 아이는 그저 엄마와 위로를 주고받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 배웠을 뿐입니다.


모성애란 무엇일까요?

모성애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두 관점은 각자 자신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오래된 관점은 사랑하는 마음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엄마가 자기 아이를 미워한다면, 오래된 관점은 그 사랑을 잘못된 사랑으로 여기는 반면, 새로운 관점은 그 역시 사랑의 일부로 여깁니다. 어쩌면 이런 얘기가 말장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성애는 분명 육아에서 가장 중요하며, 초보 엄마는 자시의 모성애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사람들은 엄마라면 응당 아기에게 푹 빠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조차 때로는 아기를 미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엄마 중에는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며 그 감정을 헤아려볼 줄 압니다. 감정을 헤아려보는 과정은 감정 표현이 적은 엄마들에게는 더 어렵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엄마들 역시 감정을 세심하게 느낄 수는 있습니다. 더러 의사들이 “아이를 때리고 싶은 욕구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엄마는 천사 혹은 거짓말쟁이이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들을 거짓말쟁이로 낙인찍을 이유는 없으며, 더불어 그들은 분명 천사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화가 났을 때 아이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보다는 화가 나는 원인을 스스로 살필 줄 아는 평범한 여성일 뿐입니다.


엄마가 느끼는 양가감정은 과연 얼마나 유효한 개념일까요? 양가감정이라는 개념은 점점 더 널리 퍼져나가고 있고, 일부 여성의 육아 경험에 뚜렷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양가감정은 엄마가 아기를 자신의 일부로 여길 때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는 아기를 그런 방식으로 대하지 않는 엄마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아기와 하나가 되는 듯한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해서 양가감정이 그들에게 해방감을 주지 못합니다. 양가감정은 엄마들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과정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엄마에게 양가감정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게 진심 어린 사랑은 겉으로 드러납니다. 진실된 사랑을 받는 아이는 보통 사람 만나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의 친절을 기대해도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사교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아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을 보이면 길을 가던 사람도 반응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진심 어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단단하고 기품 있는 태도를 보입니다. 아직 어린데도 아이는 사람들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람들은 아이에게 정중하게 이야기하려 합니다. 우리는 그런 아이를 대할 때 엄마가 아이를 아주 많이 사랑해줬으리라고 짐작합니다. 많은 엄마가 아이를 아주 많이 사랑해주려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 애쓰고 있습니다.


출산 후 처음 몇 달 동안 좌절감에 빠져 있던 엄마들도 아이가 말을 배우면서부터는 육아가 한결 편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시기에 엄마와 아이가 서로 다른 존재라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두 사람 사이에 대체로 신체적 접촉이 줄어드는데, 일부 엄마들에게는 이런 관계가 더욱 적합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아이가 집을 떠나면 엄마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한참 동안 소식을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예전처럼 아이에 관한 관심이 커집니다. 성인이 된 아이의 일상생활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과 아이의 삶에 간섭을 하는 것 사이에는 적절한 기준선이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모습은, 좋게 보면 나이 든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남편이 너무 미워요

엄마들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남편과 알콩달콩 살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아기의 탄생은 부부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확인해주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또한 초보 엄마들은 아기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모성을 느끼며, 그 마음을 남편에게 쏟아붓습니다.


육아 중에 부부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듯한 기분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아이라는 연결 고리가 생겼는데 부부가 가까워지기는커녕 멀어진다니 믿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아기가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다며 아기를 ‘쐐기’에 빗대기도 합니다. 아기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는 쉽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갑작스레 세 사람의 관계로 바뀌는데, 부모 중에 이처럼 중대한 변화를 언급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뚜렷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와 세 사람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두 사람일 때는 우아하게 균형을 이루지만 세 사람이면 관계가 복잡해집니다. 부모는 아이하고는 생물학적인 관계를 이루지만, 배우자와는 합의를 바탕에 둔 관계를 이룹니다. 가족 구성원에 아이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 역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세 사람으로 변하는 것만큼은 압니다. 관계의 변화가 늘 결혼 생활에 쐐기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에 변화를 몰고 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이제 막 부모가 된 사람들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주로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에 관심을 두니, 몇 달 동안은 계속해서 두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초보 아빠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처럼 기존의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지만, 엄마는 아기와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기에, 아빠는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빠는 소외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갑작스레 나타난 아기에게 이제껏 누려오던 특별석을 빼앗긴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초보 아빠는 아내에게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낮에 회사에서 일하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분명히 집을 안식처로 여길 것입니다. 남편이 없는 사이 아마도 아내는 아이에게 오랜 시간 애정과 인내와 자제심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엄마는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한때 두 사람이 모두 속했던 ‘직장 생활’에서 돌아온 남편은 온종일 직장에서 ‘뭔가’를 했습니다. 아내는 자신이 그에게 이토록 화가 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남편은 잠시 생각을 해봐도 자기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요즘 엄마들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순간에 옛날처럼 다른 여성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엄마에게 지금 시기에 이 정도면 잘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북돋워주고자 해도 그런 마음을 표현할 적절한 말이 별로 없습니다. 엄마는 ‘미운 3살’이나 ‘중2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작은 아이를 키우는 ‘쉬운’ 시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역량 부족에서 오는 감정을 남편에게 쏟아낼 때가 있다고 고백하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엄마들은 자신이 아이를 돌보면서 얻은 깨달음을 남편에게 설명해주기 어려워합니다. 아빠들은 육아에 서툰 자기 모습 앞에서 낙담하기 쉽습니다. 초보 아빠가 (낮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다면, 당연히 엄마가 아빠보다 육아에 훨씬 더 능숙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엄마는 자기보다 육아 지식이 현저히 부족한 남편에게 잔소리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염마들은 남편에게 육아를 도와달라고 말하기 몹시 꺼려진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들 역시 직장에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들은 보통 자신이 남편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보호 본능을 발휘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아빠들도 육아에 참여하다 보면 실력이 늘고 자신감도 늘어납니다. 나는 새로운 남성상이라든가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남성 중에는 육아를 꺼리는 사람이 있으며, 남성 대부분은 자신의 아버지가 육아에 동참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엄마들은 한때 ‘전통적인 남성의 세계’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편이 ‘전통적인 여성의 세계’에 동참해주기를 기대해도 될 차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부부가 가장 크게 마찰을 빚는 원인 중 하나는 육아 방식입니다. 두 사람 모두 육아 지식이 부족하다면, 양육 방식에 관한 대화를 미리 나누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다수의 언쟁은 부부가 대화할 시간을 내기만 하면 해결될 때가 많습니다.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부가 배우자에게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지는 않습니다. 분노가 담긴 말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생각하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어떤 말은 분명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말이 부부를 더 큰 진실로 이끌 때도 있습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로를 인정해주거나 예전에 늘어놓은 불만을 거둬들인다면, 부모로 거듭나는 과정이 더욱 수월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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