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신이 된 인간, 우리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호모 데우스Homo Deus’의 ‘호모Homo’는 ‘사람 속을 뜻하는 학명’이며, ‘데우스Deus’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신god’이라는 뜻이다. 즉,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된 인간’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이번 책에서 7만 년의 역사를 거쳐 지구를 정복한 인류가 이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역사학과 심리학, 종교부터 기술공학과 생명과학까지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피엔스 종이 협력이란 도구를 집단으로 만들고 허구를 믿는 능력으로 사회를 이룬 과정처럼, 과학의 발달로 인본주의가 퇴색하여 더 이상 신의 가치나 인간 중심 이데올로기 의미가 사라질 미래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과의 본질적 차이, 역사의 진보와 방향성, 역사 속 행복의 문제 등 광범위한 질문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세계사 강의가 알려지면서 급속히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MOOC 강의 ‘인류의 간략한 역사’는 전 세계 8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등록하였다. 2014년 두 번째 강의에는 개강 3주 만에 3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접속하였다. 2009년과 2012년에 ‘인문학 분야 창의성과 독창성에 대한 폴론스키 상’을 수상했고, 2011년 군대 역사에 관한 논문을 인정받아 ‘몬카도 상’을 수상했다. 2012년에 ‘영 이스라엘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에 선정되었다.
‘사피엔스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45개국에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하고, 도발적인 책 《호모 데우스》와 함께 돌아왔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의 미래와, 인간이 신으로 진화할 것인지에 대해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탐구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ynharari.com
■ 역자 김명주
성균관대학교 생물학과,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 옮긴 책으로 《생명 최초의 30억 년: 지구에 새겨진 진화의 발자취》(2007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를 비롯해 《메이팅 마인드》 《용-서양의 괴물 동양의 반짝이는 신》 《위험한 호기심》 《다윈 평전》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아인슈타인의 별빛 여행》 《과학과 종교》 등이 있으며, 주로 과학과 철학 분야 책들을 우리 글로 옮기고 있다.
다.
■ 차례
서문_다시, 한국의 독자들에게
1. 인류의 새로운 의제
제1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를 정복하다
2. 인류세
3. 인간의 광휘
제2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4. 스토리텔러
5. 뜻밖의 한 쌍
6. 근대의 계약
7. 인본주의 혁명
제3부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8. 실험실의 시한폭탄
9. 중대한 분리
10. 의식의 바다
11. 데이터교
역자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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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인류의 새로운 의제
세 번째 천년이 밝아올 무렵 인류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 일이지만,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는 기아, 역병, 전쟁을 통제하는 데 그럭저럭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들은 이제 자연의 불가해하고 통제 불가능한 폭력이 아니라 관리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이제 어떤 신이나 성자에게 이 문제들에게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기아, 역병, 전쟁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대개는 잘 막아낸다.
눈여겨볼 만한 실패 사례들도 여전히 있지만, 그런 실패의 순간에도 우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불완전한 세계의 작동원리라거나 신의 뜻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기아, 역병, 전쟁이 발생하면 우리는 누군가 잘못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다음번에는 잘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접근방식은 실제로 효과가 있다. 그런 재앙들이 확실히 점점 줄어든다. 역사상 처음으로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사람이 못 먹어서 죽는 사람보다 많고, 늙어서 죽는 사람이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보다 많고, 자살하는 사람이 군인, 테러범, 범죄자의 손에 죽는 사람보다 많다.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가뭄, 에볼라,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죽기보다 맥도날드에서 폭식해서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
따라서 인류는 이제 눈을 들어 역사의 거시적 척도에서 새로운 지평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기아, 역병, 전쟁을 통제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다음으로 무엇이 인류의 최상위 의제로 떠오를까? 화재 없는 세상의 소방수처럼, 21세기 인류는 전대미문의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건강하고 풍족하고 평화로운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에 관심과 창의력을 쏟을 것인가? 생명공학과 정보기술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막대한 힘을 생각하면 이 질문은 더더욱 시급하다. 그 힘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인간은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 성공은 야망을 낳는다. 인류는 지금까지 이룩한 성취를 딛고 더 과감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굶주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극도의 비참함에서 구한 다음에 할 일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제1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를 정복하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분명 다른 동물들을 지배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들과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거나 인간이 영혼이나 의식 같은 특별한 본질을 갖고 있다는 과장된 생각을 떨쳐버릴 때, 우리는 마침내 현실로 내려가 우리 종을 특별하게 만드는 몸과 마음의 특정한 능력이 무엇인지 검토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연구들은 인류가 특별한 지위를 갖는 데 중요했던 자질로 도구 제작과 지능을 든다. 다른 동물들도 도구를 만들지만, 그 분야에서 인간이 독보적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지능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정의에 따르면, 100만 년 전 인간은 이미 주변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일 뿐 아니라 도구 제작의 세계 챔피언이었지만, 그럼에도 주변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별 볼일 없는 생물이었다. 그들에게는 지능과 도구 제작 말고 어떤 핵심적 특징을 갖추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돌촉을 붙인 창으로 매머드를 사냥하던 인류가 2만 년만에 우주선으로 태양계를 탐사하게 된 것은 더 능란한 손재주나 더 큰 뇌 덕분이 아니었다. 우리가 세계를 정복한 주요 요인은 여럿이 소통하는 능력이었다. 오늘날 인간이 이 행성을 지배한 것은 인간 개인이 침팬지나 늑대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손놀림이 민첩해서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여럿이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기 때문이다. 지능과 도구 제작 능력도 분명 중요했다. 하지만 여럿이서 유연하게 협력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정교한 뇌와 능란한 손으로 우라늄 원소가 아니라 아직도 부싯돌을 쪼개고 있을 것이다.
협력이 열쇠라면, 우리보다 훨씬 먼저 집단적으로 협력한 개미와 벌은 어째서 우리보다 먼저 핵폭탄을 만들지 못했을까? 그들의 협력은 유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벌들은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협력하지만, 하루아침에 사회제도를 새롭게 고치지는 못한다. 벌떼는 새로운 위협이나 새로운 기회를 맞아도 여왕벌을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공화국을 세울 수 없다.
코끼리와 침팬지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포유류는 벌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협력하지만, 소수의 가족 친지들하고만 그렇게 한다. 그들의 협력은 개인적 친분에 기초한다. 당신과 내가 침팬지인데 내가 당신과 협력하고 싶으면 나는 당신을 개인적으로 알아야 한다. 당신이 어떤 부류의 침팬지인가? 착한 침팬지인가? 나쁜 침팬지인가? 내가 당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당신과 협력할 수 있는가? 우리가 알기로는 사피엔스만이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매우 유연한 방식으로 협력한다.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을 정복한 이유는 불멸의 영혼이나 어떤 특별한 종류의 의식이 아니라 바로 이 구체적 능력 덕분이다.
제2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과학은 새로운 에너지원, 새로운 종류의 원재료, 더 나은 기계장치, 새로운 생산방법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그 결과 2016년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에너지와 원재료를 거머쥐었고, 생산량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우리는 나노기술, 유전공학, 인공지능이 다시 한 번 생산혁명을 일으켜, 영원히 팽창하는 초대형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들을 개척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원 희소성 문제를 극복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현시점에 현대 경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생태계 붕괴라는 인과응보이다. 과학의 진보도 경제성장도 부서지기 쉬운 생물권 내에서 일어나므로, 과학과 경제가 전속력으로 달리면 그 충격파로 생태계가 불안정해진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부유한 미국인들과 똑같은 삶의 척도를 제공하려면 행성이 몇 개는 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구뿐이다. 진보와 성장이 결국 생태계를 파괴할 경우, 흡혈박쥐와 여우, 토끼뿐만 아니라 사피엔스도 호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생태계 붕괴는 경제파탄, 정치불안, 삶의 척도 하락을 초래해 결국 인간 문명 존재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
우리는 진보와 성장의 속도를 늦추어 그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성장 신조는 이러한 이단적 사고에 단호히 반대한다. 오히려 더 빨리 뛰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과학의 발전이 생태계 안정을 깨뜨리고 인류를 위협한다면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오존층이 줄어 피부암의 위험이 높아진다면 더 나은 자외선 차단제와 더 나은 암 치료제를 발명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자외선 차단제 공장과 암센터의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이 모든 새로운 산업이 대기와 바다를 오염시켜 지구온난화와 대량 멸종을 초래한다면 가상세계들과 최첨단 피난처를 만들면 된다. 비록 지구가 지옥처럼 뜨겁고 황량하고 오염된 곳이 될지라도, 그런 장소들은 우리에게 인생의 좋은 것을 모두 제공할 것이다.
인류는 이중의 경주에 내몰려 있다. 한편으로는 과학 진보와 경제성장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설령 우리가 쉬지 않고 어떻게든 달려서 경제 붕괴와 생태계의 붕괴를 둘 다 막아낸다 해도, 경주 자체가 엄청난 문제들을 일으킨다. 수백 년 동안 경제성장과 과학 진보를 위해 달려왔으니,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삶이 좀 고요하고 평화로워질 때도 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만일 오늘날 우리가 어떤 도구와 자원을 갖고 있는지 안다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 완벽한 평안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줄 알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매우 다르다. 지금껏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우리는 언제나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우리는 우리 자신, 상사, 담보대출, 정부, 교육제도를 탓한다. 하지만 그들 탓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태어난 날 서명한 근대 계약이 원인이다. 예전에는 사회/정치 제도가 수백 년 동안 지속된 반면, 오늘날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구세계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한다. 이런 혼돈의 세계에서 살기는 쉽지 않고, 심지어 그 세계를 통치하는 것은 더 어렵다.
따라서 현대세계는 개인과 집단이 경주로 인한 긴장과 혼돈에도 불구하고 경주를 그만두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현대세계는 성장을 지고의 가치로 떠받들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모든 희생과 위험을 감수한다. 집단 수준에서는 정부, 기업, 조직이 성장의 관점에서 성공을 평가하고, 평형 상태를 마치 악귀인 양 두려워하도록 부추긴다. 개인들에게는 소득과 삶의 척도를 끊임없이 높여야 한다고 세뇌한다.
수천 년 동안 사회는 개인의 욕망을 억제해 어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욕심은 나쁜 것이었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세계가 거꾸로 뒤집혔다. 근대는 인간집단에게 평형 상태가 혼돈보다 훨씬 더 무섭고, 탐욕은 성장의 원동력이므로 선한 힘이라는 확신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더 많이 원하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탐욕을 억제하던 오래된 규율들을 없애버렸다. 그 결과 생겨난 불안을 상당 부분 달래준 것이 자유시장 자본주의였다. 자본주의 사상가들은 우리를 안심시키는 말을 반복한다. "걱정 마. 모든 것이 잘될 거야. 경제가 성장하는 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보살펴줄 거야." 자본주의는 이런 식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어디로 질주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탐욕과 혼돈의 시스템을 신성화했다.
자본주의 때리기는 요즘 지식인 세계에서 중요한 의제이다.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 단점들이 종말의 파국을 몰고 오기 전에 그 단점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맞다. 그렇다 해도 자본주의를 비판만 하고 그 장점과 성취는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이따금씩 경제위기와 국제전쟁을 겪기는 해도,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성공했을 뿐 아니라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했다.
이처럼 근대 계약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힘을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졌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뭘까? 근대 계약은 우리가 힘을 얻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기를 기대한다. 인간이 이 서늘한 요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 요구를 따랐다면 아마 우리는 윤리, 미학, 동정이 없는 암흑세계에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할 뿐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협력적이다. 인간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신, 천국, 지옥이 사라진 세계에서 도덕과 아름다움은 물론 동정까지도 살아남아 번성할 수 있었을까?
자본주의자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모든 공을 돌린다. 하지만 시장의 손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볼 수도 없어서, 혼자서는 절대 인간사회를 구할 수 없다. 그러면 무엇이 근대사회를 붕괴에서 구했을까? 인류를 구원한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혁명적 종교인 인본주의였다.
인본주의라는 이 새로운 종교는 인류를 숭배하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서 신이 맡던 역할, 불교와 도교에서 자연법이 맡던 역할을 인류에게 요구한다. 과거에는 장대한 우주적 계획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면, 인본주의는 역할을 뒤집어 인간의 경험이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한다. 인본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내적 경험에서 인생의 의미뿐 아니라 우주 전체의 의미를 끌어내야 한다. 무의미한 세계를 위해 의미를 창조해라. 이것이 인본주의가 우리에게 내린 제1계명이다.
제3부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정치인, 사업가, 보통의 소비자들에게 데이터교는 획기적인 기술과 막대한 새로운 힘을 제공한다. 또한 학자와 지식인들에게는 수백 년 동안 손에 넣지 못했던 과학의 성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만약 데이터교가 세계를 정복한다면 우리 인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처음에는 인본주의의 과제들인 건강, 행복, 힘의 추구가 가속화될 것이다. 데이터교는 이런 인본주의의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널리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가 불멸, 행복, 신 같은 창조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뇌용량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결국 알고리즘들이 우리 대신 그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권한이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옮겨가는 즉시 인본주의 과제들은 폐기될 것이다. 우리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버리고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을 채택하는 즉시 인간의 건강과 행복은 보잘것없는 문제처럼 보일 것이다. 훨씬 더 나은 모델들이 존재하는데 왜 한물간 데이터 처리 기계에 신경을 쓰는가? 우리가 만물인터넷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고 강하게 해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만물인터넷이 실제로 운용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엔지니어에서 칩으로, 그런 다음에는 데이터로 전락할 것이고, 결국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 빠진 흙덩이처럼 데이터 급류에 휩쓸려 흩어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데이터교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 했던 일을 호모 사피엔스에게 하겠다고 위협한다. 역사의 경로에서 인간은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창조했고, 모든 것을 그 네트워크 안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따라 평가했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부추겼다. 인간이 이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했으므로, 우리 인간이 네트워크의 업적을 가로채고 우리 자신을 창조의 정점으로 보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네트워크 안에서 훨씬 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으므로 그들의 삶과 경험은 평가절하되었고, 수행하던 기능을 멈추는 동물은 멸종했다. 하지만 인간이 네트워크에서 수행하는 기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창조의 정점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신성시한 그 잣대가 우리를 매머드와 양쯔강돌고래처럼 잊힌 존재로 만들 것이다. 먼 훗날 되돌아본다면, 인류는 그저 우주적 규모의 데이터 흐름 속 잔물결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떠오르는 인공기능과 생명공학은 분명 세계를 탈바꿈시킬 테지만, 단 하나의 결정론적 결과가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모든 시나리오는 예언이라기보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이런 가능성들 가운데 어떤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런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대개 현시점의 이데올로기와 사회 시스템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현시점에 우리가 처한 조건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다르게 행동하고, 미래에 대해 훨씬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목표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시나리오를 예측함으로써 우리의 지평을 좁히는 대신, 지평을 넓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지평을 넓힐 때의 역효과는 전보다 더 혼란스럽고 무력해지는 것이다. 그 많은 각본과 가능성들 가운데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세계는 전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데이터, 개념, 약속, 위협이 밀려들고 있다. 인간이 자유 시장, 집단지성, 외부 알고리즘에 권한을 양도하는 것은 우리가 데이터의 홍수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검열은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21세기의 검열은 사람들에게 관계 없는 정보들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쟁점에 대해 조사하고 논쟁하느라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고대에는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혼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우리는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월 단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마 중동의 동요, 유럽의 난민사태, 중국의 둔화된 경제성장 같은 당면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수십 년 단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지구온난화, 증가하는 불평등, 직업시장의 교란 같은 문제들이 크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명이라는 실로 장대한 관점에서 본다면, 상호 관련된 다음의 세 과정 앞에서 다른 모든 문제와 상황들은 작게 보일 것이다.
1.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과정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당신이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1.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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