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

   
김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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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퀘스트
   
16000
2016�� 03��



■ 책 소개

 

《논어》 속 ‘주연 같은 조연’ 12제자, 각자의 ‘길道’을 찾아가다

 

우리는 다양한 얼굴의 《논어》를 만나왔다. 동양 고전으로서, 유교의 경전으로서, 나아가 처세의 지혜를 알려주는 자기계발서의 원형으로서. 《논어》는 누구의 시선으로 읽어 전달되느냐에 따라 빛깔이 오묘하게 달라지는 존재다. 동양철학을 인간의 생동하는 삶과 연결해 해석하는 데 오랜 시간을 바쳐온 저자 김시천은 《논어》를 공자의 ‘제자들’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 옛날 논어가 최초로 편집되던 시기의 관점을 복구해 보고, 나아가 ‘사람’이라는 존재를 읽는 텍스트로서 재조명하려 한다.

 

‘성인 공자’의 어록이라는 관점으로만 《논어》를 읽는 것은 고전의 수많은 틈새를 똑같은 재료로 메워버리는 것과 같다. 저자는 《논어》 속 문장들의 약 55퍼센트를 차지하는 다채로운 등장인물 중 가장 비중 있게 등장하는 열두 제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 시대 ‘공자학단’을 형성한 ‘개인’들의 철학을 재발견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고전을 현실에 맞게 읽는 적절한 독법 가운데 하나다. 

 

■ 저자 김시천
숭실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동양철학을 인간의 생동하는 삶과 연결하여 해석하고, 지식 비평적인 관점에서 고전학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호서대학교 초빙교수, 인제대학교 연구교수, 경희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다. 2014년 디지털인문학연구소를 설립하여 동서양의 고전을 다루는 철학 전문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를 제작, 진행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숭실대학교, 인천대학교 및 여러 기관에서 인문학에 관해 다양하게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철학에서 이야기로》《이기주의를 위한 변명》《기학의 모험 1ㆍ2》(공저)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저)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무하유지향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등이 있다.

 

‘학자들의 수다’ www.podbbang.com/ch/8151

 

■ 차례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논어》, 사람을 읽다

 

1부 《논어》, “이 사람을 보라!”
1장 ‘철학’에서 ‘삶’으로 | 《논어》, 인간의 발견
《논어》는 공자의 책인가? | 통계로 본 《논어》의 재구성 | 또 다른 주인공, 《논어》 속 사람들 | 상식의 눈으로 《논어》 읽기 | 《논어》로 《논어》를 읽다 | 사제 모델, 《논어》의 이야기 양식 | ‘대화’에서 ‘이야기’로 | 《논어》 속 인간, 개성의 발견

 

2장 ‘제자’에서 ‘주인공’으로 | 스스로의 삶을 찾아간 공자의 제자들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 언행, 개성의 표현 | 시대마다 다른 《논어》가 있다 | 개념에서 이야기로, 《논어》를 읽는 새로운 눈

 

 

2부 자로와 안회 : “운명이여, 안녕!”
3장 자로 | 운명을 바꾼 만남과 의로운 죽음
공자와의 만남, 자로의 운명을 바꾸다 | 변화, 진정한 용기를 배우다 |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가 되다 | 영원으로 통하는 의로운 죽음

 

4장 자로에서 안회로 | 공자와 또 다른 세계
유랑하는 영혼, 탈속을 꿈꾸다 | 스쳐간 인연, 또 다른 삶의 가능성 | 안회는 정말 공자의 수제자일까? | 안회, 벼슬을 거부하다

 

5장 안회 | 침묵하는 지식인의 현실과 고뇌
요절한 안회는 어떻게 성인이 되었는가? | 사문의식, 인간의 주체적 자각을 열다 | 안회가 죽자 공자가 통곡하다 | 공자가 안회에게 극기복례를 말한 까닭 | 안회의 도, 《장자》로 이어지다

 

 

3부 성인과 자공 : “메멘토 모리, 죽은 자를 기억하라”
6장 자공 1 | 흐르는 강물처럼
《논어》 탄생의 기원 | 공자가 대화한 유일한 제자 | ‘절차탁마’를 말하다 | 자공의 인정투쟁과 공자의 처방 | 상인의 아들, ‘문’을 가슴에 품다 | 흐르는 강물처럼

 

7장 자공 2 | 세상으로 통하는 문

공자의 속마음을 읽다 | 문사철을 겸비한 지성 | 더불어 사는 삶의 정치를 배우다 | 장강의 앞물결과 뒷물결 |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8장 자공 3 | 공자학단의 설계자
공자의 유학, 자공의 유가 | 공자, 성인이 되다 | 《논어》, 그 기록의 출발 | ‘문’과 ‘서’의 계승, 유가의 탄생 | 공자마을의 유래

 

 

4부 재아․염구․증삼 : “어디에나 길은 있다”
9장 재아 | 길이 갈라지는 징후, 도의 탄생
재아, 또는 유교의 가롯 유다? | 재아는 누구인가? | 재아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들 | 재아의 새로운 논리학 | 재아가 본 공자 | 갈라진 길에서 새로운 도가 탄생하다

 

10장 염구 | 비틀거리며 도를 따라가다
현실주의자 염구 | 뛰어난 실무자 | 스스로 역부족을 말하는 소심남? | 비틀거리며 도를 따르다

 

11장 증삼 | 전전긍긍하는 유학자의 길
공자 학통의 중심? | 효의 대명사, 증자 | 아내를 내치고 비겁하게 행동했던 증삼 | 반성의 철학자, 그리고 충서

 

 

5부 자하․자장․덕행파 : “나는 나의 길을 간다!”
12장 자하 | 텍스트의 제국, 경학의 탄생
만년의 제자들 | 텍스트의 제국을 열다 | 공자의 가르침 보전, 경학의 탄생 | 너는 네 길로, 나는 내 길로: 논쟁의 시작 | 공문의 ‘학’에서 제국의 ‘학’으로

 

13장 자장 | 논쟁의 시작, 유학과 유술
학과 술, 유가의 두 날개 | 유술의 탄생 | 역사에서 처세를 배우다 |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스스로를 보전하는 지혜 | 리틀 자로, 자장

 

14장 민자건·중궁·원헌 | 《논어》에서 《장자》까지, 새로운 삶으로 가는 길
‘노장’에서 ‘논장’으로 | 벼슬을 거부한 민자건 | 군주가 될 만한 천민, 중궁 | 장자로 넘어가는 가교, 원헌

 

에필로그 십인십색 《논어》 이야기
참고도서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


《논어》, "이 사람을 보라!"

 철학에서 삶으로 -《논어》, 인간의 발견

《논어》는 공자의 책인가?

우리는 《논어》하면 공자의 사상을 담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논어》를 우리말로 옮긴 책을 펼쳐보면 어느 책이든 "자왈子曰, 학이시습지면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아不亦說乎아?"라는 한문 문장이 나오고, "선생님이 말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번역이 이어집니다. 이러니 《논어》를 공자의 말을 기록한 책으로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에요. 이는 서양어 번역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에서는 《논어》를 주로 Analects라고 번역합니다. 이 번역이 전 세계적으로 공자의 《논어》를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되는데, 공자의 어록이란 뜻의 The Analects of Confuciu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콘푸치우스는 송나라 때부터 유학자들이 공자를 가리킬 때 사용했던 공부자라는 단어를 명나라 때 중국에서 활동하던 신부들이 그대로 라틴어화한 거예요. 공자를 공선생님이라고 번역한다면, 공부자는 우리 공 선생님이라는 뜻이에요. 공부자에 라틴어식 명사화 접미사를 붙여 Confucius가 된 것입니다.


또 《논어》의 영어 번역 표제어인 Analects는 하나의 문학작품에서 발췌한 글들의 모음이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공자가 남긴 많은 말 가운데 주옥같은 말들을 골라서 모았다는 뜻이죠. 이는 공자의 말이 《논어》 이외의 다른 문헌에도 수없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서 선택한 번역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논어》속에 있는 내용들이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때때로 The Dialogues of Confucius and His Disciples(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대화록)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화라고 하면, 다시 이런 물음이 제기할 수 있습니다. 《논어》에서 실제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대화를 하고 있는가? 《논어》에서 실제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대화를 하고 있는가? 유심히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결코 대화를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자왈(子曰), 즉 선생님이 말씀하셨다라고 시작하는 게 이 책 전체 분량의 약 45퍼센트입니다. 그리고 55퍼센트가 유자왈 증자왈처럼 화자가 바뀐 자왈(子曰)형식으로 되어 있거나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어록은 아니지요. 그래서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어록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화체 문장들이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대화는 뭘까요? 서구 민주주의의 원류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발생했다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했는지 플라톤의 《대화》에서 쉽게 알 수 있어요.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읽어보면,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대화란 뜻의 영어단어 dialogue에서 logue는 이성 또는 말이란 뜻의 logos에 해당합니다. 이 logos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logic(논리학)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대화는 논리적/이성적인 언어 사용 방식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인과 노예 사이에서가 아니라 동등한 시민들끼리 말이죠.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회에서 시민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아고라 광장에 모여 우주의 기원, 인간의 사랑과 우정, 폴리스의 정치 등에 관해 다양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권이 있는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의견에 대해 비판하고 반박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요. 우리는 이런 것을 대화라고 해요. 그렇다면 《논어》에서 주고받는 말도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엄밀한 의미에서 대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대화와 《논어》의 이야기 형식은 차이가 있어요. 《논어》의 이야기 형식 중에는 "선생님이 말했다" 또는 "증(曾) 선생님이 말했다"와 같이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주는 것도 있고, 누군가 묻고 공자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된 것, 두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된 것도 있어요. 이렇게 보면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공자 하면 《논어》, 《논어》하면 공자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논어》는 공자 혼자만의 어록도 아니고, 비록 대화체 문장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있다 해도 대화록이라고는 할 수 없는 독특한 책이에요.


공자 시대에 책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일이었을까요? 극소수만이 문자를 알고 있던 시대에 기록을 남기고 책을 엮는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가능한 일이죠. 왕실이나 공실과 같은 최고의 지배층이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거대한 작업이었습니다. 책을 만들고 그 책에 내용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는 얘기예요.


이런 상황에서 볼 때 《논어》의 기록은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어요. 말단 귀족인 사(士) 출신의 공자, 그리고 그의 제자들까지 선생이라는 존칭과 함께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니 말예요. 특히 공자의 제자 가운데 일부는 천민 출신이었어요. 천민이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그것도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놀라운 일이죠.


따라서 《논어》는 몇십만 권의 책이 즐비하게 쌓인 도서관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우리 처지에서 봐서는 안 돼요. 당시 기록물 가운데 대표적인 문헌이 《서경(書經)》과 《춘추(春秋)》인데, 《서경》이 역대 제왕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라면 《춘추》는 노나라 공실의 기록이에요. 이런 책들만 있던 그 시대에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스스로를 기록해 남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한번쯤 새겨보고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논어》가 공자의 사상이 담은 책이라거나,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이라는 등의 생각은 《논어》라는 책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합니다. 《논어》는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이정표이고, 《논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채로움은 귀족사회에서 일어난 하나의 혁명과 같아요. 따라서 우리는 《논어》에 등장하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몇 글자 되지 않는 짧은 기록이라 해도 그 글줄에는 2천 5백 년 전에 살다 간 개인들의 삶과 인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논어》로 《논어》를 읽다

《논어》를 새롭게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방식이라는 것이 내가 개인적으로 창안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철저하게 《논어》 안에서 근거와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우리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문사과라고 알려진 인물 구분 방식입니다.


덕행, 언어, 정사, 문학이라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것들을 공자가 공자학단에서 학문을 가르칠 때 분류해 놓았던 중요한 학과의 이름이라고 해석하죠. 네 가지 범주에 따라 각각 뛰어났던 학생들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덕행에 뛰어난 사람은 안회와 민자건/염백우/중궁, 언어에는 재아/자공, 정사에는 염구/자로, 문학에는 자유/자하, 총 열 명이 거명됩니다. 이들은 공자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이 중 상당수가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던 기간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도 함께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논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논어》의 편집 시기는 공자 사후 그러니까 기원전 479년 이후 그리고 기원전 90년경 사마천의 《사기》편찬 사이의 약 400년 가운데 어느 무렵으로 넓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러 가지 통계에서 보았듯이, 이 책의 편집자들은 왜 이런 인물들을 주인공처럼 등장시켰을까요? 이것은 역사적으로 설명이 쉽지 않은 《논어》의 특징입니다. 어쨌든 이 열 명에 유약/증삼/자장을 더해 총 13명을 십삼현인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십삼현인이란 표현을 썼을 겁니다.


공자가 30대 초에 이르기까지인 1기에는 사실 공자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역사적 사실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전까지 행적이 묘연했던 것처럼요. 2기는 35~36세로 시작되는데, 이유는 이렇습니다. 공자의 나이 30대에 노나라 제후가 정치적 파란 때문에 제나라로 망명을 갑니다. 이때 공자도 제나라로 갑니다. 제나라에서 공자는 그 나라 임금에게 벼슬을 받을 뻔했는데, 제나라 재상이었던 안영이 임금을 말립니다. 그래서 공자는 벼슬을 얻지 못하고 다시 노나라로 돌아오죠. 이미 이때에도 공자에게 제자가 있던 걸로 알려졌지만, 제나라를 다녀온 뒤인 35~36세 이후에야 제자가 본격적으로 생깁니다. 공자는 노나라에서 51세에야 벼슬을 얻었는데 2년가량밖에 있지 못하고 54세가 되던 해 노나라를 떠나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하는데요, 그 사이에 제자들이 꽤 많이 들어옵니다.


《논어》에는 안회의 죽음을 가슴 아파하는 공자의 언급이 여러 번 나옵니다. 공자의 수제자라고 알려진 그는 아무리 빨라도 공자의 나이 40 무렵이나 그 이후에 공자 문하에 들어갔으니, 10대에 공자의 제자가 된 겁니다. 공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데 나가서 행동하는 걸 보면 내가 가르친 그대로 하더라"라며 안회를 칭찬해요. 이런 문장을 읽을 때 우리는 다 큰 성인인 안회가, 공자가 주장했던 인간다운 인이라는 가치를 흐트러짐 없이 행했던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10대의 어린 제자에게 서른 살 위의 어른은 자기 아버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관계이니 공자가 무엇을 알려주면 "네"하고 좇아가기 바빴겠죠. 나이를 고려하면 공자의 칭찬은 애정을 드러낸 것에 가깝습니다.


반면, 자공은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서 서북쪽에 있는 위나라에 도착한 이후에 그의 제자로 들어옵니다. 공자와는 서른한 살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상인 가문 출신의 자공은 안회와 다르게 머리가 굵은 후에 공자 문하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공자가 54세에 위나라로 갔으니까 여기서 31살을 빼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스무 살이 넘어 제자가 된 거에요. 자공은 자기 생각이 있으니, 공자에게 구체적으로 척척 질문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안회는 10대에 공자학단에 들어왔으니 그 나이 아이들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하며 《논어》를 읽어야 해요. 공자는 안회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기특해서 멋들어지게 칭찬한 겁니다. 이렇게 보면, 《논어》가 성인들 사이에 있던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인과 자공 : "메멘토 모리, 죽은 자를 기억하라"

자공 2 - 세상으로 통하는 문

공자의 속마음을 읽다

우리는 앞 장에서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제목으로 자공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는 자공에 대한 역사적 정보는 거의 제공하지 않은 채, 《논어》에 나오는 구절들을 가지고 그를 소개했죠. 이번 장에서는 자공의 다양한 배경을 알아보고 나서 본격적인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자공은 《논어》에서 자로 다음으로 많이, 38회나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공자의 수제자라 불리는 안회보다도 더 많이 등장합니다.


자공의 본래 성은 단목이고 이름은 사입니다. 그래서 그는 《논어》에서 단목사라고 등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공은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처음 머물렀던 나라인 위나라 사람으로서, 공자가 위나라에 들어온 이후 제자가 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때 공자가 50세 중반이었으니 그보다 31세 연하였던 자공은 20대 초/중반의 나이였습니다. 이 점은 자공이 이미 머리가 굵어진 성년이 된 이후에 공자의 제자로 입문했음을 의미합니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공자의 제자가 되었던 안회와 말이나 행동거지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자와 출신 지역도 달랐고 그의 초기 제자도 아니었건만 자공은 공문십철, 즉 공자 문하에서 가장 뛰어난 열 사람의 현인/제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는 739년 당나라 때 여후, 1009년 송나라 때 여양공, 즉 여공으로 추봉되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본래 노나라의 상인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공자 문하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현실감각이 탁월할 수 있는 성장 배경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는 탁월했습니다.


그런데 앞 장에서 자공을 소개하면서, 바로 그가 공자를 세상과 통하게 하는 문의 역할을 했다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논어》에 그의 상인 출신다운 이야기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자공이 말했다.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는데 [선생님이라면] 그 옥을 잘 싸서 상자 속에 깊이 보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값을 잘 쳐주는 사람에게 파시겠습니까?" 선생님이 말했다. "팔아야지! 당연히 팔아야 하고말고! 나는 값을 후하게 쳐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자한> 9.13


자공의 질문에 공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앞서 우리는 자로의 이야기에서, 공자가 반란을 일으킨 필힐이 자신을 초빙하자 가고 싶어했지만 자로가 말려서 가지 못한 일화를 보았습니다. 그때 공자는 "내가 무슨 조롱박이냐? 어찌 매달아놓기만 하고 먹지 않는 것일 수 있겠느냐?", 즉 내가 세상에 쓰이지 못하는 것이겠느냐며 아쉬움을 토로했죠. 이 포과는 그 후 공자의 상징이자 사대부가 조정에 출사하느냐 마느냐 하는 진퇴의 딜레마를 상징하는 말로 정착되었습니다.


이 인용문에서 보면 자공은 참 날카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범하게 직설적으로 꽂지 않고, 은근하게 비유를 들어 공자가 자신의 속내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듭니다. 달리 말하면 자공은 공자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겁니다. 나는 안회가 공자를 그저 잘 따랐던 사람이라면, 자공은 공자를 속속들이 알고 그와 나란히 걸어가면서 그를 따르고자 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후하게 평가하고 싶어요.


바로 이 장면에서 자공은 공자의 진짜 속마음을 파악했을 거예요. 상인 출신인 자공이 비록 장사꾼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비유를 들었으나, 공자는 자공이 멍석을 깔아주니 아주 흔쾌히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아대가자야(我待賈者也)"라는 말은 내 도를 세상에 펼치도록 써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공자에게 피 맺힌 절규와 같은 말이었을 거예요. 아직 직업을 갖지 못한 수많은 요즘 젊은이들의 심정도 이와 똑같을 테고요.



자하/자장/덕행파 :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자하 - 텍스트의 제국, 경학의 탄생

만년의 제자들

우리는 지금까지 증삼을 제외하면 자로와 안회, 자공과 염구 등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던 시기에 그와 함께했던 인물들을 주로 살폈습니다. 사실상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논어》의 뼈대를 이룹니다. 하지만 이와 다른 부류의 제자들도 있는데요, 이들은 후대에 유학을 알리고 전파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후대 유학자들이 열심히 읽고 공부했던 문헌들을 생산한 장본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들이지만, 사실 《논어》를 읽는 많은 사람들은 이들에게 관심을 별로 갖지 않습니다.


앞에서 나는 자로와 염구 같은 사람들은 구전 전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문헌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자공은 예외적으로 시를 논하고 공자의 말을 기록하는 것과 관련해서 언급했죠. 그런 의미에서 자공이 《논어》에서가장 중요한 주인공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런 문자 전통에 능숙했던 3기 제자들 가운데 자하를 다룹니다. 자하와 다음 장에서 살펴볼 자장은 《논어》에 똑같이 20회 출현합니다. 또 우연인지 편집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이 두 사람 모두 《자장》편에 주로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인연이죠?


두 사람은 모두 노나라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논어》에는 이들이 서로 경쟁했다는 점이 유독 눈에 띕니다. 이 얘기는 곧 공자가 살아 있을 당시에도 이런 분열의 조짐이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출신 지역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출신 지역도 아니고 출신국이 달랐으니 문화적 전통의 차이에 따른 갈등의 골이 꽤 깊었겠죠.


주목할 점은 앞 장에서 살폈던 증삼은 노나라 출신이고, 평생을 고국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자하와 자장 같은 공자의 3기 제자이면서, 그들과 나이가 비슷한 또래이기도 했죠. 자하는 위나라 출신으로,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가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습니다. 자장은 진나라 출신으로 《한비자》「현학」편에서 공자의 사후 유가 학파가 여덟 개의 분파로 나뉘었다고 하면서 자장의 분파를 제일 앞에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또한 고국으로 돌아가서 세력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보통은 이런 《논어》이외의 자료에 근거해서 공자의 제자들이 활약한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내용들만으로 유학의 뼈대를 재구성하는 것은, 제대로 된 역사적 근거 없이 책에 의존해 당시의 현실을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복상은 자가 자하이고, 위나라 온현 사람으로 공자보다 마흔네 살이 적었습니다. 굉장히 어리죠. 자하는 공자가 천하를 주유한 기간에 함께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문헌에 밝은 것으로 유명했으며, 일찍이 거보읍의 읍재(읍을 다스리는 벼슬) 일을 맡아본 적이 있습니다. 노년에는 서하에서 강론했는데, 위 문후 등 삼진 지역의 법술학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는 위 문후, 전자방, 단간목, 이극, 증신, 오기, 금골리, 곡량적, 고행자 등 자하의 문인들로 기록된 인물들의 면면을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춘추시대 진나라는 전국시대로 들어가면서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로 쪼개집니다. 삼진은 이 세 나라를 가리키는 용어에요. 이 지역의 학술문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한비자》입니다. 법가라는, 매우 실용적인 사상을 대변하는 책이죠. 그렇다고 이 지역에 유학이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자하가 거기서 활동하면서 출중한 제자들을 꽤 많이 길러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텍스트가 우리에게 많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거죠.


예컨대 어떤 이들은 초기 《논어》의 기록을 편집한 것은 진나라 박사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는 진시황제의 진나라를 말해요. 동쪽에 있던 노나라와 제나라에서 보면 서쪽 끝의 나라죠. 동쪽의 노와 제, 서쪽의 진 사이에 위치했던 나라가 삼진이에요. 바로 중원이라 부르는 곳이죠. 동쪽과 서쪽에 있는 거대한 강국의 틈에 끼어 있었으니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죠. 이런 곳에서 법가와 같은 현실 지향적인 학문이 발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거예요.


자하는 삼진을 대표하는 법가에 큰 영향을 준 것 외에도, 《시경》과《춘추》를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하를 다룬 이번 이야기의 제목을 텍스트의 제국이라 정해 봤습니다. 자하와 같은 인물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읽는 《논어》를 포함한 유가 문헌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으니까요. 유가는 경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성인은 경전을 통해 살아남습니다. 우리가 경전인 《논어》를 통해 공자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부제는 경학의 탄생입니다.


너는 네 길로, 나는 내 길로 : 논쟁의 시작

논쟁이 시작될 수 있는 여지는 이미 공자 생존 당시부터 있었습니다. 앞에서 인용했던 구절입니다.


자공이 물었다. "전손사와 복상 중에 누가 더 뛰어납니까?" 선생님이 말했다. "전손사는 지나치고, 복상은 모자란다." [자공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전손사가 더 나은 것입니까?" 선생님이 말했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

<선진> 11.16


공자가 살아 있을 때도, 자공의 눈에는 자하와 자장의 생각 차이와 균열이 보였다는 겁니다. 특히 이런 논쟁은 자하와 자유, 자장, 증삼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나이가 비슷했어요. 공자가 죽었을 때 가장 나이가 많았던 자하가 29세, 자장은 25세, 증삼이 27세였습니다. 혈기왕성할 때이니만큼 서로 자신이 배운 가르침이 정통이라며 싸울 수 있었겠죠. 이들은 출신국이 달랐다는 점도 특기할 만합니다. 그런데 공자학단 특성상 이들 또한 각자의 문인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경쟁을 단순히 개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자의 말을 둘러싸고 서로 해석이 다른 공동체들이 있었다는 차원에서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유가 말했다. "자하의 문인 제자들은 집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하고, 나아가고 물러서는 예절에는 밝은데, 이런 것들은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근본적인 것은 없으니 어찌하려는 것인가?" 자하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허허! 자유의 말이 지나치구나. 군자의 도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가르치고, 어느 것을 뒤로 미뤄 게을리할 것이 있는가? 저 풀이나 나무에 비하자면 종류에 따라 구별되는 것과 같다. 군자의 도가 어찌 속일 수 있는 것일까?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는 것은 오직 성인뿐일 것이다!"

<자장> 19.12


오나라 출신의 자유는 자하와 더불어 공자가 문학에 가장 뛰어난 제자로 거명한 사람입니다. 자하는 도의 시작과 끝을 자기가 잡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유의 눈에는 자하의 제자들이 쩨쩨하게 너무 조목조목 따지며 자질구레한 것들에만 몰두하는 모습으로 비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하 자신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죠. 또 자하의 문인이 자장과 논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있습니다. 이를 보면 《논어》에 자주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들은 한 개인이 아니라 한 분파를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죠. 그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교우에 대해 물었다. 자장이 말했다. "자하는 어떻게 말하던가?" [문인이] 대답하여 말했다. "자하는 괜찮은 사람은 사귀고, 괜찮지 않은 사람은 물리쳐라라고 말했습니다." 자장이 말했다. "내가 [선생님께] 들은 것과 다르다. 군자는 현자를 존중하고 대중을 포용하며, 선한 사람은 칭찬하고, 능력 없는 사람은 불쌍히 여긴다. 내가 큰 현자라면 다른 사람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현자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나를 거부할 것이니 내가 어떻게 사람들을 물리칠 것인가?"

<자장> 19.3


이러한 논쟁은 제자들이 자신의 학파를 세우고 추종자들을 양산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들이 갈라지는 과정에서 각자의 삶도 달라졌겠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분화가 공자의 학문이 다양한 지역에서 현실과 만나게 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공자와는 다른 다양한 생각을 가진 지식인들인 제자백가가 이 같은 경로를 거쳐 세력이 왕성해진 것이 아닐까요? 그들은 텍스트를 가졌고, 추종자들이 있고, 또 텍스트를 둘러싸고 해석을 달리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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