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여는 20가지 열쇠

   
제임스 플린(역자: 정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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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북스
   
15000
2012�� 11��



■ 책 소개
비판적인 사고력을 키워현실을 똑똑하고 현명하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의 온갖 잡다한 정보에 휘둘리며 바보처럼 살 것인가? 이 책에서는 철학, 사회과학,경제학, 과학의 본질, 국제정치 등 5개 분야에 걸쳐 논의되고 있는 개념들을 빌려 사형문제, 동성애문제, 낙태문제 등을 두루 다룬다.

■ 저자 제임스 플린(James R.Flynn)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의 명예교수로 IQ 분야의 대가이다. ‘플린효과’, 즉 사람들의 IQ가 세월이 흐를수록꾸준히 높아지는 현상을 발견한 인물로 유명하다. 정치철학과 도덕철학, 심리학을 버무려 인종문제 등에 접근하는 독특한 연구방식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교수로 활동하다 1963년에 뉴질랜드로 옮겼다. 저서로는 『What is Intelligence?』『Where HaveAll the Liberals Gone?』등 다수가 있다. 

■ 역자 정명진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문화부,L.A.중앙일보 등을 거치며 20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 및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달콤한 경제학』『상식의 역사』『성공의 새로운심리학』『성격의 재발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들어가는 글&&
지식의 덫

1부 옳고 그름에 관한 논쟁
1장 논리와 도덕논쟁 -인종에 대한 공격
2장 토톨로지를 없애라
3장 자연주의적 오류와 그 영향 - 판단하라
4장 “하지만 그건 부자연스러워!” -결코 좋은 의도로 쓰이지 않는 말

2부사람에 관한 진실
5장 무작위 표본 - 크기가 아니라 질(質)이다
6장 IQ(지능지수) - 지적장애인을 교수형에 처할수 있다
7장 흑인과 백인의 IQ 차이
8장 대조집단 - 사람들을 검사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그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있을까?
9장 사회학자의 오류 - 현실을 무시하다

3부 시장과 그 교회
10장 시장의 창조 - 프랑켄슈타인은 아니다
11장 시장의 힘들 -그 힘들은 어떻게 복수하는가?
12장 시장숭배 - 제물이 될 수는 없지 않는가?
13장 2008년 경제붕괴
14장 그러면 어떻게할 것인가?

4부 과학의적들
15장 현실 - 과학자들은 과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16장 역사, 과학, 그리고 진화 - 한 가지 종류밖에없다

5부 국가와 그목표
17장 국가를 이해하라 - 그러면 사람도 이해된다
18장 4가지의 예들 - 비상식을 상식으로 풀다
19장종합적인 비판능력은 어디로 갔나?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여는 20가지 열쇠


옳고 그름에 관한 논쟁

논리와 도덕논쟁 - 인종에 대한 공격

윤리는 사람들이 처신하는 방식과 대접 받는 방식에 관한 판단으로 이뤄져 있다. 어떤 사람의 판단이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묻는다는 것은 그 판단을 시험대에 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철학자들은 이것을 보편화 가능성의 원리라고 부른다. 일부 철학자들은 이 원리를 논리적 일관성 그 이상의 뜻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이것이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그 논란을 피할 생각이다.


흑인과 검정색

전통적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모든 흑인(또는 유태인 아니면 "심지어" 백인까지도)을 열등한 존재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흑인들에겐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와 투표권, 이동의 자유 그리고 누구든 배우자로 맞을 수 있는 결혼의 자유가 거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전통적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가장 먼저 제기해야 할 물음은 이것이다. 흑인들에게 그러한 자유를 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전통적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삼단논법을 제시하게 된다. 그럴 경우 전통적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피부의 검정색을 내세우든가 아니면 흑인들이 결여하고 있을 것 같은 인간의 바람직한 어떤 특성을 내세우든가 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옵션을 선택한다고 가정해 보자.


* 대전제: 피부가 검은 사람들에겐 투표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

* 소전제: 미국인들 중 3,700만이 검은 피부를 갖고 있다

* 결론: 그러므로 그런 미국인들에겐 투표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 옵션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만일 그들 자신의 피부가 검게 변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하고 물을 수 있다. 그 사람들의 음식에 몰래 집어 넣은 약이나 물속의 오염물질로 인해 그들의 피부가 검게 변할 수도 있을 터이니까. 물론 이 물음은 그들에게 논리적 일관성을 요구한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대답해야만 한다. 이런 경우 우리는 긍정적인 대답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에 따른 벌(罰)은 미묘하지만 강력하다. 지금 나의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나 또한 부당하게 취급당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려는 영웅적 의지처럼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그런 식의 대답은 그 사람의 도덕적 원천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 말은 곧 나는 어떤 모순을 지키기 위해 말하자면 피부색이 인간 존재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다른 개인적 특성들을 모두 무효화한다는 그릇된 생각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나치 웅변가가 독일인 청중을 향해 독일인과 아프리카인이 이제 막 피부색을 서로 바꿨다는 이유만으로 독일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고 상상해 보라.


여기서 다시 어떤 서평가를 상상해 보자. 이 서평가는 자신의 서평을 읽는 독자들에게 표지 색깔이 검정색인 책을 피하고 대신에 표지 색깔이 흰색인 책을 구입하라고 일러준다. 그 다음날, 이 사람은 독자들에게 새로 찍은 책이 표지의 색을 바꿨다는 이유로 전날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러면 인종차별주의자들까지도 이 서평가의 글을 더 이상 읽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 대신에 작품의 플롯과 인물, 대화, 스타일 등을 논하는 서평가의 글을 택할 것이다. 만일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훌륭한 독서 외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작품 속 등장인물의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들이 누가 품위 있는 삶의 권리를 갖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진정한 특성을 무시해야 한다고 과연 진지하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현실 속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두 번째 옵션을 피하고 피부색과 경멸해도 좋을 개인적 특성의 상관관계를 내세우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 대전제: 정신과 성격이 영원히 미숙한 사람들은 투표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 소전제: 모든 흑인들은 영원히 미숙하다.

* 결론: 그러므로 모든 흑인들은 투표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논리 때문에 현실세계로 들어가서 사실에 입각한 가설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증거에 의한 반증이 따르게 되어 있다. 우리는 수천 개의 반증을 제시할 수 있다. 고든 팍스(위대한 사진작가이자 작곡가, 저자, 시인)에서부터 폴 롭슨(위대한 셰익스피어 배우이며 여러 언어에 능한 웅변가), 토머스 소웰(위대한 인종 역사학자), 프랭클린 줄리우스 윌슨(위대한 사회학자)에 이르기까지 천재성 또는 재능을 가진 흑인들을 수없이 많이 꼽을 수 있다. 결정적인 인물은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이다. 남북전쟁 전에 미국 남부를 여행하던 중 그는 흑인에게 교육을 금지한 법들이 흑인의 경우 동물이나 광인 이상으로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는 근거로 옹호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때 그는 사람들이 동물과 광인에게 글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정한 법이 없는 이유는 뭐냐고 반문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세 번째 옵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그래도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원칙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이라도 만일 1934년 4월 28일에 태어났다면 그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런데 어쩌다 그 날이 나의 생일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철학자들은 간혹 논리적 일관성에 대한 요구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이런 둔사(遁辭)를 만들어낸다.


철학자들은 누군가가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리면 그 판단을 관련 조건이 비슷한 모든 상황에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도덕적으로 서로 관련 있는 조건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는가? 앞의 인종차별주의자는 자신의 생일이 도덕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논리적으로 불일치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도덕적 원칙을 교묘하게 바꿔놓을 터무니없는 수작을 수없이 많이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수작을 여기서 어떻게 다 나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수작은 도덕적으로 적절하지 못하다. 일관된 원칙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사람은 학계의 철학자들이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논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도덕적 판단에 일관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면서도 자신이 도대체 어떤 행위에 가담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게 될 것이다.



사람에 관한 진실

무작위 표본 - 크기가 아니라 질(質)이다

사회과학에 대해 조금만 알면, 당신은 여론조사에서부터 IQ의 의미, 인종과 IQ를 둘러싼 논쟁까지 아주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의학과 특수교육,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 피임, 그리고 미래에 벌어질 놀라운 일들에 관한 정보를 준다고 강조하는 연구 보고서에 대한 평가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여론조사가 발표될 때마다 듣게 되는 한 가지 의문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할까 한다. "투표에 참여할 미국인 1억 3,000만 명의 의향을 알고자 하는데, 겨우 몇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크기가 아니라 질이다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만일 당신이 진짜 무작위 표본을 얻을 수 있다면 거대한 숫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편향된 표본을 얻는다면, 거대한 숫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작위 표본은 투표할 인구의 모든 구성원들이 표본에 포함될 확률이 똑같은 그런 표본이다. 그야말로 우연히, 무작위로 선택하면 그런 표본이 만들어진다. 그 외에 다른 방법으로 추출된 표본은 어떠한 것이든 편향을 보이게 되어 있다.


정말로, 무작위 표본의 가장 큰 미덕은 그것이 편향되지 않은 표본이라는 점이다. 1936년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랜던을 상대로 재선에 도전했다. 이때 리터러리 다이제스트가 대규모 전화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루즈벨트가 패배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런데 루즈벨트가 압승을 거두었으며, 그 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사업을 접고 말았다. 대공황이었던 그 시절에 노동자 계층에 속한 미국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전화를 갖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표본 자체가 부자들이 포함되도록 편향되어 있었다. 그때 잘 사는 사람들은 보수주의자였고, 그 중 많은 이들이 루즈벨트를 싫어했다. 이제 당신은 큰 숫자가 편향된 표본을 구원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만일 표본이 가난한 미국인 5,000만 명의 대부분을 배제한다면, 나머지 2억 5000만 명 전부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하더라도 그 편향을 절대로 제거하지 못한다.


통계학적 의미

편향에서 자유로운 것 외에도, 무작위 표본이 발휘하는 또 하나의 경이는 합리적인 정확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표본의 숫자를 계산하는 일에 수학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가 아마 당신을  놀라게 만들 것이다. 표본의 숫자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키울 수 있다. 아마 3000억 명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키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무작위 표본만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은 매우 큰 숫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공이 담긴 단지가 하나 있다고 가정해보자. 각각의 공은 유권자 한 사람을 대표한다. 또한 민주당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가 정확히 50대 50으로 나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기 때문에 그 공의 반에는 민주당지지자를 뜻하는 D가 적혀 있고, 나머지 반에는 공화당지지자를 뜻하는 R이 적혀 있다. 무작위 표본을 만들기 위해선, 그 단지 안의 모든 공이 당신이 그 중 하나를 끄집어낼 때마다 선택될 확률을 똑같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단지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공을 끄집어냈다면, 매번 그것을 다시 집어넣고 잘 흔들도록 하라. 그리고 그런 식으로 400번을 끄집어내보라. 그러면 당신은 400개로 된 무작위 표본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20번 중 적어도 19번은 정확하기를 원한다. 실제로 보통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과학자들 사이에는 그렇게 통한다. 만일 누군가가 어떤 연구 결과를 놓고 "통계학적으로 의미 있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 진실일 확률이 20번 중 적어도 19번은 된다는 뜻이다. 당신이 그 정도로 맞힐 가능성을 범위를 신뢰도 한계라고 부른다.


표본의 크기가 클수록, 신뢰도 한계는 더 적어진다. 당신이 맞을 확률을 20번 중 19번으로 고집한다면, 400명인 무작위 표본의 경우 신뢰도 한계는 ±%가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당신의 표본 중 민주당지지자가 53%라면, 실제 민주당지지자가 48%에서 58% 사이일 확률이 높다. 이것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막상막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표본의 크기가 1,000명이라면 신뢰도 한계는 ±3%로, 표본의 크기가 1,000명이라면 그보다 더 낮은 ±1%로 떨어진다.


실제 선거를 예측할 때, 여론조사원은 일정한 시점에 이르면, 예를 들어 선거일 3개월 전에 이르면 유권자들이 누구를 지지하는가 하는 그 이상의 것을 알기를 원한다. 그들은 선거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누가 지지를 얻고 누가 지지를 잃고 있는지 그 추세를 추적하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매주 표본을 400명씩으로 하다가 마지막에는 아마 1,000명 정도로 키울 것이다. 그들은 오직 무작위 표본에만 근접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인 3억 명의 리스트를 다 확보한 뒤에 그 중에서 1,000명을 골라서 그들을 추적하다 보면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층화표본이라는 표본을 구한다. 그들은 과거 선거들의 양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들을 폭넓게 선택한다. 그렇게 표본을 구한 다음에, 그 표본들이 남녀 성비와 계층 등을 대표하는지를 확인한다. 그럴 경우 표본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고려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에조차도 전화 여론조사인 경우 극빈자들이 배제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이 엉터리 여론조사를 선호하는 이유

여론조사가 드물게 선거의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이 예들이 여론조사는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주장의 증거로 제시된다. 대체로 보면 여론조사가 엉터리로 드러나는 이유는 선거가 지나치게 접전을 벌이거나 많은 사람들이 선거 운동 마지막 며칠 사이에 마음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부 유권자들은 선거 당일 투표소에 가서야 최종적으로 마음을 정하기도 한다.


여론조사원들이 대체로 정확하다는 사실을 곧 그들의 표본추출작업이 훌륭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메시지는 이것이다. 무작위 표본에 가까운 표본이 편향된 표본보다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향된 표본의 크기가 제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정확도에서 무작위 표본을 이기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적절히 이뤄진 여론 조사를 놓고 표본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작다고 조롱하면서 명백한 편향을 가진 더 큰 표본을 권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엉터리 여론조사가 제시하는 결과를 좋아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엉터리 여론조사는 보통 자기선택이 개입되는 여론조사다. 사람들로 하여금 전화나 메일로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밝히도록 하는 조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시위원회는 새로운 스타디움의 건설에 수백만 달러를 지출하겠다고 제안하며 시민의 과반이 지지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시위원회에서 모든 가정에 투표 용지를 보냈다. 스포츠팬들의 경우 투표용지를 보낼 확률이 높다. 반면 노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는 많은 이들이 투표용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 여론조사는 시위원회가 원하던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자 어느 학자가 무작위 표본과 인터뷰에 근거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스타디움은 오직 소수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 학자의 여론조사는 무시되었다. TV 프로그램들이 여론조사의 정확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드물다. 그저 시청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사를 밝히라고 권한다. 이는 두 가지 종류의 자기선택 편향을 불러일으킨다. 그 시간에 그 프로그램을 본 사람만이 일단 그 여론조사에 응할 기회를 갖고, 또 그들 중에서 전화를 걸어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밝히는 사람만이 조사에 응하는 결과가 된다. 그런데도 그런 결과가 방송국을 흥분시키기도 한다.


엉터리인 줄 모르고 엉터리 조사 결과를 받아들인다

신뢰할 만한 여론조사의 기준은 일상의 삶과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몇 차례의 만남으로도 상대방의 성격을 판단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심지어 첫눈에 반하기도 한다. 만일 어느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 전체를 당신의 인구로 본다면, 어떤 사람이 10번의 행사에서 한 행동을 바탕으로 만든 작은 표본은 정확하지 않다. 만일 구애의 행동이라면, 그것은 더더욱 편향된 표본이다. 정치인들마저도 당신으로 하여금 TV에서 보인 단 몇 가지의 행동 표본을 바탕으로 자신을 판단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토니 블레어에서부터 다이애나와 마더 테레사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스테레오타이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TV에 비친 행동이나 친구와 배우자, 보스, 학생으로서의 행동, 이런 것들도 편향이 없는 표본이 아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을 하려고 노력할 때, 스스로 자신이 확보한 표본의 질부터 먼저 따져보도록 하라.



과학의 적들

현실 - 과학자들은 과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현실은 하나의 텍스트이다

이 세상에 과학이 탐구하는 어떤 현실세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슬로건으로 이 표현이 인기를 누려왔다. 이 표현이 암시하는 바는 우리가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인간 존재들이 자신의 말이나 사상으로 짠 그물망을 세상을 향해 던질 때, 다수의 인간 존재들이 다수의 현실을 창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 존재들이 살고 있는 하나의 현실세계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일까? 나는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이 거주하는 하나의 물리적 우주가 있다고 믿는다. 또 그 우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오래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약 130억 년 전)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현실은 주관적이라는 관념은 일련의 오해들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오해들은 서로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오해는 적어도 5개는 된다. 현실에 대한 지각이 각각 다르고, 사람들이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성개념이 서로 다르고, 과학의 역사가 한 이론이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고, 과학 철학자들이 "과학은 우주에 관한 진리를 확립하지 못한다"는 등의 말을 했다는 사실과 지식사회학에 관한 오해가 그것들이다. 이 중에서 지식사회학은 과학이 어떤 특별한 종류의 사회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과학이 단지 "상대적"이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실에 대한 지각

다양한 생명체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현실세계를 달리 지각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불가사리도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세상을 조금 더 완전하게 지각하며, 시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부족한 지각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시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천문학을 발명했을 것이며, 지구에 접근하는 소행성을 볼 수 있고, 또 그것을 비켜가게 할 위치에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소행성이 비켜가도록 하지 못한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불가사리도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운명을 함께한다. 그 이유는 실제로 사건들이 일어나는 현실세계가 하나 있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그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발전의 본질

과학의 역사에 관한 오해들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패러다임 이동"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에 과학이 간혹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는 증거가 있다. 예를 들면, 천체에 대한 뉴턴의 설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결과, 일부 과학자들은 기계공장에서 모델을 정확히 만들어낼 수 없는 천문학 이론이라면 절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턴의 중력이론의 문제는 마치 그 패러다임이 진리여야 하는 것처럼 취급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뉴턴의 방정식이 수정의 궤도에 대한 예측을 내놓았는데, 그게 그리 정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의 이론에 갇혀 있다면, 당신은 그 예측을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마 태양에 수성보다 더 가까운 어떤 행성이 있어서 수성을 궤도에서 이탈하도록 잡아당기는데, 그 행성은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식의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지적했듯이, 새로운 대안적인 이론을 제안하기 전에 누구나 기계적인 패러다임부터 깨부수어야 한다. 그리고 대안적인 이론이 없었다면, 뉴턴이 설명하지 못한 것들은 모두 카펫 밑으로 감춰질 것이다. 과학자들은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모르긴 하지만 시시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언젠간 해답이 발견될 것이라고 단정할 것이다. 결국엔 아인슈타인이 기계적인 패러다임을 깨부수었다. 그는 힘들보다는 공간의 모양이 궤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공간의 모양이 천체들의 근처에서 바뀐다고 설명했다. 담요 위로 무거운 공을 떨어뜨리면, 그 공 주변에 깔때기 같은 모양이 생긴다. 태양은 근처의 공간에 깔때기 모양을 창조한다. 행성들은 태양으로 빨려들지 않고 그 깔때기 주변을 돈다(행성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당신이 태양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깔때기 모양을 보았는데 그때 우연히 수성이 거기 있다면, 그것이 수성의 정확한 궤도이다.


그렇다면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과학 자체가 "하나의 패러다임"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라. 말하자면 패러다임이 현실이라고 정의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현실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이 패러다임은 아니라는 뜻이다. 패러다임 이동은 단지 과학 분야가 매우 성공적인 어떤 낡은 이론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학적인 방법은 예측을 검증하기 위해 증거를 이용하며, 그 증거는 패러다임 밖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 패러다임에서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약진이 일어날 때, 그 증거가 어느 이론이 현실에 더 가까운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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