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

The Historic Unfulfilled Promise

   
하워드 진(역자: 김민웅)
ǻ
일상이상
   
16000
2012�� 11��



■ 책 소개

“대통령은 거짓말을 하지만, 역사는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촘스키, 박원순, 홍세화, 김미화, 주진우가 선택한 책!
촘스키와 더불어 세계적인 실천 지성으로 통하는 하워드 진이 젊은 시절부터 생애의마지막 순간까지 썼던 글들이 담긴 책으로, 풍부한 사료와 자료들을 내세워 대통령과 소수 특권층 등 비판 대상에 대해 풍자와 해학을 날린다. 미국역대 대통령들이 내놓은 잘못된 정책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장에서 미군들이 보여준 비극적이고 천박한 행동들,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희생당하는 노동자의 역경 등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하워드 진의 역사적 투명성과 흔들림 없는 긍정주의 그리고 첨예한 질문들이 책 전체를관통하고 있다. 

■ 저자 하워드진(Howard Zinn, 1922. 8. 24 ~ 2010. 1. 27)
역사가, 희곡 작가 그리고 대학 교수로 활동한세계적인 진보 지식인이다. 미국 뉴욕시 브룩클린에서 유대인 이주민의 아들로 태어나 빈민가에서 성장하였고, 청년 시절 해군기지 조선소에서육체노동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 폭격수로 참전하였는데 이때,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반전주의자가 되었다. 27세에 뉴욕 대학교에 입학하였고,이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6년 흑인들만 다니는 학교인 스펠만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가 되었고, 학생들과 함께흑인차별에 항거하는 민권 운동을 벌였다. 1964년 보스턴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베트남 반전 운동의 선두에 섰으며, 1988년까지 보스턴 대학교정치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반전·평화·인권 운동에 평생을 바친실천적·진보적 지식인이었던 그는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와 더불어 ‘미국 현대사의 양심’이라 일컬어졌다. 대표적 저서는민중의 시각에서 미국의 역사를 관찰한 『미국 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로, 이 책은1980년 출간 당시 4,000부가 발행되었으나 2009년 말까지 200만 부가 팔려나가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밖에 미국의 폭력과 법의계급성을 폭로한 『오만한 제국(Declarations of Independence)』, 자전적 저서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You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 등과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Marx in Soho)』『엠마(Emma)』 등의희곡 3편을 남겼다. 그는 토머스 머튼 상, 유진 V. 데브스 상, 업턴 싱클레어 상, 래넌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역자김민웅
목회자이자 교수, 국제문제 전문가이며 방송인이다. 195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1961년 고국으로돌아왔다. 한국외국어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하였고, 유니언 신학대학 대학원에서 정치경제 윤리학 박사를, 델라웨어 대학교대학원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했다. 2004년 귀국해 EBS 국제시사방송을 진행했고, 현재 성공회 대학교에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변화과정을분석하는 ’세계체제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프레시안」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새로운 인문주의 교육을위해 노력하고 있다.&nbsp& 

지은 책으로는『동화독법』『자유인의 풍경』『창세기 이야기』『밀실의 제국』『보이지 않는 식민지』『사랑이여 바람을 가르고』『패권시대의 논리』『콜럼버스의 달걀에대한 문명사적 반론』『물 위에 던진 떡』 등이 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식민지』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중심과제로 다룬 책이며, 『밀실의 제국』에서는 세계화 전략의 군사주의 노선 강화와 직접 맞서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다루었다.

■ 차례
옮긴이의말 - 시민이 지도자의 선택을 이끌어낸다 
서문 - 매튜 로스차일드(<프로그레시브&& 편집인)
1. 권력의 뜻에 따르지않겠다? 살생부에 오르겠다는 말씀이로군
2. 민간인 사찰? ‘공산주의’라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다니
3. 민주화를 위해 연대하고조직화하자
4. 교육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5. 미국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일
6. 외교적인 해법이필요하다
7. 어찌 저들만 비난할 수 있을까? 
8. 2000년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거짓말
9. 어느 진보주의자의생애
10. 저항하는 예술가들
11. 전쟁을 지속시키려는 꼼수에 맞서서
12. 전쟁의 두 얼굴
13. 우리가 해야 할 일은딱 하나, 아주 간단하다. 전쟁을 막는 것
14. 우리 한목소리로 전쟁 반대를
15. 조국을 위해 죽었다고? 정부를 위해 죽은것이다!
16. 부시 세력, 몰락이 예견된다
17. 점령당한 국가
18. 왜 미군을 철수시키고 군사비를 줄여야하는가?
19. 전쟁을 지지하는 정당에 반대표를!
20.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21. 우리의 대테러 전쟁
22.분노가 힘이 되게 하라
23. 변화는 이렇게 온다
24. 무기여, 이제 안녕!
25. 전쟁은 반드시 실패한다
26. 대통령탄핵과 민주주의
27. 우리는 정치인인가, 아니면 시민인가?
28. 커트 보니거트를 떠올리며
29. 선거에만 매몰되지말라
30. 오바마는 달라야 한다
31. 노벨평화상 위원회, 문제 있다
32. 세 개의 ‘성전(聖戰)’, 그 진실
33.필요하다면, 봉기라도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


옮긴이의 말 - 시민이 지도자의 선택을 이끌어낸다

책을 읽는 내내, 하워드 진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만 갔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현실의 모순을 이토록 분명하게 직시하고, 역사를 진전시키는 열정을 끊임없이 뿜어낸 삶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논지는 분명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민이 대안을 만드는 조직적인 힘이 되어, 현실의 권력을 압박하면서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구세주를 기다리듯 지도자에게 전적인 기대를 거는 생각을 반성하게 한다. 그런데 이는 추상적 주장이 아니라, 역사에 실체가 있는 진실임을 우리는 그를 통해 알게 된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역사의 세세한 증거와 증언을 배우게 될 것이다.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는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바른 눈을 가진 시민의식과 양심에 따른 시민행동이다. 이 바탕이 없으면 애초에 아무리 괜찮다고 여긴 대통령이라도 상황에 따른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역사의 요구를 외면하게 될 수 있다. 하워드 진의 논법에 따르면, 지도자가 민중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지도자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현실 권력이란 강한 자와 부한 자를 위해 움직이는 본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고 압박하는 가운데, 그 권력의 손에 집중된 권한과 재원이 시민 사회의 꿈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제대로 된 세상이 생겨날 수 있다.


그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비롯한 군사주의의 폭력과, 자본주의의 탐욕을 고발하는 동시에, 이러한 구조적 억압과 제도적 폭력으로 희생되는 이들의 모습을 직시하도록 한다. 그와 함께, 기득권 질서에 저항하고 시민들의 힘을 모아 세상을 정의롭게 변모시켜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평화와 자유, 그리고 행복한 미래가 어떻게 열리게 되는가를 절감하도록 하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격려와 행동 원칙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즈음, 2012년 대선의 열기가 한참이다. 좋은 대통령의 선출을 통해 이 사회의 변화와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국민적 요구가 어떻게 나타나게 될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역시 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시민들의 생각과 의지이다. 이것이 어떤 대통령과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실질적인 정치의 내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권력은 어디까지나 이러한 시민권의 요구를 이행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권력의 뜻에 따르지 않겠다? 살생부에 오르겠다는 말씀이로군

25년간의 미국사를 한번 생각해 보자. 그 25년의 시간 속에는 흑인들과 여성의 저항을 비롯해 수감자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권리 운동, 그리고 대대적인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과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 등의 사건들이 줄지어 있다. 바로 이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기존 질서는 보통의 미국 시민들의 마음과 충성심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기존 질서의 주도세력들은 대체로 1975년 이후, 그 힘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미국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러 운동이 펼쳐지는 동안, 상당히 많은 미국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누군가가 말하는 것에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고, 전문가라는 이들의 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정치 지도자에 대해 믿지 않게 되었고, 군과 기업, 그리고 한때는 무소불위의 권위를 누리던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마저도 불신하게 되었다.


기존의 권위에 대한 충성심이 무너진 경우가 어디 대학에만 한정되었겠는가. 공장과 보통의 미국 시민들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의 권위 붕괴 상황이 벌어졌고, 군대까지도 그런 일들에 직면했다. 가난한 노동자 가정 출신의 미국 병사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쪽으로 움직여 갔던 것이다. 그러니 2백만에 달하는 대학생과 노동자-전문직들의 연대로 인해 생겨날 사회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 사회 지도층들은 복종의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실업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강화되면서, 사회 지도층들은 권위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학생이나 선생들에게 일깨우는 일이 더욱 쉬워졌다고 여기게 되었다


존 실버가 1971년 보스턴 대학의 총장이 되자마자, 그는 인문주의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과 교수들의 대학 교육에 대한 발언권을 묵살하기 시작했다. 그가 파괴하기 시작한 것은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존 실버는 대학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환경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존 주류 세력들이 권위에 대한 도전을 막겠다고 대학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 한 움직임은 바로 이렇게 존 실버의 권위주의에서 노골적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특정한 대학 하나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미국 전역의 고등교육 기관에 걸쳐 주류 세력과 생각을 달리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흐름이 있었고, 대학의 운영과정에 거대 기업의 입김이 작용한 증거가 존재한다.


대학의 경제형편이 어려워지고 교수직이 줄어들면서, 정치적으로 비판적인 인물이나 대학 당국에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는 교수들을 내쫓는 일은 보다 쉬워진 셈이다. 정년 보장이 안 된 교수는 그대로 해고하면 되고, 정년 보장이 된 경우에는 다소 교묘한 방식이 강구된다.


대학이든 노동의 현장이든, 미국이든 다른 국가이든, 우리는 이와 동일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 1960년대 이래 생겨난 주류 세력에 대한 반발기류에 그 권위가 흔들린 기업과 군은, 자신들의 힘에 누구도 다시는 도전하지 못하게끔 하려 들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단지 이와 같은 권력과 권위에 대해 저항해야 할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항 정신의 유산을 다져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로써 직장이나 가정 또는 학교 그 어디서든 평등주의와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 그리고 자주적 결정의 이상을 실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라는 단어 속에 담긴, 아직은 실현되지 못한 약속이다. 그것을 마침내 이루어내야 할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다.



교육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워드 진은 미국 진보 운동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는 진보적인 동시에 유머도 풍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이다. 다음은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노조 프로그램 사무실에서 데이비드 바사미안(David Barsamian)이 하워드 진과 나눈 대담이다.


Q: 좀 간단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사회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 자네도 알다시피, 변화란 불만이 계속 축적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도저히 참지 못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지 않는가? 뭔가 일어나는 것이다.


지난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 남부에서 무슨 일이 생겨났던가? 흑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노예상태를 벗어나 해방이 된 것은 아니다. 변화는 대단히 천천히 일어났다. 그건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진 빙하기의 변화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흑인들은 우리도 평등한 존재로 살아가야겠다. 우리도 백인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부의 변화가 빠르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루어져야 할 바와 현실 사이에는 간격이 있었고, 그것은 긴 시간 동안 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불꽃이 점화되면서 변화의 순간이 온 것이다.


아주 작은 불씨가 마침내 큰 불을 낼 것이라고 누가 미리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민권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Montgomery bus boycott)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그와 비슷한 종류의 흑백차별 버스 운행에 대한 저항이 일어났었다. 미국 사회를 뒤흔든 1960년대 연좌시위 운동도 애초에는 별것 아니라고 여긴 일들이 일어나고 나서야 일어났다. 1955년에서 1960년 사이에 열여섯 건의 연좌시위는, 사건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았고, 이후의 운동에 불을 지를 정도로 강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계속 쌓이면서 사태는 커져갔던 것이다.


1960년 2월 1일, 그린스보로에서 네 명의 대학생들이 연좌시위를 시작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 후의 미국은 이전의 미국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실례들을 보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뭔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지 않을까 한다. 계속해서 운동을 펼치고 또 도전해 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목표를 잡았으면 반드시 하고 또 해야만 한다. 언제 기대했던 것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시도의 의지를 접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민권 운동이 일어났으며, 다른 운동들도 미국 사회에 번져나가게 된 것이다. 뭔가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게 마련이다. 따라서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냥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기만 한 소극적이고 수세적인 인내가 아니라 상황을 주도적으로 밀고 나가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참아내는 적극적인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뭔가 열심히 했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다고 낙담하는 이들은, 바로 그렇게 뭔가 당장에 성과를 성공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극복하고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역사에서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만일 그럴 수 있게 된다면, 그들 자신이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역사의 변화가 어느새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Q: 당신은 언젠가 "우리는 지금과 같은 빈부의 양극화 현상을 더는 지속시킬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그런가?

: 이런 현실이 얼마나 더 가게 될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무한정 갈 수는 없다는 것만큼은 안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 우리 사회는 곤경과 재앙, 그리고 갈등과 모순의 폭발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수순이다. 주식 시장의 경기상태를 알려주는 다우존스는 계속해서 치솟고 있다. 지난 15년간 1백 퍼센트 상승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동안에 노동자들의 임금은 도리어 15퍼센트 내려갔다. 다우존스가 올라가는 것만 보이고 노동자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의 최상층 부자 1퍼센트는 부의 43 또는 44퍼센트를 독점하고 있다. 그 다음 수준에 있는 부자들은 28에서 32퍼센트까지 부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지난 미국의 역사에서 계속되어온 문제다. 17세기 보스턴 지역의 조세관련 문건을 연구해 보면, 인구의 1퍼센트가 33퍼센트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이런 연구를 해보면, 그 통계치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리고 지금 미국 사회는 점점 더 악화일로의 길을 걷고 있다. 뭔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정말로 부자 나라라면, 그 나라에서는 아무도 굶지 말아야 한다는 건 당연한 상식 아닌가? 이토록 부유한 나라에서, 어느 누구도 홈리스가 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보험이 없어서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데 뭐가 문제인가? 우리에게는 막대한 자산이 있는데 낭비되고 있거나 엉뚱한 자들에게 빠져나가고 있다. 내가 하는 말은 너무도 상식적이다. 그래서 내가 강연장에서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옳소, 옳소, 옳소!"라고 답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런 나의 말이 상식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수백만에 달한다.



2000년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거짓말

매일 대통령 후보들이 쏟아내는 말들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어, 쓰레기더미만 쌓여가는 식이 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의 정치 체제가 실패하고 있다는 보다 많은 증거를 목격하고 있다. 도대체가 세계 최강의 국가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후보들이 정작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국내 현안에 관해서는 건강보험, 사회보장 제도, 그리고 세금에 대해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을 내뱉고 있다. 대외 정책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 소리도 하고 있지 않다.


바로 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대목에 대해 이제부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국내 문제에 관해서는 후보들 간에 별 차이도 없는 판에, 이들은 뭔가 좀 희망이 보였으면 하고 절박한 심정을 안고 있는 자유주의나 진보주의 세력 모두를 가장 힘이 없는 약속에 기대게 하고 있다. 민주당 예비 후보 알 고어(Al Gore)와 빌 브래들리(Bill Bradley)는 보험이 없는 4,500만 명의 유권자들에게 보험을 마련해 주겠다는 식으로 주춤주춤 다가서고 있지만, 그 누구도 정부가 보장해 주는 비영리 보험의 방식으로 미국인 모두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해 주겠다고는 말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후보 어느 누구도 미국의 최상류 계층에게 세금을 부과해 그걸로 마련하는 수조 달러의 재정을 통해 주택, 건강, 일자리, 그리고 교육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신문마다 1면에는 대통령 후보들의 엄숙한 선언과 공약들이 기재되어 있고, 그 내용은 한결같이 미국인들의 복리에 대한 약속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 1면을 넘기면 체첸 주민들에 대한 러시아의 잔혹한 공격이 보도되어 있는데, 그로즈니 마을의 지하실에서 웅크리며 다음 차례의 연쇄 폭격이 또 언제 시작되는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이들의 안전과 생명에 대해서는 어떤 후보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는 에이즈나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비극을 "모두의 침묵 속에 조용히 진행되는 학살"이라고 불렀다. 이 희생자들의 수는 그 자체로서도 이미 우려할 만한 것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다들 그토록 열을 올리며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그 어떤 후보자들도 군사비에 들어가는 수조 달러의 돈을 이제는 쓰지 말고, 다른 나라에 무기도 팔지 말며, 지뢰도 사용금지하고, 제3세계의 군사 정권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 일도 중지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돈을 가지고 폐결핵을 박멸하고 에이즈 확산을 막자는 제안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폭격으로 죽어가는 지구 상의 인류 그리고 충분히 치료할 수도 있는 질병퇴치를 하지 못해 사망하는 이들이 미국 선거에 투표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정치 체제는 홈리스나 수감자 또는 극빈층처럼 애초에 투표를 하지 않는 미국 시민들의 요구에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판인데, 아무리 상황이 비참하다 해도 투표장에서 5천 마일이나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돌봐주겠다는 생각을 할 수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미국 독립선언서에 나온 말, 다시 말해 자기 국민들에 대한 책임을 위반하는 정부는 마땅히 "바꾸거나 폐기되어야 한다."는 문구에 의거해 저항하고 또 도전해야만 한다. 이것은 당장엔 가당치 않은 일인 것 같지만, 도처에서 아주 작은 일부터 조금씩이라도 무수히 실천해 나가다 보면 결국 이루어질 목표이다. 시민들 각자가 자신의 불만으로 여기고 있는 일들을 교정하기 위해 정당정치의 테두리 밖에서도 행동하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을 지속시키려는 꼼수에 맞서서

부시는 이란, 이라크,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고 있다고 하며 이 세 나라를 콕 짚어 지목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테러분자들을 훈련시키는 진지가 적어도 12개 국가에 아직도 존재한다."고

했다.


이번 대테러 전쟁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이 테러리스트 적들은 전 세계를 전쟁터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끝까지 추적해 내야만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나라가 계속해서 공포에 질리도록 만들어 두어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여겨진다. 적은 지구 상 어디든 있다. 부시는 계속 무한정한 전쟁을 강조하고 나선다. "이 전쟁은 우리가 마칠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그는 이 전쟁을 차기, 차차기 대통령에게도 넘기려 들고 있다.


대통령 말대로라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적인데다가 이 적을 패배시키려면 한없는 전쟁을 치러야만 하게 생겼다. 이 나라가 전쟁상태에 계속 있게 되는 한, 미국인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미국과 세계 도처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식량 또는 직업이 없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은 (언젠가 교황 바오로 2세가 말한 적이 있는) "야만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수적인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손실이 대테러 전쟁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전쟁은 군수산업에게는 막대한 이윤을, 정치인들에게는 권력을 주고 있으나 미국이나 해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는 것은 봉쇄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핵심적인 문제로부터 시작해 보자. 이 지구 상에는 모든 사람들의 긴급한 필요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부가 엄청나게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수백만 명이 죽어가고 있고 또 다른 수백만 명은 비참한 지경에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부는 사치와 전쟁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 소수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 이 문제는 전쟁이나 자기 민족 집단만 우월하다고 하는 민족주의 논쟁보다는 누구든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다. 정부나 언론이 전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에 정신이 팔리지만 않는다면, 사람들은 지금 부자들이 세계를 쥐고 있으며, 이들이 가진 돈이 정치, 문화, 그리고 가장 긴밀한 인간관계마저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진짜라는 것에 대한 증거는 도처에서 쌓여가고 있으며, 점점 더 그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최대의 적은 해외의 어느 나라 동굴이나 군사기지에 있는 게 아니라, 기업의 이사회실과 정부기관의 사무실에 있다. 그곳에서는 의도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이윤과 권력을 추구하다 보니 그에 따라 부수적으로 생기는 수백만의 죽음과 비극을 가져오는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더는 이상하지 않고 맞는다는 걸 누구나 깨우치는 순간이 이제 왔다. 세계적 규모의 거대 자본에 저항한 시애틀의 시위와 이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대안포럼의 포르토 알레그로(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로에서는 주민이 참여하는 형태의 정치가 자리 잡게 되었다.)의 정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 정신을 통해, 노동 운동의 힘을 재정비하고 다양한 운동을 하나로 묶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지구 전체의 자산을 함께 공유하는 작업을 더는 지체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전 지구적 연대에 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분노가 힘이 되게 하라

재선된 부시는 자신이 추진해 온 정책들을 계속 밀고 나가라고 국민들이 지지를 표했다면서 의기양양해 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은 "우리는 모두 행복한 한 가족이니 이제 부시 대통령과 함께 4년을 더 지내자."라는 식으로 자축하는 현장과 별 관련도 없고, 또 이러한 주장에 반드시 동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투표 내용을 좀 자세히 살펴보자. 부시는 투표한 사람들의 절반에 해당하는 51퍼센트의 표를 얻었는데,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의 60퍼센트였다. 그러니까 전체 유권자의 31퍼센트 지지를 받은 것이고 존 케리는 이런 계산 방법으로는 28퍼센트의 지지를 기록한 것이다.


이건 무슨 이야기냐 하면, 투표하지 않은 나머지 40퍼센트의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대변할 후보가 민주, 공화 양당에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실, 투표한 유권자들의 상당수도 이런 느낌이었을 텐데 일단 투표는 하고 본 것이 아니었나 싶다. 생각해 보면, 국민들의 의사가 정치에 제대로 반영이 된 적이 있던가?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은 자신이 국민들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다수가 되는,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시는 케리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그러나 유권자 전체의 표로 계산하면 부시는 국민들의 다수로부터 그런 위임을 받았다고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지난 6개월간의 여론조사를 보면, 여론의 절반 이상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민주, 공화 그 어떤 정당도 바로 이 전쟁을 반대하는 국민들 과반수의 여론을 대변하지 않았으니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선거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새로운 힘으로 변모시켜 활용해 나가야 한다. 이 분노와 낙담, 불만과 좌절 안에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거대하게 잠재하고 있다. 이 에너지를 잘만 동원하면,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선거기간 중에 제대로 진척이 되지 못했던 반전 운동을 힘차게 되살릴 수 있다. 선거의 특성상, 그 어떤 절실한 목표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기력조차도 선거가 다 흡수하는 바람에 그런 목표가 다소 애매해지고, 남은 것은 단지 후보자 가운데 그나마 좀 더 나아 보이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는 일이 된다.


그러나 선거가 일단 종료되면, 더는 본래 가졌던 목표에서 물러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거기간 중에는 애초에 자신들이 요구하려 했던 민감한 현안을 제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무비판적으로 인정해 주기도 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후보라는 인물들은 정말 거의 모든 주요 현안들을 사실상 살짝살짝 피해 가면서 머뭇머뭇 거렸는데, 선거기간 중이라고 그저 봐준 거 아닌가.


이제부터 우리는 이 비민주적인 선거 제도의 추악한 한계에 더는 갇혀 있지 말고, 그동안 선거기간이라고 해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들을 모든 힘을 기울여 펼쳐나갈 수 있다. 그 일들이란, 이 나라를 바로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대담하고 분명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부시의 당선이라는 선거 결과로만 보자면, 우리는 실제로 미국 국민들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해 속고 만다. 사람들은 선거라는 현안에 몰려 정작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출하지 못한 채 그저 투표장에 가는 것으로 정치 행위를 끝내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하는 바가 그대로 땅에 묻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비단 우리뿐만은 아니다. 이 나라와 세계 전체로 보아도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뜻을 지닌 이들은 적지 않다. 따라서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을 우리만 홀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운동은 언제나 강력한 동조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지배자들이 어떻게 해보려 해도 꿈쩍하지 않는 이들이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고개를 들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필요하다면, 봉기라도

우리는 평화로운 세계를 원하며 평등한 사회를 바란다. 전쟁을 반대하며,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품격 있는 사회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꿈을 굳게 붙들고 나갈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렇지 않게 된다면, 이 문제가 현실 자체에 매몰되어 아예 꿈도 꾸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market)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하라는 이야기에 대해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 대신 무료 의료혜택을 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들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되고 있는가? 4천 8백만 인구가 의료보험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상태가 되어 있다. 시장이 의료보험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자고? 그래서 2백만 명이 무주택자로 살아가고 있다. 시장에 맡긴다는 논리에 따라 현실이 굴러가고 있다 보니, 수백만 명이 집세를 내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있다. 시장이 중심에 있는 사회에서, 3천 5백만 명이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시장에 우리 사회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 위기를 돌파하겠다고 과거에 했던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는 것이다. 공적 기금을 은행과 기업에 쏟아붓는다고 해서 그것이 낙수효과를 통해 일반 서민들에게 혜택으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는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에 대해 관심도 없는 기업과 은행에게, 정부가 이런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일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업과 은행은 오로지 이윤창출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완전한 방향전환이다. 우리는 미국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과 부 그리고 힘을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돕는 데에 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게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는 바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우리는 어디까지나 시민들이다. 그러니 이런 정치인들처럼 세상을 바라보면서, "타협을 해야만 해. 정치적 이유를 고려해서 행동해야 한단 말이야."라는 식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것을 말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노예 제도 철폐 운동을 했던 이들이 가진 자세였다. 그런 이들을 향해 사람들은 "링컨 대통령의 시선에서 상황을 봐야 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링컨 대통령의 최우선적인 관심은 사실 노예 제도 철폐가 아니었다. 노예 제도 반대와 철폐 운동을 벌였던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견해를 내세웠다. "우리 자신을 링컨 대통령의 입장에 놓고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견지해 온 입장을 밝혀나갈 것이며,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서 링컨 대통령이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노예 제도 반대와 철폐 운동은 점점 더 성장하고 강력해져서 링컨 대통령이 이들의 요구를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까지 밀고 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노예해방 선언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노예 제도를 부인하는 수정 헌법 14조, 미국에서 태어난 이들 모두가 미국 시민임을 밝히는 14조, 그리고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15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미국의 역사는 이렇게 전개되어왔다. 역사의 진보가 이루어지고, 부당한 질서가 무너진 것은 미국인들이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행동했을 때 가능했다. 이들은 힘든 상황 앞에서 그저 비탄에 빠진 채 낙담하지 않고 행동했으며, 조직적으로 나섰고 필요하다면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 권력에 있는 자들이 이들의 요구와 주장을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