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도서관

The Library at Night

   
알베르토 망구엘(역자: 강주헌)
ǻ
세종서적
   
18000
2011�� 05��



■ 책 소개
세계 최고의 독서가 알베르토망구엘이 전하는 책과 세상에 관한 지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도서관의 역사와 함께 도서관에 담긴 철학을 다루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자신의 혀를 내두를 만한 책꽂이 편력, 헌책방과 벼룩시장, 서점, 도서관을 넘나드는 끊임없는 집착의 ‘책 사냥’, 끝없이 책꽂이를 뒤집으면서최적의 자리에 책을 두고자 하는 자신의 넘치는 열정, 친구들과 상상의 책들을 쓰곤 하는 실없는 밤들을 보여주며 도서관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도서관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열다섯 가지 주제, 즉신화ㆍ정리ㆍ공간ㆍ힘ㆍ그림자ㆍ형상ㆍ우연ㆍ일터ㆍ정신ㆍ섬ㆍ생존ㆍ망각ㆍ상상ㆍ정체성ㆍ집 등을 통해 도서관의 역사와 재미있는 일화를 풀어나가는데, 공공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저자처럼 개인 도서관을 꾸몄던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또한 물리적인 도서관의 역사에 그치지않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까지 더해져 있다. 글 읽기를 좋아하고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의 역사와 더불어도서관에 담긴 철학까지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작가이자 비평가, 번역가, 편집자이다. 십대 후반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났고, 시력을잃어가던 그에게 4년 동안 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다. 전에도 유별나게 책을 좋아했지만 이 만남을 계기로 망구엘은 더욱 독서에 탐닉하게 되고,그에게서 얻은 문학적 영감을 바탕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독서의 역사』 『나의 그림 읽기』 『독서일기』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상상의 장소들에 관한 사전(TheDictionary of Imaginary Places)』등을 썼으며, 이를 통해 메디치 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고, 프랑스정부에서 예술· 문화 훈장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1982년 캐나다로 이주했으며, 현재 프랑스에 살고 있다.

■ 역자 강주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활동하면서, ‘펍헙 번역 그룹’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뛰어난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으로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문명의 붕괴』『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지식인의 책무』『슬럼독 밀리어네어』 등 100여 권이 있으며,지은 책으로는『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외 다수가 있다. 

■ 차례
머리말 

1장 신화 
2장 정리 
3장 공간 
4장 힘 
5장 그림자
6장 형상 
7장우연
8장 일터
9장 정신
10장 섬
11장 생존
12장 망각
13장 상상 
14장 정체성
15장 집

맺음말
감사의 말

도판 출처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밤의 도서관


신화 

내가 내 책을 모아두기 위해 오랜 고생 끝에 마련한 도서관은 15세기 언젠가에 헛간이었던 곳으로, 프랑스 루아르 강 남쪽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내 머릿속에는 어떤 도서관이어야 한다는 분명한 그림이 있었다. 그곳을 가기 얼마 전에 방문한 영국 켄트 시싱허스트에 있는 빅토리아 색빌웨스트의 집에서 보았던 긴 복도식 도서관과, 내 모교인 부에노스아이레스 공립 고등학교의 도서관을 적절하게 뒤섞은 모습이었다. 나는 어두운 색의 목재가 벽에 붙어 있고, 은은한 햇살이 스며드는 도서관을 갖고 싶었다. 안락의자들을 곳곳에 놓아두고, 바로 옆에는 조그만 공간을 두어 책상을 놓고 참고용 도서들을 정리해두고 싶었다. 서가는 내 허리춤에서 시작해서, 팔을 쭉 뻗어 손가락 끝이 닿는 데까지만 높일 생각이었다. 내 경험상, 사다리가 필요한 정도로 높이 올려진 책이나, 바닥에 배를 바짝 대야 할 정도로 아래에 꽂힌 책들은 주제나 가치에 상관없이 중간쯤에 정리된 책보다 눈길이 덜 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처럼 책들을 이상적으로 정리하려면, 흔적도 없이 무너진 헛간보다 서너 배는 더 큰 공간이 필요했다. 결국 내 도서관의 서가들도 굽도리 바로 위에서 시작해, 천장을 가로지르는 들보에서 20센티미터쯤 아래까지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낮 동안에 도서관은 질서의 세계이다. 나는 분명한 목적 하에 문자로 쓰인 글들을 읽어가며 이름이나 목소리를 찾고, 주제에 따라 내 관심에 맞는 책을 찾아낸다. 도서관의 구조는 난해하지 않다. 직선들로 이루어진 미로이지만, 방향을 잃게 하기 위한 미로가 아니라 원하는 걸 쉽게 찾기 위한 미로이다. 누가 봐도 논리적인 분류법을 따라 분할된 공간이며, 알파벳과 숫자를 이용해 기억하기 쉽게 맞추어진 분류 체계와 미리 결정된 목록에 따라 배치된 공간이다.


그러나 밤이 되면 분위기는 바뀐다. 소리는 줄어들고, 생각의 아우성은 더 높아간다. 발터 베냐민이 헤겔을 인용해서 말했듯이 "어둑한 밤이 되어야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날개를 편다"지 않는가. 시간이 깨어 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의 중간쯤에 가까워지면, 나는 편안하게 세상을 다시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도둑처럼 움직이게 되고, 내 움직임은 비밀스럽게 느껴진다. 어느덧 나는 유령 같은 존재로 변한다. 책들이 바야흐로 진정한 존재를 드러내고, 독자인 나는 희미하게 보이는 문자들의 신비로운 의식을 통해 어떤 책이나 어떤 페이지에 유혹을 받아 끌려들어간다. 도서 목록으로 정리된 질서는 밤이면 관례에 불과하다. 그런 질서는 그림자 안에서 어떤 권위도 누리지 못한다. 이 도서관은 나만의 것이라 절대적인 도서 목록이 없지만, 저자 이름의 알파벳순에 따른 정리나 언어별 분류 등과 같은 최소한의 질서마저도 그 힘을 잃는다. 낮에는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절반만 기억나던 구절이, 역시 절반만 기억나는 다른 구절에 의해 되살아난다. 아침의 도서관이 세상의 질서를 엄격하게 지키고 이를 또한 당연히 바라는 공간이라면, 밤의 도서관은 세상의 본질로 흥미진진한 혼란을 즐기는 듯하다.


하지만 낮이나 밤이나, 나의 도서관은 사적인 세계이다. 크고 작은 공공 도서관과는 사뭇 다르다. 유령 같은 전자 도서관과도 무척 다르다. 세 도서관의 구조와 관습은 완전히 다르지만, 우리의 지식과 상상력을 조화있게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정보를 분류해서 분배하겠다는 명백한 의지만은 세 도서관 모두 공통적으로 갖는다. 동시에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자료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인색함과 무지 및 무능과 두려움으로 인해 다른 독서가들의 경험을 배제하려는 명백한 의지도 세 도서관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처럼 겉으로는 모순되어 보이는 상생과 배척이 한결 같이 계속되어왔고 만연해 있기 때문에, 적어도 서구세계에서 도서관은 우리의 모든 것을 대신하는 두 기념물을 확실한 상징물로 갖게 된다. 첫 번째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하늘까지 닿으려고 세워진 기념물로, 공간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각 언어가 땀 흘려 기록한 자료들을 모아놓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이 기념물은 시간을 정복하려는 소망에서 시작된 것이다. 공간을 정복하려던 바벨탑과 시간을 정복하려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인간의 야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쌍둥이 상징물이다. 두 상징물의 영향을 받아, 내 작은 도서관은 두 불가능한 열망-모든 언어를 끌어안으려는 바벨탑의 욕망과 모든 책을 보관하겠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바람-을 떠올려준다.



정리 

공공 도서관과 달리, 개인 도서관에서는 기발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분류를 시도할 수 있다. 병약한 프랑스 작가 발레리 라르보는 소장한 책들을 언어별로 다른 색으로 장정했다. 영어로 쓰인 책은 푸른색, 에스파냐어로 쓰인 책은 붉은 색으로 장정하는 식이었다. 라르보의 한 숭배자는 "그의 병실은 무지개였다. 덕분에 그는 눈과 기억을 통해 책에서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누렸다"고 말했다.


헛간을 개조한 내 개인 도서관에 책들을 배치하기 전에, 나는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주제명 표목(subject-heading)에 따라 책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두었다. 따라서 2003년 여름 도서관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범주들이 이미 분명하게 결정되었기 때문에 각 범주에 속한 책들을 특정한 공간에 정리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책 정리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론적으로 분류를 끝낼 때까지 부엌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수백 상자의 책을 겨우 도서관으로 옮기고 상자를 풀었지만, 바벨탑의 수직적 야망과 알렉산드리아의 수평적 탐욕이 복합된 듯이 곳곳에 쌓인 책들에 둘러싸여 나는 수 주 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거의 석 달 동안, 나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책 더미들을 조사하며 새로운 배열 순서를 생각해내야 했다. 그렇게 책을 정리하다가 불현듯 고개를 들면 어느새 밤이 되었고, 하루 종일 책과 씨름했지만 기껏 몇 개의 서가밖에 채우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곤 했다. 때로는 밤새 일하며 내 책들을 배열할 온갖 환상적인 방법들을 상상했지만, 아침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면 그 방법들이 안타깝게도 적용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아야 했다.


모든 분류는 자의적이다. 세계 곳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도서관에서도 나는 기상천외한 분류를 자주 보았다. 랭보의 『취한 배(Le Bateauivre)』가 항해,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가 여행, 메리 매카시가 미국적 순수성이 유럽적 세속성과 맞부딪히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 『미국의 새들(Birds of America)』이 조류학,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날것과 익힌 것(The Raw and the Cooked)』이 요리로 분류된 예를 실제로 보았다. 이런 비상식적인 분류는 때때로 공공 도서관에서도 목격된다. 또 어떤 독자는 여성(women)이 과학의 잡다한 항목으로 분류되어, 마법(witchcraft)과 모직물(wool)과 레슬링(wrestling)의 중간 자리를 차지했다며 분을 참지 못했다.


책들을 알파벳순으로 분류한 최초의 시도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가장 유명한 사서이자 프로페르티우스와 오비디우스가 존경했던 시인인 칼리마코스에 의해 거의 2,200년 전에 있었다. 칼리마코스는 당시 사라지고 없던 메소포타미안 도서관들에서 사용한 방법으로부터 십중팔구 영감을 받았겠지만, 그의 방법은 선택된 작가들을 알파벳순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또 저자들의 짤막한 전기와 저서(역시 알파벳순으로)까지 덧붙였다는 점에서 후세에 미친 영향이 크다. 칼리마코스가 혼이라도 살아서 내 도서관을 서성댄다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저작을 보관하려고 고안해낸 방법에 따라 정리된 그의 작품 두 권을 로브 시리즈(Loeb Classical Library, 은행가 제임스 로브의 지원을 받아 하버드 대학교에서 발간하는 고전시리즈-옮긴이)에서 보게 될 거라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뭉클하다.


도서관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실체이다. 멈추지 않는 성장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문자나 주제명 표목보다 숫자가 더 적합한 듯하다. 이미 17세기에 새뮤얼 피프스는 이런 끝없는 확장을 무리 없이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수의 세계가 알파벳보다 효율적임을 깨닫고, 나름대로 고안해낸 읽을 책을 쉽게 찾는 방법으로 자신의 책들을 분류했다. 내가 학교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숫자를 이용한 분류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는 분류법인 듀이의 십진분류법이다. 줄줄이 주차된 자동차의 번호판을 책등에 옮겨놓은 듯한 분류 방식이다.

 

옛 학자들의 주제별 분류에 따라 듀이는 인쇄된 인간의 모든 지식이란 방대한 분야를 10개의 주제 집단으로 나누고, 각 집단에 100단위 숫자를 붙인 후에 다시 10단위로 하위분류했다. 이런 식으로 내려가면 이론적으로 무한히 길어질 수 있다. 예컨대 종교는 200대로 분류되고, 그리스도교 교회는 260대, 그리스도교 하느님은 264로 분류된다. 듀이의 십진분류법의 장점은 원칙적으로 각 집단이 무한히 하위분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제나 중요도에 따라서, 신이 썼느냐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썼느냐에 따라서, 알파벳순이나 숫자의 배열에 따라서, 혹은 글이 쓰인 언어에 따라서 정리된 도서관은 발견과 창조에서 비롯된 혼란을 구조화된 시스템이나 미친 듯한 자유연상의 결과물로 바꿔놓는다. 나는 이런 분류법들을 절충해서 내 도서관을 정리했다. 도서관을 주제와 알파벳순으로 적절히 절충해 정리한 덕분에, 내가 알고 있는 것에 호소하고 있으며 귀에 익은 이름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도서관에 오랜 친밀감을 느낀다.


밤이면 가끔 나는 완전한 익명의 도서관을 꿈꾼다. 제목도 없고 저자도 밝히지 않는 책들로 가득해서, 온갖 장르와 온갖 문체 및 온갖 사연이 주인공이나 장소도 모르는 채 하나로 모여 시냇물처럼 끝없이 흐르며 이야기를 이루는 도서관이다. 나는 그 이야기의 어디에라도 풍덩 뛰어들 수 있다. 그런 도서관에는 수천 권으로 분책할 수 있는 한 권의 책만이 덩그렁 있어, 칼리마코스와 듀이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도서 목록조차 없을 것이다.



공간 

도서관에 있는 책들이 어떤 식으로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정리된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어떤 책을 펼치기도 전에 그 책의 성격에 대해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다. 책들은 혼란스런 창조물이어서 그 안에 담긴 비밀스런 의미까지는 독자가 도무지 알아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책들을 정리할 때 사용한 분류 체계는 책들에 어떤 정의와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내 도서관을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남들에게는 하찮은 정의이고 자의적인 의미로 보이겠지만…….


그러나 물리적 세계의 무서운 특징 하나가, 독서가라면 누구나 질서정연한 도서관에서 느꼈을 희망적인 생각을 산산조각낸다. 바로 공간의 제약이다. 나는 어떤 분류법을 선택하더라도 책을 배치하려는 공간이 결국 선택을 수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더구나 관련된 책들을 모두 배치하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배열 방법을 곧바로 바꾸어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도서관에서나 빈 선반은 금세 채워진다. 자연과 똑같이, 도서관도 빈 곳을 싫어한다. 따라서 공간의 문제는 모든 일반 도서관에 제기되는 패러독스이기도 하다. 영국 시인 라이어넬 존슨은 공간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린 끝에, 샹들리에처럼 천장에 매다는 서가를 고안해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내 친구는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4면 서가를 제작해 책을 보관하는 공간을 4배나 늘였다. 그 친구는 자신의 서가를 춤추는 서가라고 불렀다.


양적 팽창이 항상 질적인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양적 팽창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애서가들은 온갖 방책을 궁리해냈다. 1990년대에 들어 대형 도서관의 관장들은 낡고 웅장한 건물로는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인쇄물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방대한 책들을 안전하게 보관할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중 서가를 설치할 공간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한 샌프란시스코 공공 도서관의 잘못된 설계 때문에, 관리들은 도서관 서고에서 수십 만 권의 책을 끌어내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야 했다. 대출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한 시간의 길이를 기준으로 폐기할 책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사서들은 최대한 많은 책을 구하기 위해 밤마다 서가에 기어 올라가, 폐기 위험에 처한 책들에 거짓 반납 날짜를 스탬프로 찍는 영웅적인 투쟁을 벌였다. 그릇을 살리려고 내용물을 희생시킨 무모한 짓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 반이 지난 후. 잡지 「뉴요커」의 기자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니컬슨 베이커는 1996년 의회 도서관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방대한 도서들 대부분을 마이크로필름으로 대체한 후에 원본을 파기할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 이런 야만적인 파괴 행위는 종이의 산성화와 메짐성(외부에서 힘을 받았을 때 물체가 소성 변형을 거의 보이지 아니하고 파괴되는 현상)에 대한 부정한 과학적 연구를 근거로 내세웠지만, 이는 살인을 안락사라 주장하며 변호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베이커는 수년 동안 이 소문을 조사한 끝에, 상황이 소문을 듣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대학교 도서관은 물론 대부분의 대형 공공 도서관까지 의회 도서관의 선례를 따른 결과, 일부 희귀한 정기간행물은 마이크로필름으로만 남아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마이크로필름은 얼룩과 때가 묻거나, 긁힐 염려가 있다. 또한 여백에 인쇄된 텍스트를 잘라내기 일쑤이고, 페이지를 통째로 건너뛰는 경우도 많다.


종이의 멸실 가능성을 이유로 책의 전자화를 옹호하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 컴퓨터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모니터에서 텍스트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디스크나 CD에서 엉뚱한 결함이 발견되거나, 하드 디스크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디스크의 수명은 7년 남짓이고, CD롬의 수명은 10년 정도이다. 1986년 BBC는 250만 파운드를 투자해, 노르만계 수도자들이 11세기에 처음 편찬한 잉글랜드 토지대장인 둠즈데이 북(Domesday Book)의 멀티미디어판을 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총인원이 100만 명을 넘었고, 그 결과는 BBC에 소장된 극소수 특별한 컴퓨터로만 읽어낼 수 있는 12인치레이저 디스크에 보관되었다. 16년 후인 2002년 3월, 그 컴퓨터 중 하나로 데이터를 읽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참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데이터 보존에서 세계 최고 전문기관 중 하나인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의 제프 로센버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청 받았지만 "현재로서는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확실하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현재 꾸준히 디지털화되고 있는 인류의 유산이 상실될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에 거의 1,000년 전 종이에 잉크로 쓰여 공문서 보관소에 보관된 둠즈데이 북 원본은 여전히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완벽하게 읽히기도 한다.

 

니컬슨 베이커는 종이책 도서관의 운명을 추적한 책을 끝맺으며 네 가지 유용한 조언을 남겼다. 첫째, 도서관은 폐기하려는 출판물의 목록을 공개해야 한다. 둘째, 의회 도서관에 보냈지만 거부당한 모든 출판물은 색인 작업을 거친 후에, 정부에서 제공하는 부속 건물에 보관되어야 한다. 셋째, 신문은 관례대로 합본되어 보존되어야 한다. 넷째, 책을 마이크로필름화하거나 디지털화하는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전자화하는 과정을 끝낸 원본이라도 파기하지 않고 보관해야 한다. 요컨대 전자화 작업을 추진하더라도 인쇄물은 보존해야 도서관은 본래의 야망 중 하나, 즉 포괄성을 성취할 수 있다. 적어도 어느 정도의 포괄성을 성취하려면 원본의 보존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신 

마키아벨리처럼 나도 밤이면 책들 틈에 끼어 앉는다. 글은 주로 아침에 쓰지만, 독서등에서 흘러나온 빛의 삼각형이 도서관의 책꽂이들을 둘로 갈라놓는 밤에는 무거운 침묵을 즐기며 책을 읽는다. 위쪽에 꽂힌 책들은 어둠 속에 사라지고, 아래쪽에 꽂힌 책들은 빛에 반짝이는 특권을 누린다. 이런 인위적인 구분은 어떤 책에는 빛을 주고 어떤 책은 어둠에 몰아넣지만, 순전히 내 기억에만 의존하는 또 다른 질서까지 이겨낼 수는 없다. 내 도서관에는 도서 목록이 없다. 하지만 한 권 한 권을 내 손으로 서가에 꽂았기 때문에 도서관의 구조만 떠올리면 모든 책의 위치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할 수 있다. 따라서 빛과 어둠은 내가 책을 찾는 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머릿속에 기억된 순서는 내 안에 심겨진 패턴으로, 도서관의 형태와 구분을 따른다. 점성가가 별들의 위치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도서관은 내 머릿속에 담긴 배치를 나타낸다. 서가의 의도적이지만 임의적인 순서, 주제의 선택, 책 한 권 한 권에 대한 사사로운 역사, 페이지들 사이에 남겨진 어떤 시대와 장소에 대한 흔적들……. 이 모든 것이 특정한 독서가를 가리킨다.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면 에스파냐의 시인 블라스 데 오테로의 너덜너덜한 시집,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책들의 수, 탐정 소설에 할애된 널찍한 공간, 문학 이론에는 인색한 공간, 플라톤의 저서는 많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는 별로 없는 점 등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도서관은 자서전적 성격을 띤다고 말할 수 있다.


도서관이 그 주인의 면면을 반영한다는 사실은 서가에 꽂힌 책들의 제목만이 아니라, 그런 책들에서 연상되는 관계망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어떤 기억을 근거로 다른 것을 기억한다. 또 우리는 어떤 책에 영향을 받아 우리만의 책을 장만한다. 달리 말하면, 다른 책들에 영향을 받아 우리가 책을 구입하는 방향이 달라진다. 따라서 문학 사전을 제외하면 책들을 구입한 역사까지 어렴풋이 그려진다. 어쨌든 이제 나는 이런 모든 관계망을 완전하게 추적할 수 없고, 얼마나 많은 책이 서로 관련 있는지 기억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가령 캐나다 작가 마거릿 로런스의 아프리카 이야기들은 내 기억에서 이사크 디네센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를 떠올려주고, 이 소설은 다시 그녀의 『일곱 개의 고딕 소설(Seven Gothic Tales)』을 생각나게 해주며, 이 소설은 내게 디네센의 작품을 처음 소개해주었던 아르헨티나의 작가 겸 영화 제작자인 에드가르도 코자린스키와 보르헤스를 다룬 그의 책과 영화를 떠올려주고, 더 나아가면 로즈 매콜리의 소설까지 연결된다. 오래전 어느 날 오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코자린스키와 내가 소설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가 매콜리를 안다는 것에 서로 놀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책들은 끊임없이 변해서,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롭고 다른 느낌을 안겨준다. 모든 도서관이 우리 마음처럼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도서관은 궁극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알찬 책들로 가득한 물리적인 도서관에 적용되는 엄격함이 정신의 도서관까지 옭아매지는 않는다.



망각 

닉스(밤의 여신)가 카오스의 자식이라면, 레테 강, 즉 망각은 카오스의 손녀, 즉 닉스와 에리스(불화의 여신)의 섬뜩한 결합으로 태어난 자식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d)』의 제 6권에서, 레테 강을 지하 세계로 가는 영혼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과거의 자아를 잊게 해주는 강이라고 상상했다. 따라서 레테 강은 우리에게 과거의 경험과 행복만이 아니라, 편견과 슬픔마저 잊게 만든다.


내 도서관의 책들을 나는 절반쯤 기억할 뿐, 절반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게다가 요즘에는 기억력이 예전만 못해서, 어떤 구절을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해보려 해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떤 책은 내 경험에서 완전히 사라져 기억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반면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제목이나 이미지, 심지어 몇몇 구절까지 기분 좋게 머릿속에서 맴도는 책들이 있다. 1890년 어느 봄날 저녁이라고 시작하는 소설이 뭐지? 시바의 여왕 다리에 털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솔로몬 왕이 거울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읽었을까? 꽉 막힌 복도에서 새들이 날갯짓하는 장면만 생각하는 특이한 책『암흑 속으로의 비행(Flight into Darkness)』을 누가 썼더라? 헛간이던 그의 도서관이란 구절을 어떤 소설에서 읽었을까? 불이 밝혀진 촛불과 크림색 종이 위로 굵은 크레용들이 표지에 그려진 책이 뭐였지? 내 도서관 어딘가에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있지만, 그곳이 어딘지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내 도서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내게 곧잘 모든 책을 읽었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나는 모든 책을 펼쳐본 것만은 확실하다고 대답한다. 규모가 어떻든 간에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앎과 무지, 기억과 망각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독서가는 이익을 얻는다.


나는 아직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을 보아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내 책들에 무한한 인내심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죽는 날까지 내 책들은 내 손길이 닿기를 기다릴 것이다. 내가 그들 모두를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고, 아일랜드의 작가 플란 오브라이언이 상상한 프로페셔널한 책 관리자가 되라고 내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브라이언이 상상한 프로페셔널한 책 관리자는 탐욕스레 책을 모으지만 읽지는 않는다. 그저 적절한 수수료를 받고 책을 관리해서 생계비를 버는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책을 읽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여백에 앞뒤가 맞지 않는 주석을 써넣고,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 사이에 연극 프로그램 표 같은 것을 책갈피로 끼워 넣는 대가로 입에 풀칠을 하는 사람이다.


 

정체성 

나는 내 도서관에서 빠진 책들, 달리 말하면 언젠가 꼭 구입하고 싶은 책들의 목록을 언젠가부터 간직하고 있다. 필요하기 때문이라기보다 갖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는 책들인데, 갖고는 싶지만 존재하는지조차 확실히 모르는 것들이기도 하다. 이 제2의 목록에는 『유령의 보편적 역사(A Universal History of Ghosts)』『그리스· 로마 도서관의 일상(A Description of Life in the Libraries of Greece and Rome)』, 질 페이턴 월시가 완성한 도로시 세이어스의 탐정소설, 셰익스피어를 연구한 체스터턴의 논문,『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요약(Summary of Averroës on Aristotle)』, 소설에 표현된 음식에서 조리법을 찾아낸 문학적 요리책, 캐나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앤 마이클스가 번역한 칼데론 데라바르카의 『인생은 일장춘몽』의 번역본(내 생각이지만, 그녀의 문체는 원문에 버금가게 아름답다),『가십의 역사(History of Gossip)』, 보르헤스를 완벽하게 조사해서 제대로 쓴 전기, 세르반테스가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노예로 지내는 동안 겪었던 일에 대한 정확한 기록, 조지프 콘래드의 아직 출간되지 않은 소설, 밀레나 예젠스카에 대한 마음을 토로한 프란츠 카프카의 일기 등이 있다.


우리는 읽고 싶은 책을 상상할 수 있다.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상까지 막을 수는 없다. 또 우리는 보유하고 싶은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을 상상할 수도 있다. 관심사만이 아니라 이상한 기벽까지 그대로 반영된 도서관을 꿈꾸는 것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도서관을 상상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독서가의 다양하면서 복잡한 성향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도서관을 상상할 수 있다. 도서관은 실질적인 면에서나 상징적인 면에서 우리를 집단적으로 정의해주는 책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한 사회의 정체성, 즉 국가적 정체성이 도서관에 반영된다는 말은 결코 불합리하게 들리지 않는다.


하나의 도서관에 다양한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을까? 내 도서관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프랑스의 조그만 마을에 있는데, 내가 이리저리 떠돌며 살아오는 동안 아르헨티나, 영국, 이탈리아와 프랑스, 타히티와 캐나다에서 단편적으로 수집한 책들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내 도서관은 상당히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 도서관의 유일한 시민이므로 그 안에 책들과 공통된 유대감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 또한 뒤죽박죽인 내 도서관의 정체성이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정체성과 일치한다고 말해주었다. 요컨대 도서관은 무척 복잡한 성격을 띠기 때문에, 공공 도서관과 개인 도서관을 막론하고 여느 도서관이나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에게 그가 찾으려는 것 혹은 그와 유사한 것을 제공하고, 독서가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조금이나마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주며 자아의 비밀스런 면을 엿보게 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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