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역자: 곽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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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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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3��



>& ■ 책 소개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자신의 삶과 극적으로 화해하고 아픔을 치유한 사람들의 실제 경험을 담은 책으로, 인생의 끝에서 치유와 화해를 도모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위한 방법을 안내한다. 우리가 생을 완전히 마감하기 전까지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관계를 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인생의지혜들이 담겨 있다.

저자인 아이라 바이오크는 세계최고의 호스피스 전문의로 20년 가까이 중환자를 돌보고 30년 넘게 호스피스와 고통완화의료 분야에서 일해왔다. 그는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환자들이 공통적으로 남기는 4가지 말에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용서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그리고 "잘가요"였다. 지금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은 물론, 지금 살아가지만 늘 죽음을 도처에서 맞닥뜨리고 스스로의 죽음 또한 예비하고 있는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 될 것이다.

■ 저자 아이라 바이오크

세계 최고의 호스피스 전문의로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보살피는 방법을 고민하고, 이를 전 세계적으로널리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1978년부터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업무에 종사하여 1995년 미국 호스피스 기관 종사자에게 주는 그 해의명예로운 인물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호스피스와 완화의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NBC, ABC 등 주요 방송사가 기획한 호스피스 관련프로그램에 출현하기도 했다. 현재 다트모스 히치콕 메디슨 센터 의장직을 맡고 있으며, 다트모스 의과 대학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 다른저서로 『죽음을 어떻게 살까(Dying Well)』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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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그가 호스피스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낸 수천 명의 환자들 가운데 극적인 노력으로 아름다운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스물두 명의 실화가 담겨 있다. 죽는 이에게는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을, 앞으로 살아갈 이들에게는 더욱 충실한 삶을선물할 "아주 특별한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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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곽명단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일 잘하는 사람의 시간관리』『나는 내가 아니다 : 프란츠 파농 평전』『내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완전한 행복』『빵의 역사』 등 다양한 책을옮겼다.

■차례

프롤로그 - 우리가 죽기 전에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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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때를 놓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마지막 말
#1 축복 : 단 한마디의 말이인생을 바꾼다 - “나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2 키스 : 당신이 사랑했던 ‘그때’를 떠올려라 - “당신은 정말 멋진 남자예요.”
#3 화해 : 때가 너무 늦었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 - “자랄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4 가족애 : 죽음을 앞두고 큰변화가 온다 - “가족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5 작별인사 : 아름다운 관계는 깊이로 재는 것이다 - “제 아버지가되어주셔서 고마워요.” 

PART2.관계의 문제를 푸는 열쇠 - 용서 Forgiving
#6 기억 : 사랑은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 있다 - “내내 무기력했던아버지를 용서해다오.” 
#7 반성 : 용서는 최고의 유산이다 - “너는 내 삶을 조각한 예술가야.” 
#8 포용 : 무엇보다 나자신을 위해 용서하라 - “내가 당신을 사랑한 줄은 알아요?” 
#9 참회 : 용서 받지 못할 사람은 없다 -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회복할 수 있어요.” 
#10 자기애 :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 “왜 하필이면 나일까요?” 
#11 의지 : 좋은 죽음은완전히 의지하는 것이다 - “다 죽어가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 

PART3. 관계를 단단히 이어주는 고리 -감사 Thank You 
#12 기쁨 : 기쁨은 최고의 영양분이다 - “나는 운 좋은 사내입니다.” 
#13 기적 :감사하는 마음은 인간성을 완성한다 -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하구나.” 
#14 변화 : 사람은 매순간 성장할 수 있다 - “그래 알아.”

PART4. 가장 강렬하고 소중한 말 - 사랑 I Love You
#15 스킨십 : 사랑은적극적인 행동이다 - “이토록 강렬한 기쁨!” 
#16 정성 : 사랑에는 최종 과제가 있는 법이다 -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하고싶어.”
#17 용기 : 그가 원하는 대로 하라 - “넌 최선을 다했다.”
#18 연결 : 사랑을 치료할 방법은 더 많이 사랑하는것뿐이다 - “무엇보다도 늘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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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5. 관계 완성을 위한 마지막 절차 - 작별 인사 Good-Bye
#19 오늘 :죽음은 항시 닥칠 수 있다 - “정말 다 컸구나!” 
#20 마법 :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이별을 준비하라 - “이제야 알 것같습니다.”
#21 서약 : 좋은 작별 인사는 평생의 선물이다 - “너를 영원히 사랑해.”
#22 축하 : 살아 있다는 선물에감사하라 - “모두 모이니 정말 좋구나.”

에필로그 -마지막 인사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프롤로그 - 우리가 죽기 전에 생각하는 것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귀중한 재산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진료실, 응급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죽은 사람에게 해야 할 말을 차마 생전에 전하지 못해 뼈저리게 후회하는 이들을 헤아릴 수 없이 만났다. 물론 지난 일을 돌이킬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뉘우침 속에서 "때를 놓치기 전에 반드시 할 말을 해야 한다"는 건강한 마음을 다지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용서하고 용서해주세요. 잘 가요." 이런 종류의 말은 결코 때를 기다려서 할 말도, 신중하게 해야 할 말도 아니다. 중요한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으면 그때부터는 서로 기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이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이다.


다른 이와 가까워지고 싶은 욕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으로 그 사람이 인간임을 뜻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사랑과 용서, 화해와 치유를 담은 말들은 자녀나 부모, 일가친척, 가까운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과 유쾌하게 지낼 수 있게끔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중병이 걸려서야 비로소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때늦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기회가 닿을 때마다 용서, 감사, 사랑, 인사의 말을 전하고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한다. 이로서 당신은 소중한 관계들을 아름답게 꾸려 나갈 수 있다.


이 책에 소개한 아주 특별한 경험담의 주인공들은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언제든지 다시 좁히고 화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모진 말로 마음을 할퀴고 서로 존재를 부정하거나 완전히 좌절하여 몇 해째 등 돌린 채 살았다고 해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면 다시 진실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는 시기가 정해진 것은 아니며 결코 늦은 때란 없다. 우리는 설사 죽음을 코앞에 둔 때라도 그 말을 할 수 있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삶이라는 선물에 새롭게 눈뜬다. 차 한 잔, 얼굴에 닿는 햇살 한 줌, 아이들의 말소리 따위의 아주 작은 기쁨조차도 경이롭기 그지없다. 죽을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사람은 완전히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느끼는 분노가 하찮아진다. 꽁하니 토라지고 맺혔던 마음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사랑과 애틋한 정과 고마움이 새록새록 솟아나 하루라도 빨리 관계를 회복해서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즐겁게 살고 싶어진다.


아주 뜻밖의 사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병마가 덮치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삶의 전부 혹은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용서와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축복하는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때가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이 짤막한 말들 속에 당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꼭 필요한 지혜가 들어 있다.



때를 놓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마지막 말

축복 : 단 한마디의 말이 인생을 바꾼다 - "나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에드위나 하기스는 내가 담당의사로 있던 응급실에 앰뷸런스로 실려온 위급 환자였다. 환자는 78세의 여성으로 격렬한 급성 복통이 허리로 번지고 있었고, 혈압이 70정도였다. 격렬한 급성 복통에 허리 통증이 심하고 혈압이 위험할 정도로 낮아지고 있으며 서너 가지 병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데, 모두 불길한 경우였다. 특히 복부 대동맥류에서 피가 샐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므로 상황이 안 좋았다.


놀랍게도 하기스 노부인은 자신이 대동맥류 환자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노부인이 살 길은 대수술을 받는 것이었지만 당뇨, 고혈압, 관생동맥질환, 말초혈관질환 따위의 합병증 때문에 환자가 수술을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노부인은 내과 의사, 심장 전문의와 이미 여러 차례 수술 문제를 의논했고 마음의 결정도 일찌감치 내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마치 이날이 오기를 기다린 사람처럼 담담했다. 간호사들과 나는 할머니가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약물 치료를 하고 링거 주사를 놓고 환자 가족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하기스 노부인이 안정된 틈을 타서 응급처치실을 나와 환자의 딸과 두 아들을 만나 노부인의 검진 결과를 설명하고, 수술을 받지 않기로 한 환자의 결심을 알려 주었다.


나는 환자 보호자와 함께 노부인이 누워 있는 응급처치실로 들어가 가족에게 상황을 알렸다고 전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여러분이 여기에 모두 모였으니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제가 환자들에게 배운 것이 있어요.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베풀고,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환자와 가족이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마나한 말이라 느껴져도 분명한 말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을 하고 나면 대개 작별 인사말을 한결 쉽게 하더군요."


맏딸 준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선생님. 우리 어머니는 당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십니다. 어머니가 우릴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처럼, 어머니도 우리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셨으면 해요." 그녀는 자기 어머니 쪽으로 돌아서더니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간호사들이 침대 난간을 내려주자 중년의 딸은 몸을 수그려 어머니를 부둥켜안았다.


하기스 노부인과 그 가족은 허둥지둥 수술실로 가지 않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값진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나는 잠시 그들 곁에서 빠져나와 수술진을 해산시키라고 전화로 지시했다. 잠시 후 간호사들이 노부인을 개인 병실로 안내했고, 환자 가족은 내게 임종성사를 해줄 신부를 모셔달라고 부탁했다. 입원한 지 세 시간 뒤, 노부인은 서서히 혈압이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잠시 뒤 사망이 선고되었다.


그 날 저녁 노부인의 딸 준이 응급실로 나를 찾아와 면담을 청했다. 준은 가족을 대신해 고인을 잘 돌봐준 간호사들과 내게 인사말을 전한 뒤 말을 이었다. "최악이 될 수도 있는 일을 아주 훌륭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를 세심하게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을 전한다는 것이 이렇게 뜻깊은 일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그녀는 미소로 말을 맺었다.


노부인이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자녀들과 주고받은 말은 자식들에게 뜻깊은 선물이 되었다. 자녀들은 앞으로 어머니의 축복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 말은 우리 삶을 바꾸는 평생의 선물이다

가족과의 관계는 죽음으로 인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당신 자신의 정신과 영혼의 일부가 된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온 사람들은 죽어서도 계속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준다. 삶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말은 죽음이 갈라놓은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데도 중요하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용서와 사랑, 감사, 축복의 말을 들은 자식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죽은 뒤로도 먼 훗날까지 혜택을 누리게 된다.



관계를 단단히 이어주는 고리 - 감사 Thank You

가슴으로 전하는 두 번째 미션 - 고마움을 전하기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분야에서 오래 일할수록 언뜻 뻔해 보이는 말들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절실하게 깨닫는다. 고맙다는 말이 특히 그렇다. 우리는 모두 고마움을 표현하고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은 욕구가 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중대한 일을 했으며,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욕구가 강렬해지기도 한다. 무엇 때문에 고맙다고 말하기를 주저하는가.


말로 고마움을 전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또 있다. 그것은 고마워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당신이 감사를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꼭 감사의 말을 들을만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대개의 경우 당신에게 느끼는 책임감, 관심, 동료애, 고마움, 사랑 등을 달리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심으로 상대의 고마움을 받아들이게 되면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는 듯한 놀라운 일이 생길 수 있다. 상대방을 너그럽게 배려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 완벽한 정신적 교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소중한 관계를 완성할 수 있는 확실하고 실질적인 두 번째 단계이다. 친구나 형제자매나 연인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친구가, 형제자매가, 연인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하면 족하다. 부모에게는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한 마디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려거든 되도록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하기를 권한다. 작은 친절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마음 깊이 새기고 고마워해야 한다. 우리의 관계는, 아니 우리의 삶은 타성에 젖기 십상이어서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른다.


스티븐 레빈은 『생애 마지막 일 년(A Year to Live)』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우리가 거짓으로 고마워할 수 없듯이 거짓된 용서도 있을 수 없다. 감사는 이해하고 존재하는 방식이다. 켜켜이 쌓인 혼란을 풀어가는 타고난 지혜이기도 하다. 아울러 감사는 우리가 잠시 발을 딛고 서 있는 깨달음의 땅이다."


기쁨 : 기쁨은 최고의 영양분이다 - "나는 운 좋은 사내입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말기 환자들에게 기쁨을 자아내려는 것은 경거망동이 아니다. 이런 환자들에게는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소중해진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상황에서 마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를 보이듯 마음속 생각을 숨김없이 드러낼 때, 설령 그것이 다른 사람 눈에는 어처구니없게 비칠지라도 기쁨은 경이로운 선물이 된다. 기쁨과 감사는 마치 떼려야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엮어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에는 어김없이 기쁨이 뒤따른다.


고맙다고 말할 때 우리의 마음은 한층 넓어진다. 분명하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웅숭깊은 행동이다. 살아오면서 자신이 받은 은혜들을 헤아리다 보면 가슴이 벅차올랐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떠오른다. 이제껏 누리지 못한 것보다 이미 누린 것들에 마음이 쏠린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릴 만큼 충분히 누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지 깨닫게 된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이 덧없이 스러지고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친절과 사랑으로 충만한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완전하게 이루었다는 뿌듯함과 그윽한 내면의 평화를 느끼며 임종하는 것은 특히 가족의 정성과 인간적이고 따뜻한 완화의료를 받은 환자들의 공통점이다.


나는 죽음을 앞두고 감사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솟는 변화의 힘이 얼마나 큰지 직접 겪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감사의 선물을 직접 받은 셈이었다.


운수 좋은 사내

내가 에르네스토를 만났을 때에 그는 죽음을 앞둔 대장암 환자였다. 처음으로 에르네스토를 만나러 가면서도 나는 그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자세나 마지막 말의 중요성에 대해 관심을 보일지 자못 걱정스러웠다. 라틴 아메리카계 남자들이 어른이든 아이든 할 것 없이 여린 감정들을 내색하기 힘들어하는 이른바 마치스모(machismo)가 강한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자로서 존경을 받으려면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어떤 고통도 참으며 절대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 .과연 마치스모는 죽음 앞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내가 처음 방문한 이후로 에르네스토의 암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내가 만날 때마다 그는 나날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한편 간은 암세포가 퍼져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서 오른쪽 갈빗대 밑으로 손만 대도 물컹한 것이 쉽게 만져졌다.


나는 격주로 그들의 집을 찾아갔다. 그럴 때마다 거의 에르네스토는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대개 진찰과 약물 치료는 20여 분 안에 신속하게 끝내고 우리 세 사람은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에르네스토는 이따금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운 좋은 사내입니다. 신이 내게 주신 모든 선물에 감사해요. 늘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내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는 걸 지금에야 비로소 깨달았네요!"


에르네스토도 아내 훌리아도 부부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시절 늘 넉넉하지 않은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요모조모 꼼꼼히 따져서 결정했던 것처럼 부부는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얼마 남지 않은 나날을 가족에게 투자하기로 했다.


한없이 아름다운 죽음

내가 마지막으로 에르네스토를 찾았을 때 그는 자신들의 살림집인 트레일러 맞은편에 있는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다. 병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그는 기력이 거의 다 빠진 것 같았다. 훌리아와 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내 조언대로 가족으로서 서로 용서하고 감사한다는 말을 주고받았으며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라틴 남자들의 지배적인 인습 때문에 그가 할 말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내 우려는 근거 없는 기우였다.


내가 진료기록일지며, 청진기며, 외투를 주섬주섬 챙겨 문고리를 잡는 순간 에르네스토가 손을 들어 나에게 돌아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그의 침상 곁으로 다가섰다. 여전히 말은 하지 않고 손을 저으며 내게 바짝 다가서라는 시늉을 했다. 내가 몸을 숙여 그의 입에 귀를 바짝 댔다. 그는 눈 깜짝할 새에 무서운 힘으로 내 목을 끌어당겨 뺨에 입을 맞추었다.


"테 아모. 그라시아스. 미 아미고(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내 친구여)!" 에르네스토는 이렇게 말하고 내 목을 풀어주었다.


에르네스토의 애정 표현에 나도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훌리아가 놀란 것에 비하면 나의 놀라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순간 굳어버린 듯이 서 있는 훌리아를 바라보니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평생 살았지만 남편의 이런 모습은 못 봤어요. 남자에게 입을 맞춘 것은 아마 처음일 거예요."


나는 서툰 스페인어로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당신을 알게 되어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살면서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에르네스토는 한없이 평화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감사를 느끼고 표현하는 그의 능력은 역설적이게도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음의 찰나에 훨씬 더 커졌던 것이다. 그가 내게 전한 고마움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느낀 만족과 평화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는 이제 작별 인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의사로서 내가 보살핀 환자가 죽는 순간에 평안을 얻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그리고 같은 남자로서 더욱 깊은 감동을 받았다.

 


관계 완성을 위한 마지막 절차 - 작별 인사 Good-Bye

영원한 안녕을 고하는 마지막 단계 - 작별 인사 나누기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작별 인사이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군가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오히려 함께하는 삶을 더 소중하게 느끼기도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작별을 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여느 때보다 훨씬 더 절실하게 느낄 때가 있다. 그런 고로 당신이 작별 인사를 하면서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당신은 작별을 할 때마다 한편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는 마지막 중요한 말들은 작별 인사의 가치를 인정하게끔 도와준다. 무슨 말인가 하면 건강하고 충실한 삶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필수 요소이자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작별 인사임을 알게 해준다는 뜻이다. 아주 가까운 누군가가 죽어갈 때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알게 되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플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마지막 말을 전한다면 작별 인사를 건네는 괴로움 중에도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다니엘 슈만은 인생을 만끽했다. 미국의 명문, 이른바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뒤 세계를 여행하며 인생을 한껏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서른아홉이라는 젊디젊은 나이에 임종을 맞게 되었다. 다니엘은 자신이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에 분노로 맞서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쓸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현명한 것을 택했다. 다니엘은 어머니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써서, 자신이 임종을 앞두고 최대한 열심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비록 아까운 나이에 일찍 죽을지라도 작별 인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렸다.


어머니께

어머니, 제게 남은 이 생의 마지막 나날들이 몹시 괴로울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제 생애 최고의 날들이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했으니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느긋한 마음으로 모두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하는 일이 절대로 없었을 테죠. 마치 시꺼먼 구름을 뚫고 찬란하게 쏟아지는 은빛 햇살처럼 느껴집니다. 꿈을 이룰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죽은 사람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내가 천국에 갔느냐고 누군가 묻거든 어머니, 이렇게만 말씀해 주세요. 저는 원래 그곳 사람이었다고.

-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 다니엘 드림


사랑과 작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는 죽게 마련이고, 그러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할 때가 반드시 온다. 우리는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을 보내주어야 하고 그들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 정교회의 어느 신부는 결혼식을 주관할 때마다 하객들에게 반드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시키는 시간을 마련한다. 신랑 신부와 양가 가족들이 서로 지극한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면 병들거나, 힘들거나, 슬플 때에도 가족이 더욱 단단하게 이어질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신부가 굳이 이런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삶을 완전하게 하는 가장 경사스러운 날을 더욱 뜻 깊게 하자는 의미에서이다.


만일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완전한 사랑에 이를 수 없으며 살아도 반쪽 인생만 사는 격이다. 자기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에필로그 - 마지막 인사

관계를 완성하려고 애쓴 사람들의 본보기가 나이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에게 모두 놀라운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마지막 말이 세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인생의 지혜를 함축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떤 세대이든 자기 삶이 잘못되었을 때 어느 정도는 부모를 탓하는 듯하다. 나와 동시대 사람들인 베이비붐 세대들이 연로한 부모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청소년기의 갈등, 뿌리 깊은 좌절감, 원망, 해소하지 못한 분노 등이 메아리처럼 들려올 때가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는 가장 위대한 세대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것이 정말 사실일 수도 있다. 많은 것을 희생하고 역경을 견디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세대 중 완벽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부모 노릇을 하다 보면 겸허해진다. 나는 내 자식들이 성인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부모 노릇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 좋은 부모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용서하고, 감사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기회가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는 우리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의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모든 일을 떠맡은 만큼 우리가 누린 혜택에 보답할 때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에 속하는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은 우리 세대가 직면하게 될 핵심적인 사회문제이자 윤리적 시험인 셈이다. 이것은 합격하기가 녹록치 않은 시험이다. 우리 부모들도 우리가 이런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을 만큼 우리는 전례 없이 큰 도전을 받고 있다.


고령화, 질병, 보살핌과 관련된 사회적인 요구가 거대한 물결처럼 우리를 향해 밀려들고 있다. 그 물결은 이미 우리 발목까지 차올랐다. 21세기에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의 인구 중에서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든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러한 고령화 사회와 더불어 또 한 가지 특징은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 세대에 비해 훨씬 이동성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우리 세대는 친부모나 장인장모와 아주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 규모도 예전에 비해 훨씬 작다. 또한 우리 세대는 경제적 타산을 맞추기 위해 몇 가지 일을 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보살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잠재 인력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반면에 결과적으로 20세기의 산물인 숱한 만성질환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난제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심장, 간, 폐, 신장 따위의 질병이나 암에 걸린 사람들은 일찍 사망했다. 그런데 지금은 병에 걸린 사람들도 삶의 마지막 단계를 연장하며 몇 년 동안 제법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상들이 하나로 뭉쳐 보살핌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거대한 폭풍과 해일처럼 우리 자식 세대와 우리를 무섭게 압박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의 난제를 풀어야 한다. 창의성, 협동심, 한결같은 헌신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해내야 한다. 우리가 보살피던 부모가 임종하면 뒤이어 임종을 맞이하게 될 세대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지금 우리가 정립하는 보살핌의 본보기가 앞으로 우리 자신이 받게 될 보살핌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용서, 감사, 관용, 사랑을 베풀어서 자식들에게 귀감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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