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은밀한 인생

   
스리 오로빈도·마더(역자: 구미라)
ǻ
달팽이
   
12000
2009�� 02��



>& ■ 책 소개
명상이라는 심리 해부를 통해드러난 마음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고, 심리 건강과 성장을 위한 영성 수행법을 알려주는 책. 동양과 서양의 정신을 통합한 미래지향적 특성을 지닌‘삶의 요가(Integral Yoga)’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스리 오로빈도의 저서 중에서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글을 선별하여 엮은 것으로,스리 오로빈도의 영적 동반자인 마더의 글도 함께 담아냈다.


& 희미한 내면의 빛을 따라 저 깊은 곳으로 도달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그렇게도달한 중심에 ‘나’를 위치하고 살 때 진정한 평온과 만족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아울러 깊고 은밀한 곳의 중심에 ‘나’를 위치하고 살아갈 때진정한 평온과 만족을 누릴 수 있음을 증명한다.


■ 저자 
스리 오로빈도
 - 1872년인도 캘커타에서 출생.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조국에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영적 수행자로 삶의 전환을 맞는다. 이후 폰디체리를 근거지로자신의 영적 체험을 글로 발표하면서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그가 제시한 삶의 요가(Integral Yoga)는 동양과 서양의 정신을 통합한미래지향적 특성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1950년에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중 『신성한 삶』『요가의 종합』『요가를다룬 서신』『사비트리』 등은 문학적이고 해박한 저술로 유명하다.


마더 - 1878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젊어서는 인상파 화가로 활동하다 신비주의 운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인도에서 스리 오로빈도를 만난 이후 그의 영적 동반자가 된다. 스리오로빈도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후 스리 오로빈도 아슈람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활동한다. 1973년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기도와명상』『교육에 대하여』『마더 어록』 등이 전집으로 간행되었다.


■ 역자 구미라
1971년 출생.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2002년 영적 종교적 관심을 갖고 서울을 떠나 경북 가은으로 내려갔다. 이후 전남 순천, 보길도를 거쳐 지금은나주에 살면서 명상과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2004년 만 1년에 걸친 인도 체류가 이 책의 모태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에코요가』가있다.


■ 차례
책머리에


1. 개괄적인 방법과 그 원리
차분하고,평정하고, 평온한 것이 유일한 길 | 의식의 폭 넓히기 | 관조냐 분석이냐 | 의지를 발휘하기 | 휴식과 이완 | 잠 | 원기를 회복하기 |초연함과 거부 | 평상심


2. 마음에서 비롯된 심리 장애
마음의소음 | 망상과 강박관념 |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 | 근심

3. 생기계에서 비롯된 심리장애
두려움 | 권태와 무기력 | 우울증 | 화 | 불안과 조급증 | 열등감 | 예민한 감수성 | 질투 | 생기계를변형하기


4. 몸에서 비롯된 심리 장애와 육체계적의식
휴식, 차분함, 선의 | 의지, 단련, 인내 | 병에 대한 불안 | 암시와 강한 신념 | 약 | 신경치료


5. 잠재의식에서 비롯된 심리장애
잠재의식을 다루는 법 | 잠재의식적 습관 | 집단 잠재의식의 영향력


6. 심령체와 심리 건강
심령, 내면행복의 근원


7. 성숙과 완성을 위한 실천방법
안으로 물러서기 | ‘나’를 제대로 알기 | 자기를 관찰하고 조직하기 | 심상창조로 자기 존재를 발견하기 | 내면의식을 일깨우기 | 정적인 힘을 발휘하기 | 자기 안의 어둠을 인식하기 | 마음가짐을 통한 정복 | 동일화 | 의식을 확장하기 | 역동적인 명상| 긍정적인 힘에 다가서기 | 항상 중심으로 되돌아가기 | 인생을 거울로 활용하기 | 마음의 평온을 확고히 하기


& 부록 - 최고의 진리
옮긴이의글
후주





깊고 은밀한 인생


책머리에

우리의 심리 상태는 보통 다양한 정도의 심각성을 띠고 점철되는 장애들이 그 특징이다. 흔한 장애로는 공포, 근심, 우울증, 불안, 초조, 화, 질투, 의심 따위가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장애들이 정상으로 간주된다. 개인이 겪는 장애가 정상으로 간주되는 정도를 넘어설 때, 그 사람은 정신 건강의 결핍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장애가 과도한 비율에 달해 개인이 현저히 무력해질 때, 그 사람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주위에서 여긴다. 따라서 건강한 정신은 대개 두드러진 심리 장애가 없는 상태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이유에서 건강한 정신에 대한 그런 식의 관점이 불충분하다고 느낀다. 우선, 건강한 정신은 평온, 내면의 안도감, 확신, 자유자재한 느낌 등과 같은 심리적 안녕의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어떤 긍정적인 특징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 생각이다. 단지 현저한 장애가 없는 것만으로는 건강한 정신이 성립되지 않는다. 둘째, 사람들은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것이 단지 근심, 우울증, 흥분 등과 같이 비교적 심각한 장애들만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심지어 끊임없는 잡담과 산란한 마음, 부단히 욕망의 다른 대상들에 연연해하는 것, 주기적인 무력감 등과 같은 거의 사람들이 심리적 장애로 간주하지 않는 것들조차 갈수록 많은 사람들에 의해 내면 안녕을 손상시키고 따라서 정신 건강의 결핍을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심리 치료의 모든 체계는 인간 본성의 일정한 개념, 즉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인간 본성에 관련해서 정상, 비정상 내지 장애에 해당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어떤 심리 치료 방법이든 적용하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의 개념과 그 방법이 근거로 삼고 있는 심리 장애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다. 이 서론은 스리 오로빈도와 마더가 수립한 삶의 요가(Integral Yoga)의 견지에서, 인간 본성과 심리 장애 및 정신 건강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존재를 구성하는 성분들

몸과 감각 기능 외에도,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생각, 감정, 욕구, 충동과 같은 다양한 심리 요소들을 의식하며, 그것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보통 마음이라 칭한다. 그러나 삶의 요가에서 봤을 때, 우리 존재는 다양하고 뚜렷한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스리 오로빈도는 말한다.


"일상 표현에서 마음(mind)은 구별 없이 전체 의식을 망라하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마음을 주로 하는 존재이고 모든 것을 마음으로 환원하기 때문이다. (…) "우리 존재의 각 층, 마음계(mental), 생기계(vital), 육체계(physical)에는 상호 연결되고 상호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별개인 그 자체의 의식이 있으나,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서 외면적 마음과 감각에는 그것들이 모두 한데 뒤섞여 있다."


위에서 언급한 존재의 세 성분, 마음계, 생기계, 육체계는 존재 외곽을 구성하고, 각 성분은 그 자체의 뚜렷한 본성과 특징이 있다. 아래 글은 스리 오로빈도가 세 가지 성분을 짤막하게 묘사한 대목이다.


"(…) 이 요가의 어휘에서 마음과 마음계는 본성에서도 특히 인식과 지성, 개념, 마음 내지 사고를 통한 인지, 사물에 반응하는 생각, 순전한 마음계의 작용과 조성물(formations), 마음의 통찰력과 그 의지 등 지성에 속하는 것들과 관련된 성분을 내포하기 위해 사용된다. 생기계(生氣系)는 비록 그 안에 스며든 마음계의 요소를 포함한다 할지라도 마음과 신중히 구별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생명 본성(Life-nature)으로서, 욕구, 감각, 작용, 감정, 열정, 행동에 남긴 원기(energy), 욕구하는 의지, 인간 안에 남아 있는 욕망하는 넋(desire-soul)의 반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소유욕과 화, 두려움, 탐욕, 성욕, 본능 따위의 소유욕에 관련된, 이 영역의 본성에 속하는 여타 본능들의 모든 활동으로 구성된다. 마음과 생기계는 의식의 표층에서 서로 섞이지만, 본질적으로 완전히 별개인 세력들이고, 우리는 일반적인 표층 의식 너머에 도달하자마자 그것들을 별개로 보고, 그 차이를 발견하고, 이 앎에 힘입어 그것들이 표층에서 섞였을 때 분석할 수 있다."


"몸은(…) 그 자체의 의식이 있고, 심지어 마음계의 의지 없이도 또는 그 의지에 역행해서라도 자체의 의식에서 행동하는데, 우리의 표층 마음은 이 신체 의식(body-consciousness)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고, 단지 불완전한 방식으로만 그것을 느끼며, 그것이 낳은 결과들만을 보고, 그 원인을 알아내는 데에는 굉장히 애를 먹는다."


세분화된 성분들

존재의 다양한 성분들은 상호 연결되었기에 상호작용하며, 그 결과는 존재의 각 성분 내의 뚜렷한 세분화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마음 이외에도, 생기계와 혼합된 마음의 성분으로서 생기계적 마음(vital mind)이라 불리는 것이 존재한다. 또한 육체계적 마음(physical mind)이라고 해서, 육체계와 섞인 마음의 성분도 있다. 유사한 세분화가 생기계와 육체계에서도 존재한다. 이 다양한 세부 성분들 중 세 가지가 이 편저의 주제와 특히 관련되었기에 아래에 기술한다. 그 성분이란 육체계적 마음, 생기계적 마음, 생기계적 육체계(vital physical)이다.


육체계적 마음은 마음에서도 육체계 의식의 특성을 공유한 측면을 가리킨다. 육체계의 주요 특성들 중 이를테면 타성, 자동인형처럼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경향, 반복성, 폐쇄성(constriction), 무질서한 활동(chaotic activity)은 육체계적 마음에 반영되어 무기력한 마음, 불확신, 갈팡질팡, 기계적인 반응, 습관적인 사고 양식의 형태를 취한다. 육체계적 마음 중에서 육체계와 가장 근접한 부분을 기계적인 마음(mechanical mind)이라 한다. 그것은 무슨 생각이 떠오르든 계속 돌고 도는 기계처럼 반복한다.


생기계적 마음은 생기계 세력들(vital forces)과 생기계의 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따라서 사고하는 마음과는 달리 그런 영향들에 구애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생기계적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거나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든 실패이든 기쁨이든 고통이든 행운이든 불행이든 그것들에 대해 꿈꾸고 공상하는 것이다.


생기계적 육체계는 생기계와 섞인 육체계의 성분을 가리킨다. 신경의 반응과 반사적인 감각 기능, 반사적인 감정에 관여하는 것이 바로 이 성분이다. 그것은 또한 고통을 느끼는 주체이기도 하다. 삶의 요가에서 봤을 때, 외면적 존재(인간의 존재 양식을 고려했을 때 그 삶이 주로 외부 세계의 지배를 받는 측면을 일컫는 말이다)의 각 성분마다 일정한 심리장애들이 본질적으로 내재한다.



개괄적인 방법과 그 원리

차분하고, 평정하고, 평온한 것이 유일한 길

고통이 사라지는 방식을 보면 전체 본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마음과 생기계의 경우도 육체가 불편하고 이상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다룰 때와 똑같다. 내면에 차분함을 유지하고, 신념을 꽉 쥐고서, 차분하고 열린 상태로 신성한 세력[Force, 우주의 생멸과 변화를 담당하는 프라크리티(Prakriti), 그것에서도 에너지, 힘의 측면을 가리키는 용어]이 작용하게 놔두는 것이 유일한 길임을 몸소 체험하라.


어떤 병이든 차분함을 유지하고 정신을 한곳에 모으면서 위로부터 내려온 신성한 세력에게 제 역할을 맡기는 것이 가장 확실한 치유법이다. 이를 올바르게, 적절한 때에 그러면서도 지속적으로, 확고한 신념과 강한 의지를 갖고 행한다면 이에 저항할 병은 없다.


의식의 폭 넓히기

대개 보통 사람들은 생기계의 작용인 화, 욕구, 탐욕, 성욕 등을 자연스럽고 정당하며 지당한 것으로, 인간 본성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단지 사회가 으름장을 놓거나 정해진 범위를 넘지 않도록 혹은 예의 바른 자제와 기준에 따르도록 구속을 늦추지 않는 한에서만, 사람들은 사회적 도덕 기준이나 행동 규범에 맞추기 위해 그것들을 제어하려 애쓴다. 반면 여기서는 영성을 추구하는 모든 삶이 그렇듯 이들을 극복하고 완전히 지배하도록 요구한다. 그런 까닭에 내면의 몸부림이 더욱 느껴지는데, 통제를 요구하는 영적인 마음과 이에 반발하면서 과거에 그랬듯이 새로운 삶에서도 지속되기를 바라는 생기계의 작용 간에 싸움이 강렬한 까닭이다. 


자기 완성을 이루는 첫 단계는 나 자신을 자기 존재의 여러 성분들과 그 개개의 활동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의 기원, 자기를 행동으로 내모는 많은 충동들, 반응들, 상충된 의지들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당신은 이러한 제각각의 성분들을 서로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많은 끈기와 성실함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 특히 인간 마음의 본성은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유리한 해명을 갖다 붙이는 타고난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활동들을 주의 깊게 관찰할 때에만, 그것들을 말하자면, 우리의 최고 이상이라는 법정 앞에 세우고 그 판결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진실로 마음먹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가 실책 없는 분별력을 함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의식하는 삶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적 작업이 좀 필요하다. 수면(水面)에서 물러나야 한다. 거의 전적으로, 모든 이가 표면에서, 늘 표면에서 산다. 그들이 의식하는 것이라곤 작고 얇은 껍질에 불과하다. 자기와 사물,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그 얇은 껍질이 전부다! 외면적 의식에서 벗어날 때 삶의 확대가 느껴지려면 상당히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 사실 그것만으로 이미 큰 진척이다. 그러고 나서 최상의 경지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적인 의식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때 검은 구멍 속으로, 어쨌든 무미건조하고 생기 없는 회색지대, 무질서한 사물들이 혼돈 속에 섞인 상태, 극히 희미한 빛만이 비치는 그 속으로 추락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몸에서 비롯된 심리 장애와 육체계적 의식

의지, 단련, 인내

당신 안에서 극복하려는 의지를 일깨워라. 단순한 마음 속 의지가 아닌, 몸 세포 세포 속 의지 말이다.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만 가지 약을 복용하더라도, 그 육체 질환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이는 약효를 기대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고리를 끊어서 고통을 무화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아프기 때문에 병을 고칠 생각을 한다. 만약 질병으로 아무런 불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절대 거기에서 나을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 따라서 자연의 섭리에서 통증의 일차 목적은 경고를 알리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불행하게도, 그 일에 참견하여 고통을 확대하고, 비틀고, 첨예화하는 데서 아주 뒤틀린 쾌감을 맛보는 생기계란 놈이 존재한다. 자, 이로 해서 전체 체계가 망그러지는데, 왜냐하면 지표가 되기는커녕 고통은 때때로 병을 즐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또한 청승을 떨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예외 없이 생기계에서 비롯되고 어느 것 할 것 없이 가증스러운 온갖 것들이 그렇다. 하지만 원래는 이런 뜻이었다. "조심해!" 당신도 알다시피, 그것은 위험신호와 같다. "조심해, 뭔가 이상이 생겼어."


단지 몸을 너무 애지중지하지 않을 때, 조금 인내하고 지나친 신경을 쏟지 않겠다고 내심 마음먹을 때, 고통은 아주 현저하게 줄어든다. 게다가 단순히 결과를 제거함으로써, 다시 말해 통증을 멎게 함으로써 고칠 수 있는 많은 병 내지 육체적 불균형 상태들이 있다. 대개 병은 원인이 그대로이기에 재발한다. 만약 병의 원인이 발견되고 그 원인에 직접 작용을 가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고통을 차단하거나 제거하거나 자기 안에서 고통을 정복하는 식으로 해서, 병에 작용하기 위해 이 영향력을, 고통에 대한 이런 식의 제어를 이용할 수 있다.


암시와 강한 신념

병 내지 육체계적 존재의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일으키는 암시들은 대개 잠재의식을 통해 온다. 육체계적 존재, 즉 가장 물질적인 성분인 그것의 상당한 부분이 잠재의식적이고, 이는 다시 말해 육체계적 존재에는 그 자체의 막연한 의식이 존재하지만 너무 막연하고 자기 안에 갇혀서 마음은 그 작용이나 거기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인 것이 분명하며, 마음과 생기계의 경우처럼 외부에 있는 세력들로부터 암시를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신체에 의식적인 마음의 암시를 가해서 그 암시가 잠재의식 내의 모호하고 은밀한, 병의 암시를 상쇄시킴으로써 병을 치유하고 있다. 그것으로 입증되는 것은 병에는 순전히 물질적인 원인이란 없고, 신체에 있는 은밀한 의식의 교란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암시라고 할 때 내가 의미하는 바는 그저 생각이나 말이 아니다. 암시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아닌, 외부에서, 타인에게서 전체 분위기에서, 또는 외부 자연에서 오는 생각이나 느낌이다. 만약 그 암시를 받아들이면 달라붙어서 존재에 작용하고 그래서 본인의 생각이나 느낌으로 착각된다. 그것이 암시인 것을 제대로 알면 더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의료 처방에 대해 말하라면, 그것은 때로 필요하다. 당신이 종종 보여주듯 절대 세력에 의해 치유될 수 있다면 최선이지만, 어떤 이유로 몸이 절대 세력에 응할 수 없다면(예를 들어 불확신, 무기력, 의기소침 때문에, 혹은 질병에 대한 저항 능력이 부족해서), 그때는 의료 도움이 필요하다. 절대 세력이 더 이상 작용하기를 멈추고 약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기 때문이 아니다. 절대 세력은 의식을 통해 계속 작용할 것이지만 몸에서 일어나는 저항에 직접 작용하기 위해서는 치료라는 지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신체란 그 일상적 의식에서는 물리적인 수단에 더 쉽사리 반응한다.


전적으로 신념과 요가역량 내지 신성한 세력의 유입으로 병이 나을 수 있다면 아주 바람직하다. 하지만 아주 종종 이는 전체 본성이 절대 세력에 열리지 않았거나 응할 수 없다는 이유로 꼭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마음은 신념이 있고 응할지 몰라도, 하부 생기계와 신체가 따르지 않을 수 있다. 또는 마음과 생기계가 준비가 되었더라도 몸이 응하지 않거나, 단지 일부만 응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몸은 특정 질병을 유발하는 세력들에 반응하는 습관이 있고, 습관이란 자연의 물질적인 성분에서 아주 집요한 동인인 까닭이다. 그런 경우 물리적인 수단에 호소할 만하지만, 주요 수단으로서가 아닌, 절대 세력의 작용을 돕거나 물질적으로 거드는 정도이다. 강력하고 격렬한 요법이 아닌, 신체를 교란시키지 않으면서 도움을 주는 요법들 말이다.


건강이 온전하기까지 거의 사십 년 가까이 나는 허약한 체질이어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질병을 앓았고, 이 저주를 자연이 내게 지운 짐으로 잘못 생각했다. 내가 의약의 힘을 더 이상 빌리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때 질병들이 실망한 식객들처럼 내게서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나는 내 안의 자연스러운 건강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를, 또한 마음의 역량을 뛰어넘는 초월적 의지와 신념, 즉 신이 이 몸 안의 우리 생명을 지원하는 신성한 조력으로서 의도한 것들이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만약 당신이 내면 작용에 의해 병의 악화를 막아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상당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꾸준한 실행으로 그 능력을 강화해서 치유력으로까지 이르게 해야 한다. 그 능력이 온전하지 않는 한, 어떤 물리적인 수단의 도움도 전적으로 거부될 것만은 아님을 유념하라.



성숙과 완성을 위한 실천 방법

안으로 물러서기

대다수가 자기 존재의 표면에 살면서 외부 영향력에 노출된 상태이다 당신은 이를테면 몸 밖으로 거의 튀어나와 살고, 그래서 유사하게 돌출된 어떤 불쾌한 존재와 만나면 기분이 상한다. 모든 말썽이 안으로 물러서는 것에 익숙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다. 당신은 언제나 자기 안으로 물러서야 한다. 내면 깊이 들어가는 법을 배워라. 안으로 물러서면 무사할 것이다. 외부 세계에 돌아다니는 피상적인 세력들에 동조하지 마라. 비록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있을지라도 일시 안으로 물러서면 놀랍게도 훨씬 더 빨리 일이 더욱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음을 보리라. 누군가 당신에게 화를 내면, 그의 진동에 휘말리지 말고 단순히 안으로 물러서라. 그러면 부추김이나 반응이 전혀 없으니 그의 화는 수그러지리라. 항상 평온함을 잃지 마라. 평온함을 앗아가려는 모든 유혹에 맞서라. 어떤 결정이든 내릴 때에는 안으로 물러서고, 한 마디를 말할 때라도 안으로 물러서고, 어떤 행동에든 나설 때에는 항상 안으로 물러서라. 세속적인 세상에 속하는 일체가 무상하고 헛되기에 거기에는 기분이 상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지속적이고, 영원하고, 불멸하고, 무한한 것, 그것이 실로 지닐 가치가 있고, 정복할 가치가 있고, 소유할 가치가 있다. 당신이 사물의 상대성을 파악할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안으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다. 차분함을 잃지 않으면서 신성한 세력(Divine Force)에 호소하고 응답을 기다릴 수 있다. 그때 정확히 해야 할 바를 알게 된다. 따라서 아주 평온해지기 전에는 응답을 받을 수 없음을 기억하라. 그 내면의 평온을 실천하고, 최소한 작은 시작이라도 열어서 내적인 평온함이 당신에게 습관으로 자리할 때까지 실천을 거듭하라.


항상 중심으로 되돌아가기

사는 동안 일종의 공허, 텅 빈 순간이 몇 분, 때때로 그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나? 당장 딴 데로 주의를 돌리려 애쓰고, 시간을 보낼 어리석은 짓거리를 어떻게 해서든 궁리한다. 이는 일반적인 사실이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지루해 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제일 꺼리는 것이 권태이고, 권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어리석게 구는 것이다.


자, 그보다 나은 방법이 있으니 잠시 잊고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라.


한 시간이 됐든 몇 분이 됐든 조금만 짬이 생기면 자신에게 이렇게 상기시켜라. 이제에 내가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인생의 목표를 되짚고, 내 자신을 진리와 영원에 바칠 여유가 생겼구나. 외부 환경에서 놓여 날 때마다 잊지 않고 이렇게 한다면, 궤도에서 자신이 아주 빨리 전진하고 있음을 보게 되련만. 잡담하느라, 무용한 짓을 하고, 의식 수준을 떨어뜨리는 글들을 읽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최선의 사례들만 이야기하면 그렇다. 훨씬 더 심각한 여타의 우행은 언급하지 않겠다. 스스로 경박해지느라 애쓰지 말고, 이미 너무나 짧은 시간을 훨씬 더 짧게 만들어서 결국 인생 황혼기에 가서는 자기 운의 사분의 삼을 놓쳤음을 안타까워할 뿐인데, 그때 가서는 시간을 두 배로 들이고자 원해도 소용없다. 그러지 말고 절제된 태도와 균형과 인내심과 차분함을 지니고, 그렇지만 주어지는 기회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참된 목적을 위해 자기 앞의 텅 빈 순간을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 당신은 초조해진다. 사방을 뛰어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산보를 하고, 가장 양호한 것들만 말하면 그렇다. 그러지 말고 차분히 하늘을 마주하거나 바다를 앞에 두거나 나무 그늘 아래서(여기는 이것이 다 가능하다) 다음과 같은 것들 가운데 하나를 깨달으려 해 보라. 즉, 왜 사는지 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우치거나, 자신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와 무엇을 해야 할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무지와 거짓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선책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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