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즐거움

   
김열규
ǻ
비아북
   
12000
2009�� 06��



>& ■ 책 소개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학자가써내려간 노년 자화상이자 희망 자서전! 삶의 노숙함과 노련함으로 무장한 노년이야말로 청춘을 뛰어넘는 가능성의 시기이며 가슴 뛰는 생의 시작이라고이야기한다. 웰빙, 노익장 등 노년의 짧은 생각에서 자연과 시간, 그리고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까지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노년기라는 새로운 삶을사는 이들에게 희망찬 메시지를 전한다.


& 정신이 원숙해지고 지식이 완숙해지는 노년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황금기이며노익장을 과시할 수 있는 황홀한 시기이다. 노년이란 생의 마무리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고, 불안과 우울이 아닌 희망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한다. 한 평생을 90년이라 한다면, 3분의 1인 노년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양을 쌓으며 정신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삶이 완벽하게성숙된 노숙(老熟), 솜씨나 재주가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노련(老鍊), 노숙과 노련을 겸한 노장(老壯)"의 삼로(三老)를 스스로 겸할 수 있고,또 이를 실천하기를 권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말고 꿈이 있는 노후를 맞이하자고 말한다.


■ 저자 김열규 
1932년 경남 고성출생.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거쳐 동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했다. 서강대학교 국문학 교수,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독서』『한국인의 자서전』『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욕』『한국인의 화』『한국인의신화』『한국의 문화코드 열다섯 가지』『고독한 호모디지털』『기호로 읽는 한국 문화』 외 다수가 있다.


■ 차례
들어가며 - 세 가지 빛살로눈부신 노년, 그 새로운 시작에 부쳐서


1장 노년의 얼굴들 - 노(老)의 몰골과맵시
위인의 초상화, 노년의 얼굴|노, 그 멋진 말|어느 거룩한 노안|노숙, 나이든 보람|노현, 노년의 현명함|노익장,노년의 당당함|늙다리와 어르신|자연의 노대가|정정한 노년, 정정한 노송|외로움, 그 허허로움을 즐기다|죽음을 바라보는 세 개의시선


2장 행복한 노년을 위한 5금과5권
1금_ 잔소리와 군소리를 삼가라 | 2금_ 노하지 마라 | 3금_ 기죽는 소리는 하지 마라 | 4금_ 노탐을 부리지마라 | 5금_ 어제를 돌아보지 마라 | 1권_ 유유자적, 큰 강물이 흐르듯 차분하라 | 2권_ 달관, 두루두루 관대하라 | 3권_ 소식,소탈한 식사가 천하의 맛이다 | 4권_ 생각, 머리와 가슴으로 세상의 이치를 헤아려라 | 5권_ 운동, 자주 많이 움직여라 


3장 노년의 즐거움 : 문학과 예술, 그리고 현장에서 만난노년의 진면목
도나텔로가 그려낸 노년의 미학_ <막달라 마리아&& | 매화와 노송 그리고 칼날_ 남명 조식 |여든의 소녀들_ 정지아의 <봄날 오후, 과부 셋&& | 노년의 온기 _ 김성은의 <할아버지의 안경&& | 아흔에 새 출발하는노년들 | 87세의 최고령 마라토너 | 60대는 물론 70대도 중로 | 할머니들의 신바람


4장 내가 걷는 그 푸른 노년의인생길
여생, 그 싱그러운 초록빛 시작 | 참답게 웰빙하는 나이 | 노년의 녹색 지수 | 노심과 동심 | 신선과 노인 |악과 약과 낙 | 시골 할머니들의 아장걸음 | 차 마시기와 산책 사이 | 푸른 찻잔에 어린 생각 | 풀 마시고, 잎 먹고 | 나는 바람을 탄다| 퇴직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 상상의 날개를 달고 | 세 가지 시간 | 새의 날개를 타고 오는 시간 | 시계 너머의시간


& 나오며 - 새로운 시작, 브라보실버!




노년의 즐거움


노년의 얼굴들 - 노(老)의 몰골과 맵시

어느 거룩한 노안

노안이란 말할 것도 없이 노인의 얼굴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이다. 흔히 백발에 덮인 주름진 얼굴, 야위고 수척한 얼굴이 연상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연민이나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물론 노안이 이런 애틋한 인상임을 전적으로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무엇인가 긍정적인 면이 노안에는 어려 있다. 점잖음, 인자함, 아늑함에 다사로움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노안이 있다. 그래서 그 얼굴에는 풍요함과 넉넉함이 가만히 고여 있기도 하다. 보는 이의 마음이 푸근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노안을 보는 일은 그렇게 드물지 않다. 부드러운 할아버지, 자상한 할머니가 거기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온화함과는 대조적인데도 여전히 긍정적으로 여겨질 노안의 또 다른 면모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권위가 넘치는 엄숙함이고 위용이다. 거기에는 사려와 지혜가 어려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엄한 할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이들 부드러움과 엄함은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 맞물려 있는 노안의 긍정적인 두 가지 표정이고 인상이다.


이제 그 본보기를 하나 살펴보자.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화상>이다. 르네상스기의 천재가 그려낸 자신의 노안이다. 이 그림은 누구나 알고 있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모나리자>와는 퍽 대조적이다. 하늘과 땅의 요정이자, 산과 강과 들판의 요정이기도 한, 젊은 여성의 초상화는 우아한 아름다움, 감각적인 동시에 초감각적이기도 한 아름다움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의 <자화상>은 그렇지 않다. 사물이 갖는 물리적인 속성뿐 아니라 인체의 생리에도 밝았던, 이 다재다능한 천재는 머리카락과 턱수염의 꼬불꼬불한 선문, 날카로운 눈썹, 이마와 얼굴에 팬 주름, 눈와 코 그리고 입의 윤곽 중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정교하게, 또 치밀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특히 어지러울 정도로 정묘하게 묘사된 머리카락과 턱수염의 선문은 그의 또 다른 작품, <대홍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대홍수>에 묘사된 물살의 파동과 <자화상>의 머리카락이며 수염의 선문이 겹쳐 보이는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 자신을 그리면서 노년의 역학 또는 노년의 생명력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그의 <자화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거친 바람을 연상시키는 한편, 눈, 코, 그리고 입이 서로 삼위일체가 되어 무언가 짙은 인상을 풍기고 있다. 멀리 응시하는 눈매, 우뚝한 콧날, 그리고 앙다문 입술이 얼굴 전체에 걸쳐서 만만찮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인간의 생태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만큼이나 풍요롭게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자화상>은 1513년경에 그려졌으니 그가 생을 마감하기(1519년) 불과 6년 전이다. 밀라노에서 20년 가까이 보낸 뒤, 고향 피렌체로 돌아온 것도 잠시, 로마를 거쳐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생의 절정기가 저물어갈 무렵에 이 작품 <자화상>을 남긴다. 거기에는 죽음을 앞둔 그의 미학, 예술철학, 그리고 인생관이 짙게 아로새겨져 있다. 이 노년의 얼굴에, 그 노안에 슬픔이나 허무감, 또는 상실감 같은 것만이 어려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하염없다느니, 한스럽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할 것같이 느껴진다.


뚜렷한 선을 그리며 꼭 다문 입술은 다부지다. 야무지고 알차다. 마치 무슨 깊은 생각을 깨물고 있는 듯이. 우뚝하게 솟아오른 코가 그걸 더한층 강조하고 있다. 그런 입과 코의 상징성을 마침내 눈이 매듭짓고 있다. 그건 응시요, 통찰이다. 동시에 깊은 사색이다. 이를테면 필로소피렌, 곧 철학하기의 눈이다. 생각하고, 사색하고, 명상하는 눈이다. 그런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절로 숙연해진다. 옷깃이 저절로 여며지는 기분이다. 그 얼굴은 눈으로 응시하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 머나먼 것,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깊디깊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 같다. 영원을 되새기고 구원을 조망하는 영혼의 기척이 거기 어려 있다. 그러면서 엄숙하고 신비롭다.


그건 노안이나 간직할 수 있는 시각이고 시야이다. 삶을 겪을 만큼 겪어낸 사람의 지혜와 슬기가 거기 어려 있다. 삶에 익고 세계에 익숙한 노년의 예지가 그 얼굴에 하나 가득 고여 있다. 백발의 성긴 머리카락과 턱수염, 얼굴 전체의 주름살과 쭈그러진 피부, 그리고 기울어져가는 목숨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얼굴 표정만이 지닐 수 있는 성찰과 동경이 거기 서려 있다. 그건 노안의 또 다른 미학이다, 심미이다.


누구나 각자의 노안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화상>처럼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그리고 이런 소망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노년의 생활을 가꾸고 싶어 한다. 성자의 극치, 성스러움과 경건함의 극치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노년을 위한 5금과 5권

1금_ 잔소리와 군소리를 삼가라

오금 가운데 첫째는 투덜대지 말라는 것이다. 투정부리기, 삐쭉거리기, 구시렁대기, 중얼대기, 넋두리하기 등등에서 노년은 되도록 멀어져야 한다. 일그러진 얼굴, 둔한 칼자루를 내민 듯이 비죽대는 입술, 상대방을 해코지하는 날카로운 말버릇을 노년들은 피해야 한다. 그악한 말, 그악한 행동은 무엇보다 본인 자신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2금_ 노하지 마라

오금 가운데 둘째는 노년의 노(老)가 노기(怒氣)의 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기(老氣)와 노기(怒氣)는 사돈의 팔촌보다 더 멀어야 한다. 노여움을 머금는 것까진 몰라도 그게 밖으로 펑 하고 터져 나오면 흉측하다. 힘껏 안으로 누르거나 감추어야 한다. 한 집안의 큰 어른이 되었다면, 노발대발(怒發大發)은 평생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 마땅히 노발대발해야만 할 때는 위풍 있고 권위 있게 상대방을 압도해야 한다. 다이너마이트가 장소나 시간을 잘못 골라 터지듯이 아무 때나 노기를 터뜨리면 정말 꼴사나워진다.


3금_ 기죽는 소리는 하지 마라

노년에는 되도록 기가 죽고 풀이 죽는 소리를 삼가야 한다. 기가 죽을 짓이나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푸념은 무당이 귀신을 핑계로 다른 사람들을 몰아치는 소리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에 박힌 상처며 가슴에 품은 불만을 구중중하게 늘어놓음으로써 스스로 기죽은 꼴을 내보이는 것은 노년으로서는 차마 할 짓이 못 된다.


4금_ 노탐을 부리지 마라

참 묘하게도 노년이 되면 투덜대고 구시렁대면서 기가 꺾이는 한편, 허욕이나 탐욕이 많아지기도 한다. 나이 든 사람의 허황된 욕심을 노탐이라고 하는데, 이건 여간 악덕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은 줄어야 하는데, 거꾸로 그걸 더 돋우는 것이 노탐이다. 노탐은 흔히 허욕, 이를테면 허망하고 헛된 욕망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탐스러운 구석이라고는 단 한 곳도 없는 게 노탐이기 마련이다. 아무 보람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나 부작용만 불러올 허욕으로 노탐은 버글거리게 된다. 음식이나 옷가지 등에 대한 노탐도 문제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식탐이 제일 말썽이기 마련이다. 많이는 못 먹는데도 이것저것 챙기고, 또 맛이 있느니 없느니 투정 부리는 그 고약한 식탐은 필경 건강까지 해칠지도 모른다. 게다가 인품까지 엉망이 될 게 뻔하다.


5금_ 어제를 돌아보지 마라

과거에 집착하지 마라. 지나간 날에 마음을 주지 마라. "그때 난 이렇고 저렇고 했는데……." "내가 한창일 때는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내가 소싯적에는……." 이런 투의 말을 삼가야 한다. 대개 어제를 두고 우쭐대다 보면 끝에는 큰 한숨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어젠 이랬었는데 오늘은 왜 이 꼴이지?" 그러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하게 되는 것이다. 가버린 시간 때문에 현재의 시간을 꼴사납게 만들진 말아야 한다. 그렇게 흘려 보낸 오늘은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잃어버린 시간, 도둑맞은 시간이 된다.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는가!


1권_ 유유자적, 큰 강물이 흐르듯 차분하라

유유는 서두르거나 안달하지 않는 느긋함이고 자적은 자연스레 일이 되어가는 대로 행동하거나 마음을 내맡기는 것이다. 한편 순적이라는 말은 순탄하게 고분고분 행동하거나 마음먹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적은 자연스럽게 순적하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유유자적을 줄여서 유연(悠然)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유유자적은 태연자약과 좋은 짝이 될 수 있다. 벼락이 쳐도, 난리가 일어나도 까딱하지 않는 게 태연자약이다. 이렇게 태연자약할 수 있다면 유유자적한 강물 같은 노년은 거기에 더해서 거대한 바위 같고, 또 태산 같아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노년은 드넓은 강가에 유유히 솟은 암벽 같을 것이다. 그게 노년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의 궁극이다. 드높은 이상이다.


2권_ 달관, 두루두루 관대하라

인생, 그리고 세상일에 달관하자. 이런 몸가짐은 앞에서 말했듯이 유유자적하다 보면 저절로 터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노년이라면 누구나 따로 떼어서 각별하게 마음에 새겨두기를 바란다. 관대는 말할 것도 없이 너그러움이다. 드넓은 마음, 널따랗게 틘 마음이다. 웬만큼 마음 상하거나 언짢은 일, 어쭙잖은 일을 당한 것이 아니라면, 못 본 듯이, 못 들은 듯이 외면하고 마는 것이 노년의 크나큰 미덕이다. 노년을 돋보이게 하는 인품이다. 남은 물론이고 가족이 저지른 짓에 상심이 되더라도 모른 척 하고 고개를 돌리는 것, 그건 노년다운 심덕이다.


3권_ 소식, 소탈한 식사가 천하의 맛이다

소식은 말할 것도 없이 적게 먹는 것이다. 배가 터지게 먹어대는 먹보나 식충이 노릇은 노년에 할 짓이 못 된다. 그건 필경 자해 행위이다. 소화에만 나쁜 게 아니다. 몸 전체의 건강에도 나쁘기만 하다. 노년들에게 과욕은 독이고 적인데, 특히 먹는 일이 그렇다. 일본에는 배 팔부라는 말이 있다. 음식을 먹되, 배가 덜 찬 듯이 먹는 것을 그렇게 부른다. 일본이 세계 제일의 장수국가로, 백 살 이상의 노인인구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적게 먹는 소식에 있다. 그러니까 밥그릇을 아예 작은 것으로 바꾸고 많이 꼭꼭 씹어 먹는 것이 좋다.


4권_ 생각, 머리와 가슴으로 세상의 이치를 헤아려라

노년이 되면 자주자주 명상에 빠져 머리를 쓰는 것이 좋다. 고요하게.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바퀴처럼 머리를 빨리 돌릴 수도 있어야 한다. 약삭스러워도 좋다. 머리의 회전 속도가 빠를수록 좋다. 이를 위해 바둑을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장난삼아 무엇인가 가벼운 것을 걸고 화투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너무 집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꼭 이겨야 하고 반드시 따먹어야 한다고 악지를 부리면 안 된다. 그러면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난다. 머릿속에 짙은 안개가 일고, 눈이 흐릿해지고, 넋이 반은 나가면서 몸의 상태도 덩달아 흉측해질 수 있다. 그러니 그저 재미로, 한때의 여흥으로만 즐겨야 한다. 요컨대 명상을 하듯이 고요히 생각하든 자동차 바퀴를 굴리듯 생각을 굴리든 간에 자주자주 머리를 써야 한다. 우리 육신의 어느 부분이든 쓰지 않고 묵혀두면 절로 못 쓰게 되지만, 특히 두뇌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이래저래 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치매에 걸릴 확률도 비례해서 커지게 된다. 이 점을 각별히 머리에 새겨라.


5권_ 운동, 자주 많이 움직여라

노년일수록 머리뿐 아니라 몸도 자주 많이 움직여야 한다. 하다못해 몸부림이라도. 많이 크게 움직이는 것이 힘겨우면 꼼지락꼼지락, 살금살금, 야금야금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스트레칭은 제자리에 앉거나 누워서도 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짧은 동작이나 작은 움직임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보다 더 연속적이고 보다 큰 움직임을 평소에 몸에 붙여서 일상의 습관이 되고 생활의 리듬이 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작업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일들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취미 삼아서 하는 목수일도 좋고 청소나 부엌일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바지런히 몸을 놀려서 일하는 것이 노년에 몸을 관리하는 비결 중 하나이다.



노년의 즐거움 : 문학과 예술, 그리고 현장에서 만난 노년의 진면목

노년의 온기 _ 김성은의 <할아버지의 안경>

참 예쁘고 고운 동화이다. 읽는 사람의 마음이 절로 포근해지고 가슴이 다사로워진다. 그건 무엇보다도 할아버지의 훈김이다. 손자와 더불어서 꾸려가는 할아버지의 삶이 우리에게 끼치는, 아니 할아버지의 삶이기에 비로소 우리에게 끼치는 인간적인 온기이다.


엄마와 함께 기차역에 갔습니다. / 작은 도시에서 혼자 살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 할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얼마 전에 그만두셨대요. / 이제부터는 우리랑 함께 살 거라고 엄마가 말했어요. / 할아버지는 나를 보시더니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는 할아버지와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등장으로 온 집 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손수 집 안팎을 청소했다. 못 쓸 것들은 차곡차곡 챙겨서 집 안은 늘 깔끔해졌다.


"할아버지 누구 파가 더 잘 자라나 나랑 시합해요."


그렇게 도전장을 내민 손자와 함께 할아버지는 뜰 안에 꽃밭을 일구고 텃밭에는 채소를 길렀다. 그래서 소년은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게 여간 신나는 게 아니었다. 아침에 등교하는 손자를 골목 밖까지 바래다주면서 "잘 다녀오라"고 손 흔들어주는 할아버지, 오후에 하교하는 손자를 기다리다가 얼른 문을 열어주는 할아버지. 소년에게 할아버지는 사랑이고 정이었다. 할아버지는 뒷산 약수터에 갈 때는 자주 소년을 업어주곤 했다. 그럴 때 친구를 만나면 소년은 소리쳤다. "우리 할아버지야!" 저녁이면 할아버지는 꼬맹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는데, 그때마다 안경을 쓰곤 했다. 까맣고 동그란 테의 커다란 안경이었다. 그나마 희끗희끗 벗겨진 곳도 있고, 한쪽 다리에는 테이프가 붙여져 있는 낡은 안경이었다. 그런데 그 안경은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잔뜩 낡았는데도 할아버지는 그 안경을 무척이나 아꼈다.


그런 안경의 내력을 알게 된 손자가 "그럼 우리 아빠에게도 물려주셨다가 나중에 나에게도 물려주실 거예요?"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물론 네가 쓰고 싶으면 주지"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손자는 "에이, 난 싫어요. 난 멋진 새 안경 쓸래요"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소중한 안경을 손자가 그만 실수로 망가뜨리고 만다. 손자는 놀라서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방패연을 들고는 뒷산으로 도망친다. 해가 질 때까지 연을 날리던 소년은 집으로 몰래 숨어들어서는 부서진 안경이 나뒹굴고 있을 할아버지의 방을 살그머니 들여다본다.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안경이 부서져 있던 자리는 말끔했다. 소년은 꽁꽁 언 몸을 이불 밑으로 누이고는 스르르 잠이 들고 만다. 한참 뒤에 인기척을 느낀 소년은 방에서 나온다. 할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계셨다. 겁을 먹고 있는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말했다. "우리 강아지 깼니?" 그런데 할아버지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어, 할아버지 그 안경?" 소년이 어리둥절해하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으응, 안경은 괜찮다. 깨진 알은 바꾸고, 부러진 테도 살짝 붙였단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리고 이 동화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잘못했다고 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조그맣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나도 이 다음에 할아버지가 되면 그 안경 쓰고 싶어요."


그야말로 해피엔딩이다. 할아버지는 마냥 따뜻한 훈기이다. 가정의 온기이다. 관대함이고 너그러움이다. 이 같은 노년이 있기에 비로소 우리들 가정은 안정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기왕이면 사회에까지 번져나가기를 누구나 바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일부러 노년의 훈기를 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애써서 노년의 온기를 내치고 식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냉동의 사회로 싸늘하게 식어 가는지도 모른다.



내가 걷는 그 푸른 노년의 인생길

노년의 녹색 지수

노년일수록 초록이 커져야 한다. 노인일수록 파래야 한다. 푸르다 못해 짙푸르러야 한다. 20~30대는 원래 초록이라, 일부러 초록을 말할 필요가 없다. 노년은 둘레를 초록으로 갈무리하고 일상을 초록빛으로 무늬지게 해야 한다. 그래서 새파란 노년이게 해야 한다. 그것은 노년의 인생철학에서 금과옥조가 된다. 내게 뜰일, 채소밭일, 꽃밭일, 그리고 잔디밭일이 소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내 노년의 녹색 지수는 무한대이다. 봄날의 태산처럼 높고, 가을날의 푸른 하늘처럼 드높다.


몇 해 전, 그러니까 내 나이 70이 되던 해 봄에 집 옆의 채소밭을 개조했다. 밭의 모양새를 제법 많이 고쳤으니 개조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말을 빌려 개혁이라고 해야 할까? 200평은 더 되는 밭 둘레에 디귿 자로 둑을 쌓아올리고는 관상수와 유실수를 심었다. 사이사이에는 꽃나무도 옮겨 심었다. 그리고 밭 한복판에는 작은 동산을 쌓고는 아주 잘생긴 단풍나무 한 그루를 심은 다음 허브로 둘러쳤다. 그렇게 정원을 겸한 밭을 만들고 보니 여간 흡족하지 않았다. 경관도 좋고, 채소로 실속도 차리고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같은 밭일을 해도 꽃밭 사이에서 하니 능률이 오를 것은 뻔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날벼락이 떨어졌다. 면사무소에서 들이닥치더니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위협하는 게 아닌가! 죄명은 농지 훼손죄였다. 채소밭에 당치도 않게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어서 채소밭을 망가뜨린 죄라고 했다. 뒤늦게 나타난 그의 상사가 중재에 나서고야 겨우 나는 농지 훼손죄에서 벗어났다. 이 작은 사건은 제법 큰 뜻을 품고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정원이나 가든이 처한 불우한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드닝, 즉 뜰이나 정원을 가꾸는 것이라면 단연 영국이 세계 제일일 것이다. 미국의 첫 인공위성이 지상으로 보낸 메시지 가운데 "영국이야말로 가장 푸른 국가"라는 대목이 있었음을 영국인은 지금도 자랑스러워한다. 미국도 교외 주택의 경우 가드닝이 절대적이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유일한 가드닝 국가일 것 같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정기적으로 국내의 아름다운 정원들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가드닝의 녹색지수는 국가의 문화 수준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정은 어떨까? 모르긴 해도 전국 각지의 도시는 물론이고 군청 소재지에서조차 주민 차원의 가드닝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기일 것이다. 아파트와 주택은 도시라는 불모지 속의 황무지라고 하면 말이 지나칠까? 마찬가지로 공공의 가드닝도 흡족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초록은 생명의 바탕색이다. 어느 색깔의 꽃이든 초록을 바탕으로 비로소 피어난다. 그래서 초록은 꽃다운 생명의 모태이다. 지구 자체도 초록이다. 그리고 순연한 파랑이다. 산과 들의 초록과 바다의 푸름으로 지구는 자연스럽게 채색되어 있다. 물의 파랑과 초목의 초록, 이 둘은 지구의 양대 생명소가 된다. 우리에게는 활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먹을거리의 태반은 초록이다. 곡식이 그렇고 채소가 그렇다. 동시에 초록은 평화이고 안식이다. 인간 정서의 안존함, 인간 감정의 안정이다. 잠도 깊어지면 푸른 숲을 닮을 것 같다. 묵상도 초록으로 물들 때 비로소 명상의 경지에 드는 것 같다. 뇌신경의 안정과 활기를 동시에 살려내는 것이 초록이다. 초록은 사람들의 안력을 지탱해주고 시계를 넓혀주는 혜택도 준다. 초록을 자주 대하는 사람은 그 좋은 시력에 힘입어서 세상을 보는 시계도 넓어지는 게 아닐지.


좋은 시력 덕분에 나는 세상을 보는 시계는 몰라도 주위의 사물만은 황조롱이 부럽지 않게 보아낸다. 그렇기에 나무, 꽃, 그리고 채소를 가꾸는 가드닝은 나의 시력을 위한 가드닝, 더 나아가서는 나의 목숨을 위한 가드닝이 될 것이다. 가드닝은 다른 노년들에게도 절실한 일이다. 가드닝은 노년 자체를 파랗게 가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라의 녹색지수, 생활공간의 녹색지수를 선진국만큼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노년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들의 여가가 큰 몫을 해낼 테니 말이다. 그렇게 녹색지수를 높이면 노인의 생명이며 몸도 함께 싱그러워질 것이다. 아무튼 농지 훼손죄에서 별 탈 없이 벗어난 뒤 나의 가드닝은 한결 흥을 더해간다. 나의 노년은 그렇게 진초록으로 푸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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