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

   
김덕영
ǻ
인물과사상사
   
14000
2009�� 02��



>& ■ 책 소개
사회과학적,사회철학적관점에서 쓰인 정신분석학에 대한 전문적 교양서. 사회학자인 저자는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프로이트의 지적 세계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저자는 이책에서 한국 사회라는 억압사회에 접근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적 이론과 방법을 일반적인 수준에서검토해본다.


■ 저자 김덕영
1958년 경기도이천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괴팅겐 대학교 마기스터(Magister) 학위와 동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독일카셀(Kassel) 대학교에서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하였다. 2009년 현재 카셀 대학에서 사회학을 연구하고 있으며,사회학·철학·역사·종교·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저술과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 지은 책으로는 『현대의 현상학-게오르그 짐멜 연구』『주체·의미·문화-문화의철학과 사회학』『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이론·경험·실천. 인문사회과학 논리와 방법론 길잡이』『짐멜이냐, 베버냐?: 사회학 발달과정비교연구』『기술의 역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등이 있다. 그가 쓰고 옮긴 책 가운데 7권이 각종 우수 도서에선정됐다.


■ 차례
머리말 - 지그문트 프로이트에대한 어느 작은 사회학자의 애증


1.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는 누구인가?
코페르니쿠스와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 - 서구 지성사적 혁명의 계보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어떤 삶을살았는가


2. 정신분석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깊은인문학적 소양 - 그리스신화와 셰익스피어
자연과학과 철학에 눈뜨다 - 다윈과 괴테 그리고 철학
프로이트와 빈 - 시대적.사회적배경
인간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 - 19세기를 넘어선 19세기 사상가


3. 대(代)를 이은정신분석학
안나-안티고네  - 또 한 명의 프로이트, 안나 프로이트


4. 정신분석학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은무의식의 과학이다
과학혁명의 긴 여정 - 의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스승을 넘어서다 - "아버지 살해"로 얻은 패러다임의전환
자유연상법 - 무의식의 세계를 파헤치는 심리학적 탐침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 정신분석학과 그 치료가 추구하는 목표
사유와인식의 폭과 깊이를 더하다 - 정신분석학과 과학성의 문제
결정론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 프로이트는 결정론자인가


5. 인간의 본능과 이성, 그리고 전쟁과종교
비사회적이고 반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전쟁은 인간 본능의 발로이다
반계몽주의적 계몽주의자프로이트
프로이트와 짐멜 - 과연 종교는 환상인가?


6. 사회 이론과 문화이론으로서의 정신분석학
정신분석학의 확장 - 심리이론에서 사회이론?문화이론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보편적인가?
프로이트와 여성의 문제
합리적인사회와 문화를 위하여


7. 정신분석학과 범죄 그리고나치
처벌이 아니라 치료와 교육을 - 정신분석학과 범죄
왜 슬퍼하지 못하는가? - 나치의정신분석학


& 맺음말 - 지성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누군가 들어줄 때까지 결코 멈추지않는다.


&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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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


정신분석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인간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 - 19세기를 넘어선 19세기 사상가

현대 세계를 창시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프로이트는 19세기에 살면서 사고한, 전형적인 19세기적 사상가이면서 동시에 19세기를 넘어선 사상가이며, 그의 정신분석학은 19세기를 배경으로 그리고 19세기의 인간적 삶에 대한 답변으로 태동한, 전형적인 19세기적 사유물이면서 동시에 19세기를 넘어서는 사유물이다.


프로이트의 삶과 사고를 각인한 19세기 후반의 오스트리아는 그야말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750년 무렵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영국보다 늦은 19세기 들어와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시작한 오스트리아는 -독일을 포함해- 급속한 발전을 이뤄 이미 19세기 후반에는 영국의 발전을 따라 잡았다. 산업화, 아니 산업혁명으로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적 영역을 넘어서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근본적인, 아니 말 그대로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의식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모든 삶의 영역에서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기계론적 세계관이 형성되었다. 산업화와 더불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진행된 기계화는 당시의 과학자, 예술가 및 철학자들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인식하는 방식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프로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즉 그는 인간의 정신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공장에서 기계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비유했다. 또한 그와 더불어 인간의 정신적 활동을 기계 기계(론)적 운동 에너지 양 관성의 법칙 등 기계론적 용어를 통해 표현했다.


산업화는 규율사회의 도래를 초래했다. 산업화와 더불어 그 이전의 소규모 공장은 점차 대규모 공장으로 대체되었다. 공장에서는 노동자가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대규모 공장이란 수많은 기계가 설치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이 집중된 거대하고 인위적인 폐쇄 공간으로, 거기서는 분업화의 원리에 입각해 노동력이 분할 배치되었으며, 노동의 전 과정이 자본가나 그의 대리인에 의해 감시 통제되었다. 이처럼 공장은 철저한 규율사회가 되었는데 이 규율사회의 이념은 단지 공장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 즉 개인들은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공적/사적 삶의 영역에서 육체적 또는 감정적 욕구와 욕망을 통제하고 합리적으로 행위할 것이 요구되었다.


성윤리 또한 규율사회의 이념에 의해 지배되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바로 이러한 규율사회적 성윤리에 의해 억압된 환자들을 치료하는 임상 과정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프로이트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오스트리아가 산업혁명을 이룩하던 시절에 성윤리는 매우 엄격했다. 성적 자유는 용납되지 않았으며 성에 대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통제가 심했다. 성윤리적 측면에서 이 시기를 흔히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성을 윤리적으로 배척했으며 청교도 정신을 강조하고 옹호한 사실에서 유래한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경제적 번영과 물질적 풍요의 시대가 도래했다. 즉 인류는 엄청난 진보를 체험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는 진보의 이념과 낙관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더불어 발전한 산업자본주의는 인간을 반드시 행복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와 더불어 자본과 노동의 대립 등을 비롯해 수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진보의 이념과 낙관주의 이외에도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견해가 등장했다.


프로이트는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이 인간을 반드시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즉 비록 경제적/물질적 삶은 그 이전보다 풍요로울지 몰라도 규율사회는 인간의 영혼을 점점 더 억압하게 된다는 사실을 통찰했던 것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바로 이 자본주의적 규율사회를 그 역사적/사회적 배경으로 해서 형성되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바는 규율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인간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이트는 새로운 문화의 발전을 부정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고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 이 발전은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물줄기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과 사회의 조화를 그리고 쾌락과 노동의 조화를 추구했다. 프로이트는 이를 위해 인간 영혼의 심층을 탐험하고 인간의 영혼을 결정하고 억압하는 개인적/사회적 기제를 밝혀낼 수 있는 과학적 틀과 방법 및 도구, 즉 정신분석학을 구축했던 것이다.



정신분석학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의 과학이다

정신분석학은 근본적으로 무의식의 심리학이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무의식적 정신 과정을 밝혀내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이 추구하는 바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창시함으로써 인간 무의식의 세계가 비로소 진정한 과학적 관심과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의식의 심리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은 다음과 같이 기존의 의식의 심리학과 결정적으로 구분된다. 즉 무의식의 심리학은 의식의 심리학의 유일한 인식대상이던 의식적 자아를 단지 인간 정신세계의 작은 한 부분으로 다룬다. 자아는 이제 더 이상 그 자신이 거주하는 집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지니는 지성사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다. 무의식의 발견은 르네 데카르트 이후의 의식철학이 사유하는 자아에서 그 근거를 찾는 인간 정신의 최종적인 확실성을 뒤흔들어 버렸으며, 그와 더불어 의식을 왜소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 의식적인 자아는 인간의 행동에 대해 결코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을 언제나 의식적인 동기와 무의식적인 동기에 의해서 중층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원동력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인들이나 동기들은 종종 서로 모순적인 관계에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세계는 의식(意識)과 전의식(前意識) 및 무의식(無意識)의 삼차원적 구조를 이룬다. 첫째, 의식이란 인간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인지하고 인식할 수 있는 정신적 상태를 의미한다. 의식은 인간의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사고와 행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정신의 영역에 해당한다. 둘째, 전의식이란 의식의 전 단계로써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시켜 준다. 전의식은 일종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정신 영역에 해당한다. 셋째, 무의식이란 인간이 의식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는 정신세계이다. 무의식은 인간 정신의 심층에 잠재해 있으면서 인간의 의식적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고 결정한다.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구조적 표상, 즉 정신을 의식, 전의식 및 무의식의 삼차원적 구조로 파악하는 방식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정신의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즉 그때까지 정신은 합리적인 의식과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비합리적인 무의식도 정신의 구성요소라는, 그리하여 의식은 정신 그 자체가 아니라 정신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의해 전복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인간 정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다. 전의식도 무의식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정신세계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대별되는 셈이다. 아무튼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세계는 겨우 10분의 1 정도가 의식의 세계이고, 나머지는 무의식의 세계라고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빙산에 비유하곤 했다. 의식은 빙산 중에서 물 위에 나와 있는 부분에 해당한다. 이는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에 반해 무의식은 물속에 잠겨 있는 빙산의 나머지 대부분처럼 인간 정신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정신분석학은 바로 인간 정신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밝혀내는 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인성 또는 인격은 동질적이 아니라 다차원적이다. 즉 이드-자아-초자아의 중층적 구조를 이룬다. 이드는 쾌락원칙을, 자아는 현실원칙을 추구한다. 이에 반해 초자아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문화가 인간에 내면화된 상태인 도덕원칙을 추구한다. 그리고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중재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의 행동이란 단순히 자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이드와 자아 그리고 초자아 사이의 다양하고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행동이라도 이 세 요소들의 타협의 산물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적 기제를 심리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인과성에 의해서 빈틈없이 결정되는 시스템으로 간주했다. 또한 거기에 근거해 그때까지 그저 비논리적이고 우연적인 현상이라고 간주되어 온 다양한 인간 행동에 일정한 법칙적 논리성을 부여했다. 그럼으로써 이것들에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에서 비논리적이고 우연적으로 보이는 것에도 엄연히 논리성과 법칙성이 존재한다는 가정에 근거하는 정신분석학은 그때까지 간과되고 무시되어온 정신적 삶의 다양한 측면과 현상에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었다. 바로 여기에 프로이트의 지성사적 위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회 이론과 문화이론으로서의 정신분석학

정신분석학의 확장 - 심리이론에서 사회이론/문화이론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단순히 엄밀한 자연과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사회 그리고 문화 또는 문명의 기원과 존재 근거를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고 체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다름 아닌 종교심리학의 주제를 다루면서 자연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이론과 문화(명)이론으로 확장되어갔다. 그가 1913년 출간한 『토템과 터부. 미개인과 신경증 환자의 정신적 삶에서 일치하는 몇 가지 점들』에서 최초로 정신분석학적 사고 체계를 바탕으로 사회이론과 문화(명)이론을 발전시켰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프로이트가 1912~1913년 종교심리학에 대한 네 편의 논문을 쓰게 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자극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칼 구스타프 융이었다. 그런데 방법론적 측면에서 프로이트는 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왜냐하면 "민족심리학적 소재를 채용해 개인심리학의 문제들을 해명하려는" 융의 시도와 달리,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관점과 그 성과를 해명되지 않은 민족심리학의 문제들에 적용시키고자" 시도했기 때문이다. 칼 구스타프 융의 정신분석학적 연구업적 이외에도 프로이트의 종교심리학 연구는 독일의 생리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인 빌헬름 분트의 민족심리학으로부터 커다란 자극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방법론적 측면에서 프로이트는 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분트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었다. 분트는 일반적으로 심리학을 독립적인 분과 과학으로 발전시킨 인물로 간주된다. 그는 1879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세계 최초로 심리학 실험실을 설립해 심리학이 과학적 인식 형식으로 제도화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분트는 정신세계와 자연세계 사이에는 존재론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해, 정신세계의 존재론적 특성을 "창조적 종합"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분트에 의하면 창조적 종합은 정신적 에너지의 증대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새로운 가치 창출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개인의 역사, 공동체의 역사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 모두 적용된다. 정신세계와 자연세계의 존재론적 차이를 인정하고 인류의 진보를 가정하는 분트의 민족심리학은, 원시인과 신경증 환자의 정신적 삶에 일치하는 점들이 있다고 가정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근본적으로 대비된다.


당시의 빌헬름 분트는 민족심리학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이는 그의 방대한 저작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그의 종교심리학적 연구에서 단순히 분트와 대립되는 입장을 표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민족심리학 전체를 정신분석학에 의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모든 사회와 문화를 창조하는 근원적인, 아니 시원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원리에 의해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아닐까?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자극을 준 것은 분트의 민족심리학과 융의 정신분석학적 연구였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사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고고학, 선사학, 인류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1897년 5월 31일 빌헬름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근친상간 기피를 검토하면서 문화발전과 본능억압에 관계를 다루고 있었다. 또한 1897년 12월 12일자 편지에서는 이른바 "심리내적 신화들"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로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가 나오기 전인 1907년 이미 『종교심리학 저널』에 「강박 행위와 종교 행위」라는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 연구에서 프로이트는 강박 행위와 종교적 의식 사이에 존재하는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들을 비교하고 있는데, 여기에 사용된 개념들의 일부는 유대교 의식에 관한 그의 지식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아무튼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얻어진 원시사회의 지배 구조와 종교의 모습을 서구적 가족 구조의 분석을 통해서 얻어진, 그리고 정신분석학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입각해 재해석한 결과이다. 프로이트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종교, 도덕, 사회와 예술 등 인간의 모든 사회적 문화적 삶의 기원이 되는 현상이다. 그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사회이론과 문화이론의 개념적 이론적 기저를 이룬다. 그것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제일 동인이자 제일 원리인 것이다. 



정신분석학과 범죄 그리고 나치

처벌이 아니라 치료와 교육을 - 정신분석학과 범죄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의학의 영역에서 정신치료의 특정한 형태로 형성되고 발전한 정신분석학은 다음과 같이 실로 다양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되어왔다. 정신분석학이 이들 분야에 미친 영향은 끊임없이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과 형법(학) 및 범죄에 대해서는―적어도 한국에서는―지금까지 이렇다 할 만한 논의를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이 주창하는 합리적 사회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실제로 합리적 사회의 건설을 위해서 한번쯤 진지하게 다루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에 의해 영향을 받고 결정된다는 사실의 발견은 범죄학과 형법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다. 범죄자의 무의식적 행동이라는 개념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범죄학과 형법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정신분석학의 입장, 즉 인간의 정신적 삶은 중층적으로 결정되며 사회는 그 존속을 위해서 비사회적인 인간을 억압해야 한다는 견해는, 근본적으로 범죄학과 형법에 대치된다. 왜냐하면 범죄학과 형법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능력이라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비사회적 경향을 극복하는 것이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이다. 사회는 모든 개인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비사회적 충동을 교화시켜야 한다. 이를 문명화라고 부른다. 문명화의 수단으로는 무엇보다도 종교, 도덕, 윤리 및 법을 들 수 있다. 인간의 잠재적 악함은 교화과정의 결과로 무의식에 억제된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항시 의식의 영역으로 밀고 올라온다. 그러다가 특정한 상황이 주어지면 -이를테면 심리적 제어장치의 제거, 공황, 혁명, 전쟁, 범죄 등- 사회적 검열과 통제를 극복하고 실제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그러므로 인간과 사회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 모든 사회 상태는 욕망의 포기와 충족 사이의 균형 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그것은 욕망을 제한하는 사회와 욕망을 주장하는 개인 사이에 체결된 일종의 계약이다.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범죄의 발생에서는 개인적 삶의 환경과 조건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범죄자들은 많은 경우 그 육체적/정신적 구조에서 정상적인 인간들과 동일하다. 범죄자와 정상인들 사이의 차이는 유전적 요소보다는 나중에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에 의해 훨씬 더 크게 결정된다. 범죄는 선천적인 기질의 문제라기보다 후천적인 성장의 문제이다. 범죄자들의 대다수는 만약 그 삶의 환경과 조건 및 과정이 달랐더라면 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보면 교육과 사회화가 범죄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정신분석가에게 교육과 사회화는 언제나 개인들로 하여금 쾌락의 원칙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가정적/사회적 과정을 의미한다. 교육과 사회화는 잘 기능하는 초자아의 함양을 그 목표로 한다.


반드시 언급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범죄자의 책임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범죄 행위는 이드와 자아 그리고 초자아가 공동작용한 결과로 나타남은 정신분석학의 기본적인 지식에 속한다. 정신분석학이 요구하는 것은 다만 보다 합리적으로 정초된 자유의지와 책임성의 개념일 뿐이다. 그것은 기존의 자유의지와 책임성의 개념을 "자아가 범죄 행위에 관여하는 정도와 방식에 대한 순전히 과학적인 개념"에 의해 대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의식적 자아가 범죄 행위에 관여한 경우에만 그 정도와 방식에 근거해 범죄자의 자유의지와 책임성을 인정하고 형벌을 가해야 한다. 그밖의 경우에는 형벌 대신에 범죄자에 대한 치료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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