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미스트의 긍정코드 100

The Optimist's Handbook

   
닉 인먼(역자: 문세원)
ǻ
베이직북스
   
12800
2009�� 02��



>■ 책 소개
일반적으로 옵티미스트는 낙관주의자 또는낙천주의자로 번역될 수 있다. 흔히 허무, 비관, 우울, 불행, 외로움 등으로 대별되는 냉소주의자나 비관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반대되는개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긍정만 하는 사람과는 다르다. 옵티미스트는 어려운 환경이나 스트레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사람을 지칭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행동하는 긍정주의자’를 의미한다. 


이 책은 낙관주의적 처방을 통해 현실을 좀 더 명확하고 유용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를담았다. 완벽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그래도 희망의 편에서 긍정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물질의 풍요와 더불어 인간성의 상실은 곧 심리적으로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과 같은 사회 병리적 현상을 동반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아무리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더라도 성격이나 심리적 치료를 통하여낙관적인 자세와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을 조금씩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닉 인먼(Nick Inman) 
1956년요크셔에서 태어난 닉 인먼은 1970년대 브리스톨대학교(University of Bristol)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였으며, 후에 그는 스페인전문 여행 작가로 일하게 되었다. 현재 그는 프랑스 남서부에서 행복한 낙관주의자를 꿈꾸며 아내와 두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저서로는『Insight Guide Southwest France』『Spain Including the Balearics (CharmingSmall Hotel Guides)』등 다수가 있다. 


■ 역자 문세원 
인하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하였으며,이후 미국, 스위스, 캐나다 등지에서 유학과 직장 경력을 두루 쌓았다. 출판 및 산업 관련 여러 분야에 걸쳐서 번역 경력이 풍부하다. 현재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나는 피노키오 부모인가』『소년과 작은새』『세상에서 가장 포근한담요』『샘과 앨리스의 미라 대모험』『나는 무엇을 모르는가』『아빠-가제』 등 다수가 있다. 


■ 차례
*abc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나 순차적으로독서를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타주의(altruism) | 마취(anaesthetics) | 적합기술(appropriate technology) | 생태건축(ecological architecture) | 환경의경고(environmental awareness) | 최상의 세계(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 |몸(인체)[your body] | 책의 생존(the survival of the book) | 지루함의 종말(the end of boredom)| 캉디드(candide) | 사형(capital punishment) | 자선자본주의(caring capitalism) |아동(childhood) | 클라크의 불가능 안내서(Clarke"s guide to the impossible | 기후변화 1(climate[change(for believers)] | 기후변화 2[climate change(for deniers)] | 색(colour) |공동체(community) | 음모론(conspiracy theories) | 용기(courage) | 죽음(death) |민주주의(democracy | 치과(dentists) | 존 다이아몬드(John Diamond) | 질병의 근절(eradication ofdisease) | 경제학의 신사고(Economics, new thinking in) | 교육(education) | 이메일(email) |에너지(energy) | 유럽인구, 아직도 모자란 7억 인구(700 million not yet redundant Europeans) |악(evi)l | 실패(failure) |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들(films to make you feel good) | 몰입(flow) |어리석은 짓(folly | 음식(food | 자유(freedom) | 미래학(futurology) | 디지털 기기(gradgets) |행복(happiness) | 헬렌 켈러(Helen Keller) | 군중심리(herd mentality) | 희망(hope) |인간성(human nature) | 또 다른 사람들(the rest of humanity) | 유머감각(a sense of humour) |이민(immigration) | 불멸(immortality) | 인도(India) | 지능(intelligence) | 인터넷(internet)| 발명(invention) | 직업(jobs) | 케네디의 평화 연설(Kennedy"s peace speech) | 지식(knowledge)| 수명(life expectancy) | 소박한 기쁨(little free things in life | 보다 긴 지금(long now) |삶의 의미(meaning of life) | 의학(medicine) | 기억(memory) | 남자(men) | 윌킨스 미코버(WilkinsMicawber) | 밀레니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 자연(nature) | 넬슨 만델라(NelsonMandela) | 네트워킹(networking) | 좋은 뉴스(good news) | 핵무기(nukes) | 노년(old age) | 낙관적편향(optimism bias) | 판도라의 상자(Pandora"s puzzling present) |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shift) | 입자(particularities) | 피스메이커(peacemakers) | 비관주의(pessimism) | 철학의위안(philosophical consolations) | 플라스틱(plastic) | 낙관주의적 정치(optimistic politics) |시골소녀 폴리아나(Pollyanna) | 인구(population) | 긍정적 사고(positive thinking) | 가난(povertyas history) | 프로작(Prozac) | 급진적 희망(radical hope | 독서(bedtime reading) | 리얼리티프로그램(reality TV) | 종교(religion) | 권리(rights) | 로빈슨 크루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평가하다(RobinsonCrusoe assesses his situation) | 예술 (Said/done/written/painted etc. before, ithasn"t all already been) | 과학자(scientists) | 나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은 언제나 있다(someonealways worse off than you, there is always) | 흥이 절로 나는 노래들(songs to put a springin your step) | 금기로부터의 해방(the passing of Taboos) | 테러(terrorism) | 심리요법 therapy)| 아무리 못해도 지금이 낫다(things are at least as good as they were) | 생각(thinking) |과도기(transitions) | 폭력(violence) | 세계의 불가사의[wonder (and wonders) of the world] |세계 정부(world government) |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는 법(things could always be worse) |세계의 종말(the end of the world)





옵티미스트의 긍정코드 100

옵티미스트의 긍정코드 100


책의 생존

책과 컴퓨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로 이 두 가지 없이 생활하기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이 두 가지에는 서로 다른 목적과 즐거움이 있다. 지구상의 어떤 도서관에서도 인터넷 컨텐츠의 절반도 찾을 수 없는 반면 인터넷은 지구상의 모든 도서관이 보유한 컨텐츠를 검색할 수 있다. 혹은 적어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책이 점차 이 디지털 세상 속에서의 마지막 몸부림을 포기하게 될 위험성이 있으며 조만간 글이라는 글은 전부 스크린을 통해 읽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되는 것이 책의 오랜 전통과 감성, 그리고 책에 대한 고풍스러운 애정을 배반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약 10년 전만 해도 역사나 외국 여행지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은 책이 유일했다) 이는 정보 전달의 매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소란스럽지 않게 필요를 충족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은 대중성과 지속성을 갖는다. 기술애호가들에게 책은 도전의 대상이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책이 전자장치로 개발되면 편리한 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새로운 것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다는, 우리가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도 한다. 종이가 사라진 사무실이 생길 것이라고 떠들어대던 때가 있었다. 책이 사멸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견하는 이들은 왜 그런 사무실이 아직도 생기지 않고 있는지부터 생각해 볼 일이다.


분명 언젠가는 전자종이가 일반화되어 영국, 프랑스, 스페인 문학의 전집을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 열쇠고리에 매달고 다니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책은 컴퓨터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지금은 물론 이후에도 책은 계속해서 보완의 역할을 할 것이다. 책의 두께로만 볼 때 인터넷 최고의 성공신화로는 단연 다국적 소매서점인 아마존(Amazon)이다. 블로그도 여기에 해당하지만 블로그 작가들이 쓰는 글의 대부분은 종이책에서 얻은 지식과 영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스크린에서 스크롤과 클릭으로 얻을 수 있는 소량의 사고보다 훨씬 더 충분한 사고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종이책은 여전히 엄청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책의 밝은 미래에 대해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디지털화되어 있는 책의 컨텐츠를 주문할 경우에만 종이책으로 인쇄해 주는 주문형 인쇄의 기술이 출판 과정의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으며 샌드위치라도 만들 듯 원하는 내용을 마음대로 책 속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쥘 수 있는 물리적인 형태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전자기기의 펄스에 의해 완전히 자취를 감출 수도, 전력 차단으로 접속이 끊기는 일도 생길 수 없고 그 어떤 서버보다 더 안전한 종이에 생각을 담는 것에는 힘이 있다. 책은 중세시대에 성격을 보급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되었지만 이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동일한 정보전달체계를 가지며 여전히 파괴의 씨앗을 뿌리는 기능을 갖는다. 「가디언(The Guardian)」 지의 팀 래드포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쇄의 발명은 책을 다표적 탄두로 바꾸었다. 실컷 책을 불태워 보라. 한 권은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죽음

죽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할 말을 찾아보라. 낙관주의자들에게는 이만한 도전이 없다. 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중이다. 그러니 최대한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스스로 준비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심지어 당신이 원하는 때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도 있다.(자살이 아니다. 적극적 안락사라고 해야 한다) 운이 좋다면 죽음이 불시에 찾아와 당신은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면 사람들이 계속 태어나기만 하고 죽지 않아 계속 지구에 남아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잠시 생각해보라. 또 죽음이라는 것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정신세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이곳에 영원히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의 행동에 충동을, 우리의 삶에 신랄함을 더하면서 가장 깊은 감각으로부터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끌어낸다.


만일 어떻게 죽을 것인지가 아닌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고민하느라 밤마다 잠 못 들고 있다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경험적 증거란 전선을 확 뽑으면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듯 사라지는 의식이다. 짐을 싸서 다른 길로 떠나기 전 당신이 비워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쓸모없는 세포들, 즉 커다란 저택에서 평생을 바쳐 일한 뒤 버림받은 하인들로 가득한 커다란 자루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적어도 그렇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모르며 그 자체로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 과학이 뭐라고 하건 인간이란 실체가 있는 요소들을 뭉쳐둔 것 이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우리가 마음의 탓으로 돌리는 나라는 지각은 무가치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죽음의 순간 우리의 22그램, 즉 영혼의 무게는 날아가버린다. 여기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찾으려면 종교적 신앙심이 있어야 한다.


육체나 성격은 죽더라도 의식은 재생 가능할지도 모른다. 철학자이자 동양사고의 해석자인 앨런 와츠는 이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내가 죽게 되면 나는 태어나기 전과 똑같은 상태로 놓이게 될 것으로 마치 한 번도 태어난 적 없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될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세상은 따로 있었으며 거기서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죽음을 통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그곳에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또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될까? 육체는 우주로부터 온다. 우주 또한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는 것과 꼭같은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죽게 되면 나의 이 육신과 함께 내 몸의 기억체계도 사라지고 이전에 내게 있었던 의식이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하루살이나 지렁이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지만 걱정은 그때가 되면 하자.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지금을 사는 것이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는 취할 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신의 남은 인생을 거저 얻은 것처럼 살 수 있다. 당신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죽게 되리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당신을 이미 죽은 몸으로 여겨라. 그러면 잃을 것이 없어질 것이다. 터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바닥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침대에서 떨어질 일이 없다. 당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수록 더욱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죽음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당신이 경험하는 죽음은 한 번뿐으로, 죽는 즉시 모든 삶의 고통과 죽음의 고통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은 믿어도 좋다.



디지털 기기

대부분의 기기들은 쓸모 있다기보다는 성가신 경우가 더 많다. 정작 필요할 때가 되면 그 망할 물건을 찾아 헤매야 한다.(그리고 언제나 석 달, 혹은 삼 년쯤 지난 뒤 서랍 밑바닥에서 뒤늦게 발견되곤 한다) 용케 찾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사용법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지의 문제가 남는다.(분명히 사용설명서를 어디에다 잘 둔다고 뒀는데, 그게 어디더라?) 정교한 장치일수록 기능은 더욱 복잡하며, 창백한 LED화면에 버튼과 메뉴들이 많이 나타날수록 아주 간단한 조작조차도 어렵게 되어 버린다.(메뉴 화면이라도 제대로 띄우려면 배터리 교체가 우선임은 물론이다. 지난 번에 마지막으로 사용한 후 그대로 방치해 둔 덕에 방전이 되어버렸다) 이 기나긴 준비과정 속에서 모든 노동에 보상 가치가 있으며, 그래도 이러한 기기를 사용하는 편이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보풀제거기로 스웨터의 보풀을 성공적으로 제거한 사람이 있던가?


그래서 수많은 가정용구들, 특히 슬로우쿠커(slow cooker)나 전동 고기칼 따위가 이미 오래 전에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채 박스 속에, 혹은 찬장 선반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것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그 기능에 매료되어 구입하지만 한 번도 사용하는 일이 없는 기기들이 있다. 가끔은 제품을 써보지도 않은 채 기발한 기능에 경탄하고 발명가의 독창성을 치하하며, 이로 인한 노동절감의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 하기도 한다. 어쩌면 다음과 같은 기기의 불문율 때문일 수도 있다.


"성능이 기대에 부응하는 일은 결코 없다"


내가 만일 무인도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내가 누리고 싶은 유일한 호사는 각종 첨단 기기들로 선반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이왕이면 태양에너지나 코코넛밀크 에너지를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평생 쓸 배터리도 있어야 할 것이다. 무한정으로 생긴 내 여가시간에는 각종 분쇄기로 내 개인정보를 온통 찢어버리면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며, 흰 와이셔츠에 토마토 소스가 튀지 않도록 자동으로 스파게티 국수를 돌돌 말아주는 회전 포크(AA 배터리 2개가 필요하다)도 실컷 사용할 수 있게 되리라.


하지만 세상에는 비난의 대상이 될 기기들보다도 오래도록 신뢰할 필수 기기들이 존재하며 지금도 날마다 새로운 기기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터득한다면, 유용할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작고 놀라운 기계들로 우리의 가정과 삶을 채울 수도 있다. 없어서는 안 될 기기들이란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기들은 다음과 같다.


1. 빵 만드는 기계(복잡하고 성가신 3단계 과정을 알아서 해주는 기특한 로봇이다)

2. 전동칫솔(치아건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이메일 확인, 음악 다운로드, 책 집필을 가능하게 해준다)

3.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뭐든지(미래의 성장분야가 될 것이다)



좋은 뉴스

1993년, 앵커맨 마틴 루이스라는 사람들이 날마다 신문과 라디오, TV 등을 통해 접하게 되는 나쁜 뉴스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큰 비난을 샀다. 그를 비판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모든 뉴스가 즐겁고 유쾌할 수 있겠냐고 했지만 후에 그가 말하려던 의도를 잘못 이해했다고 인정했다. 그가 한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뉴스의 대부분은 나쁜 소식들로 가득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소식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모든 비행기가 한 대도 추락하는 일 없이 무사히 착륙했다는 것이 뉴스거리가 되겠는가? 잘 알려지지도 않은 두 개의 집단이 회의를 거쳐 공생하기로 합의한 내용을 시시콜콜 듣고 있노라면 하품만 날 것이다. 이름 모를 낯선 사람이 또 다른 이름 모를 낯선 사람을 위해 베푼 친절은 무시무시한 기자들의 눈빛을 번뜩이게 만들 헤드라인이 될 수 없다.


뉴스는 사건사고를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어떤 국가의 분쟁 소식이 들리면 마치 그 나라 전체가 대혼란에 빠진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실제로는 극히 일부분의 지역에서만 내전이 일어났을 뿐인데도 말이다. 가뭄이나 기아, 홍수 등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 에티오피아 전역, 혹은 동아프리카 전역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 특정 지역으로 국한하여 생각하게 되지 않는다.


2002년에 실시된 한 조사를 보면 영국인의 80퍼센트가 개발도상국가들이 영원히 그러한 낙후된 상태에 머무르리라고 믿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인상이 남게 된 것은 1980년대 아프리카의 기아를 좋은 의도로 소개했던 언론 덕분인데 그 당시의 기억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뭐든 일반화시키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은 다양성 혹은 세상 대부분이 극히 평범한 정상적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기자나 저널리스트들은 자극적 기사를 쓰고 스캔들을 들추어내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이유가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함이라고 변명하지만, 자극적이지 않더라도 유쾌한 뉴스를 많이 알리거나 혹은 복합적인 상황 속에 담긴 의미들을 찬찬히 설명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도 신문은 여전히 잘 팔릴 것이며 TV 시청률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독자들이나 청취자들, 혹은 시청자들이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을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뉴스를 통해 우리가 접하는 시각이 제도적 결함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낙관적이 될 수 있다." 테드 회의(TED Conference)의 큐레이터인 크리스 앤더슨의 말이다. "심각한 재해나 테러행위 등과 같은 유형의 뉴스들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지만, 과학적 진보나 세계 정황을 철저히 조사한 통계자료 등은 잘 보도되지 않는 편이다. 이로 인해 합리적인 공공정책이 왜곡되거나 대참사에 대한 공포가 끊이지 않는 등과 같은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낙관적이 될 이유가 된다. 실제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고 세뇌되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햇살 속으로 걸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쁜 뉴스는 말고 좋은 뉴스만 알고 싶다면, 포지티브 뉴스(Positive News)를 보면 된다. 그 외에도 보도의 균형을 바로잡는 다양한 웹사이트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인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65억에 달하며 이 수치는 곧 80억 혹은 90억, 심지어는 100억에서 그 정점에 도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어쩌면 인구의 수가 지구의 수용력을 훨씬 넘어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인구가 30억이나 적었던 당시, 인류에게 닥친 최대의 위기는 인구 폭발이라고 모두들 믿었다. 사람들은 늘어나고 자원이 부족해지면 기아, 전쟁, 가난, 결핍이 증가되어 결국 인류는 공간과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게 되리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며 계속되는 인구 증가와 더불어 이미 여러 지역에서 인구과잉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울려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일부 신맬서스주의자(맬서스의 인구론에 입각하여 산아제한과 같은 인구증가 억제수단이 필요하다는 이론을 펼치는 자들)들은 여전히 과잉출산이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기후변화가 지구의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연반응이며, 우리가 지금 영위하고 있는 생활양식을 적용했을 때 지구가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얼마인가에 대한 기후적 답변이 아닐까? 수치만 보아서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위급한 정도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뛰어난 적응력은 이미 밝혀진 바 있으며, 인구 폭발로 인해 지구의 종말을 맞이하리라는 논리쯤은 충분히 반론이 가능하다.


과격하지 않으면서 자발적인 방법으로도 세계 인구를 70억이나 80억 정도로 안정시키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의료환경을 개선하여 개발도상국가의 아이들을 살려내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는 반대 논리가 있다. 아마도 당신은 아이들이 더 많이 살아남을수록 인구가 더 많아지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아이가 갓난아기 때에 죽는 일이 없으리라고 믿게 되면 당연히 우리처럼 핵가족을 만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부유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더 많은 자유를 제공하여 스스로의 삶을 지배할 수 있게 해줄 수만 있다면 인구 문제는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나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은 언제나 있다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 남편, 아내, 교도관 혹은 친구로부터 불평 좀 그만하라는 말을 듣게 되면 그들 말이 옳다는 생각은 들지만, 실제로 그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게 되지는 않는다. 매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각자가 가진 행운에 따라 순위를 매겨 발표하는 정기 간행물이라도 나와야 할 것 같다. 그럼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전 세계인의 상태를 체크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누구나 매일 아침 웹사이트에 강제적으로 접속하여 자신의 상태를 기록한다. 그러면 거대한 용량의 컴퓨터가 이를 역학적으로 정리하여 각각의 성적을 실시간으로 뽑는 것이다. 당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날이면 웹사이트에 들어가 해당란에 표시만 하면 된다. 그러면 당신의 순위는 자동적으로 내려간다. 만일 운수 대통한 하루였다면 당신 바로 위에 있던 사람은 순식간에 당신 밑으로 내려가고, 동시에 순위 상승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당신의 편지함에 도착한다.


진정으로 계몽적인 세계정부라면 세금 또한 세계시민의 행운과 불운에 따라 누진세로 공평하게 부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울했던 날들에 대해서는 세금 환급을 받겠지만 모든 것이 잘 풀렸던 날에는 소득의 99퍼센트를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순위를 매기는 것에는 문제가 한 가지 있다. 이 제도로 인하여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약간이나마 상대적 위안을 받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위안을 받을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지구의 종말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직은 세계의 종말이 도래하지 않은 것이다. 세계의 종말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것 같지는 않으며 심지어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이 시작된 순간부터 인간은 말세를 예언했으며 그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종말을 중상모략한 자들 중 가장 유명한 2명의 예언자가 노스트라다무스와 마더 쉽튼이다. 하지만 그들의 예언은 모두 분명하지 않았다. 이들보다 덜 용한 예언자들은 수점(數占), 요한계시록, 대(大) 피라미드 등과 같은 확실한 증거들에 의존하여 종말을 예언했으며 어느 종교나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나름대로의 종말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희미하게나마 정확하게 맞춘 이가 없기에 이 모든 비과학적 예언은 전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우주의 종말과 지구의 종말, 그리고 인류의 종말 간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것이 좋겠다. 이 셋 중에서 우리 인간의 명이 가장 짧으며 가장 연약하고, 가장 어리석은 것은 분명하다. 핵전쟁이나 기후 변화가 우리의 씨를 말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독창력과 생존 본능이 이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낸다고 가정해보자. 자, 그렇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나? 문명 혹은 지구의 종말에 대한 한층 더 괴상한 생각으로는 지구가 태양에 빨려 들어가며 달이 지구로 떨어지고 지구가 혜성이나 운석 따위와 충돌하고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며 극 이동이 일어난다는 것 등이 있다. 극 이동이란 아프리카가 북극으로 옮겨가고 남극이 적도의 자리로 가게 된다는 설이다. 이들 중 전부 혹은 일부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한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산꼭대기에 있는 동굴 속에 식량이나 좀 숨겨두고 모든 것이 잘 되기만을 비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주는 어떨까?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우주의 질량에 따라 달라진다. 기술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갈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의 종말은 밀도를 나타내는 오메가의 값에 달렸다. 오메가의 값이 1보다 크다면 우리는 닫힌 우주(closed universe)에 살고 있는 것으로 조만간 우주는 스스로 수축하여 빅 크런치(Big Crunch, 대붕괴)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만일 오메가 값이 1보다 작다면 우리는 열린 우주(open universe)의 상태에 놓인 것으로 우주는 영원히 팽창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열이 사라지게 된다는 빅 프리즈(Big Freeze), 또는 전부 해체되어 원자의 상태가 된다는 빅 립(Big Rip)이 일어나 우리를 삼켜버릴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유령과도 같은 암흑 에너지(dark energy)에게 달려 있는 일이다. 만일 오메가 값이 1과 같거나 1보다 작다면 우리는 평탄한 우주(flat universe)에 살고 있는 것으로 열린 우주의 경우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현재 측정되고 있는 오메가 값은 1또는 그 이하로, 어쩌면 우주가 멸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무한대의 다중 우주, 즉 평행 우주(parallel universe)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수명이 무한할 가능성 또한 있다.


하지만 우주가 빅 크런치의 상태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1994년 프랭크 J. 티플러 교수는 우주가 종말의 순간에 가까울수록 컴퓨터의 용량이 시간의 속도보다 빨리 증가하는 것과 같이 자연적 에너지가 생겨난다는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 이론을 제창했다. 그러므로 우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우리에게는 즐길 수 있는 주관적인 시간이 무한대로 있는 것이다. 그러한 순간이 올 때쯤이 되면 아마도 우리의 의식은 대단히 영리한 기계로 옮겨져 있어 그 모든 일들을 실제가 아닌 모의(가상)로 경험하게 된다고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서라운드 음향시스템에 와이드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일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자연적 연산력이 생길 것이므로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혹시나 원한다면 무덤에서 일어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역사를 계속해서 되풀이해 보면서 지루한 부분은 빨리 감기를 할 수도 있으며, 당신이 또 다시 태어나는 도중에 정지 버튼을 누르고 차를 끓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로도 낙관적이 되기에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정말로 까다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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