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 귀신과 通하다

   
장윤선
ǻ
이숲
   
12000
2008�� 07��



>■ 책 소개
점복(占卜), 귀신(鬼神), 놀이, 지역에따른 독특한 관습, 돈에 대한 개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선대의 의식을 헤아려보고, 그들이 남긴 지혜가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는"조선의 작은 이야기들"&nbsp& 시리즈의 첫 책이다. 귀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성리학자들이 조상신에 대해서만큼은 각별한 예를 차렸던 모순,귀신의 원혼담에 녹아든 사회적 모순 등을 보여주면서 "귀신"이라는 화두를 통해 조선시대의 한 단면을 우리에게 펼쳐놓는다.


■ 저자 장윤선
1969년 겨울, 서울에서 태어났다.어릴 때부터 동화책을 읽고 이야기를 덧붙여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를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음악과 문학에 빠져 살았는데, 특히 소설이나민담, 신화에 흥미를 느꼈다. 서강대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신화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이론적인 공부보다는 신화의 현장을 직접찾아다니며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편을 더 좋아했다. 황해도 굿에 관련된 무가를 주제로 하여 석사 논문을 썼고, 박사 논문은 평소에 관심이많았던 귀신담을 주제로 삼았다. 2007년 여름, 오래 끌어오던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가능한 한 자유로운 삶을 살려고 계획중이다.여행광이기도 해서 언젠가는 세계를 일주하고 여행기를 쓰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 차례
들어가는 말 - "목 없는 아이"그리고귀신


1. 귀신(鬼神),그들이 궁금하다
귀신의 흔적을찾아서
귀신은 두려움을 먹고 산다
귀신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2. 조선시대 귀신론과 귀신의 이치
조선의 선비들은 왜귀신을 말할 수밖에 없었나?
귀신을 알다, 삶을 알다
음(陰)과 양(陽),그리고 이(理)와 기(氣)
기(氣)와 리(理)알고넘어가기
그래서, 귀신은 있나?
귀신, 제거의 대상이 되다


3. 귀신이 된 사람들, 귀신과 소통한 사람들
이건실제로 있었던 이야긴데……
정체불명의 귀신, 이유 없이 나타나다
조선을 뒤흔든 귀신 이야기 - 『설공찬전』
귀신은 세상의 모순을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 - 여자들은 왜 원귀가 되나?
여자의 사랑과 원한 - 상사뱀과 탄금대 귀신
아랑 이야기비틀어 읽기 - 원한과 성폭행의 함수관계
신부의 원혼 - 결혼이 무서워
귀신은 숨겨진 욕망의 대리자
따뜻한 귀신들의 이야기 -조상의 혼령
귀신을 다스리는 사람들
귀신의 저주, 인간의 저주


4. 21세기, 귀신은 살아 있다
과학의 시대, 귀신의자리는 어디인가?
귀신, 종교의 장에서 부활하다
유관순 괴담과 자유로 귀신담
귀신은 사랑과 대화를 원해


나오는 말 - 여한(餘恨) 없는 죽음을 꿈꾸며





조선의 선비, 귀신과 通하다


1. 귀신(鬼神), 그들이 궁금하다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귀신에 대해 말하려면, 적어도 한 가지는 인정해야 한다. 즉, 인간은 물론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는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어떤 영(靈)적인 것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든 동물이든 오래된 나무든 간에, 죽음 이후에도 무언가 생명활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계속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이것,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남는 이 무엇. 이것을 우리는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혼령(魂靈), 혼(魂), 영혼(靈魂), 넋…….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귀신에 대한 수많은 주장과 논쟁은 그저 허황된 미신에서 시작된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에 영혼이 있다는 생각은 고대에도 뚜렷이 나타난다. 고대인들은 지금처럼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기술도, 그럴 생각도 없었기에 자연이나 초월적 힘에 순응하는 성향이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귀신과 영혼에 대해 현대인보다 더 많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먼저 고대 중국의 갑골문에 나타난 혼의 관념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중국은 아주 먼 고대부터 영혼의 존재를 믿어왔고,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갑골문의 용례를 보면 영혼은 뭔가 비일상적인 것으로서 죽은 후의 인간 정신을 나타내며 하늘 위를 뛰어 돌아다니는 넋이라고 말한다. 이런 표현을 종합해보면 영혼이란 결국 인간의 정신적 생명으로서 죽음 이후에도 생을 이어갈 수 있는 또 다른 인간 생명의 근원적 요소이다. 그러나 인간의 육신이 죽은 후 영혼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비일상적인 일이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귀는 혼령의 비정상적 활동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한자 사전에는 鬼가 "무시무시한 머리를 한 사람의 형상으로, 죽은 사람의 혼"을 나타낸다고 하며 "영혼이나 초자연적인 것, 그 작용 등에 관한 문자"라고 나와 있다. 이와 같은 예에서 귀라는 것은 애초부터 어떤 두려움을 내포한 단어였음을 알 수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괴물, 가장 무서운 적의 형상, 혹은 그 영혼, 그리고 초자연적인 작용을 두루 지칭하는 것이 鬼라는 글자의 의미이다. 그러니 귀란 결국 괴물과 적의 상징에서 출발하여 두려움을 안겨 주는 영혼을 일컫는 말로 분화되고 확대되어 갔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한편 신(神)은 이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신은 귀와 함께 쓰이기도 하지만, 단독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귀와 귀신(鬼神)은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신의 의미는 귀나 귀신과는 달리 긍정적인 색채가 짙다. 다시 말해 귀가 두렵고, 어둡고, 화(禍)를 내리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면, 신은 귀보다 높은 초자연적 존재로서 인간과 자연을 모두 지배하는 거룩한 존재로 인식된다. 실제로 중국과 한국의 고대 자료를 보면 신에 대한 관념은 초반부터 활발하게 사용되었고, 신에 대한 제사는 반드시 부족장이나 왕 등 지배자만이 지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귀신은 귀(鬼)와 신(神)이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귀신이란 인간이 알 수 없는 다른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하여 영혼의 기이한 활동 전반을 일컫는 말이며, 또 한편으로 두려움을 내포한 채 숭배의 대상이 되는 초자연적 존재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폭넓은 귀신의 개념은 우리가 귀신의 문제를 다룰 때 바탕으로 삼아야 할 개념이다. 그래서 많은 이가 이런 바탕 위에서 다양한 관점과 서로 다른 해석을 동원하여 귀신의 존재를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귀신의 개념은 사회의 변화와 맞물리며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2. 조선시대 귀신론과 귀신의 이치

귀신에 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이론 체계가 있다. 바로 조선시대를 풍미한 귀신론이다. 귀신이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조선시대 내로라하는 학자들, 선비들이 다투어 전개한 귀신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먼저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귀신에 대한 이론이 왜 생겼을까? 선비들이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자 귀신론을 쓴 것일까? 그건 아니다. 선비들이 귀신론을 펼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중 첫째는 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이념적 필요성이었다.


한 나라가 기울고 새로운 나라가 열린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격변이 일어날 때, 과연 무엇이 제일 먼저 달라질까? 물론, 정치와 경제 체제의 변화,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일상생활의 변화가 가장 클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건국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조선이 고려와 뚜렷이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보다도 사상의 변화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조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유학, 성리학, 그리고 선비, 양반과 같은 단어들이다. 그중에서도 유교, 혹은 유학이란 단어는 우리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만큼 조선은 사상적 측면에서 불교를 중심으로 하던 이전의 고려시대를 철저히 부정하고 비판하면서 시작된 나라이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상이 되려면 거기에 어떤 요소가 담겨 있어야 할까? 우선, 백성이 안정된 삶을 살게 하는 사고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삶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삶에 대한 전망도 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바로 죽음에 대한 해명이다. 이런 죽음에 대한 문제는 철학자나 종교인의 전유물은 아니다. 특히, 백성은 그와 같은 문제에 민감하다. 백성은 예기치 못한 비극적 운명이나 고통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들에게는 삶의 재난에서 자신을 구할 어떤 대안이 필요하다. 귀신과 같은 영험한 존재가 있어서 자신에게 일어날 무서운 일을 예방해줄 수 있다면, 당연히 귀신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새로운 조선 사회의 지배이념으로서 유교는 마땅히 죽음과 귀신의 영역을 장악해야 했다. 놀랍게도, 유교 문헌 가운데에는 명확히 사생은 물론 귀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귀신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펼친 논쟁적인 글이 여럿 있다. 이를 통칭하여 귀신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유교의 대성인 주희의 다음과 같은 말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죽음이란 사람이라면 반드시 맞이하는 것이기에, 죽음에 대해 알지 않으면 안 되고, 그래서 귀신에 대한 물음은 절실한 것이다. (중략) 그러나 인생의 처음 시작을 더듬어 삶의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 거꾸로 인생의 마지막에 관심을 가지고 죽음의 의의를 알고자 하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본래 죽음과 삶, 인생의 시작과 끝은 처음부터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배움에는 순서가 있으니, 그 순서를 뛰어넘으려 해서는 안 된다.


죽음에 대한 물음을 절실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 그리고 삶의 원리를 알고 나서 죽음의 문제를 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런 현인의 말은 귀신의 문제를 푸는 데 나름의 관점을 제시해준다. 귀신을 논한다고 해서 삶의 문제를 제쳐놓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해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귀신을 논하는 것이 우리 일상적 삶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주희의 주장이다.


귀신에 대한 논설을 쓴 이들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었다. 주자는 물론이거니와 조선 초 최고의 문필가라고 할 수 있는 성현, 천재로 널리 알려진 김시습, 그와 더불어 생육신으로 이름을 날리며 가장 많은 양의 귀신론을 쓴 남효온, 그리고 비주류였지만 당대 최고의 학자로 숭앙받았던 서경덕도 귀신론을 펼친 바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성리학의 대부격인 이황과 이이, 그리고 실학자로서는 성호 이익이 귀신에 대한 설을 폈다. 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조선 중/후기에 기(氣)를 중시하는 새로운 학문의 흐름을 주도했던 낙학파라는 학파도 있었다. 이 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임성주도 귀신설을 펼쳤으며, 정약용도 나름대로 귀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적이 있다. 학자뿐만 아니라 임금 중에도 귀신에 관심을 가진 왕이 있었다. 조선 초 정종은 주변 학자나 신료에게 귀신이 과연 무엇인지 묻곤 했고, 문종은 짧지만 나름대로 논리 정연한 귀신론을 펼쳤다.



3. 귀신이 된 사람들, 귀신과 소통한 사람들

귀신과 관련된 모든 문화적 현상을 소위 귀신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 터인데, 이를테면 귀신에 대한 사회적/정치적/종교적 믿음과 행위,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생활양식과 같은 것이 그것이리라. 그런 귀신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귀신담이다. 만약, 귀신론만 있고 귀신담이 없다면 귀신 문화는 그야말로 반의 반쪽도 안 되는 초라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조선조에 확립된 귀신론과 그 이전부터 전해오던 귀신담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지만, 영역이 다르다고 해서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귀신론으로 귀신담을 해석할 수 있고, 귀신담을 예로 들어 귀신론을 반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신담은 귀신론과는 별도로 까마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왔고, 지금도 계속 생산되고 있다.


귀신담에 등장하는 귀신은 유학자들이 애써 이론화한 천지 만물의 음양 조화와 같은 귀신이 아니다. 단지, 인간이 죽어서 나타나는 귀신, 여타 생명체가 죽어 활동하는 영혼으로의 귀신이다. 귀신론이 귀신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시도한 것 이상으로 귀신담은 귀신과 인간에 관련된 귀신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서 인간은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낯설고 기이한 세계와 조우한다. 그 세계는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세계이며, 무엇보다도 그 실재성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계속되는 세계이다.


우선, 실제로 귀신을 목격했다는 조선조 성번중이라는 이의 일화를 보자.


나의 친구 성번중의 집에 일찍이 귀신의 장난이 있었는데 초저녁 종이 울릴 무렵에 은은하게 서산의 밀림으로부터 나와서 혹은 돌은 던지기도 하고 혹은 불을 질렀다. 그리고 여종 하나를 능욕하여 임신이 되었는데, 마치 사람과 접촉하는 듯한 감각이었다고 한다. 사람의 집에서 왕왕 이런 화를 만나는 수가 있으니, 의원들이 말하는 귀태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백방으로 막으려고 애써도 되지 않는다. 강정한 기운이라야 그것을 누를 수 있다고 하여 번중이 술을 취하게 먹고 기운을 내어 건넌방 앞 좁은 마루에 앉아서 얼굴빛을 엄하게 하여 두려움이 없는 것 같이 하고 귀신이 오는 방향만 바라보며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두서너 시간이 지나도 아무 소리와 자취가 없는지라, 마음으로 귀신이 겁나 도망간 줄 알고 곧 몸을 돌려서 문턱을 넘어서려 할 때 갑자기 마음이 떨리더니 귀신이 던진 돌이 벌써 발뒤꿈치에 떨어졌다.


이 이야기는 조선 초 김안로가 쓴 수필집 『용천담적기』에 실린 짤막한 귀신담이다. 김안로는 조정의 권력 다툼에 휘말려 오랜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던 인물이다. 거기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모아 기록한 책이 『용천담적기』인데 이 책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성현의 『용재총화』와 더불어 조선 초 최고의 기담 모음집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요즘 나오는 기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귀신이나 유령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자신의 소소한 일상사에 가끔 이렇게 귀신 이야기가 끼어드는 것이다.


김안로의 『용천담적기』나 성현의 『용재총화』는 소설이 아니라 일종의 수필집이다. 자신이 직접 보거나 들은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조 수필집에서 다수 발견된다. "이건 정말 내가 직접 겪은 일인데……"라는 전제를 달고 시작하는 귀신 이야기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귀신담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이런 귀신담이 흥미로운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양반의 전유물이었던 귀신론과는 달리, 직접경험에 바탕을 둔 귀신담은 민간이 귀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잘 보여준다.


조선조 수많은 귀신담 중에서 가장 많은 편수를 차지하는 유형은 어떤 것일까? 원혼 이야기도 많지만 괴물이나 도깨비에 관련된 귀신담도 있다. 그러나 편수로 보다 가장 많고 보편적인 귀신담은 다름 아닌 조상 귀신에 관련된 이야기다. 귀신담에서 조상귀신은 원귀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이다. 원귀가 음귀라면 조상귀신은 양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상귀신은 오늘날 원귀만큼 주목받지 못한다. 원귀 이야기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별로 무섭거나 자극적이지 않아 상업화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올 여름 극장가에 조상귀신의 따뜻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영화가 상영된다면, 아마도 흥행에서 참패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인기와 상관없이, 조상귀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우리 문화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원혼 이야기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사람들은 원귀를 생활에서 가까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조상의 혼령만큼은 제사의 대상으로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상의 혼령과 관계된 이야기는 귀신의 실재성을 더욱 강하게 인식시키고, 자손과의 연결을 통해 가정과 사회의 안녕을 도모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조상귀신 이야기에서 인간과 귀신은 대결이 아니라 공존의 관계에 있으며, 상호 협력하고 보완하는 우호적 관계에 있다.



4. 21세기, 귀신은 살아 있다

과학적인 사고가 주류를 이루는 세상에서 귀신담과 귀신 사건은 하급 문화의 영역으로 흘러들어 갔다. 케이블 TV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황당무계한 사건을 다루는 리얼리티쇼나 B급 공포영화, 그리고 만화와 게임의 영역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은 조선시대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유교의 자리를 이제 과학이 차지했을 뿐이다. 하지만, 귀신은 또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보존하고 있다. 바로 기성 종교의 영역이다.


누가 뭐래도 현대 한국 사회에서 귀신의 존재는 여전히 막강하다. 진화론을 필두로 과학의 십자포화를 맞으면서도, 귀신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엉뚱한 곳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물론, 근대의 시작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귀신은 자신의 영역이 매우 축소되었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특히 1970년대 이후가 되면서 한국 사회는 점차 귀신과는 멀어진 듯 보였다. 비록 사람들이 아직도 무당을 찾아가 점을 치고, 개업식 때 고사를 지내고, 사업을 확장할 때 굿을 하고, 비명에 간 사람을 위해 천도제를 지내고, 잠시나마 죽은 혼령을 불러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더라도 말이다. 귀신은 명백히 조선시대보다 더 짙은 어둠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장 큰 집단은 무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기독교인이다. 물론, 모든 기독교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기독교 계파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서의 귀신을 인정하고, 이들이 악령이 되어 마귀의 지배를 받아 인간을 괴롭힌다고 말한다. 천주교에서는 귀신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사탄과 마귀의 존재는 인정한다. 사탄과 마귀는 성경에서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신인 하나님에 대적하는 자로서, 마귀나 사탄은 그 정체성이 우리가 살펴보는 전통적인 귀신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들은 절대악(絶對惡)으로 존재하며,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간질한다. 비록 하나님과는 격이 다르지만, 마귀나 사탄은 거의 신에 맞먹을 만큼의 권능을 가진 존재로 인식된다.


이처럼 서구 사상을 대표하는 기독교와 과학적 견해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귀신은 현대사회에서 일종의 사악한 영혼으로 인식되고 있다. 절대선(絶對善)인 다른 신이 있는 한, 귀신은 선한 존재로 인정받기 어렵다. 모든 귀신은 악의 대명사가 되었거나, 되어가는 중이다. 물론 불교처럼 인간의 광범위한 영혼성과 귀신을 인정하는 기성 종교도 있다. 이는 조선시대 불교가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 하층민 사이로 파고들어가 이른바 무불습합(巫佛濕合)이 폭넓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무당의 굿을 보면 "수리수리 마하수리" 같은 불교 경전(『천수경』)을 곧잘 인용하며, 무속 자체에도 불사거리니 제석거리니 하는 불교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었음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내로라하는 큰 절에서도 아기를 점지하는 무속의 신인 삼신할미(혹은 당금애기라고도 한다)를 모시는 산신각과 같은 무속적 요소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귀신들인 사람을 치유하는 퇴마사의 역할을 하는 스님도 자주 눈에 띄는 걸 보면, 불교와 귀신의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귀신은 기성종교와 타협하기도 하고 혹은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자신만의 또 다른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귀신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결국 인간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에, 귀신의 다양한 변신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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