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고고학

Burning with Desire

   
제프리 배첸(역자 : 김인)
ǻ
이매진
   
15000
2006�� 06��



>■ 책 소개
사진의 기원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룬역사서. 누가 사진을 발명했는가가 아닌 누가 사진을 처음 생각했는가로 초점을 옮겨 19세기경 사진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다게르 이전부터사진을 만들고 찍었던 초기 사진 실험가들을 조명한다.


이러한 질문의 전환은 한편으로 이 책에 사진의 정체성에 대한 예리한 비평, 사진과 관련된담론의 종합과 비판을 시도하는 철학서로서의 성격을 부여한다. 지은이는 미셸 푸코의 계보학과 데리다의 해체 개념을 바탕으로 초기 사진 실험가들과그들이 활동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을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지은이는 "사진에 대한 욕망", 또는 "빛을 담으려는 열망"이 근대의 탄생과 밀접한관계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진 매체에 담긴 다양한 욕망들을 제시함으로써, 사진에 대한 새롭고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책이다.


■ 저자 제프리 배첸
사진사와 현대미술, 사이버 문화를주제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큐레이터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뉴욕시립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진의 고고학-빛을향한 열망과 근대의 탄생』을 비롯해 『무모한 생각들-글쓰기, 사진, 역사』『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삶의 흔적』『나를 잊지 마세요-사진과 기억』등이 있다.


■ 역자 김인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사진가 이갑철의 작업을 중심으로 사진과 역사적 기억의 문제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2000년 여름부터 2004년 겨울까지 동네사진관(&>www.sajingwan.net)을 운영했다.


■ 차례
옮긴이의 글 
서문 


1.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들 
사진 자체
기원의 이야기들 


2. 사진의 발상
커다란 수수께끼 
대단한 명단
원시 사진가들 
size=2>
&>3. 사진을 향한욕망
자연의 형상 
풍경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어진 영상 
자동 복제 
변형 


&>4. 사진들
누드를 그리는 화가 
코린트 소녀 
(창에서바라본) 풍경 
정물 
전자기장 
익사자 


&>5. 방법론
사진과 차이 
연속성/불연속성
포스트모더니즘과 사진 
현실적인 비현실성 
재현/실재 
사진을 다시 생각하자 


&>6. 사진의 죽음


&>주 
찾아보기




사진의 고고학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사가들은 오랫동안 연구 대상인 사진의 "존재"를 명확하게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하나의 재현체계이자 사회 현상으로서 사진의 정체성은 줄곧 논쟁의 대상이었다. 1970년대 들어 사진은 영미 미술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회화와 조각에 대한 수요가 시들자 미술 시장은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사진과 현대 사진의 판매와 컬렉션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시와 출판 등 전문적인 사진 거래와 관련이 있는 담론들이 양산됐다.


이런 흐름은 마르크스주의와 기호학 같은 지적 전통의 확산과 비전문적인 애호가들의 관심에 힘입어 사진의 문화인류학이라 할 만한 성과를 가져왔다. 스냅 샷과 광고 사진이 예술 사진 못지않게 열띤 비평적 주목을 받았고 현대적인 삶의 중요한 양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진담론은 이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근대 문화와 사회체계에 대한 광범위한 비평과 결합됐다. 지난 20여 년간 영미의 많은 저명한 비평가들이 이런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사진들

영국의 비평가 존 탁은 이런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사진 자체라고 할 만한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기술로서 사진의 지위는 그것에 부여된 권력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하나의 실천으로서 사진의 특성은 이를 규정짓고 작동하게 만드는 제도와 행위자에 달려 있다. 문화 생산양식으로서 사진의 기능은 특정한 존재 조건과 연관되고 그 생산물은 특정한 유통 내에서 의미를 가지며 의미 파악이 가능하다. 사진의 역사는 단일하지 않다. 그것은 제도적 공간의 장(field)에서 명멸한다. 우리가 연구해야 할 것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이런 장이다.


시각적인 재현체계로서 사진은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도구다. 『사진과 권력』에서 탁은 그 과정을 이렇게 말한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사진의 재현은 코드화되어 있고, 사진이 행사하는 권력은 사진 자체에 있지 않다. 기록 수단으로서 사진은 일상의 삶을 특정한 권위가 부여된 장면으로 포착하고, 묘사하고 변형시킨다. 사진은 바라보고 기록하는 권력이자 감시의 권력이다. 이것은 카메라의 힘이 아니라 사진을 유포하고 사진이 구성한 이미지의 권위를 보증해주는 국가기구의 힘이다."


탁의 주장대로라면 사진은 권력이 없는 주체가 근대적인 억압에 의해 지식, 분석, 그리고 지배의 대상으로 재현되는 간편한 통로일 뿐이다. 탁의 분석에서 사진 자체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데, 그것은 사진 "자체"라는 개념을 분명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사진에 고정된 정체성이나 역사적 통일성이 없다는 가정은 사진이 사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제도와 학문에 속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세쿨라에 따르면 사진은 사진 찍힌 주체 개인의 주체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주체와 그들의 사회적인 관계를 시각적인 것으로 환원함으로써 상품화될 수 있는 동일한 대상 이미지로 만든다. 기계적이고 중립적인 재현 장치로서 사진은 실증주의의 경험적 진리 가치로 받아들여지며 사진은 이런 객관화를 자연스럽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사진의 객관성이 계급적인 차이를 차이로서, 역사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드러냄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자본주의의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것과 동시에 용인하는 이런 특징이야말로 사진의 매혹이자 사회적인 권력의 원천이다.


사진의 재현체계가 이중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각각의 사진의 의미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자체 내의 긴장감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탁처럼 세쿨라는 사진을 더 큰, 다른 힘들의 수단으로, 사진의 정체성을 궁극적으로 그런 힘들에 의해 결정짓는 것으로 보았다. 사진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언제나 각각의 사진에 의미와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담론에 기대고 있다.


탁과 세쿨라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사진가이자 비평가인 빅터 버긴 역시 사진의 "본질"을 찾거나 사진과 그 발전 과정을 협소한 예술사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버긴은 "문화 생산의 일반 영역"과의 관계 속에서 사진에 접근한다. 버긴은 사진의 주요 특징을 의미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사진의 의미는 사진 자체에 의해 결정되지도, 사진 자체로 국한되지도 않는다. 의미는 사진이 나타나는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버긴의 이론 또한 사진 자체에서 관심을 돌린다. 버긴은 자신이 말한, 욕망하는 주체로서 사진을 통해 다른 곳에 기원을 둘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는다. 사진은 감질 나는 욕망의 들러리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욕망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주체다. 욕망의 의식적인 주체는 언제나 들러리에 불과하다. 대상은 단지 표상, 실제로는 무의식의 정신적 표상이다. 사실상 욕망은 충동이다. 라캉이 지적한 것처럼 그것은 "기표 속에 소외된 것"이며 원초적으로 상실된, 만족의 흔적이다. 실제 대상은 돌이킬 수 없는 부재다.


사진 자체

6,70년대 미술사를 주도한 모더니즘 형식주의에서 사진을 바라보는 입장을 검토하자. 포스트모더니즘은 형식주의가 지적으로 무익하며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이유로 완강하게 반대한다. 미국에서 형식주의는 미술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강력한 지지 속에 예술 비평의 한 양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린버그의 논점은 현대에서 전통적인 예술의 기능은 (무엇보다 사진에) 그 자리를 내주었고, 생존을 위해 예술은 다른 문화로부터 거리를 두고 고양된 경험을 가져다주는 수단으로서 자신만의 가치를 확립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의 예술 매체 자체의 작용과 효과에 대한 치열한 자기 검증을 통해 매체 자체의 특성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은 "사진 본래의 객관적인 특성"은 회화나 다른 매체와 사진을 구별 짓는 유일한 특성으로 이것을 통해 "진정한 사실주의"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사진 이미지는 대상 자체이며 그 대상은 시공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아무리 희미하고 왜곡되고 변색된다 할지라도 또한 그 이미지가 자료적인 가치를 결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생성 과정의 특성상 그것이 재현해내는 모델의 존재를 공유하기 때문에 사진이 곧 모델 자체이다. … 사진 자체와 대상 자체는 공통된 존재를 공유한다."


자코우스키는 사진은 "완전히 새로운 것"일 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그림 제작 기법"이라고 주장했다. 자코우스키는 매체 특유의 생산 과정을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은 "제한된 의도를 넘어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자코우스키는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모사할 수 없는 사진만의 능력"을 전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최근 사진에 대한 연구는 모두 사진의 역사적․존재론적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형식주의 사이의 열띤 논쟁은 하나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한 질문으로 환원된다. 사진을 본래의 특성 또는 그것을 둘러싼 문화와 동일시할 수 있는가? 포스트모더니즘과 형식주의 모두 사진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아닌지)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들의 논쟁은 정체성 그 자체라기보다 정체성의 위치 설정, 즉 그 경계와 한계에 관한 것이다.



사진의 발상

커다란 수수께끼

사진의 기원은 정확히 언제일까? 헬무트 거른샤임은 권위 있는 저서 『사진의 기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슐체의 실험(1725) 이후 사진의 화학적 원리뿐만 아니라 광학적 원리에 대한 지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 사진술이 그보다 앞서 발명되지 않은 것은 사진사의 커다란 수수께끼다. 분명히 17, 18세기 카메라 옵스큐라(camer aobscura, 어두운 방의 지붕이나 벽 등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반대쪽의 하얀 벽이나 막에 옥외의 실상(實像)을 거꾸로 찍어내는 장치)를 즐겨 사용하던 많은 화가들 사이에서 카메라 옵스큐라에 나타난 상을 영구히 정착시키려는 시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통속적인 차원에서 사진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사진의 "진정한" 발명자가 누구냐는 논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1939년 프랑스의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가 과학 아카데미와 의회에서 자신의 사진 인화법을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사진 발명자의 영예와 금전적인 보상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풀햄(1794), 웨지우드(1800), 니에프스 형제(1814), 다게르(1824), 톨벗(1833) 등도 사진에 대한 자료를 남기고 있어 진짜 발명자를 찾기란 어렵다. 피에르 아르망은 1839년 다게르의 선언 이후 자신이 첫 번째 발명자라고 주장한 모든 이들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썼다. "프랑스인 7명, 영국인 6명, 독일인 7명, 미국인 1명, 스페인인, 노르웨이인, 스위스인, 브라질인. 그 짧은 순간 하나의 발견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명되다니!"


대단한 명단

정말 대단한 명단이다! 거론된 사람들의 수만으로도 그들 중 누가 첫 번째 사진의 진정한 발명자인지 계속해서 말싸움을 벌이는 학자들의 노력을 비웃기에 충분하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것은 분명히 역사에 관한 논쟁이자 남성성과 부권에 관한 논쟁이며 탄생의 시점이라는 영웅적인 전조에 관한 논쟁이자 사진가와 역사가의 정당성에 관한 논쟁이다.


원시 사진가들

분명히 선별적이고 위험이 따르긴 하지만 여기서 사진을 향한 욕망을 실천하고 기록했으며, 남보다 앞서 시도했다고 주장한 이들을 원시 사진가라고 부르도록 하자. 화가이자 실험가였던 이들은 여러 글을 통해 사진이 자신들의 욕망의 대상이었음을 밝혔다. 역사에 대한 기억이 선택적임을 감안하면 명단에 포함된 이들은 1839년 이전 실제로 사진을 열망했던 이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원시 사진가들처럼 사진을 향한 욕망을 품었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연구를 지속하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 단편적인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사진을 향한 욕망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일정한 담론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이르러서 "사진"을 사고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즉 사진의 역사적문화적 특정성이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18세기나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사진을 향한 욕망은 실제로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역사적인 기록도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사진에 대한 요구가 급속히 성장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을 향한 욕망

풍경, 자연 대상, 카메라 옵스큐라에 나타난 영상, 자동 복제는 사진을 향한 잠재적인 욕망 안에 존재하는 주요 집착 대상이다. 풍경, 자연, 카메라에 나타난 영상, 자동성. 단어 하나하나는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사라지는 자연의 형상 그대로를 카메라 옵스큐라에 정착시키려는 욕망은 1790년에서 1839년 사이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각각의 단어와 그 당시 단어의 의미, 원시 사진가들이 실제로 단어를 사용한 방식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사진으로 발현된 욕망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형상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말한 것처럼 자연은 "어쩌면 언어 중에서 가장 복잡한 단어이며 자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온 역사 전체가 사상사의 커다란 부분이다." 1800년대 자연이라는 단어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처럼 편의적으로 과학, 예술, 문학으로 구분된 학문 분야가 그 당시 개인이나 텍스트 속에서는 분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연은 정확히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신성한 자연이며 질서 있고 조화로운 것이다. 그리고 본래 위대한 창조주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망원경과 현미경 같은 시각 장치의 발명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하거나 개선시키지 못했다. 뉴턴이 수학적인 원리로 제시한 자연의 질서를 용인하고 이것을 우주 전체와 미시 세계로 확장시켰을 뿐이다. 신은 자연만큼이나 완벽한 예술 안에서 기뻐한다. "자연은 신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자연에 대한 이런 시각은 확실성의 측면에서 중대한 내적 위기를 맞는다. 자연은 이제 한 순간의 신의 창조 행위로 만들어진 고정된 시계 장치가 아니라 통제가 불가능하고 활기에 넘치며 활동적인 유기체로 인식되었고 역사의 영역으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실제로 자연은 시간 그 자체의 급속한 팽창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낭만주의 시인들은 자연에 집착했는데 이런 집착은 문화로부터 자연을 분리할 수도, 서로가 조화를 이룰 수도 없다는 인식에서 일정 부분 비롯된 것이다. 원시 사진가들에게서도 이것과 유사한 불확실함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원시 사진가들은 자신들의 발명을 이 "놀라운 우주", 자연과 어떻게 연결지었을까? 그들은 자연이 사진의 산물인지 아니면 자연이 사진을 만드는 것인지를 고민했다. 


수동적인 동시에 능동적인, 자연을 그리며 자연이 저 스스로 그려지는, 대상을 반영하면서 구성하는, 복제와 원본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자연과 문화의 영역에 모두 관여하는 재현 체계. 그것을 뭐라 부르든 사진 발명자들에게 사진은 분명 과학적인 측면에서나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측면에서 딜레마로 다가왔다. 모두가 사진술의 발상에서 자연이 핵심적인 요소라고 확신했지만, 그 누구도 확실하게 자연이 무엇이며 그 "존재 양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즉, 사진이 상상되던 바로 그 시점에 자연은 확실히 불확실한 개념이었다.


카메라 옵스큐라에 의해 만들어진 영상

카메라 옵스큐라는 사진의 발명에 관한 전통적인 역사적 고찰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원시 사진가들 대부분이 사진을 향한 자신들의 열망을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만들어진 영상과 관련지어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진사는 이렇게 중요한 수사적 표현에 함축된 다양한 의미에 주목하지 않는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몇 세기 전부터 화가들이 사용했지만 18세기 이전까지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고 사용이 불편한 소묘 도구였다. 18세기 들어 카메라는 점점 작아져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됐다. 1812년 카메라는 울러스턴에 의해 렌즈 시스템이 개선되어 내부의 거울과 바닥의 유리, 그리는 표면에 빛을 정확하게 맞추는 능력이 향상되어 스케치를 하기에 더 편리해졌고 마침내 사진의 도구로 활용되기에 이른다.


1789년 에라스무스 다윈은 시집 『식물의 사랑』 서문에서 비슷한 은유를 사용해 "순수한 묘사"를 강조하고 있다. "보라,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어진 광경을. 흰 캔버스 위에서 빛과 그림자가 춤추며 명징한 생명을 창조해낸다." 1839년 1월 7일 장 바티스트 비오는 어느 연설에서 다게르가 과학에 "인공 망막"을 제공했다고 칭송했다. 카메라 옵스큐라와 눈의 비유는 유럽 지성사에서 오랜 역사를 지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케플러, 데카르트, 로크, 뉴턴 등의 글에서도 두루 나타난다. 18세기 카메라 옵스큐라는 인간의 시각과 외부 세계에 대한 지각 주체의 관계를 재현하는 지배적인 은유가 되었다.


1800년대 들어 점차 카메라 옵스큐라와 거울의 의미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19세기 초반 카메라 거울에 나타난 영상은 외부 세계에 대한 직접적이고 모방적인 반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여전히 시각과 재현에 대한 편리한 은유였지만 기정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1785년 윌리엄 쿠퍼는 「임무」라는 시에서 친숙한 카메라 옵스큐라의 비유를 반복한다. 그러나 이것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바라보는 것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새로운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의식의 거울을 채우는 사라지는 영상을

손에 넣기 위해 재빨리 붙잡네.

이를 주저앉혀서,

바라보는 모습 그대로 그릴 수 있을 때까지.



자동 복제

사진에 대한 담론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재현할 뿐만 아니라 재생산한다. 다게르는 과장된 말로 자신의 기법은 "자동 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초반 "자동 복제"라는 말은 외부 원인이 없는 화학적인 또는 물리적인 변화를 지시하는 것이었다. 니에프스 역시 자신의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진으로 1862년경 니에프스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하여 찍은 사진)에 관한 초기 해설에서 자동 복제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이런 특성이 사진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이 자동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전적으로 자연의 충동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과거에 대한 시각적인 기억이며 지나간 역사이자 미래의 변화에 대한 예언이다. 사진은 이전의 매체와 전혀 다른 시간 경험을 제공한다. 시간 측정에 국한하자면 회화와 소묘는 무엇보다 먼저 화가가 그것을 그리기 위해 투여한 시간을 나타낸다. 정교하게 구성된 그림 표면에서 우리는 거기에 투여된 시간을 읽는다. 프레임 안에 재현된 대상과 장면은 자체의 내적 시간대 안에 존재한다. 사진은 실제 시간의 주어진 순간 고정된 공간적인 관계 내에 대상을 묘사한다. 카메라 앞에 그 순간을 살아 있는 것으로, 시간적 요소라는 그림의 구성 체계 밖에 있는 순간을 정착시킨다.


사진은 분명 시간 자체를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연속적인 운동으로 묘사한다. 사진 이미지에서 우리가 보는 현재는 고정된 시점이며 현재와 미래가 겹쳐진 채 배회하는 환영이다. 공시적통시적 시간 기호 사이의 역설적인 유희 속에 사진은 헤이든 화이트가 말한, 근대의 특성인 시간에 대한 불안을 반복한다.


변형

1834년 에르퀼 플로랑스가 사진(photography)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1839년 2월 영국, 프랑스, 독일의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스어의 두 어원이 결합한 ― photo(빛)와 graphie(글쓰기, 소묘, 묘사) ― "사진"은 여러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한 단어 안에 빛(태양, 신, 자연)과 글(역사, 인류, 문화)이라는 모순적인 것이 결합되어 있다. 언어의 조합으로 두 단어가 결합되어 불가능한 이분법적인 대립이 "정착된" 것이다. 사진이라는 언어적 구성은 하나의 자석 안에 두 힘처럼 긴장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진이 속한 영역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할 필연성에서 비켜나 있다. 그 괴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사진은 자연과 문화 "사이의" 유예된 제3의 영역도, 영속적인 미결정성이라는 편의적인 우유부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그리스어 접미사 graphy는 수동으로도 능동으로도 읽을 수 있다(그래서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그것은 동사이자 명사로, 생산하는 동시에 생산되는 것이며, 쓰이면서 쓰는 것이다. 사진이라는 명칭은 빛나는 언어의 조합으로 자신의 불가능한 역사적인식론적 정체성이라는 매혹적인 딜레마를 재생산한다.



사진들

누드를 그리는 화가

대부분의 사진비평가들은 사진 매체의 역사에서 선형 원근법의 발명을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라고 본다. 원근법은 주어진 시점, 개별 인간 관찰자의 눈을 기점으로 구성된 동질적 재현체계다. 원근법은 또한 눈과 보이는 것의 경계, 관찰하는 주체와 관찰 대상의 분리를 의미한다.


1986년 『사진의 역사』 한 페이지에 다시 등장한 <누드를 그리는 화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뒤러의 목판화는 이 책에 실린 가장 오래된 이미지로 최초의 사진 이미지(또는 원형적인 원시 사진)로 제시된다. 그것은 사진의 역사적 기원이자 존재론적 기원을 의미한다. 뒤러의 목판화는 1538년 북유럽인에게 이탈리아 원근법의 가능성과 방법론을 소개하는 『측량론』에 실렸다. 삽화는 화가가 벌거벗은 여자를 그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인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책상에 기대고 있는데 화가는 여자의 조금 벌어진 다리를 응시하고 있다. 여인은 왼손으로 커튼처럼 음부를 가리고 있는데 이 모습 때문에 음란한 자세가 강조된다. 여인은 화가와 격자무늬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데 이 스크린은 원근법 소묘를 위한 측정 도구이다. 화가의 눈은 여인의 주위를 맴돌지 않고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스크린의 작은 오벨리스크 같은 남근 모양의 뾰족탑을 향한다. 화가의 손만이 여인의 성적 정체성을 재현이자 기하학적인 질서로, 남성적인 눈을 중심으로 배치된 원근법적 단일성으로 포착하려 한다.


"원근법은 전적으로 남성적인 질서다." 뒤러의 목판화의 메시지는 이것일까? 얼핏 보아서는 원근법에 내재하는 주체-대상의 대립(그림에서 이것은 남성/여성의 대립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과 바라보는 대상으로 재현된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이항대립적 질서를 벗어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라는 "끔찍한 공허"를 화가의 주요 욕망의 대상으로 설정하려는 의도는 전략적으로 배치된 커튼에 의해 화가의 응시가 거부됨으로써 좌절된다. 물론 화가는 여인을 그리겠지만 여인은 이미 그의 이해에서 벗어나 있고 여인의 결여에서 벗어나기 위해 격자화된 화면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좌절된다.


바라보는 사람의 눈은 화가의 눈과 같은 위치에 놓여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화가처럼 우리는 커튼 너머의 여성을 볼 수 없다. 뒤러는 라틴어로 원근법은 "통해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림은 화가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한 시점을 확인해줄 뿐이다. 뒤러의 목판화는 원근법의 재현 그 자체, 그것의 구성적인 권력과 대상을 한 자리에 "고정시키려는" 권력의 실패 가능성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원근법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주장을 뒤흔드는 것이다.



방법론

사진을 다시 생각하자

데리다가 기호학을 논의하며 제기한 것처럼 문화비평가는 재현을 일반적인 각인의 살아있는 형태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포스트모던 비평이 전통적으로 그러했듯 사진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진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전환은 분명 정치적인 분석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진의 정치학은 매체가 억압적인 제도 안에서 작용될 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은 근대 서구의 사건으로, 사진의 존재 자체에 존재한다. 그것은 모든 사진 안에서 사진을 가능케 하는 모든 존재론적 장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그토록 부인하는 사진으로 재생산된다. 우리가 개입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텅 빈 예술사를 주장하는 형식주의의 손에 본질이라는 전장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


사진의 역사는 늘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시점, 하나의 명확한 의미, 단선적 내러티브, 이 모든 전통적인 역사의 명제는 그러므로 사진의 기원에서 비켜나 있다. 그 자리에서 우린 조금 더 도발적인 무언가를 발견했다. 매체의 부정할 수 없는 개념적정치적역사적 복합성에 따라 유연하게 사진을 다시 사고하는 방법 말이다.



사진의 죽음

디지털화가 사진 이미지를 코드화하는 최신의 방법으로 출현하자 (사진적인) 기록의 근거와 지위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진 이미지 또는 디지털 화상과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사이에 그나마 존재했던 연속성은 흔들리고 있으며 재현이라는 개념 자체도 논쟁에 휩싸였다.


사실상 디지털 이미지의 등장으로 가능하게 된 이미지의 유연성은 결국 신뢰받는 회화 양식으로서 사진 본래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다. 사진에 대한 신뢰가 조금이나마 남아있더라도 상징이자 증거로서 더 이상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사진의 발명을 목격하고 프랑스 화가 들라로슈는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 150여 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사진의 죽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렇듯 일관되게 사망 선고가 터져 나오는 것은 서로 연관된 두 가지 불안에서 비롯된다. 첫째로 "가짜" 사진이 진짜처럼 통용될 수 있게 만든 컴퓨터 이미지 공정의 도입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진위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사진이 객관적인 진실을 전달할 것이라는 믿음을 거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진은 정보의 특권적인 전달자로서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진짜 사진처럼 보이는 디지털 이미지들이 확산되면서 사진은 독자적인 매체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런 우려는 두 번째 불안에 의해 더욱 증폭되었다. 더 이상 원본과 모방을 구별할 수가 없는 시대로 들어섰다는 그릇된 의심이 그것이다. 머지않아 전체 세계는 무차별적인 인공 자연, 과현실(hyperreal)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성가신 질문은 별스런 시대착오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이 그러하듯이.


사진은 그 시작부터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을 멈추고 되돌림으로써 사진은 삶과 죽음의 모순된 교차를 구현한다. 죽음이 사진의 생명의 일부이자 단편이라면, 사진에서 디지털 이미지에 의해 최종적으로 대체된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분명 컴퓨터 이미지 제작 공정은 급속하게 여러 상업적인 조건에서, 특히 광고와 보도사진에서 전통적인 스틸 카메라 이미지를 대체하고 보충하고 있다.


중요한 차이는 전통적인 사진이 여전히 객관성을 주장하는 것에 비해 디지털 이미지는 외적으로는 가상의 기법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합성과 디지털 공정은 사진의 문화적 성공을 가능케 한 진리의 수사를 포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이미지는 기록이나 사실보다 예술과 허구에 실제로 더 가깝다.


이 점은 사진을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의 전달자로 간주해왔던 분야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많은 유럽 신문사들은 정보의 결백성을 보존하기 위해 디지털로 바꾼 이미지에 M(manipulation)이라는 크레딧을 달 것을 고려하고 있다. 물론 그런 크레딧이 실제로 무엇을 숨기고 첨가했는지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문에 실린 모든 이미지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의심을 누그러뜨릴 것이다. 딜레마는 윤리적이라기보다 수사적이다.


우리는 인간과 인간에 부수되는 모든 것이 이제는 지식의 안정된 장소가 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이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것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사진과 사진 문화가 어떻게 전처럼 유지될 수 있을까.


한 때 사진은 회화의 관습과 미학적 가치에 의해 평가되었지만 오늘날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유령처럼 사진 이미지는 존재 자체로 우릴 놀라게 하지만 머지않아 그 본래적인 형태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실재로서 사진은 사라지더라도 관습과 참조틀이라는 용어로서 사진은 영원히 그 광채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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