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1840~1900

Eyes of Love

   
스티븐 컨(역자 : 남경태)
ǻ
휴머니스트
   
30000
2005�� 09��



>■ 책 소개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1880~1918』에서 19세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전방위적으로 조명하는 솜씨를 보여준 바 있는 스티븐 컨이 문학과 미술 속 "시선"의프리즘을 통해 역동적인 19세기의 문화사를 구석구석 탐험한 책이다. 저자는 19세기 문화의 중심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회화와 문학 속 "남녀의시선"에 주목한다. 여기에는 가장 작은 단면으로 해당 시대를 폭넓게 바라보고자 하는 저자 특유의 문화사 서술의 방법론이 담겨 있다. 저자는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조지 엘리엇, 토머스 하디, 샬럿 브론테 등의 시와 소설, 그리고 130여 점의 고갱, 르누아르, 드가, 마네,밀레이, 로세티, 티소, 번 존스 등의 회화 작품들을 재료로 삼아 신화에서 철학, 정신분석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식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 저자 스티븐 컨
1943년 LA에서태어나 콜롬비아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던 일리노이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2005년 현재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하버드대학 명예연구원, 미시건, 노스웨스턴, 시카고 미술연구소 등의 방문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1880∼1918』『육체의 문화사』 등이 있다. 


■ 역자 남경태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역사와 철학 분야의 저술과 번역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종횡무진 서양사』『종횡무진 동양사』『트라이앵글세계사』등이, 옮긴 책으로 『사람의 역사』『꿈』『우리 세계의 70가지 경이로운 건축물』 등이 있다.


■ 차례
감사의 말
옮긴이의말


1장 시선의 프리즘으로 본 문학과회화
01. 사랑의 시선
02. 19세기 시각 양식, 청혼의 구도


2장 서사와 시선의 낭만적 조우
03.문학으로 표현된 19세기의 "눈"
04. 인상주의 예술 속의 시선


3장 연인들의 풍경
05. 놀이 속의에로티시즘
06. 자연과 문화, 여성과 남성


4장 예술과 모험의 세계
07. 감각적 현실속에 파묻힌 시선
08. 사랑의 시력


5장 여성의 신체와 남성의 시선
09.시선의 양면적 유혹
10. 피르말리온 신화
11. 지식의 나무와 이브


6장 공적인 감시 체계의 탄생
12. 미술과문학 속의 매춘
13. 시선의 권력


7장 시선의 쾌락
14. 욕망하는유혹
15. 경계를 노니는 여성의 눈


8장 예술과 문학에 나타난 구원 공상
16빅토리아 시대의 환상
17 그림과 소네트


9장 사랑과 도덕의 몽상
18. 19세기가족 풍경
19. 시각과 사랑의 해석


10장 시선의 문화사1840~1900
20. 19세기의 문학과 미술의 구도
21. 화가들은 왜 여성의 "눈"에주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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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1840~1900


시선의 프리즘으로 본 문학과 회화

19세기 시각 양식, 청혼의 구도

감정의 깊이가 더해지고 사랑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여성들은 점점 내가 사랑의 도덕이라고 부르는 것을 말하고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러한 여성의 표정을 부각시키고 사랑의 도덕에 대해 여성이 더 헌신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요소, 즉 구혼의 관습, 성도덕, 남자 화가와 여자 모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여성의 시선을 강조하는 첫 번째 설명은 구혼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처음에는 남자가 구혼할 상대와 시기, 진행방식을 결정한다. 남자의 청혼을 받은 뒤에야 여자는 확실한 주도권을 장악할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잠깐 동안 권력을 쥔 순간 여성이 느끼는 파토스는 특히 청혼 장면을 묘사한 작품에서 생생히 드러나 있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소설 「북부와 남부(North and South)」에서 여성이 단지 동의할 권리밖에 없다는 현실에 항의하면서 여주인공 마거릿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내 입은 네와 아니오만을 말할 줄 아는 장미 꽃봉오리가 아니에요." 남자는 청혼을 한 뒤 여자를 바라보면서 대답을 기다린다. 여자에게는 결정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다.


여성의 시선을 강조하는 두 번째 설명은 사랑의 도덕적 규약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도덕이란 정직, 정절, 헌신성 등 연인들이 사랑을 꽃피우기 위해 지켜야 하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리킨다. 남성과 여성의 표정에 드러난 도덕성을 비교할 때 핵심적인 문제는 여성과 남성 중 누가 연인 사이의 애정관계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도덕 규범에 더 크게 집착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규범 체계의 내부에서는 연인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서로를 감동시킨 말과 행동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단일한 도덕적 기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이중적 기준이라는 용어의 일반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이 시대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보여줄 것이다. 사회가 뒷받침하는 이중적 기준은 연인들이 서로에게 적용하는 이중적 기준과는 다르다. 빅토리아 사회에서는 남자들이 이중적 기준을 악용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으나, 애정관계의 틀 내에서 볼 때 그 위선적인 이중적 기준은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똑같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공적으로 강요된 성의 역할은 여성과는 별개로 정의된 분명한 남성적 도덕을 내포하고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남성은 우수한 자질을 바탕으로 공적 영역에서 여성보다 더 큰 도덕적 권위를 발휘할 수 있다고 간주되었다. 그러나 사적 영역을 다룬 소설과 회화에서 여성은 강한 도덕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적 영역에서의 여성은 남성보다 도덕적 권위가 더 크기 때문이다. 로체스터는 기혼자의 신분임에도 제인 에어에게 청혼을 한다. 그 사실을 한 제인이 청혼을 거절하자 그는 결혼한 사실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고, 중혼(重婚)의 죄라도 개의치 않겠다면서 그녀에게 연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제인은 마음이 크게 흔들렸으나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도덕 규약을 대변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거절한다. "저는 하느님이 내리시고 인간이 동의한 율법을 지키겠어요. 율법과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지금처럼 유혹이 있을 때 육체와 영혼이 서로 어긋나게 움직일 때가 있기 때문이죠." 소설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성적 욕구에 더 크게 저항했다. 그런 저항은 도덕심의 기초였고 문화의 토대였다. 도덕과 문화는 바로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거부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청혼하는 구도가 널리 사용된 것에 대한 세 번째 설명은 남성 화가들의 애정 생활과 관련이 있다. 그 중에서 나는 밀레이, 로세티, 헌트, 번 존스, 티소, 르누아르, 마네, 고갱, 툴루즈 로트레크를 꼽고 싶다. 이들은 자신의 삶과 예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모델과 사랑을 나누었거나 적어도 섹스를 했다. 이 화가들은 사랑을 모델의 눈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필요성 혹은 욕구 때문에 더욱 여성에게 매료되었다. 회화 작품들을 보면 화가의 성별, 계급, 국적, 양식상의 지향, 사적인 애정관계 등과는 무관하게 여성의 표정을 강조한 화가들은 공통적인 느낌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화가가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모두들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 이전의 화가들이 여성의 시선에 각별한 관심을 부여한 사례는 많이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1840~1900년의 영국과 프랑스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그 시기에 구애를 주제로 한 이야기식 회화가 정점에 달했고, 청혼하는 구도가 특별히 두드러지게 보였으며, 현재 시선에 관한 많은 연구가 그 예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적 지배, 군사적 힘, 경제적 소유, 사회적 특권, 문화적 헤게모니가 모두 남성 중심적인 세계에서 여성은 도덕적 우수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연구는 여성의 도덕적 우수성이 사랑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가능할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남성이 특권을 지니고 있는 현실을 교정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남성들은 여성에게서 대담한 구애, 영속적 우정, 정신적 풍요, 물질적 안락, 자극적 섹스, 도덕적 인도, 그리고 이따금 예술적이고 지적인 교환을 추구했다. 그런 욕구들은 19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들의 플롯과 대단히 인상적인 회화들의 모티프를 구성했다.



서사와 시선의 낭만적 조우

예술과 모험의 세계

- 제인 에어, 눈으로 모든 것을 말하다

『제인 에어』에서 마침내 로체스터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제인에게 청혼한다. 그녀는 곧바로 그의 눈에서 낯선 기미를 감지하나 청혼을 수락한다. 결혼식이 치러지는 동안 그가 이미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아내가 정신병자라고 해명함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예전에 그는 계몽되기 전의 제인에게 중혼을 강요한 바 있었지만 이제는 계몽된 제인에게 자신의 정부가 되라고 강요한다. "그 눈을 생각해 보라. 그 단호하고, 야성적이고, 자유로이 생각하는 눈을 보라. 용기보다 위엄으로써 나를 거부하는 눈을 보라. 잡아 가둔다 해도 나는 그 야만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을 어찌할 수 없으리라!" 그 근엄한 눈썹을 지닌 힘센 가장이 일개 가정교사의 단호하고, 야성적이고, 자유로운 시선 앞에 초라해진다. 로체스터의 시선에는 온갖 격정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인의 지적이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눈길 앞에서 무력하다.


그 다음 날 그를 떠난 그녀는 몇 주일 뒤에 2만 파운드를 상속받게 된다. 한편 그녀가 자신에게 돌아오기 전 로체스터는 화재로 저택과 재산을 잃고 시력마저 잃는다. 제인이 지닌 도덕으로 인해 건강과 행복을 되찾은 로체스터는 한쪽 눈의 시력을 되찾게 된다. 그 뒤 그는 제인 덕분에 어떤 의미에서 두 눈의 시력을 모두 회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눈처럼 크고, 밝고, 검은 눈을 가진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여성의 시각은 남성보다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으로 우월하게 묘사되고 있다. 소설의 경우에는 샬럿 브론테가 독보적이기는 하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훨씬 더 잘 보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은 그 시대의 문학과 미술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름도, 친구도 없이〉 에밀리 오즈번, 1857년경, 개인 소장


화가들은 모자 가게 점원, 꽃 파는 처녀, 세탁부 등 저임금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여자들에게 건달들이 저의가 담긴 시선을 보내는 장면을 자주 묘사했다. 남성 화가와 여성 화가 모두 약탈적인 남자의 시선에 대해서는 똑같이 경멸했다. 에밀리 오즈번은 <이름도, 친구도 없이(Nameless and Friendless)>에서 두 남자의 직접적인 시선과 몇 명의 남자의 간접적인 시선 아래 놓인 일하는 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목적은 창조적인 여성이 남성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방법을 보여주려는 데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류 화가는 화상이 자신의 작품을 감정하는 동안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면서 초조함을 달래고 있지만 단지 욕망의 대상인 것만은 아니다. 그녀의 자세는 앉아 있는 남자들보다 더 능동적이다. 그녀는 세계를 창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예술을 생산했고, 감각적인 욕망과 주체적인 관찰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녀는 시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아껴 쓰고 있으며, 자신이 진짜 소유한 인상적인 시선을 발산하고 있다. 그것은 사려 깊고 아름다운 시선, 자기 그림의 판매를 조심스럽게 낙관하는 시선, 거절당할 것을 우려하는 시선, 남동생을 보호하는 시선, 남자들의 추파를 거부하는 시선이다.


또한 화가들과 작가들은 발레 교사, 연극 연출자, 콘서트 감독 등의 세심한 시선 아래 연습하는 여성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우리가 19세기 발레 무용수를 일하는 여성으로 보게 된 것은 600여 점에 달하는 드가의 작품 때문이다. 드가는 무용수를 명랑한 님프나 장난치는 귀족처럼 그리지 않고 남자 무용 교사의 경험 많은 시선 아래 훈련하고 연기하는 엄격한 전문가로 그려냈다. 극단의 부유한 기부자로서 무대 뒤편에까지 들어와 무용수들에게 추근대는 무뢰한들은 그늘과 가장자리에 배치하거나 커튼과 무대장치로 가리거나 무대 양옆, 의상실의 바깥, 때로는 그 안에서 기다리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공적인 감시 체계의 탄생

19세기 동안 매춘부의 수, 활동 장소, 제공하는 서비스가 크게 증가한 결과 그들이 보건과 도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중의 관심도 커졌으며, 그에 따라 공적인 감시 체계도 생겨났다. 여성의 도덕이 주로 성도덕이던 시대의 매춘부는 부도덕이 인격화된 존재나 다름없었다. 공중도덕의 수호자들은 그들이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남편들을 타락시키고, 아내들을 속이고, 질병을 퍼뜨리고, 병사들을 파멸시킨다고 비난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매춘부가 출산율을 저하시키고 국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부상했다. 그런 위험스러운 힘과 더불어 매춘부는 도덕적 권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도덕적 권력을 갖고 있었다.


미술과 문학 속의 매춘

화가들은 시각적으로 호소력이 있는 실크해트의 고객들에게 둘러싸인 야한 속옷과 현란한 보석으로 치장한 고급 창부를 주제로 삼았다. 작가들은 매춘부의 화장한 눈에 이끌렸다. 매춘부의 눈에서 상징을 탐구한 작가 두 사람을 꼽으라면 『나나』의 졸라와 『올리버 트위스트』의 디킨스를 들 수 있다.


『나나』의 첫 장에서 작가는 고급 창부의 멋진 육체를 본 후 파멸의 길을 걷게 되는 남자들을 소개한다. 나나에게 정복당한 주요 인물인 뮈파는 성장할 때까지 여자의 몸을 알지 못했고 부부로서의 의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아내를 혐오했다. 나나가 그에게 모든 것을 보게 해주자 그는 자신의 굶주린 눈을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었다. 졸라는 황제에게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이 백작의 눈을 통해 제2제정의 망상을 희화화하고 있다.


나나는 다른 여자들이 부끄러워 감추는 것을 세련되면서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힘이다. 자신의 육체를 자랑스럽게 과시하고 솔직하게 성을 말하는 그녀는 온갖 악의 씨앗이 아니다. 무릇 악이라면 의도적인 행위여야 하고, 행위의 결과를 행위자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들을 타락시킨다. 남자들도 자신의 타락에 책임이 있다. 졸라가 말하듯이 나나는 자연의 힘으로서 가난과 물려받은 기질로 인해 매춘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남자들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그녀를 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또한 성적 욕망으로 사랑을 타락시킨 책임도 있다. 나나는 특히 뮈파와의 관계에서는 도덕적으로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녀는 억압적인 도덕 규범으로 기능을 잃었던 그의 시각을 부분적으로 되살려준다. 그래서 그는 이후 그녀가 남자들을 성적으로 정복하면서 점점 심해지는 타락의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다. 결국 그는 그녀의 방탕으로 파멸하게 된다.


소설의 끝 부분에 이르면 그녀는 죽을병에 걸려 호텔 방에 누워 있는데, 그녀를 아는 창부 대여섯 명이 전염의 위험을 감수하고 그녀 곁에서 임종을 지키는 동안 아래층에 있는 같은 수의 남자들은 그녀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한다. 졸라는 성적 매력을 발산하던 나나의 눈이 남자들에 의해 썩어 죽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끔찍한 장면으로 소설을 마무리하고 있다.


성, 부도덕, 타락, 죽음의 혼합은 이 시대의 미술에 등장하는 수많은 고급 창부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중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품은 토마 쿠튀르의 <쇠퇴기의 로마인들(The Romans of the Decadence)>이다. 성적 방종과 도덕적 타락을 묘사한 이 파노라마의 중앙에는 로마 장군 게르마니쿠스의 조각상과 창부가 길게 누워 있다. 장군의 죽은 눈은 도덕적 부패를 보지 못하지만 창부의 살아 있는 관능적인 눈은 그 한복판을 본다.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은 정면을 향하지 않고 덜 밝으며, 성적으로 두드러지지 않고 자신의 행동과 욕망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초연한 두 철학자들이 대변하는 절제의 도덕은 창부를 둘러싼 밝은 중앙 장면과는 대조적으로 주변으로 밀려나 그늘 속에 존재한다.


<쇠퇴기의 로마인들> 토마 쿠튀르, 1847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그녀의 신체는 퇴폐적인 남자들이 지닌 욕망의 초점이자 그녀 자신의 근원이지만, 오른팔이 늘어져 있는 구도로 보아 이 난잡한 파티에 대한 정확한 증거이자 이 역사적인 성적 방종의 순간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쿠튀르의 그림은 창부의 구체적인 특징을 일반화하는 모델이 되었다. 그밖에 다른 화가들은 창부를 묘사하기 위해 고전의 선례, 신화의 배경, 동양적 소품, 다른 곳으로 돌린 시선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했다.



시선의 문화사 1840~1900

19세기 문학과 미술의 구도

이 책의 논지는 소설에서 입증되고 미술에서 확인되는 시각적 관습의 양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양식에 부응하는 그림들을 나는 청혼하는 구도라고 규정지었다. 이것은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고, 여자는 남자를 외면하며 감상자를 향하는 구도를 말한다. 여자의 얼굴은 더 정면을 취하고, 밝고 상세하게 묘사되며, 훨씬 다양한 표정으로 강조된다. 그런 여성은 남성적 시선에 의해 대상화되지 않고 당당한 주체성을 견지하며, 주로 성적인 의도와 표현을 담은 남성의 시선보다 한결 다양한 생각과 정서를 전달한다.


이 청혼하는 양식의 역사적 의미를 최종적으로 일반화하려면 먼저 남자가 정면을 향하고 여자가 옆모습으로 나오는 구도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런 반대 사례들은 대개 남자가 여성적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논지에 위배되지 않는다. 화가들은 일반적으로 여성이 사랑의 도덕에 더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성을 정면 자세로 묘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모든 면에서 남성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은 다만 여성이 담당하도록 되어 있는 분야 - 구애와 결혼 과정에서 애정에 관한 사적 분야 - 에서만 더 도덕적일 뿐이다.


나는 이 연구에서 남녀가 함께 있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묘사할 때 대개 여성이 우월한 자세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19세기 후반의 미술과 문학의 구도가 사랑의 현실에 관해 무엇을 드러내는지에 관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여성은 사적인 영역에서 사랑을 통제했는가? 여성은 사적인 영역에서 남성보다 더 도덕적이었는가? 사랑에 관한 단일한 도덕 기준이 있었는가? 여성은 자연스러운 충동을 남성보다 더 거부했는가? 남성 화가들은 왜 남성을 종속적 위치에 놓았고, 사랑의 도덕에 별로 충실하지 않은 모습으로 표현했는가?


남성의 영역과 여성의 영역이 구분되었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남성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랑의 현실을 해석하고자 하는 화가들은 특정한 성이 지배하는 상황보다는 남녀간의 사랑이 균형을 이루는 상황을 더 선호했다. 그랬기 때문에 청혼하는 구도가 큰 인기를 누린 것이다.


그런 그림들에서 여성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더 넓은 생산적 활동의 영역을 향유하는 남성에 비해 여성은 사랑에 전념할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하고 다른 곳으로 신경이 분산될 가능성이 더 적다. 둘째, 사랑이 잘못될 경우 여성은 잃는 것이 더 많다. 남자를 사랑함으로써 여자는 순결, 건강, 자율, 거주지, 처녀 시절의 성, 법적 지위를 잃을 수 있으며, 심지어 아이를 출산할 때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연히 여자가 되는 것이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사랑을 더 중시하고 더 많이 알고 있으며, 결혼을 통해 사랑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하다. 화가들이 사랑의 그림에서 여성을 부각시킨 이유는 여성이 바로 그들의 주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질문은 여성이 사랑에서 더 도덕적이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혹은 공적 영역에서 남성이 가진 특권이 사적 영역에서 여성이 가진 도덕적 우월성 - 이는 법과 관습으로 규정되고 어느 정도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져 있다 - 을 침해했는가?


여성의 도덕적 우월함을 보여주는 증거는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주의 문헌들, 골상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들의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설은 여성이 사랑의 도덕에 헌신적이라는 점을 더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 도덕적인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와 달리 여자 주인공은 비록 자신의 욕망과 좌절에 의해 제약을 받기는 하지만 강한 도덕 의식에 의거하여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에게 강렬한 욕망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자연적 충동을 억누른다.


처음 두 질문에 대한 답을 보면 남성과 여성이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행사하는 도덕적 권위를 비교할 수 있다. 남성은 공적 영역의 도덕을 관장했고, 여성은 사적 영역의 도덕을 관장했다. 그 핵심적인 관계로부터 모든 인간관계에 관철되는 기본적 도덕이 발생했다. 또한 여성은 도덕의 기본적인 측면에서 공적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청혼하는 구도는 그 자체로 암묵적인 정치적 발언이 되었다. 그 구도에서는 여성이 더 정면을 향하고 표정이 풍부한 것에 비해 현실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질문은 사랑에 관철되는 도덕 기준은 단일한가에 관한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이중적 기준이 통용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남성과 여성을 직접 대면할 때 옳고 그름에 대한 서로의 관념을 지배하는 것은 단일한 도덕 기준이었다. 소설들에서 보여주듯이 남성도 연인의 눈 앞에서는 똑같은 수치심을 느꼈고 자신의 마음에서도 똑같은 죄의식을 가졌다. 아무도 그의 도덕적 위반을 모른다 해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넷째 질문은 여성의 도덕적 우월함에 관한 것이다. 청혼이 주제이면서 여성에게 승낙 여부를 결정하라고 묻는 제목의 그림들은 거의 대부분 여성의 거부권을 부각시키거나 적어도 연인의 성적 욕망을 규제하려는 여성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은 양육 과정에서나 구애 관습에서 성욕을 억제하라는 교육과 충고를 받지 않으므로 미술에서도 욕망을 거부하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성인, 고전적 영웅, 심지어 유혹을 거부하는 것으로 묘사된 호색한조차도 사이렌의 무리나 님프,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들의 수는 남성의 (상상적인) 성적 능력을 말해주지만, 동시에 한 명의 진짜 인간 여성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현실적인) 능력이 결핍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술과 문학에서 성적 욕망을 거부하거나 최소한 생각할 시간을 요구하는 측은 주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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