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은 성적표를 보지 않는다

   
큐리아서티 프로젝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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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앤파커스
   
16500
2020�� 07��



■ 책 소개


지방대 문과생, 테슬라 직원의 스펙이라고?


20, 30대의 44%가 ‘올해 공무원 시험을 볼 것’이라고 답했다. 2020 신입직 취업 목표는 공기업(42.3%), 대기업(20.1%) 순으로 전체의 60%가 넘는다. 대한민국에서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방법은 공무원 시험 준비와 대기업 입사뿐일까? 한국에 있는 구글, 애플, 스타벅스, 아마존, 넷플릭스는 어떤가? 때마침 언택트 채용이 확산되며 국내 대기업들이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을 도입했다. 외국계 기업은 수십 년 전부터 수시채용을 통해 ‘최고’가 아니라 ‘자격이 있는’ 인재를 채용해왔다. 앞으로는 해당 직무에 적합한 인재임을 증명하면 보다 수월하게 채용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최대 취업 커뮤니티 ‘큐리아서티 프로젝트 팀(CP Team)’은 외국계 취업 및 해외 취업의 등용문으로 통한다. 지난 5년간 전국 각지에서 150여 차례의 취업 콘서트를 열고 대학 강의를 다니며 9,000명의 청년을 글로벌 인재로 양성하고, 스태프의 50% 이상을 글로벌 기업에 취직시켰다. 책은 그들의 취업 노하우를 담아낸 첫 번째 공식도서로, CP Team의 김조엘 대표와 13인의 멘토들이 20개 기업의 실제 입사 사례와 외국계 기업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줄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내부직원 추천제도’에 우선으로 선발되는 방법과 ‘화상면접’ 완벽 대비법, 현직 인사 담당자들의 조언을 수록해 달라진 구직 시장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외국계 기업 취업의 모든 것을 안내한다. 책 출간을 기념해 면접 전 체크리스트를 수록한 ‘면접 합격 비법 노트’와 멘토들의 연락처 정보를 한정 수량으로 제공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역대급 구직난으로 취업 길이 막막했다면 이 책을 통해 구직 시장에서 유리한 정보와 인맥을 얻게 될 것이다.
 
■ 저자 큐리아서티 프로젝트팀

120여 명의 멘토와 1만 5,000명의 멘티가 함께하는 국내 최대 글로벌 기업 취업 커뮤니티. 수백 명의 재능기부 스태프 중 50% 이상을 글로벌 기업에 취직시킨 노하우를 갖고 있다. ‘큐리아서티 프로젝트팀(CP Team)’을 만든 김조엘 대표는 미국에서 20년간 직장인, 사업가로 일했다. 현재 코트라, 한국무역협회 등 공공기관과 현대, CJ 등 대기업에서 해외 비즈니스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주요 대학교에서 취업 특강을 하면서 국내 대기업과 공무원에만 목매는 청년들에게 외국계 기업, 해외 취업의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CP Team을 만들었다.


대기업 공채에서 서류전형을 탈락해도 글로벌 기업에 합격하는 일은 많다. 지방대, 문과생, 무스펙 구직자가 상위 1% 기업에 입사하는 일이 놀랍지 않다. 글로벌 기업은 취업 성공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CP Team은 5년간 전국 지자체, 대학, 기관에서 약 150여 차례 청년취업 콘서트를 열었다.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전국 광역시청과 손잡고 콘서트를 열었으며, 연세대, 홍익대, 경희대 등 30개 대학에서 매년 취업 콘서트를 열고 있다.


■ 차례
인사 담당자들의 추천사_청춘들이여, 더 넓은 세계로 오라
취업준비생의 추천사_글로벌 기업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지다!
프롤로그_‘삼성’ 입사와 ‘공시’ 합격이 성공의 기준이라고?


PART 1 취업은 ‘확률의 법칙’이 적용되는 현실적 게임
구글, 페이스북만 글로벌 기업이라는 착각
국내 대기업 vs. 글로벌 기업, 어디가 좋을까?
지방대 문과…, 테슬라 직원의 스펙이라고?
이런 사람들이 글로벌 기업 취업에 성공한다!
당장 면접 보고 싶어지는 이력서, 커버레터 작성법
영어 실력이 부족해도 무조건 붙는 면접 스킬
지금 당장 글로벌 기업을 노려야 하는 이유
나에게 맞는 회사를 고르는 4단계


PART 2 취업왕, 현직자가 귀띔해주는 ‘취업 비기’
4학년 1학기, 우선순위는 인턴? 학점? 무엇?
-김관민, 세계 최대 글로벌 IT기업 G사 (전)다크 트레이스, 아마존
“저는 지방대학교 출신입니다.”
-김익수, 미국 최대 글로벌 물류&IT기업 A사
 인사 담당자가 주목하는 이력서 작성법
-김지윤, 세계 최대 글로벌 미디어기업 D사 (전)한솔섬유
HOT세대 면접관을 연구하라!
-문영웅, 미국 최대 글로벌 제조기업 M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도 괜찮아.”
-이승범, 독일 최대 글로벌 전자&제조기업 S사 
면접 직전에 새겨야 할 A.D.V.I.C.E
-신주원, 미국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기업 C사 (전)아디다스
 어떻게 차이를 만들고 성장할 것인가
- 김수진, (전)한독, 피자헛, 맥쿼리증권,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
-이규현,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제조기업 N사 (전)휠라, 신한카드
“모범생 말고 ‘모험생’이 되어라.”
-조세협, 아시아 최대 글로벌 뷰티기업 A사
2년 만에 파트타임 알바에서 최연소 대리까지
-권진환, 북미 글로벌 생명과학기업 T사
 세계 1위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취업 전략
-최윤성, 세계 최대 글로벌 HR솔루션기업 아데코
 탁월함을 어떻게 깨울 것인가?
-조윤성, (전)IBM
꿈이 이루어진 지금 이 순간
-원재은, 세계 최대 글로벌 맥주 제조기업 A사


PART 3 당장 입사하고 싶은 외국계 취업 Q&A
Q. 대기업 직원도 부러워한다는 외국계 기업에 다녀보니?
Q. 전현직장에서 겪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는?
Q. 인사 담당자가 인정하는 외국어 스펙은?
Q. 근무할 때 영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나?
Q. 외국계 기업이 우대하는 전공은?
Q. 서류, 면접전형에서 프리패스 하는 팁?
Q. 꿈의 기업에 취업하는 현실적인 전략은?
Q. 이런 자격증 아니면 굳이 따지 말라고?
Q. 인턴, 계약직이 정직원으로 전환되는지?
Q. 외국계 기업에서 이직할 때 장단점은?


부록_나도 번듯한 데 취직했다!
테슬라 │ 지멘스 │ 토요타 │ 바스프 │ 에스에이피


 




글로벌 기업은 성적표를 보지 않는다


취업은 ‘확률의 법칙’이 적용되는 현실적 게임

구글, 페이스북만 글로벌 기업이라는 착각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은 몇 개나 될까요?” 대학에서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는데 보통 100개 정도라고 답한다. 구글, 나이키,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아디다스, 델, IBM, 쓰리엠과 같은 유명한 글로벌 기업 이름을 최소 30개는 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무역협회에 등록된 외국계 기업의 법인 숫자를 알려주면 학생들이 깜짝 놀란다. 2019년 기준으로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 진출한 현황을 보면 총 12,339개 법인이 등록되어 있다.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매우 많지만, 사람들이 잘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콘티넨탈 오토모티브 Continental Automotive를 모르는 학생들이 많았다. 콘티넨탈은 현대모비스보다 큰 독일 자동차 부품회사이고 145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2019년 기준 매출액 444억 유로(한화 약 58조 원)를 올린 거대 기업이다. 특히 이 회사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이 좋기로 유명하고 연봉이 높다.


화웨이(Huawei)는 전 세계에서 5G 장비를 만드는 몇 개 안되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전자회사다. 4년 전만 해도 학생들은 화웨이가 모조품을 만드는 중국 짝퉁 기업이라고 알고 있었다. 화웨이가 2018년 기준 전체 매출액이 7,212억 위안(한화 약 120조 4,400억 원)이고 전 세계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얘기하자, 학생들이 놀라며 귀를 쫑긋 기울이기도 했다.


남들 다 가고 싶어 하는 국내 대기업만 보지 말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공무원 시험에만 매진하지 말고 글로벌 기업에 지원해 보는 것은 어떨까? 구글과 페이스북만 글로벌 기업이라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자. 전 세계를 무대로 하면 이 세상에는 무척 번듯한 직장이 많다.


이렇게 크고 좋은 회사를 몰랐다니!

관심 있는 기업의 규모를 파악하고 싶다면 ‘포춘 글로벌 500’(fortune.com/global500/)에서 찾아보자. 매출액 기준으로 기업들의 기본 정보를 찾아볼 수 있고, 다양한 필터 기능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기업 정보에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BMW, 지멘스처럼 잘 알려진 독일 기업과 취준생들은 잘 모르지만 세계 최대 화공기업인 바스프(BASF), 자동차 부품 글로벌 기업인 콘티넨탈, 보쉬(Bosch) 그룹 등에 대해 현실적인 정보를 알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구글’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현재 이슈를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중요한 정보는 네이버에서는 검색되지 않지만 구글에서는 영문자료로 찾을 수 있다. 현직자에게 직접 연락해서 물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런 사람들이 글로벌 기업 취업에 성공한다!

글로벌 기업에 취업한 인재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 직무경험이 있다. 지원한 직무를 해본 경험이 있는지,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을 해낼 수 있는 직무능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본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는 토익 성적이 850점인데, 방학 때 100점 더 올리겠다고 학원을 다니며 시간을 낭비하는 친구들이다. 글로벌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사람을 뽑을 때 첫 번째로 ‘직무능력’을 파악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두 번째, 분석적 사고능력(Analytical Thinking)이 뛰어나고 논리적으로 표현을 잘한다. IBM, P&G 등 예외는 있지만 한국에 법인을 가지고 글로벌 기업들은 적성검사를 안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대신에 지원들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지, 문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숫자를 이용해서 분석적 사고능력을 보여준다면 면접관들이 좋은 평가를 줄 가능성이 높다. 분석적 사고능력이란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기르기 위해 적극 추천하는 것이 ‘코딩’이다. 문과생들도 기본적인 코딩 교육을 받으면 알고리즘을 통한 분석적 사고능력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일 받을 것이다. 현재 구글은 직무, 전공과 관계없이 간단한 코딩 문제를 내기도 한다.


세 번째, 면접장에서 면접관에게도 질문할 수 있을 정도의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다. 좋은 질문은 면접관의 기억에 오래 남아 당락을 결정짓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의 멘티가 현대백화점의 캠퍼스 리쿠르팅 때 면접을 봤는데 용감하게 현대백화점의 최신 이슈에 대해 질문을 던져다. 그랬더니 면접관 3명이 그 질문을 받고 무려 10분 동안이나 돌아가면서 대답해줬다고 한다. 서로 귓속말로 자신이 말하는 것을 확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이처럼 직무능력, 분석적 사고능력, 도전정신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자질이 아니기에 구직 시장에서 더욱 높이 평가된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도 무조건 붙는 면접 스킬

“글로벌 기업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스펙이 무엇일까요?” 구직자들은 영어 실력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서 외국인 상사와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면 합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영어를 잘한다고 글로벌 기업의 합격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같이 일했던 외국인 직원들, 특히 인도에서 온 직원들과 영어로 대화하면 그들이 영어를 쓰는지, 힌디어를 쓰는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발음이 안 좋았다. 그러나 인도 출신 동료들은 말할 때 주제를 확실히 정하고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전달했기 때문에 발음이 안 좋아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 일이 없었다.


내 경험상 영어 발음은 좋지만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아시아 출신 직원들이 오히려 업무 성과에서 더 뒤쳐지고 영어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지원하는 직무가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을 요구하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면접 때는 발음이 안 좋아도 면접관이 이해하는 데 문제없도록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정도의 영어 실력을 보이면 된다.


코로나19 이후 ‘화상면접’ 준비는 필수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는 글로벌 기업 취업의 표준을 바꾸었다. 가장 큰 변화는 대면으로 만나는 미팅과 면접이 한동안 불가능해지면서 온라인을 통한 화상면접으로 대체되었다는 것. 해외의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채용 프로세스에 화상면접을 넣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화상면접을 잘 활용해서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이 콘택트(eye contact)’ 와 ‘뚜렷한 목소리’ 가 중요하다. 면접자가 화상면접을 진행하면서 카메라를 쳐다보지 못하면 면접관에게 높은 신뢰를 줄 수 없다. 특히 목소리가 작으면 면접관들은 면접자의 대답을 잘 들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해야 쉽게 피로해진다. 그래서 크고 정확한 발음으로 답변해야 한다. 특히 영어로 대답할 때는 더욱 신경 써야 한다.


화상면접의 장점 중 하나는 카메라 뒤에 중요한 키워드를 메모해둘 수 있다는 점이다. 당황했을 때 갑자기 생각 안 나는 중요한 단어를 참고할 수 있어서 안정감을 가지고 면접에 임할 수 있다. 단 AI면접을 볼 때는 주의한다. 시스템이 눈치 챌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화상회의를 할 때 줌(Zoom) 시스템을 많이 사용한다. 줌의 기능 중에는 내가 보고 있는 화면을 다른 참가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능, 즉 내가 원하는 사이트와 기사를 실시간으로 찾아서 같이 보면서 얘기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또 몇몇 참가자들을 소그룹으로 묶어 그룹의 참여자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는 대화 기능도 있다. 비대면 소통이 대면 소통만큼이나 효과적이진 않지만 점차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취업왕, 현직자가 귀띔해주는 ‘취업 비기’

“저는 지방대학교 출신입니다.” - 김익수, 미국 최대 글로벌 물류&IT기업 A사

취업 멘토링에서 내가 지방대 출신이라고 하면 “카이스트 나오셨나요?”라고 물어본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며, 자랑스럽게 말할 만한 스펙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덧붙여 말한다. 게임에 빠져 학교를 빼먹기도 일쑤였으니 성적표는 처참했다. 슬슬 미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저그런 스펙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으로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복학까지 몇 개월 정도 시간이 남았기에 영어학원에서 알바 자리를 구했다. 외국인 선생님들이 많은 학원으로 골랐다. 시급은 적었지만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학원 일은 오후 1시부터 시작했다. 아침 시간을 이용하면 조금 더 효율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강남에 영어 토익 새벽반을 끊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면 7시에 강남에 도착했다. 수업은 아침 10시에 끝나고 공부를 더 할 사람들은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11시까지 공부했다. 11시에 강남에서 집에 오면 12시 가까이 된다. 그때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김밥을 먹고 학원에 일하러 갔다.


그날 배웠던 것들을 매일 복습하고 정리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주위에 있는 영어 선생님들에게 물어봤다. 업무도 크게 어렵지 않아서 대부분의 시간은 단어를 외우면서 보냈다. 한 달을 공부하다 보니 슬슬 원어민 선생님들과 대화하고 싶어졌다. 영어를 읽고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천지차이였기에, 종이에 한 문장을 적고 수없이 되뇌었다. “Do you want go to drink beer tonight? (오늘 밤에 맥주 한잔 하러 갈래?)” 어설픈 영어였다. 떨리고 긴장됐다. 거절하면 그다음 할 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미 말을 뱉은 뒤에 그걸 깨달았다. “Sure Dude!(그럼 당연하지!)”


이후로 나는 외국인 선생님들을 참 많이 따라다녔다. 말은 하지 못해도 원어민들이 말하는 방식, 억양을 하나하나 새겨들으며 어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그들과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대견했다. 영어 성적도 대폭 향상됐다. 내 신발 사이즈보다 작던 토익 성적이 6개월 만에 800점대 후반으로 올라왔다. 공부하면서 성취감을 느껴본 적 없던 내가 가슴 한쪽이 찌릿할 정도로 쾌감이 몰려왔다. 처음으로 나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 같다고 느껴졌다.


무스펙 취업에 성공하다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취업할 순 없었다. IT 개발자,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지만 자격증도 없었고 그렇다고 뛰어난 코딩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사 경고를 받았던 나는 성적마저 엉망이었다. 남들은 이력서를 100개씩 넣었지만 나는 너무 게을렀고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기업은 쳐다보지도 않고 만만한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렇게 나의 첫 커리어는 국내 작은 중소기업에서 계약직 개발자로 시작했다. 그 회사는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진행하는 중이었고, 개발자들을 지원하면서 단순 코딩 혹은 서식을 입력하는 일을 시켰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차라리 더 많이 벌 수 있었지만 그래도 키보드를 만지면서 앞으로의 경력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그 모습을 좋게 봐준 원청 회사의 과장님이 어느 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두 달 뒤에 있는 우리 회사 인턴 채용할 때 이력서를 내보는 게 어때?”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그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면접 당일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준비했던 자기소개를 다 잊어버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분당에서 살고 있는 김익수라고 합니다.” 내가 면접관이었다면 바로 탈락시키고 블랙리스트에 등록했을 법한 자기소개다. 이 용납할 수 없는 면접이 나를 좋게 봐줬던 과장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통과됐다.


첫 번째 이직 그리고 첫 해외 프로젝트

인턴 채용에 합격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인턴 기간 중 성적과 과제를 통해 상위 50%만 채용되었다. 동기들은 코딩 실력이 좋았다. 그에 반해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3개월 동안 끄적거린 전자동의서 서식이 전부였다. 절망적이었다. 동기들은 5시에 퇴근할 때 나는 항상 텅 빈 회의실에 남아 공부를 더 하고 집에 돌아갔다. 가끔 주말에 출근하는 직원이 있으면 기회라고 생각하고 질문을 퍼부었다.


첫 달 성적이 꼴찌였던 내가 인턴을 수료할 때는 1등이었다. 부서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고, 나는 회사의 큰 전산실에 매료되어 시스템관리자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정직원으로 전환되고 한 달 동안 일하다가 갑작스럽게 이사님의 호출을 받았다. “너 영어 좀 한다며? 이번에 아부다비에서 엔지니어 2명 오는데 네가 회사 소개 한번 진행해 봐.”


회사 소개 자료를 준비하느라 몇 날 며칠 동안 밤 12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 나를 믿고 일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다. 그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아부다비에서 온 엔지니어들은 굉장히 만족해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나를 해외 프로젝트팀에 넣어주었다.


얕은 웅덩이에서 넓은 바다로

4년 반 동안 정말 열심히 일하고 또 공부했다. 나는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직을 위해서 공부했던 건 아니지만 더 큰 곳을 향한 열망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클라이드 컴퓨팅이라는 분야를 점하고 나서 굉장히 흥미가 생겼고, 그 분야에서 최고의 회사는 A사 였다.


하루에 1시간은 무조건 클라우드에 대한 기사를 보거나 개념을 공부했다. 인터넷으로 채용 과정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면접 질문에 대한 대비를 시작했다. 어설픈 영어 이력서와 자신감 하나로 지원했지만 최고의 회사는 문턱이 높았다.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 원하는 기술 수준과 영어 실력까지 모든 걸 디테일하게 파고들어가기 시작했다. 1년 뒤에 다시 이력서를 냈고 합격했다. 기쁨의 눈물이란 걸 그때 처음 흘려봤다. 나 자신이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자그마한 희망이 되고 싶다. 누가 봐도 별 볼일 없던 내가 지금은 남들이 인정할 만한 곳에서 즐거운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시작이 서툴고 어설퍼도 그걸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겐 충분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나의 성공담은 앞으로 모든 어려움을 털어내고 일어설 여러분의 써나갈 이야기가 되리라 믿는다.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 - 이규현,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제조기업 N사 (전)휠라, 신한카드

지금 다니는 회사를 막연하게 동경했지만 나의 직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겠다고 원서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10여 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마음속에 있던 한 문장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Better than yesterday(어제보다 나아져라)”


지방에서 남중, 남고를 다니면서 일관되게 했던 한 가지는 운동이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다 서울에 있는 모 대학교의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학창시절과는 다른 세상을 맞이했다. 주입식으로만 이루어지는 중고교에서의 교육과는 다르게 대학교의 경영학과 수업은 참여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성적인 나는 친척들과의 만남에서도 쭈뼛쭈뼛해졌는데, 하물며 누군가의 앞에 나선다는 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경영학과에서 발표는 피할 수 없었다. 종종 발표자로 선정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발표가 끝난 후 나 스스로 책망하며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1년의 시간이 지나고 군대에 갔다.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한 도전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싶지 않았다. 2학년부터는 모든 발표 수업을 다 듣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발표자를 선정할 때 피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고 무대 위에서의 공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부딪혀서 이겨내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고 반복되는 경험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학교에서 발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나는 낯선 이들과의 만남에도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외부 연합 동아리와 공모전은 내성적인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마케팅 공모전 동아리에 지원했고 면접을 거친 뒤 합격했다. 그 순간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면접에 합격한 것이었다.


반복되는 PT를 진행하면서 더 이상 무대 앞에서 눈앞이 깜깜해지는 일은 사라졌고,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 모습을 꿈꾸며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변화된 모습으로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어학연수, 인턴 경험 한 번 없이

학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공모전 동아리에서 활동한 것을 통해 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향상되었고 성격이 변화했다. 하지만 스펙이라고 하는 정량적인 부분에서는 크게 향상되지 못했다.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간 것도 아니어서 언어적으로 자신감도 별로 없었다. 졸업하기까지 인턴 경험도 쌓지 못했다.


정량적인 부분에서의 아쉬움은 서류전형 탈락으로 이어졌다. 자기소개서를 스토리식으로 구성해보았다. 서류를 쓸 때마다 회사와 직무, 그리고 그에 따른 스토리를 조금씩 다르게 구성했는데 이렇게 만든 자기소개서가 60여 개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합격했던 제약회사, 물류회사, 그리고 스포츠패선 기업 가운데 나는 스포츠 패션 브랜드 F사를 선택했다. 졸업 후 힘겨웠던 취업의 터널에서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인생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반복되는 삶에서 회의를 느끼다</P> 당시 나는 백화점팀을 담당하며 서울을 포함한 일부 지역 백화점에 입점한 F사의 매출과 매장 환경, 판매 인원에 대한 관리를 담당했고, 이와 동시에 백화점 바이어들과 주기적인 미팅을 통해 매출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설계하는 일을 했다.


백화점팀 영업사원은 쉽지 않았다. 내가 담당한 백화점의 매장이 퇴점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방법들을 활용했다. 외부 매장에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았지만 회사 사무실에서 매출을 분석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쏟았다. 패기를 가지고 열심히 일했지만 반복되는 삶 속에서 회의감을 느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마침내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그때는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게 될 줄 몰랐다.


한 번 해낸 취업, 두 번은 쉬울 줄 알았다

퇴사를 하고 휴식기를 가졌다. 2년 반의 경력이 있었기에 그 경력을 믿고 경력직으로 지원했다. 면접은커녕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또 다시 서류전형 전패를 경험하며 긴 어둠의 터널속에 놓인 느낌을 받았다.


기존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경력 기술서까지 모든 것을 새롭게 구성하기로 했다. 이른바 자기소개서의 스토리 구성이라 불리는 STAR(Situation, Task, Action, Result) 구성을 만들어서 지원하는 회사에 맞게 조금씩 변형했다. 그해 하반기에 나는 적지 않은 면접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첫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정확히 1년이라는 공백기를 거친 후 마침내 새로운 회사를 만나게 되었다.


국내 굴지의 금융 대기업 S사 기획팀, 하지만 힘들게 입사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았다. 윗사람이 퇴근하지 않아 눈치를 보며 강제로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했고 상사의 기분에 따라 팀의 분위기 전체가 휘둘리는 환경도 답답했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에서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입사 7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러나 무작정 그만둘 수 없었다. 기존에 정리해놓았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한 번 가다듬은 가운데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새롭게 준비했다. 외국계 기업의 문턱이 의외로 높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여름의 어느 날 N사 공고를 보게 되었다. 지원 분야는 비즈니스 계획이었는데, 히스토리 데이터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도출해내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내가 지나온 회사에서의 경험과 경력들을 나열하다가 지원하려는 직무와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를 찾아냈다. F사에서 쌓은 판매 경력과 백화점 관리였다. 다른 어떤 경력보다도 해당 업무에 대한 내용들을 도드라지게 표현했고 새롭게 지원하는 직무와의 접점을 만들어서 과거에 했던 일과 새롭게 맞이할 업무에 대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방법에 대해 면접 과정에서 어필했다. 마침내 최후의 1인이 되었다.


나는 지금 N사에서 전략 비즈니스 플래너로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담당한 어카운트의 매 시즌 전략과 방향에 대한 설계를 담당한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 번의 방황과 시련의 시기가 있었지만 매 순간 어제보다 나은 나 자신의 모습을 꿈꾸면서 새로운 일에 나를 던졌고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했다.


멘토링을 하다가 만난 이들에게 나는 항상 이야기한다. 그만 그만한 일상을 유지하기보다 어제와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 내일의 나를 성장시킨다고, 이 말은 내 학창 시절과 내 직장 생활에서 항상 나를 업그레이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련의 시기가 닥쳐왔을 때 어느 누구도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만큼은 나를 믿을 필요가 있다. 그 기회가 더디 오더라도 자책하지 말라고 꼭 당부하고 싶다. 지금 당신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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