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사포(四抛). 오포(四抛)세대라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힘든 세대가 40대다. 명퇴, 조퇴, 높은 집값, 높은 교육비에 한겨울의 추위보다 무서운 가장의 책임감까지 앞에 놓여있지 않은가. 가야 할 곳이 어디냐고 물을 데도 없다. 그렇다고 넋 놓고 세월 탓, 나라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여기 절망의 끝에서 그 길을 찾아 나선 40대 가장의 이야기가 있다.
■ 저자 배성기
장사에 뛰어든 지 8년 만에 강남에 내 가게를 오픈했지만 2년 만에 처참하게 망했다. 남은 건 빚 1억 5천과 담보 잡힌 중고 트럭 한 대. 마흔이 눈앞이었다. 가진 것 없고 학벌 없고 인맥도 없는 저자가 할 수 있는 건 장사밖에 없었다. 그 길로 중고 트럭을 몰고 거리로 나섰다.
한 달에 갚아야 할 금액이 1,000만 원이 넘었다. 남들처럼 해서는 답이 없었다. 다들 트럭장사는 안된다고 손사래를 치는 방법에서 길을 찾았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길고도 짧은 3년을 트럭에서 보냈다.
모진 경험을 하며 얻은 노하우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나누고자 트럭장사 사관학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트럭장사 사관학교에서 함께 했던 30여 명과 그다음 꿈을 찾아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현재 6개의 매장을 오픈했고 점주에게 한 달 평균 500~2,0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난다. 이제는 장사와 사람에 대한 철학과 태도를 갖춘 장사의 ‘꾼’을 제대로 양성하는 농수산물 대학을 계획하고 있다. 꿈을 실은 배 감독의 트럭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 차례
프롤로그 _ “배 감독, 3년 뒤에는 보지 맙시다!”
1장. 왜 트럭장사냐고? 남은 게 트럭 한 대밖에 없어서!
Chapter 1. 빚 1억 5천, 중고 트럭 한 대
Chapter 2. 문제는 내가 아닐까?
Chapter 3. “그래 한번 해보자, 참외가 남나 내가 남나!”
Chapter 4. 트럭장사 1년 만에 빚을 갚다
Chapter 5. 트럭장사 사관학교 <국가대표 과일촌>
2장. 안 파는 시간은 있어도 못 파는 시간은 없다
_장사에 꿈을 담는 ‘꾼’의 노하우
Chapter 1. 트럭장사 유통기한은 3년
Chapter 2. 한계는 항상 내 눈높이에 걸려 있다
Chapter 3. 트럭장사, 이것만은 알고 시작해라
Chapter 4. 첫 번째 장애물, 차대기
Chapter 5. 장사가 안 되는 시간이란 없다
Chapter 6. 장사는 물건이 아니라 말을 파는 일이다
Chapter 7. 깔아놓은 만큼, 맛 보여준 만큼, 외친 만큼 팔린다
Chapter 8.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다
Chapter 9. 트럭장사의 생명, 시선 끌기
Chapter 10. 손님을 기다리게 하라
Chapter 11. 휴대용 의자는 버려라
3장. 안 되는 건 없다. 못 하는 것뿐이다
_성패를 좌우하는 ‘꾼’의 마인드
Chapter 1. 장사치가 아니라 장사꾼이 돼라
Chapter 2. 트럭장사도 기본은 사람을 남기는 일이다
Chapter 3. 성실해도 실패는 한다, 하지만 성실하지조차 않으면!
Chapter 4. 일할 때 고통이 가난한 고통보다는 크지 않다
Chapter 5. 사람이 오지 않는 트럭에 돈이 따를 리 없다
Chapter 6. fail = “다시 하세요!”
Chapter 7. 이런 사람은 절대로 트럭장사 하지 마라!
Chapter 8. 삶이 나를 밀어간다
4장. 나는 트럭을 멈출 수 없다
Chapter 1. <국가대표 과일촌>에 심은 희망
Chapter 2. 희망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철학
Chapter 3. 어머니는 당신한테 무슨 비전을 주고 태어나게 했나요? 272
에필로그 _ 길이 끝나는 곳에 새로운 길이 있다
국가대표 트럭 장사꾼
왜 트럭장사냐고? 남은 게 트럭 한 대밖에 없어서!
빚 1억 5천, 중고 트럭 한 대
아내도 몰랐던 나의 빚
처음 가져본 내 가게였다. 강남에 있던 번듯한 그 가게는 2년도 안되어 쫄딱 망했다. 다 떨고도 아내가 모르는 빚이 1억 5,000만 원이 넘게 깔려 있었다.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 가게에 경력직 판매사원으로 들어갔다. 단순한 취직이 아니라 내 가게를 차리겠다는 비전과 꿈을 품고 들어간 곳이었다.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해 막차로 퇴근하며 장사를 배운 지 8년여가 흐른 때여서 그간의 장사 노하우가 빛을 발할 시기이기도 했다. 평균 10만 원 남짓이던 청과코너의 하루 매출이 입사 후 수개월 만에 200여만 원으로 뛰어올랐다. 물건 매입이면 매입, 손님 응대면 응대, 그야말로 신출귀몰 베테랑 장사꾼의 실력이 그대로 매출로 나타났다.
고공행진을 보이는 매출을 지켜보던 사장은 "인수할 생각이 없냐?"라며 청과코너를 인수하라고 나를 꾀었다. "자네라면 대박을 치고도 남을 자리"라고 치켜세웠다. 번듯한 내 가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던 때라 욕심을 참지 못하고 덜컥 계약을 했다. 그리고 계약서 도장의 잉크가 마를 즈음 깨달았다. 아 낚였다!
섣부른 욕심이 더해진 악재
다섯 평도 안 되는 자리에 한 달에 숨을 쉬지 않아도 나가야 할 돈이 700만 원이었다. 월세 300만 원에 별도 수수료, 카드 수수료, 전기세까지 따로 내야 했다. 한 달 고정비 700만 원에 직원 월급까지 더하면 지출만 1,000만 원, 한 달 결산을 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100만 원 남짓했다. 그래도 그때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믿고 있었기에 조금만 버티면 될 줄 알았다.
그러다 결정적인 직격탄을 맞았다. 2010년 여름, 말도 안 되는 물난리로 서울 한복판이 강남역이 물에 잠겼다. 물난리야 지나가면 그만이었지만 그에 따른 후속조치가 사단이었다. 서울 시청에서 물난리를 막기 위해 축구장보다 더 큰 규모의 물 저장탱크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 공사가 하필 우리 가게가 입점한 건물 바로 옆에서 진행됐다. 가게를 인수한 지 1년이나 지났을까, 1년 반짜리 먼지 날리는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었다.
우리 가게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는 세 곳이 있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하나가 폐쇄되었고, 나머지 두 곳 앞으로 쉴 새 없이 덤프트럭이 오갔다. 먼지가 고스란히 가게로 들어왔고, 가게를 들르던 고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서울시에 진정을 내고 별짓을 다했으나 공사를 막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공사에 따른 피해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정부공사에 보상을 해준 선례가 없어서라는 게 이유였다.
월세는 꼬박꼬박 나가는데 손님이 없으니 며칠 만에 1톤 가까운 과일이 썩어나갔다. 공사가 시작되고 매출이 1/10로 줄었다. 5개월을 견뎠을 때 남은 건 그야말로 빚뿐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신속히 결단을 해야 할 때와 신중히 상황을 주시해야 할 때가 있다. 나의 경우는 전자였으나 첫 가게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거기다가 이것마저 그만두면 뭘 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더 두려웠다.
미련함이 남긴 것은 빚과 상처
"여보, 어쩐 일이야? 가게는 어떻게 하고?"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누워 있는 아내를 찾아갔다. 급전이 필요한데 더는 돈을 빌릴 곳이 없었다. 제2금융권은 물론이요, 대부업체의 사채란 사채는 다 끌어다 쓰고도 월세랑 전기세를 해결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이었다.
"어, 차가 갑자기 퍼져서 당신 차 좀 빌리려고."
"장사하는 사람이 차가 퍼지면 어떡해?"
아내는 미용실을 하면서 타고 다니던 SUV 차량의 열쇠를 넘겨주었다. 차를 끌고 간 곳은 자동차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었다. 아내의 차를 담보로 대출한 몇 백만 원으로 또 며칠을 버텼다. 하지만 그도 역시 끝이 아니었다. 이미 수천만 원의 미수가 도매상에 깔려 있었다. 매출이 1/10로 줄은 내게 도매상은 새로운 빚을 만들어내는 창구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멈추질 못했다.
"형, 아버지가 형한테 물건 주지 말래. 물건 가져가고 싶으면 이번에 우리 수박 50통 빼주든가."
팔리지 않는 물건에다 미수 때문에 억지로 받아온 물건까지 매출은 바닥인데 저장고에 과일은 넘쳐나는 악순환이 끝날 줄 모르고 계속 됐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감당 못한 빚이 터지고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어서야 아내에게 이실직고했다. 아내는 자리를 보존하고 누웠지만, 결국 자기의 미용실까지 정리해서 급한 불을 꺼주었다. 마흔을 코앞에 둔 내게 남은 건 참패의 쓰라린 상처와 1억 5,000만 원이 넘는 빚 그리고 낡은 중고 트럭 한 대뿐이었다.
마지막 희망, 중고 트럭 한 대
아내는 지인이 운영하는 재활용매장에라도 취직을 하라고 했다. 못난 아들을 지켜보시던 어머니마저 하던 일 다 엎어졌으니 항아리 배달하는 곳에 취직을 하라고 했다. 두 곳 모두 200만 원 안팎의 월급을 준다고 했다. 적은 돈이 아닌 줄이야 알지만 취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쌓여 있는 빚더미에, 다달이 나가야 하는 이자만 이미 200만원을 넘어선 때였다. 그 돈을 받아서는 우리 네 식구 입에 풀칠도 할 수 없었고, 꿈을 꾸면서 미래를 설계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60이 넘어서까지 빚만 갚다가 인생을 마칠 수는 없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많지 않는 내게 길은 장사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낡은 중고 트럭 한 대가 최후의 보루였다. 그나마도 대부업체에 담보로 잡혀 있던 터였지만, 이마저도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절박함에 나는 앞뒤 생각할 겨를 없이 숨겼다. 가게를 몽땅 정리하면서도 사채업자들의 눈을 피해가며 트럭만은 이를 악물고 지켜냈다.
"이젠 어떻게 할 건데?"
"다시 장사해보려고."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단호하게 말했다.
"미쳤어? 장사의 장 자도 다시 꺼내지 마."
"트럭장사 할 거야."
"아니 그 트럭 압류 안 당했어? 무슨 되도 않는 소리야. 그냥 남들처럼 취직이나 하라구. 당신이 안 해봤어? 새벽 3시에 눈떠서 물건 사러 다니고 밤 11시까지 물건 팔고 정리하고, 그렇게 안 살아봤어? 지금까지 장사한다고 하면서 대충 한 적 있어? 없잖아. 정말 죽을힘을 다 했잖아. 근데 남은 게 뭐야? 빚뿐이잖아. 그럼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걸 미련하게 왜 붙잡고 있냐고?"
아내의 말은 비수같이 박혔다. 아내는 눈물을 훔치며 나를 말렸고, 겉으로 내색은 못했지만 나 역시 속으로 눈물을 쏟고 있었다.
"이 사람아, 한 달에 200씩 벌어서 언제 그 빚을 다 갚겠냐고.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보자고. 내가 정말 열심히 해볼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만 해보자."
몇 날 며칠을 아내와 다퉜다. 결혼해서 줄곧 맞벌이로 고생해온 아내에게는 그 어떤 말도 무력했다. 미안한 마음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바닥을 친 나는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 순간에도 사채 빚은 여전히 불어나고 있었다. 아내에게 빌며 약속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마지막으로 제대로 한번 해보겠노라고. 그건 내 심장에 꾹꾹 눌러 박은 뼈아픈 다짐이기도 했다. 결국 이번에도 아내가 져주었다. 2012년 6월 16일. 가게를 정리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날, 나는 1톤 트럭에 몸을 싣고 거리로 나갔다.
안 파는 시간은 있어도 못 파는 시간은 없다_장사에 꿈을 담는 꾼의 노하우
트럭장사 유통기한은 3년
가장 먼저 하는 일, 계획
「국가대표 과일촌」 일원들의 지갑에는 명함 크기의 종이가 하나씩 끼워져 있다. 힘들 때마다 꺼내보며 초심을 상기할 수 있도록 꼭 몸에 지니고 다닌다. 그 종이에는 자신만의 목표와 계획이 분명하게 적혀 있다.
트럭장사를 시작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명확한 목표와 꽉 짜여진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더도 덜도 말고 3년짜리의 계획이 필요하다. 3년 동안 내가 이루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얻고 싶은 것! 나도 처음 트럭장사를 시작할 때 3년의 목표와 계획을 세웠다. 첫째 목표는 빚을 다 갚는 것이었다. 둘째는, 없었다. 셋째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3년 안에 무조건 빚을 다 갚는다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고, 매년, 매달, 매일 얼마를 갚아나가야 할지 계산해 계획을 세웠다. 그 덕에 목표를 달성했고, 그다음 꿈을 갖게 됐다.
트럭장사를 하려고 찾아올 때 가슴에 자기의 꿈을 품고 오는 사람은 있어도 3년 동안의 계획까지 갖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가대표 과일촌」 일원들 중 어려움 없이 온 사람은 드물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3년 동안 이룰 목표와 계획은 면접 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해 만들어낸다. 이들에게 이 3년이라는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길고도 짧은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국가대표 과일촌」 일원들이 들려준 3년짜리 목표는 이런 것들이다. 번듯한 가게를 차릴 목돈을 마련하고, 노하우를 배우는 것, 아내와 함께 문구공장을 시작하는 것, 부동산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그건 계획이 될 수 없다. 계획은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실행할 수 없다면 그건 계획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방향을 잃지 않고 꾸준히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게 계획이니까 말이다.
트럭장사는 디딤돌이다
"트럭장사는 직업이 아니다."
「국가대표 과일촌」 일원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이다. 트럭장사는 평생 직업이 아니라 원하는 삶의 밑천을 마련하게 해줄 디딤돌이다. 벽돌을 열심히 모아 아파트를 짓든 공장을 짓든 건물을 지어야지 벽돌 모으는 일에 머물러 있으면 삶이 허무해진다. 마찬가지다. 트럭장사를 열심히 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지 트럭장사에 머물러 있으면 그다음 삶이 사라진다.
그러나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다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단단한 의지 없이는 흔들리기 쉬운 게 트럭장사의 일상이다. 작은 마음의 유혹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해 하루쯤 일찍 접게 되고, 며칠쯤 쉬게 되고, 귀찮은 건 안 하게 되기 쉽다. 그러다 보면 다음 꿈을 위해 일어설 기반을 마련하지 못해 트럭장사가 생계형 직업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은 꿈과 멀어진다고 생각되면 더 하기가 싫어진다. 트럭장사는 특히 더하다. 장사를 나가면 경쟁 상인도 많고 단속도 많은데다 육체적으로 막일 버금가게 힘이 드는데 3년 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다면 누가 이 일을 계속하고 싶겠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열심히 할 리 없고 그러면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니 처음 계획을 세울 때부터 트럭장사는 직업이 아니라 디딤돌이라는 것을 명확히 새겨야 한다. 우리가 꿈을 꾸고 목표와 계획을 세워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당당히 살기 위해서이니까 말이다.
계획의 유통기한은 3년
"배 감독님 왜 3년이에요? 이왕이면 10년짜리 계획을 세워보지요."
10년이라는 말에 숨이 턱 막혔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은 듣기만 해도 긴 세월이다. 갈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시대에 계획의 유통기한은 3년 정도다. 1년은 꿈을 이루기에는 부족하고 5년은 꿈을 잊어버릴 정도로 너무 길다. 3년이면 족하다. 꿈을 찾고 이루기에, 디딤돌을 쌓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단 미친 듯이 꾸준히 보낸 3년이어야 한다. 그래서 난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좋아한다. 미친 듯이 일을 하는 오늘이 3년의 계획에 포함된 꼭 필요한 하루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대표 과일촌」 일원들은 3년에 맞는 계획을 세운다. 목표가 달성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3년의 계획을 세우면 된다.
계획은 세부적이어야 한다
목표가 정해지면 아주 세분화된 계획이 필요하다. 레고 블록처럼 하나하나 맞춰질 수 있게 꼼꼼하게 세워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오늘의 실천계획이 나와야 한다. 3년 뒤 목표가 정해지면 1년 후에는, 6개월 후, 3개월 후, 한 달 후, 일주일 후에는 어떤 목표를 달성할지 구체화시킨다. 그러면 1년 안에 무엇을 해야 할지가 그려지고, 다시 6개월, 3개월, 한 달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다음에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세부적인 일주일의 계획과 오늘의 계획을 세운다.
이렇듯 세세하게 계획을 짜는 이유는 간단하다. 3년 중의 어느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서이다. 오늘 하루쯤이야.라는 병이 내 몸을 망가뜨리고 정신을 망가뜨린다. 그런 하루가 모여 한 달을 헛되이 보내게 만들고 1년을 별 소득 없이 보내버리게 만든다. 마라톤 42.195킬로미터를 하루아침에 뛰는 사람은 없다. 최소한 몇 년은 준비를 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간다. 오늘은 4킬로미터를 뛰지만 한 달 뒤에는 10킬로미터를 뛸 것이다. 1년쯤 뒤에는 하프 정도는 뛸 수 있을 것이고 이런 과정 끝에 3년 뒤에는 완주도 가능할 것이다. 마라톤이라는 목표가 세워지면 오늘 해야 할 실천계획이 반드시 따라 나와야 한다.
트럭장사도 마찬가지다. 3년 뒤 목표도 중요하지만 아주 잘게 잘려진 오늘의 계획이 사실은 더 중요하다. 확실한 목표 뒤에는 확실한 실천계획이 따라붙는다. 이렇게 짜여진 목표와 계획은 나를 끌고 가는 한 쌍의 바퀴와 같다. 바퀴가 잘 구르면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성실하게 꾸준히 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장사가 안 되는 시간이란 없다
남들과 똑같이 일하지 마라!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종이에 있는 말이다. 트럭장사는 다른 트럭장사들이 하는 그대로 장사를 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사람들은 트럭장사 하면 으레 "비 오고 눈 오는 궂은날 장사되겠어?", "단속 때문에 장사하겠어?"라거나 "여름 한낮에 누가 물건을 사러 나와. 당연히 그 시간대에는 장사 안 되는 거지.", "트럭장사는 배달을 해줄 수도 없으니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라며 장사 안 되는 이유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트럭장사를 해보니 안 파는 날과 안 파는 시각은 있을지언정 못 파는 날과 못 파는 시각은 없다.
고정관념을 깨고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라
첫 번째 고객은 바로!
아무리 고급 음식점이라도 2시 반 정도 되면 주차장의 절반은 비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절대로 손님이 끊기지는 않는다. 그게 고급 음식점의 특징이다. 발레파킹하는 아저씨에게 차 열쇠를 줄 때 먹음직한 참외 한 봉지를 같이 건넨다. 이 발레파킹 아저씨가 나의 첫 번째 고객이다. 이왕이면 특급 혹은 최상급이 좋다. 이것이 첫 번째 마중물이 된다.
"사장님 참외 좀 드세요."
"아 괜찮은데……."
"더위에 고생하시는데 드세요. 참외가 새벽에 올라왔는데 맛있네요. 우리 밭에서 캔 거라 그런지 더 맛있네."
"그럼 잘 먹을게요."
이때 아저씨한테 음식점 안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을 가리키며 "저기다 차 좀 세워주세요." 부탁을 한다. 그렇게 차를 세워두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보통 비싼 한정식집은 1인분을 안 해주지만, "제가 지방에서 왔는데 오늘이 생일이라서요."라고 볼멘소리를 하면 한상 내어준다. 그럼 천천히 즐기면서 맛있게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20분쯤 지나면 반드시 아저씨가 찾아오게 돼 있다.
고객이 팔게 해라
"어이 트럭장사! 손님이 참외 달라고 하는데…… 빨리 나와 봐요."
장사를 처음 하는 사람들은 거기서 뛰어나간다.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앉아서 밥을 먹는다.
"사장님, 이거 식으면 맛이 없잖아요. 왼쪽 거는 3,000원이고 오른쪽 거는 5,000원이에요. 잠깐 좀 팔아주세요. 제가 배가 고파서 그래요."
발레파킹 아저씨는 그 가게에서 내 참외를 처음 먹은 사람이다. 이미 받은 것이 있는 아저씨는 순순히 참외를 팔아준다. 그런데 거기서 대박 장사가 시작된다. 아저씨는 손님들에게 좋아 보이는 물건을 골라서 팔아준다. 음식점 손님 입장에서 트럭장사인 나는 뜨내기 장사꾼이지만 음식점 직원인 아저씨는 그곳 직원이고 자주 보던 사람이다. 이미 보이지 않는 믿음이 있으니 그가 파는 물건을 더 믿는다. 거기다 아저씨는 이미 내가 골라준 상품 중의 상품을 맛봤기 때문에 트럭에 실린 물건들이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 알고 있어 더욱 믿고 팔게 된다. 나의 첫 번째 고객이 알아서 물건을 파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트럭 주위에 손님이 세 명만 되면 사람들이 자석처럼 끌려오게 돼 있는 3의 법칙을 활용하기 위해 나는 최대한 천천히 밥을 먹는다. 서툰 아저씨가 참외를 천천히 팔수록, 손님들이 기다릴수록 장사는 더 잘되게 돼 있다.
"사장님, 빨리 먹지 뭘 그렇게 오래 먹어요?"
"제가 원래 밥을 천천히 먹어요. 집에서도 엄청 눈치 보여요. 삼식이를 못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발레파킹 아저씨가 건네주는 뭉텅이 돈을 받는다. 이때는 꼭 입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 적당히 띄워주는 것도 필요하다.
"어휴~ 사장님, 하루 종일 판 나보다 사장님이 한 시간 판 게 더 많아요. 사장님이 이거 하고 내가 저거 해야겠네."
으쓱으쓱한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다시 참외 두 봉지를 골라준다. 그럼 아저씨는 절대 그걸 혼자 다 먹지 않는다. 장사 2탄을 시작할 마중물을 부으러 간다.
담배 한 가치를 피우고 기지개를 펴고 있으면 발레파킹 아저씨에게 참외를 얻어먹은 식당 이모들이 트럭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3시 반쯤 되면 음식점 주방은 숟가락 정리까지 마치고 딱 한가할 시간이다. 내가 들어간 식당의 이모들은 이미 손님들이 나갈 때 내 트럭에서 참외를 사 가는 것을 봤다. 거기다 맛까지 보았으니 슬슬 퇴근할 때 집으로 가져갈 장을 보러 나온다.
장사는 물건이 아니라 말을 파는 일이다
손님에게 말하기가 두려운 두 가지 이유
물건을 팔기 전에 말을 먼저 팔지 못하는 장사꾼은 백이면 백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데 트럭장사 초보자들이 차대기 다음으로 잘 못하는 것이 손님에게 말하기이다. 말할 때 자신이 없고 모기소리만 한 목소리로 웅얼웅얼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장사꾼을 좋게 볼 손님은 많지 않다.
"영 말을 못하겠어요. 손님이 뭘 물어볼지 겁부터 나고요."
"그럼 말 거는 연습을 좀 하고, 물건에 대해 공부를 좀 해보세요."
"공부요?"
"네. 그리고 물건이 아니라 말을 파는 연습을 하셔야 해요."
"말을 팔아요? 물건이 아니고요?"
초보자가 손님에게 말하기 두려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팔아야 할 물건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먼저 말을 팔아야 한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물건을 알고 말을 팔기 시작하면 손님 대하는 것도 쉬워지고, 나아가 손님이 물건을 팔게 할 수도 있다.
여름 한낮 뙤약볕에서 시장 어귀에 차를 대고 기다려도 손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때는 우선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붙잡고 사정을 한다. 물건을 사라는 게 아니다.
"엄마 이리 와봐. 내가 참외 5,000원어치 줄게. 내 부탁 좀 하나 들어줘."
"아고 뭘 해달라고?"
"오늘 어지간히 장사가 안 되네. 엄마 여기 옆에 딱 있어. 내가 보니까 엄마가 기가 좋아. 엄마가 있으면 딱 장사가 잘 될 것 같아. 기를 좀 빌려줘."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참외를 깎아서 먹여준다.
"이게 오늘 내가 직접 따온 상주 참외야. 어때 맛있지? 참외는 한 줄기에서 네다섯 번밖에 수확을 못 해요. 그런데 이게 딱 맛 좋을 때 중간에 딴 거란 말이지. 오늘 따 와서 냉장고에 넣으면 일주일은 먹는다니까."
참외의 단맛을 확인한 아주머니의 표정이 좋아진다. 그리고는 슬슬 자신이 장사를 해준다.
"아고 진이 엄마야 이리 와봐. 여기 참외 맛있네. 한번 먹어봐."
처음에 참외 5,000원어치를 위해 발길을 멈췄던 아주머니는 맛돌이도 자청해 아는 얼굴들에게 참외도 직접 먹여준다. 손님들 입장에서 나는 뜨내기장사지만 아주머니는 동네 이웃이다. 나는 못 믿어도 이웃은 믿는다. 그렇게 점차 트럭 근처에 손님이 몰리게 되면 그날 장사도 성공이다.
물건을 팔기 전에 말을 먼저 팔아라
장사는 절대 물건을 팔려고 다가서면 안 된다. 손님들한테는 말을 먼저 팔아야한다. 단지 물건만 팔려고 하는 순간 손님들은 가던 길을 그냥 가버리고 만다.
"아줌마 표고 들여가세요."
"얼마예요?"
"1킬로그램에 1만 5,000원 하던 건데 만 원씩 가져가요."
이 상황에서 손님은 표고를 사 가게 될까? 그렇지 않다. 손님 중 열에 일곱은 가던 길을 가버린다. 여기는 만 원 달라는군. 손님으로서는 필요한 정보를 다 얻었으니 아쉬울 게 없다. 혹여 다른 곳에서 표고 가격을 듣고 그 트럭이 좀 더 싼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자신이 직접 물건을 주의 깊게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그 트럭까지 돌아가는 수고를 하지는 않는다. 대개는 물건이 안 좋았으니 그 가격이겠지. 하고는 다른 표고를 사는 게 일반적이다.
트럭장사는 일단 지나가는 손님을 내 앞에 서게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려면 물건이 아닌 말을 들이밀고 팔아야 한다.
"표고 얼마예요?"
"표고 맛봐 봐 이모."
"아니 얼마예요?"
"맛보면 알려준다니까. 가격 알려주니까 다 가, 미치겠어 내가. 안 사도 되니까 오늘은 맛만 봐."
이렇게 말을 팔면 손님을 트럭 앞에 불러 세우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
"장흥 거야. 표고 맛있지?"
표고에 대한 정보를 주면서 말을 이어나간다. 장사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트럭장수 중에는 손님이 먼저 물건에 관심을 갖고 섰을 때 다짜고짜 "얼마치 드릴까요?"라며 봉투부터 뜯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손님은 한 발 물러난다. 밥물이 끓지도 않았는데 솥뚜껑을 여는 형국이다. 표고의 원산지라든가 맛이라든가 요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정보를 주고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다. 말을 팔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다 보면 열에 여덟은 물건을 꼼꼼히 보고는 원하는 만큼 사 가지고 돌아간다.
장사도 엄연한 심리싸움이다. 물건을 팔려고만 덤벼들면 손님은 한 발 물러나게 돼 있다. 관심을 끌고 멈춰 서게 만들어야 물건도 팔 수 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말을 먼저 파는 일이다.
안 되는 건 없다. 못 하는 것뿐이다_성패를 좌우하는 꾼의 마인드
장사치가 아니라 장사꾼이 돼라
장사가 만만해 보인다고?
50대인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열의 여덟은 장사를 먼저 떠올린다. 그만큼 장사는 만만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필요한 건 자본금뿐,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50대에 퇴직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준비하는 것이 장사다. 그중에서도 프랜차이즈가 가장 많다. 밑바닥부터 장사를 배우기보다는 프랜차이즈를 차려 바로 사장님이 되기를 꿈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험도 없고 배움도 없이 시작한 이러한 장사는 굉장히 무모하고 위험하다. 회사에서도 경험을 쌓고 대리, 과장, 부장을 거쳐 임원이 되듯, 장사도 경험과 배움이 있어야 사장님 소리에 걸맞은 장사꾼이 될 수 있다. 수천만 원을 웃도는 창업 자금과 장사꾼으로서의 노하우를 두루 갖추고 현장에 뛰어드는 이들은 많지 않다. 덜컥 점포를 계약하고 가게부터 연 후 장사를 배우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신규 사업장 세 곳 중에 두 곳이 1년 안에 문을 닫는다. "장사는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장사꾼은 아무나 될 수 없다."는 철칙은 변하지 않는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한 레스토랑 사장님은 자신이 직접 체인점을 모집해 굴지의 프랜차이즈 대표가 되었지만, 본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화장실 청소는 항상 직접 했다. 가장 힘들고 궂은일임에도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시키지 않았다. 그분을 보면서 장사꾼에게도 철학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직접 장사를 해보니 이렇게 되는 건 고사하고 주변에서 이런 분을 찾아보는 것조차도 힘들다. 다들 어설프게 장사를 시작해 어설프게 장사를 접고, 대충 장사를 시작해 대충 장사를 접는다. 만만하게 생각한 장사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고서야 깨닫는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장사치 vs 장사꾼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장사가 안 되는 데도 그럴 만한 원인이 있다. 안 될 때는 안 되는 원인을 찾아 분석해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장사를 시작할 때 다 잘될 거야.라는 무한 긍정에 쉽게 빠진다. 장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도, 목이 안 좋아도, 준비가 미흡해도 왠지 다 잘될 것만 같다.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기회는 언제나 내 길처럼 보인다는 게 함정이다. 무한 긍정에 눈이 멀면 눈앞에 있는 실패의 요인을 보지 못한다.
트럭장사도 마찬가지다. 실패의 요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비해 준비하는 장사꾼이 있는가 하면 무제에 대한 파악도 없이 잘될 거라며 대충 긍정하고 마는 장사치도 있다. 트럭에서 장사를 하다 보면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포함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 트럭에다 뭘 갖다 놓고 팔지도 중요하다. 물건과 손님, 기본적으로 두 가지를 알지 못하면 장사를 할 수 없다. 아니 장사를 해도 성공할 수가 없다.
현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봐도 장사치와 장사꾼이 구별된다. 장사치는 오늘 하루를 때우는 정도로만 일을 하고 배우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장사꾼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기 위해 잠을 아껴 공부한다. 세상에는 장사치는 많지만 장사꾼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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