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액티브 시니어 인생 호스팅

   
에어비앤비
ǻ
이야기나무
   
15000
2016�� 08��



■ 책 소개

 

"빈방을 열었더니 두 번째 청춘이 시작됐다."

 

자녀의 독립과 퇴직으로 많은 변화가 시작되는 50+ 시니어. 그들이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박공유를 시작하면서 행복한 두 번째 인생을 맞이했다. 빈방을 열었더니 인생의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살아오면서 쌓은 자신의 경험과 삶의 지혜를 통해 집에 머무는 여행객들에게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민간 홍보대사로서의 역할로 자존감을 높이고, 전 세계 여행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이 책에는 시니어 인생의 긍정적 변화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가득 담겨있다. 내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변화를 꿈꾸는 새로운 희망을 찾기에 충분하다.

 

■ 저자 에어비앤비 

 

■ 차례
프롤로그 - 숙박공유를 통해 활력을 찾은 액티브 시니어의 두 번째 인생을 응원합니다
인트로 - 두근두근 설렘이 가득한 두 번째 인생

 

에어비앤비 액티브 시니어 12인의 이야기

“빈방이 한국 문화 홍보대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주었어요.”
서울 북촌마을 박소자 님 - 계동의 큰손 왕언니

 

“에어비앤비는 우리 가족에게 끈끈한 동지애를 선물해줘요.”
부산 대연동 정현숙 님 - 부산 2층집 어벤저스

 

“빈방으로 경제적 자립을 했어요.”
서울 송파구 김향금 님 - 잠실 옥상정원 셰프

 

“게스트와의 대화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아주었어요.”
서울 도봉구 최형식 님 - 도봉구 불사조

 

“에어비앤비는 나의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켜요.”
서울 송파구 정신옥 님 - 잠실 토박이 도전왕 루시

 

“아들과 공동 호스팅을 하면서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어요.”
영월 엄둔마을 김진희 님 - 엄둔마을 산골소녀

 

“적막한 시골 생활이 생기 넘치는 일상으로 변했어요.”
영월 흥월리 장미자 님 - 영월 무릉도원 안주인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든든한 연금이 생겼어요.”
서울 광진구 김귀녀 님 - 자양동 팔방미인

 

“우리 집에서 글로벌 인생학교를 열었어요.”
파주 헤이리마을 이안수 님 - 헤이리 소크라테스

 

“우리 집에 머무는 외국인 친구들 덕분에 매일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요.”
서울 중구 이명희 님 - 중구 글로벌 아줌마

 

“낯선 나라의 동네로 게스트를 만나러 가는 여행을 떠나요.”
서울 서초구 문숙희 님 - 서초 나이팅게일

 

“고향에서 찾은 제2의 인생이 더욱 풍부해졌어요.”
제주 행원리 오혜성 님 - 제주도 만능 열정맨

 

해외 호스트 스토리
에어비앤비 호스팅 가이드




에어비앤비 액티브 시니어 호스팅


숙박공유를 통해 활력을 찾은 액티브 시니어의 두 번째 인생을 응원합니다

낯선 여행자들에게 잠자리와 아침밥을 제공해 색다른 여행 경험을 만들자는 청년들의 사업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에어비앤비(Airbnb). 덕분에 전 세계 어디로 여행을 떠나도 내 집같이 편하게 머물고 싶은 여행자들의 바람은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전 세계 여행자들이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대 숙박공유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사람들은 집을 공유할 뿐 아니라 경험과 문화를 나누며 글로벌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여행 산업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패키지여행과 상업적인 숙박업소가 증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지역 고유 문화와 분위기에서 만들어지는 여행의 감동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사람 간의 소통, 교감의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여행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특별한 여행을 만드는 건 바로 사람입니다. 에어비앤비의 중심에는 호스트, 곧 사람이 있습니다. 에어비앤비의 집주인인 호스트는 낯선 사람을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라고 여기며 나의 집을 찾은 게스트를 따뜻하게 맞이합니다. 호스트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는 그룹 중에 시니어들은 단연 눈에 띕니다. 이분들은 자신의 집은 물론 자신의 경험과 삶의 지혜를 공유하며 게스트를 환대하고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합니다. 실제로 에어비앤비 호스트 중 60대 이상의 시니어가 전체 호스트의 10%를 차지합니다.


호스팅을 시작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얻은 부수입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노후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내고자 합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삶의 활력을 찾기 위해 시작하기도 합니다. 집으로 찾아오는 게스트와 관계를 맺으면서 외로움도 해소하고 활동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호스팅을 하면서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행자들과 교류하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자존감도 높아지고, 우리 집을 찾는 게스트에게 동네 맛집과 명소를 알려주는 등 민간 명예 홍보대사로 활약하며 새로운 삶의 의미와 에너지를 찾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니어 호스트들 역시 에어비앤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활동합니다. 최근 50~60대가 액티브 시니어라 불리며 사회 전반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진짜 삶은 은퇴 후에 시작한다는 생각이 대중화되면서 행복한 노후생활을 위해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적극적으로 문화생활을 향유합니다. 은퇴 후에도 사회와 작별할 생각은 없습니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뉴스에 귀 기울이고 SNS 등 새로운 매체를 통한 소통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분들은 경제활동의 주체로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방법으로 숙박공유를 선택하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나이가 지긋이 들어 숙박공유에 도전했고 그 결과 즐겁고 활력 넘치는 삶을 다시 찾았습니다. 가장 또는 엄마라는 완장을 달고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두근두근한 설렘이 선물처럼 찾아왔습니다.



"빈방이 한국 문화 홍보대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주었어요."

서울 북촌마을 박소자 님 - 계동의 큰손 왕언니

한옥이 선물한 새로운 인생

일흔 살이 되던 해, 덜컥 한옥을 샀다. 북촌 한옥마을 어귀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아담하고 오래된 한옥이 마음에 쏙 들었다. 안 팔겠다는 집주인 할아버지를 구슬려 얼른 샀다. 그 후 가족들에게 선포했다. "나 이제 호스팅 할 거야!" 평생을 반대해왔던 남편도 의외로 순순히 내 편을 들어 주었다. 남편은 밖에서 누구보다 북촌 한옥마을 지키기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이다. 지난 40년간 이 마을에 살면서 민박은 절대 못하게 하더니 이번엔 고집을 꺾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원봉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생긴 우울증도 사라졌다. 더는 삶이 무력하지도, 힘에 부치지도 않았다. 그럴 틈이 어디 있나! 한시라도 빨리 내 공간을 꾸미고 싶었다. 내 힘으로 해야 할 일을 만들고 나니 금세 예전의 활력 넘치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반대하던 가족들도 호스팅 덕분에 엄마의 우울증이 치유되었다며 응원해준다.


호스팅은 우리 가족 소통의 창구

"엄마, 또 무슨 일이에요? 지금 전화 못 받아요."

"아이고 참~잠깐이면 돼. 줄리아한테 내일 아침 일찍 밥 차려 놓을 테니 꼭 먹고 가라고 얘기 좀 해줘."


막내딸에게 또 전화를 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딸은 구시렁거리면서도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엄마를 도와준다. 외국인 게스트가 오면 한국에 왔으니 한식은 먹이고 보내야겠다 싶어 사전 안내에는 없는 아침 식사를 대접하는데 막내딸은 그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그릇을 나르는 분홍색 양동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엄마가 힘들어서 안 된다고 투덜대지만 그게 나의 행복이다. 딸은 게스트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며 혹시나 게스트가 불편해할 정도로 너무 빈번하게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워하지만, 나는 우리 집을 찾아온 게스트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혹여나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한국으로 여행을 온 이유가 무언지. 아픈 사람에게 맞는 음식은 따로 있고, 각 게스트에 맞게 줄 수 있는 정보와 선물은 다르니까.


한옥에서 함께 호스팅을 하면서 아웅다웅한 지도 벌써 5년째. 한옥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수세미로 여러 차례 문지르고 긁어내어 서까래를 드러내는 작업은 딸이, 알록달록한 노리개를 달고 도자기를 놓아 한국식 분위기를 더하는 일은 내가 했다. 어엿이 자란 딸은 미술 전공을 살려 한쪽 벽을 갤러리로 만든 후 나에게 갤러리 관장이라는 멋진 직함도 주었다. 1년에 서너 차례 작은 전시를 여는 갤러리지만 우리 집을 찾아온 게스트들은 나를 "관장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이 일흔에 새로운 직업이 두 개나 생긴 거다. 막내딸이 어릴 적에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대가족인 열일곱 식구를 건사하느라 사는 게 바빠서 딸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게스트 얘기를 하면서 슬며시 손도 잡고 그런다.


톰이 안경을 놔두고 갔대, 미치코가 편지를 보냈더라. 그러면서 말이다. 막내딸과 대화가 늘었다. 가족 간의 소통이 늘어났다. 호스팅이 나에게 선물해 준 또 하나의 기쁨이다.


나는 한국 문화 홍보대사

게스트가 오는 날에는 얼마나 신이 나는지 모른다. 친구와의 수다도 마다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우선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미리 준비해 놓은 이불보도 다시 한 번 싹 다린다. 내 집에 오는 게스트에게 한옥, 한식 침구, 한국 음식 이 세 가지는 꼭 대접하고 싶다.


특히 한식 침구는 나의 자존심이다. 집을 단장하면서 제일 먼저 고운 분홍색 비단을 덧댄 침구를 여러 채 마련했다. 예전 양갓집 규수 댁에서 시댁으로 지어 보내던 스타일로. 게스트가 묵어가면 이불 홑청을 뜯어서 세탁하고 햇볕에 말려 다시 바느질하는 데 꼬박 삼일이 걸린다. 자식들이 아무리 힘들다고 만류해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게스트에게 깨끗한 한식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다.


깨끗하게 다려놓은 바삭바삭한 이불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이렇게 마음을 다해 대접하면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기도 한다. 비싼 술을 놓고 가는 게스트도 있고 손편지를 남기고 가는 분도 있다. 이런 작은 선물들이 매개가 되어 지금까지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외국인 친구도 생겼다. 그럴 땐 한국인의 정이 통했다 싶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권문세가들이 살던 우리 북촌마을로 여행 오길. 한국에 왔으면 한옥에 머물면서 소나무와 창호지 냄새를 맡아봐야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럴 때면 한국의 미와 한옥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적막한 시골 생활이 생기 넘치는 일상으로 변했어요."

영월 흥월리 장미자 님 - 영월 무릉도원 안주인

귀촌, 너는 내 운명

"여보, 우리 늙으면 시골 가서 살자." 도시에서 남편이 늘 하던 말이다. 남편의 꿈은 생각보다 일찍 실현됐다. 남편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일찍 회사를 그만두고 강원도 영월 흥월리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남편은 8년째, 나는 5년째, 우리는 귀촌 초년생이다.


태화산 600m 고지의 높은 지대, 산등성이와 계곡에 둘러싸인 우리 집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봄에는 산벚꽃이 휘날리고 여름엔 계곡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가을엔 단풍이, 겨울엔 설경이 빼어난 곳. 자연이 주는 풍성함 덕분에 슈퍼에 갈 필요도 없다. 산에 올라 각종 나물을 뜯고 직접 재배한 버섯을 따서 건강밥상을 차린다. 가끔 마당에 있는 닭을 잡는 날엔 직접 키운 오가피, 옻나무, 엄나무 등 약재를 넣고 가마솥에 푹 끓여낸다. 집 주변을 둘러보면 먹을 게 지천이다.


"이렇게만 살면 150까지 살겠어. 영월에 와서 몸과 마음이 편하고 건강해지니 너무 좋아." 남편이 시골살이에 재미를 붙이는 동안 나 또한 영월에서 제2의 인생을 펼치는 중이다. 영월군에서 운영하는 요리 아카데미에서 향토 요리도 배웠고, 작년부터는 동네 사람들이랑 전통주를 만들어 지역 축제에서 판매하고 있다. 어찌나 분주하게 다니는지 옆 동네까지 빨간 차 모는 아주머니라고 소문이 났다.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호스팅 생활

그러던 중 함께 살던 아이들이 타지역으로 유학을 떠났다. 딸이랑 아들이 쓰던 2층이 텅 비었다. 2층에 따로 마련된 작은 부엌과 너른 테라스, 바깥에 펼쳐진 평상까지 놀리기엔 아까운 공간이었다. 마침 지인의 소개로 에어비앤비를 알게 됐고 설마 이렇게 산골짜기까지 게스트가 오겠어? 하는 마음으로 호스팅을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게스트들이 우리 집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도시에서는 오며 가며 이웃과 마주치는 게 일상이었지만, 집집이 멀리 떨어져 사는 시골 마을에서는 마음먹지 않으면 두세 달은 사람 그림자조차 보기 어렵다. 도심에선 당연하게 느껴졌던 사람 사는 소리가 그리웠다.


우리 집 앞마당에 사람들 드나드는 즐거운 왁자지껄함이 가득 찬다. 아이들이 자갈밭을 뛰어다니는 소리, 어르신들이 운치를 즐기며 내뱉는 감탄사, 김치 얻으러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자 그립던 소리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새로운 여행의 트렌드에 앞장서는 우리 집

요즘에는 여행의 트렌드가 많이 변한 것 같다. 관광지를 벗어난 곳, 이 한적한 시골에서 동네의 일원이 되는 여행을 즐긴다. 마치 친척 집에 놀러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가듯이.


우리 집에는 가족 게스트가 유독 많이 찾아온다. 노부모를 모시고 한적한 시골 생활을 즐기러 오는 거다. 이곳에는 가족의 시간을 방해할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한 번은 한 가족과 그중 따님의 남자친구가 함께 왔었다. 어머님이 병으로 몸이 불편하셨는데 곧 어머님 생신이라 여행을 온 거다. 남자친구가 정성을 다해 미역국을 끓여 어머님에게 대접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그 온기가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스트에게 우리 집 과일들을 가득 담아 양손에 들려주곤 한다. 돌아가는 길에 맛있게 드시길 바라며.


또 얼마 전에는 열다섯 명이 단체로 우리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굳이 2층의 방을 놔두고 자갈밭에 텐트를 치고는 캠핑 기분을 원 없이 즐기더라. 쏟아지는 별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의 정겨운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우리 집을 찾는 게스트들은 관광지를 찾아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보다 남편과 내가 지은 과일 농사를 체험하는 걸 더 좋아한다. 과수원에서 재배한 과일을 나눠주고 또 직접 따먹게끔 한다. 엄마 손을 붙잡고 온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딴 과일을 자랑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속으로 맛있어라. 맛있어라. 주문을 외운다.


마음까지 고요해지는 시골 마을을 찾은 우리 집 여행객들은 집 앞에 앉아 자연에 동화된다. 그리고 그걸 진정한 여행이라 부른다. 젊은 친구들도 그 시간을 즐기지만, 지긋하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특히 좋아하신다. 어릴 때 살던 고향이 생각나는지 하루 종일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단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처럼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회지의 삶에서 벗어나 가만히 흐르는 시간과 자연을 즐기는 것이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여행이 아닐까.


"가족과 함께 편히 쉬다 가요." 단지 나의 일상을 나눴을 뿐인데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게스트들이 있어 시골 마을의 생활이 더욱 행복하고 감사하다.



"고향에서 찾은 제2의 인생이 더욱 풍부해졌어요."

제주 행원리 오혜성 님 - 제주도 만능 열정맨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내 고향, 제주로의 귀향

내 고향은 제주. 15살까지 제주에서 살다가 육지로 전학을 갔고 4년 전까지 쭉 부산에서 살았다. 부산에 살면서도 언제나 제주가 그리웠다. 유년 시절 함께 보낸 고향 친구, 뛰어놀던 바다, 마을 주민 사이에 오가던 정. 고향인 행원리는 늘 마음의 안식처였다. 그렇게 그리워하며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꼭 제주를 찾았는데 5~6년 전부터는 틈만 나면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제주도로 돌아온다던 동네 어르신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사시던 집터에 작은 집 한 채도 마련했다. 머물 곳이 있으니 제주에 오는 빈도는 더욱 잦아졌고 보다 못한 아내가 못 이기는 척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나의 본격적인 제주 생활이 시작됐다.


지금 우리가 사는 구좌읍 행원리는 어머니의 고향이다. 어릴 적 외할머니 손에 자라서 이 동네에 추억이 많다. 마을 동쪽 끝, 제주도 전통 돌집에서 외할아버지는 언제나 꽃을 가꾸셨다. 근처 월정리에는 게스트하우스며 카페가 경쟁적으로 들어서는 통에 옛 모습이 사라졌지만, 우리 동네는 아직도 나지막한 돌집, 물질하는 해녀들, 추억의 당근 밭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어릴 적 함께 자랐던 친구들 몇몇은 아직도 동네에 살고 있었고 나를 기억했다. 덕분에 외할아버지의 체취가 남아있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호스팅으로 다시 시작한 내 일

제주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뭐해 먹고 사느냐다. 나 또한 부산에서 사업을 접고 제주에 내려오면서 내일부터 할 일이 없다는 게 가장 두려웠다. 실제로 일을 그만둔 후로 사회적 소속감이 없어지고 무기력해지는 걸 경험하게 되더라. 제주도로 이사 오고 나서 한동안 힘이 들었다. 그러던 중 SNS로 알게 된 에어비앤비란 서비스를 떠올렸다. "얼마 전 뉴스에서 유명 팝 가수가 해외 공연하러 갈 때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숙박했단 얘기를 들었어요. 그거 맞죠?" 아내도 에어비앤비를 알고 있었다. "그래, 우리도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자!"


마침 지중해의 별장을 모티브로 지은 이층집은 둘이 살기에 너무 크다는 느낌을 받아서 마당에 작은 바깥채를 지은 직후였다. 캐노피가 있는 침대, 벽난로, 직접 만든 나무 탁자 등 정성과 시간을 들여 지은 이층집을 그냥 두기에도 아까웠다. 집은 누군가 사용할 때 가장 가치 있는 법이니까! 외할머니가 어릴 때 늘 해 주시던 말씀도 생각이 났다. "집이건 가게건 뭘 하든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은 거란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 성격과도 잘 맞겠다 싶었다.


처음에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호스트로 인정하고 등록하는 절차가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프로필 사진을 넣는 일도 쉽지 않았다. 마침 에어비앤비에서 보낸 제주에서 호스트 모임이 열린다는 메일을 받고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에어비앤비 직원이 궁금증을 차근차근 풀어 주어 고민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었다. 호스트 등록을 하니 에어비앤비를 더욱 열심히 운영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주변의 든든한 호스트 친구들도 알게 되어 왠지 모를 소속감도 느껴졌다.


막상 에어비앤비를 시작하려 했을 때, 제일 고민스러웠던 건 우리 집의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었다. 경험이 없어 어떤 기준으로 책정해야 할지 모호했다. 그래서 게스트도 만족하고 우리 부부도 만족할 수 있는 선을 먼저 정했다. 또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통해 우리 집과 조건이 비슷한 곳들의 가격도 참고했다. 인원수가 늘어나면 추가되는 비용이 있지만 나는 그런 방법을 원하지 않아 머무는 사람 수와는 상관없이 하루 숙박비만 결정했다.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호스트가 될 준비를 했다. 이제는 나도 어엿한 에어비앤비 호스트다. 에어비앤비가 고향에 내려와 사는 나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 주었다.


인생의 2막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게스트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설렘이 좋다. 누군가 내 집에 머물기 위해 온다는 건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는 것처럼 두근대는 일이다. 의욕이 앞서는 초보 호스트는 게스트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다. 바닷가에서 보말을 줍거나 문어를 잡을 때도 다음에 올 게스트에게 나누어 줄 생각을 하며 조금 더 욕심을 낸다.


우리 집에는 지금껏 3팀의 게스트가 다녀갔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게스트는 아흔 살이 넘는 할머니와 동행한 가족이었다. 정작 예약한 손주는 못 왔지만 60대 부부가 할머니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온 것이다. 마침 그날 저녁 물때가 맞아 방금 잡아 온 문어를 삶아서 썰어 드렸다. 함께 먹자고 하셔서 게스트 가족과 아내, 내가 함께 앉아 도란도란 술을 한 잔씩 나눠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치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다시 뵌 듯 기뻤다. 며칠 뒤 게스트 가족을 배웅해 드리고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문자를 보냈더니 금세 답장이 왔다. "덕분에 잘 도착했어요. 할머니가 너무 좋다며 다음에 또 가자고 하셨어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에는 젊은 여성 게스트 5명이 방문했었다. 남자 손이 필요할 것 같아서 저녁에 바비큐 장비도 마련해주고 힘쓰는 일을 도와주었다. 자연스럽게 아내와 나도 저녁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아내도 게스트와 이야기 나누는 걸 무척 좋아하더라. 둘만 사는 집에 게스트가 찾아와 외로울 틈 없이 훈기를 더해 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서 제주 생활은 더욱 풍성해졌고 다음에 어떤 게스트가 올지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댄다.


얼마 전에는 싱가포르에서 예약 문의 메시지가 왔다. 얼른 외국인 게스트도 우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 예전 필리핀에 있는 작은 마을에 여행을 가서 혼자 카메라를 메고선 몇 시간이고 한적한 곳을 걸어 다닌 기억이 있다. 그때 아! 이게 진짜 여행이지.하고 생각했었다. 내가 다시 제주로 돌아와 터를 잡고 사는 행원리도 그런 동네다. 30년 적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진짜 제주도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 그리고 그곳에는 우리 집을 찾아오는 이를 반기며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초보 호스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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