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뉴욕에서 20년간 게임 회사와 게임 학교로
화제를 모은 ‘Peter Lee’가 한국에 세운 회사, 놀공발전소 이야기
놀공발전소 대표 : Peter Lee
1999년, 뉴욕에서 GameLab 창업
2006년, 세계 최초 빅게임 페스티벌 개최
2009년, 비영리 게임연구소 설립, 뉴욕 시 인가 공립학교 개교
■ 차례
머리말
등장인물 소개
놀공발전소 집기 소개
1. 너희는 어떻게 만난 거야?
세상 모든 유혹에 흔들리는 어른입니다
성공과 열정을 그대에게
이 사람들과는 오리배를 타도 태평양을 건널 수 있겠어
일 핑계로 놀 궁리를 하는 것이 행복하다
2. 놀공문화사전
놀공에는 밥이 있다
놀공에는 흑역사 청산의 밤이 있다
놀공에는 워크숍이 있다
3. 재미있는 게 이기는 거다
4. 놀공이 하는 일
1984
로미오와 줄리엣
안나 카레니나
파우스트
5. 그래도 우리는 굴러간다
저기요, 똥 주세요
우리는 초록 구호대
놀공, 기업을 교육하다
6. 시간 있으면 놀러와
빅게임 명장면
놀공발전소 채용공고
놀공발전소 활용법
맺음말
놀공 연대기
노력 금지
너희는 어떻게 만난 거야?
세상 모든 유혹에 흔들리는 어른입니다
(1호기 잠재력 담당 피터공 이야기)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어렸을 때부터 나를 지켜본 선생님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주변에서는 격려와 응원의 말이 쏟아졌다. 선생님께도 덕담 한마디를 들을 겸 찾아갔지만 전혀 뜻밖의 말을 던지셨다.
"너 같은 애는 미국에 가면 안 돼! 지금까지 네가 한 일 중에서 네가 직접 생각하고 선택한 일이 뭐가 있니? 네가 뉴욕에 가서 뭘 하겠어!"
선생님의 말을 듣고 가만히 곱씹어 보니 그동안 나는 어머니가 제안해 준 방향에 따라서 움직이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무척이나 어리석게 느껴졌다. 도대체 내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건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995년 학교를 졸업하고 드디어 사회인이 되었다. 몇 번의 이직을 하면서 안 그래도 빠르게 달려 나가는 시간은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나를 추월했다.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나는 방황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 미국에 올 때 선생님이 내게 했던 질문에 게으르게 대처한 탓이 아니었을까?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이 생각났다. 직접 생각하고 선택하는 일을 해보자, 주어진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게임을 할 때 사람이 몰입하는 것처럼 공부할 때도 몰입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학교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게임과 학교의 이색적인 만남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다 보면 잊고 있었던 재미와 흥분이 다시 찾아왔다.
마침 국내 아티스트 지원 프로젝트에서 게임에 관련된 나의 활동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한국 대표로 선발하는 행운도 찾아왔다. 이제는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펼칠 때가 왔음을 느꼈다. 그동안 누구보다 다양한 일을 했고 대외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순간을 만끽했다. 그리고 꼭 그만큼의 불안감에도 젖어 보았다. 이렇게 단련이 되었는데 못할 일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 어떤 순간에도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 2010년, 귀국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놀공의 터를 다지기 시작했다.
성공과 열정을 그대에게
(8호기 추징력 담당 애련공 이야기)
국내에 이름난 대기업 두 곳을 거치며 1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대기업에 근무할 때는 나를 길게 소개하지 않아도 되었다. 명함에 찍힌 몇 글자가 나를 더 빛나게 해 주었다. 당시에는 마지막이 될지 몰랐지만 총 예산 규모 3억 5천만 원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계가 왔다.
그러던 차에 솔깃한 제의가 들어왔다. 내 나이 마흔에는 내 사업을 해 보리라는 생각에 주변의 만류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 회사의 대표 자리를 받아들였다. 사회 경험이 많다고 자부했지만 대기업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신인류였다. 애정 어린 조언과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 사람들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사람이 있었다. 의욕 넘치는 초보 CEO였던 나에게 믿음직한 조언을 해 주시던 은인 같은 어르신을 만난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피터공의 아버지로 강원도 봉평에서 허브나라를 운영하시는 이호순 대표님이었다.
때마침 피터공이 미국에서 귀국해 내가 일하던 사업장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아래위 층에 자리한 이웃사촌 자격으로 오가면서 서로의 사업을 자문해 주다가 점점 피터공의 배경과 그가 해 왔던 여러 프로젝트에 관심이 갔다. 들을수록 멋지고 엿볼수록 대단했다. 교육 콘텐츠에 몸담았던 경력과 나의 육감이 게임으로 학교를 만들고 놀이로 교육하겠다는 말에 반응했다.
우뚝 곤두서는 촉 하나만 믿고 1년 만에 사업체를 접고 놀공에 합류했다. 대기업에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갑자기 창업하고 또 1년 만에 회사를 정리하고 다른 회사에 합류하겠다는 나의 행보를 두고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그러나 뉴욕에서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무작정 날아오는 피터공의 친구와 멋쟁이 대학생 3명의 초롱초롱한 눈을 마주하자 세상의 이목은 더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놀공에 들어오는 모든 제안을 제일 먼저 검토한다. 전화 문의는 물론이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쏟아지는 프로젝트 의뢰와 업무 제안을 리뷰하고 있다. 또한 재정 사정을 챙기는 것도 나의 주요 업무다. 여기에 놀공이기 때문에 부가되는 업무가 있다. 화분을 돌보고 때가 되면 간식을 만들어 공급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전을 부쳐서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도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때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칠판에 글을 쓰고 사무실 곳곳을 누비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나의 업무다.
이 사람들과는 오리배를 타도 태평양을 건널 수 있겠어
(3호기 관찰력 담당 애련공 이야기)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졸업을 준비하던 대학 4학년 2학기, 게임 디자인 수업에서 피터공을 처음 만났다. 이 수업은 로우 테크(Low tech)의 끝을 달리는 수업이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로 새로운 놀이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그 자리에서 쏟아 내고, 즉시 테스트를 하면서 오류를 수정하는 일을 반복했다.
내가 유레카!를 외친 순간은 팅거링 프로세스(Tinkering process)를 마주했을 때다. 팅거링 프로세스란 짧은 시간 안에 즉각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눈앞에서 직접 만질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생각과 실제의 차이를 곧바로 확인하면서 오류를 잡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팅거링 프로세스를 통해 설사 내 아이디어가 오류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직접 시도를 해 보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를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매력에 푹 빠져서 졸업 작품도 해야 하고 취업준비도 해야 하는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완전히 게임에 불이 붙고 말았다. 그렇게 빠져서 기말 팀 프로젝트를 만들었던 게임인 북극곰의 이주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피터공의 소개로 유니세프 상설 프로그램이 되어 기후 변화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피터공의 게임 수업을 계기로 만난 나와 예리, 태윤은 평균 나이 25세라는 청춘을 무기로 피터공과 그의 절친인 민기공과 함께 놀공발전소라는 회사를 만들고 아이덴티티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연히 게임 수업을 듣다가 회사 창립 멤버가 되었고 게임 진행자가 되어 뉴욕에 가다니. 그야말로 한강에 오리배 타러 왔다가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 셈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모를 만큼 얼떨떨했고 다음에 벌어질 일을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기보다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오리배를 타고도 태평양을 건널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기대감이 커졌다.
대외적으로 내가 놀공에서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함께하며 전체 방향과 틀을 설계하고 기획서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놀공에서 실질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관찰이다.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유심히 그리고 가까이 바라보고 때로는 다르게 보기 위해 노력하는 관찰을 통해서 나의 모든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과 영상으로 놀공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는 것도 관찰력 담당인 내가 하는 일이다. 사진과 영상에 담지 못하는 분위기와 비화는 틈틈이 만화로 그려서 SNS에 주기적으로 업로드하고 있다. 캐릭터와 실존 인물 사이의 싱크로율이 100%라서 원성을 사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나의 관찰력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로 여기고 있다.
일 핑계로 놀 궁리를 하는 것이 행복하다
(88호기 통찰력 담당 은현공 이야기)
2010년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해, 나는 타국에서도 고국에 대한 호기심을 저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기웃거렸다. 그러던 중 친한 대학 선후배들이 피터공과 함께 놀공이라는 이름으로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깨너머 들려오는 소식만 듣고는 도대체 놀공이 어떤 곳인지, 뭐를 하겠다는 곳인지 알 수 없어서 귀국 후 직접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 놀공에 발을 들여놓던 날,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욕정 게임이라는 것을 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저랑 할래요? 말래요?라며 19금 게임을 했던 그날의 낯 뜨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로 학교에 복학해 피터공의 게임 수업을 들으면서 생소했던 게임을 해보기도 하고 만들기도 많이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놀공에서 기획한 THE NOLJA FESTIVAL에 개발자로 참여하면서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우연히 지하철에서 지인공을 만났다.
"선배, 놀공 어때요? 일 할만 해요?"
"놀공은 페라가모 구두보다 반스 운동화가 더 필요한 회사야."
지인공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을 치켜들었다. 그 발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언제 한 번 놀공에 놀러 오라고 했었는데 그 말을 담아두었다가 진짜 하루 날을 잡아서 작정하고 놀러 갔다. 그날의 욕정 게임을 시작으로 당시 놀공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얼떨결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취업 준비와 놀공 프로젝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다 결국 놀공에 눌러앉게 되었다. 이것이 나와 놀공의 짧지만 진한 인연의 시작이다.
내가 놀공에서 하는 일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리하고 게임을 기획해 실제 실행이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기획하기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숱한 아이데이션과 자료 조사, 끝없는 테스트를 통해 수없이 갈아엎어지는 기획 과정을 지나고 나서야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이 들어가고 이렇게 게임이 완성되면 현장으로 출동해서 진두지휘까지 마쳐야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놀공 클래식은 우리가 흔히 고전문학이라 부르는 텍스트를 놀이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다. 이를 준비하는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다면 그 자체로 회의계의 고전이 되어 새로운 문학 장르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느덧 놀공을 대표하는 시리즈가 된 놀공 클래식. 놀공 클래식을 제대로 끌어가기 위해서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 두거나 제대로 읽지도 않았으면서 어디서 들어 본 지식으로 아는 척 했던 고전을 각잡고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때로는 책은 읽으라고 만든 것이고 가장 훌륭한 감상법인 독서를 두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좌절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독서를 뛰어넘는 즐거움과 멀게만 느껴졌던 고전을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묵직한 의미로 돌아오는지 이제는 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놀공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고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세상이 공유했으면 하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가장 문턱이 낮은 방법으로 전파하는 것. 놀공은 바로 이런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재미있는 게 이기는 거다
공부나 일을 그렇게 해 봐!
사람들에게 게임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게임보다 풍부한 유머를 간직한 콘텐츠는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게임을 하는 것은 상당히 수고로운 일이다.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공부하는 것 이상으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도전 의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희생한다는 피해 의식 없이 기꺼이 노동을 감수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재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노골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공부나 일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기 위해 참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간혹 드물게 공부나 일이 재미있어서 한다는 사람을 만나서 이유를 물어도 그 이유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공부나 일을 게임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바꾼다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 목표와 맥락을 만들 수 있다면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게임 미션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방향 전환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다. 재미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심어주는 것이다.
지금 내 손에 있는 연필은 꿈을 이루게 하는 도구라고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는 언젠가 모두가 탐내는 요새가 될 것이라고. 공부와 일을 하기 위해서 거치는 사소한 단계에도 작은 의미를 불어넣는다면 일상은 게임처럼 흥미진진할 것이다.
노력 금지
10대에는 대학, 20대에는 취업, 30대에는 결혼, 40대에는 성공. 10년을 주기로 우리는 새로운 미션을 부여받는다. 기간 내에 달성하지 않으면 엄청난 불행이 닥칠 것처럼, 남들만큼 해내지 못하면 불행해질 것처럼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노력한 결과물이 결국 비슷한 인생을 살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기회가 희미한 뒷모습만 남긴 채 사라진 후다.
노력 금지는 열심히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남과 같아지기 위해서 다리가 찢어지는 것도 모른 채 노력하는 뱁새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모두가 황새가 된 세상은 재미없다. 짧은 다리로 낮은 눈높이로 살아가도 불행하지 않다.
경쟁력은 나 자신에게서 나온다. 남과 같아져서는 경쟁력을 얻을 수 없다. 내가 아닌 남이 되는 노력은 필요 없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부터 생각하는 게 먼저다. 내가 뭘 잘하는지, 뭘 못 하는지 뭘 할 때 흥미를 잃지 않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을 때,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지 말자. 진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노력이라는 말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를 기다리며 우리 모두 노력 금지!
놀공이 하는 일
로미오와 줄리엣
조지 오웰의 『1984』로 시작한 놀공 클래식이 두 번째 시작을 준비하고 불 꺼진 서점이라는 공간을 확보하기까지 걸렸던 총 6개월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놀공은 강남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미션을 수행하는 창의력 워크숍을 설계했고 미션의 가장 마지막 장소가 바로 K문고였다. 담당 과장님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했고 놀공은 서점이라는 공간을 게임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두 가지 마음의 접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놀공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놀공 클래식을 기획하고 K문고는 장소를 제공하는 협업 시스템이 성사되었다.
『1984』라는 작품은 메시지가 묵직하고 깊이가 있었지만, 분위기 자체가 어둡고 쉽게 다가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두 번째 놀공 클래식에서는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고전을 고르는 기준을 세우자는 의견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자."
독서라는 정적인 활동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시끌벅적 떠들면서 고전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놀공 클래식의 목표였다. 이러한 목표를 가장 잘 부합하는 고전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물음을 가슴에 새기고 다시 작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아는 작품을 꼽는 것은 어려웠지만 누구나 아는 작가를 꼽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우리는 셰익스피어라는 출발점에서 작품을 찾는 경주를 새롭게 시작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에 집중하기로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원작이 가진 친숙함은 게임으로 개발할 때 플레이어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 구구절절한 설명을 생략해도 된다는 이점이 있었고 전체적인 게임 스토리 구조도 안정감이 있었다.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연극 연출을 고려한 대본이라는 것을 깨닫자 K문고를 서점이 아니라 연극 무대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이야기 카드를 습득하게 되고 그 카드를 조합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으로 게임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했다. 플레이어가 이야기 카드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희극이 되기도 비극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이 세상 모든 사랑의 결말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파우스트
첫 번째 파도, 조지 오웰의 『1984』
놀공 클래식은 풀밭 위에서 가볍게 내뱉은 말에서 시작되었다. 재미있겠다는 느낌 하나만 믿고 파고들기 시작했지만, 고전을 읽고 끝없는 토론을 거치면서 점점 몰입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놀공 클래식은 창작자로서 시도해 보고 싶은 흥미로운 작업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창작자로서 나를 대표하는 작업인 게임에 예술적 깊이를 더해서 고전과 직접 겨뤄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욕심 없이 그저 고전을 게임으로 만들기라는 목표만 바라보았다. 창작자로서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고민을 했던 시기였고 함께 고민하는 구성원들이 성장하는 것을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두 번째 파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2011년의 여름은 조지 오웰의 『1984』와 씨름하며 태양의 공격을 잊어버렸다.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다시 더위가 찾아오자 슬슬 몸과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1984가 단순한 게임이었다면 지나간 기억 속에서 슬금슬금 잊혀 갔을 것이다. 그러나 놀공에게 1984는 놀공 클래식이라는 시리즈로 명명되었기 때문에 두 번째 기획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애련공의 빛나는 노력으로 강남 K문고라는 멋진 판을 확보한 터라 재미로 시작했던 놀공 클래식이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도 보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을 분석하면서 게임을 만들고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현장을 뛰어다니며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놀공 클래식에 참여했던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놀공의 소중한 지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을 때 게임 개발자로서 보람을 느꼈다.
세 번째 파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놀공 클래식을 진행하면서 놀공은 게임 개발 능력이 성장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협업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법을 배웠다. 특히 『안나 카레니나』는 TBWA의 박웅현 ECD를 만나면서 인문학적 관점으로 고전을 바라보는 힘을 키웠고 정신건강박람회를 통해 대중과 본격적인 소통을 할 기회도 잡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제작비를 지원받은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게임의 완성도가 제작비에 비례한다고 못 박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제작비가 부족하다는 것은 플레이어의 기대와 만족에 영향을 미친다. 제작비에 맞춰서 설계를 수정할 때마다 완성도까지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늘 아쉬웠다. 그때마다 운영 비용을 맞추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는 것만은 하지 말자고, 놀공의 브랜드와 놀공 클래식에 대한 신뢰가 쌓인 후에 상업화를 꾀해도 늦지 않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1984와 로미오와 줄리엣이 플레이어의 움직임과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에 신경을 많이 쓴 게임이라면 톨스토이가 묻습니다는 플레이어의 움직임보다는 정서적인 몰입에 집중한 게임이었다. 그동안 놀공의 게임이 시도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도전이었다. 산만한 전시장 환경에서 정서적인 몰입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행사 당일까지 계속되었지만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 앞에서 플레이어들은 몰입했다. 모바일 기기와 감성적인 공간 배치도 호평을 받았고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직접적인 접촉이 없어도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네 번째 파도, 괴테의 『파우스트』
첫 번째 놀공 클래식을 시연했던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인연을 맺은 독일문화원의 라이먼(Dr.Reimar Volker) 박사와 힐트만(Hiltmann Han-song) 씨가 놀공을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게임 산업과 교육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미팅이 마무리될 때쯤 독일 문화원의 정식 명칭이 Goethe Institut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괴테라니!"
네 번째 놀공 클래식은 어떤 책으로 진행할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에 괴테의 『파우스트』로 게임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말을 던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말이었는데 놀공 클래식 관련 자료를 살피던 독일문화원 멤버들에게 꼭 프로젝트를 성사시켜 보자는 말이 되돌아왔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독일문화원 원장단이 모인 곳에서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발표를 진행하는 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독일 출신의 문학박사들로 구성된 원장단은 전혀 리액션이 없었고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원장단으로부터 나온 질문의 개수는 적었지만 너무나 날카로웠고 부정적인 상황을 전제한 질문들이었다. 한 달간의 노력이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한국 독일문화원 원장님과 행사를 주관했던 박사님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이 도착했다. 모두 놀공 클래식의 가능성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고 적극적인 참여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독일문화원 측은 2013년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로 놀공 클래식을 제안하기로 했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독일의 『파우스트』전문가를 한국에 초대할 예정이라는 계획까지 덧붙였다. 놀공 클래식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놀공 클래식이 걸어온 길을 보고 우연과 행운의 반복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세상에 눈먼 우연과 행운은 없다. 어쩌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템을 우리는 놀공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실체로 만들었다. 놀공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고 목표가 세워진 이후에는 부지런히 나아갔다. 기회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판을 만들면서 한 걸음 나아갔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새로운 시각을 더하고 실수를 잡아나갔다. 시간은 오래 걸리고 수고도 많이 들었지만, 인생도 일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디뎠던 모든 길은 모두 소중하다. 꿈을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맨 처음 마음에 품었던 방향성이다. 그리고 방향을 잃지 않는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핸들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굴러간다
놀공, 기업을 교육하다(S그룹 인력개발원 창의 워크숍)
잃어버린 창의력을 찾아서
일상은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정해 준다.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안정적인 보호막이 생기게 되고 사람들은 이 보호막을 뚫는 것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일상을 탈출하기 전 일탈을 먼저 경험하도록 창의력 워크숍에 참석한 사원들에게 교육장에 입교하는 대신 공식적인 땡땡이를 치는 것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놀공 멤버들은 일상 체험에 나섰다. 직장인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을 찾아다니기로 한 것이다. 일명 직장인 코스프레! 출근 무렵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린다는 시청역으로 각자 정장을 입고 오직 전철과 버스 같은 대중교통만을 이용해서 도착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뚜렷하게 갈 곳이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떠밀려 출입구로 나왔을 때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우리는 일단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서 무엇을 할지 상의하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열에 여덟 정도는 우리를 힐끗거렸다. 우리는 직장인 코스프레를 하는 중이었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영락없는 실직자들의 모임이었다. 그렇다고 기죽을 놀공이 아니었다.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다음 탐험 장소를 논했다.
어떤 날은 종일 마트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최대한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서 즉석에서 간단한 게임을 만들고 점원들의 눈길을 피해 얼른 테스트를 해 보기도 했다. 특히 서점은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들고 실험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었다. 가끔은 황당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빌딩 주변을 마구 뛰어다니기도 했고 지하철역 안에서 벤치와 화물 보관소 개수를 세기도 했다. 마트나 서점에 있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고 잡상인 혹은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오해받아 쫓겨난 적도 셀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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