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를 넓혀라

   
윤명철
ǻ
마젤란
   
12000
2007�� 06��



>■ 책 소개
2,000년 전 광개토 태왕은 고구려의영토를 만주까지 확장시켜 한민족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지중해의 중핵으로 고구려의 위상을 높여 엄청난 성취를 거뒀다.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 고구려를 건설하고 굶주린 백성들을 편안하게 다스린 광개토 태왕은 이제, 급격한 변화와 협력을 요구하는 우리 시대에 꿈을실천한 완전한 인간 모델로서 존재한다. 


이 책이 그리는 광개토 태왕은 "미래학"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나 자신은 물론 기업,국가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저자는 그때를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수많은 문헌과 기록을 뒤져 왜곡이나 과장 없이 명징하게 증명하고 새로운면모들을 소개한다. 광개토 태왕을 창조, 개방, 조화라는 3가지 측면으로 나눠, 이를 다시 27가지 자기계발 코드로 분류하고 그의 열정과 지혜를되살려내고 있다.


■ 저자 윤명철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성균관대학교에서 역사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고구려사와 동아시아 해양사이며, 광개토 태왕을 통해 21세기의"고구리즘(gogurism)"의 실현을, 장보고를 통해 동아지중해 물류장 역할론을 꿈꾸고 있다. 1983년 대한해협 첫 뗏목 학술탐사 이후2회에 걸친 황해문화 뗏목 탐사를 실시했다. 2003년에는 중국 절강성에서 인천을 경유, 제주도와 일본까지 뗏목 장보고호를 타고 43일간학술탐사를 한 바 있는 왕성한 탐험가이자 시작 활동에 열심인 시인이기도 하다. 현재 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해양문화연구소소장, 고구려연구회 이사, 「지구문학」 편집위원 등을 맡고 있다. 『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한민족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고구려 해양사연구』『장보고의 나라』 『역사전쟁』『고구려는 우리의 미래다』『고구려의 정신과 정책』『광개토 태왕과 한고려의 꿈』『장수왕 장보고 그들에게 길을묻다』 등 20여 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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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추천사 - 과거·현재·미래의 투시도 
저자의 글 - 우리 시대가 바라는 새로운 인간형 


1장 창조 꿈꾸는 사람들의 영웅 
광개토 코드 1그랜드 디자인을 설계하라 
광개토 코드 2 거시적 시각과 섬세한 마음으로 조감도를 그려라 
광개토 코드 3 광개토 태왕이라는 명품브랜드 
광개토 코드 4 실천 모델을 찾아라 
광개토 코드 5 흐름을 타고 중요한 목을 선점하라 
광개토 코드 6 세 마리이상의 토끼를 쫓아라! 
광개토 코드 7 강력한 원동력, 승리의 기쁨 
광개토 코드 8 50보 100보는 하늘과 땅 차이다
광개토 코드 9 열전의 시대가 도래하다 

2장 개방 무적의 제왕, 불패의 신화 
광개토코드 10 말 타고 초원을 달려라 
광개토 코드 11 전방위적으로 보고 입체적으로 사고하라 
광개토 코드 12 일석삼극의 힘
광개토 코드 13 위기상황일수록 정확하게 판단하라 
광개토 코드 14 주변의 잠재력을 최대한 수혈하라 
광개토 코드 15경쟁자의 적은 동지다 
광개토 코드 16 부하들의 마음을 열어라 
광개토 코드 17 공격은 확실한 수비, 수비는 최상의 공격
광개토 코드 18 51퍼센트의 성과만 있어도 성공이다 


3장 조화 만주벌판, 말달리자 
광개토 코드 19역전과 반전이 거듭되다 
광개토 코드 20 숨겨진 야성, 석학의 지성, 시인의 감성을 갖춰라 
광개토 코드 21 성만 쌓는 자는망한다 
광개토 코드 22 연애하듯, 스포츠하듯 
광개토 코드 23 확실한 지휘계통을 확립하라 
광개토 코드 24 승리를계획하라 
광개토 코드 25 유목민의 이동성, 농경민의 정착성, 해양민의 회귀성을 함께 활용하라 
광개토 코드 26 무역인의자유로움, 예술가의 섬세함을 잊지 말자 
광개토 코드 27 200퍼센트 집중력이 관건이다 





생각의 지도를 넓혀라


그랜드 디자인을 설계하라

태왕의 미션, 다물

광개토 태왕은 390년 큰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18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어지러운 정세는 고구려와 어린 왕을 가만 두지 않았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나라의 약세를 회복하고, 패배 의식에 빠져 있는 백성들을 추스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한 국가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 광개토 태왕의 첫 번째 작업은 10년 후, 100년 후를 내다보고 설계했을 그랜드 디자인(grand design)에 있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그의 목표는 다물(多勿)의 실현, 큰 나라의 재건, 자의식에 충실한 정신,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 문화가 아름답고 뛰어난 나라였다. 다물은 되찾다, 회복하다라는 뜻으로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연호이자 건국이념이다.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편에 다물을 려어위복구토(麗語謂復舊土)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고구려어로 고토회복을 뜻한다.


결국 태왕은 건국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토의 회복은 고구려 백성들에게는 희망을 뜻했던 것 같다. 신화가 되어 버린 고주몽의 이념을 현실에서 이루고, 백제나 거란과의 싸움에서 연이어 패한 뒤 생긴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동아시아의 핵이 되겠다는 커다란 그림을 그렸다. 태왕은 드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국력을 강화시켜 북으로는 유목 종족을, 서로는 중국의 여러 나라들과 함께 동아시아의 3핵이 되기를 원했다. 또한 남으로는 백제와 신라, 가야, 왜국 등의 주변 국가들을 영향력 아래에 넣고, 그 가운데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고구려가 역사의 무대로 삼았던 동아시아는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지중해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를 파악한 태왕은 고구려의 지중해적 성격에 국제 질서의 미묘한 변화와 시대 상황, 시대정신을 담아 나라의 발전 전략을 계획했다. 그는 동서남북에 걸친 정복 활동을 펼치면서 대륙 남부, 한반도 중부 이북 등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더불어 황해 중부 이북, 동해 중부 이북의 영해를 확보했다. 고구려는 이제 해륙 국가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태왕의 계획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요동만과 경기만 등 곳곳에 전략적 거점을 확보해 질서의 축을 세우고,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단계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을 연결함으로써 자국 중심의 거대한 망을 구성했다.


그의 큰 그림은 아들인 장수왕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장수왕은 아버지의 계획을 더 체계적인 전략을 활용했다. 남진 및 북진 전략을 유기적으로 작동시켜 평양성, 국내성, 요동성, 남평양의 몇몇 전략 거점을 국토 개발의 축으로 삼았다. 또한 해륙 국가답게 주요 육지 거점은 국내성, 요동성, 북방으로, 주요 해양 거점은 대동강 하구, 한강 하구, 황해의 경기만, 압록강 하구, 동해의 삼척, 원산, 두만강 하구로 잡았다. 광개토 태왕이 설계한 위대한 그랜드 디자인이 이렇게 해서 결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 하루의 계획을 세워라

태왕은 정체성과 자의식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단순한 정복자나 전략가가 아니었다. 그의 그랜드 디자인에는 일반적인 큰 이상뿐만 아니라 작은 그림도 함께 들어 있었다. 고구려 국민들뿐 아니라 새로 편입된 주민들의 불안감과 소외감을 해소하기 위해 물류망과 도로, 해로, 수로 등의 교통망을 정비했다. 또한 경제 교류와 문화 장려에도 힘을 썼다. 나라의 앞날을 도모하며 이를 실현해 가는 구체적이고 세세한 그림을 함께 그려나갔다. 때문에 그가 죽은 이후 1,600년 가까이 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그을 알고 싶어 하고 닮아가려 하는 것이다.


자신이 구상하는 그랜드 디자인은 인생의 고비마다 힘을 주고 때로는 감동을 준다. 나아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목표를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하지만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자. 너무 큰 그림은 거칠고, 가끔은 생략된 것들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작은 것은 귀엽다. 못나도 아름답다. 괜스레 안아주고 싶어진다. 포악한 맹수일지라도 새끼는 귀엽게 느껴지지 않는가. 또한 보는 사람을 위축시키지 않고, 편안하게 한다. 목표지향적인 큰 그림과 함께 때로는 잠시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그림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큰 것만 추구하다 보면 작은 것을 보지 못하기 쉽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큰일 또한 이룰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랜드 디자인에는 비전과 함께 작은 그림을 포함하는 함축적이고 포용적인 내용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광개토 태왕이 위대한 임금으로 존경을 받고 오늘날 재평가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가 만약 영토의 팽창이나 국가의 부강을 목표로 하는 큰 그림만 그렸다면 실패한 전제군주, 혹은 성공한 폭군으로 평가 절하되었을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들처럼 천재적인 전략가나 고구려를 강국으로 만든 정복 군주 정도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소소하지만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작은 그림들을 태왕은 성심껏 채워 넣었다. 백성들의 삶이 풍요롭도록 농사를 발전시키고, 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모두가 편하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다. 또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평양에 9개의 절을 세웠다. 큰 그림을 우선으로 하되, 여기에 작은 그림을 잘 섞어서 그려 넣은 태왕을 본받자.


너무 멀리만 바라보다가는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은 일에 소홀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큰 그림뿐만 아니라 작은 그림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10년 후에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다면, 이를 세분화해서 5년 후, 3년 후, 1년 후뿐만 아니라 한 달 후, 일주일 후, 내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있어야 한다.



역전의 시대가 도래하다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변화무쌍한 상황

태왕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변화를 금방 알아채고 적절하게 활용했기 때문에 자신의 비전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굳건하게만 보였던 주변 국가들이 그가 왕위에 오르자 분열하기 시작했다. 주인이 도망치고 떠나버린 땅인 화북은 이때부터 거의 100여 년 동안 숱한 유목 종족들의 싸움터가 되었다. 사회 질서가 붕괴되자 여러 나라들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신질서의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광개토 태왕은 어린 나이에 국제 질서가 변화할 가능성을 똑바로 인식하고 확인했다.


하지만 변화를 감지하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비전을 만들거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에 부족했다. 특히 대처 능력이 부족한 백성들에게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만 알리게 되면, 오히려 절망과 공포 속에서 떨다가 죽어갈 수도 있다. 가뜩이나 패배 의식이 가득 찬 사람들이 더욱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가능하면 변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 좋다. 또 결과를 함께 예측해 주되, 예측은 예언이 아니며 정확한 것도 아니고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함께 이해시켜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도 대안과 대처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태왕은 균열의 틈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고구려가 국력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그의 비전이 윤곽을 드러냈고, 점차 상황의 변화에 맞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선민의식을 중심으로 뭉쳐라

광개토 태왕은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웠을까? 그는 패배감의 불식과 군사적인 승리를 얻기 위해 전투를 시작했다. 18세에 등극하자마자 파죽지세로 엄청난 기동성을 발휘해 첫 해에만 세 지역을 총공격한 것이다. 세계를 향해 고구려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종의 돌발 사태였다. 지루했던 방어의 시대에서 신바람 나는 공격의 시대로, 우울한 패배의 시대에서 자신감 넘치는 승리의 시대로의 변화를 극적으로 알린 것이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태왕의 과단성 있는 행동으로 인해 고구려 사람들은 길고 지루한 패전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니 고구려는 승전국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백성들의 환호성은 그 후 100년 동안이나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를 뒤덮었다.


광개토 태왕은 변화를 감지하고 자의식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천손이라는 사실을 널리 퍼트렸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선택된 집단이라고 믿어왔다. 그래야 다른 집단과의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신적인 단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나 종족에게는 신화가 있고, 자기들의 신성성과 자의식을 보장해 주는 종교가 있다. 태왕 역시 자신과 고구려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뒤에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해 나갔다. 혼란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우리는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이다. 태왕은 백성들에게 이렇게 대단한 민족이기 때문에 더욱 큰 것을 향해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광개토 태왕은 변화에 따른 그랜드 디자인과 비전을 세우고, 그에 맞는 정체성으로 마음가짐을 다지고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하나씩 이뤄나갔다. 이렇게 해서 그가 만들어낸 세상은 처음보다 더욱 새롭고 넓은 땅, 자유와 문화, 경제와 무역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주눅 들고 의기소침하고 살아갈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과거와 단절하고, 더 나은 고구려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진정한 리더는 변화를 이끄는 사람

시간이 흘러가고 공간이 이동하면서 사람도, 상황도 자연스럽게 바뀌어간다. 이런 변화를 본능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즐기면서 상황을 개척해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변화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일종의 쇄신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변화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적응하는 데 따르는 고통과 실패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래서 변화하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하지만 훌륭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경험으로 알아차린다. 늘 예측불허의 상황이 닥쳐오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과 함께 일하는 구성원과 집단을 불행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예보를 한다.


지도자가 상황이 변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거나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나라는 패배했다. 우리 역사에서는 백제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백제 진사왕은 전쟁의 와중에 의문사를 당했고, 다음 왕인 아신왕은 수도가 포위되어 사실상 항복을 요청한 후에 동생과 대신들을 포로로 보냈다. 그 후에도 백제는 똑같은 실수를 범했고, 결과적으로 개로왕은 죽음을 당했고 수도인 한성을 잃었다.


국가 경영, 기업 경영, 가족 경영, 그리고 세계 경영이 모두 변화하는 세상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리더는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 길을 잘 아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고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양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목자인 셈이다.



숨겨진 야성, 석학의 지성, 시인의 감성을 갖춰라

새로운 코드는 역동성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를 풍미한 태왕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대의 리더였다. 그는 들판과 산을 달리며 성장하면서 야성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물론 광개토 태왕이 야성과 지성, 감성이 조화를 이루었는지, 서로 충돌하면서 갈등을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청소년기 왕자 시절에는 잠시 방황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즉위하자마자 폭풍 같은 군사 작전을 벌여 승리를 거머쥔 젊은 날의 행적으로 보아 힘과 용맹심으로 가득 찬 야성이 넘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비전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면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지성을 겸비했을 것이고, 결과를 보면 백성들의 마음을 헤어라는 성군으로서의 감성 또한 풍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개토 태왕릉비와 함께 지금까지 남겨진 상징물들을 태왕의 모습과 성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는 야성과 지성과 감성이 골고루 배합된 결정체였을 것이다. 구리시에 세워진 태왕의 동상 또한 전체적인 분위기나 얼굴을 보면 이 세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었다. 그의 이런 성품과 자비심이 결국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게 했고, 고구려를 큰 나라로 만들었다.


잃어버린 본능을 총동원하라

인간은 한때 황야의 밤길을 달리는 이리와 같은 눈빛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해 가면서 어느새 본능과 야성을 상실했고 야성을 수치스러운 감정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렇지만 야성은 문명의 골목길에 잠복한 채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잠류로 흐르다가 특별한 경우에나, 극한 상황에 처하면 화산처럼 폭발하고 해일처럼 휘몰아친다. 예측불허의 상태에서 찰나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모한 배짱을 부리거나 어차피 하는 마음으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숨어 있던, 그리고 숨기고 있었던 야성의 본능을 총동원해야 한다. 후각․청각․촉각․마음까지도 다 끌어내서 판단해야 한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지성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지성은 야성이나 이기심,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충동 등을 다독거리고, 예쁘게 포장할 수 있는 능력이다. 때로는 거칠고 모난 감정을 다스리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우아하게 치장하는 능력이다. 사물의 이치와 일이 되어가는 순서를 찾아내고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며, 불필요한 갈등과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지성을 갖추려면 다양한 종류의 지식을 섭렵하고 심도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또한 야성과 감성을 절제하면서 다른 이들의 절제되고 압축된 삶의 결정체들을 학습해야 한다. 훌륭한 왕이 되기 위해 태왕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학문적인 지식은 물론 천문과 주역 등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까지 배웠을 것이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학습을 통한 지성뿐만 아니라 깊은 내면세계의 통찰이 필요하다. 인간을 궁극적으로 이해하고 구성원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려면 인간 본연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수련해야 한다. 또한 수행을 통해 탁마한 지성을 더욱 부드럽고 평온하게 지속시킬 필요가 있다.


흔히들 야성과 지성은 어울릴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이 두 가지는 수레바퀴처럼 맞물려가야 하는 감정인 것이다. 인간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사유할 수 있다. 야성과 지성을 고루 갖춘 사람은 감성 역시 풍부하다. 사물을 극진한 마음으로 대하고 자상하게 배려한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봄날 벚꽃향기에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거리는 여인의 섬세함을 지닌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너무 강하거나 거칠기만 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사소한 일에 눈물을 흘리는 부드러운 감성을 갖고 있어야 숱한 사연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정서를 이해해야 친근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야성과 지성, 감성의 황금비율

인간의 야성과 지성, 감성은 똑 떨어지게 구분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문화가 생성하고 발전하면서 흩어지기도 하고, 각각의 필요에 따라 역할이 변화되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할 때는 강한 야성이, 어떤 사안을 분석하고 기획할 때는 지성이, 창의적이면서 독특한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는 감성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늘 그리워하고 때로는 주인 몰래 힘을 모았다가 어떤 때에는 공개적으로 합방을 해온 사이이다. 서로 공존하고 상생하는 관계이다.


리더는 많은 사연과 존재들을 거느리고 모든 것을 끌어안든 숙명을 지닌 존재이다. 어느 한 가지만 갖고는 구성원을, 사회를, 회사를, 국가를 운용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이 세 가지를 언제, 어떻게 배합해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세 가지 미덕을 몸에 잠재워두었다가 필요할 때 자유자재로 꺼내 활용하면서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한다.


고구려 문화는 대상체와의 합일을 지향하는 세계관을 지녔다. 태왕은 세계를 갈등과 대립으로 파악하지 않았으며 조화와 합일을 지향했다. 이러한 세계관은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미 그 자신이 세 가지 덕목을 잘 운용하는 인물이었기에, 포용하는 마음으로 다른 문화와의 차이점을 수용했을 것이다.


이제는 야성과 지성, 감성을 통합시킨 비전을 제시하고 과감한 추진력으로 이를 실행시킬 리더가 탄생할 시기이다. 어려운 시기에 왕위에 올라 수많은 의심과 불신을 일시에 잠재우고 고구려 제국을 탄생시킨 태왕처럼 말이다. 우리에게는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는 리더가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이루는 리더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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