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보디랭귀지

   
새미 몰효(역자 : 송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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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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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05��



>■ 책 소개
백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90분이라는 긴정치 토론을 지켜볼 경우,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토론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정치가들이 어떤 몸짓과 태도로자신을 대변하느냐에 있다. 그 이유는 몸짓과 태도가 정치가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드러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성공의80퍼센트는 ‘무슨 내용을 말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유럽에서 유명한 팬터마임 배우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새미 몰효는 수십 년간 보디랭귀지를연구해온 이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로서, 그동안의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하우를 이 책에 담았다. 1장에서는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질문을 던지면서 독자 스스로 성공의 의미와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2장 ‘몸의 기능과 자세 그리고 몸짓 언어’에서는 침착함과 주체성을가진 성공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몸가짐과 비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기존의 책들이 말하는 뜬구름 같은 추상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표정, 눈빛,자세, 몸짓 등을 사진과 함께 직접 보여주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몸짓과 자세 등을 배우고 실천에 옮기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변해가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평소 사소한 몸짓과 행동, 말을 개선해 나가면서 진정한 성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성공가이드북이다.


■ 저자 새미 몰효
1936년 텔 아비브에서출생했으며 팬터마임과 연극배우, 연출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새미 몰효는 예술가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빈의막스―라인하르트―세미나의 연극학과 및 음악대학교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4년에 오스트리아가 수여하는 대 공로명예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어린이를 위한 보디랭귀지』『보디랭귀지의 모든 것』『보디랭귀지와 파트너십』등이 있다. 


■ 역자 송소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취득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수학했다. 현재 이화여대 독문과 강사 및 기호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독일문학의장면들』(공저)『물의 요정을 찾아서』(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삶의 속도를 늦춰라』『돈이 주는 행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오디세우스왕을 찾아서』『프린치페사』『클림트』『러브 아카데미』등이 있다. 


■ 차례
서문 


제1장 성공이란 무엇인가? 
씨앗을 예를들어보자 | ‘성공적인’ 유혹 | 성공의 토대 | 지능IQ인가, 감성EQ인가? | 성공은 소유하는 재산이 아니다 | 시간 요인 | 하늘에서 별따기? | 야곱의 꿈 |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 성공의 지속성에 대하여 | 내면의 균형과 외부 세계 | 관점이 변하면


제2장 몸의 기능과 자세 그리고 몸짓 언어
서 있는 지점 | 서 있는 지점과 위치 변경 | 골반 | 자연적 전제와 원초적 노동 분리 | 비너스 또는 어머니 | 힘의작용 | 축전지 역할을 하는 흉곽 | 숨 들이쉬기와 내쉬기 | 마음을 닫는 사람은 곧 외톨이가 된다 | 두 팔을 활짝 벌리고 | 리더십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경영 스타일이 필요한가?&nbsp& | 개방적인 태도가 신뢰를 만든다 | 손으로 말하기 | 지배적인 손짓 | 새로운 아마존전사? | 말투와 몸짓 언어의 어휘 | 어깨 부위 | 목덜미 | 마음을 열 것인가, 대립할 것인가? | 경청을 위한 최상의 자세 | 눈으로말하기 | 감정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 성공은 의무가 아니다 | 말과 몸짓에서 나오는 대화의 리듬 | 보기와 인지 | 시선이 미치는 범위에대해 | 움직임이 곧 성공이고, 성공이 곧 움직임이다 | 영역에 대한 느낌 | 앉는 위치와 대화 양식 | 대화가 끊어졌을 때 | 어제의 적을내일의 파트너로 만들기 | 시간이라는 현상 | 외부의 약속장소 | 어디로 가서 누가 음식을 주문하는가? | 와인을 모른다고 두려워 말라 |막간의 대화 | 악수 | 시간 엄수는 왕의 덕목이다 | 지원: 자기 자신 팔기 | 영역에서의 금기 | 대중 앞에서 | TV 카메라 앞에 설 때


맺음말 





성공의 보디랭귀지

성공의 보디랭귀지


몸의 기능과 자세 그리고 몸짓언어

서 있는 지점과 위치 변경

서서 존재한다는 것은 정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서 있는 지점과 들어서는 지점을 알고, 이 지점에서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음을 안다는 뜻이다. 이 부분에서는 내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면,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당연히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계속 발을 내딛는 것을 전진이라고 하는 것이다. 서 있는 지점을 떠나는 일은 결코 개인의 특성을 잃는 것이 아니며, 삶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내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기기 때문에 발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취한 새로운 지점이 나에게 새로운 선택을 하게 하기 때문이며, 새로운 가능성과 관점도 오직 새로운 지점에서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새로운 위치에 두는 것도 지점을 가지는 것이고, 이 지점을 가짐으로써 나는 다시 바닥과 접촉하는 것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새로운 지점마다 다시 그 자리에 완전히 존재해야 하며, 새로운 지점을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오직 우리가 목표로 해서 도달하는 그 자리, 우리가 취하는 그 지점에서만이 우리는 완전히 존재한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배우려 하고 나를 신뢰하는 이유는 내가 내 위치에 확고히 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움직이기 때문이다. 삶은 변화이며, 변화는 곧 움직임이다.


그러나 서둘러 뛰어가는 사람은 곧 예전 자리를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봤자 출발 지점에서 그다지 멀리 가지도 못한다. 그 사람이 마침내 새로운 곳에 도달했다 해도, 그는 도착하자마자 계속 달릴 것이다. 그러면 그는 뭔가 실패했을 때 어떤 실수를 했는지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그가 실수한 곳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거나 그 근처조차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왜 그토록 전력 질주를 해야만 했는가! 그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만약 그가 불과 몇 분만 서 있었어도 그 순간이 방향을 지시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래 서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인식하기 위한 결정적인 몇 분이었을 것이다. 방향성과 신뢰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결코 서는 법이 없고 오직 달리고 또 달리기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곧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움직이는 사람은 최대한 확실한 지점에서 다른 확실한 지점으로 발을 내디뎌야 한다. 비록 움직일 때마다 위험 요소가 깔려 있어도 그것을 거부하지 말고 감수하도록 하자. 내가 현재 확실한 자리를 떠나는 이유는 그 자리가 더 이상 성공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새로운 지평이 열릴 때까지 이렇게 움직이면서 우선은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드는, 어느 정도 확실하다 싶은 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바닥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야 발을 내딛는 장소에 실제 존재하는 것이다. 서 있는 곳을 아는 것에서도 이같이 느껴야 한다. 이 순간이 되면 에너지도 몸속에서 막힘없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이때 갑자기 몸을 휙 내밀거나 멈춰서 에너지의 흐름을 막지 말아야 에너지는 손과 팔까지 흐를 수 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지, 어디서 하는지, 왜 하는지를 분명히 알면 에너지도 안정적으로 흐름으로써 내 행위는 모두 성공하게 된다. 내가 이용하는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흐르면 나는 긴장하지 않는다. 긴장은 뭔가 막히거나 밀릴 때 오는 것이다.


나 자신도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휘말리면 조절력을 잃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그보다 나는 안정된 걸음으로 목표를 향해 다가가고 싶으며, 전진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나는 성공으로 향해 나아간다. 신뢰성을 발산한다. 활기에 넘치고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어낸다. 한편 자신의 위치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불만족한 기분을 주변으로 뿜어낸다. 반대로 내가 주변에 만족하면 곧 저 멀리 새로운 지점으로 시선을 향하고 새로이 확장하는 일에 잠재력을 쏟아 붓는다.


축전지 역할을 하는 흉곽

육체의 에너지는 바닥에서 배 근육과 등 근육을 지나 가슴으로 전이된다. 가슴은 에너지 보관함인 셈이다. 가슴에서 폐는 산소를 채우는데, 산소는 우리가 행동과 사고를 하기 위해 물리적 산화 과정에 에너지를 쓸 때 필요한 연료이다.


가슴이 잘 발달하지 않고 움푹 들어간 것은 허약의 징표로 보인다. 사람들은 흉곽이 뒤로 쑥 들어가 있으면 척추를 눌러 유연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실 한 가지 태도밖에 취할 수 없다. 즉 자세를 곧게 함으로써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반면, 그저 꼿꼿이 서 있을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형태의 바리케이드도 주변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므로 이런 자세로 서 있는 사람을 대하는 토론 상대자는 이런 의구심이 든다. 이 사람은 왜 반응하지 않을까? 그냥 관찰만 하고 있지 않은가. 내 충고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걸까? 이렇게 되면 공동 기업 안에서 에너지와 열정의 흐름이 저지된다.


출발점은 최소한의 에너지 소모로 최대한의 움직임을 제공하는 기점이며, 출발점이 있어야 모든 방향으로 최대한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경영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때 빠르게 반응하면서도 억지로 힘을 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한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안으로 쑥 들어간 약한 가슴은 산소를 적게 받아들인다. 그 말은 호흡이 가볍다는 뜻이다. 산소를 적게 가지면 추진 재료가 모자라므로 멀리 나아갈 수 없다. 또한 쉽게 피곤해지므로 행동 범위가 줄어든다. 그렇다고 그 반대로 공기를 잔뜩 집어넣어 부풀린 가슴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슴을 쭉 펴면 우리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또한 움츠리지 않고 가슴을 똑바로 펴고 서면 어깨가 제 위치에 옴으로써 양팔이 수동적으로 아래로 늘어지지 않게 된다. 반면 움츠러든 가슴은 양팔이 아래로 축 늘어진 자세가 되어 수동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흉곽과 팔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또한 바닥에서부터 다리를 지나 골반을 통과해 등 근육과 가슴으로 올라가는 에너지 흐름에 속해 있다. 배와 등 근육은 골반에서 흉곽으로의 에너지 전이 과정을 안정적으로 해주는데, 그 이치는 마치 책상이 책상 다리로 바닥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이때 곧은 자세를 해야 에너지 흐름이 끊기지 않다는 점에 주의하자. 창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공기가 원활하게 흐르도록 하자! 이것이 바로 가슴을 쭉 편 자세의 진정한 의미다.


반면 가슴이 잔뜩 부풀어 칠면조처럼 뒤로 젖혀지면 우리는 그 자세를 으스대는 행동으로 본다. 가슴을 그렇게 부풀린 자세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더 흥미롭다. 우리의 육체는 부풀린 가슴 볼륨을 정체 상태로 반응한다. 즉 지나친 가슴 볼륨으로 인해 상체와 하체의 결합이 막힘으로써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순환하는 에너지 교환이 막히고 만다. 그러면 우리가 바닥에서 끌어올리는 에너지가 원활한 통로를 찾지 못해 흐름이 끊어지고 이에 따라 안정성도 잃게 되는 것이다.


똑바로 선 자세에서는 어떤 움직임이든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바로 선 자세에서 머리, 목, 상체를 완전히 자유롭고 무리 없이 양쪽으로 돌릴 수 있으면서도 육체의 다른 부분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에 반해 가슴이 움츠러들거나 앞으로 툭 튀어나오거나 뒤로 들어간 흉곽은 어떤 방향으로 회전해도 모두 척추에 부담을 주므로 몸통 부분만 겨우 움직일 뿐이다. 이렇게 움직임이 제한되기 때문에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많은 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개방적인 태도가 신뢰를 만든다

우리는 주위 환경과의 관계를 긍정적인 관계, 즉 끊임없이 선택하는 조화로운 상하 교환의 관계로 만들 수 있다. 이럴 때 내가 외부를 향해 열린 자세를 취해야만 내 열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 어떤 때는 뒤로 얼마간 물러선 채 여지를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팔 하나만 벌리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절반만의 개방 자세도 나는 나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내가 공격을 당한다면 자신을 완전히 개방하면 해결책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편 변명은 항상 자기 책임을 회피하며 다른 사람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든 해결책을 요구한다.


대신 어떤 사람의 자신의 문제로 나를 찾아오면, 그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누구의 잘못이냐는 것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처럼 나 자신을 열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뭔가 움직여 나아가기 위해 서로를 개방하려는 것이다. 대화 도중 우리는 어떤 때는 오른팔을 움직이고, 다른 때는 왼팔을 움직이다 때로는 양팔을 모두 사용한다. 우선 큰 몸짓은 놔두고 손과 팔을 이용한 작은 몸짓만으로도 우리가 그저 말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변화하고 행동하려는 의지를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이와 달리 두 손을 탁자 밑으로 내리거나 꼼짝도 않고 있으면 우리가 하는 말은 단지 의도를 설명하는 데 그친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 말이 실천으로  이어지리라는 신뢰감을 받지 못한다.


우리가 지나치게 냉랭한 태도를 취하면 즉시 일종의 세력 유희 관계가 형성된다. 지나치게 뒤로 뺀 자세는 너는 나에게 아무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쿨하게 있는 거다. 만일 네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으면 더 강하게 나와야 할 거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이 세력 유희는 절대적인 고유의 규칙이 있어 누가 더 강하고, 누가 더 약한가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철저히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력도 존재한다. 힘의 세기를 잰다는 뜻은 상호 교환이 아니라 우리 중 어떤 사람이 승리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누가 이끌고, 누가 따를 것인가까지 판가름 내어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보다 더 강하다라고 과시하는 일을 중요시하기보다는 누가 누구에게 적절한 시간과 방법을 통해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점을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면 내가 거부하는 자세는 자동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수단을 강화하라는 강요로 작용한다. 이런 거부 자세는 경영의 의미도 아닐뿐더러 파트너 간 상호 교환의 의미는 더 더욱 아니다.


경청을 위한 최상의 자세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자세 대신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면 주의 깊게 경청하기에 가장 좋은 자세가 된다. 이렇게 하면 목선이 편안해지면서 목의 동맥이 노출되어 난 너를 믿어!라는 뜻이 된다. 이제 나는 주의 깊게 듣는다. 이 자세에서 몸의 긴장을 풀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부드러운 감정은 나약함과는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부드러움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물의 힘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부드러움도 매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경청은 다른 사람에게 내가 그를 향해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울어진다는 애착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애착이라는 뜻은 바로 누구에겐가 기울어진다는 것이 아닌가? 애착은 움직임 속에서 표현되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양질의 정보를 충분히 받을 수 있으므로 결정하기가 더 쉬워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 능통하고 세분화된 지식을 많이 갖출수록 결정하는 일이 분명해지고 예기치 않은 돌발 사건에도 잘 대처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들은 후에 우리가 대답을 하려고 할 때에는 다시 고개와 시선과 몸을 똑바로 세워 자세를 가다듬은 다음, 확고한 결정을 내리면 된다. 이와 달리 계속 고개를 기울인 채 대답하는 태도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상태가 아니라 계속 대화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자세다. 이제 우리는 마음을 열어둔 채 서로의 의견을 옹호하며 애착과 관심을 나눌 것인가, 또는 고개와 시선을 똑바로 하고 결론을 이끌어낼 것인가를 구별할 줄 안다. 이런 식으로 대화의 목적을 정확히 규정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화를 진행한다는 의지를 암시한다.


영역에 대한 느낌

성공은 사람들에게 일정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영역 관계가 생겨난다. 성공한 사람은 어떤 공간에 발을 들일 때 결코 문턱에 서 있지 않으며, 그곳이 다른 사람의 영역이어도 태연하게 발을 들인다. 그리고 그는 굳이 그 영역의 주인 앞에까지 걸어 들어가서 인사할 필요가 없는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반면 주인 앞에까지 가거나 문턱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의 불확실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거나 그가 큰 공간에 들어서는 것이 익숙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영역에 발을 디딜 용기가 없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나타낸다. 성공한 사람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 위험을 감수하는 일에 익숙해서 그럴 용기가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머뭇거리지 말고 곧장 방을 가로질러 가서, 주인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면 힘차게 악수하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정중한 인사말을 나누도록 하자.


나는 집에서 손님이나 사업상의 파트너를 맞이할 때 어떤 경우에도 책상에 앉은 채로 사람을 맞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책상은 직책과 때로는 권력의 영역까지 암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책상은 실무자가 직책을 가진 사람임을 증명하는 기능을 한다. 책상을 통해 방어벽을 치지 않은 개방된 만남은 파트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개방된 통치권 안에서 맞이합니다. 나는 당신을 개인으로서 맞이하며, 내 공간과 영역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내 회사와 조직이나 심지어 집에서조차 위계질서를 인지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책상에 착 달라붙어 있을 필요가 없다.


방문자를 직접 맞이하여 대화하기에 좋은 장소로 안내할 때 이때 어떤 성격의 대화를 개진할 것이냐에 따라 회담용 탁자인지 사무실 책상인지 앉을 곳을 정하는 것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파트너를 똑바로 쳐다보아야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불확실한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방문자는 우리가 자신을 보고 있으며, 자기를 환영하고, 자신을 위해 완전히 헌신한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손을 붙잡고 그것도 꽤나 오래 악수를 한다. 이때 팔을 쭉 뻗지 못하고 팔이 몸에 바짝 붙어 있으면 불안감과 함께 방어한다는 인상을 준다. 악수할 때 눈은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고, 순의 누르는 힘은 상대방이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되 너무 꽉 쥐어서는 안 된다. 힘이 지나치게 들어간 손은 과도한 권력 의식을 나타낸다. 우리가 숙녀를 맞이할 때에는 반지를 끼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반지를 낀 손을 너무 꽉 쥐면 아파서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대화가 끊어졌을 때

대화는 유연해야 한다. 방해 요소에 부딪쳐도 계속 흐르기 위해 다른 길을 찾는 물처럼 자연스레 흘러야 한다. 대화하는 도중에 저항이 생겼다고 해서 당장 대화를 끝내버리면 안 된다. 대화가 끊어졌다고 경직된 채로 있지 말고 다른 선택을 하라. 우리는 결코 나쁜 방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가 여러 제안과 선택에 대해 열린 자세를 유지하는 한 모든 난관을 통과할 수 있으며, 심지어 현재 상황보다 나은 성공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시간을 질질 끄는 회의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때때로 미끄러지기 시작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즉 골반이 의자 앞으로 나오고 가슴은 움츠리고 반쯤 누운 자세로 듣는다. 이런 자세에서는 몸이 더 이상 반응할 수 없으며 상대방이 수동적인 저항을 하게 만든다. 내가 이런 자세를 취하면 상대방의 활발한 반응은 기대할 수 없으며, 대화가 다른 길로 빠질 가능성이 생긴다. 게다가 무관심한 태도로 앉아 있는 자세는 토론을 더 지루하고 늘어지게 할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이 경직되어 있으면 파트너는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럴 때 통하는 마법의 주문이 바로 몸 풀기이다. 몸이 축 처지도록 놔두지 말고 똑바로 세우자. 상대방에게 몸의 긴장을 좀 풀 수 있도록 잠깐 휴식을 취하자고 제안하고 잠깐 일어나든지 해서 새로운 자세를 취한다. 여러 명이 모인 자리라면 자리를 바꾸는 것도 좋다.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새로운 역동성을 부여하여 숨을 돌리게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도록 한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바꾸어 내 옆에 있는 사람이나 벽에 걸린 그림 등을 바라보자. 이런 모든 행위가 신선한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짬짬이 휴식을 취하여 앉은 위치를 바꾸는 것이 권태에 빠지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 식으로 일종의 놀이 문화를 만드는 일도 아주 간단하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고 유치해 보일지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깨어나고 창조적인 상태가 되어 수동성 속에 빠지는 위험이 줄었음을 알게 된다.


영역에서의 금기

우리가 원하는 대로 분위기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인의 탁자는 의례의 장소이다. 손님이 그것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서류를 탁자 위에 놓아도 되는지 정중하게 물어보는 것은 세련된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때에 따라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주인에게 상징적인 행동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 행동은 양측에게 만족을 준다. 손님은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채 남의 책상을 점거하는 정복자의 역할을 하지 않아 주인을 기쁘게 하며, 주인은 손님에게 자신의 영토를 기꺼이 내줌으로써 손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이때 기본적인 사항은 방문자가 지나치게 넓지도 너무 좁지도 않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문자는 가지고 온 서류 가방을 불안한 듯 꽉 움켜쥐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는 그 공간에서 자신이 큰 영역에서 움직이는 것이 익숙하고 능력이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을 작게 해서 이 공간에 들어선 것이 실례를 한다는 듯한 인상을 주면 불리하다.


또한 시선도 목표에만 고정해 좁게 해서는 안 되며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주인의 영역에 있는 사물에 관심이 끌린다고 말하면 주인은 기분이 좋아진다. 막간의 대화는 서로 간의 공통분모를 만들어 대화를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여성이 방문객을 맞이할 때에는 어떤 경우에도 주인인 여성이 방문자에게 음료수 같은 것을 직접 내놓아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비서나 동료를 시켜야 한다. 그녀가 직접 그렇게 하면 그 행위는 자동적으로 주부나 어머니의 이미지로 투사된다.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각인된 이런 이미지로 인해 그녀가 분명히 보여주어야 할 경영자의 이미지를 덮어 버린다. 어머니라는 고착된 이미지는 적절하지 않은 순간에 문득 튀어나올 정도로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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