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심리학

   
마이클 니콜스(역자: 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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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뿌리는사람
   
12000
2006�� 03��



>■ 책 소개
이 책은 진정한 대화를 가능케 하는동력으로서 귀담아 듣기를 바라보며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듣기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관계를 지키는 힘"이라는 관점에서 귀 기울이기를 바라본후, 이러한 전제 하에서 남녀 관계, 가족 관계, 동료 관계, 친구 관계를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풀어간다. 때문에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해법을 찾고싶어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상대의 마음을 열고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있을만한 스펙트럼과 깊이를 가진 책이다.


■ 저자 마이클 니콜스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의 철학과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가족치료 전문가이자 명강사로 인정받고 있다. 심리학자답게 깊이 있는 분석과 따뜻한 말솜씨로 정확한해법을 내려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오프라 윈프리쇼를 비롯한 다수의 유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큰 인기를누리고 있다. 지금까지 10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 역자 정지현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역서로는 『2배 빨리 2배 많이 야무지게 책읽기』『내게 도움이 되었던 모든 것들』『호감도 관리』『어른이 되기 위해 알아야할 100가지』『레모네이드 판매대를 넘어서』『진정한 나를 깨우는 자기발전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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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여는 글 


Chapter 1 내가 뭐라고 했는지 듣긴 했어요? : 잘 듣는 일이 왜 중요할까
Chapter 2 들어줘서 고마워요 : 귀담아 들을 때 인간관계가 풀린다 
Chapter 3 그 사람은 왜 내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걸까? : 대화가 안 되는 이유 
Chapter 4 내가 말할 차례는 언제? : 말하고 싶어도 참고 들으려는 노력부터
Chapter 5 당신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군요 : 추측은 편견을 만든다 
Chapter 6 왜 항상 과민반응을 보이는거죠? : 감정적인 반응은 방어적 태도를 만든다 
Chapter 7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말해요, 난 잘 듣고 있으니까 : 말을가로막지 않고 잘 들어주기 
Chapter 8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지 정말 몰랐어요 : 공감은 마음을 여는 것에서 시작된다
Chapter 9 이것 때문에 감정이 상했던 거로군 : 감정적인 반응을 누그러뜨리는 방법 
Chapter 10 여보, 우리사이에 대화가 너무 없어진 것 같지 않아요? : 부부 사이를 치유하는 힘 
Chapter 11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가족 - 따뜻한 공감대를 키우는 방법 
Chapter 12 자네라면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 친구와 동료의 말에 귀 기울이기


닫는 글 





대화의 심리학

대화의 심리학


"내가 뭐라고 했는지 듣긴 했어요?" : 잘 듣는 일이 왜 중요할까

인간의 행동 동기 가운데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만큼 강렬한 것도 없다. 내 말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상대가 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생각과 감정을 알아주며, 무엇보다 내 말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상대가 내 말을 듣고 이해해 주기 바라는 마음은, 그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속마음을 털어놓음으로써 거리감을 극복하려 하지만 이해를 구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바람직한 대화의 필수 요소는 감정이입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즉, 감정이입은 통찰력과 노력이 모두 필요한 인간관계 기술인 셈이다. 서로를 이해하며 감정이입하게 되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끈끈한 결속력이 생긴다. 듣는 사람이 이해와 관심을 보여주면 자신의 생각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감정이입하여 듣기는 인간관계를 변화시켜준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강렬한 감정을 상대에게 정확히 전달할 때,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와 안도를 느낄 수 있다.


잘 들어주게 되면 상대와의 관계가 돈독해질 뿐 아니라 자의식이 높아질 수도 있다. 듣고 이해해 주는 사람에게는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자연히 더 밝은 눈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자의식이 높아진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대화를 통해 인생이라는 책을 함께 저술해 나가는 것이다.


무시당할 때 받는 상처가 크다

날마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자신에게 귀 기울여주기를 바라지만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마저 우리를 실망시키곤 한다. 부모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아이는 부모가 무관심하다고 불평한다. 이해와 믿음의 상징인 친구 사이에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진지한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 가정에서조차 이해심과 친밀감을 구하기 힘들고, 특히 밖에서는 다른 사람의 호의나 관심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우리는 귀 기울일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지만, 일상적이라 그런지 그것이 미처 문제인지 깨닫지 못한다. 말하는 사람 역시 이해받을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렇다고 내 말이 무시당했을 때 받는 상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잘 들어준다는 것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상대를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상대가 하는 말에 마음을 움직이는 것, 몸짓이나 표정으로 귀 기울이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렇듯 듣기는 우리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도 기본적인 행위라서 그런지 평소 이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지내게 된다. 따라서 잘 들어주기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 욕구인지도 잘 모른다.


증인이 되어주는 것의 중요성

대화할 때 듣는 일은 정보를 얻기 위한 것과 상대가 감정을 표현할 때 증인이 되어주기 위한 것,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상대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사람은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 상대의 틀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그를 이해하고 지지해 준다. 이 행위는 자아 확인, 즉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만의 고독한 틀 속에 갇힌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 불안할 때, 자신감이 커지면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반응을 원하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불안정하다는 뜻이므로, 자신이 강해지면 다른 사람의 관심이 필요 없어질 것이며 실망할 일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믿음과는 달리, 우리는 완성된 인격체가 되기 힘들다. 다른 생명체처럼 인간도 강하게 성장하고 힘과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양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대화야말로 가치관에 양분이 되어준다.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상대가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해해 주면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해진다. 통증이나 가려움이 말끔하게 사라진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지만, 상대가 귀 기울여주지 않아 실망할 때가 많다. 그만큼 듣기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때로 모든 생각을 밖으로 표현해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고, 무관심과 침묵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고통을 없애기 위해 말을 해야만 할 때도 있다.


귀담아 듣는 일은 상대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상대가 내 말을 잘 들어주었으면 하는 기대 욕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움직이는 강력한 자극제 역할을 한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물음은 내가 이해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과 상통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귀 기울여주는 사람에게 관심을 쏟고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속마음을 털어놓는 순간만큼은 상대를 이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해받고 싶을 때, 대화 상대는 자기-대상(self-objects)이라는 개념으로, 나를 위해 있어주고, 반응을 보여주는 대상을 의미한다. 우리는 대화 상대를 자기-대상으로 이용한다. 물론 항상 자기 이야기만 하느라 상대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자기-대상들도 있다. 듣는 척만 할 뿐 정작 마음은 딴 곳에 두고 있으며 그저 자신의 문제나 자랑거리를 말할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들이다.


어느 누구도 뻔뻔스레 나르시시즘에 빠져,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다면 더욱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다. 나르시시즘이라는 개념은 자존심과 대화시 심리적 과정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여기에 이 개념을 소개하는 것은,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바란다는 것이 전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일단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게 되면, 우리의 나르시시즘은 적당한 평형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들어주는 상대가 우리 스스로를 완전하게 느끼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공감과 이해가 부족하면 왠지 모를 불안에 시달리고 점점 더 외로워진다. 그리고 그 감정을 견디기 힘들어 TV나 소설,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흥미로운 삶에 탐닉해 현실에서 도망치려 한다. 물론 휴식을 취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볼 만한 프로그램도 없는데 무작정 TV를 틀어놓는다거나, 운전중에 듣지도 않는 라디오를 껐을 때 불안해진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소극적 방법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의 지름길이라도 생각한다. 그러나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기진맥진한 이유는 고된 업무 이외에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대상이 주는 반응과 관심, 이해라는 중요한 요소가 우리의 삶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군요" : 추측은 편견을 만든다

말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가 편견을 만든다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신용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람을 피우거나 알코올 중독증이 있는 아버지가 엄한 규칙대로 아이들을 다루려고 한다면 과연 아이들이 말을 들으려 할까? 지위 역시 신용에 큰 영향을 끼친다. 실직한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신용이 낮을 수밖에 없다. 가족들이 실직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스스로 실직했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끼고 방어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변해 가족에게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용은 여러분이 특별한 배경과 높은 지위를 가진 존재로 보이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영향 받곤 한다. 평소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동료들은 그가 아무리 중요한 말을 해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메시지가 적절한지, 분명한지도 말하는 사람의 신용에 영향을 준다. 상대가 귀 기울여주기만 바라고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나, 자기 중심으로 화제를 바꿀 틈만 노리는 사람에게도 귀 기울이기가 힘들다. 한 번 그러한 인상을 준 사람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된다. 물론 말하는 사람의 신용이 낮더라도 평소 가까운 사이라면 듣는 척은 해준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친척 어른에게 예의상 귀 기울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 예의고 뭐고 피하고만 싶어져 결국 갈등이 생기거나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


기대는 과민반응을 일으킨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통해 내면에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에 대한 이미지를 남긴다. 성인이 된 후에는 다른 사람의 실제 모습뿐 아니라 내면에 새겨진 모습에도 반응하게 된다. 대상관계이론은 다른 사람의 내면적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는 우리의 경험과 기대로 생긴다. 여기서 대상은 상대 자체가 아니라 내 행동의 목표가 되는 상대의 이미지를 말한다.


대상관계이론을 찬찬히 살펴보면 인간의 앞선 기대와 민감성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부분적으로 인간은 과거의 경험으로 기대감을 형성하며,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권위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성은 나중에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남편이 되겠다고 결심한다는 것이다.


현재 관계와 과거 관계는 순환하면서 서로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내면으로부터 기대를 부여한다. 기대 때문에 상황을 선택하고 기대에 따라 상황을 해석한다. 이처럼 기억 속에 살아있는 과거는 생각 이상으로 현재에 큰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은 가족에게 받은 영향에 따라 상처를 받았을 때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내성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를 통해 가족 관계가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상관계이론에서 공통으로 제시되는 개념이 있다. 신경증 환자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겁에 질린 어린 아이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극적인 기대감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 신경과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과민증에 걸리는 이유

때때로 표현한 말과 의도한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상대가 말한 것과 우리가 들은 것은 더 크게 차이날 수 있다. 상대의 반응을 보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떠올려보면 도움이 된다. 상대의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하면 그가 어릴 때 부모와 어떤 관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족의 영향 때문에 생긴 과민증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슈퍼맨은 유성이 가까이 오면 초능력을 전부 잃어버린다. 부모는 수많은 성인 남녀에게 그러한 존재이다. 부모와 마주할 때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것은 성인이나 청소년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부모 때문에 화가 날 때 대항하는 법을 완전히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우리 삶에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분할된 자아

우리는 자신의 단점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특히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하면 풀이 죽어 자신을 비난하고 만다. "난 남의 말을 너무 안 들어." "나나 너무 이기적이야." "난 너무 상대를 억압하려고 해." 하지만 그렇게 비관할 필요는 없다. 잘 들어주지 않는 자아는 전체 자아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서 자아가 여러 개의 하위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떤 부분 때문에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아내가 불평할 때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남편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내면에는 엄마에게 야단맞는 어린아이가 들어 있다. 아내가 불평할 때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그 아이는 엄마 말을 듣기 싫어하고 엄마가 비판할 때마다 억압받는 느낌이 들어 몹시 불만이다. 남편은 아내가 엄마가 아님을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의 일부인 어린아이 같은 자아를 진정시켜야만 한다. 아내가 불평하는 것은 억압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로움을 공유하고 싶어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듣는 것을 두려워하는 존재는 진정한 내가 아니라 나의 일부인 어린아이처럼 불안정한 자아인 것이다.


우리의 하위인성 가운데 몇몇은 고통스럽고 지루한 논쟁을 자극하는 내면의 목소리와 싸울 때 명백히 드러난다. 특히 경쟁을 부추기는 목소리는 우리가 어려운 결정에 맞닥뜨렸거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그럴 때에는 침착성을 유지해야만 그 목소리를 하나로 모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음에 내면에서 분란이 일어나거든 양쪽의 생각과 감정이 상황 때문에 일시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마 내면의 목소리들은 나름대로 할 말이 아주 많을 것이다.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똑같은 싸움을 계속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보통은 양쪽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지나치게 발달한 인성을 대변하는 목소리에만 귀 기울인다.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자신이 이기적이거나 미성숙한 존재라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 상대의 말을 수용할 수 없게 만드는 자아의 일부를 찾으면 된다. 귀 기울이지 않는 이유는 내면에 숨겨진 감정이 이해하고 관심 갖는 행위를 막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습관을 없애면 상대를 향해 연민과 호기심, 친밀감이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형편없는 대화 상대라고 자신을 책망하지 말고 어떤 자아가 듣는 것을 방해하는지 찾아 그동안 자신을 옭아맨 그물에서 벗어나면 상대에게 진지하게 귀 기울일 수 있다.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지 정말 몰랐어요" : 공감은 마음을 여는 것에서 시작된다

말하는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화 내용을 미리 예상하는 행동은 귀 기울여 듣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미리 추측하면 진지하게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화 방식을 추측하는 습관이 있다.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몸에 밴 습성이기 때문에 자각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추측이 확고할 때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 경험한 일을 깊이 이해할 수 없다. 반대로 마음을 활짝 열면 자신의 추측이 빗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말하는 사람을 더 깊이,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감정이입은 대화의 필수 요소이다. 상대의 말과 표현 방식을 수용해야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또한 개방적으로 생각해야만 다른 사람의 감수성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추측하지 않고 마음을 활짝 열고 귀 기울이면 경청하기가 더 쉬워진다. 하지만 아무런 추측도 하지 않는 것을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게다가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면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말하는 사람의 욕구와 대화하는 방식을 예상하면 메시지의 숨은 의미까지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추측은 유익할까, 아니면 듣기에 방해가 될까?


변하지 않는 가정을 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기대한다면 대화를 잘할 수 없다. 그러한 추측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게 하고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만든다. 반변 대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는 추측을 한다면 대화할 때 유익할 것이다. 서로의 대화 방식에 민감해지면 마음을 활짝 연 상태에서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사려 깊게 행동할 수 있다.


이해하는 분위기 만들기

가족과 대화할 때 우리는 흔히 대화에는 노력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력 없는 대화는 무관심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기회를 사라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더 소중하고 유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반응하면서 들어야 한다. 반응하면서 듣기란 상대의 말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는 여러분이 제대로 이해한다면 큰 기쁨과 고마움을 느낄 테고 그렇지 않다면 한 번 더 설명해 줄 것이다.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반응하면서 듣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추측을 넘어 공감으로 나아가기

정신분석학자 윌프레드 비온은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려면 기억과 욕망, 판단을 제쳐두어야 한다"고 했다. 즉 진정으로 들어주는 것은 자아를 초월하는 일이다.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면 거리감을 극복할 수 있다. 그 거리를 이어주는 다리가 바로 감정이입이다. 듣는 사람은 감정이입을 통해 말하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탐구하고 헤아려 그가 경험한 일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결과 말하는 사람이 더 정확한 눈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공감은 우리들 사이의 틈을 메워주는 다리 역할을 하지만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진정한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추측은 이해에 해롭다. 자신이 말할 차례만 기다리면 잘 들어줄 수 없고 말하는 사람의 경험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다. 자제하려고 노력해야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감정이입을 하려면 먼저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맞아", "그렇구나" 같은 말로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듣는 사람은 공감을 통해 말하는 사람이 표현하지 않은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다. 서로 감정을 부정하면 결코 거리감을 극복할 수 없으며, 더 멀어지기만 하므로 상대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감정이입을 하려면 반드시 두 가지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째는 수용과 개방이다. 이는 영화 마니아가 배우의 연기와 스토리에 흠뻑 취하는 것과 같다. 둘째는 생각해야 할 때와 느껴야 할 때는 선택하는 일이다. 공감할 때와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잘 살펴야 한다.


상대가 말하고 있을 때의 기대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서로의 대화 방식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상대의 억양과 뉘앙스를 보면 설명이 상세한지 요약되어 있는지, 말의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 혹은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나를 알 수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잘 들어주지 않게 된다. 그저 대화 자체가 유일한 문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대화하는 방식이 다르면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다. 간접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직접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은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히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상대가 대화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라는 말은 낱낱이 분석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도시인의 바쁘고 정신없는 대화에 익숙한 사람도 조금만 인내심을 발휘하면 상대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화하는 방식이 다르면 오해가 생기기 쉽다.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생각할수록 오해의 실타래를 풀기가 더 힘들어진다.


민감성이란 상대의 감정에 반응하는 것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에 대한 지식을 활용, 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개성을 존중해 주는 것이 민감성이다. 민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상대의 말에 관심을 보인다.

■상대의 감정을 헤아린다.

■먼저 귀 기울인 후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조언을 하지 않고 잠자코 듣는다.

■즉시 동의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상대의 감정을 유심히 살필 후 질문한다.

■대화 전후에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냐는 질문을 한다.

■혼자 있고 싶은 욕구를 존중해 준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를 존중해 준다.

■상대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되, 정확히 표현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자기반영적 관찰

관용과 배려를 베풀면 세심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자기반영적인 의식이 더 중요하다. 귀 기울이기 힘들 때나 상대가 제대로 듣지 않을 때에는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성격만 가지고는 상대의 행동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직선적 사고, 즉 자신이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상대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생각에서 벗어나 대화가 순환하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면 귀 기울일 수 있다. 또 상대에 대한 존중은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 바뀔 수 있다. 생각하고 느낄 권리를 존중하는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귀 기울이는가? 자신에게 귀 기울인다는 것은 스스로의 감정을 존중하고 자신의 대화 방식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무척 힘들고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대화 습관을 파악하는 것보다 자신의 대화 습관을 파악하기가 더 힘들다. 하지만 자신의 방식과 습관을 이해하면 다른 사람과 더 바람직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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