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해야 통한다

   
김효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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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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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0��



>■ 책 소개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훌륭한 연설가의 말도한낱 시끄러운 소음이지만, 마음이 통하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통한다. 한국사람들은 마음이 통하는 사람에게는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 그저마음이 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물건을 사기도 하고, 정성껏 도와주기도 하고, 마음이 통한다고 느끼는 정치인에게는 몰표가 쏠리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통해야 통한다". 이 책은 통하기 위해 알아야 할 5가지 심리학적키워드(우리, 정의, 체면, 의례성, 부자유친)를 제시하며, 다양한 사례들과 신문기사 등을 통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서심리학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간다. 


사실 지금까지 소개된 설득에 관한 이론들이 대부분 미국 등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 개발된것으로, 그럴듯하지만 정작 우리 현실에는 맞지 않곤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수많은 한국 심리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연구들을 토대로집필되었기 때문에 한국인을 설득하는데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저자 김효창
MPM(Mind Power Maker)대표이며, 심리학박사이다. SBS ??호기심천국?? MBC ??실험쇼 진짜 진짜?? KBS "N세대 특강", "생방송 세상의 아침", "주부세상을 말하자" 등에 출연해서 열정 넘치는 목소리로 심리학을 전파했다. SHL, 서울지하철공사, 통일부 등에서 심리학 강의를 하고 있으며,삼성그룹 신입사원 교육과 (주)신원 기업진단을 실시했다. 현재 한국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서울경찰청 범죄심리 자문교수로 일하고 있다. 쓴 책으로『인간행동과 심리학』『행동과학을 위한 기초통계』『심리학원론』, 옮긴 책으로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의 토론을 담은 『핵전쟁, 우리의 미래는사라지는가』등이 있으며, 『전유성의 구라삼국지』중에서 『구라심리학』을 저술했다. 


 차례
책머리에 


1부 우리 법칙 
1장 우리법칙 vs 남남의 법칙
2장 우리끼리를 강조하라 
3장 우리 법칙을 선점하라 
4장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5장 우리는 마음으로맺어진다 
6장 우리 법칙이 생긴 배경 
7장 우리 법칙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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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정의 법칙 
1장 한국인은 정빼면 시체다 
2장 함께고생하라 
3장 일일이 따지는 것은 금물 
4장 정은 주고받는 것이다 
5장 떼쓰기 설득법 
6장 미운정도 정이다
7장 일부러 한을 건드리는 고수들 
8장 정의 법칙 벗어나기 


&>3부 체면의 법칙 
1장 체면은 신념보다 강하다 
2장우쭐대면 다친다 
3장 체면은 그때그때 다르다 
4장 지위가 높으면 인격도 높다? 
5장 인사고과에 적용되는 체면 
6장체면도 정에는 약하다 
7장 체면 벗어나기 


&>4부 의례성의 법칙 
1장 한국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 
2장눈치껏 행동하라 
3장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핑계는 대라 
4장 거절의 기술 
5장 일 없으면 먼저 퇴근해 
6장 의례성벗어나기 


&>5부 부자유친의 법칙 
1장 불쌍한 엄마, 불쌍한 내 새끼
2장 안쓰러운 감정을 이용한다 
3장 아버지는 모범을 보여라 
4장 엄마의 법칙 
5장 부자유친으로 아이들을 설득하라
6장 부자유친에서 벗어나기 


&>에필로그 : 한국광고의 설득법칙
참고문헌





통해야 통한다


우리 법칙

우리 법칙을 선점하라

한국인의 입에는 "우리"라는 말이 배어있다. 우리엄마, 우리아빠, 우리집, 우리학교, 우리마을, 우리나라 등 도대체 "우리"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한국인이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나"를 쓰는 것이 적합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나를 강조하는 사람을 개인주의적인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개인주의적인 사람은 이기주의적인 사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한국인은 인간관계의 궁극적 목표를 우리의식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여긴다. 한국인에게 "우리"는 미국인의 "We"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인의 우리는 일심동체, 즉 "하나됨"을 의미한다. 우리편과 같이 있으면 남이 무시하지 못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외로울 때 의지할 수 있다. 우리편의 반대쪽에는 항상 남의 편이 있다.

  

이때 우리편에 대한 애착이 강할수록 남의 편은 무시되거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편을 대할 때는 한없이 착한 사람이 되지만, 남의 편을 대할 때는 쉽게 나쁜 사람이 되거나, 무관심해진다. 우리 의식은 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즉 우리 의식은 정을 느낄 때 생겨나며, 정을 느끼면 상대가 우리로 경험된다.


한국인의 인간관계 목표 "우리"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 팀에 합류한 적이 있었다. 의례적으로 첫 만남에서 간단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통성명을 한 후에 서로의 고향에 대해 물었다. 출신지역이 달라 더 이상의 조사는 생략됐다.

  

몇 차례의 만남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호칭은 자연스럽게 선생님으로 통일됐다. 그러던 어느 날, 팀원 중 한 명이 술자리에서 나에게 출신대학을 물었다. 대답을 들은 그는 "동문이네요."라며 반가워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상대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선배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는 "편하게 말 놓아도 되죠"라는 선전포고(?)와 함께 말을 놓았다. 이제 상대와 나는 선배님과 후배라는 새로운 호칭을 사용하게 됐다.

  

공통분모를 찾는 데 실패함으로써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다가 동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호칭이 바뀜은 물론, 상대는 나에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특권을 누리게 됐다. 동문이라는 사실은 한국인에게 암묵적으로 우리 법칙의 성립을 의미한다. 이제 더 이상 남남이 아닌 우리가 됐으니 연장자가 아랫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연장자는 아랫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갖지 않으며, 아랫사람 또한 연장자의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정의 법칙

한국인은 정 빼면 시체다

용준(용하)은 그동안 절약해서 모은 돈을 그토록 갖고 싶던 고급 캠코더를 샀다. 그런데, 그다지 친하지 않은 직장동료 지우가 캠코더를 빌려달라고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한국인과 서양인은 어떤 차이를 보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별도의 시나리오 없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각자 원하는 방법으로 상황에 대처하도록 했다. 실험1인 한국인이, 실험2는 외국인이 피실험자인 용준(용하)의 역할을 수행한 결과이다.


실험1

지 우 : 혹시 캠코더 있으세요?

용 준 : 예, 있기는 있는데요. 쓸 일 있으세요?

지 우 : 예, 정말 너무 죄송한데요. 혹시 안 쓰시면 이번 주말에 제가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용 준 : 에... 그게... 저도 이번 주말에 쓸 것 같은데...

지 우 : 아, 그래요?

용 준 : 미안해서 어떡하죠?

지 우 : 아니에요. 우리 동아리에서 여행을 가는데 제가 캠코더를 빌리기로 했거든요. 근데 주위에 캠코더를 가진 분이 없어서요.

용 준 : 아, 저기 사진관에 가면 빌려주는데......

지 우 : 아, 그래요?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럼 그렇게 해봐야겠네요.

용 준 : 못 빌려줘서 정말 미안해요.

지 우 : 아니에요.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실험2

지 우 : 혹시 캠코더 있으세요?

용 하 : 아... 네.

지 우 : 있어요? 잘 됐다. 저기 너무 죄송한데요. 혹시 안 쓰시면 이번 주말에 제가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용 하 : 어... 왜요?

지 우 : 이번에 동아리 친구들하고 여행을 가는데 제가 캠코더를 빌리기로 했거든요, 근데 주위에 캠코더를 가진 분이 없어서요.

용 하 : 네, 어... 근데 제 캠코더는 산지 얼마 안 됐거든요.

지 우 : 아... 그래요?

용 하 : 네, 아직 몇 번 쓰지도 않았어요.

지 우 : 그렇구나.

용 하 : 빌려주기는 힘들 것 같아요.

지 우 : 되게 좋은 거 사셨나보다.

용 하 : 미안해요.

지 우 : 아니에요.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했나 봐요.


우리는 실험2의 용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가끔 만나게 된다. 그들은 숙명적으로 뒤에서 수군거림을 들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용하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매정한 사람 즉, 정이 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함께 하기를 꺼려한다. 대부분 한국인들은 용하와 같은 속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용준처럼 행동한다. 반면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용하처럼 반응한다. 이런 반응의 차이는 정에 있다. 한국인들은 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정이 없는 사람은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으며, 심지어 왕따를 시키기도 한다. 상대에게 매정한 사람이 아닌 인정이 많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대인관계에서 매우 정요하다. 이처럼 정은 한국인들의 대인관계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개념이다.

  

한국에 살기 위해서는 눈치를 봐야하고, 핑계도 적절히 대야하고, 선의의 거짓말도 좀 필요하고, 남 체면도 세워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정한 사람, 무정한 사람"이라는 꼬리를 달게 된다. 이렇듯 한국인의 마음 중심에는 정이 있다.


조건문과 가정문을 조심하라

정으로 무장하고 다가오는 상대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의 법칙을 엄격히 적용하면 된다. 상대가 나를 진짜 정 관계로 생각하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정은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또 나를 배려해주고,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 정이라는 것을 상기해보자. 알아서 배려해주고, 알아서 도와주는 것이 정의 법칙의 핵심이다. 진정 나를 정으로 대한다면 나에게 엄청난 손실을 유발할 수도 있는 일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지적 구두쇠이다. 즉, 어떤 문제가 닥쳤을 경우, 대부분 자신의 입장만을 고려할 뿐, 자신의 행동으로 상대가 어떤 상황에 처할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내가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라. 그리고 난 후 상대의 반응을 살펴보면 된다. 내가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데 무리한 부탁을 계속 한다면 그 사람은 일방적으로 정의 법칙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사적인 행동을 줄여라

정이 갑자기 생길 때 즉각적으로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 반사적으로 하는 행동만 줄여도 정의 법칙으로 인한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즉각적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생겨서 하게 되는 행동이 걸인을 도와주는 행동이다.

  

길거리에서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걸인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걸인은 파리나 뉴욕번화가에도 많다. 그러나 파리나 뉴욕번화가의 걸인과 한국 걸인들이 행인으로부터 자선의 손길을 유도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파리나 뉴욕의 걸인들은 행인들에게 뭔가를 선사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자선의 손길을 기다린다. 즉, 철저하게 거래적이다. 상대가 원하던 원하지 않건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상대에게 먼저 준다. 그것은 노래가 될 수도, 악기 연주가 될 수도 있으며, 한 장의 그림이나 판토마임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상대에게 정당한 대가로 몇 푼의 돈을 요구한다. 물론 자선을 베풀 것 인지와 얼마나 큰 자선을 베풀 것 인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상대의 판단에 맡겨진다.

  

한국 걸인들은 철저하게 상대의 정에 호소한다. 시중에서 300원하는 껌을 500원이나 1,000원 달라고 하거나, 그냥 종이쪽지 하나를 무릎 위에 놔두고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상대에게 보임으로서 도움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걸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더불어 산다는 관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연말연시에 어려운 사람을 돕자며 구호함을 들고 자선을 모아 용돈으로 사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가 되기도 하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협박하여 앵벌이를 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런 행위가 가능한 것은 정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한국인의 정 행위 때문이다. 즉각적인 동정보다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나도 아직 지하철에서 걸인들의 유인물을 쉽게 외면하지 못한다. 정에 약한 것을 어쩌랴. 이도 저도 안 되면 나처럼 큰돈 안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체면의 법칙

체면은 그때그때 다르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

이 말에서는 높은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처지라도 신분을 낮추는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은근히 강조된다. 즉, 체면행동은 내세울만한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 해당되는 사회적 행동이다. 사회적 행동에는 격식이 있으며, 그러한 격식은 밖으로 내보여야 한다.

 

체면에 맞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을 "체면 차린다"라고 말한다. 이것을 체면치레라고 하는데,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서도 체면치레를 하는 이유는 그 행동이 사회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체면은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중요하다

체면은 일반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 남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 종교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 등에게 중요하다. 이들은 스스로 체면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들의 체면행동에 대한 사회적 기대도 높다. 이런 사람일수록 언행을 조심하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신뢰성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기대된다.

  

만일 물에 빠져도 개헤엄 치면 안 될 정도로 높은 사람이 체면치레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취임 후에도 체면치레를 하지 않아 지식인층으로부터 비판을 들어왔다. 다음은 소설가 이문열씨의 이야기이다.


요즘 우리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 표현방식을 본받거나 의미내용을 믿고 따르기는커녕 걱정스러움을 넘어 딱하다는 느낌까지 들 때가 있다. 그 가장 가까운 예가 며칠 전 유럽 순방길에 했다는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우려다.


거기서 먼저 걱정스러운 것은 대통령의 말로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의 각박함이다. 그 길이 극단적인 비유는 똑같은 방식의 응수를 부르고, 결과적으로 그런 응수는 대통령의 권위에 흠집을 낼 우려가 있다. … 하지만 대통령의 말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거기서 파생되는 말의 급격한 전략이다. 곧 대통령의 말을 본보기로 삼는 정부, 여당 각료나 요인들의 말이 그러하다.

-「중앙일보」 2005년 4월 20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학 연구에서 "체면을 지켜야 할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장관"이라는 응답이 대학총장이나 국회의원, 판검사나 목사, 신부, 스님보다도 높게 나타났다. 대통령에게는 더 높은 체면치레행동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는 "대통령의 외교활동"은 체면을 지키는 것이 가장 적합한 상황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의례성의 법칙

거절의 기술

■ 눈치 없는 사람은 두 번 힘들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의례적 표현이다. 어린 시절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생활하다 성인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김교수가 겪었던 에피소드는 의례적 표현에 대한 문화적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교수는 식사 약속을 위해 연구실을 나서다 동료교수를 만났다.

  

동료교수 : 식사는 하셨어요?

김 교 수 : (수첩을 꺼내들며 스케줄을 확인한다) 오늘은 제가 식사 약속이 있어서 곤란하구요. 모레 오후쯤에는 괜찮은데, 그때 식사를 하는 것은 어떨까요?

동료교수 : …….

  

동료교수의 질문은 지극히 의례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김교수가 실제로 식사를 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식사 무렵에 만나 건네는 "식사는 하셨어요"의 질문은 "Good afternoon"과 같은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어디 가니"라고 묻는 것도 의례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물음에는 "응, 볼 일이 있어서"라는 의례적인 답변이 적합하다.


의례적인 표현에 대한 해석이 어려운 이유는 동일한 표현이라도 때에 따라 의례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의례적인 질문이 아닌데 의례적인 질문으로 해석하고 행동하면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국에서 눈치 없는 사람들은 두 번 힘들어한다. 처음에는 의례적인 표현 자체에 힘들어하고, 두 번째는 의례적인 표현이 때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힘들어한다. 의례적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상대방과의 친밀도와 상황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주관적이다 보니 오해와 곡해가 생기기 쉬우며, 간혹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사회에서는 상대가 권하면 의례 거절을 한다. 체면치레다. 상대의 권유에 넙죽 응하는 것은 체면이 손상되기 때문에 한두 번 거절 한 후, 마지못해 응하는 것이다. 권유하는 입장에서도 이 같은 "거절의 기술"을 알기 때문에 싫다는 상대에게 여러 차례 권하는 것이다. 만일 한번 권유에 상대가 거절했다고 더 이상 권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분명 야박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부자유친의 법칙

부자유친으로 아이들을 설득하라

■ 유혹을 이기게 하는 부자유친의 힘

나는 1989년 여름, 군에 입대했다. 6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내 뜻과는 달리 전투경찰로 차출되어 강원도 산골훈련소를 떠나 다시 서울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당시는 민주화열망이 강했던 시기로 거의 매일 시위가 벌어졌다.

  

지금도 가끔 군대내 구타문제가 불거지지만, 당시에는 구타가 아주 공공연했다. 화염병과 돌을 피하고, 각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군기를 잡는가는 명목으로 구타가 자행된 것이다. 자대배치를 받은 첫날부터 이어진 각종 구타행위로 몸과 마음은 지쳐가기 시작했다.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나름대로(?) 시위에 참가해 목소리를 드높이다가 내 뜻과는 무관하게 시위를 진압해야 하는 처지도 서글픈데, 하루에도 수차례씩 이어지는 구타는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이대로는 군대생활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고 여긴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부대를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도 했다.

  

그때 나를 지탱해준 것은 다름 아닌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셨다. 그 누구보다도 날 믿고,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모님이 못난 자식의 행동을 보고 얼마나 실망이 크실 것인가를 생각하면, 차마 탈영을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한국자녀들은 부모자녀관계를 하나로 지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부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생각한다. 우리나라 자녀들은 부모에 대해 "미안하다, 송구스럽다, 뵐 낯이 없다"등과 같은 느낌을 많이 갖으며,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잘해주지도 못하고, 안쓰럽다, 부모 잘못 만나서"와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자녀가 부모를 가깝게 여기거나, 고마워할수록 갈등상황에서 자녀가 자기 주장보다 부모 뜻에 따르겠다는 경향도 더 많이 나타난다. 이는 한국 가정에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영향이 어떤 물리적 힘이나 보상에 의존하기보다는 사랑, 감사, 미안함, 존경 등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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