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자기계발 작가이자 강사인 심리학자 웨인 W. 다이어가 1976년에 출간해전세계적으로 1500만 부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린 이 책은 행복한 사람이야말로 진정 똑똑한 사람이라며, 철저히 행복추구형 인간이 될 것을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책에서 말하는 "행복한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에고이스트가 아닌 자신을 배려할 줄 알기에 타인도 배려할 줄 알고, 스스로를 사랑하기에 타인도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행복한이기주의자"로 가는 길을 자신을 사랑하기,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기 등 총 10가지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안내한다.
■ 저자 웨인 W. 다이어
1940년 미국출생 심리학박사. 뉴욕 세인트존스 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심리학 교수로, 심리 임상 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마슬로우의 "자기실현"에 관한 심리학을한층 발전시켜 "개인"의 생활방식을 중시하는 의식혁명을 제창, 개인주의의 기수로서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있다. 지은 책으로 『행복한이기주의자』『The Sky"s the Limit』『Gift from Eykis』『Your Erroneous Zones』등이있다.
■ 역자 오현정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동대학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책, 영화나 TV 프로그램, 잡지 등을 번역하는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있다.
■ 차례
들어가며 ―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하여
제1장 내 인생은 내가 지휘한다
제2장 첫 번째 자기사랑 ― 먼저 자신을 사랑한다
제3장 두 번째 자기사랑 ―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제4장 세 번째 자기사랑 ― 자신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를 뗀다
제5장 네 번째 자기사랑 ― 자책도 걱정도 없다
제6장 다섯 번째 자기사랑 ― 미지의 세계를 즐긴다
제7장 여섯 번째자기사랑 ― 의무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제8장 일곱 번째 자기사랑 ― 정의의 덫을 피한다
제9장 여덟 번째 자기사랑 ― 결코 뒤로미루지 않는다
제10장 아홉 번째 자기사랑 ―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제11장 열 번째 자기사랑 ― 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제12장 행복한 이기주의자
옮긴이의 말 ― 인생은 단 한 번뿐
행복한 이기주의자
내 인생은 내가 지휘한다
행복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면 먼저 매우 그릇된 통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가장 잘못된 통념은 똑똑함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똑똑함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다시 말해 일정 수준으로 읽고 쓰고 계산하는 능력, 추상적인 등식을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는 능력으로 저울질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똑똑함의 참된 척도는 하루하루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제대로 즐겁게 사느냐다. 스스로를 자신의 중심에 세우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사랑, 황홀, 기쁨뿐 아니라 화, 두려움, 증오도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믿으면서 그런 감정들을 제어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다.
감정은 선택이다
감정은 단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정서가 아니다. 감정은 선택 의지가 들어가 있는 반응이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으면 제 무덤을 스스로 파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택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주위의 상황이나 사람들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불행하다면 그 이유는 주위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이다.
행복을 선택하라
행복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그 증거는 어린아이들에게서 꾸밈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과거에 꼭꼭 씹어 소화시킨 의무와 책임을 다시 토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통제하는 것은 내가 지금 또 이렇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생각을 바꿔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내게 그럴 의지가 있느냐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 때문에, 특히 삶에서 극히 사소한 비중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기에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을 바꾸거나 아니면 빠져나오기 위한 전략을 짜라. 그저 안달복달하지는 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라. 그러면 결국 일이 잘 안 풀릴 때 화를 내지 않는 멋진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무기력한 사람은 아닐까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 있다. 제대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정적인 감정을 판별해주는 낱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무기력이다. 우리는 분노, 적개심, 수치 등의 감정들이 때로는 느낄 만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감정에 매달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감정들에 의해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될 때다. 무기력은 어떠한 행동에도 나서고 싶지 않은 소극성에서부터 우유부단함과 망설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무기력은 화려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거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기 매몰 상태를 일으키게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아무리 증상이 경미한 무기력이라 해도 그 무기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현재와 밀착해 현재의 순간들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효율적인 생활의 핵심이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는 다른 순간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현재를 깎아내리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에 대비하라, 뒷일을 먼저 생각하라, 쾌락주의자가 되지 말라, 내일을 생각하라, 은퇴를 준비하라 등. 현재를 회피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병폐다. 우리는 끝도 없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도록 강요당한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현재의 즐거움뿐 아니라 영원히 행복을 피해다니는 태도다.
첫 번째 자기사랑 ― 먼저 자신을 사랑한다
사랑이란
사랑이란 말의 정의는 그 정의를 내리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 그렇지만 하나로 정의하자면 이러하다. 사랑이란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선택한 일이라면 무엇이나,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들건 안 들건 허용할 줄 아는 능력과 의지다. 어떻게 하면 기대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지 않고 상대방이 택한 것을 허락해줄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자기 사랑을 통해서다. 스스로를 중요하고 소중하며 아름답다고 느끼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게 만들면서 내 가치를 강조할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 사랑을 하는 일, 사랑을 주고받는 모든 일은 사랑을 듬뿍 받는 자아와 함께 출발한다.
내 자아상은 내가 가꾼다
우리가 가장 먼저 깨뜨려야 할 그릇된 통념은 우리가 단 하나의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는 이분법적 분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우리의 자아상은 한두 개가 아니다. 또한 시시각각 변한다. 우리는 수많은 자아상을 갖고 있으며 모든 행동을 통해 내가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언제나 내 뒤를 따라다니는 친숙한 그림자이자 내 행복이나 나름의 뛰어난 부문에 대한 가치 평가가 나 자신과 한데 묶여서는 안 된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인간이다. 이것이 나에게 필요한 모든 조건이다. 나의 가치는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
자아상은 무엇보다 신체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신체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싶다면 그 이유를 세세히 파헤쳐봐야 한다. 우리는 현대사회가 아름다움에 대해 내린 정의에 넘어간 것이다. 자신의 신체를 좋아하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의 신체가 자신에게 소중하고 매력적이라고 스스로에게 선언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비교나 평가는 거들떠보지도 말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결정한다.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태도는 이제 과거지사로 묻어버려라. 자기 수용이란 자신의 모든 신체적 조건을 좋아한다는 의미다. 신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예를 들어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봐주기 힘들다는 식의 문화적 강요를 떨쳐낸다는 뜻이다. 뽐내며 돌아다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 안에서 내밀한 기쁨을 찾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의미다.
불평은 허탈감만 안겨줄 뿐이다
자기 사랑이란 자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만이 없다는 뜻이다. 불평은 자기 신뢰가 없는 사람들의 피난처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탐탁찮은 구석들에 대해 말하다 보면 그 불만은 계속된다. 진정 자신을 사랑한다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사람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또는 다른 사람에게서 좋지 않은 점을 발견할 때 푸념하기보다는 그것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두 번째 자기사랑 ―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일은 필요조건이 아닌 그저 희망사항이 되어야 한다. 인정을 구하는 일이 나를 망치는 나쁜 습관, 즉 자기 실현의 오류지대가 되는 경우는 그것이 희망사항이 아닌 필요조건이 되었을 때이다. 인정을 원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서 정말로 인정을 받게 되면 더없이 기쁘다. 그러나 인정을 반드시 필요로 할 때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온몸에서 기력이 빠져나가면서 무너져내린다.
눈치 보게 하는 부모님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있는 어린아이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어른들, 예를 들어 부모님의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줄로 알고 있다. 어른들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라고 독려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처음부터 많은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 아이가 성장한 후에도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자기불신이라는 노이로제의 씨앗이 이미 어렸을 적부터 뿌려진 탓이다.
학교는 붕어빵 공장
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동조를 구하는 사고와 행위를 드러내놓고 주입시키려는 제도에 입문하는 일이다. 학교에서는 하는 일마다 허락을 구해야 하며 자신의 판단에 의존해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학교는 자립적 사고의 조짐을 보이는 학생들을 키우는 데에는 재주가 없다. 인정을 받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치는 학교가 숱하다. 지금도 여전히 학생이 선생님의 눈에 들어야 신상에 이롭다. 교사의 칭찬을 받고 하라는 대로 행동하고 주어진 교과과정에 따라 공부하면 성공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학생은 다른 사람의 인정 없이는 배겨나지 못하는 인간형이 된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려고만 들면 거의 매번 좌절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자기사랑 ― 자신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를 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하는가? 두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여태껏 살아온 삶을 뒤돌아봐야 한다.
나는 어떻다 꼬리표의 뿌리
우리의 꼬리표 이력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첫째 유형은 다른 사람들이 붙여준 꼬리표로, 어렸을 적 붙여진 채 지금까지 지니게 된 경우다. 둘째 유형은 귀찮거나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의무에서 도망가기 위해 자기 스스로 붙인 꼬리표다. 단연 첫째 꼬리표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형적인 10가지 꼬리표 유형
나는 수학, 작문, 독해, 언어 등에 약해.
나는 요리, 스포츠, 뜨개질, 그림, 연기 등 몇몇 기술 분야에 무척 서툴러.
나는 내성적이고 성미가 까다롭고 신경질적이고 겁이 많아.
나는 운동 신경이 없고 몸이 둔해.
나는 매력이 없고 못생겼고 덩치가 크고 평범해, 너무 키가 작아.
나는 정리를 안 하는 편이야, 지나치게 깔끔을 떨어, 칠칠치 못해.
나는 건망증이 있고 부주의하고 무책임하고 무관심해.
나는 이탈리아인이야, 유대인이야, 아일랜드인이야, 흑인이야, 중국인이야.
나는 제멋대로야, 참견을 잘해, 권위주의적이야.
나는 늙었어, 중년이야, 지쳤어.
꼬리표 붙이기의 악순환
당신이 나는 어떻다 꼬리표를 불러내면서 과거에 매달린 덕분에 얻을 수 있는 보상은 회피라는 한 마디로 깔끔하게 요약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활동을 피하고 싶거나 성격상의 결함을 덮어버리고 싶을 때면 으레 꼬리표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사실 그런 꼬리표를 많이 사용하다 보면 정말로 그렇다고 믿게 되고, 그 순간 앞으로도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할 운명이 되는 셈이다. 그런 꼬리표들을 사용하면 쓰라린 노력도, 변화의 시도에 따르는 위험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처음 그런 꼬리표들을 만들어낸 행동들을 계속 반복한다.
① 나는 내성적이야 → ② 저 매력적인 사람들을 봐 → ③ 한번 다가가 볼까? → ④ 안 돼! 나는 안 돼! → ⑤ 왜 안 돼? → ⑥ 왜냐하면 → ① 다시 반복.
타고난 본성 같은 것은 없다. 그 말 자체는 사람들을 멋대로 분류하고 구실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내가 간직한 꼬리표들은 모두 지금까지는 그랬지라는 새 꼬리표로 바꿀 수 있다.
제5장 네 번째 자기사랑 ― 자책도 걱정도 없다
일생을 통해 도움이 안 되는 감정이 두 가지 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자책감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섣부른 걱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는 걱정과 자책감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자책감은 가장 많은 감정 에너지를 소모한다. 왜일까? 자책감이란 문자 그대로 이미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현재 옴짝달싹 못하는 감정이며, 아무리 자책해봤자 과거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단순한 뉘우침은 자책감이 아니다. 자책감은 과거의 일 때문에 현재 무기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자책감의 원천
자책감이 한 인간의 감성 기질을 구성하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아주 어린 나이에 습득되어 성장한 뒤에도 여전히 그 어린 시절의 반응이 남게 되는 경우다. 둘째, 성인이 스스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규율을 어긴 뒤 자초하는 경우다.
걱정은 더 큰 걱정을 부른다
<걱정 진단표>
자녀, 건강, 죽음, 직장,
경제, 심장발작, 노후대책, 배우자의 행복,
내가 지금 일을 잘하고 있는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을까,
물가, 사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 체중,
금전, 자동차 고장, 세금,
부모의 죽음, 날씨, 나이듦,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기,
배우자가 전화하지 않는 것, 자동차를 타고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가기.
다섯 번째 자기사랑 ― 미지의 세계를 즐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지의 것과 위험을 동일시한다. 확실한 것만을 상대하고,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을 항상 잘 아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도 되는 양 행동한다.
오늘이 어제의 재탕은 아닌가
자신의 즉흥성을 면밀히 살펴보라. 나는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 수 있는가? 아니, 몸에 밴 행동에 고집스럽게 매달리는 앞뒤 꽉꽉 막힌 사람은 아닌가? 즉흥성이란 재미있을 것 같아 어떤 일을 순간적 기분에 휩쓸려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면 실제 해보니까 별 재미는 없었지만 그 시도 자체는 꽤나 재미있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무책임하다거나 무모하다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지의 것을 발견하면서 너무도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마당에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도 완벽주의자?
대체 왜 무슨 일이든 안간힘을 쓰고 잘해야 하는가? 누군가가 점수를 매기기라도 하는가? 윈스턴 처칠은 완벽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귀를 남겼다. 이 글은 성공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가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기를 못 펴게 하는 일인지 지적하고 있다. "완벽이 아니면 모두 소용없다"라는 격언을 한 단어로 줄이면 무기력이다."
"최선을 다하라"는 완벽주의적인 말은 우리를 잔뜩 움츠러들게 한다. 완벽주의는 다르게 말하면 발이 묶인 상태다. 자신에게 완벽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면 앞으로는 도무지 어떤 것도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은 인간에게 적용하는 개념이 아니기에 그걸 기준으로 하면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진다. 신은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여섯 번째 자기사랑 ― 의무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내부 지향적인 사람 vs 외부 지향적인 사람
현대사회에서는 인성 편향이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더 기울어진 사람이 전체의 75%에 달한다. 바꿔 말하면 당신도 외적 범주에 드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자신을 통제하는 중심이 외부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본디 외부 지향적인 사람이란 현재의 기분에 대한 자기 외부의 사람이나 상황에 묻는 사람이다. 자기 마음의 심지를 내부에 두는 사람은 감정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어깨 위에 당당히 올려놓는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서 그런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의무와 전통은 대부분 외부 세력, 즉 외부의 사람이나 상황이 부과하는 것이다. 의무라는 무거운 짐에 눌린 채 다른 사람들이 규정한 관습을 깨뜨릴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외부의 자루 속에 완전히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이다.
흑백논리의 덫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이 무언가 다른 결과, 또는 한층 더 효과적이거나 합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봄직하다. 하지만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는 순간 나는 항상 옳게 행동해야 하며 사람이나 상황이 올바르지 않으면 나는 불행해질 것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옳다, 그르다 등의 표현은 하나같이 이런저런 의무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런 의무들은 우리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 특히 다른 사람이 내세우고 있는 의무와 상치될 경우에는 더더욱.
일곱 번째 자기사랑 ― 정의의 덫을 피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의를 찾는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개념이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늘 불공평하다. 허나 행복을 택하고 불행을 택하는 것은 정의의 부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정의를 주장하는 것이 오류지대가 되는 유일한 경우는, 정의가 보이지 않는데도 부질없이 요구하며 부정적인 감정으로 자신을 몰아세울 때다. 이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정의 부재라는 현실에서 비롯되는 자기통제 불능 상태일 뿐이다.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부정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다. 그러나 부당함으로 울분을 터뜨리는 쪽을 택했다면 그것은 다른 오류지대 행위들과 똑같이 히스테릭한 반응이다.
부질없는 외침 불공평해!
정의의 요구는 인간관계에도 침투해 다른 사람들과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막는다. "불공평해!"라는 외침은 상대방에게 내지르는 보편적인 자기 파괴적 한탄이다. 무언가를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려면 스스로를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 비교해야 한다. 이때 생각은 이런 식으로 흐른다. "다들 하는데 나라고 왜 못 해?" "네가 나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은 공평하지 않아!" "나는 못하게 됐는데 왜 너는 되는 거지?"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이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탕으로 나에게 무엇이 좋은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 감정의 지휘자는 바로 그들이 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이 했다는 이유로 화를 낸다면 그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지휘봉을 남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내가 더 불리하네 아무리 징징거려도 긍정적인 자기 변화는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저울질하는 일을 그만두고 상대가 아닌 나에게 초점을 맞추면 내 앞을 턱턱 가로막으며 나를 열받게 하던 불평등들이 모두 사라진다.
여덟 번째 자기사랑 ― 결코 뒤로 미루지 않는다
뒤로 미루는 것은 오늘을 잡아먹는 행위다
누구나 하고픈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픈 일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음속으로는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절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나중에 하겠노라 결심하는 것은 즐거운 바꿔치기다. 지금 실행하는 대신 결심을 하는 것이다. 지금 바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과 타협하는 것은 아니라도 자신을 속일 수 있으니까.
뒤로 미루는 행위는 편리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혹시라도 잘하지 못할까봐, 혹은 싫어하게 될까봐 걱정이야. 그러니까 나중에 할 거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 그 일을 할 생각이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속 편해."
인생은 결코 따분하지 않지만 따분함을 굳이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분함이라는 것은 현재를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분함은 선택이다. 다시 말해 내가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지가 있다면 내 삶에서 충분히 몰아낼 수 있는 하나의 습관인 것이다. 뒤로 미루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가로 현재를 내놓는 행위다.
아홉 번째 자기사랑 ―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정신적 자립이란 온갖 의무관계, 그리고 타인의 지시를 받아서 행동하는 일에서 온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런 의무 관계가 없었더라면 아무래도 하지 않았을 일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의미다. 둥지를 떠나는 일이 특히 힘든 이유는 부모, 자녀, 권위적 인물, 애인 등 각별한 인간관계에서 기대되는 바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사회의 가르침 때문이다.
자녀는 소유물이 아니다
의무나 책임감이 따르지 않는 바람직한 부모 자식 관계를 살펴보면 부모가 자녀를 친구처럼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가 식탁에서 케첩을 흘렸을 때 "넌 도대체 왜 그 모양이니, 칠칠치 못하게"라고 말하지 않는다. 친구가 뭔가를 흘렸을 때 보이는 반응이 나타난다. "괜찮아?" 소유물 다루듯 함부로 대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부모는 의존보다 자립을 키우며 자립하고자 하는 정상적인 욕구에 울고불고 난리를 부리지 않는다.
의존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 자기가 대접받고 싶은 방식대로 상대방을 길들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그 방법을 터득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처분대로 해주십사 하며 길들이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듯이, 원치 않는 서러운 대접을 받는 곳이 직장이건 가정이건 식당이건 버스이건 간에 우리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내게 좀더 잘해주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대체 어떻게 처신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걸까?"라고 자문해보라. 초점을 자신에게 맞추고 상대방의 반응을 바꾸도록 시도해보라.
자립을 실천하기 위한 전략
자립이란 효율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 또는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결혼의 대표적인 특징 역시 최소한의 타협과 최적의 자율, 그리고 자기 신뢰다. 의존적인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정말로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을 슬쩍 떠보면, 놀랍게도 그들이 존경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자신을 위해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이 있다. 당신이 자립하면, 특히 당신을 종속적으로 가둬두려고 무진 애를 쓰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큰 인정을 받게 될 것이란 점이다.
열 번째 자기사랑 ― 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화라는 것은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경험하는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반응을 가리킨다. 화는 격분, 적개심, 폭력 행사, 말 없이 노려보기 등의 형태가 있다. 화는 버릇이자 선택이다. 실망을 느낄 때 나타내는 몸에 밴 반응으로, 결국 후회하게 될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화를 이기려면
화는 제거할 수 있다. 그러려면 생각을 대폭 뒤집어야 한다. 그리고 한번에 그 순간의 화만 제거할 수 있다. 화를 부추기는 사람이나 상황에 마주쳤을 때, 자신이 스스로에게 무슨 말을 되뇌고 있는지 깨닫고 예전과는 다른 감정과 훨씬 더 생산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라.
행복한 이기주의자
오류지대 행위를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들은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무슨 일을 해도 즐거워하며, 불평하거나 이미 지난 일에 매달리며 허송세월하지 않는다. 그들은 열의에 차 있으며, 삶에서 최선의 것을 구하려 애쓴다. 그들은 나들이, 영화, 책, 스포츠, 콘서트, 도시, 농장, 동물, 산 등 거의 모든 것을 즐긴다. 그들은 삶에 애정을 갖고 있다. 불평하거나 하소연하는 일, 심지어는 기운이 없이 한숨 짓는 일도 없다. 그들은 매우 현재지향적이다. 그들은 만일의 경우에는 대비하지만 뒤로 미루는 사람은 아니며, 자신의 행동이 사회에서 질책을 받을 경우에도 자신을 책망하면서 주눅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의 행복을 긁어모으며, 미래가 현재가 되면 그 행복도 쓸어담는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립적이다. 그들은 개인생활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자칫 그들에게서 냉대 받았다거나 퇴짜 맞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들은 때로는 혼자 있기 좋아하며 자신의 개인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줬으면 하는 터무니없는 바람도 품지 않는다. 삶에 대한 태도는 진중하지만 삶에 대해 웃음을 보낼 줄 알며 모든 것을 즐겁게 바라본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평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없다. 그들의 호기심은 왕성하다. 그들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다. 이 행복한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기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툭하면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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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순간 한순간을 최대한 알차게 살라. 그러면 우리는 주변인이 아닌 행복한 이기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류지대에서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지금 당장 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