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부자학

   
김송본
ǻ
스마트비즈니스
   
16000
2006�� 02��



>■ 책 소개
조선 실학자의 안목, 장돌뱅이 지혜,개성상인의 상혼으로 쓴 ‘한국식 부자학!’ 


부는 물질이며 에너지의 축적이다. 그러나 가장 귀중한 부는 수천 년의 역사를 걸으며 쌓아온 인간의 ‘정신’이며 ‘지식’이다. 성장은 정신과 지식이 빠지고 위축될 때 한계의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의 정신을가져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한국인이다. 우리의 삶이 고단할수록 실학자들의 안목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으며 개성상인의 상혼(商魂)과 장돌뱅이의지혜(智慧)를 되살려야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가르침을 구할 옛것은 있다. 부자 되는 방법을 멀리서찾지 말자. 그 옛날 꿋꿋한 절개와 악착같은 근성으로 큰 부를 일궈냈던 우리네 조상들이 있지 않은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깊은 가르침을이들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김송본
한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월간「사회평론」 기자를 거쳐 1993년 국내 최초 팩스주간신문 「다이렉트 세일즈」를 창간했다. 그후 정일컨설팅 대표를 역임하면서 창업 강연과 인터뷰등의 활동을 했다. 현재 인터빌하우스 대표이다. 저서로는 『여자가 장사로 성공하는 비결』『한국인의 상술』『직장인의 성공다이어리』(공저) 등이있다. 최근에는 『한국 최고의 가게』를 감수했으며 한경닷컴에서 ‘한국인의 상인정신’을 주제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 우리의 재치와 지혜에서 찾은 한국식부자학 
들어가며∥한국 부자학의 기저(基底), 개성상인 


제1부∥한국인의 상혼(商魂) 
한국인과 돈
부자가 되어야 할 이유 
끗발과 배포가 장사의 도(道) 
부자가 되려면 먼저 업(業)을 잡아라 
힘든 고개가 있기에장사가 잘되지 
개성 부자 이야기 - 그대로 돌려줘라 
만 냥이면 만 냥 규모의 일을 생각한다 
돈에도 격이 있다 
명궁의화살은 과녁을 빗나가지 않는다 
태산을 넘어야 평지를 본다 
힘든 때일수록 ‘몸’이 밑천 
‘사람’이 재산 
물건은 싸게사되 사람은 비싸게 사라 
‘돈’을 아끼는 게 최고의 공격법 
시간을 거느려야 돈을 거느리게 된다 
천하에 돈벌이만큼 떳떳한일은 없소 
재물은 3대를 못 가도 정신은 남아야 한다 
장사꾼의 지조(志操) 
거래는 의식(儀式)이며 문화다 
개성상인의부자 근성 
개성상인의 부자 교육 
“네 나이 열일곱이다.” 
개성상인의 대물림 전통 
대기업만 일류라고? 
세계속의 한국 상인 

제2부∥한국인의 상리(商理) 
토정비결은 보셨습니까? - 운(運)을 여는 방법
토정 이지함의 부자 체질 감별법 
부자가 될 자질 
부자의 출발 
천하의 돈줄을 잡는 세 가지 기회 
부자의 인재감별법 
낭비는 하늘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 
장돌뱅이의 돈 버는 방식 
아홉은 모자라고 열은 넘친다 
기업은 할수록 빚만는다? 
돈은 왜 벌기보다 쓰기가 어려울까? 
경영의 으뜸은 만전불패(萬全不敗)로다 
경쟁자가 많아서 돈을 못 번다?
몹쓸 장사치가 되어서야 
장사에도 체면이 있는 법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힘이 세다 
가족을 철저하게 동원하라
부자가 되려면 이런 공부를 하시오 
세상에 장사 아닌 게 어디 있나 
농사는 천운(天運), 장사는 인운(人運) 
얻는데는 십 년, 잃는 데는 하루인 게 ‘신용’ 
발아래 돌도 모으면 돈이 된다 
이익이 없으면 왜 장사를 하겠소 
밑천 없는장사가 어디 있는가 


제3부∥한국인의 상술(商術) 
“돈 좀벌었는가?” 
부자가 되려면 ‘셈’을 잘해야 
개성상인의 돈거래 방식 
개성상인을 통해본 한국인의 상술 
지혜로 돈을 버는비책 
흥하면 갈라서고 망하면 원수? 
황학동에서 배우는 장사 노하우 
최남이 말하는 돈 버는 노하우 
알부자 한시은의지독한 재테크 
가격 상술 - 에누리할 바에야 떨이를 해라 
하늘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날씨마케팅 
장사의 최고봉 -단골마케팅 
단골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서울 뒷골목의 찬거리 장수에게서 배우는 단골마케팅 
이익은 원가에 있다 
주막에서배우는 외식사업 노하우 
말품으로 돈을 번다 
억척어멈에게 배우는 파워 데몬스트레이션 
원효에게 배우는 입소문마케팅
유기장수 이승훈으로부터 장사를 배우다 
고무신 장수에게 배우는 소비 트렌드 
떠돌이 약장수로부터 장사를 배우다 
예수도써먹은 ‘자기를 낮추어 돈을 버는’ 상술 
백 가지 상술 가운데 으뜸은? 
5천 년은 족히 넘을 돈 버는비결





한국인의 상혼(商魂)?상리(商理)?상술(商術)!

한국인의 부자학


제1부∥한국인의 상혼(商魂)

만 냥이면 만 냥 규모의 일을 생각한다

소위 부의 축적이란 것도 어느 단계에 이르면 실용의 의미, 즉 수입으로 대신할 수 없는 다른 이익이 생기게 된다. 큰 사업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현시욕, 명예 등이다. 이러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해서 부자를 욕하고 미워하는 것은, 자신이 훌륭한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고 유명한 화가를 바보 취급하는 것과 같다.


가난은 수치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되면 발상도 빈약하기 쉽다. 예컨대 한 달에 열 냥을 버는 사람의 생각은 두 푼짜리 탕반을 한 그릇 먹거나, 무명 한 필을 떠다 저고리를 해 입거나, 목돈을 만들어 금강산 유람이라도 한번 해보는 게 꿈일 것이다. 그러나 만 냥의 자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만 냥 규모의 일을 생각하고 만 냥에 버금가는 고민을 하게 된다. 산의 정상에서 천하를 두루 살피면 초입에 주저앉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온갖 풍경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부자가 되면 그만큼 행동반경도 넓어지고 생각하는 크기도 커진다. 중턱까지면 충분하겠지 생각하지 말고 정상까지 가고 볼 일이다. 이제 답은 명확해진다. 우리 한번 부자가 되어보는 것이다.


명궁의 화살은 과녁을 빗나가지 않는다

어느 백발백중의 신기를 자랑하는 명궁의 습사習射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혁심(革心, 과녁의 한 가운데)을 꿰는 법을 익혔다. 먼저 과녁과 이어진 한 선線에 향불 하나를 피워 올린다. 그 향불을 겨누어 활을 날린다. 천 번 만 번을 꾀해도 좀처럼 적중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만 번 수십만 번쯤의 수련이 쌓였던 어느 날 밤, 어둠 속의 적중은 마침내 이루어진다. 그렇게도 가늘던 향불이 부풀어오르면서 살 앞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그 향불이 살 끝에 빨려드는 순간 시위를 당기자 힘차게 날아간 살은 어김없이 과녁에 박혔다. 마치 살이 날아가 과녁에 박히는 게 아니라, 과녁이 빨려와 살에 박히는 신기에 이른 단계가 되었다.


선線이 점點으로 잡히는 찰나에 명인名人이 태어난다고 했다. 이는 선을 점으로 잡아내는 신기의 수련 위에서만 가능하다. 명궁과 관련된 사석음우射石飮羽란 고사가 있다. 돌을 범인 줄 알고 활을 쏘았던 바, 깃까지 들어가 박혔다는 뜻으로 "열성을 다하면 어떤 일이든지 성취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실제로 지난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선보인 불화살에 의한 점화 방식은 역대 올림픽 사상 처음이었다. 안토니오 레벨로라는 궁사는 바람의 방향과 속도에 관한 정보를 기상청으로부터 받아, 풍향과 풍속에 따른 적절한 목표점을 찾는 노력을 하루 평균 30여 발씩 100여 일 동안(도합 3천여 번) 했다고 한다. 이 사례는 3천여 번의 시도라고 하는 양적인 측면과 풍향과 풍속 등 관련 변수를 찾고, 그 변수와 결과 간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는 등 질적인 측면의 노력이 성공을 위한 밑바탕이 된 것이다.


산과 들이 만나고, 강이 흐르는 이 땅 위의 모든 생업의 원리들은 동일하다. 어떤 분야도 바탕이 없는 신기의 성취는 없다. 한마디로 비약은 환상일 뿐 현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린 걸음이 잰 걸음"이란 속담도 있다.


예컨대 사환이 맡은 하찮은 직분, 나무 상자 위에 비오리사탕이나 누비과자 서너 종류밖에 없는, 땟물이 흐르는 구멍가게나 장사에 나선 장돌뱅이에도 각기 소중한 이치가 있다. 쇠 부스러기나 고물 자동차의 부속품 등 하찮은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이치를 찾는 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일본의 한 견습공이 선반旋盤에서 깎여나간 쇠 부스러기를 관찰해 찾아낸 소소한 이치들이 일본의 혼다그룹을 낳았으며, 역시 24세의 초졸 청년이 한 평 남짓한 자동차 수리소에서 고물 자동차의 부품을 만져 현대그룹을 탄생시켰다. 격물치지의 실학적 원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개 하찮은 일을 맡은 사람은 저학력 콤플렉스 때문에 의욕이 낮거나, 학벌이 있는 사람은 학벌만 내세우다보니 이치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서 찾지를 못한다. 게다가 안일, 무사, 매너리즘, 끈기 부족, 향락에의 몰입 등으로 "이치"를 찾는 눈을 잃고 만다. 그러나 장사란 과녁과 같아서 마치 궁극窮極에 다다른 명궁의 화살은 언제나 과녁을 빗겨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개성상인의 부자 근성

1906년 한국을 방문했던 H. B.허버트는 그 무렵 상가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의 점포는 열어놓은 점포, 닫아놓은 점포 두 가지가 있다. 여느 점포는 차라리 노점이라고 하는 편이 옳으며 길녘에 펴놓고 있기에 살 사람이 물건을 선택하고 또 살펴볼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상인들의 비단이나 무명, 신발 등 특산품을 다루는 점포에는 물건들을 볼 수 있게 해놓지 않는다. 만약 그 점포에 들어가 원하는 물건을 청하면 그것을 곁에 있는 곳간이나 다락에서 꺼내온다. 이는 줄곧 물건을 고르고 견주어보며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이상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오늘날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는 유명한 약전골목이 있다. 1910년대 대구약령시는 봄과 가을 약재 수확기에 맞춰 한해 두 차례씩 열렸다(오늘날은 5일장 방식). 함경도나 평안도의 산골 약재상부터 중국, 만주, 몽골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무역상 등 3천여 명이 약재를 사기 위해 찾아들던 곳이다.


구한말부터 1930년대까지 이 나라 한약업계를 주름잡던 김홍조는 개성에서 인삼봇짐 하나만 등에 짊어지고 대구로 흘러들어온 개성상인이다(한국화장품 임광정 회장도 일사후퇴 때 값나가는 백삼 열 근만 갖고 피난길에 올라 부산에 있는 국제시장에서 터를 잡았다고 한다).


"김홍조 건재약방"을 보면 약전골목 가운데 어두컴컴한 한옥에 간판 하나만 달랑 걸려 있는 초라한 모습이다. 차려놓은 품새야 대처라면 아무 데고 흔히 있는 평범한 전廛이요,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다. 가게 문은 거의 닫혀 있고 그 중 한둘만 통행할 수 있게 반쯤 열려 있다. 가게 문을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나오지만 얼마간의 건재들이 벽에 기대어 쌓여 있고, 인적은 고요하다. 방문을 열어보면 몇 간살이 되는 널찍한 방에 아무 장식도 없는데, 책상 옆에는 사무원들이 주판을 들어 회계를 보고 있고 몇 물주들은 한담에 여념이 없다. 이미 동도 트기 전에 물화들을 각 시장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리라. 한낮인데도 고요하고 적적한 집이다. 어떻게 이 조그만 가게 하나로 전국의 약재 시세를 좌우했는지 혐의쩍은 일이지만 가게의 외양이 허술하고 보잘것없는 것은 양고심장(良賈深藏, 유능한 상인은 물건을 깊이 숨겨두고 가게에 내놓지 않음)의 원칙 때문이다. 즉, 개성상인들의 보수적인 내향성과 실리를 위주로 한 "부자 근성"에서 연원한 것이다.


지금도 서울 황학동 만물시장 등에서 물건을 고르려면 점포 안쪽 후미진 곳을 먼저 뒤져야 제대로 된 물건을 구할 수 있다. 점포 앞은 값싸고 허드레 물건을 내놓는다. 정작 살 사람은 물어서라도 산다는 장사꾼의 뱃심이 작용한 것일까? 어쩌면 장삿속을 내세우고 화려함을 뽐내지 않는 고전적인 우리네 장사꾼의 습성일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상당한 재력가이지만 언제나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겉보기에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알토란 같은 부자들이다. 그네들은 부를 전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네들 사업의 속내를 살펴보면 단번에 대리大利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소리小利를 모아 대리를 거둔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즉 몇 억, 몇 십억 원을 버는 스타일이 아니라 오히려 한 개에 10원, 20원씩 하는 물건을 팔아 이익금 몇 전을 따지는 스타일에 가깝다. 진짜 스테디한 돈벌이 프로들이다. 도박으로 말하면 한 판에 100냥을 땄다가 다음날 50냥을 잃는 게 아니라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이 없이 한두 냥씩 한결같이 따는 사람들이다. 그네들은 사물을 이익과 불이익, 쓸모와 낭비의 관점에서 솎아내는 재주가 비상하다. 이는 바로 체험적으로 깨달은 실리주의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상업은행이 발표한 〈세계 속에서의 한국 경제〉 보고서에는 "중국인은 윤택해(rich) 보이고 일본인은 똑똑해(smart) 보이며, 한국인은 멋쟁이(fancy) 같다"고 평가한 외국 언론인의 지적이 담겨 있다. 필경 한국 경제가 실속 없는 외형성장으로 세계 시장에서 불필요한 견제만 받게 되는 배경을 설명한 것이리라. 이것이 IMF로 이어지게 되는 불행한 말言의 씨가 되었다.


겉치레만 요란하고 허우대가 아무리 번듯해도 속병을 앓고 심중에는 근심만 가득 쌓여 있다면 그 무엇이 온전할까. 오늘날에는 겉멋에 겨워 사업하는 것보다 열심히 사업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현명하게 일하고 실질적인 윤택함을 추구하는 개성 깍쟁이처럼 사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대개 개성상인들은 대주貸主에게 돈을 빌릴 때 그것이 투자되어 몇 년 이내에 벌어들일 수익까지 셈해본 뒤에야 비로소 빌린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게다가 손으로 헤아려본 다음에 건너는 습관 때문에 "큰물"은 못된다고 말한다. 허나 미리 성공을 셈하면 사업에 확신이 들고, 실패를 미리 셈하면 환란을 막을 수 있는 법이다.


실리란 추어탕 먹고 용트림하는 허장성세의 화려함보다 실속을 찾자는 것이다. 오늘날 개성 출신 기업들을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좌불안석坐不安席의 곤욕을 치르지 않는다. 물론 그네들은 외형성장이 뒤떨어져 상계를 화려하게 누빈 적도 없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기업이 도산 위기에 몰려 허덕인 적도 없다. 그래서 요즘처럼 삶이 고달프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개성 출신 기업이 빛을 발하고 있다.


대개 중국을 넘나드는 장사꾼들은 송도에서 인삼을 사다 싣고 안주쯤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사신행차의 꽁무니를 따라 연경까지 함께 들어가는 것이 예사였다.


의주를 지나 압록강 너머는 우리나라 엽전을 가지고는 넘어가 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청나라 땅이다. 이곳에서 장사꾼들은 이틀 말미의 식채나 부비를 제외한 엽전들을 가지고 송별연도 하고 셈도 끝낸다.


어느 날 개성 부자 김송도金松都가 여러 삼상蔘商들과 어울려 여각에 머물렀는데, 한쪽에서는 술추렴이 벌어져 서로 권커니 잣거니 시끌시끌했다. 다른 쪽에서는 넉동내기 윷도 놀고 한 패는 투전판도 벌였다. 김송도는 그저 남들이 노는 뒷전에 처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동패 중에 한 사람이 짓궂게 술을 들이밀면서 말했다.


"술 좀 마시게!" "아, 술을 마실 줄 알아야지요." "제기랄, 이것도 사내라고. 본래 누구는 주태백이 손자놈이던가? 먹을 것 먹고 쓸 것 쓰고 할 짓 하면서 돈을 모으든지 말든지 해야지, 그렇게 모아서 뭐하누? 고름이 살 되는 줄 아는 모양일세!" "내버려둬!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먹기 싫어하는 술 권하면 뭐해." "아서라, 김서방 그러지 말게. 돈 아껴 뭐하나. 살아 생전 한 잔 술이 죽어 열 잔보다 낫다네. 내일 삼수갑산을 갈지라도 우선 먹고 볼 일이지. 막걸리 몇 잔에 발발 떨어서 뭐해!" "저 사람은 너무 고지식한 게 병통이야. 술 안 먹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슨 재미로 사는지 내 모르겠더라!"


거개 하루 스무 푼 벌이를 하는 지게꾼이라도 주막에 들르면 술 사발을 입에 떼지 않고 한 모금에 쭉 들이켜는 모양은 자못 장쾌하다. 구운 낙지에 돼지고기 기름진 안주를 먹고 나면 제법 속이 편하다. 남은 밥을 뜨거운 술국에 말아 막고춧가루를 듬뿍 떠 넣어 휘휘 저어가며 먹고 나면 속이 부풋하고 얼굴이 훗훗한 게 제법 말하기가 좋을 만치 된다. 겸하여 배도 든든하다.


허나 개성 부자인 김송도의 돈 씀씀이는 남들과는 달랐다. 주막거리에서 한 푼에 두 개하는 인절미로 허기를 때우고 곰방대 한 번 빤 적이 없다. 비록 잔술 한두 잔 정도 받아 마실 뿐 흥이 난다고 취하는 법이 없다. 게다가 색주가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모은 육전(肉錢, 밑천)으로 조금씩 사업을 늘려간다. 뒷날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에서도 그의 "씀씀이 철학"을 이렇게 남겼다.


백 가지 가운데 한 가지도 능한 것이 없는 중에 더욱 무능한 것 넷이 있다. 곧 바둑을 둘 줄 모르고 소설을 볼 줄 모르며 여색을 말할 줄 모르고 담배를 피울 줄 모르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비록 종신토록 할 수 없다 해도 해롭지 않다. 마땅히 너희들은 네 가지를 못해야 한다. 그리고 장사에 나서더라도 핑계나 찾을 위인들과는 아예 거래하지 말라.


대체로 바둑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논어』에 있는 "바둑을 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라는 말을 끌어대고, 여색을 좋아하는 자는 『대학』에 있는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 하라"는 말을 끌어대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공자는 술을 마시되 양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는 말을 끌어대어 구실을 삼는다.


"즐겁게 놀되 지나침을 경계하라"는 말을 평소에 내 마음에 간직하는 바다. 만약 젊은 시절에 이를 삼가지 않았다면 유탕遊蕩하기 쉬웠을 것이다.


대기업만 일류라고?

2004년에 들어서 11월까지 삼성전자가 내놓은 휴대전화기만 해도 40종이 넘는다. 이미 국내시장에 출시된 휴대전화기는 100종에 이른다. 즉, 3일마다 새 제품이 하나씩 나온 셈이다. 대기업만 일류일까? 정작 일류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건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무엇이든 좋다. 그 계통에서 일류가 될 것을 노려야 한다. 일류란 시장점유율이 높은 것도, 단순한 전문메이커도 아니다. 또한 1등, 2등 하는 등급의 결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류란 탁월함에 권위를 더한 것이다. 일류인 중소기업이란 탁월함은 있으나 아직 권위를 갖추지 못한 경우다.


일류의 반대는 이류가 아니라 아류亞流이다. 아류란 탁월함이 없이 권위만 갖춘 경우를 말한다. 이를테면 호가호위하는 꼴들인데 부모 잘 만난 덕에 재벌 2세가 된 경영자,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중소기업 사장 2세, 물 탄 막걸리 같은 물건이면서 대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로 팔리는 상품, 자기 글에 온통 외국 문헌으로 주석을 다는 학자, 기껏 남의 물건을 위탁판매하면서 형세를 뽐내는 종합상사 등이라면 모두 아류다. 이런 의미에서 기술력이 뛰어나지 않은 대기업의 다양화된 상품은 그 태반이 아류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제품은 아류일 경우는 팔리지 않는다. 중소기업은 내세울 만한 권위가 없기 때문에 뻔한 물건을 만들면 살아남기 힘들다.


정말 탁월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에 권위를 하나하나 붙여나가야 한다. 단, 탁월한 물건을 개발하는 데만 매달리다보면 자칫 "일류와 엇비슷한 상품"에 머물게 된다. 탁월한 물건을 개발했으면 발 빠르게 권위가 붙도록 연구해야 한다. 늘씬한 도우미를 통한 판촉이나 매체광고만으로는 권위가 붙지 않는다. 예를 들어 "테크니컬 서비스(효용 중심의 서비스)" 등을 착실하게 해 상품의 성능이나 기능에 대해 빼어나게 보증한다. 여러 이용 방법에 대해 매뉴얼을 만들고 유용한 데이터를 정리하여 사용자를 납득시킨다. 고객이 요구한다고 함부로 변경하지 말고 표준을 정해 판매체제를 굳히는 일 등을 말한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국내에서 파는 것보다 외국으로 수출까지 생각한다. 국내에서 팔리지 않던 상품이 외국에서 잘 팔리기도 한다. 그런 평판이 국내로 돌아와 다시 국내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 예가 많다. 형세가 볼품없는 작은 기업이라고 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참다운 일류상품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파는 모든 과정을 일류주의로 굳혀야 한다.


세간의 속언 가운데 "모난 돌이 정을 맞지만 너무 튀어나온 돌은 칭찬 받는다"란 말이 있다. 모난 돌이나 둥근 돌이나 다 쓰이는 장처長處가 있다. 다른 이의 성격이 나와 같지 않다고 나무랄 것도 아니다. 동그라미로 한 면을 다 채운다는 것은 환상이다. 완벽한 하나가 되기 위해 일그러진 부분도 필요하다는 걸 안다면 사람을 바로 쓸 줄 아는 회사일 것이다.


근자에 기업하는 이들을 보면 밥 빌려다가 죽을 쑤어 먹는 형세니 활기를 찾는다는 것도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모든 기업이 죽을 쑨다고 활기가 없으란 법은 없다. 그렇다면 "활기가 넘친다"라고 하는 것은 강요된 애사정신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소신과 야심으로 목표를 높이 세우고 있는 회사, 그래서 스스로 최고가 되길 원하는 회사들일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라면 야심찬 젊은이들이 아금받게 일할 것이며 회사의 발전은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소견이 잔망스러워 불평이나 늘어놓는 축들이 아니라, 자기의 권리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런 반골反骨 기질의 사원들이 정당하게 대우 받는 회사라면 어느 정도 트인 회사다.


굽은 나무도 잘 활용해야 대들보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책사策士들에 몰려 회사를 떠나거나 불의에 대해 표연히 사표를 내던져 더 이상 회사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 반골파를 몰아내는 소견 좁은 회사에 발전이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환하다. 즉, 월급이나 받으려는 생심 없는 궐자들만이 남아있다. 꼭 새경 받는 머슴 꼴과 무엇이 다를까?


자력자업自力自業을 이루려는 자라면 일을 종합하여 배울 수 있고 전체 경영의 흐름을 익히기 위해서 작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대기업을 보자. 조직의 규모나 짜임이 빈틈없이 완성되어 개인의 뛰어난 능력 발휘가 성장이 아닌 유지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장래를 봐야 한다. 새로운 각오로 인생을 시작하는 때에 맡은 일만 하면서 안주할 여유가 없다. 조그만 회사에서 일하다보면 자연 계수에 눈뜨게 되고 장차 내 사업을 하겠다는 결의가 인다.


허나 사업이란 대소를 불문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렵게 모은 육전(밑천)이라도 사업을 하면 모래밭에 물 스미듯 빠져나간다. 어느 기업이고 그 창업 과정은 많은 비사秘史가 있기 마련이고 거기에는 칠전팔기하는 창업주의 고난이 들어 있다.



제2부∥한국인의 상리(商理)

낭비는 하늘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

옛날 떠돌이 시인 김삿갓이 개성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며 즉석에서 남긴 해학시인 〈개성축객시開城逐客詩〉의 한 구절이 있다.


도읍의 이름이 문을 연다는 뜻인 개성인데 고을 사람 거개 대낮에도 대문을 닫고 사는 게 어인 일이며, 과객이 밥 한 그릇을 청했는데 땔나무가 없다는 구실로 이를 퇴짜 놓았으니 "송악松嶽"에 어찌 나무가 없을꼬.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何無薪


미풍을 숭상하는 겨레붙이의 심성에서 볼 때 과객의 소소한 청을 딱 잘라 거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시속時俗이라고 풍자한 것이다. 후덕한 인심과 정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라고 한다면 왜 개성만이 그와 같은 고을이 되었을까? 그 까닭에는 "낭비는 역천逆天"즉 하늘을 거스른 것과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돈푼이나 있다고 위세가 대단한 사람들을 보면 가난한 사람을 모멸하고 남의 어려움을 돕는 법이 없다. 늘 술에 곯고 색에 지나쳐서 꽃과 비단만 알고 맛있는 음식도 쓰다고 뱉는다. 그러니 호사한 것만 취하여 소박한 것을 싫어하게 되는 법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하늘이 주신 만물을 다 낭비하는 것과 같다.


보통 가세家勢란 명성이든 재물이든 제 손으로 이뤄야 그 귀함을 알고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요령껏 다루고 거느리지 못해 한번 기울기 시작하면 그 또한 순간의 일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먹는 쌀 한 톨, 몸에 걸치는 실 한 오라기라도 헛되이 쓰거나 버린다면 그것은 바로 역천이다.


예로부터 뒤축이 다 닳은 짚신짝이나 아주 헤어져 입지 못할 보무라지 폐물이라도, 공을 들여 제 쓸모를 찾게 하는 것을 지혜와 미덕으로 여겼다. 빌어먹을 처지가 되어 쪽박도 제대로 차고 다니지 못하는 거지라도 봉 끝이 다 닳은 놋숟가락은 꼭 가지고 다녔다. 텃수가 뻔한 가난 속에서도 한 가닥 삶의 뜻만은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재물이란 푼돈을 모아 목돈을 만드는 것이다. 목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언가 합당한 결과가 없는 일에는 한 푼의 돈도 헛되게 쓰지 않아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성상인은 샐 닢을 쓴다고 해도 그 용처를 옴니암니 따지는 것이고 더구나 돈 알기를 제 목숨보다 더 귀히 여긴다. 그래서 대개 개성인들의 생활이 무척 인색하고 타산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짚신장이가 헌 짚신 신는 격으로 개성사람들의, "일찍부터 범백凡百을 미루어 별반 잇속이 없고 온당치 않은 곳에는 푼돈이라도 헛되이 쓰지 않겠다"는 철저한 절약정신은 합리적인 경제적 생활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푼돈이라도 달걀섬 다루듯이 하고, 숯은 저울에 달아서 불 피우며, 쌀은 세어서 밥을 짓는다는 말도 있다. 특히 그네들은 돈푼이나 있어 호의호식한다고 남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을 제일 꺼림칙하게 여긴다. 거만대금을 벌었다고 해서 집밖에까지 가무 소리가 넘어가거나, 소증(素症, 채식만 하여 고기가 먹고 싶은 증세)을 풀 요량이 아닌 바에야 매번 끼니마다 찜을 찌고 너비아니를 구워서도 안 된다고 했다. 설사 굽되 그 냄새가 담을 넘지 않도록 집안 단속을 철저히 했다. 물론 세인들은 "정당하게 번 돈을 쓰는데 왜 그렇게 이목 가림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고 한다. 『사기』의 "월세가越世家"를 보면 "천금을 가진 자는 사형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죽을 목숨을 돈으로 살릴 수 있다면 돈 때문에 죽는 일이 어찌 없겠는가. 뜻도 없이 회사의 돈을 남에게 보여 예기치 않은 화를 당한 예는 적지 않다. 돈만 잃는 게 아니라 제 목숨까지 위협당할 경우도 있다.


더구나 자기 돈이나 보화를 남에게 자랑 삼아 보이는 것만큼 경솔한 짓은 없다. 이는 "상대"의 마음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돈이 많다고 온갖 자랑을 한다면 사람들은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대놓고는 아니지만 적어도 집으로 돌아가서는 "저런 못된 놈이 있나" 하고 누구든지 생각한다. 따라서 돈이 많다고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려 공연한 공분을 일으킬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개성 어느 부자를 찾아온 식객과의 이야기 한 토막이다.


"그래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셨소? 비결이나 들어봅시다." "이보게, 장사라는 것이 5리五厘를 보고 10리를 가는 것 아닌가. 짚신값 아깝다고 길 안 걸을 수 없지. 이 고을 저 고을 조선 팔도를 메주 밟듯 하고 돌아다니니 말 그대로 풍찬노숙에 귀신의 쑥대머리요, 10리를 가다가 발병이 나면 봉놋방 목침을 구워서 발바닥을 지지고, 길가다가 소나기를 만나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피하기를 숫하게 했지. 게다가 돈벌이가 있다 하면 진날 개 뛰듯 헤맸고, 술 한 잔 떡 한 개를 안 사먹고 중놈 망건값 모으듯 한 푼 모으고 두 푼 모아 고린전, 잘난 돈, 못난 돈을 층층이 벌기만 하고 쓰지를 않았더니 한 읍에서 부자라는 소리를 듣게 됐네."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오." "자, 잘 들으라고. 밑 빠진 항아리에 열심히 물을 부어 봤자 반드시 새게 마련이지, 막상 새 항아리에다 물을 채우려고 해도 밑 빠진 두레박이라면 그것도 안 될 일이네. 재산을 모으는 방법이 그런 것일세. 아무리 많은 재산이라도 아끼는 마음과 불리는 재주가 없다면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지. 이 두 가지를 잘 쓰면 당신도 큰돈을 벌 수 있다네."


언뜻 보면 절약이란 게 비능률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검소한 생활이란 자린고비와 같은 비참한 생활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금욕주의적 견해와도 다르다. 즉 불필요한 비용의 낭비를 줄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개성상인의 재무체질이다. 애오라지 지독하게 일하여 돈을 벌고, 번 것을 쓰지 않으며, 쓰지 않으니 당연히 쌓일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논리다.


대체로 자린고비란 있어야 할 것이 모자란 시대의 상황에서 나온 해학이며,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의 의식구조와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린고비에는 아끼는 시대적 정신은 들어 있어도 불리는 현대적 상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푼의 절약은 한 푼의 이득일 뿐이며 그것으로 돈만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그러나 절용은 우선 모으는 일이라고 하지만 근원에는 경제적 욕구 이전에 에토스(ethos, 정신)가 담겨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색할 인吝자를 파자해보면 글월 문文 밑에 입 구口를 대놓은 형상이다. 그 사례는 바로 글께나 읽는 남산골샌님에게 어울릴 말이다. 남산골샌님이라면 자세만 야당적일 뿐이지 권세욕에 혈안이 되는 일이 없었다. 더러운 벼슬을 외면하고 꿋꿋하게 살아갔으니 넉넉할 리 없다. 청빈을 높이 알던 그네들인지라 신발을 사 신을 수 없을 만큼 가난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네들의 신발은 겨우 나막신일 수밖에 없었다. 없으니 없는 대로 만족하자는 청빈은 따라서 결코 권할 만한 덕목은 못된다.


오늘날 대처의 장시를 구경해보면 없는 게 없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길거리를 오가며 그 값을 물어본다고 한들 끝내 자기 물건은 되지 못한다. 차라리 자기가 가진 베 한 필이 있다면 그걸로 생선 한 마리라도 사서 돌아오는 것이 낫다. 따라서 청빈은 적극적인 현세관이 못된다. 전에 안 사던 것도 이제 돈을 주고 사 쓰게 되는 세상이다. 집에서 받은 짚잿물로 빨래를 하던 것을 이제는 양잿물이 아니면 빨래를 못할 줄 안다. 새것이 더 나오면 나왔지 옛날로 돌아갈 이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청빈을 권한다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푸른 소나무를 벗 삼고 흰 구름과 짝하고 돌을 베개 삼고 흘러가는 물에 이를 닦고 봄 안개 속에서 밭 갈고 달 아래서 물 긷는 일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허나 속기俗氣를 벗어나 안빈하리라 작정을 해도 막상 가난하면 그게 안 된다. 마누라 한숨소리에 낯빛을 잃고 굶주리는 자식에게 엄한 교육도 못한다. 부잣집 담 밑에 쌓인 곡식은 야인野人들 보기에 좋을 뿐이다."


본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안빈이란 스스로 주어진 여건을 편히 여기는 것뿐이지 일부러 가난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백성들에게 가난을 즐기라고 하면 그처럼 피 말리는 말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주경야독(晝耕夜讀, 아침에는 논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음)은 고사하고 청경야독(晴耕雨讀, 갠 날에는 논밭을 갈고 비오는 날은 책을 읽음) 한 번 한 적 없는 양반들이 백성들에게만 청빈, 안빈을 들먹이며 궁한 소리로 윽박지르려고만 하는 몹쓸 주장이다.


어쨌든 집안을 유지하고 사람으로서 예를 갖추려면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이 있어야 한다. 만약 빈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며 그 앞에 엎드려 있다면, 풍요의 꿈도 없고 그 가능성도 믿지 않으며 거기에 이르려는 알찬 의지도 없게 된다. 도리어 온갖 방법으로 물욕을 줄이려 노력하며 잘 살려는 공력을 포기하게 된다. 이와 같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가난의 굴레에서 궁박窮迫을 감내해야 하는 줄로 여기게 만든 것이 청빈사상이다.


흔히 "재운을 천운"으로 보는 속담도 그 한 예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백성들의 삶을 위한 진정한 도덕은 아니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도 부의 운명론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돈을 버는 것은 사람의 노력에 달린 만큼 부지런한 부자는 하늘도 못 말린다는 말이다. 정작 그 돈을 1대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3대, 4대가 간수하여 수십 세에 이르게 하는 것을 천운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장사에도 체면이 있는 법

마음은 불이고 물욕은 연료薪이며 염치廉恥는 물이다. 그러므로 물욕을 마음에 둘 적에 염치로 제어하기 어려운 것은 마치 연료에 불을 질렀을 때 물로써 제어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옛날 중국의 순자荀子는 "부를 얻으려면 수치를 참고 친구와 의리를 버리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체면과 염치가 없는 놈들이 장사꾼이라고 욕을 한 것과 같다. 그러나 잘 새겨보면 반은 맞는 말이다.


보통 우리가 많이 쓰는 상거래란 말을 한자로는 매매賣買라고 한다, 순서를 보면 팔 매賣 뒤에 살 매買가 나온다. 먼저 팔 것을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팔리는 길만 있으면 우선 먼저 팔아놓고 본다. 물론 팔리면 돈이 굴러 들어오기 때문에 사는 것은 뒷전으로 미루어도 관계없다는 발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매(投賣, 덤핑)나 무자료거래가 생겨나게 된다. 물건을 팔 때 이익을 남기는 데 치중한 나머지 저질 물건을 비싸게 팔려고 노력한다. 심지어는 값을 깎더라도 꼭 팔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밑지고 판다는 말은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일 것이다.


그러나 거래의 바른 순서는 팔고 사는 매매賣買가 아니라 사고파는 매매買賣란 말이 더 적실할 터. 흔히 시정市井의 사귐을 말할 때 이해관계가 있으면 만나고 없으면 "나 몰라라" 식의 얄팍하고도 비정한 사귐을 말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상인을 시정배市井輩라고 낮춰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품질과 중량을 속이고 고가로 판매하는 게 많으니, 몰염치하고 돈밖에 모르는 일종의 천민적 상인을 지적하는 것이리라.


허나 장사꾼이 흥정을 하고 이익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장사는 기생집 조방구니(기생집에서 여러 잔일을 하며 여자를 소개하는 사람. 오늘날로 치면 기둥서방을 말함)와는 구실이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순자의 말을 거꾸로 되새김질하면 너무 재고 가리는 게 많으면 돈 한 푼 모으기 힘들다는 뜻도 있다. 적극적인 의미다.


이런 경우를 보자. 공자는 물욕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명욕(名欲,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욕심)만큼은 인정했다. 한번은 자로子路가 그의 사부인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맞아 정치를 하게 된다면 선생님께선 무엇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꼭 명분을 세울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명분이라면 명과 실에 관한 논리학상의 문제를 논한 것이다. "무릇 군자는 세상을 하직해서 이름을 남기지 못함을 미워한다"고 한 말은 분명히 명욕을 인정한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이 『효경孝經』에서도 나온다. "몸을 일으켜 길道을 가고 이름을 후세에 남겨 부모를 받듦이 효의 끝이다"라는 유명한 대목도 있다.


흔히 체면이 있다는 것은 곧 명예로운 것이고 체면이 없다는 것은 수치가 된다. 어떻게 보면 명名과 치恥는 손바닥의 양면과 같다. 그러니까 체면은 이름名에서 나왔고 면목, 얼굴 등과 같은 말에 속한다. 명분이 후세에 이르러 체면(면목), 즉 얼굴이 된 것이다.


파렴치라는 말은 염치의 반대말이다. 즉 염치란 말은 욕심을 탐하지 않고 수치를 아는 마음이다. 그래서 파렴치라면 수치를 모르는 것이 된다. 또 후안厚顔이란 말도 『시경詩經』의 "교언巧言"에서 나왔는데, 창피함도 모르는 "낯 두꺼운 놈"이라고 해서 같은 뜻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은 한마디로 체면문화권에 속한다. 대개 죄를 짓고 경찰에 연행될 때 필시 얼굴을 감추는 것은 수치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교제나 임기응변 등에도 곧잘 이용된다. "내 얼굴을 봐서라도…" 하면 어지간한 일은 그냥 넘어간다. 게다가 불미스러운 일에 걸려 "이름"을 공개한다면 대단한 수치로 여긴다.


그런데 이름을 알리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벼슬자리께나 했던 옛 선조들은 예외 없이 큰 바위에는 석수들을 동원하여 거창하게 자기의 관직명이나 이름을 각자刻字해놓았다. 어떻게 보면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이곳에 나의 이름이라도 남겨놓고 싶다"는 묘한 충동심리가 발동된 것이다. 이런 습속은 해외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유럽 곳곳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낙서로 문화유적이 얼룩지게 된다.


1889년 유길준 선생은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전쟁은 난시亂時의 상업이지만 상업은 평시平時의 전쟁이다"라고 했다. 그 풀이를 해보자.


우선 상업은 물자로써, 전쟁은 병기로써 승부를 결판내는 것이지만 이해를 다투기는 마찬가지다. 상업에서 물건이 정교하지 못함은 군사의 병기가 둔졸鈍拙함과 같다. 둔졸한 병기를 가지고 전쟁에서 지게 되면 배상금을 물게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상인이 정교한 물건을 갖지 못한 경우 상권商權을 잃음으로써 이익을 빼앗기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배상금을 무는 것과 상권을 잃는 것과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배상금을 무는 일은 한때의 횡액쯤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상권商權은 한 번 잃어버리게 되면 회복할 기한이 묘연하여 다시 떨쳐 일으키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장사를 바르게 하여 감히 남이 타박하지 못하게 하고 제품을 정교하게 만들어 남의 제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병법에 "속여도 괜찮다"고 하여 속이는 계책을 장사에 적용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한 수작이다.


아주 잠시 동안의 잔재주로 약간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오랜 경륜을 돌보지 않는다면 장사의 근본 의의를 붕괴시키고 만다. 특히 외국과의 교역에서라면 문제는 더 커지게 된다. 먼저 물건은 물건대로 빼앗기고 상인으로서의 체면을 손상시킬뿐더러 나라 전체에 욕이 미치게 된다. 그 뒤로는 거래를 트고자 하는 사람이 끊어지고 말기 때문에 이익을 꾀하려는 자는 이를 깊이 헤아려야 한다.


하지만 이익이 존재하는 곳에는 사람의 마음이 쏠려 그릇됨을 깨닫지 못하고 나쁘다는 사실을 돌보지 않게 된다. 이는 물이 흐르면 젖게 되고 불이 성하면 마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연 우리나라에 염치와 의기를 가진 상인들이 있을까?


아래는 개성출신인 어느 가게의 상업훈이다.


손님을 대할 때 행실을 단정히 하며 예의와 용모를 엄숙히 하여 송상(松商, 개성상인)이란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옳다. 만약 한 점의 수치라도 남기거나 오욕을 당하여 이름을 훼손시키는 일이 있다면 이는 개인의 치욕에 그치지 않고 상단 전체에 누를 끼치는 일이다. 왜냐하면 어떤 상객商客이 고객에게 불미스러운 관계를 갖게 되면 그 사람이 반드시 말하기를 "송상은 다 그렇다" 할 것이니 한 사람의 악행으로 모든 상단이 그 오명을 함께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자기 이름을 자기 부모의 이름처럼 공경하여 남에게 굽히지 않고 또 치욕을 끼치는 일이 없게 하여 올바른 도리로써 이익을 꾀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조선 팔도와 천하에 감히 그 이름을 모멸하는 자가 있으면 의기로써 싸워 존중한 지위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원에 살던 춘향이도 절개를 논하는 마당에 상인된 자가 염치라는 절개로써 자신의 신명身名을 아낀다는 것이 무슨 허물이 될까. 유길준 선생은 이 나라의 상인이 당연한 도리로써 자기의 일을 하고 민인들의 편리를 제공하고 국가를 풍요롭게 한다면 그 공이야말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장수에 견줄 만하고, 그 덕이야말로 백성을 다스리는 재상과 같다고 했다.


상인들의 정대한 지위와 공명에 가득한 찬 사업이야말로 남아로서 할 만한 경륜이요, 대장부로서 해볼 만한 생업이 아닌가!


세상에 장사 아닌 게 어디 있나

"사장님"이라면 높게 보고, "장사꾼"이라면 낮춰 본다. 그럼 "기업가정신"은 대기업 CEO에 어울리고, "상인정신"은 시장통의 장사치에게 어울릴까? 이는 꾸며대기 좋아하는 허명虛名에 눈이 먼 이들의 허욕虛慾일 뿐이다. 세상에 장사 아닌 게 어디 있나? 이야기를 풀어보자. 상商이란 말은 音(言) + 內 + 人로 이루어져 있다. 즉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의 참뜻을 밖에서 헤아려 안다"는 뜻이다. 장사꾼을 통틀어 상고商賣라고 하는데, 상商은 "다니며 파는 장사꾼"을 의미한다. 고賈는 "한 군데 앉아서 파는 장사꾼"을 말한다. 이들 모두 재화財貨를 풍부하게 유통시킨다. 오늘날 기업인라면 "팔 물건(상품)"의 생산자인 동시에 "팔 임자"인 "만들어서 파는 사람"을 뜻한다. 상인이라면 기업에서 팔 물건을 구매하는 "살 임자"인 동시에 손님에게 팔아야 하는 "팔 임자" 즉 "사서 파는 사람"이다.


이것을 좀 더 확대해보자. 현재와 같이 경제가 발전하고 대량생산체제가 되면 매매업자를 비롯한 각종 상품유통기관이 고도로 분업화된다. 또한 복잡한 유통구조(조직)도 발생하게 된다.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의 대규모적인 소매상이 등장하고, 도매 부문에서도 대규모의 전문상사나 종합상사가 출현하게 된다. 아예 대규모의 제조업자인 경우 판매 부분이나 판매회사를 직접 만들어 도소매업을 직영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처럼 "물건을 팔고 돈을 받는다"는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장사는 앉아서 팔거나 서서 팔거나, 그 규모의 크고 작음이나 오래고 짧은 전통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은 같다. 남대문 한편에서 냉차 장사를 하든, 여의도 한복판에서 증권회사를 경영하든 모두 장사라는 점에서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장사에는 환경에 따라 "벌임새가 좋은 장사"와 "그렇지 않은 장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구경하기 힘든 장사가 있다.


온 세상을 두루 구경하다보면 제각기 벌이를 위해 분주하지 않은 곳이 없다. 대처라고 하면 온갖 장인과 장사치들이 모여드는 곳인만큼 수많은 전방廛房이 펼쳐 있다. 이미 천하는 이익을 숭상한 지 오래고 사고파는 것은 극에 이르렀다.


어떤 이는 남에게 손으로 품을 팔아먹는 자도 있으며, 혹은 어깨와 등을 파는 자도 있거니와 뒷간을 치는 자, 칼을 갈아 소를 죽이는 자, 몸을 팔아 남의 노예가 되는 자도 있고, 자기 얼굴을 화려하게 꾸며서 매음하는 자도 없지 않으니 천하에 사고팔지 못할 물건이 없다. 그러나 아직 그 마음(신용)을 끄집어내어 팔아먹는 자는 없으니 오직 마음은 팔 수 없음이던가!


장사꾼의 눈으로 보면 온 세상은 불균형과 격차뿐이다. 이를테면 낙후된 나라에서는 기술력이 없고 인재가 없으며 자금이 없다. 그 때문에 국민의 생활수준이 낮다. 그러나 이러한 "없는 상태"의 나라라고 해도 반드시 있는 것이 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원도 있고 노동력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있는 상태로 바꾸면 된다. 즉 없는 상태를 있는 상태로 바꿀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국가경영의 묘미가 있다.


한나라의 어떤 환관桓寬은 상업, 즉 화식貨殖의 술術이란 농사를 짓듯이 땅을 열심히 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유무를 평균해서 만물을 통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듯 상업이란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원리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원리는 대부분의 조선 실학자들에 의해 계속된다.


"흔히 물건을 귀한 곳으로 옮기는 것은 상인의 권리이며 이로써 백성과 국가가 힘을 입게 된다." -박지원


"영동은 꿀이 나되 소금이 없고 관서는 철이 나되 감귤이 없으며 북도는 삼이 나되 면포가 귀하다. 백성들이 그것을 융통하여 풍족히 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힘이 미치지 못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박제가


"이곳저곳의 지역이 피차 있고 없는 것을 서로 유통시키면서 귀하고 천한 것을 서로 바꾸게 하여 부족한 것을 보충해서 서로 안락한 생업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선하고 아름다운 습관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유길준


이러한 사고를 좀 더 확대해보자. 최근 경쟁력의 상실로 허덕이는 종합상사의 기력을 회복하는 처방 중의 하나는 3국간 무역의 활성화이다. 3국간 무역은 위험이 큰 만큼 "꿩 먹고 알 먹는" 괜찮은 장사다.


- 갑은 을에게 빚이 있다. 갑은 달러가 모자라 빚을 갚을 수 없는 형편이다. 줄 것이라고는 석유밖에 없다. 그러나 을은 석유는 필요 없고 생필품을 수입하기 위해 달러가 필요하다. 이때 종합상사가 개입한다. 종합상사는 갑의 석유를 사겠다고 한다. 아쉬운 것은 갑이므로 좋은 조건으로 살 수가 있다. 한편 을과는 생필품 수출계약을 맺는다. 대금은 갑이 갚아야 할 빚을 청산하는 식으로 결제한다. 종합상사는 석유를 판 금액과 생필품을 산 금액의 차액 만큼 이윤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거래과정에서 종합상사는 돈 한 푼 안들이고 이문을 남길 수 있지만, 석유값이 떨어져 손해를 볼 위험이 있고 시간을 못 맞춰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3국간의 거래에는 고도의 정보력과 영업기술이 필요하다. 기술이 고도화하면 4국, 5국간 거래로 확대된다.



제3부∥한국인의 상술(商術)

개성상인을 통해 본 한국인의 상술

"타고난 사업가로 개성상인을 꼽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개성상인이 앉은 자리에는 풀도 자라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오줌맛을 보고 거름값을 지불하는 지독한 사람들이란 말이 있습니다. 개성상인들이 삼포(인삼밭) 경작을 위해 거름으로 쓸 오줌을 살 때, 물을 탔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맛까지 보았다고 합니다. 자기 사업에 매우 철저한 사람들이었지요."


"개성상인의 사업적 노하우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현재 활동 중인 기업인들 중에도 개성 출신이 많다면서요?" "우리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업들로는 신도리코, 한국화장품, 동양화학그룹, 태평양, 한국 빠이롯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기업경영의 형태는 공통점이 많죠. 근검, 신용, 단결, 합리성 등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개성상인의 정신을 기업경영에서 되살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들 기업들은 부채비율이 높지 않고 한 우물만 파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들 개성 출신 기업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정리하면 세 가지입니다. 우선 투기적인 사업이나 타산에 맞지 않는 사업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제 분수를 지키며 바른 제품만을 팝니다. 또한 기업경영에서 지나치게 남의 돈을 끌어 쓰지 않는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성상인의 장사 노하우라면 합리주의, 현실주의, 현금주의 이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개성상인을 예로 들었지만 그 외에 우리의 독특한 상술은 어떤 게 있습니까?" "요즘 첨단 마케팅 방법의 하나인 고객 데이터베이스마케팅 등을 일찍부터 사용했던 이들은 두부장수나 새우젓장수들이었습니다. 실제 첨단이라고 하는 데이터베이스마케팅도 효과 면에서 고객 반응률이 2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새우젓장수나 두부장수들이 했던 고객확보를 위한 마케팅 방법이 더 직접적이면서 단출합니다."


"새우젓장수나 두부장수들의 마케팅이라니요." "만약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장사꾼이라면 꼭 치부책을 작성합니다. 단골집의 대소사를 정리하여 잔칫날이라도 있으면 달걀 한 줄이라도 덤으로 준다거나, 초상이라도 나면 마음으로라도 심상心喪을 입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고객과 두터운 관계가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고객과 늘 맞대면하기 때문에 고객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기 쉽죠. 그래서 그들은 데이터베이스마케팅을 말하지 않아도 줄곧 자신의 물건을 팔아줄 붙박이 단골을 확보하고 있는 셈입니다."


"장사하면 유태인과 중국인이 유명한데요. 그들과 한국인의 상술은 어떻게 다릅니까?" "최근 한 가지 사례를 인용하는 게 각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상술의 특징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만약 미국에서 바나나 장사를 한다면 유태인의 경우는 다발로 파는 것이 아니라 낱개로 잘라서 팝니다. 그것도 하나씩 포장을 해서 말이죠. 합리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판매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중국인이라면 살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립니다. 사면 팔고 안 사면 안 팔겠다는 각오로 말이죠. 이것을 "땀의 상술" 또는 "인내의 상술"이라고 합니다."


"그럼 한국인의 상술은?" "그런데 한국인은 좀 다르죠. 어차피 바나나를 오래 두면 물러지니까 그때는 떨이를 합니다. 적당히 에누리해서 재고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미국 사회에서 야채시장과 생선시장을 한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도 이런 떨이의 효과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금회전도 빠르고 사업의 성패도 쉽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진득한 면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태인과 중국인, 즉 화교와 공통점이 있다면 몇 세대에 걸쳐 부를 축적한다거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철저한 상인정신,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국인의 상술은 어떤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까?"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게 "인정을 심는 상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탐이 날 만한 물건을 정까지 두둑하게 얹어서 판다면 장사를 그만큼 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객과 두터운 단골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상술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인정의 상술은 아주 오랫동안 장터에서 통용되었던 우리의 독특한 상술입니다."


"장사에도 일종의 전략이 필요하지요. 요즘말로 하면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전래의 상략商略은 과연 무엇입니까?" "삼기三機, 즉 세 가지 기회를 노리는 전략입니다. 우선 상기商機란 말이 있습니다. 시장 기회를 잘 살피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물기物機라고 해서 물건의 흐름, 다시 말해 물건이 모자라고 많은 곳을 잘 살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여기에다 사람의 흐름이 한 가지 더 추가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기賣機, 즉 누구에게 물건을 팔지 잘 살피는 것입니다. 이런 삼기를 살피기 위해서는 눈이 좋아야겠지요. 그러니까 사람을 보는 안목, 상품을 보는 안목, 끝으로 시장을 보는 안목을 잘 갖춘 사람에게만 사업 성공의 기회가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개성상인으로 대표되는 옛 상인들이 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땠습니까?" "재물은 하늘이 내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헛되게 쓰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물건이 귀했던 시절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오늘날로 치면 제대로 쓰고 제대로 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재물은 푼돈을 모아 목돈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한 푼의 돈이라도 헛되게 쓰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인색함과는 구별됩니다. 그리고 바르게 번 돈, 즉 덕을 갖춘 재물이라야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만약 큰돈을 벌더라도 백성들을 해치고 번 돈이라면 도둑질과 같아서, 곧 잃어버리거나 남에게 손가락질 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장사의 기본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날 기업인 혹은 상인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우선 신용을 얻고 고객을 기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원칙이지만 실제 활용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편법보다 가장 확실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 선생의 글에 만전불패萬全不敗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미리 때를 철저히 대비하여 실패를 줄인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응용해보면 사업을 진행하는 데 이익을 미리 계산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미리 손실까지 계산해둔다면 환난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죠. 만전불패란 말을 늘 사업의 핵심으로 삼으시면 어떠한 경우도 크게 손해를 보실 일은 없을 것입니다."


유기장수 이승훈으로부터 장사를 배우다

1998년 겨레의 스승으로 천거된 남강 이승훈 선생이 삼일운동 당시 민족지도자의 한 사람이자 장돌뱅이 출신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남강이 장돌뱅이 생활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15세 때였다. 어린 나이에 몽근짐을 지고 100리를 걷자면 새털도 무겁다. 하물며 어깨에 둘러진 게 쇠 40근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득불 오금에서 불바람나게 상대商隊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걸음품을 놓아 장사하는 기세는 자못 등등했다. 당시 지방을 순회하는 장돌뱅이들은 서로 다른 날짜에 개시되는 장터를 따라 물품을 팔았는데 정주군 내의 향시 개시일을 보면 정주읍이 이륙장이고, 고읍은 이칠장, 청정은 삼팔장, 설전은 사구장, 갈산은 오십장이었다. 장돌뱅이가 만일 정주군 내의 시장만 돌아다닌다고 해도 한 달 육장 개시된 곳을 모두 다닐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장삿속이 밝은 장돌뱅이라면 자기가 가지고 다니는 물품이 잘 팔리는 장을 골라가면서 돌아다니게 마련이다.


남강은 처음에는 청정, 정주, 고읍장에서 물품을 팔았지만 차차 시장에 대한 물정을 알게 되자 평안도 일대(42개 장시 중 36개소에서 놋그릇이 매매되었다)를 순회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물산과 인심이 후한 황해도를 중심으로 장사를 했다. 정주군 내라면 이미 다른 유기장수들이 샅샅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오래 다녀 얼굴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사주지 않는 단골들이 이미 잡혀 있어 처음 가는 뜨내기장수는 도저히 새로운 단골을 잡아 장사를 확장하기가 어려웠다.


"제기랄, 고름집이 커야 종기도 고름이 많이 나오는 것이거늘 이 조그만 데서 무슨 고름이 나오겠는가. 그냥저냥 목구녕에 풀칠하기도 바쁘지. 산 입에 거미줄 안 친다고 어떻게 꾸려나기긴 하겠지만 벌이가 적으니 소득도 적네그려." 그래서 남강은 미개척지인 황해도의 안악, 재령, 신천 등으로 상권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황해도는 땅이 기름지고 곡식이 많이 나는 곡창지역으로 옛날부터 유명했다. 특히 과년한 딸이 새살림을 차리려면 그릇부터 장만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래서 놋대야, 놋요강, 놋수저, 놋양푼 등 생활기구 일체를 장만하기 위해 매년 가을이면 놋그릇 수요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유기행상이란 농사가 잘되어 풍작을 이루면 가을 한몫을 노릴 수가 있고, 각 고을 동네마다 큰일이 있는 집을 미리 수소문해 알아두면 물건을 대줄 수 있으며, 한두 해 얼굴을 익히고 그 집 살림살이를 짐작하게 되면 아무 때든지 유기를 주고 추수가 끝난 후에 받는 드림셈이 가능하다.

17~18세기에 대대적인 개간사업이 벌어졌다. 재령(載寧, 나무리벌)은 원래 개간되지 않은 곳이 많아 낮은 소작료를 물고 땅을 갈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로부터 병은 곧 땅이 주는 것이라 했으니 몸에 맞지 않은 수질이나 토질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창독瘡毒이 된다. 남강이 상로를 연 재령읍의 경우는 들판 가운데 있는 마을이어서 우물을 파도 논곤물과 개울물이 붉게 솟아 나와 모래와 숯을 통궤에 넣고 걸러 먹어야 했다.


그래서 여름이면 배앓이 병이 잘 돌았다. 그러자 남강은 재령에 올 때마다 배앓이에 좋은 환약을 가지고 가 약장사도 겸했다. 언죽번죽 떠벌리는 짓이 넌덕스럽고 너름새가 술술하다. 게다가 신수가 훤한 장돌뱅이인데다가 물건값도 헐하게 내주니 이르는 곳마다 동네 아낙들이 화객을 맺자고 하는 판세였다.


한해가 지나 열여섯이 된 장돌뱅이 남강은 처음에는 등에 지고 다니는 유기짐이 늘어 나귀에 웃짐을 싣고, 그 다음에는 장사가 번창하자 소달구지에 싣고 다녔다. 이렇게 해서 경험이 늘고 자본도 늘게 되었는데, 남강은 유기를 외상으로 깔아 가을에 쌀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농가에서 짓는 목화를 대신 받기도 했다.


당시 황해도 재령, 은율, 신천 지방에서 나는 목화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평안도 사람들은 황해도 솜을 첫해는 이불솜으로 넣어 쓰다가 그 다음해에는 그 이불솜을 꺼내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햇솜으로 옷감을 짜는 것보다 훨씬 질기기 때문이었다. 이러구러 그의 나이 24세가 되던 해인 1887년에는 청정에 유기전을 하나 차릴 자본을 마련하게 되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장터의 경쟁구조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무엇으로 어디에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돈을 버는 유일한 해결 방법이다. 이를 보고 요즘말로 마케팅 컨셉트로 무장되어 있어야 하고 제품과 서비스의 차별화가 포지셔닝되어야 한다고 어렵게 말한다. 굳이 문자를 안 써도 남강은 잘 알고 있었다.


첫째, 시장을 철저하게 세분화해야 한다. 어느 지역을 보자. 월수입이 250만 원 내외인 중산층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려고 한다. 시장을 세분화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심리상 느끼는 기준을 찾는 것이다. 물화를 팔아야 하는 장돌뱅이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되는 특성들이 고객이 느낄 때 동일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기의 경우 외상을 주거나 구변이 좋은 것만으로도 제품을 사주지만, 더 나아가서는 "제품에 대한 여러 변수들을 고객의 심리적 요인으로 묶어서 장사에 응용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경쟁자를 분석해야 한다. 세분화된 시장별로 어떠한 고객들로 구성돼 있으며, 어떠한 경쟁자가 강한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다른 장돌뱅이들이 값을 헐한 제품으로 단골을 맺고 있고 그곳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자신의 위치를 신속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반대로 경쟁력이 있다고 가늠이 되면 그 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다양한 방략을 짜고 열심히 추진해야 한다. 또한 남강은 시장과 수요에 대한 징조를 수시로 알아내는 그 자신 특유의 마케팅 정보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그는 황해도 바닥에서 굳건한 자신의 위치를 고객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숱한 유기장수들과의 앞 다툼에서 우위를 잡게 될 수 있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원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원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