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력 수업

   
캐스 선스타인 (지은이), 신솔잎 (옮긴이)
ǻ
윌북
   
19800
2025�� 04��



■ 책 소개


“우리는 충분히 생각하고 선택하는가?”
휘둘리지 않는 최선의 결정을 끌어내기 위한 지적 탐구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내리는 크고 작은 결정이란 무엇이며, 어떤 결정법이 합리적이고, 사람들이 어떠한 함정과 모순에 빠지는지를 두루 살피는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이자 차별점은 단순히 경제학의 비용편익분석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결정에는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얽히며, 우리는 때때로 인지 편향에 빠지고, 또한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존재다. 저자는 이 모두를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고려하여 가장 바람직한 결정법을 모색한다.

이 책은 ‘알고리즘에 의한 결정’이라는 오늘날 시급한 현안을 다루면서 동시에 사람들에게 퍼진 알고리즘 혐오(반감)와 알고리즘이 할 수 없는 일(혁명을 예측할 수 있을까?)까지 폭넓게 조명하며, 가장 중요한 전제를 놓지 않는다. 결국 결정은 우리가 스스로 내리는 것이자 내려야 하는 것이라는, 자유로운 인간의 ‘주체성’이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한 가지 큰 깨달음을 준다. 오늘의 점심 메뉴 선정부터 5년을 책임질 대통령 선거까지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은 매우 다양하고, 세상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며, 저마다의 합리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앞두었다면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힘을 길러보자.

■ 저자 캐스 선스타인
저자 캐스 선스타인은 미국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법학자이다. 시카고대학교 로스쿨과 정치학부의 법학 교수를 거쳐, 현재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출간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넛지’의 공저자로 명성을 얻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오바마 정부에서 규제정보국 국장으로 일하며, 당시 대통령의 정책 고문으로 행동경제학을 정부 정책에 활용했다. 백악관을 떠난 뒤에는 하버드대학교 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겨 하버드 로스쿨의 ‘행동경제학과 공공정책 프로그램’을 창립하고 이끌었다. 2018년 인문학, 사회과학, 법학, 신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학자에게 수여하는 홀베르그상을 받았고, 2020년 세계보건기구 ‘건강을 위한 행동 통찰력과 과학에 관한 기술 자문단’ 의장으로 임명됐다. 2021년에는 국토안보부의 선임 고문과 규제 정책 책임자로 바이든 행정부에 합류했다. 그는 미국 의회 위원회에서 많은 주제에 대해 증언했으며, 유엔과 유럽 위원회, 그리고 세계은행과 많은 국가 관계자에게 법과 공공정책 문제에 대해 조언했다. 또한 영국 정부의 행동통찰력팀(BIT)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넛지’, ‘룩 어게인: 변화를 만드는 힘’, ‘노이즈: 생각의 잡음’, ‘페이머스’,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등이 있다.

■ 역자 신솔잎
역자 신솔잎은 프랑스에서 국제대학을 졸업한 후 프랑스, 중국, 국내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번역 에이전시에서 근무했고,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테솔 수료 후, 현재 프리랜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면서 외서 기획 및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다양한 외국어를 접하며 느꼈던 언어의 섬세함을 글로 옮기기 위해 늘 노력한다. ‘스토리 설계자’, ‘불안 해방 일지’, ‘유튜브, 제국의 탄생’,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등 다양한 책을 옮겼다.

■ 차례 
머리말

1장 신중한 전략: 어떻게 결정할지를 결정하기
2장 인생의 갈림길에서 물어야 할 질문
3장 아는 것이 힘인가, 모르는 것이 약인가
4장 정치적 신념의 양극화: 기후변화에 대한 믿음
5장 믿음을 지킬 것인가, 바꿀 것인가
6장 일관성은 언제 어떻게 무너지는가
7장 합리적이고 가치로운 소비를 위한 경제학
8장 불행해지는 줄 알면서도 SNS를 끊지 못하는 이유
9장 알고리즘은 더 공정하고 현명한가
10장 인생의 결정권을 스스로 쥐어라

맺음말 “취하라!”
감사의 글

 




결정력 수업


신중한 전략: 어떻게 결정할지를 결정하기

이차적 결정(second-order decisions)은 처음부터 평범한 의사결정 상황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활용하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인지적 부담과 책임감, 평등, 공정성이라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규칙’을 세우는 것도 이차적 결정의 사례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엄격한 규칙을 따르기도 한다. 가령 절대로 거짓말이나 부정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식전에 알코올을 섭취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법조계에서 몇몇 판사는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이후에 결정을 내리는 부담감을 낮춘다는 이유에서 규칙을 선호한다. 판단을 남에게 맡기는 ‘위임’도 이차적 전략 중 하나다. 정치에서는 입법부가 행정부와 같은 제3자에게 결정을 위임할 때가 많다. 하지만 대안으로 쓸 수 있는 전략 또한 다양하며, 규칙에 얽매인 결정과 위임으로 인해 윤리적인, 심지어 민주적인 문제가 생겨난다.


첫 번째로 다룰 이차적 결정은 최종 순간에는 부담감을 대단히 크게 낮춰주지만 그에 앞서 생각을 상당히 많이 해야 하는 전략이다. 높음-낮음(High-Low)이라고도 하는 이 결정은 내리기가 어렵고 전혀 즐겁지 않은 과정이 선행된다. 규칙을 정하거나, 가정을 세우거나, 루틴을 짜는 전략이 그렇다. 여기서는 일차적 결정과 이차적 결정을 함께 내릴 때 발생하는 도덕적, 인지적 그리고 그 외 총체적인 부담이 짊어질 만한 가치가 있는지 물어야 한다. 두 번째는 낮음-낮음(Low-Low)이다. 이 이차적 전략은 최종 결정 전 또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이 적다. 동전 던지기로 정하듯 무작위로 뽑거나, 큰 결정을 작은 단계들로 나눠 내리거나, 인지 편향에 의존하는 전략을 생각해보자. 부담이 적다는 건 대단한 이점인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해당 전략이 불공평한 상황이나 실수를 너무 많이 발생시키지는 않는가다. 세 번째는 낮음 높음(Low-High)이다. 이 이차적 전략은 결정의 주체에게는 사전에 부담감을 적게 안겨주지만 그 대가로 결정이 ‘전가된’ 누군가에게는 차후의 부담감이 높아질 수 있다. 신뢰하는 사람에게 또는 조직에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이 가장 대표적이다.


결정과 실수

전략

다음은 주요 이차적 전략들을 소개한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아래와 같이 분류했지만 다양한 항목이 서로 배타적이라고 여겨서는 안 되고 몇몇 내용이 중복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작은 단계들(small steps).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을 단순하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은 작고도 점진적인 결정을 먼저 내리고서 다른 문제들은 다른 날에 해결하는 것이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가늠하기가 어렵고 명백하게 비교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면, 사람들은 작고도 되돌릴 수 있는 조치를 자주 취한다. 예컨대 제인은 로버트와 결혼하고 싶은지 판단하기 전에 동거를 결심한다. 매릴린은 자신이 정말 법학에 관심이 생기는지 보기 위해 야간 학교에 들어간다. 영미 판례법이 바로 이와 유사하게 ‘작은 단계들’로 접근한다. 보통 판사들은 각 사례에 국한된 작은 결정들을 내리는데, 이는 판례법만이 아니라 형법상 중대한 사안에서도 확신이 없을 때 선호되는 방식이다.


휴리스틱(heuristics). 사람들은 각자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방법으로 휴리스틱 기제, 즉 정신적 지름길을 따를 때가 많다. 이를테면 지방선거에서 누구에게 표를 줘야 할지 결정하기가 너무 벅차다면 소속 정당을 바탕으로 한 휴리스틱을 사용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휴리스틱은 상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청년인지 노인인지 등 일반적으로 속한 범주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규정한다. 당신의 행동은 이러한 기제의 결과물일 수 있다. 휴리스틱은 ‘합리성’에 벗어난 행동을 야기한다고 알려지며 대단한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나타나는 인지적 부하나 다른 결정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상당히 괜찮은 결과를 불러오는 방법일 수 있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휴리스틱 기제는 대체로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낮음-높음 전략: 위임

비공식적 위임과 공식적 위임

당신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가정해보자. ‘정말 재미없어.’ 아니면 어떠한 사안에서는 자신이 좋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정말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 거야.’ 그럼 당신은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거나 부탁할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위임은 최종 결정 전과 그 결정을 내리는 동안 주체가 느낄 부담을 낮추려고 의사결정을 남에게 넘기는 이차적 전략이다. 보통은 주체가 결정하기를 좋아하지 않거나, 자신이 현명하게 결정할 수 있는지 신뢰하지 않거나, 전략적/윤리적 이유로, 아니면 단순히 정보가 부족해서 책임을 피하려 하거나, 올바르고 전문적인 결정을 내려주리라 믿는 수임인을 찾았을 때 이 전략을 사용한다.


언제 위임해야 하는가

위임은 적절하고 신뢰할 만한 수임인이 있을 때, 주체가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때면 언제든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위임은 분명 실수로 이어진다. 책임을 회피하고, 위임으로 인해 불공정한 상황이 펼쳐지며, 오류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거나, 심지어 총체적인 결정 비용이 더욱 커진다. 위임은 이차적 전략들 중 하나에 불과한 만큼 주체는 다른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높음-낮음 전략과 비교해보자. 위임을 하는 사람이 결정 부담을 마주하고 싶지 않고, 실행 가능한 규칙 또는 가정을 수립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규칙과 가정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더욱 많은 비용이 들며, 수임인이 해당 안건을 충분히 더욱 잘 처리할 수 있다면 위임이 바람직하다. 개인은 점심 식사를 어디서 할지, 어려운 의료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지, 어디에 투자할지 등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위임할 수 있다. 다양한 구성원이 속한 조직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거나, 주체 또는 기관이 인지적, 동기적 문제를 마주할 경우에도 위임이 타당하다. 정치적, 사회적 및 여타 이유로 결정의 책임을 회피하고 싶다면 높음-낮음 전략보다 위임이 더욱 좋겠지만, 그러한 태도는 정당성이 없다는 문제를 불러온다. 입법자가 환경 보호 문제나 장애인 차별 문제에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없어 ‘전문가’에게 의존하려는 상황이 그렇다.


높음-낮음: 규칙과 가정

사람들은 나중에 발생하는 결정 부담을 줄이고자 특정 상황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이차적 결정을 자주 내린다. 가장 일반적인 사례는 사전조치(precommitment)다. 맥락이 비슷한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많고 미리 계획해야 할 때는 규칙에 얽매인 사전조치가 가장 유효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규칙으로 인해 때때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오류를 당연하게 여긴다. 사전조치를 잘 해두면 이차적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결정을 내릴 때에는 상황이 훨씬 단순해진다.


다양한 규칙, 다양한 가정

여러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결과를 분명히 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사전에 시간을 많이 쏟는다. 의사들은 수많은 규칙을 적용해 심장 질환을 치료한다. 미국에서는 다수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때문에 법체계에 장애 급여, 산재 보상, 범죄 양형에 관한 규칙을 개발했다. 이러한 규칙들이 상당한 오류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해당 시스템을 운영하고 또 꽤 많은 결정을 내리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바, 얼마간의 오류는 용인할 수 있다.


기간과 계획, 신뢰

기관은 높음-낮음 전략을 택할지 아니면 위임을 택할지 결정에 직면할 때가 많다. 우리는 앞서 위임이 더욱 나은 상황을 확인했다. 하지만 다음 세 가지 상황에서는 높음-낮음 전략이 더 바람직하다.


첫째로 계획이 중요한 상황에서는 사전에 규칙 또는 가정을 정하는 것이 좋다. 둘째로 규칙을 세우는 비용이 충분히 낮고, 그 규칙이 정확하며, 실제로 잘 이행될 것이라고 주체 또는 기관이 상당히 자신한다면 위임을 할 이유가 없다. 세 번째 상황이자 가장 당연한 경우는, 신뢰할 만한 수임인이 없거나 다른 개인 또는 기관에게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부당해 보일 때다. 함께 일하는 동료 가운데 신뢰할 사람이 없다면 해당 결정을 직접 내릴 것이다. 또한 결정 내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그렇게 할 것이다.


낮음-낮음보다 높음-낮음이 바람직한 때는 언제일까? 여기서는 계획을 세우는 데 관심이 있는지가 대단히 중요한데, 계획을 세우려 한다면 사전에 대단히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개인 또는 기관이 좋은 규칙이나 가정을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면 무작위 선택을 하거나 점진적으로 결정을 해나가는 전략은 적절하지 않다. 가족은 집에서 지켜야 할 여러 규칙을 세운다. 최근 입법부는 사례별로 접근하는 판례법 방식에서 벗어나 사전에 명확한 규칙을 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영국과 미국에서 이와 같은 거대한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계획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 반면 법원이 작은 단계들을 통해 좋은 결과를 도출하리라는 믿음은 낮아진 것이 큰 이유다. 혼합 전략도 가능하다. 기관은 특정 사례에는 규칙을 만들되 다른 사례는 결정을 위임하거나, 수임인에게 가정과 표준을 교육할 수 있고, 법 또는 실천적 추론의 영역에서는 규칙에 근거한 판단과 작은 단계들을 거치는 전략을 결합해 사용할 수도 있다.


낮음-낮음: 뽑기와 작은 단계들

평형, 책임감, 약속

개인이나 기관이 선택보다 뽑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서 작은 단계들이 최선일까?


기관은 배심원과 군 복무자를 추첨으로 뽑을 수도 있다. 배심원단 추첨제가 매력적인 이유는 해당 시스템을 운영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고, 다른 대안이 더 많은 실수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은 누가 배심원을 맡을지를 두고 사회적인 논쟁을 초래하고 배심제도 자체에 부정적인 결말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여기서 핵심은 배심원단이 커뮤니티의 대표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인데, 무작위 프로세스가 이 목표를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또한 많은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사회적 사안을 배분하는 가장 공정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배심제도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배심원단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밝히게 하거나, 참여하지 않는 사유를 각각 조사하거나, 참여 또는 불참에 따라 금전적 비용을 책정하는 방식은 더욱 나쁜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군 복무자 추첨 또한 선발 기준을 명시하면 그중 몇몇 항목이 도덕적으로 의혹을 살 수 있으며 따라서 무작위 결정이 오류가 적다는 믿음에서 시행된다.



알고리즘은 더 공정하고 현명한가

수감과 보석, 심장마비

미국의 몇몇 관할권에서 구속 전 피고인을 석방하느냐 마느냐의 결정은 도주할 위험이 있는가라는 한 가지 질문에 달렸다. 때문에 판사들은 예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피고인이 관할구역을 벗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다른 관할구역에서 해당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 또한 중요하며 이 역시 예측 문제다.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도주 위험과 범죄 가능성은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밝혀졌기에 첫 번째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측한다면 두 번째 가능성 또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클라인버그와 그의 동료들은 보석 심리 때 판사에게 주어지는 과거 범죄 기록과 현재의 위법 행위라는 데이터를 동일하게 입력한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이 연구진의 핵심 결론은 이렇다. 중요한 모든 측면에서 알고리즘이 진짜 판사들보다 더욱 나은 판단을 한다.


1. 알고리즘을 사용하면 구금률을 동일하게, 즉 인간 판사가 판결할 때와 같게 유지하는 동시에 범죄율은 24.7퍼센트까지 낮출 수 있다. 또는 알고리즘으로 현재의 범죄율을 동일하게 유지한다면 수감률은 무려 41.9퍼센트나 낮아진다. 즉, 판사가 판단하지 않고 알고리즘을 활용했을 때 단 한 명의 추가 수감자 없이도 수천 건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는 범죄율을 높이지 않고도 수천 명이 미결 구금 중에 석방될 수 있다. 알고리즘을 활용한다면 범죄율 감소와 구금률 감소 간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으로 분명 다양한 정치적 선택을 내릴 수 있다.


2. 판사들은 관할구역에서 벗어나거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 알고리즘이 특히나 고위험군으로 판단한 수많은 사람들을 풀어주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판사들은 알고리즘이 가장 위험한 상위 1퍼센트에 속한다고 판단한 피고인 가운데 48.5퍼센트를 풀어준다. 이렇게 풀려난 피고인들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가 56.3퍼센트에 이른다. 이들이 재구속될 가능성은 62.7퍼센트다. 판사들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들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


3. 개중 유독 엄격한 판사들은 특히나 보석을 허가하지 않는데, 이러한 엄격함은 가장 위험한 피고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가장 위험한 인물들만 골라 엄중하게 판결한다면, 지금처럼 많은 이를 수감시키는 동시에 범죄 감소율은 75.8퍼센트 높일 수 있다. 또는 현재의 범죄 감소율을 유지하면서 수감률을 지금의 48.2퍼센트로 낮출 수 있다.


알고리즘이 판사보다 더욱 나은 성과를 보이는 이유를 모두 설명하자면 상세한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장의 주제와 관련한 핵심은 특히나 흥미롭다. 3번에 드러나듯 판사는 최고 위험군에 속하는 피고인을 판결할 때 그리 좋은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 이는 가장 엄격한 판사들만이 아니라 모든 판사가 그렇다. 그 이유가 되는 한 가지 편향이 눈에 띈다. 바로 현재 범죄 편향(current offense bias)이다. 물론 여기서는 판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편향은 우리가 일상에서 내리는 모든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와 유사한 편향에 사로잡힌다면,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거나 더 나아가 알고리즘에게 결정을 맡기는 데에 관심이 생길 수도 있다.


어디에도 편향이

법과 의료계의 인력은 초보자가 아니라 훈련과 경험을 쌓은 전문가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좋겠다. 그럼에도 이들은 심각하고도 체계적인 오류를 일으키는 인지 편향에 시달린다. 정확히 이해하자면 현재 범죄 편향은 ‘가용성 편향’의 가까운 사촌쯤 된다. 어떠한 확률을 평가할 때 관련 사례를 떠올리는 것이다. 보통 의사들은 가용성 편향의 영향을 받는다. 환자가 최근 폐색전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면 그에 영향을 받아 의사는 해당 검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머그숏 편향과 현재 증상 편향, 인구통계적 편향은 ‘대표성 편향(representativeness bias)’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확률을 따지며 개인 또는 어떤 상황의 알려진 특성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상태를 대표하는지 아니면 유사한지 판단할 때가 많다.


정확한 예측이 목표라면 알고리즘을 쓰는 것이 훌륭한 방법일 수 있다. 개인에게나 민간기관 및 전 세계의 정부를 포함한 공공기관에게 알고리즘은 인지 편향의 영향을 낮추거나 그것에서 벗어날 방책이 된다. 예컨대 새로운 도시에 사무실을 열어야 할지, 프로젝트가 6개월 안에 끝날지, 어떠한 개입이 당뇨와 암에 고통받는 환자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러한 상황에서는 인지적 편향이 인간의 결정을 왜곡한다. 가용성 편향이나 대표성 편향 또는 이들의 사촌쯤 되는 편향들이 큰 힘을 발휘하고, 계획을 잘못 세워 나타난 비현실적인 낙관성이 문제를 악화할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은 놀라운 가능성을 지녔다. 알고리즘이 돈과 생명을 모두 구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더욱 나은 성과를 보이는 상황을 쉽게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알고리즘이 ‘모든’ 인간보다 더욱 나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최고의 의사들이 알고리즘보다 더욱 나은 진단을 할 수 있고, 최고의 판사들이 알고리즘보다 더욱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상위 5퍼센트의 인간이라면 어떨까? 이들이 알고리즘보다 더 나을까? 몇몇 주요 연구에서 보석할지 말지 결정을 두고 알고리즘이 실제 판사의 90퍼센트보다 나은 판단을 하는 반면, 상위 10퍼센트의 판사는 알고리즘을 능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고의 판사들은 각자 자기만의 정보를 보유하고 이를 활용해 더욱 나은 판단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우리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알고리즘에게는 인간이 가진 정보가 없을 수 있고, 이런 이유로 인간이 알고리즘을 능가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제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하는 판사들은 더욱 나은 판단을 내리기 위해 이런 정보를 활용하지 않는다. 이들이 현재 다루는 사건과 무관한 다른 피고인이 석방되어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건을 접한다면, 현재의 위험도가 낮은 피고인을 구금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과잉 반응은 가용성 편향과 매우 근접한, 또는 가용성 편향의 한 가지 형태인 행동 편향(behavioral bias)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알고리즘이 할 수 없는 일

물론 알고리즘이 잘 해낼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가령 당신이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될지 알고리즘이 예측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사랑하는 상대를 찾도록 알고리즘이 도울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이러한 질문들의 답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서맨사 조엘과 그의 동료들은 “과거 연구자들이 연인 선택과 관련해 밝혀낸 특성과, 선호를 바탕으로 작성한 개인의 자기 보고식 검사 결과”를 다량 보유한다 해도 알고리즘으로 “두 사람이 만나기 전이라면...연인이 되는 과정 속 호환성 요소”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엘과 동료들은 성적 끌림이란 예측이 가능한 화학 반응이 아니며 “지진에 가까운, 역동적이고 혼돈과 같은 과정이기에 현실적으로 예측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상당한 과학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혁명을 예측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알고리즘이 등장하기 이전, 한 연구에서 경제학자 티머 쿠란은 혁명은 그 본질상 예측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쿠란은 근본적인 문제가 ‘선호 위장(preference falsification)’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공개하지 않고, 그래서 이들이 실제로 혁명 운동을 수용할지 말지를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사람들의 선호를 모른다면 상황이 조성되었을 때 이들이 반란에 참여할지 알 수가 없다. 쿠란은 사람들이 이러한 운동에 참여하기로 마음먹는 임계점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운동이 초기 단계일 때 참여하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운동에 참여하려면 소수 집단의 강력한 지지와 같은 어떠한 동력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쿠란은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중요한 요소 역시 미리 파악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혁명이 일어나려면 사람들은 특정한 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특정한 말을 하거나 특정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목격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떤 행동을 하는 누군가를 볼지 사전에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을 것이다. 쿠란이 알고리즘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알고리즘으로도 이러한 예측을 하기는 어렵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파악하기 힘들어하고 사람들의 임계점을 짚어내지 못한다. 어떤 점에서는 혁명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이유와 성적인 불꽃이 튀어 오르는 지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분석은 혁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선호 위장, 다양한 임계점, 사회적 상호작용, 이 중 하나 이상은 여러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책이나 영화, 음악 앨범이 성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자. 물론 테일러 스위프트의 새 앨범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고 실력도 명성도 없는 가수의 새 앨범은 실패하리라는 점은 알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상황은 뜻밖의 우연에 따라, 정확히 언제 누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초반의 인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여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성공 또는 실패를 가르는 변수가 셀 수 없이 많은 탓에 알고리즘은 초기 단계에서는 성공적으로 예측하지 못할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한 가지 특별한 문제가 발생한다. 시장이 형성되고 나면 뛰어난 알고리즘의 예측이 자동으로 시장에 반영되는 탓에 해당 예측의 신뢰도가 곧장 떨어지거나 어쩌면 전혀 신뢰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아직 알아가야 할 것들이 많지만, 알고리즘으로 결정해야 할지를 판단할 때 다양한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핵심은 명심하길 바란다. 다양한 상황에서 환경이 충분히 안정적이라면 편향과 잡음을 줄이는 알고리즘으로 결정을 내릴 때 정확도가 높아진다. 다만 앞서 살펴봤듯 우리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상당히 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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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