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크라이시스

   
오세균
ǻ
파라북스
   
20000
2024�� 12��



■ 책 소개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몰락하는 ‘슈퍼 차이나’의 현주소에 대한 통찰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과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변화하는 중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지방정부의 부채 위기, 실업률 급등 등 내부 경제 문제와 권력 집중, 신냉전의 여파가 중국을 ‘슈퍼 차이나’에서 ‘피크 차이나’로 몰락하게 한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미중 핵심이익 충돌이 확대되면서 중국이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을 경고한다.

현장에서의 생생한 기록과 통찰로, 이 책은 중국이 직면한 도전과 글로벌 정세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 저자 오세균
KBS에 1993년 입사하여 경제부, 사회부, 국제부를 거치며 31년간 재직했다. 한미 FTA 취재팀을 이끌었고 중국지국장 겸 특파원으로 베이징과 선양에서 일했다. 한국 방송사 특파원 가운데 최장인 7년 넘게 중국 현지에서 근무했고 국내에서도 중국 관련 다큐 프로그램 〈미중 신냉전 시대 오나〉 〈화웨이, 우리는 안전한가〉를 제작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국립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글로벌 리더십 과정을 밟았으며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교(UIBE)에서 MBA 석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징 특파원 시절 인터넷 기사 1,000만 뷰를 기록해 ‘KBS 디지털 기자상’을 수상했고 구독자의 호응으로 KBS 홈페이지에 오세균의 ‘중국話’ 고정 코너를 개설하기도 했다. 2024년 퇴직 이후 중국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 차례
들어가며

01 서문: 대척점에 서다
‘흑묘백묘’를 버린 시진핑의 야망

02 트럼프에 대한 기억: 패배의 징후
주장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5G 스마트폰이 쏘아올린 신냉전의 시작
중국식 반도체 대약진 운동
무역전쟁 도화선, ‘카피’ 스텔스기 젠-31
아시아 최고 갑부 리카싱, ‘Sell China’
ㆍ여적 : 화웨이의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

03 격화되는 전선: 군사와 경제
중국 로켓군 손바닥 보듯 보는 미국
중국군 치명적 결함, ‘실전 경험’
미중 남중국해 힘겨루기, ‘신형대국관계’
중국 정부의 해양 전위대, ‘중국어선’
홍콩의 중국화, 속도 내는 일국일제(一?一制)
ㆍ여적 : 국경에 부는 반간첩법 ‘칼바람’

04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동진
러시아 ‘후방’ 자처한 중국
서방과 대립각이 가져다준 선물, ‘블라디보스토크’
중러 국경 말려드는 화물, 물류 적체 심화
중국 3대 은행, 러시아 금융결제 거부
멀어진 대북제재, 두만강에 나타난 ‘유조열차’
ㆍ여적 : 김정은 방러 때 보인 북중간 ‘이상’ 조짐

05 귀환한 항미원조: 반미 캠페인
영화 장진호, ‘항미원조’ 점화
북핵실험에도 대북제재는 회피
시진핑 ‘이데올로기’ 주입, 새 교과서
애국주의에 밀려나는 삼성과 애플
ㆍ여적 : 사드 사태로 롯데 길을 잃다

06 시진핑 외교: 항미 닮은 항일
미국에 불쑥 꺼낸 항일영웅 2,590명
‘노구교 사건’ 77주년, ‘항일’이 필요했다
항일 승전 70주년에 꺼낸 ‘다모클레스의 검’
일본 오염수 방류에 “소일본 타도”
‘극일’을 위한 축구계 대대적 사정
ㆍ여적 : 뤼순 대학살 현장에 들어선 일본풍 거리

07 국익에 따라 달라지는 중국의 항일
양떼가 밟고 지나는 윤동주 묘역
가로막힌 봉오동·청산리 유적지
안중근 가족 표지석 철거, 이상설 기념비는 뜯겨져
뤼순감옥을 떠나지 못하는 안중근 유해
ㆍ여적 : 독립군 기지에 나타난 백두산호랑이

08 홍콩보안법: 부메랑으로 돌아온 역풍
가깝지만 너무 먼 홍콩인과 본토인
제 발등 찍은 ‘호주 때리기’
‘석탄 부족’로 동북부 난방비 2배
불 꺼진 압록강 단교, 북한의 수풍댐 전기 받아
‘최악 가뭄’ 4개월째, 석탄 앞으로 돌격
ㆍ여적 : ‘마오둥’ 몰아낸 하얼빈 ‘빈자의 등’

09 양극화 해법: 공동부유
야시장 경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구호로 끝난 2020 ‘샤오캉 사회’
농민공 자녀 유서, “수년간 죽는 게 꿈”
정부 보호비 명목, ‘공동부유 지원금’
연예계에 부는 공동부유, ‘칭랑’ 운동
공동부유 속 고소득자는 ‘공적’
ㆍ여적 : 한줄기 빛 ‘주식마을’ 탄생

10 공동부유 결말: 침몰
사교육 규제에 학원가 썰렁, 집값 급락
세계 최대 인공섬 건설, 헝다 파산으로 좌초
얼어붙은 부동산, 투신 소동에 시위까지
코로나에 농민공 직격탄, 농촌 인력난 심화
생수보다 싼 우유, 낙농업 폐업, 도산
ㆍ여적 : 정부 규제 타깃, 빅테크도 ‘실업 쓰나미’

11 피크 차이나: 인구재앙
허강화, 지방 소멸 도미노
넘치는 ‘광군’, 유치원이 노인시설로
한 자녀 정책에 벌금과 피임 증명
ㆍ여적 : 소황제와 헤이하이즈, 달라진 운명

12 통제의 기술: 정점
코로나19로 디지털 감시체계 강화
CAC, AI 통제와 여론조작 주도
디지털 독재와 정어일존(定於一尊)
ㆍ여적 : 국가안전부 감시의 ‘눈’

13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내부의 적
2인자 없으니 총리 기자회견도 없다
사람이 떠나가면 차는 식는다
중국에서 가장 힘이 쎈 ‘시자쥔’
ㆍ여적 : 중국 관료주의의 ‘적’ 공무원

글을 마치며: 중국, 잃어버린 10년의 시작될까



차이나 크라이시스


트럼프에 대한 기억: 패배의 징후

주장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2018년 3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하나가 세계 무역질서의 물줄기를 바꿨다.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 쉽다(Trade wars are good, and easy to win)”로 시작된 무역전쟁은 세계 총생산량(GDP)의 40%를 차지하는 양국의 무게감만큼이나 큰 파문을 불러오고 있다. 무역분쟁을 협상으로 풀어보려는 양국의 노력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금 미중 간의 협상은 양쪽 모두 일방적이라고 인식하는 데 문제가 있다. 협상은 주고받을 때 성립된다. 하지만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로 손해만 봤다는 피해의식이 강하고,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밀려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모양새는 취하고 싶지 않다.


중국 남부를 흐르는 최대 강줄기인 주장은 중국에서 창장과 황허 다음으로 3번째로 긴 강이다. 주장은 크게 시장, 베이장, 동장 등 3개의 주요 지류로 이루어져 있다. 주장의 가장 큰 지류인 시장이 포산 인근에서 베이장과 합류한 뒤, 이후 동장과 합류해 주장이 형성되고, 광둥성의 성도인 광저우를 지나 남중국해로 흘러간다. 주장 삼각주는 주장의 지류들이 합류해 남중국해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넓은 삼각주 지대이다. 이 삼각주 지역에 광저우와 선전, 포산, 둥관, 중산, 주하이, 마카오, 홍콩 등 중국 남부의 핵심 도시들이 모여 있다. 따라서 이 지역 경제권은 중국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들로 구성돼 있으며 제조업과 첨단기술, 금융, 무역의 중심지이다. 중국 전체 수출의 약 25%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며 중국 전체 GDP의 약 1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경제의 핵심 성장 엔진이다.


이 주장이 흐르는 광저우 강변에서 매년 두 차례, 봄과 가을에 광저우 ‘캔톤페어(Canton Fair)’, 즉 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가 열린다. ‘캔톤(Canton)’은 광저우의 옛 영어식 이름이다. 서양 국가들이 과거 중국과 교류할 때 광둥어 발음으로 ‘캔톤’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일부 영어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1957년부터 시작된 이 박람회는 해마다 20만 명 이상의 전 세계 바이어가 찾는 세계 최대 규모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무역 박람회이다. 2019년 캔톤페어는 미중 무역전쟁 이후 처음으로 열린 박람회로, 중국 기업이 미국 이외의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적 전환이 이루어질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잠실운동장 15개를 합한 규모의 전시장에 6만 개가 넘는 참가 부스가 마련됐고 3주간 진행된 박람회에는 전자제품과 기계, 건축자재, 소비재, 의류, 식품, 건강 제품 등이 단계별로 전시됐다.


하지만 2019년 캔톤페어의 열기가 예년만 못했다. 박람회의 주 고객이던 미국과 유럽 바이어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바이어 참가자 수가 수백 명, 심지어 수천 명이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가 급증하면서 중국과 거래를 하려는 미국 바이어들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행사장 인근에 공장을 두고 있는 한 제화업체는 무역전쟁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 영업부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40% 부과하면서 일부 주문이 예정보다 많이 미뤄졌다며 일부는 지금까지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어렵다 보니 업체마다 바이어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뜨거웠다. 가죽가방 생산업체의 마케팅 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점점 올리고 있는데 아마 모든 기업이 다 영향을 받을 거라며 인터뷰해 보면 아마 모든 기업의 반응이 다 같을 거라고 말했다. 중국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인 미국과의 무역분쟁은 박람회 계약 건수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캔톤페어 기간 이뤄진 대미 수출 계약액은 1년 전에 비해 3분의 1가량 줄었다.


박람회장 인근에 있는 둥관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 제조업의 메카이다. 약 1만 개 이상의 제조업체가 둥관에 입주해 있으며 전자제품과 기계, 섬유, 의류와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뿐만 아니라 전자와 IT 부문의 글로벌 공급망까지 잘 갖추고 있다. 애플과 삼성, 화웨이 같은 글로벌 IT 기업의 제조 파트너들도 둥관에 입주해 있다. 1990년대 이후 급속하게 성장해서 선전과 함께 중국 개혁개방을 선도했던 대표적인 상공업도시지만 미중 무역전쟁 이후 둥관은 활기를 잃었다.


실제로 중국 중소기업의 체감 경기를 반영하는 차이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 ‘PMI’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차이신 제조업 PMI가 여러 차례 50 이하로 떨어지며 경기 둔화를 나타냈다. PMI가 50 이하라는 것은 제조업 경기가 위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글로벌 수요 둔화와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영향을 반영한 것이다. 여기에 팬데믹의 영향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2020년과 2021년, 둥관에서는 상당수의 중소 제조업체들이 도산하거나 폐업했다. 특히 해외 주문 의존도가 높은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둥관에 위치한 전자부품 제조업체와 완구 제조업체들은 미국과 유럽의 수요 감소로 인해 공장을 유지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신냉전의 그늘이 중국의 최대 제조업 허브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보다 ‘잃을 게’ 많다는 게 중국의 고민이다. 애당초 보복관세로는 싸움이 될 수 없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무역질서가 결코 중국에 이롭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 2018년 체결된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는 단적인 예이다. 협정에서 미국, 캐나다, 멕시코, 세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든 ‘비시장경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할 때 나머지 두 나라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실 냉전시대와 같은 무역협정이지만 현재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중국을 ‘비시장경제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봉쇄 독소조항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세계 무대에서 울림이 없다. 결국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동진

러시아 ‘후방’ 자처한 중국

신냉전 먹구름이 짙어지던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우 전쟁이 발발했다. 이날 중국 외교부 정례 기자브리핑에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렸다. 러시아의 동맹인 중국의 입장에 따라 확전 가능성도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흔히 ‘P2 동맹’이라 부른다. ‘P’는 중국(People’s Republic of China)과 러시아(Putin’s Russia)의 첫 글자를 따온 말이다. 주로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측면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협력하는 관계다.


개전 초기인 2022년 2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이 아닌 ‘특별군사작전’이라 명명했다. 러시아 내 전쟁으로 인한 부정적 여론을 완화하고, 국제적으로 덜 공격적인 행위로 묘사하려는 시도였다. 이에 보조를 맞춘 중국도 러시아의 표현을 존중해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불렀다. 이는 외교적 민감성을 고려한 균형외교 전략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국은 직접적으로 러시아의 행위를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모습도 피하려고 했다. 러우전쟁 1주기인 2023년 2월 24일, 중국은 12개항의 ‘우크라이나 사태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 입장’에서 중립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주요 내용은 주권존중, 전쟁중단, 평화협상 개시이다. 저우언라이 전 총리가 1950년대에 밝힌 평화공존 5원칙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는 이런 중국의 중립적 입장을 의심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중국이 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서방국가들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외교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러시아 무기지원을 놓고 미국과 또 대립했다, 2024년 8월 3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 대표가 중국이 러시아에 전쟁도구를 수출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에 대해, 겅솽 주유엔 중국대표부 부대표는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의 조성자가 아니며, 당사국도 아니다. 중국은 충돌 당사국 어느 쪽에도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군용과 민수용으로 모두 쓸 수 있는 이중 물품에 대해 엄격한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국이 중국책임론을 언급하는 데 대해 당시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16년 1월 8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반도의 핵문제는 중국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중국이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북한의 후방기지 역할을 하면서도 부정하는 화법이 비슷하다.


중국이 이처럼 러시아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와 지원에 소극적인 이유는 국제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전략적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피할 수 있고 서방국가의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있다. 2024년 5월 시진핑 주석이 프랑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전쟁에 관해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의 원인 제공자나 당사자가 아니며 협상촉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러시아를 전략적 파트너로 존중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과 유럽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바라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길 때와 패할 때를 모두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중국은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패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 국가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지만, 러시아의 군사력은 우크라이나보다 월등하다고 믿는다. 대신 중국은 러시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전쟁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한 러시아 내부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서방제재에 맞서 서방기업들이 철수한 러시아 시장의 공백을 메우는 데 앞장섰다. 중국 상품의 풍부한 공급능력은 제재로 인한 사회불안의 영향을 최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국민의 생활수준을 유지시켰다. 후방을 지켜준 셈이다. 이는 한편으로 중국에게 엄청난 시장기회를 창출했으며, 중국 제품은 러시아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중국은 비군사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주고 큰 이익을 얻었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방어선을 지키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의 주요 부대가 러시아 본토 깊숙이 진격했다면, 중국은 본색을 드러냈을 것이다.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을 것이다. 중러 관계는 상호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으며 상호 비빌 ‘언덕’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하거나 붕괴된다면, 중국은 서방국가들의 직접적인 압박대상이 된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이다. 그래서 중국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절대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것도 바라지는 않는다. 자칫 러시아와 함께 냉전적 블록화로 묶여 고립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제일 바라는 건 현상유지이다. 중국은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방휼지쟁을 꿈꾸고 있다. 중국은 지금 러시아와 서방 두 세력이 싸우다가 지쳐 쓰러지면 모두 잡겠다는 생각을 한 듯 보인다. 미국과의 패권전쟁도 여기서 실마리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귀환한 항미원조: 반미 캠페인

북핵실험에도 대북제재는 회피

중국은 지금까지 6차례 이어진 북한 핵실험에도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항미원조’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항해야 해서 북한이 필요하다. 중국이 늘 말하는 총알받이와 전쟁터로 쓸 바둑판의 돌이다. “물이 빠져야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는지 알 수 있다.”라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말처럼 중국은 평소 한중 우의를 얘기하다가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입을 다문다.


2016년 1월 6일 오전 10시, 북한이 기습적으로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2시간쯤 흐른 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당일 낮 12시 “첫 수소탄 실험을 완전 성공했다.”라고 특별 중대 방송을 통해 알렸다. 기상청과 미국 지질조사국(USGS) 등에 따르면 이날 북한 양강도 백암군 승지백암에서 19km, 길주 북서쪽 48km, 청진 남서쪽 약 80km 떨어진 지역에서 규모 4.3의 지진이 발생했다. 북한 양강도 풍계리 핵시설이 위치한 인근이다. 그간 북한이 2006년 10월 9일(1차), 2009년 5월 25일(2차), 2013년 2월 12일(3차) 등 세 차례 실시했던 곳이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투먼시에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면서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흘렀다. 평소 국경에 안 보이던 중국군이 배치됐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국경을 따라 흐르는 두만강변에 병력을 증강 배치해 경계를 강화했다. 유람선을 띄워 북한을 조망할 수 있는 관광지로 유명한 두만강광장에서조차 관광객들의 사진촬영을 불허했다. 중국군 병사는 관광객에게 북한 쪽을 찍어서도 안 되고 중국 군인을 찍어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한 중국군은 실제로 한 관광객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사진을 삭제하기도 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다음 날, 중국 환경당국이 북중 접경인 랴오닝성 단둥에서 핵실험에 따른 방사능 오염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이례적으로 긴급조사에 착수했다. 단둥은 북한 핵실험장인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직선으로 무려 420km나 떨어진 곳이다. 검측장비를 갖춘 검측차량을 동원한 가운데 실시된 방사능검사는 방호복장을 착용하고 ‘방사능응급측정’라고 쓰인 조끼를 입은 환경조사요원이 압록강변에서 이상 유무를 측정했다. 당시 취재진이 다가가 측정 이유를 물었지만, 중국 환경당국은 말을 아끼면서도 핵실험에 따른 영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처럼 중국은 북한 핵실험 직후 가장 가까운 지린성뿐만 아니라 헤이룽장, 랴오닝, 산둥까지 제2급주황색 긴급 대응체계에 돌입해, 방사성 물질에 대한 모니터링에 나섰다. 또한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창바이산 관리위원회가 있는 얼다오바이허진에 방사능 감측을 위한 긴급지휘부도 설치했다. 이후 중국 환경보호부는 동북 변경과 주변 지역의 방사능 모니터링을 한 결과 이상징후는 나타나지 않았고 인공 방사능 물질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즉각 북한 핵실험을 단호히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고, 당연히 해야 할 국제사회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며 대북제재에 동참할 뜻을 명백히 밝혔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이후 불과 8개월 뒤 5차 핵실험이 실시됐다.


중국의 속내는 대북제재에 진심인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김정일 시절부터 ‘비자금 창구’로 지목된 조선광선은행에 대한 제재 여부다. 조선광선은행은 2009년 미국 재무부로부터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제재대상에 포함됐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후에는 중국의 독자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중국의 제재로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던 단둥의 조선광선은행은 은밀히 영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제재를 받고 있는 조선하나은행도 사무실 노출을 꺼린 채 암암리에 대북송금 업무를 계속하고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제재가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런 분위기는 당시 단둥 세관에서 만난 북한 무역상의 반응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는 핵실험은 당연하며 국제적인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북한 무역상은 “영향 뭐, 무역하면 어떻고 무역 안 하면 어떻소, 자급자족으로 사는 거, 자립적 민족경제로 사는 거, 그것 몰라요?”라고 응수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는 중국의 동참은 물론 보다 강력한 압박을 주문했다.



시진핑 외교: 항미 닮은 항일

항일 승전 70주년에 꺼낸 ‘다모클레스의 검’

2014년부터 조금씩 수위를 높여온 중국의 대일본 과거사 공세는 전승절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절정을 이뤘다. 2015년 9월 3일, ‘항일전쟁 및 세계 반 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뒤이어 열린 열병식은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헬기 편대가 전승 70주년을 숫자로 그리며 열병식장에 등장하고 지상 돌격부대를 시작으로 탱크부대와 장갑차, 미사일부대 등 육해공 주력부대가 사열대 앞을 행진했다. 사거리 1만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31A, 항공모함 킬러 둥펑-21D, 둥펑-26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7종의 미사일 100여 기도 첫 선을 보였다. 하늘에선 주력 전투기 젠-10과 공중조기경보기 쿵징-200이 위용을 과시했다.열병식에 나온 신무기는 420여 개로 최첨단 무기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각종 군용기 200여 대에 병력 1만 2,000명이 동원됐다. 중국은 최신 현대무기들을 대거 공개해 일본은 물론 미국에도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시진핑 주석은 기념사에서 “70년 전 오늘은, 중국 인민들이 일본의 침략에 14년 동안 항거해 위대한 승리를 거둔 날”이라며 “중국인민항일전쟁의 승리는 근대 이래로 중국이 외적을 물리치는 데서 거둔 첫 완전한 승리였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평화와 발전은 오늘 이 시대의 주제가 되었지만 세계는 여전히 평화롭지 않고 전쟁의 ‘다모클레스의 검’은 여전히 인류의 머리 위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30만 명 감군 방침을 밝혔지만 열병식을 통해 군사대국 중국을 전 세계에 알렸다.


중국의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중국의 현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 첫 번째는 ‘경계’와 ‘동원 체제’다. 전승절 열병식 행사가 열리기 이틀 전인 2015년 9월 1일, 천안문 광장을 찾았다. 전날 비가 내린데 이어 이날도 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씨였다. 광장 곳곳에 총을 든 군인과 무장경찰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었다. 전승절 열병식이 열릴 천안문 광장은 이미 폐쇄됐다. 평소 같으면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을 테지만 오히려 경계 병력이 더 많게 느껴졌다. 광장으로 통하는 길목엔 안전 검사대가 설치돼 모든 출입자의 소지품을 철저히 검색했다.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더 이상의 접근은 허용되지 않았다.


열병식이 열리던 날 쪽빛 가을 하늘은 창공을 가르는 군용기의 공중 쇼를 더욱 훌륭하게 빛내주었다. 하지만 그 파란 하늘 뒤에는 사실 수많은 통제가 있었다. 열병식 ‘블루’를 위해 보름간 차량 홀짝제를 시행하고 베이징 주변 1만 2,000여 개의 공장이 가동을 중지했다. 먼지가 날리는 공사도 모두 중지시켰다.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행사당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해 업무를 중지시켰다.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공해 유발 요소를 모두 제거한 셈이다. 평소에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통제사회 중국’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이런 통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다.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는 시민이 의외로 많았다.


또 다른 모습은 중국의 친한원조, 즉 한국을 가까이하고 북한을 멀리한다는 일면이다. 열병식 기간 내내 전통적 우방인 북한의 존재감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중국 매체는 두 명의 한국인이 열병식의 체면을 세워줬다고 보도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얘기다. 박 전 대통령은 큰누님이라는 뜻의 ‘퍄오다제’로, 반 총장은 좋은 친구라는 뜻의 ‘하오펑요’로 중국인들 사이에서 친밀감의 대상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항일’로 천안문 성루에 올랐지만 원래 ‘항미’의 기운이 가득한 곳이다.


1954년 10월 북한의 김일성이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과 함께 중국 건국 5주년 기념 열병식을 참관했던 장소이다. 61년 전 김일성과 마오쩌둥 주석은 한국전쟁 휴전 직후 ‘항미원조’의 기치를 들고 계단을 밟았다. 박 전 대통령이 천안문 성루에 오른 지 불과 넉 달 뒤 북한이 감행한 4차 핵실험으로 한중관계는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항일에는 양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지만 항미를 놓고는 생각이 달랐다. 중국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북한이 필요했지만, 한국은 북한을 제압하기 위해 미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의 모든 길은 결국 항미원조로 통한다.



양극화 해법: 공동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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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1970년대 가난을 딛고 경제적 번영을 향해 전력 질주했고, 오늘날 미국에 이어 세계 경제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빈부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2014년 베이징대학교 중국사회과학조사센터는 ‘2014 중국 민생발전보고서’를 통해 중국 상위 1% 가구가 중국 내 자산의 3분의 1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에 비해 중국내 하위 25%가 가진 자산은 중국 전체 자산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갈수록 이런 중국 가구 자산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국의 소득 분배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GINI)계수는 약 0.467로 보고되었다. 지니계수는 0부터 1까지 값을 나타내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높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함을 의미한다. 0.4를 넘으면 상당히 불평등한 소득 분배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008년에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10년대 중반까지 감소세를 보였으나,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며 불평등 문제가 여전히 심각해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7년 중국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업무 보고에서 ‘덩샤오핑 시대’ 이후 36년 만에 새롭게 모순을 정의했다. 그는 “중국 사회의 주요 모순은 나날이 커지는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하고 불충분한 발전 사이의 모순으로 변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30여 년간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인민들이 잘 먹고, 잘 입는 물질문화 수요는 어느 정도 충족시켰지만,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에 따른 부작용으로 도농격차/빈부격차 등 발전 불균형, 불충분 문제도 더욱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시 주석은 ‘공동부유’를 핵심으로 하는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제기했다.


공동부유는 본래 공산주의 통치의 기초로, 중국 혁명지도자 마오쩌둥이 처음 제창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공동 부유론은 1978년 개혁개방의 총설계자 덩샤오핑이 주창한 ‘공동부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덩샤오핑은 1978년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일부 사람, 일부 지역이 먼저 부자가 돼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고, 대원칙은 함께 잘 살자는 것이다. 일부 지역은 더 빨리 발전하여 대부분의 지역을 이끌며 발전을 가속화하는 것이 공동 번영을 달성하는 지름길이다.”라며 ‘선부론’에 불을 지폈다. 덩샤오핑은 생산의 발전 없이는 부의 증가도 없고 부의 증가 없이는 부유할 수 없으며 공동부유는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덩샤오핑이 역설한 ‘선부론’과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은 중국의 성장 우선 경제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빈부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자 이에 대한 해법으로 덩샤오핑이 꺼낸 것이 ‘공동부유’이다.


덩샤오핑은 1985년 “사회주의의 목적은 전 국민이 함께 잘사는 것이지 양극화가 아니다. 만약 우리의 정책이 양극화를 초래한다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고, 만약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이 생긴다면 그것은 정말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21년 8월, 시진핑 주석이 주재한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에서 공동부유를 처음으로 꺼냈다. 시 주석은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로서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또 민생을 개선하고 보장해 교육 수준을 향상하며 공평한 복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촉구하며 부유층과 기업이 차지하는 몫을 줄여야 한다고도 말했다. 과도한 소득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고소득층과 기업이 사회에 더 많이 환원하도록 장려했다. 인위적 개입으로 부유층과 기업의 부를 사회 대중의 몫으로 돌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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