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보: 호명사회

   
송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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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22000
2024�� 09��



■ 책 소개


조직의 이름 뒤에 숨을 수 없는 시대의 생존 전략

호명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이름을 통해 살아남는 방법을 제시한다.

송길영은 핵개인에 이어 조직 뒤에 숨을 수 없는 사회를 예측하며, 우리가 준비해야 할 생존 전략을 탐구한다.

인플레이션된 경쟁, 시뮬레이션 과잉 등 현재의 불안 요소들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자립 시대를 준비하는 지침을 제공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적응을 넘어선 생존의 전략이다.

■ 저자 송길영
송길영은 시대의 마음을 캐는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이다. 사람들의 일상적 기록을 관찰하며 상의 1연유를 탐색하고 그들이 찾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20여 년간 해왔다.

개인들의 행동은 무리와의 상호작용과 환경의 적응으로부터 도출됨을 이해하고, 그 합의와 변천에 대해 알리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받는 것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저서로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 《상상하지 말라》, 《그냥 하지 말라》가 있다.

■ 차례
예보: 호명사회
프롤로그: 핵개인들,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제1장 시뮬레이션 과잉
불안녕의 시대: 위험의 과대 인지
시뮬레이션 과잉의 도래
선배들의 공식이 깨지다
내 머릿속의 엑셀
결혼 준비 체크리스트 D-180
유치원까지 내려간 ‘의대 준비반’
우리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니기에

제2장 상호 경쟁의 인플레이션
경쟁의 인플레이션, 열정의 가치 폭락
선발의 몰락
‘좋은 직장’의 ‘월급 루팡’
50대 퇴직자의 눈물
‘이 꿈은 내 꿈이 아니었다’
욕망의 질주, 의지의 번아웃

제3장 호오에서 자립을 찾다
“술이 좋아서 이걸 하고 있어요”
없어지지 않을 직업들
‘도망’이 아닌 ‘깊어짐’
자립의 도구
‘원 테이블’ 레스토랑의 충실함
도반,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

제4장 선택의 연대
연좌에서 연대로
미스터 초밥왕 vs 에어컨 청소 학원
춤으로 모인 대안가족
일상의 연대, 다정함
Distance, the key to kindness
동호(同好)를 넘어 동반(同飯)으로

제5장 호명사회의 도래
작아지는 조직, 커지는 사람
출발선에 선 ‘나의 이름’
생존을 위한 증거주의
도반 M, 20년에 걸친 자립
거인의 어깨, 천 개의 눈
호명사회,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에필로그: 우리 모두 작가가 되어가다
출처·참고문헌

 




시대예보: 호명사회


시뮬레이션 과잉

불안녕의 시대: 위험의 과대 인지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한국에서 두 가지 이상의 만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노령 인구의 50%를 넘는다는 사실과 아파트 한 동마다 최소 두 명 이상이 정신건강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수치를 마주하면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주눅 들게 됩니다. 간단한 확률 계산만으로도 모든 어려움에서 자유로운 ‘완벽한 삶’이 쉽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전된 기술은 수고로움을 덜어주지만, 증강된 기능으로 얻게 된 시간만큼 사람들은 새로운 욕망을 갖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잘 살아가기’가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삶은 지난 시절 조상들의 삶보다 더 나빠지고만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돌아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위험을 과장하여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 가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며 정보의 전달 방법이 바뀌는 상황입니다.


예전에 방송국에서 실시간으로 전하던 뉴스는 이제 유튜브와 같이 내가 보고 싶을 때 보는 온디맨드on-demand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뉴스 미디어의 영향력은 이를 본 사람들의 정보교환을 통해 집단적 인지 과정에서 증폭되고 있습니다. 게시판과 소셜 미디어로 연결된 사람들은 시시각각 올라오는 뉴스에 반응하며 공감과 불쾌 혹은 유쾌의 감정을 담아 퍼 나릅니다.


이렇게 불안이 불안을 낳는 일이 벌어지면 실제로 삶에서 마주할 위험보다 심리적으로 더 크게 위험을 느끼며, 불안의 지각된 수준이 과도하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시기에는 막연하며 과도한 정보로 인해 ‘역기능적 불안’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몇몇 학자들이 언급하였습니다.


역기능적 불안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로 뉴스의 범주를 확대하면 국내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 어김없이 사건이 매일 발생합니다. 더불어 출처와 정보의 사실성이 명확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과장된 가짜 뉴스는 불안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실제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정교한 사진과 영상을 만들어내는 AI 기술이 더해지면, 보는 것을 얼마나 믿어야 하느냐는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 같은 글로벌화한 사회 속, 정보의 효과적인 이해와 이성적인 대처를 위해서 미디어 리터러시가 더욱 주목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불안이 모든 이에게 같은 밀도로 다가오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최근 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자신들을 구분 지으며 밀레니얼이 구시대적으로 행동한다고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역사적으로 늘 반복되어 왔습니다. 베이비부머에서 X세대를 거쳐 밀레니얼에 이르는 세대도 전환기마다 이전 세대의 기득권과 새로운 세대의 당찬 요구가 충돌하며 건강한 갈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생산과 소비를 주도하는 세대가 사회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다음 세대가 헤게모니를 가져가는 순리의 순환 고리를 형성한 것입니다. 새로운 세대가 이전 세대를 부정하고 넘어섬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것은 역사적인 반복이지만, 지금은 세대 간 상호 책임을 둘러싼 실질적 갈등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안이 세대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대표적인 경우는 기후변화에 따른 공감과 대처입니다. 젊은 세대일수록 먼 미래에 벌어질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성에 민감하고, 기성세대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미래가 당면할 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직접 겪을 일에 대해서 좀 더 경각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동양식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의 경우 자녀의 유무에 따라 자신은 살아있을 확률이 낮은 이번 세기말에 다가올지 모른다는 위기에 대해 사뭇 다른 공감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너무나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으로, 책에서는 다른 이의 행동을 따라 하고 싶은 ‘순응 편향(conformity bias)’을 설명하는 실험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하며 우리의 뇌는 우리가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반응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집단의 크기가 동네 친구에서 전 인류로까지 확장되는 세계에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만드는 수많은 입력이 폭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사람들은 더욱 많은 불안을 느낄 뿐 아니라 상대의 불안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뮬레이션 과잉의 도래

불안이 커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불안감을 잠재우려 노력할까요? 학업을 마치고 처음 직장을 얻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덕목들은 2000년대만 하더라도 학벌, 학점, 토익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스펙’의 고도화는 어학연수, 공모전, 제2외국어를 넘어 헌혈과 봉사활동에 이르기까지 무한 확장했습니다.


다른 지원자와 비교되어 선택받는 선발 시스템에서 상대적 경쟁력을 가졌다고 주장하기 위해, 구직자들은 입사 후에는 실제로 쓰이지도 않을 기능들을 섭렵하고 지원서를 채우는 ‘취준’의 치열함을 견뎌야 했습니다. 무한대의 경쟁으로 내모는 시뮬레이션의 폐해는 정규직 취업을 포기한 니트족과 불필요한 경험치를 쌓아나가는 스펙 경쟁으로 양극단에서 새로운 세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스템 아래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이들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경쟁자들의 눈치를 보며 비대칭의 전력을 얻어내고자 무한대의 시뮬레이션으로 자신의 우위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시뮬레이션 과잉’이라고 정의합니다.


시뮬레이션 과잉의 이유로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양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욕망이 커진 것에 기인합니다. 누군가는 하루 세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식재료인 토마토를 던지며 축제를 벌이고, 어디선가는 새콤한 오렌지로 전투를 즐기기도 합니다. 또 다른 곳의 사람들 역시 손 위의 휴대폰 속 화면에서 이를 실시간으로 바라볼 만큼 우리의 세계는 빛의 속도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소비했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치의 경쟁이 가상의 네트워크 위를 가득 채우며 내가 실제로 가진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타인의 소비를 통해 더욱 허기짐을 느낍니다.


시뮬레이션 과잉의 또 다른 이유는 누군가의 욕망과 실현의 환상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전시되는 초연결 사회를 현생 인류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모든 것을 욕망하도록 부추기는 메시지가 우리를 감싸는 지금의 시대,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한 궁리 역시 빠르게 모색되고 늘어납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 그 모색을 돕습니다.


이제 인류는 시뮬레이션을 일상으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자기 삶을 게시하고 받은 ‘좋아요’와 온라인 서비스를 사용하며 쌓인 취향 정보를 모아 인류 한 명 한 명의 데이터를 축적해 나갑니다. 저마다 삶의 궤적을 모아 실시간으로 집대성한 결과는 OTT 서비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찾아주거나, 가족과의 휴가철 이동을 최단 시간으로 만들어주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으로 다가옵니다. 이렇듯 데이터와 시스템에 의한 시뮬레이션이 일상화되며 우리는 혜택의 고마움과 피로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이 구조의 근원적 문제는 시뮬레이션이 부당하거나 무용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시뮬레이션은 연결된 사회에서 타자의 삶을 관찰함으로써 나와 같은 종種의 지혜가 나에게 혜택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인류가 받은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시뮬레이션이 추구하는 목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때 발생합니다. 각자가 삶의 목표와 방향을 다양하게 선택하고, 저마다 꿈의 성취를 위한 시뮬레이션을 해나간다면 그 효용성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모두 같은 기준으로 한곳에 모여 시뮬레이션 과잉이 발생하면 그 과잉이 경쟁을 강화한다는 문제가 다가옵니다.


확실한 것은 편리를 추구하는 우리 종의 특성상 시뮬레이션의 도움 없이 살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절한 시뮬레이션을 할 것인지 정의해야 합니다. 가지 않은 인생의 길을 미리 경험해 보고 싶어 하는 현생 인류의 꿈을 이루어 줄 것만 같은 시뮬레이션에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적절히 사용하면 약이 되지만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는 물질과 같이 시뮬레이션 적용의 대상과 효용의 범주에 대해 신중히 접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뮬레이션은 서로 다른 네 가지 정도의 패턴을 가집니다.


첫 번째는 회피적 시뮬레이션입니다. 대단한 사회적 성공을 거두거나 거대한 부를 거머쥐기는 어려울 것 같을 때, 중요한 도전은 미뤄두고 작은 일의 효율화와 최적화에 매달리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무언가를 실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것도 실천하지 않기 위해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이러한 비실천적 일상의 최적화 욕망은 ‘월급 루팡’이나 ‘조용한 휴가(quiet vacationing)’ 혹은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와 같은 냉소적인 선택을 출력합니다.


두 번째는 경쟁 과다 시뮬레이션입니다. 이때는 외부의 환경 변화로부터 지속적인 자극을 받아 생존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문제는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문장으로부터 출발한 혁신의 욕망이 관망적 태도와 결합했을 때 조바심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이러한 입력과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며 압도된 사람은 스트레스로 무엇이든 실천하기 어려운 행동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너무 많은 생각 속에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분석 마비(analysis paralysis)’라고 부릅니다.


세 번째는 자기 충족적 시뮬레이션입니다. 외부 환경 변화에 자극받아 각성한 개인은 스스로의 혁신을 위해 변화의 첫발을 내딛고자 합니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목표와 실천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와 같은 자기 충족적 시뮬레이션은 궁극적으로 번아웃과 탈진을 야기합니다.


네 번째는 적응적 시뮬레이션입니다. 예를 들어 AI가 사회에 다가오는 것을 이해한 사람이 그 원리와 활용에 대한 교육과정을 알아보고 수강해 그다음의 커리어로 연결되도록 기획하는 것입니다. 적응적 시뮬레이션은 작은 성공의 경험이 반복되며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해 점진적인 개인의 발전을 독려합니다.


네 가지 시뮬레이션 중에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이 원래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결과를 현실에 적응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천 없이 과도한 탐색으로 최적화를 위한 ‘사고 실험’만을 이어간다면 시뮬레이션은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호오에서 자립을 찾다

“술이 좋아서 이걸 하고 있어요”

최근 전시장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겪었던 일은 놀라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통상 전시장은 많은 이들이 오가는 곳이라 강연의 집중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모든 관객이 헤드폰을 끼고 강연자가 ASMR처럼 작게 이야기한 마이크의 음성을 직접 들어, 평화롭고 조용한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오른쪽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강연자의 말이 텍스트로 바로 변환되어 보여졌고, 그 밑에는 영어로 번역한 문장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AI의 도움으로 평소 제공되던 통역사들의 번역 서비스를 자동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시통역을 제공하기 위해 투자해 온 사람들은 그만큼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이제 그들은 더욱 부가가치가 높은 문학의 번역이나 새로운 창작의 기회로 또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은 N잡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본인의 잡job’인 ‘본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본진’이라 함은 순전히 직무 혹은 소득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자신의 정체성이 자리매김하는 고유 영역을 뜻합니다. 본진도 없이 곡예사처럼 N개의 일을 저글링 하는 것은 정체성의 기반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할 코어가 불안정하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한 구조가 나오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평생 살면서 한 가지 직업을 넘어설 만큼 오래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애 주기가 길어질수록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앞서 설명한 AI 기반의 ‘자동화’입니다. 본진의 역량을 닦는 것만큼 본진이 속한 분야에 영향을 주는 사회 변화를 주시해야 합니다.


사회와 산업의 혁신 속도가 빨라질수록 개인의 커리어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핵심은 ‘축적의 시간’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눈여겨봐야 할 이들은 그 축적의 시간을 평가하고 이해하며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들, 즉 고객입니다. 결국 조예와 취향을 중심으로 형성된 단골이 있어야 지속 가능한 업이 완성됩니다. 이것이 나의 좋음과 싫음, 즉 호오가 본진이 되는 최종적인 모습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곧 그의 업이 되는 ‘성덕’은 모든 직장인의 꿈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술이 좋아서 이걸 하고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물어본다 해도 진지한 눈빛으로 전문성 있게 설명하고 추천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조예와 취향을 쌓으면 그것이 자신의 새로운 본진의 기회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이때 자신의 호오와 관련 있는 일을 찾아 행동에 나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파트타임의 기회가 있을 때 바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자신의 조예와 취향이 벼려질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며 경험을 축적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자산으로 쌓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하며 보내는 시간은 노동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데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는 게 뭐 별거냐”라는 자조적 표현으로 일상의 마모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지만, 이때 가장 결여된 부분은 ‘삶의 의미’입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발’이라는 단계가 아닌 ‘선언’이라는 행위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본인의 삶을 선언하고 자기의 업을 만든 사람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모든 개인이 고유한 자질과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자 김영훈은 그의 책 《노력의 배신》에서 한국 사회를 ‘노력 신봉 공화국’으로 정의합니다. 그는 타고난 인지 능력이나 재능을 테스트해 입시를 결정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배운 범위 내에서만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 ‘교육 과정’과 ‘공정성’을 중시하는 사회라고 분석합니다. 이는 열심히 노력만 하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며 노력 여부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고 ‘재능보다 노력’이라는 가치 규범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주요인은 타고난 능력이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각자 타고난 재능이 있는 분야를 찾아 그에 맞는 노력을 해나갈 때 성취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개인의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고유한 재능을 발견하고, 이 재능이 현시대에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과정의 출발점은 개인의 ‘호오好惡’, 즉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이해입니다. 외부의 기준보다 자신에서 비롯된 질문에서 본인이 더욱 잘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이는 자신에 맞는 ‘본업’을 발견하는 길이며, 무엇보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호명사회의 도래

출발선에 선 ‘나의 이름’

우리는 더 높은 곳,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준비 단계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할애합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교육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어야 하지만 대학교 진학을 위한 수단처럼 생각하는 문제를 많은 이들이 지적하기도 합니다. 다시 대학교는 그 본연의 의미를 다하지 못하고 취업을 위한 준비 단계로 여기는 세태에 학자들은 우려를 표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혹은 세계 무대에서 모두가 올라서야 할 궁극의 메이저 리그는 어디일까요? 그리고 꼭 메이저 리그여야 할까요? 그 기준과 목표는 분야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시시각각 자기만의 특별한 연극 무대에 선다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 무대를 꾸리는 일은 직업에서 시작할 수도 있지만 직업 바깥의 삶에서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 기업에 종사하는 직장인이라도 러닝에 진심인 삶을 살아간다면 그 무대에서는 주인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매주 만나는 러닝 크루와의 일상을 올리고, 매일 뛴 기록에 경로를 상세히 적어 블로그에 게시한다면 그것이 자신만의 미디어입니다. 조금씩 거리를 늘리고 기록을 줄이며 10km를 거쳐 42.195km에 도전한다면 자신만의 인생 챌린지가 됩니다. 그리고 휴가를 내고 해외로 가서 꿈의 풀코스를 완주하면 ‘성덕’이 되어 서사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의 직업, 하나의 소속에 삶 전체를 의탁한 사람은 쉽게 정체성의 위기를 겪습니다. 산업 생태계의 변화 속도가 빠르고 재직이 유동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연구원은 연구소의 성과가 나지 않아서 구조조정을 염려하게 될 수도 있고, 마케터는 자신이 담당하는 브랜드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경기가 순환하며 침체기에 찾아오는 위기는 누구라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한 번이라도 정체성의 위기를 겪은 사람들은 본인을 독립된 주체로 설명할 필요를 느낍니다.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직업적 명칭에만 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본인을 단독자로 서술하고 싶은데 가장 중요한 술어가 ‘회사원이다’라는 현실을 확인하는 순간, 어떻게 이 ‘회사’를 제거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퇴사해야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갈 고유한 무대에 대한 고민에서 ‘나의 이름’으로 살아갈 출발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사회에 진출한 이들은 첫 번째 디딤돌인 ‘직장’이 언젠가 버려야 할 것임을 인지하면서 경로를 설계해야 합니다. 마치 대기권을 돌파하는 강한 추진력을 내기 위해 장착한 3단 로켓이 일정 고도를 넘어서면 가장 아랫부분을 버려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길어진 생애에서는 두 번째 추진체를 버려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만약 아직 직장을 얻지 못한 학생이라면 언젠가 버리고 딛고 올라갈 좋은 추진체를 찾는 것이 첫 직장의 선택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커리어 단계로 가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첫 번째 직장을 소모해 버리는 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마치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더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것처럼 첫 번째 직장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서사에서 1막의 배경을 어떻게 더 흥미진진하게 써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관점으로 첫 번째 직장을 선택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대부분 사회인에게 경력을 만들어나가는 첫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직장인이 되기’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의 불확실함을 항상 대비하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크게 벌어집니다. 미처 대비하기 전에 첫 번째 추진체와 이별한 사람은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더 큰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것이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을 구한 사람은 ‘세상에서 불릴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바탕으로 미련 없이 로켓의 첫 번째 추진체를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커리어를 쌓는다는 것은 큰 바다를 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출항했을 때는 설레었지만 막상 올라서 보니 망망대해라는 기분에 사로잡혔던 기억을 많은 사람이 갖고 있을 것입니다. 여정의 끝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목적지의 방향성과 나침반을 갖고 있는 이에게는 똑같은 바다도 망망대해가 아닌 모험의 항로가 됩니다.


그렇다면 출발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해야 함을 생각해 봅니다. 답은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이 가장 꾸준히 해온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만약 그 어떤 것도 꾸준히 해낸 일이 없다면 어떤 메시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해 왔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포트폴리오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신만의 아카이브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성공한 사람입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 인스타그램의 타임라인을 돌아보아도 좋습니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다면 카카오톡의 채팅 목록이라도 살펴보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연락처 목록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들과 교류했는지를 보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경력과 이력으로 점철되던 성긴 기록은 이제 매일의 조밀한 기록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스토리로 연결된 아카이브는 각자의 서사를 단단히 증거합니다. 저마다의 독백이 각자의 이력과 포트폴리오로 켜켜이 쌓이면 각자의 선언은 세찬 비와 바람에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습니다.


내가 교류해 온 사람들의 교집합이 곧 ‘나’입니다. 그리고 내가 남긴 글이 ‘나’입니다. 내가 좋아해서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일들이 ‘나’입니다. 내가 남긴 나의 모든 흔적이 바로 ‘나’입니다. 그 자료들을 통해 ‘나’의 안에서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정보의 과잉으로 지금 당장 한 걸음을 떼지 못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저 멀리 먼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머릿속 시도만으로 지쳐서 한 발짝도 못 내딛던 각자가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서 첫걸음을 걷고자 할 때, 그 방향은 밖이 아닌 ‘나’로 향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세상에 불릴 나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조직의 대리, 과장, 부장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자녀,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친구도 아닙니다. 조직과 관계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는 누구인가 정의하는 것이 출발에 선 ‘나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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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