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 30년사

   
얀베 유키오(역:홍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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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지21
   
16800
2020�� 05��



 

■ 책 소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어떻게 일본을 멈춰 세웠나?”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할 지혜를 일본의 경험에서 배운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감수!

전후의 폐허에서 출발해 1990년 GDP 세계 2위, 1인당 GDP 세계 8위라는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일본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990년 이래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를 계속해온 일본 경제. 이 30년간 기업 실적과 사람들의 생활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아베노믹스의 풍요로움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 책은 역대 정권이 실패한 ‘개혁’이 어떻게 경기의 허리를 끊고 일본 경제를 변질시켰는지 버블에서 아베노믹스까지 30년간의 일본의 경기 동향을 풍부한 데이터로 분석한다. 과연 아베노믹스는 한계에 다다른 것인가.

1979년에는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에즈라 보겔이 ‘일본은 넘버원(Japan as Number one)’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한 일본.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이 흐름이 역전된 것은 1990년이다. 주가와 지가가 하락하기 시작했고 10년 뒤에는 GDP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 1990년 이후 30년간의 일본 경제를 돌아본다. ‘버블 붕괴 후의 30년’이며, ‘소비세 도입 후의 30년’이며, ‘헤이세이(1989-2019) 시대로 불리는 30년’이기도 하다. 이 30년은 일본 경제에 있어서 어떤 시대였을까.


■ 저자 얀베 유키오

1940년 출생. 1940년 출생. 고베 대학교 경제학부 졸업. 1964년 다이이치 은행 입사, 1991년 다이이치간교 은행 조사부장, 1994년 다이이치간교 종합연구소 전무이사, 2001년 고베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연구과 교수. 

■ 역자 
홍채훈 
경제와 역사, 특히 세계사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책을 즐겨 읽으며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일본 여행 중에 들른 서점에서 지난 30년간의 일본 경제를 개괄하는 이 책을 보고 번역까지 하게 되었다. 첫 번역서로 실수도 많았지만 많은 공부가 되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책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 현재 일본 유학을 준비 중이다.

홍춘욱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명지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한국금융연구원을 시작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이사) 등을 거쳤다. 

현재 EAR Research 대표이자 숭실대학교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2016년 조선일보와 에프앤가이드가 ‘가장 신뢰받는 애널리스트’로 선정했으며, 수년 간 부동산 및 금융 분야, 국제 경제 전망을 아우르는 전문가로서 각종 미디어의 1순위 인터뷰어로 손꼽혀왔다. 

지은 책으로는 『돈 좀 굴려봅시다(2012)』와 『환율의 미래(2016)』 외 10여권에 이르며, 『순환장세의 주도주를 잡아라(2018)』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1999년부터 개인 홈페이지 [홍춘욱의 시장을 보는 눈]을 운영하면서 네티즌과 지식을 공유해왔으며,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홍춘욱의 경제강의노트]를 통해 어려운 경제 및 금융시장 지식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차례
감수의 글
프롤로그

Part1. 1990년대 이후의 일본 경제
1장 30년간 일본 경제와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나
경기는 어떻게 움직여왔는가
일본 경제는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기업 실적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생활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Part2. 30년간의 변화를 좇아서
2장 버블 발생부터 팽창, 붕괴까지(1985-1990)
주가와 지가의 상승과 버블화
무엇이 버블을 발생시켰고 팽창시켰는가
금융 정책, 금융 행정의 전환-버블 붕괴로

3장 버블 붕괴 이후 7년(1990-1997)
장기간에 걸친 경기 하강 국면
1993년 11월 이후 그래도 경기는 회복세였다
금융 파탄의 발생과 높아지는 위기 의식

4장 하시모토 ‘구조개혁’ 정책의 실시와 파탄(1997-2000)
하시모토 내각의 6개 개혁
개혁이 불러온 경기 침체
금융위기 발생과 대출 거부
‘개혁 노선’ 수정 이후 경기 회복
‘이상은 미국’, 다시 구조개혁 노선으로

5장 고이즈미 내각 탄생과 본격적인 ‘구조개혁’ 정책 실시(2001-2009)
고이즈미 ‘구조개혁’ 내각 발족
‘불량채권 처리’ 정책
‘공격적인 구조개혁’-‘관에서 민으로’ 그리고 ‘규제 개혁’
경기는 수출 주도로 회복했지만 내수 부진이 이어졌다
리먼 쇼크에 의한 ‘구조개혁’의 모순의 표면화

6장 ‘구조개혁’이란?(4장~5장의 보충)
‘구조개혁’이란 무엇이었는가
‘구조개혁’은 일본 경제에 무엇을 불러왔는가

7장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붕괴(2009-2012)
하토야마 내각, 출발에서 퇴진까지
간 내각, ‘신성장 전략’ 책정과 소비세 증세 발언으로 자폭
노다 내각, 자공 정권으로의 사전 준비?-‘사회보장과 세금의 일체 개혁’
민주당 정권의 3년 3개월을 되돌아보며

8장 아베노믹스, 초금융완화와 세 번째 ‘구조개혁’(2013-현재)
제2차 아베 정권 출범-경제 정책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특징
아베노믹스의 정책 1.-‘대담한 금융 정책’
아베노믹스의 정책 2-.‘기동적 재정 정책’과 ‘성장 전략’
일본 경제는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아베노믹스는 실패했다, 그러나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의 경제와 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가

Part3. 일본의 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9장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돈이 남아도는 나라! 
그리스처럼은 되지 않는다 (3장~8장의 보충)

에필로그
참고문헌  

 

 




일본 경제 30년사


1990년대 이후의 일본 경제

30년간 일본 경제와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나

일본 경제는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1998년 이후 증가하지 않은 GDP

먼저 시작 연도인 1990년의 명목 GDP는 453조 엔이었다(2008 SNA 대응 국제 기준에 따름. 1조 엔 이하는 절사. 이하 동일). GDP가 매년 증가하던 1994년에는 500조 엔을 넘었고, 1997년에는 534조 엔에 달했다.


그러나 증가 추세는 1997년까지였다. 1998년과 1999년의 명목 GDP는(실질 GDP도) 전년 대비 감소로 돌아섰고, 이후 오랫동안 1997년 수준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명목 GDP가 간신히 1997년의 수준으로 돌아온 것은 2007년(531조 엔)이었지만, 다음 해와 그 다음 해(2009년)는 리먼 쇼크의 영향으로 489조 엔까지 떨어졌다. 2012년 이후는 다시 증가 기조로 돌아섰지만 1997년을 웃도는 수준을 회복한 것은 2016년도(535조 엔)의 일로 거의 20년 만이다.


2018년 현재의 수준은 다시 548조 엔으로 1997년 대비 2.6%증가(연평균 0.1% 증가)에 머물고 있다. 전후 일본 경제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는 해는 1990년과 1997년이었던 셈이다.


-실질성장률은 일시적으로 회복했지만

GDP 실질성장률 추이도 살펴보자. 버블이 붕괴한 1990년의 실질성장률은 4.9%로 꽤나 높았다. 그러던 것이 1991년부터 하락하여 1993년에는 –0.5%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내려앉았다. 이 시기가 ‘버블의 반동 불황(1991년 3월~1993년 10월)’이다. 그러나 실질 성장률의 하락은 1993년에 끝나고 1994년 이후 성장률이 서서히 올라갔다. 경기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


-2년에 걸친 마이너스 성장(1998-1999)

그러나 회복은 짧게 끝났다. 1997년의 실질 성장률은 1.1%로 소폭 성장에 그쳤고, 1998년과 1999년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들었다. 당시 하시모토 내각의 ‘재정 구조 개혁’의 영향을 받은 하락이었다.


두 번째 분수령이었던 1997년 이후의 일본 경제의 실질성장률은 1996년에 기록한 3.1%를 단 한 번의 예외(2010년의 실질성장률 4.2% 리먼 쇼크에 의한 2009년의 –5.4%의 하락 반동으로 성장률이 높았다)를 제외하고는 다시는 넘지 못했다.


생활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1997년을 정점으로 급여 감소

여러 가지 급여 통계가 있지만 그중 하나인 국세청의 ‘민간급여실태통계조사’의 ‘1년간 근무한 급여 소득자의 1인당 평균 급여’를 보자.


1990년의 평균 급여는 425만 엔이었다. 이것이 1991년, 1992년, 1997년에는 매년 조금씩 증가 추세였다. 이 흐름이 바뀐 것은 1998년 465만 엔으로 전년 대비 2만 엔 감소했다. 이후 2008년의 430만 엔까지 몇 몇 예외가 된 해를 제외하고 꾸준히 감소세였다. 그리고 리먼 쇼크 다음 해인 2009년은 406만 엔으로 급락했다.


2009년의 1인당 평균 급여 406만 엔은 감소세가 시작된 1997년 대비 13%나 적고, 2009년의 소비자물가 지수 수준은 1997년과 거의 같았으므로 실질 급여도 13%줄었다. 그러므로 급여 소득자는 그만큼 가난해졌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이후 평균 급여는 조금씩 회복세로 들어섰으나 2017년 현재 432만 엔으로 1997년보다 여전히 35만 엔(7.5%)이나 낮다. 1997년에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급여 소득자의 1인당 평균 급여는 1997년이 전후 최고치였다.


-정규직은 감소, 비정규직은 증가

1997년 이래 급여 소득자의 1인당 평균 급여가 감소한 큰 요인은 정규직의 감소와 이를 대체한 급여 수준이 낮은 비정규직의 증가에 있다.


기업 실적 항목에서 기업 수익의 현저한 증가 배경에는 노동분배율의 저하가 있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노동 측면에서 보면 저임금 노동자가 두드러지게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소득 불평등도 확대 경향

일본 사회의 지니 계수는 후생노동성이 3년마다 실시하는 ‘소득재분배조사’에 따라 측정된다. 순소득의 지니 계수는 1990년의 0.43에서 2017년의 0.56으로 확연하게 증가하고 있어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순소득에서 세금과 사회보험료 부담을 제하고 사회보장에 의한 급부(연금, 생활보호 등)를 추가 한 것이 재분배 소득인데, 재분배 소득 기준 지니 계수는 1990년에서 2017년 소폭 상승했다.(자세히 보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증가했지만 2010년대 들어와서 제동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선진국과 비교해서 2008년의 상황을 보면 일본의 지니 계수는 OECD 평균보다 약간 높아 ‘불평등도가 조금 높다’, ‘주요국 중 일본보다 지니 계수가 큰 나라(불평등도가 높은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이며 캐나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은 일본보다 작다’(불평등도가 낮은 나라)는 것이 정부 분석이다.(후생노동성, ‘후생노동백서’ 2012년판).


이미 ‘평등 사회 일본’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30년 사이에 그렇게 달라졌다.



30년간의 변화를 좇아서

버블 발생부터 팽창, 붕괴까지(1985-1990)

무엇이 버블을 발생시켰고 팽창시켰는가

-가격 상승 기대 심리

주가와 지가의 급격한 상승이 있었음에도 이를 이상하다고(버블이라고) 여기지 않고 일본 경제의 실력인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 주가와 지가의 지속적인 상승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1980년대 후반 일본 사회에 퍼져 있었는데, 이것이 버블을 발생시키고 팽창시킨 큰 원인이었다.


시라카와 전 일본은행 총재는 ‘가격 상승 기대 심리’를 불러온 배경으로 ①일본 경제의 거시적 실적이 양호함(성장률은 선진국 중 가장 높은데다가 물가상승률은 낮았다), ②기업과 산업 차원에서 본 강력한 국제 경쟁력과 경상수지의 대폭적인 흑자, ③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일본 은행권의 존재감 고조 등을 꼽는다.


그리고 이 분위기는 당시의 정책당국과 주변 인물의 감각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로 당시의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던 책인 <Japan as Number One>을 들 수 있다. 1979년에 출판되어 그해 일본에서도 번역된,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하버드 대학 교수 에즈라 보겔이 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당시의 일본을 높게 평가한 내용이다. 부제는 ‘미국에 주는 교훈’이다.


일본인의 근면함, 높은 학습 의욕, 관료의 우수함, 기업 경영의 훌륭함 등을 높게 평가한 이 책은 일본 국내에서도 수십만 부가 팔렸다.


하여간 대부분의 일본인에게는 기분 좋은 책으로 1980년대 많은 사람의 ‘가격 상승 기대 심리’를 부추겼다고, 즉 버블의 발생과 팽창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신용대출 폭증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금융완화 정책이 지속됨에 따라 금융기관의 대출이 매우 적극적으로 변하여 결과적으로 총통화는 현저하게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의 당연한 결과로 은행 간의 대출 경쟁이 치열해졌는데, 그중에서도 비교적 유리한 입장이었던 것은 주거래처를 많이 가지고 있던 시중(구 재벌계)은행들이었다. 또한 지역 기업에 강점이 있던 지방은행도 나름 유리한 입장이었다. 거래처의 융자 요청은 먼저 이들 은행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금융기관의 경영은 어려워졌다.


또한 1970년대 개인 대상 주택금융을 충족시키겠다는 취지로 대장성 주도로 만들어진 주택금융전문회사(주전)도 주거래 은행이 자금에 여유가 생겨 스스로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기 시작한 탓에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주가와 지가 버블은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돌파구를 모색하려던 많은 금융기관, 특히 한계 상황에 놓인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버블의 발생과 그에 따른 금융완화 정책의 지속은 ‘천재일우의 호재’로 비쳐졌다.


이렇게 대출 경쟁이 심화되었고 총통화가 증가했으며 그것이 다시 버블을 팽창시켰다.

 

금융 정책, 금융 행정의 전환-버블 붕괴로

버블을 붕괴시킨 것은 무엇일까. 주가 버블을 붕괴 시킨 것은 일본은행의 금융 정책 전환, 즉 정책금리의 인상이었다. 반면 지가 버블은 대장성의 금융 행정 전환, 즉 부동산 금융 규제의 발동이 결정적이었다.


‘구조개혁’이란?(4장~5장의 보충)

‘구조개혁’이란 무엇이었는가

-‘구조개혁’이라는 게 뭐였는데?

이렇게 보면 ‘구조개혁’이라는 것은 ①무엇보다도 경제계의 요망에 부응하는 정책이었고, ②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이었으며, ③영국과 미국에서 배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덧붙여 말하면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완전히 재계의 요망과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이라고 호언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④일본 경제의 재생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말로 포장한 정책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구조개혁’은 일본 경제에 무엇을 불러왔는가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시작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는 1990년 이후의 버블 붕괴가 그 시작이라는 관점이 많다. 버블 붕괴 후의 10년, 20년을 가리켜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으로 부르는 것이 그 예다. 이후 제2차 아베 내각도 이처럼 ‘1990년대 초반에 있었던 버블 붕괴를 계기로 일본 경제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20년간 대체로 낮은 경제성장에 만족해왔다(호네부토 방침, 2013년 6월)’고 말하고 있다.


대충 그 정도로 괜찮다고 생각되지만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버블 붕괴 후의 긴 반동 불황의 시기(1991~1993년)를 거치며 일본 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었다(1993년 11월~1997년 5월). 이 회복 추세는 하시모토 내각의 ‘6개 개혁’에 의해 중단되었지만 그게 없었다면 1997년 이후에도 지속되었을 것이다.


장기 침체의 시작은 하시모토 내각의 ‘재정 구조개혁’에 의해 경기 하강이 시작된 1997년 6월부터, 해로 따지면 1998년부터라고 봐야한다(명목 GDP: 1997년 534조 엔, 1998년 527조 엔, GDP 실질성장률: 1997년 1.1%, 1998년 마이너스 1.1%).


그리고 이런 시각으로 보면 ‘장기 침체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대답도 동시에 나온다. 임금의 하락과 그에 따른 민간 소비 지출의 하락이 그것이라고. 그리고 그 배경에는 ‘구조개혁’ 정책이 있었다고.


그럼 여기서 독자가 신경 쓰일 두 가지 점을 짚어보자.


한 가지는 일본의 임금 하락이 세계화의 영향이 컸다고 보는 시각이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일본 경제는 중국 외 다른 아시아 국가와 격렬하게 경쟁했다. 일본과 비교해서 임금이 낮은 국가와의 경쟁에서 일본의 임금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이다.


분명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주된 요인은 아니었다. 첫 번째로 세계화의 진전은 1990년대 초반부터(천안문 사건을 극복한 중국 경제의 성장과 발전도 1992년경)였다.


두 번째로 세계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것은 미국과 유럽 국가도 동일했다.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의 결성(1994년 발효)으로 멕시코와 유럽 국가는 구소련의 붕괴(1990년대 초)로 동유럽 국가와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는 임금 하락이 일어나지 않았다. ‘어째서 일본만이?’라는 의문의 답이 될 수 없다. 일본에서만 일어났다는 것은 일본에만 한정된 원인이 있다는 것이고, ‘구조개혁’ 정책이 바로 그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아베노믹스, 초금융완화와 세 번째 ‘구조개혁’(2013-현재)

아베노믹스는 실패했다, 그러나 계속될 것이다

왜 아베노믹스는 실패했을까. 확실한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 ‘세 개의 화살’이 전부 과녁을 벗어나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나 디플레이션의 원인에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봐온 것처럼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의 진짜 요인은 소비 증가 부진이었고, 그 배경에는 임금의 하락과 상승 부진이었다.


아무리 금융을 완화시켜도(첫 번째 화살),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기업이 이익을 보도록 배려해도(세 번째 화살) 임금이 늘지 않는 한 일본 경제의 ‘재생’은 없고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또한 공공투자의 확대(두 번째 화살)는 소비 부진에 의한 수요 부족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세 개의 화살’ 중 비교적 목표에 근접한 화살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재원 문제도 있고 화살 수량에 제한이 있어 효과는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말았다.


둘째, 아베노미스가 사람들의 삶의 향방에 너무 무관심했고, 임금을 올리는 등 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했음에도 반대로 소비세증세, 사회보장제도 개악 등 생활에 해를 입히는 정책을 계속해서 취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베 내각은 아베노믹스의 확실한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온갖 방법을 써서 더욱 아베노믹스를 계속해 나갈 작정인 것 같다.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인데, 이것이 실현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아베 내각이 앞으로 당분간 이어진다면, 경제 정책 면에서 아베노믹스가 계속해서 취해진다면 일본 경제에도, 사람들의 생활에도 미래는 없다.



일본의 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돈이 남아도는 나라! 그리스처럼은 되지 않는다

재정 건전화는 가능하다. 사회보장제도 확충도 가능하다

재정 건전화를 위해, 최대한의 목표(균형 재정의 확립)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33조 엔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회보장제도 확충에 44조 엔. 합쳐서 77조 엔이다. 아직 더 있다. 일본의 빈약한 교육예산(GDP 대비 비율로 OECD 가맹국 중 최저)의 증액, 국가와 지방 모두에 다수 존재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그만 넓히고 여기서는 77조 엔(대충 계산했으니 80조 엔으로 보고)이라는 지금 마련이 가능한지 생각해보자. 가능하다는 것이 여기서의 답이다.


위안거리는 일본의 낮은 국민 부담률(세금+사회보험료/국민소득)이다. 일본의 국민부담률은 2019년 42.8%로 미국 이외의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OECD 가맹국과 비교해도 낮은 쪽에서 8번째다.


부담률이 높은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와 스웨덴이 있다. 이 두 나라는 사회보장 지출의 GDP 대비 비율을 봐도 높다. 국민 부담이 큰 만큼 질 높은 사회보장을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를 예로 들어보자. 프랑스의 국민부담률은 67.2%로, 일본의 42.8%에 비해 24.4%p 높다. 만약 일본의 국민부담률을 프랑스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일본의 세금과 사회보험료 수입은 얼마나 증가할까?


일본의 국민소득(사람만이 아닌 기업 소득도 포함해서)은 현재 약 400조 엔이다. 400X0.244=97.6.  즉 97조 엔, 약 100조 엔의 세금과 사회보험료의 수입 증가가 예상된다.


앞에서 재정 건전화와 사회보장제도 확충을 위해 약 80조 엔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국민부담률을 프랑스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얻을 수 있는 정부 수입은 약 100조 엔, 필요액을 조달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만약을 위해 덧붙이겠다. 일본 전체에 약 100조 엔의 부담 능력이 있다고 해서 소비세 증세가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에서 봐왔듯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직 부담 능력이 없다. 소비세 증세는 무리다. 부담은 부담 능력이 있는 쪽에 요구해야 한다.


매년 거액의 이익을 내고 있는 대기업, 주식 투자와 배당금에서 거액의 수입을 얻고 있는 투자가, 연 수입이 천만 엔을 넘는 회사 임원, 사업가 등은 상당한 부담 여력이 있을 것이다. 부담 증가는 그 부담 능력에 따라서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덧붙일 필요도 없지만, 여기서 나타낸 숫자는 어디까지나 일본에게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지는 정치의 문제다. 그래도 조금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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