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커밍 페이스북

   
마이크 회플링거(역: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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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키
   
17000
2018�� 07��



■ 책 소개

 

플랫폼 제국 페이스북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최신의 내부 평가서

 

이 책은 페이스북이 겪은 시련과 놀라운 반등에 대한 이야기다. 기업공개 이후 낙오자 신세로 추락했던 페이스북은 어떻게 회복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실패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성장을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후발주자의 한계를 딛고 이토록 거대한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 저자 마이크 회플링거
실리콘밸리에서 마케팅과 제품을 다루며 25년째 일하고 있다. 인텔 인사이드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앤디 그로부를 보좌했고, 2009년에 페이스북으로 자리를 옮겨 글로벌 비즈니스 마케팅 담당 임원을 지냈다. 소셜네트워크를 다루며 7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광고사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이바지했다. 지금은 액시드캐피털의 임원으로 실리콘밸리의 예비창업인들을 돕고 있다. 

 

■ 역자 정태영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CBS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다. 지금은 푸르메재단에서 발달장애 청년을 위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아라비아의 로렌스》 《밀수꾼의 나라 미국》 《노터리어스 RBG》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 《세상을 바꿀 용기》 《무례함의 비용》 《이슬람 불사조(공역)》 등이 있다.

 

■ 차례
머리말

 

1부.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
1장 종이 울리다
2장 자기 내면의 저커버그를 찾아서

 

2부. 페이스북이 극복한 10가지 도전
3장 페이스북이 10억 달러를 사양한 까닭
자신이 정거장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종점에 도달했는지 파악하자
4장 페이스북은 어떻게 세상을 비추는 렌즈가 되었는가
비움으로써 채운다
5장 페이스북은 어떻게 성장을 거듭하는가
자신의 북극성 척도와 신비로운 순간과 제품의 핵심가치를 파악하자
6장 페이스북은 어떻게 100억 달러 사업을 3년 만에 일구었나
문턱을 낮추어 모든 고객을 아우르면 모두가 승리한다
7장 페이스북은 어떻게 이토록 빠른가
속도가 생명이다
8장 페이스북은 어떻게 구글을 넘어섰는가
최선의 방어는 격차를 뛰어넘는 것이다
9장 페이스북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넘어섰나
남들이 혼란을 일으키기 전에 혼란을 주도하자
10장 페이스북은 장기전을 어떻게 치르는가
현행 사업과 병행이 가능하다면 장기전도 수행할 가치가 있다
11장 페이스북은 인재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하는가
모든 것은 직원 몰입도에 달렸다. 직원의 강점에 주목하고 약점은 무시하자
12장 페이스북은 어떻게 이토록 거대한 기업이 되었는가
더 열중하자

 

3부. 미래
13장 메시징이라는 매체
14장 또 다른 10억 명을 연결하기 위하여
15장 VR과 AR의 세계에 10억 명을 ‘빠뜨리기’ 위하여
16장 페이스북이 ‘승리’한다면?

 

4부. 남은 생각들
17장 실패했다고 실패는 아니다
18장 영원한 것은 없다?

 

감사의 말

찾아보기 




비커밍 페이스북


페이스북은 어떻게 세상을 비추는 렌즈가 되었는가

뉴스피드, 출발과 동시에 삐걱대다

2006년으로 접어들 무렵, 페이스북은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용자수가 60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생산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에 중요한 내용이 많은데도 - 다른 사람들의 프로필을 가볍게 클릭하며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제품팀은 이용자들이 그보다 더 궁금해하는 것은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라는 질문이며, 그 질문에 일목요연하게 대답해주는 기능이 페이스북에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페이스북이 사람들 삶의 검색엔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뉴스피드라는 아이디어가 탄생한 것은 그런 - 연결이란 흥미로운 정보가 그들 사이에서 쉽게 흐를 수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는 - 깨달음에서였다. 뉴스피드는 나와 연결된 사람들 또는 집단들 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각자의 페이스북 페이지 한복판에 시간순으로 차곡차곡 쌓이면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다. 뉴스피드는 이용자의 연결망 전반에 걸친 활동 양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매일 1500개가 넘는 업데이트 중에 어떤 것이 그 이용자에게 유용한지 결정하고 300개 안팎의 항목을 추출해 보여준다. 압도당하는 느낌은 줄이고 적절하다는 느낌은 높이기 위해서인데, 그러려면 개인의 고유한 데이터 조각 수백 개와 이들의 전반적인 페이스북 활동, 구체적인 연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복잡한 계산을 거쳐야 한다.


2006년 9월 5일, 페이스북 뉴스피드가 첫선을 보였다. 출발은 매끄럽지 않았다. 뉴스피드는 이용자가 자신의 연결망 전반에 걸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더 쉽게 파악하도록 돕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 어떤 사람이 소셜네트워크를 거쳐서 여러분을 지켜보도록 허용할지 통제하는 - 프라이버시 설정 문제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그날 일과시간이 끝나기 전에 페이스북 내의 여러 집단이 이와 같은 변화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개중에는 구성원이 몇십만 명에 이르는 집단도 있었다.


결국 밤 10시에 저커버그가 나서서 의견을 내놓아야 했다. 그는 “진정하세요. 한숨 돌리세요. 우리는 여러분이 하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띄웠다. 페이스북과 그 공동체에 대해서 저커버그 자신이 지닌 관점의 축약판이었다. 그는 페이스북 공동체가 보여준 반응을 이해했고, 뉴스피드의 목적과 - 페이스북 선구자이자 가장 큰 SNS로서 온갖 문제와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감수해온 - 프라이버시에 대한 책무를 지키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는 제품을 이용해주는 열성적 공동체가 없으면 연결된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런 미래로 나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자신이 믿는 것을 희생시키지는 않는다.


그다음 주에 페이스북은 한층 세부적인 프라이버시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콘텐츠가 자신 또는 타인의 뉴스피드에 소개되는 방법과 관련해서 더 많은 통제권을 이용자에게 부여하고 인식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뉴스피드 자체는 없애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 내용이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뉴스피드는 ‘1분마다’ 2억 개의 이야기를 전 세계의 스마트폰으로 공급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디어에 등극한 셈이다. 뉴스피드라는 - 내 것이 네 것과 아주 다른 - ‘개인맞춤형 신문’은 이용자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에 주목하는 페이스북의 정책과 아주 잘 부합하는 것이다. 이용자가 알거나 좋아하는 실제 사람 또는 사물과 단순히 연결되는 것(예컨대, 프렌드스터), 또는 사적으로 잘 모르는 정보의 원천에서 나오는 뉴스를 걸러지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얻는 것(예컨대, 트위터)만으로는 이렇게 강력할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용자의 특성에 대한 파악과 뉴스피드의 조합이야말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페이스북의 참여도와 그 규모를 만들어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사실 요즘 우리에게 가장 큰 차이로 다가오는 층은 디지털 세상이 개인에게 쏟아붓는 정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렌즈’들이다. 70년 전까지만 해도 신문이란 기기(종이)와 통로(배달원)와 렌즈(편집자)와 콘텐츠(이야기)가 ‘하나로’ 결합된 일체형의 도구였다. 50년 전에는 3대 전국방송사가 통로(지상파), 렌즈({전설적인 뉴스 앵커}월터 크롱카이트), 콘텐츠(기자)를 결합시켜 제공하면 개인이 집에서 기기(텔레비전 세트)로 받아보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미디어도 지난 10년에 걸쳐서 급성장한 초고속, 무선, 양방향 통로들과 기기들(스마트폰)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렌즈들, 특히 두 종류의 렌즈와 각각의 핵심 공급자가 지배적 위치를 장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서 두 종류란 (1)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때’ 하는 행동(검색, 구글이 지구촌을 지배하고 있다)의 영역과 (2)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때’ 하는 행동(‘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무작정 소셜미디어를 찾는 행동, 페이스북이 뉴스피드라는 형태로 지구촌을 지배하고 있다)의 영역을 말한다. 


뉴스피드는 호감도가 높은 콘텐츠를 끝없이 공급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렇게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10년 동안 두 가지 거대한 힘의 도움을 받았다.


1. 모바일 시대의 도래

지구촌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기가 - 특히 아이폰을 계기로 - 모바일로 전환한 것은 혁명에 가까운 일대 사건이다.


한입 크기의 비주얼 스토리들을 수직으로 끝없이 스크롤하는 뉴스피드 사용법은 손에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작동시키는 스마트폰의 수직적 형태와 콘텐츠에 수시로 잠깐씩 빠져드는 우리 습성에 지극히 안성맞춤이다. 내 손 안에서, 눈을 떼기 힘든 콘텐츠들이, 터치 기반 인터페이스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이용자에게 연결망의 전반적인 정보를 보여준다는 뉴스피드의 추상적 목표를 거의 완벽하게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2. 규모의 이로움

두 번째 힘은 콘텐츠 사업이 겪는 전형적인 어려움의 역설이다. 성장은 품질과 효율성 측면에서 콘텐츠 기업에 부담이 된다. 뉴스 매체나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는 규모가 작았던 예전과 동일한 품질로 더 많은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점점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반면 페이스북 뉴스피드 같은 렌즈는 이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효율성이 좋아진다. 여러분에게 얼마간의 이야기들을 매일 일정하게 제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제공하는 더 많은 콘텐츠를 공짜로 선택하고 활용할 수 있고, 더 많은 광고 수입을 발생시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 테크놀로지 사업에서 이용자당 한계비용보다 훨씬 큰 역할을 담당하는 - 데이터센터 같은 고정 비용을 나누어서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어떻게 구글을 넘어섰는가

페이스북은 2011년 초까지 프렌드스터와 마이스페이스, 트위터같은 경쟁자들을 완파했다. 하지만 이들은 인터넷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리그에 속하는 경쟁자였다. 2011년 중반에 이르자 막강한 구글이 구글플러스라고 불리는 정식 소셜미디어를 내놓고 페이스북 따라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걱정인 페이스북과 걱정할 것이 전혀 없는 구글

직접적으로 비교할 때 사업의 여러 척도에서 구글이 페이스북을 멀찌감치 앞서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양자가 엇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구글이 검색 분야에서 1인자라면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 분야에서 1인자라는 식이었다.


페이스북의 문제는 구글이 페이스북을 소셜미디어에서 앞지를 경우 페이스북에는 남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 이외에 기댈 수 있는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글로서는 걱정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페이스북에 대한 급습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이미 달성한 인터넷 리더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수익을 즐기면 그만이었다.


2011년 5월, 《뉴스워크》의 《데일리비스트》에서 글을 쓰는 댄 라이언스는 페이스북이 《USA투데이》를 비롯한 다양한 언론매체를 상대로 구글의 프라이버시 정책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들을 퍼뜨리기 위해서 세계적인 홍보기업 버슨 마스텔러를 비밀리에 동원했다고 폭로했다. 버슨 마스텔러의 CEO 마크 펜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와 정책 및 홍보책임자 엘리엇 슈라지에게도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은 페이스북이 프라이버시 같은 문제에 있어서 믿을만하다는 바로 그 인식을 증진하기 위해 수년 동안 노력해온 사람들이었다.


싸움을 준비하다

2011년 여름을 앞두고 구글과 페이스북은 결전을 준비했다.


저커버그의 상황 대처법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엿볼 수 있다. 그는 균형을 잃지 않았다. 페이스북의 미션과 기존 제품계획들에 대해 한층 높은 집중력으로 계속 몰입하는 동시에, 치열한 경쟁을 앞둔 상황에서 건강한 불안감을 느끼며 제품을 만들어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감금”을 선포하고 핵심 프로젝트로 자원을 집중시키는 동안, 페이스북의 경영진은 우선순위를 뒤엎거나 불안에 떨거나 망설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페이스북은 그해 여름과 초가을에 걸쳐 페이스북 사용자 경험의 핵심 영역 가운데 위협에 취약한 부분에 대한 수비 보강에 치중했다. 여기에는 고해상도 사진 및 새로운 포토뷰어, 진화한 그룹앱, 일대일 화상채팅을 위한 스카이프 통합, ‘타임라인’이라 명명한 새로운 버전의 프로필이 포함된다. 아울러 새로운 기능들이 공격적으로 추가되었다. 따로 떨어져 나간 메신저의 안드로이드 버전과 최초의 iOS 버전, 최초의 페이스북 아이패드앱과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업데이트한 콘텐츠를 친구 맺기 없이 구독할 수 있는 팔로우 기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사이에 구글은 본격적인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정확한 신원에 기반을 둔 이용자 프로필, 페이스북의 뉴스피드와 비슷한 스트림, 페이스북의 좋아요와 비슷하고 구글 검색과 통합되어 내 검색 결과와 친구들의 검색 결과를 개인맞춤화할 수 있는 +1 기능, 구글의 기존 서비스 피카사와 통합된 포토스 기능, 페이스북 페이지와 비슷하고 사업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페이지 등이 포함되었다. 구글에만 있는 두 가지 기능은 서클과 행아웃이었다. 전자는 여러분의 콘텐츠 중에서 어떤 것을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지 제한하기 위해서 친구들을 시각적인 그룹으로 묶는 기능인데, 매킨토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만든 실리콘밸리의 거물 앤디 허츠펠드가 개발한 것이었다. 후자는 최대 10명과 화상회의가 가능한 제품이었다.


2011년 6월 28일, 구글플러스는 거대한 무기를 들고 거대한 홍보 공세를 앞세워 싸움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언론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특히 서클의 경우, 어떤 친구가 어떤 내용을 보도록 관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페이스북의 접근법보다 분명한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았다.


구글플러스는 출범 2주 만에 ‘회원으로 가입한’ 이용자수가 1000만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 달 만에 2500만 명, 10월까지 4000만 명, 2011년 말까지 9000만 명으로 늘었다. 그 기간 내내 페이스북은 조용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제품을 출시했다. 오리가 수면 아래에서는 맹렬하게 물갈퀴질을 하듯이, 셰릴 샌드버그와 사업팀은 구글플러스 관련 수치들을 최대한 긁어모아 주단위로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고객들이 구글플러스 페이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그래서 페이스북 페이지가 성장세를 잃지 않도록 부지런히 일했다.


두 경쟁자의 승부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불명확한 상태에서 2011년이 저물었다. 명확한 승자도, 명확한 패자도 없었다.


2012년 2월이 되자 상황이 훨씬 분명해졌다. 조사분석기업 컴스코어가 충격적인 결과를 내놓았고, 구글플러스의 모든 잠재적 모멘텀은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1인당 월간이용시간에서 구글플러스가 고작 3.3분에 그친 반면, 페이스북은 무려 7.5시간이었다.


구글플러스는 습관이 되지 못했다. 그 회사 CEO의 - 적어도 하루에 두 번 쓰여야 한다는 - “칫솔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 말은 래리 페이지가 구글플러스 출시 직후인 2011년 7월 수익결산에서 구글의 제품들에 대해 자신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강조한 것이었다.


구글플러스는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출시하고 1년이 지난 2012년 6월, 회사와 페이지의 지극한 관심과 지원을 받아온 구글플러스는 월간활성이용자수가 1억 5000만 명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간에 페이스북은 활성이용자층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구글플러스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구글플러스가 등장했을 때 페이스북의 월간활성이용자수가 7억 명이었고 2012년 중반에 9억 명이었으니 2억 명 정도가 늘어난 셈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62년의 가르침: 구글플러스가 실패한 이유

사실 구글은 구글플러스를 런칭하기 3년 전에 이미 패배한 상태였다.


그 패배는 50년 전에 에버렛 로저스라는 사회학자가 처음으로 진행하고 이후에 실리콘밸리 컨설턴트 제프리 무어가 확장한 유명한 연구로 설명할 수 있다.


컨설턴트 제프리 무어는 1992년 《캐즘 마케팅》에서 로저스의 연구성과를 확장해 수용행위상의 중대한 격차가 혁신자 및 조기 수용자의 묶음과 조기 다수 및 만기다수의 묶음 사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는 이 격차를 뛰어넘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후발 경쟁자들에게 자연적 방어벽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 모든 것이 학술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인터넷 이용자층에서 확산해온 과정을 들여다본다면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


페이스북은 2009년에 16%선을 넘어섰고, 2011년까지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층에서 조기 다수의 절반에 확산함으로써 그 유명한 격차를 뛰어넘었다. 그 결과, 구글이 2011년 여름에 구글플러스를 내놓았을 때, 경쟁자는 이미 핵심적인 소비층 속으로 안전하게 건너가서 강력한 입지를 다진 뒤였다.


구글플러스가 기회를 잡으려면 조기 수용자들이 새로운 무언가에 더 열린 상태였던, 아직 격차를 넘어서지 않았던 페이스북과 푸르른 운동장에서 경쟁할 수 있었던 2008년에 등장했어야 한다.


아니면, 2011년에 충분히 차별화한 제품을 내놓았어야 했다. 페이스북이 마이스페이스를, 인스타그램이 트위터를, 구글 검색이 야후를 물리친 것처럼 신입이 선임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운동장의 모양새 자체를 뒤바꿔야 했다는 말이다.


카이로에서 일보 전진, 베이징에서 이보 후퇴

북아프리카와 중동은 2010년 말부터 내부적으로 격동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정치적, 경제적 여건과 인권 상황에 불만을 느낀 젊은 층이 주도적으로 움직인 결과였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알제리와 요르단으로 급속히 번져 결국 이집트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퍼졌다. 2011년 2월 독재자는 결국 권좌에서 물러났고, 권력을 넘겨받은 이집트 군부는 의회를 해산하고 헌정을 중단시켰으며 30년 묵은 계엄령을 해제했다.


폭풍이 지나간 이집트에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국내적으로 사회운동의 명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전 세계로 소식을 전하고 시위를 조직하고 활동가들을 관리하는 데 소셜미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는 응답자가 85%에 달했다. 응답자의 95%는 시민운동이 벌어지는 동안 뉴스 또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페이스북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은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소셜 플랫폼의 도움으로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서 정권을 뒤엎는 중동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능력은, 이집트 같은 곳에서는 승리일지언정, 중국으로서는 내치에 가장 위협적이라는 증거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셈이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인터넷 억제정책은 공산당 정부의 목표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이런 서비스들은, 애초에 선동적인 요소를 내포하건 사람들을 조직하는 수단에 불과하건 간에 추상적인 위협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인터넷 검색에서 ‘이집트’나 ‘재스민’같은 단어를 검열하고 재스민 꽃의 거래를 불허하고 중동 혁명의 여파를 보도하려는 외국 언론의 취재를 억압하고 미술가 아이웨이웨이를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을 구금하는 등 중동과 자국민 사이의 ‘정치적 전염’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중대한 역학관계와 - 국경선 안팎으로 정보를 통제하겠다는 어느 정부의 의지와 거의 정면으로 배치되는 - 더 열린 세상, 더 연결된 세상을 만들겠다는 페이스북의 미션을 고려할 때, 저커버그가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불확실한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장기전을 언제 수행할 것인가

더 멀리 내다볼수록 더 많은 가능성이 주어질 것처럼 보인다. 특히 초기의 성공으로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다면 더욱더 그렇다. 장기전이 모든 종류의 경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추상적이며, 가장 위험한 기회가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향후 10년 동안 수십억 달러의 매출과 10억 명의 신규 이용자들이 걸려 있는 만큼, 중국과 일본과 인도는 아주 오랜 장기전이 필요하지만 페이스북의 자산 목록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다. 페이스북은 사업의 성공을 위한 노력에 전념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 10년 동안 페이스북은 미국과 서유럽 사람들을 연결해 이용자층과 광고매출을 성장시키는 과업을 최우선시하면서 대부분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전 세계 광고지출의 50%를 차지하는 시장에서 기존 인터넷 이용자들을 연결한다는 목표야말로 페이스북 미션의 근본적인 측면과 동시에 사업의 본질적인 측면이었다.


그 노력이 성공의 길로 나아가고 있을 때, 저커버그는 인접한 메시징 시장의 증가하는 위협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자체 개발한 메신저의 성장과 엄청난 규모의 왓츠앱 인수를 계기로 핵심 미션에 인접한 것이 분명한 영역에서 페이스북의 주도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리고 나서야 저커버그는 중국과 일본, 인도에 대한 페이스북의 대처 강도를 높였다. 하지만 메신저 개발이나 왓츠앱 인수 등 페이스북의 핵심사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수준도 아니었고, 그 정도로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다. 물론 중국과 일본, 인도에서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것은 저커버그가 추구하는 미션의 기본적인 측면이 분명하고 매출의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승리에 대한 보장이 전혀 없는 장기전 특유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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