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수 있는 경제학

   
스튜어트 카울리(역: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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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아카이브
   
16000
2017�� 08��



■ 책 소개
《설명할 수 있는 경제학》은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은 내 것이 아니다”를 모토로 기획된 예문아카이브의 ‘설명할 수 있는’ 교양 입문서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경제 관련 대화를 막힘없이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쉽게 ‘이해’하고 제대로 ‘설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경제는 언제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다.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돈’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경제 지식이 많으면 자리마다 환영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지식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설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

 

이 책은 경제의 기본 개념과 주요 이슈를 독자들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조금 어렵다 싶은 이론은 비유로 풀고, 숫자를 봐야 알 수 있는 개념은 직접 계산해서 보여준다.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은 과감히 뺐고, 평소에 들어본 적은 많아도 막상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 못하는 주제들만 추렸다. 설명 방식은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며 애매하지 않고 명쾌하다. 곳곳에 삽입된 컬러 일러스트는 본문 내용을 완벽하게 보완한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경제 지식을 바로잡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도 키울 수 있다.

 

■ 저자 스튜어트 카울리
저자 스튜어트 카울리는 금융 컨설팅 기업 노스필드전략고문(Northfield Strategic Advisors) CEO 겸 대표 컨설턴트. 맨체스터대학교(University of Manchester)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대학원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금융계로 진출해 미국 월스트리트(Wall Street)와 영국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을 오가며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다. 글로벌 투자 기업 인베스코자산운용(Invesco Asset Management)에서 채권운용사로 일했으며, 힐새뮤얼자산운용(Hill Samuel Asset Management) 최고정보책임자(CIO)를 지냈다. 〈텔레그라프(Telegraph)〉〈시티와이어(Citywire)〉 등의 금융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BBC 〈뉴스나이트(Newsnight)〉〈라디오4(Radio 4)〉〈스카이뉴스(SKY News)〉 등의 경제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 역자 김후
역자 김후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및 대우조선과 대우통신에서 일했다. 이후 독립연구가로서 역사·문화·정치·사회·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 및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활이 바꾼 세계사》(제43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수상작)와《불멸의 여인들》《불멸의 제왕들》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밀수 이야기》《전쟁 연대기》(전2권), 《몬스터 스토리》(전5권)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며
① 경제학_경제학은 개, 고양이, 곰돌이 푸, 수염 기른 아저씨의 싸움일까?
② 통계학_판다도 경제 통계를 낼 수 있을까?
③ 복리_신용카드로 집을 사도 될까?
④ 채권_가장 안전한 투자처가 가장 위험한 까닭은?
⑤ 은행_아침 식사는 미포함입니다만
⑥ 주식_직장을 그만두고 주식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⑦ 가상 화폐_비트코인이 도대체 뭐기에
⑧ 국가 재정_나라도 파산할 수 있다고?
⑨ 백만장자_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⑩ 양적 완화_우리는 양적 완화 세대?
⑪ 파생 상품_그 많은 돈이 다 어디에 있을까?
⑫ 돈_돈이 돌지 않는 날
나오며
찾아보기




설명할 수 있는 경제학


경제학_경제학은 개, 고양이, 곰돌이 푸, 수염 기른 아저씨의 싸움일까?

나는 현재의 경제학을 개, 고양이, 곰돌이 푸(Winnie-the-Pooh), 수염 기른 아저씨, 이 넷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벌이고 있는 싸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 네 캐릭터가 대표하고 있는 인물들은 저마다 경제학을 통해 사회를 규정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고도로 지적이고, 표현력도 뛰어나며,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나아가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목적에 충실했던 사람들이다.


개 : 고전주의 경제학

스코틀랜드의 캐언 테리어(Cairn Terrier) 종인 우리 집 개 토비(Toby)는 고전주의 경제학이 갖고 있는 많은 특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토비는 무법자이고, 누구도 토비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토비가 인식하고 있는 권한이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받는 것인데, 먹을 것을 주거나 산책을 시켜주는 정도다.

*토비는 신비한 보이지 않는 힘이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서 세상의 질서를 유지시키고 있다고 여긴다. 토비는 매일 오후 4시 30분이 되면 밥그릇 앞에 자리 잡고 앉아서 나와 밥그릇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이때 토비의 머릿속을 오가는 질문은 "내 밥 어디 있어?" 이것 하나뿐이라는 게 확실하다. 처음에는 밥그릇이 비어 있어 당황하지만 조금만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질서는 회복되고 마침내 먹을 것이 눈앞에 나타난다.


우리 집 개 토비가 세상에 나오기 훨씬 전인 1776년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출판했다. 이 책이 바로 고전주의 경제학의 효시였다. 애덤 스미스와 당대의 다른 학자들은 "시장님이 가장 잘 알고 있다(Mr. Market know best)"라는 사고방식을 소개했다. 고전주의 경제학은 성장, 인플레이션, 고용의 관계를 관찰 가능한 사실들의 단순한 조합으로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이 그저 충분한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질서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성가신 정부나 조직이 시장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고양이 : 신고전주의 경제학

우리 집에서는 고양이도 한 마리 키우고 있는데 이 녀석 이름은 아치(Archie)다. 나는 아치가 신고전학파 경제학자가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아치는 본질적으로 도덕관념이라는 것이 거의 없어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모든 행동을 거침없이 하고 그 행동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또한 다른 이들이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거의 소리도 없이 이뤄진다.


신고전주의 경제학도 아치처럼 움직인다. 이 경제학은 단 하나로의 동기로만 작동하며, 다름 아닌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이 돈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사업가라는 기초 전제를 세워놨기 때문에 통치, 관례, 제도와 같은 것들은 지엽적인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인간은 일단 기회를 보면 그것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서다. 이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들의 전제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합리적이어야 하나 실제로 나타나는 증거들은 이와 반대이기 때문이다.


호랑이 티거와 당나귀 이요레 : 존 메이너드 케인

케인스는 금융시장에 도전해 자신의 확률론을 나름대로 적용시켜봤다. 그 결과 무일푼이 됐지만 이를 통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금융 시장과 경제학은 태생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경제, 시장, 돈을 움직이는 주체는 조증과 울증 사이를 휘젓고 다니기 좋아하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갓난아이들로 이뤄진 군중처럼 특별한 이유 없이 어울려 몰려다니기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앨런 알렉산더 밀른(Alan Alexander Milne)의 우와 <곰돌이 푸>에 등장하는 늘 우울한 당나귀 이요레(Eeyore)는 모든 상황에서 울적함만을 보이는 캐릭터로 어떤 상황에서건 위축될 리 없는 활달한 호랑이 티거(Tigger)와 대비되는데,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요레와 티거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케인스가 그렸던 그림과도 무척 닮았다.


국가 사이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인간과 돈의 비합리성에 대한 관점은 어려운 시기에는 정부가 지출을 확대해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케인스의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 정부의 지출은 승수 효과(Multiplier Effect)라고 불렀는데, 정부가 지출하는 한 푼 한 푼이 모두 국가 경제 안에서 여러 번 맴돌며 투자를 증폭시키는 피드백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에 대한 확신은 이요레를 사라지게 만들고 티거가 나타나도록 해준다.


수염 기른 아저씨 : 카를 마르크

18세기와 19세기 고전주의 경제학자들과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은 최소한 한 가지 관점에서만큼은 의견 일치를 보고 있었는데, 사회 계층을 노동자, 지주, 자본가라는 세 부류로 정의하는 것이었다. 이중에서 분배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뒤에 있는 계층이 노동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동자들은 돈을 벌면 술이나 유흥으로 탕진해버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가들은 돈을 벌게 되면 자의든 타의든 재투자를 해서 더 많은 수익을 얻으려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부의 창조로서 오늘날에도 소비를 억제하고 투자를 촉진하는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마르크스는 부가 지속적으로 소수에게만 집중되면 공장 노동자들은 시장에서 제공되는 재화를 살만한 돈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자신의 수익 수준과 원하는 재화의 금액 격차를 메우기 위해서는 빚을 져야 한다. 자본가들 역시 도박 같은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리고 그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생산량을 늘린다. 그러다가 이 순환이 멈추면 자본주의 체제는 붕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안에서 많은 장점을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까지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단결해 혁명을 일으켜 생산 수단을 장악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복리_신용카드로 집을 사도 될까?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돈을 빌리게 마련이다. 계좌 잔액을 초과하는 지출 때문에 처음에는 초단기 대출로 시작해 신용카드로 넘어가고, 자동차를 구입할 때 증폭을 거치며, 집을 살 때 주택 담보 대출로 정점을 찍는다. 그런데 이때 한번쯤은 들어봤다고 해도 확실히는 모르는, 이른바 이자라는 이름으로 꼬박꼬박 부과되는 돈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1987년에 정말 멍청한 짓을 했던 경험이 있다. 신용카드로 무려 집을 샀던 것이다. 당시 나는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대출 금리는 15%이고 신용카드 금리는 25%였는데도 5,000파운드의 주택 보증금을 신용카드로 결제해버렸다. 그렇다면 내가 15%의 금리로 집을 구할 수 있던 때에 신용카드로 샀던 것이 어리석은 행동이었을까?


가장 널리 알려진 이자율은 연리, 즉 연간이자율이지만 실제로 금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나머지 하나는 연간 부가이자율이다. 이 두 종류의 금리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둘 다 연이율로 인식되고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대부 업체들의 단기 소액 대출은 두 종류의 금리를 설명하는 데 무척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른바 제2금융권이라고 하는 대부 업체가 적용하는 연리(PA)는 통상적으로 292%지만 이를 부가 금리(APR)로 환산하면 무려 1,499.3%에 달한다. 그 이유는 부가 이자율에 기타 비용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대부 업체에서 100달러를 13일 동안 빌렸다고 하자. 금리가 하루에 0.8%씩 적용돼 1일 80센트의 이자가 발생한다. 13일 후에 여러분은 13×80센트=10.4달러의 이자와 함께 원금 100달러를 갚으면 된다. 이를 연리로 환산하면 0.8×365일=292%이며 업체가 광고하는 수준의 금리와 같다.


그런데 실제로 대부 업체는 다르게 계산한다. 대출 건을 처리해주는 명목으로 수수료 등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수수료가 월 43달러라고 하면 13일 뒤에는 이자 10.4달러에 수수료 43달러를 더한 53.4달러에다가 원금 100달러까지 모두 153.4달러를 갚아야 한다. 이를 연간 부가 이자율로 환산하면 (53.4/13)×365일=1,499.3%가 된다.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더 기가 막힌 것은 수수료는 돈을 빌리는 기간과는 상관없이 부과되기 때문에 대출 기간이 짧으면 적용되는 부가 이자율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1987년 10월 재앙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 증권 시장에서 10% 정도의 액수가 단 하루 만에 증발됐다. 동시에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나도 그 시기에 실직했다. 그렇게 되자 바로 그 직전에 내가 집을 사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5,000파운드의 보증금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빚이 되어 돌아왔다. 그 결과 나는 단 5년 만에 1만 7,000파운드의 부채를 떠안게 됐고 하루하루 고통을 맛봐야 했다.


이자율이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1세기에 들어서서 나타난 바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낮은 금리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지만, 이와 함께 우리 사회는 경악할 만한 수준의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다는 사실 또한 유념해야 한다. 예금에 관한 복리는 중요한 교훈을 전해준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자는 시간에 비례해서 여러분의 좋은 친구가 된다는 사실이다. 예금에 적용되는 금리가 물가 상승률 이하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여러분이 보유하고 있는 예금의 실질적 가치는 계속 커지기만 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복리는 예치 기간이 길어져야 좋은 친구가 되지만 예금주 스스로 친구 관계를 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급전이 필요한 경우도 생기고 더 좋은 투자 대상이 있다는 유혹도 넘쳐난다. 하지만 사실 이런 투자 전환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이런 식의 초단기 투자를 하도록 금융 회사들이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유인한다. 항상 이득을 보는 쪽은 기업이다. 여러분이 이익을 내건 손해를 보건 간에 수수료라는 기업의 수익 모델은 사라지지 않는다.



은행_아침 식사는 미포함입니다만

은행이 다른 사람들의 돈을 특정 금리로 차용해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보다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그 차액을 챙기는 곳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우선 은행이 돈을 구하는 방법에는 다음의 3가지가 있다.

1. 예금주들의 예금

2. 자기들끼리 서로 빌리기

3. 보다 넓은 금융 시장


자금원이 어떤 종류이든 간에 은행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돈을 빌려오는 것보다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 2가지 조건이 전제되기 때문에 은행은 유리하다. 첫 번째 전제조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빚을 갚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위험성이 높은 카드론에서조차 고객의 지불 불능 비율은 놀랄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두 번째 전제조건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라는 사실이다. 은행의 시각에서는 유일한 관심사가 "대출받은 고객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서 그 집을 팔았을 때 모든 법률적 비용을 제한 후에도 대출금을 상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주택 가격 상승률을 그리 높지 않은 5%라고 가정하더라도 여기에 대한 대답은 명쾌하게 "그렇다"가 된다.


인간의 몸에 대해 이제 겨우 한두 가지 알고 있을까 싶은 딸아이가 어느 날 내게 "아침은 안 치는 거야"라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잠시 후 이해가 됐는데, 아침 식사로 거위 기름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켜도 일하러 나가서 먹은 것을 모두 태워버리기 때문에 효과가 거의 없다는 기특한 말이었다.


딸아이 말대로라면 은행도 여러 측면에서 아침 식사와 비슷하다. 위험을 조기에 떠안으면 칼로리와 마찬가지로 그 위험성은 계산되지 않는다. 은행의 처지에서 해야 할 일은 위험 요소를 가능한 한 일찌감치 감수해버리는 건데, 이렇게 하면 주택 가격 평가와 시간의 흐름이 힘든 일을 모두 대신해주는 것이다. 여기에 고객들의 성실함까지 추가되면 금상첨화다.


그렇다면 1929년 대공황 이후 발생한 최악의 은행 위기를 넘긴 우리로서 21세기에도 계속 은행을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의 2가지 질문만 유념하면 된다.


1. 부동산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인가?

2. 은행은 어느 규모로까지 커질 수 있는가?


첫 번째 질문은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2050년까지는 인구가 계속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상승은 지속될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이보다는 약간 복잡하다. 영국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수많은 외국 은행들이 이곳을 활동 근거지로 삼고 있어서 은행들의 자산 합계가 GDP의 4.5배에 달했다. 1975년에는 규모가 100% 정도에 불과했다. 다른 국가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오직 미국만이 은행들의 자산 합계가 GDP보다 낮다. 하지만 이 사실에 안도하면 잘못이다. 미국의 GDP 규모가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규모가 커지는 것은 그 자체로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엄격한 규제가 따르지 않는 상태에서 은행 시스템만이 비대해지기만 한다면 그 국가의 정부는 그 시스템이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정부가 묵시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은행을 보증하기 위한 정책을 수행한다면 연쇄적 효과를 일으켜 결국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사고방식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이 아무런 제약 없이 과도한 위험을 떠안았을 때 새로운 위기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잉글랜드은행의 다른 연구에서 2050년까지 전 세계 은행 분야의 성장치를 추정했는데, 가장 보수적으로 잡았을 때마저도 영국의 은행 시스템 규모는 2배 정도로 커져 GDP의 950% 규모에 이르게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부유한 G20 국가들도 GDP 대비 평균 600% 규모의 은행 시스템을 갖게 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영국 은행들의 자산 합계는 5조 달러에서 60조 달러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 어떤 국가의 정부라고 해도 이런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엄청난 규모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함정으로부터 경제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가상 화폐_비트코인이 도대체 뭐기에

선반이 수도 없이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창고를 상상해보자. 모든 선반에는 똑같이 생긴 작은 항아리가 놓여 있는데, 거기에는 숫자와 알파벳(대소문자 구별)이 무작위로 결합된 표식이 붙어 있다. 그리고 항아리 안에는 동전이 들어 있다. 특이한 점은 이 항아리가 지독하게 충성스러워서 오직 한 사람에게만 충성을 바친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 여러분이 구매한 어떤 물건의 대금을 치를 수도 있다. 여러분이 항아리에 대고 뭔가를 속삭이자 뚜껑이 가볍게 열린다. 이제 항아리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상대방에게 건넨다. 상대방도 자기 항아리에다 속삭여 뚜껑을 연 다음 받은 동전을 넣는다. 그러고 나서 여러분은 커다란 장부가 있는 곳으로 가서 방금 동전 하나를 꺼내서 상대방에게 주었다는 내역을 기록한다.


이 항아리로 가득 차 있는 가상의 창고 사례가 바로 비트코인이 거래되는 방식을 물리적 공간으로 재현한 것이다. 항아리 아래에 붙어있는 표식은 비트코인 주소(bitcoin address)이며, 항아리를 열기 위해 속삭인 뭔가는 개인키(private key)다. 여러 개의 이메일 주소를 보유할 수 있는 것처럼 1개 이상의 비트코인 주소를 가질 수 있지만, 이 경우 각각의 주소는 각기 다른 개인키를 갖게 된다.


현재 비트코인 거래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1. 직접 거래 : 주식 시장과 유사한 방식이다. 현금으로 비트코인을 구입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2. 교환 거래 : 어떤 물건을 팔 때 기존 화폐 대신 비트코인을 받는 것이다. 반대로 물건을 구입하면서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3. P2P 거래시장 : 직접 거래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다른 점은 개인 대 개인으로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시장은 중재자 역할만 수행한다.


위 3가지 방식 말고도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비트코인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이를 채굴(mining)이라고 부른다. 매 10분마다 비트코인 개발사인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의 이전 마지막 거래에 기초를 둔 범위 안에서 무작위 번호와 알파벳 조합을 생성시켜 이를 찾는 일종의 퍼즐을 내고 있다. 컴퓨터 연산 작업을 통해 반복적으로 다른 번호 조합을 입력하는 방식이다. 여러 개의 그래픽 카드를 연결해 연산 속도를 높인 소위 채굴기라는 컴퓨터들이 하루 내내 이 게임에 참여한다. 채굴의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고성능 컴퓨터와 많은 양의 전기도 필요하다. 대행업체들도 있다. 사람으로 치면 극도의 노동이기 때문에 채굴을 통해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은 권할 만한 것은 못 된다.


비트코인 말고도 가상 화폐는 많지만 비트코인에는 다른 화폐가 갖지 않은 문제가 하나 있다. 이는 사실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일 수도 있다. 공급의 측면에서 보면 비트코인은 개발사가 밝혔듯 생성되는 수량이 제한될 것인데, 이는 현실에서 금이나 은 같은 재화의 공급이 제한적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런 초과 수요가 일어나면 가상 화폐에서도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가상 화폐에 대해 논의할 때 범죄 행위 증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비트코인 주소는 높은 수준의 익명성을 보장해주고 있지만,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을 통해 공유되기 때문에 항상 감시받을 수 있으며 결국 추적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엄밀히 말해 익명성이 아니라 가명성이라고 해석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런 익명성은 불법행위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다.


2015년 10월, 영국의 통신 회사 토크토크(Talktalk)가 해킹으로 수만 명의 고객들에 대한 신용 정보와 은행 관련 자료를 도난당한 적이 있는데, 이때 공격한 해커는 보상금으로 약 122,000달러, 영국 파운드화로는 80,000파운드에 상당하는 가상 화폐를 요구했다. 그가 요구한 가상 화폐는 다름 아닌 비트코인이었다. 이 사건은 며칠 뒤 영국 북아일랜드 지역 벨파스프(Belfast)에 사는 고등학생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백만장자_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과거에는 100만 달러가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또한 100만 이라는 숫자는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백만장자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뭐든지 살 수 있는, 재정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인데, 현재의 화폐 가치를 기준으로 백만장자라는 명칭에 걸맞은 정도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을 갖고 있어야 할까?


우선 100만 이라는 숫자가 재산을 말하는 건지 소득을 의미하는 건지 밝혀야 한다. 재산부터 계산하자면 여러분이 보유한 모든 재산을 합친 다음 거기에서 빚을 빼면 된다. 또 다른 잣대에 따르면 살고 있는 집, 가구, 자동차와 같은 것들은 제외한단다. 천재지변 등의 요인으로 잃게 될 수 있는 재산은 제외하고 순수하게 현금만을 계산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백만장자가 매년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백만장자라는 지위를 현대의 화폐 가치로 환산했을 때 오늘날 백만장자가 되려면 6,1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다른 기준으로 임금의 상대적인 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신규 백만장자 클럽(New Millionaires Club)에 가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금융 재산은 1억 6,200만 달러로 올라간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자격이고 이 클럽에서도 1900년대에 미국 대륙에 세워진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밥 먹듯 드나들고 호사스럽게 꾸민 대저택에 사는 엘리트 그룹에 속하려면 은행 잔고가 6억 4,000만 달러 이하로 떨어져서는 곤란하다. 요컨대 21세기에서 진정한 의미의 백만장자가 된다는 것은 이른바 99%의 중생들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 선정 500대 부자 리스트 같은 연감을 보면 이들이 누구인지 다 나온다. 하지만 이 리스트에서 맨 꼭대기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이 목록의 아래쪽을 봐야 한다. 새롭게 진입하는 인물들과 슬슬 몰락하고 있는 중동의 왕조가 수록되는 위치다. 이들에게서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비교적 현실적인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하임 사반(Haim Saban) : 인디 록밴드 유다의 사자들(The Lions of Judah)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음악이 아니라 매니지먼트가 자신의 길이라고 결심한 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뛰어들어 3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아이작 펄뮤터(Issac Perlmutter) : 장례식 사회자, 길거리 장난감 판매 등으로 돈을 모아 1996년 파산 직전의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를 인수한 뒤 38억 달러의 재산을 축적했다. 사업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으며, 1985년 <포브스>에 실린 사진 말고는 우연히 공공장소에서 찍힌 사진조차 없다.


*프레드 스미스(Fred Smith) : 평범한 이름과는 달리 1962년 예일대학교 학생 시절 컴퓨터 시대의 24시간 택배 서비스라는 미래를 내다보는 주제로 학부 졸업 논문을 제출했다. 떠도는 전설에 따르면 당시 그의 논문은 C학점을 받았지만, 결국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옮겨 페덱스(FedEx)를 창업해 43억 달러를 벌었다.


2015년을 기준으로 여러분이 <포브스> 500대 부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려면 최소 35억 달러가 필요하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10억 달러 이하로도 가능했다. 새로운 백만장자 클럽의 회원권은 우리가 거기에 다가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어떤 사람이라도 평생 동안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에는 한계가 있다. 2014년에 사망한 펠릭스 데니스(Felix Dennis)는 출판 사업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모았던 사람으로서 자수성가의 대표적 사례인데, 돈에 대한 그의 견해는 참신하고 명쾌했다.


"몇 백만 달러 정도까지는 돈을 모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을 모으려다간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백만장자가 되는 길은 앞에서 살펴본 부자 리스트 하위 100인 중 일부의 사람들처럼 사업을 통하는 것밖에 없다. 재정적으로 신경 쓰지 않고 살기 원한다면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야 하고, 그 아이디어로 사업을 성공시키는 방법이 유일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소식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21세기의 낮은 금리와 투자 수익률은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묶여 있는 거대한 자금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이 어마어마한 돈들이 좋은 투자처를 찾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것을 실행하는 데 지금처럼 좋은 시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