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미래를 여는 비밀열쇠

   
오병주
ǻ
서음미디어
   
15000
2011�� 10��



■ 책 소개

 

오병주가 본 오늘의 자화상『희망찬 미래를 여는 비밀열쇠』. 이 책은 저자가 10여회에 걸친 청와대 초청 특강 등에서 여담으로 이야기한 내용 중 일부를 모은 것으로 우주의 끝은 존재하는가? 타이머신은 가능한가? 사후세계는 존재하는가 등을 통해 우리의 자리를 찾아본다. 

 

■ 저자 오병주
1956 충남 공주 출생
1978 제 22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1979 서울대 법대 법학과 졸업
1979 공주 부군수실 행정관
1980 재무부 전매청 행정사무관
1981 제 23회 사법고시 합격
1985 수원지검 검사
1995 미 U.C. Berkeley법대 대학원 졸업(LLM 법학석사 학위 취득)
1997 서울대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 석사학위 취득)
1990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1991 UN 무역거래법위원회 한국대표(오스트리아 비엔나)
1993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1994 청와대 초빙강사
1995 UN범죄방지회의 한국대표(일본, 동경)
1995 법무연수원 교수
1997 대전지검 공주지청장
1998 대전지검 특수부장검사
1999~2000 미Stanford법대 초빙학자
2000 법무부 인권과장
2000 아시아 태평양 국제인권회의 한국대표(뉴질랜드, 로트루아)
2001 제 57차 UN인권회의 정부대표단(스위스, 제네바)
2001 법무부 송무과장
2002 법학박사 학위 취득(한양대)
2002 법무부 공보관
2002 한성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2002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2005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부장검사)
중국 칭화대 최고경영자과정 자문교수
사법연수원, 고려대 행정대학원 초빙강사
2007 대구고등검찰청 부장검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위원
건국대 법대 겸임교수
OK연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이명박 대통령후보 조직특보
2008 제18대 국회의원후보(한나라당 공천)
2009 한나라당 위원장, 법률위원, 정책기획위원
전국 충청향우회 부총재
2010 국무총리소속 대일항쟁조사지원위원회 위원장(차관)

 

■ 차례
제1부 우리는 과연 어떠한 존재인가
인간은 창조된 존재인가, 진화된 존재인가?
예수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는가?
인간복제는 영생을 가능케 하는가?
사후세계는 존재하는가?
또 다른 타임머신
불기둥과 구름기둥 그리고 만나

 

제2부 우주 그리고 자연의 신비
우주의 끝은 존재하는가?
타임머신은 가능한가?
UFO와 외계인은 존재하는가?
자연의 신비
음력과 양력에 대하여
A4종이를 42번 접으면 그 두께가 얼마나 될까?
불을 뽑는 용은 과연 설화속의 동물에 불과한가?

 

제3부 밝은 내일을 위하여
어느 사형수와 사랑의 힘
희망
청소년 여러분에게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남극 펭귄의 헌신적 사랑
어느 도마뱀의 사랑 이야기
전문가
변화에 대한 적응
나를 따르라
항상 감사하라
감사의 위력
큰 꿈
교만과 겸손
인생에서의 90대 10의 원칙
역사적 영웅을 만든 위대한 조부모
성공에 이르는 가장 값진 길
나폴레옹의 창의적 사고
왕충이 가르쳐 주는 지혜
한국형 원자로와 공무원의 소신
백만장자 노점상 죠 아데스
한 순간에 뒤바뀐 인생

 

제4부 역사속의 교훈
고려시대, 우리는 로켓을 쏘았다
해상왕국 고려
조선시대 역관의 경제적 지위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
세종대왕의 용병술과 리더십
통역관 홍순언
암행어사 박문수와 관상쟁이
조조와 화타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
술의 엑기스
조선의 사법제도를 통해 본 선조들의 지혜
서희는 거란 80만 대군을 어떻게 물리쳤나?
로마유리 2000년 전 신라에 오다
춘향전 이몽룡은 실존 인물인가?
장희빈의 아들, 경종에 대한 재평가
개혁군주 광해군은 왜 실패를 하였나?
우리 역사의 소중함
우리 선조들의 수학 및 과학 지식
콰이강의 다리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사인은 무엇인가?

 

제5부 국가안보와 외교 
북한 김정일의 용병술과 대북정책
왜, 독도는 한국땅인가?
역사를 통해 본 국가안보
국가안보와 평화

 

제6부 문화 
우리의 영어 교육, 이대로 좋은가?
석구봉 도사이야기
사물을 보는 눈
물(水)과 불(火)은 과연 상극인가?
물의 두 얼굴
Next China의 선두주자, 인도를 주목하라
독일은 과연 햇볕정책에 의하여 통일을 이루었는가?
중국인의 상술
마릴린 몬로의 사인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제7부 법과 인간
법이란 무엇인가?
UN범죄방지회의를 다녀와서
UC 버클리대 유학기

 

제8부 기쁜 오늘을 위하여
생활의 활력소 웃음
장난 전화
가장 큰 성(姓)씨와 작은 성(姓)씨는?
선거는 역시 바람이다
우정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
재미있는 거짓말 같은 사실
면접관들을 포복절도케 한 사람
어느 성공한 세일즈맨의 인내와 노력
골프장에서
삼행시
인터넷 유머




희망찬 미래를 여는 비밀열쇠


밝은 내일을 위하여

희망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도 100일을 버틸 수 있고, 물을 먹지 않고도 10일을 버틸 수 있으며, 잠을 자지 않고도 7일간을 버틸 수 있고, 숨을 쉬지 않고도 8분간을 버틸 수 있지만, 희망이 없으면 잠시도 살 수 없다.


단테는 그의 명저 『신곡』에서 지옥을 희망이 없는 곳으로 묘사하고 지옥과 천국의 중간 단계인 연옥은 아직은 희망이 존재하는 곳이어서 오히려 지구보다 더 활발한 분위기로 묘사하고 있다.


이태리가 낳은 세계적인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의 어린 시절에,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장래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카루소에게 네 목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소리와 같아서 결코 성악가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으나 그의 어머니는 어린 카루소에게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끝까지 신뢰를 보내 주었다.


그가 무명시절 식당에서 노래를 불러 생계를 해결할 당시, 식당 주인은 노래가 너무 형편없다며 그를 해고했으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낮은 음조의 바리톤을 테너로 전환하여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함으로써 황금의 목소리라고 세계 언론이 격찬한 이태리가 낳은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었다.


희망은 무명의 시골 소년을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성악가로 만들었다. 희망은 가난한 시골 소년 링컨과 소아마비 장애소년 루즈벨트를 위대한 미국 대통령으로 키워 내기도 하였다. 또한 희망은 가장 참혹한 고대의 사형집행 수단인 십자가 처형장에서 죽음을 앞둔 강도까지도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


죽음을 앞둔 이 강도에게 무슨 희망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십자가에 묶인 절망의 상황에서도 이 강도는 예수를 조롱하며 희망을 포기한 또 다른 강도와는 달리 자신들은 죽을죄를 저질러 처형당함이 마땅함을 고백하고 죄 없이 처형당하는 무고한 예수에게 연민과 마지막 희망을 보냄으로써, 이 죄수는 죽음을 앞둔 절망적 상황에서 구원자 예수를 만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설사 생이 끝나는 어떠한 희망도 가지기 어려운 절망적 상황에 부딪힌다 할지라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함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창의적 사고

전쟁영웅 나폴레옹은 발명가적 사고를 가졌다. 나폴레옹은 신기술을 전쟁에 응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였던 바, 어뢰, 잠수함, 강철대포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소유했었다. 통조림은 나폴레옹이 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폴레옹은 1790년 식품의 장기보관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현상 공모하였다. 당시 현상금은 1만 2천프랑으로서 파리의 제과업자이던 니콜리 아페르가 당선되었다. 병에 음식을 넣고 밀봉한 뒤, 끓는 물에 넣어 가공하는 방식이 선정된 것이다.


나폴레옹에게 통조림이 절실했던 이유는 장기간의 원정을 위해 다수의 보급기지와 보급품이 필요하였는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병력이 소모되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전력의 핵심을 기동력(당시 나폴레옹군의 기동력은 타 유럽군의 2배)라고 보았고 나폴레옹 군대는 기동력 유지를 위해 텐트도 없이 노천에서 취침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군대의 이동에 있어서 무거운 냄비가 큰 문제였다.


당시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식료품은 질이 좋지 않아 익히지 않으면 섭취가 불가능한 상태였고 냄비에 넣어 익히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전장에서 음식을 익히기 위한 물과 땔감을 구하기 위해 병사들이 넓은 숲과 들을 방랑해야 하였고, 이에 따라 적의 기습에도 취약한 문제점이 있었다.


나폴레옹은 만약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하였다. 당시 군대는 음식의 현지조달을 위해 약탈을 자행할 수밖에 없었고 부대의 한 끼 식사를 위한 땔감 조달에 마을 하나가 사라져 버릴 정도였다.


나폴레옹은 식량결핍으로 몇 번의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만약 먹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병사들의 체력 비축과 견고하고 빠른 진지 구축, 행군 속도 향상, 민간인 피해 감소, 승리 가능성 향상 등 긍정적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착안한 나폴레옹의 병조림 식품은 인스턴트 식품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나 개발한 병조림을 군에 보급했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유리병이 무거우며 잘 깨지고, 음식의 보존상태도 균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통조림은 역설적으로 프랑스의 숙적인 영국에서 발명되었다. 1813년에 런던에 최초의 통조림 공장이 설립되었고, 프랑스군은 거꾸로 영국군에게서 통조림을 노획해서 활용하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작은 기술 하나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간파하였고, 그것이 바로 통조림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였다.


오늘날 신기술과 아이디어의 창출, 창조적 안목과 유연한 사고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통조림보다 주먹밥을 선호했던 일본군은 C-레이션(당시 미국의 전투식량)을 사용하는 미군보다 보급에 열세였다. 심지어 전쟁터에 가축무리를 끌고 이동하기도 하였다. 전쟁에서 미국이 일본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었음은 자명하다 할 것이다. 신기술과 창의적 사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역사속의 교훈

세종대왕의 용병술과 리더십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냐고 질문하면 대개 역경을 이기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노예해방을 한 링컨대통령,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3선까지 한 루즈벨트 대통령 또는 영국의 처칠 수상 등을 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숱하게 등장한 정치인들 중 우리의 어린 학생들 눈에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비친 분이 그리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영어에서는 정도를 걷는 정치가를 스테이츠 맨(statesman), 정도에서 이탈하여 술수에 능한 정치꾼을 폴리티션(politician)이라 하여 용어 자체를 구별하여 쓴다.


과연 우리나라에 존경할 만한 정치가는 없는가? 나는 우리에게도 5000년 역사에 세계 어느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보다도 위대한 정치가가 있다고 단언한다. 바로 우리 민족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이다. 조직을 이끌고 경영함에 있어서는 인적 자원의 발탁과 적정 배치, 즉 인사와 예산의 적정 운용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방대한 조직인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인적 자원의 교육과 발탁, 적절한 배치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세종은 바로 이 같은 인적 자원의 발탁과 배치, 즉 용병술의 천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세종은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50)으로서, 장헌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418년(태종18)에 왕세자에 책봉, 동년 8월에 22세의 나이로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세종은 즉위 후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고 정치, 경제, 문화, 과학 기술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치적을 쌓아 수준 높은 민족 문화의 창달과 조선 왕조의 기틀을 굳건히 하였다. 그분의 위대성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보 책임자로서의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김종서 장군을 발탁하여 6진을 개척하고 최윤덕 장군을 발탁하여 4군을 개척케 하여 중국, 특히 만주 여진족들의 외침으로부터 완벽하게 국가를 보위하였다. 아울러 당시 일본, 즉 왜의 침략에 대응하여 이종무를 발탁, 상징적으로 대마도를 정벌하고 왜로부터 매년 조공을 바치도록 하였다. 주변 강국인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통일 한반도를 완벽하게 지켜낸 역사상 보기 드문 안보책임자로서의 세종대왕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둘째, 한글 창제자로서의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성삼문, 박팽년 등 학자를 발탁하고 친히 한글을 창제하였다. 세계에는 약 3,000개의 언어가 존재하나, 이중 글자를 보유한 언어는 100여 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글은 이 100여개의 언어 가운데 12,700여 글자를 보유하여 세계 어느 나라의 언어보다 많은 글자수를 자랑한다.


또한 비록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한글이 많이 변형되었지만,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본래의 한글은 다른 언어와는 달리 바람소리, 동물 울음소리까지 표기가 가능하며, 전 세계 200여 개 국의 각종 언어의 발음을 원어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글자이다.


예컨대 영어의 uncle, sun은 현재의 한글로는 앙클, 썬으로 표기할 수 있겠으나 이는 미국 본토 발음과는 상이하다.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한글로는 영어의 uncle, sun을 미국 본토 발음과 거의 같게 표기할 수 있다. 또한 일본어, 아프리카 언어, 독일어의 우므라우트 발음까지도 원음 그대로 표기할 수 있다.


셋째, 과학 기술 중흥자로서의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당시로서는 출세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창기(娼妓)의 아들 장영실을 발탁하여 종5품 벼슬을 주고 그를 정승의 반열까지 승진시키면서 앙부일귀, 측우기, 금속활자 등을 제작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기술을 중흥하였다. 당시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약 50년이나 앞서 있었다.


넷째, 문화 창달자로서의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박연을 발탁하여 우리나라의 국악을 중흥시켰다. 흔히 우리나라의 국악에 비하여 서양음악이 질적으로 더 우수한 것처럼 오인하고 있으나, 서양음악과 국악에 모두 정통한 어느 음대 교수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국악이 서양음악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음악이라고 한다. 즉, 서양음악은 피아노로 도를 치면 첫 음과 끝 음이 그대로 도이고 레를 치면 마찬가지로 첫 음과 끝 음이 레이나 국악은 아리 아리라~앙 하듯이 같은 음계 내에서도 첫 음과 끝 음이 무수히 변형되는 등 매우 질적으로 우수한 음악체계라는 것이다.


또한 세종대왕 당시 수백 명의 악사가 연주하는 국악공연을 재연할 경우 그 소리의 웅장함과 파동으로 인하여 웬만한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져 내릴 정도라고 한다. 세종은 박연과 같은 우수한 인재를 발탁하는 한편 친히 국악 악기를 설계하고 100여 곡에 이르는 악곡을 작곡하는 등 우리나라의 국악을 중흥시킨 분이다.


다섯째, 용병술의 천재로서의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당시로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엄격한 신분질서 속에서 만조백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파격적으로 창기(娼妓)의 아들 장영실을 발탁, 종5품 벼슬 즉, 오늘날의 사무관(5급) 계급을 부여한 후 정승 즉 장관의 반열까지 승진시키면서 조선의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 혹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전제 군주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종5품의 중간계급을 준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과 계급은 인플레되기 마련이어서 현재의 사무관 계급에 비해 500년 전의 조선시대 종5품 벼슬은 엄청난 계급이라 할 수 있다. 지방 자치가 실시되기 전 서기관(4급)이면 군수에 해당하는 계급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사무관이 군수를 나가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지금은 서기관급인 무궁화 4개 총경이 경찰서장을 하지만 과거에는 무궁화 3개 경정이나 무궁화 2개 경감이 경찰서장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 불과 몇 십년 전의 과거를 살펴보더라도 현재의 계급이 인플레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하물며 500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종5품 벼슬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세종 집권 당시는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의 쿠테타에 의해 집권한 후 방원 등 형제간의 잔혹한 투쟁을 거쳐 집권한 조선 건국의 초기 상황으로서 완전히 왕권이 확립되어진 시기가 아니었으며 조선이나 고려의 역사가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갈등관계로 볼 수 있음에 비추어 조선 건국 초기 무수한 신하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장영실을 발탁한 일은 일대 큰 사건으로 파악되어질 수 있다고 본다.


조선 중기 영조가 임종시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던 손자 정조에게 네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자는 이 할애비가 아니라 영의정 김병찬 일당의 붕당들이다. 네가 훗날 이들을 경계하고 응징해야 할 것이다라고 유언하고 타계하였다. 어린 정조는 신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몸을 낮추고 왕권을 확립한 연후에야 자기 아버지를 실질적으로 죽게 한 영의정 김병찬 일당 신하 4,000명을 데리고 수원에 있는 사도세자 릉을 참배케 하니 이를 그린 그림이 박물관에 남아 있는 능행도이다.


정조는 국정을 개혁함과 아울러 다산 정약용 등 과학자를 발탁하여 수원성을 축조하고 비밀리에 수원 천도를 계획하였으나 자신의 피부 부스럼 증세를 치료코자 주치의가 준 탕약을 먹고 즉사함으로써 그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때 정조의 사인을 규명하여 책임자를 처벌하려는 세력과 정조의 사인을 묻어 두려는 세력간에 정쟁이 있었으나 사인을 은폐하려는 기존 세력이 득세함으로써 정조의 사인과 개혁 작업은 역사 속에 묻혀버리게 된 것이다.


이같이 조선시대의 왕권과 신권 간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갈등과 긴장 관계 속에서 세종대왕은 만조백관들의 극심한 반대를 물리치고 자신의 소신을 설득하여 위대한 과학자 장영실을 발탁하였으니 과연 용인술의 천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다.


또한 1420년에 설치된 집현전에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발탁, 왕과 세자에 대한 학문적인 자문과 교육, 각종 학술 연구, 서적들을 편찬하과 정치적으로 중앙집권 체제를 정착시키고자 황희, 맹사성, 허조 등의 청백리를 등용하여 왕권과 신권의 조화에 노력하여 의정부의 독주를 견제하였고, 집현전을 왕립 학술기관으로 확장하여 변계량, 신숙주, 정인지, 성삼문, 최항 등 장년층의 학자를 등용하여 정치자문, 왕실 교육, 서적 편찬 등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다.


그리고 궁내에 정음청을 설치, 성삼문, 신숙주, 최항 등으로 하여금 1443년(세종25) 한글을 창제하게 하고 1446년 이를 반포하였다. 또한 학문의 장려에 힘쓰면서 효행록, 삼강행실, 오례의, 자치통감훈의, 치평요람, 용비어천가, 고려사, 역대병요, 동국정운,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의방유취 등 각종 서적을 편찬하게 하고 이천에게 명하여 경인자, 갑인자, 병진자 등을 제작하게 하였는데, 그 중에서 갑인자는 정교하기로 유명한 활자이다.


그리고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여 1425년 관습도감을 설치하고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박연을 발탁, 아악기를 개조하여 고래의 아악, 당악, 향악의 모든 악기, 악곡, 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게 하였으며, 정대업, 보태평 등 저명한 악곡을 제작하게 하였다.


또한 실록 보관을 위하여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에 4대 사고를 설치하였고, 1442년 이천, 장영실을 발탁, 측우기를 제작하게 하였는데, 이는 1639년 이탈리아의 B.가스텔리가 발명한 측우기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그리고 궁중에 과학관인 흠경각을 설치하여 과학기구를 비치하도록 하고, 혼천의, 해시계, 물시계 등 각종 과학기구를 발명하였다.


김담, 이순지 등을 발탁하여 중국 원나라의 수시력, 명나라의 대통력을 참작하고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빌어 역서인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하였고 천문, 역법, 의상 등에 관한 지식을 종합한 「제가역상집」을 이순지로 하여금 펴내게 하였다. 


여섯째, 사랑의 리더십을 실천한 군주로서의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암행어사 300여 명을 비밀리에 파견하여 두메산골의 백성까지 찾아가 세제 등 각종 제도 개혁안에 대한 백성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기득권 세력들의 격렬한 저항을 물리치고 각종 제도를 개혁하였다. 즉, 경제, 사회 정책에 있어 1436년 공법상정소를 설치하고 각 도의 토지를 비척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세율을 달리하는 안을 실시하였고, 1443년에 공법상정소의 안을 시정하기 위해 전제상정소를 설치하고 풍흉에 따라 연분 9등법으로 분류했고,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 6등법에 의한 수등 이척법으로 조세의 공평화를 도모하였으며, 전국의 토지를 20년마다 측량하여 양안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의창, 의료제도, 금부삼복법을 제정하고, 노비에 대한 지위 등을 개선함과 아울러 사형을 금하도록 하였다.


또한 당시 5년여에 걸친 극심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주리자 광화문에 대형 솥단지를 걸게 하고 죽을 끓여 굶주린 백성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게 하고, 자신은 궁궐에 초가삼간을 짓도록 하고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기근이 끝날 때까지 수년간 기거하며 국정을 살폈으며, 새벽 2시에 신하는 대동치 않고 집현전을 방문하였다가 한글을 연구하다 이불을 덮지 않고 잠이 들어 있던 학사를 발견하고 조용히 자신의 곤룡포를 덮어주고 나오기도 하였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난 신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성은에 감읍하였음은 물론이다.


이제 세종의 대외 정책을 살피고자 한다. 대외 외교 정책으로는 앞서 본바와 같이 김종서, 최윤덕 장군을 발탁하여 6진 4군을 개척함과 아울러 이종무 장군을 발탁, 일본을 정벌하였다. 세종대왕은 국가의 주권 확립과 영토확장에 혁혁한 치적을 이루어 냈는바, 명나라와의 관계를 보면, 처녀진헌을 폐지하는 한편, 당나라에 보내던 금/은의 조공물을 폐지하고 마/포로 대신하도록 하였고, 여진과의 관계는 무력사용과 회유를 병행하는 화존 양면책을 썼는데, 두만강 유역의 여진은 김종서로 하여금 구축하도록 하고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고, 압록강 유역의 여진은 최윤덕, 이천 등으로 하여금 4군을 설치케 하였다. 이 때의 국경선이 압록강으로부터 두만강까지 확보되어 이곳에 사민정책을 실시하는 등 국토의 균형된 발전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일본과는 1419(세종1년) 이종무로 하여금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을 정벌하게 했으며, 이후 쓰시마 도주 소 사다모리가 사죄하고 통상을 간청해 오자, 1426년 삼포를 개항하였다. 이후 왜인의 출입이 증가하자 1443년 왜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신숙주의 교섭으로 변효문과 소 사다모리 사이에 계해조약을 체결하게 하여 1년 동안에 입항할 수 있는 세견선을 50척으로 제한했고, 세사미를 200섬으로 제한하는 한편, 반드시 수도서인에 한하여 왕래하도록 무역과 출입을 통제하였다.


세종은 이같이 용병술의 천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정치,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였다.


세종에 이르러 조선은 비로소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이 마련되었고, 집현전을 통하여 발탁한 성삼문, 박팽년 등 인재들은 세종의 사후에도 세종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사육신, 생육신이 되어 세종의 손자인 단종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삼족을 멸하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주군의 손자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신하를 발탁하고 키운 세종대왕의 진정한 리더십과 용인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세종대왕은 이 같은 용인술로써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하여 500년이나 이어지는 조선의 기반을 다졌던 것이다.



문화

물(水)과 불(火)은 과연 상극인가?

남녀가 궁합을 볼 때, 음양오행상 물과 불은 상극이므로 물의 사주를 타고난 사람은 불의 사주를 타고난 사람과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고 한다.


과연 물과 불은 상극인가?


불에 물을 끼얹으면 불이 꺼져버리므로 겉으로만 보면 물과 불이 상극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견해라 할 것이다. 물의 화학적 분자 기호는 H2O이다. 즉, 물은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의 구성요소인 수소는 불을 만나면 자신이 폭발적으로 타 불을 살리며 물의 또 다른 구성요소인 산소는 꺼져 가는 불도 다시 살려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물이 있어야 나무(木)가 살며, 나무가 있어야 불이 살 수 있는 것이니, 피상적인 겉모습만 살필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깊숙한 본질을 파헤치면 결국 물과 불은 상극이 아니라 상생(相生)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주역이나 대부분의 동양철학이 물과 불이 상극이라는 관점에서 역리학을 전개하고 있으나, 조선시대 남사고라는 역리학자는 놀랍게도 물과 불을 단순히 상극관계로 단정치 아니하고 서로 상생이 가능한 관계로 파악하였으며, 그의 「사주명리학」이나 예언은 놀라울 정도의 정확성을 자랑하고 있다.


물과 불의 관계를 피상적으로 파악해서는 안 되듯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단순한 겉모습으로만 단정치 말고 그 진면목을 헤아리고 서로 보완하는 측면이 있음을 깨달아 서로 화합함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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