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이 책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한국인 학생 이지수가 중고 휴대전화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영국 경제학의 대가 케인즈를 만나고, 그를 통해 새내기 경제학도에서 경제학 교수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저자 최양오
서초를 바꾸는 힘! 최양오
현장중심 정치로 서초를 바꾸겠습니다.
보육문제 해결, 지하 경전철, 재건축 문제 등의
지역현안사업은 제도와 규제를 풀고 개선하여 지역민의 입장에서 해결하겠습니다.
최양오가 걸어온 길
.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농업경제학 박사(1984.12~19991.12)
.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 학사
. 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겸임교수(현)
. 현제경연구소 고문(현)
. 삼성경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전)
. 페어차일드 코리아 반도체 수석부사장(전)
. 차바이오텍 대표이사(전)
. 대통령비서실 경제.정무 행정관(전)
http://blog.naver.com/seochoi55
■ 차례
0. 책을 발간하며
1. 가지 않는 길
2. 영국으로의 초대
3. 유학생 이지수: 무지개가 안내했던 길
4. 루즈벨트를 찾는 중고 휴대폰
5. 지수와 케인즈의 만남
6. 블룸즈버리
7. 노란 숲속의 새 길:엘사
8. 케인즈 사랑이야기
9. 대공항
10. 실업과 임금
너를 위한 경제학
가지 않은 길
2036년 어느 날. 이날은 H대학에 재직 중인 이지수 교수의 올해 첫 경제학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이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H대학에 마련된 가장 큰 강의실에는 이교수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 많은 학생들이 강의실 한쪽 구석부터 줄지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심지어 수업시간 10분 전에 도착했을 때도 겨우 뒤쪽에 자리를 잡아야 할 만큼 강의실은 학생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시작한지 벌써 20년째 접어드는 이교수의 강의는 그만의 독특한 말투와 명석한 논리 전개로 강좌를 수강하는 모든 학생들을 매료시켰으며 주로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보다는 실제생활과 관련지어 재치있는 말솜씨와 함께 특유의 실증적인 분석법으로 강좌를 듣는 모든 수강생에게 결코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그날도 그는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시 한 편을 인용하여 학생들에게 경제학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오늘 나의 강의는 이 시의 한 구절과 함께 시작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문학전공 교수도 아닌데 왜 이 시를 인용해 수업을 시작하느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이 시는 경제학적으로 정말 큰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함의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또한 왜 그러한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이 강의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교수는 다른 경제학 교수와는 달리 책에서 언급되는 주요한 내용을 무조건적으로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무언가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경제학적인 발상을 통해 경제학적 사실 하나하나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경제학이 어떠한 학문인지 쉽게 와 닿을 수 있게끔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가능하면 학생들에게 책에 있는 사실에 대한 간략한 언급보다는 왜 그러한 이론이나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지식도 반드시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강의도 분명 그렇게 진행될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그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다음 시간까지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화면상에 제시된 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점을 알려주고자 하는지 각자 생각해보고 보고서를 작성하기 바랍니다. 분량에는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한 줄을 쓰더라도 스스로 작성한 내용에 대해서 분명한 이유와 근거를 밝혀서 쓰길 바랍니다."
이교수의 숙제를 받아서 적은 학생들은 하나둘씩 강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이교수도 학생들의 인사를 받고는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유학생 이지수 – 무지개가 안내했던 길
유학생 이지수가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그의 눈을 통해 보았던 영국은 한국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이나 건물 혹은 거리 위에 차의 통행방향까지도 한국과 달라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차를 타고 한 20여분쯤 자신이 머물게 될 메리의 집에 도착한 지수는 그의 방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마치 약속시간에 늦는 것 마냥 부리나케 곧장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달려가서 학과사무실에 입학을 신청했다. 입학 수속을 마치고 대학원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순간 방금 전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입학신청을 하고 있었던 한 청년이 사무실 앞 벤치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계속해서 지수가 오는 쪽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만! 너 혹시 아까 경제학과에 입학 신청하지 않았니? 아까 나에게 서류 작성 물어본 학생 맞지? 혹시 이번에 경제학과에 입학했어?"
청년은 지수에게 서류 작성하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우연히 지수가 지원하게 된 학과도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 역시도 경제학과에 입학신청을 해 놓은 상태라고 말하면서 다시금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 나는 하워드라고 해. 나도 이번에 경제학과에 신입생으로 입학하게 되었어."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기 아쉬운 듯 우선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아서 같이 차를 한잔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는 처음이라 조금은 어색하지만 이내 서로에 관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해는 거의 저물어 창가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찻잔에 붉은 빛을 감돌게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하였으나 첫 만남은 간단히 하기로 하고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으면서 내일 낮에 점식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지수야 그럼 내일 여기서 12시에 보는 걸로 하지. 그리고 나에게 전화번호를 좀 알려주겠어? 혹시나 다른 사정이 생기면 전화할지도 모르잖니?"
"어떡하지? 여기 온지 얼마 안 되어서 난 아직 핸드폰 구입을 못했는데. 대신 하워드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면 내가 그쪽으로 전화를 할게."
다음날 12시 두 사람은 어제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점심을 먹기 위해 학교 식당으로 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온 두 사람은 함께 차를 마시면서 학창시절 처음 경제학을 접했을 때 배웠던 선택의 개념과 효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 갑자기 하워드에 머릿속으로 지수가 어제 핸드폰을 구입하겠다고 했던 말이 순간 떠올랐다.
"참 지수야, 어제 휴대전화 산다고 하지 않았어?"
"어제 사려고 갔었지만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어. 여긴 아직 휴대전화가 그렇게 비싼걸 보면 사람들이 많이 쓰지 않나 봐."
"바쁜 직장인이나 좀 쓰지. 일반사람들은 잘 쓰지 않아. 그리고 요금도 많이 비싸거든. 구매하는 경우에 있어 가격수준이 턱없이 높으면 수요가 감소한다는 수요의 법칙을 지수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지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지수도 경제학적으로 재치 있게 대답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돈에 대해서(주어진 소득) 그 비싼 휴대전화가 나에게 주는 효용(만족감)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돈으로 실제 지불하는 값(명시적비용)과 더불어 내가 그 휴대전화를 선택함에 있어 포기해야 했던 다른 선택(기회비용)의 합보다 크다면 그 휴대전화를 사는 게 현명하다고 이미 배웠을 거야.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만족감은 크나 그게 내 용돈을 이미 초과해서 살 수 없는걸. 그 대신에 내게 주신 용돈에서 최대 만족을 얻기 위해 난 중고휴대전화를 구입하기로 했지."
두 사람이 다시 중고휴대전화를 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문득 하워드의 머릿속으로 예전에 자신이 알고 지내던 한 유학생이 교내 중고시장에서 휴대전화를 싸게 구입했다는 말을 들었던 사실이 기억났다. 그래서 하워드는 지수에게 유학생들이 쓰다가 팔려고 내놓은 휴대전화 중에 좋은 것이 많으므로 그런 것을 찾아보라고 조언해주었다.
루즈벨트를 찾는 중고전화
중고물품을 파는 교내 중고시장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내놓은 여러 가지 중고품들이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었다. 때마침 상점 주인이 지수에게 무엇을 전공하는 학생이냐고 물어보았다.
"전 이번에 경제학과에 입학할 한국에서 온 학생입니다."
경제학과에 입학할 학생이라고 말을 들은 상점 주인은 갑자기 허리를 숙여서 자신의 앞에 놓인 진열장 아래서랍에서 조그마한 상자를 하나 꺼낸 후에 그 안에 들어있는 휴대전화를 지수 앞에 내밀었다.
"경제학과 학생이라니 특별히 손님에게만 소개해도 괜찮겠군요. 어떠한 자세한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나 이 핸드폰을 맡겼던 전주인은 내게 이 핸드폰을 반드시 경제학과 학생에게만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상점 주인은 휴대전화를 예쁘게 포장해 주고 메모지에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도 써서 지수에게 건네주었다. 휴대전화 구입을 마친 두 사람은 하워드의 집에서 자신의 새 휴대전화가 왜 굳이 경제학과 학생이 받아야 하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지수도 하워드도 두 사람이 모두 경제학과 입학예정자이기 때문에 그 전화에 대한 관심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지수는 하워드의 거실에 앉아 새로 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면서 기능과 버튼을 하나하나 익히기 시작했다. 중고품이긴 하나 거의 새 제품이라 그런지 전화기 버튼 성능도 좋았고 그래서 키 입력이나 기능 파악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미심쩍은 사실은 다른 것은 분명 새것처럼 다 지워져서 초기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전화번호부만큼은 단 하나의 번호를 저장해 놓은 채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갑자기 지수의 휴대전화에서 벨이 울렸다.
"각하 투자수요를 늘려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누군가 대뜸 계속해서 각하라는 말을 남발하면서 지수의 귀에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지수는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가 어이없음을 느꼈다. 지수는 차분한 어조로 전화를 건 상대방에게 공손하게 자신은 각하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지수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럼 거기는 어디지. 난 미국의 루스벨트 각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죄송하지만 전 루즈벨트가 아닙니다. 전화를 잘못 거셨어요."
번호의 주인이 누군가 싶어서 받아보았는데 역시나 한 정신병자의 전화였다고 생각한 지수는 이내 괜한 생각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하워드가 준 차를 마시면서 몸을 소파에 기대어 아까 전 하워드와 나누었던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찰나에 또다시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루스벨트 각하. 아까 전화 드렸는데 잘못 걸린 전화라고 하는군요."
이번에는 지수 쪽에서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수화기에 대고 큰 소리로 자신은 루스벨트 각하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 소리를 들은 하워드는 깜짝 놀라서 거실로 달려왔다.
"지수, 그냥 끊어버려. 오늘 학교에 경제학 예비강의가 있대. 그거나 들으러 가자."
지수는 수화기에 대고 자신은 절대 각하가 아니니 다시는 전화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 때 수화기를 통해 잠깐만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루스벨트 각하가 아니라면 그쪽은 도대체 누구지, 내가 잘못 걸었다면 정말로 미안하네. 근데 경제학 강의를 듣는다는 걸 보니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인가? 옆에서 강의를 들으러 가자고 하는걸 보면 학생임에 분명하니 내가 잘못 걸었던 건 사실이구만. 어쨌든 경제학을 왜 배우는지 모르지만 그 딴 거 지금 당장에 그만두게. 배워봐야 죄다 이상한 소리만 하고 아무짝에 쓸모없으니까."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려던 지수는 전화를 건 상대자가 경제학을 비하하는 말을 듣고 몹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지금 전화하시는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경제학을 비방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근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경제학을 비판하시는지요?"
"자네 지금 몰라서 묻나? 경제 대공황 때문에 지금 나라가 난리인데,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자들이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으니 그게 될 말인가?"
그의 말을 들은 지수는 갑작스레 경제 대공황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낯익은 단어임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점점 이해할 수 없음을 느꼈다.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분명 지금은 대공황이 아닙니다. 믿을 수 없는 말만 되풀이 하니 저 역시도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공황이 아니라고? 오히려 자네가 더 이상하구만. 대공황의 정의를 모르는가? 아님 경제학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니 모를 수도 있겠구먼. 그래서 학생을 만나 뭔가 몇 가지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다만 지금은 다른 할 일이 있으니 이틀 후에 케임브리지 대학 정문 앞에서 12시에 보기로 하지."
지수는 그의 제안에 설령 거짓이 아닌가 싶어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지수와 케인즈의 만남
집으로 다시 돌아온 지수는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하워드와 함께 같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전화를 막 걸려던 순간에 때마침 그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가 휴대전화의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다짜고짜 짜증 섞인 말투가 들려왔다.
"나오지 않을 거면 그렇다고 미리 얘기를 해주면 되잖아. 괜히 바쁜 사람 기다리게 하고 이제 다시는 자네와 이따위 약속을 잡지 않겠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혹시나 해서 무려 1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1시간이나 기다렸다고? 난 약속시간 10분전부터 줄곧 30분이나 기다렸다고!"
"그럼 저를 보시지 못하셨단 말이에요. 학교 정문 앞 위인들 동상에 줄곧 서있었는데요."
"정문 앞의 동상이라고?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정문 앞에는 두 개의 큰 문만 있는 걸. 도대체 누구의 동상 앞에서 기다렸는가?"
"그야 당연히 세상 사람이 잘 아는 케임브리지의 영웅 케인즈의 동상 앞에 서 있었죠."
"다시 한 번 말해주게. 방금 누구 동상이라고 했나?"
"설마 경제학의 대가 케인즈에 대해서 모르시는 건 아니겠지요?"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 침묵을 유지한 채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지수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아무 말씀이 없으신 거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자네가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우린 분명 같은 시대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아요. 좀 더 확실하게 말해 주세요. 우리가 같은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뇨?"
"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자네의 이름을 좀 물어봐야 하겠구만. 자네의 이름이 뭔가?"
"저는 이지수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입니다."
"음 그렇군. 지수군 내 말을 잘 듣게. 사실 계속 망설였네만,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자네가 계속해서 의심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해야겠네. 아까 자네가 케임브리지 대학 정문 앞에 놓인 동상 바로 앞에 서 있었다고 했지. 그 동상이 누구의 동상이라고 했는가?"
"케인즈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경제학에 있어 시대의 영웅 케인즈. 설마 그가 누군지 모르시는 건 아니실 테지요?"
"나도 당연히 알지. 아니 모를 수가 없어. 지금부터 내 말을 한 번 들어보게.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그 시대의 영웅 케인즈가 지금 자네와 대화를 하고 있는 중이라면 믿을 수 있겠나?"
"당연히 믿을 수 없지요.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 분명 살던 시대가 다른데. 행여나 그 분의 목소리라도 한번 들어보았으면 하는 게 저의 소원입니다."
"하지만 내 말을 한번 들어보게. 그리고 무조건 내 말을 믿어야 하네. 난 정확히 말하지만 자네가 대학 정문 앞에서 보았던 동상의 주인공이고 후세에 경제학에 있어 큰 업적을 남기게 될지는 모를지언정 분명 내 이론이 조금씩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난 느끼고 있네. 자네가 살고 있는 오늘 날짜가 며칠인가? 년도까지 한 번 말해보게."
"오늘은 2006년 4월 1일이죠. 설마 오늘 날짜를 몰라서 말씀하시는 건 아니시죠?"
"여긴 1933년 4월 1일이네. 그럼 하나만 내가 물어보세. 대공황은 결국 성공적으로 잘 해결될 수 있는지 한번 알아봐주게나."
"다른 건 잘 모르지만 학창시절에 대공황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배우길 처음에는 장기불황을 겪다가 나중에는 정부의 유효수요창출로 인해서 좋은 결과를 보였다고 배운 적이 있어요."
"잘 해결되었다고? 그럼 나의 수요이론이 먹혀들어갔다는 얘기구만."
"맞아요. 분명 케인즈는 유효수요 창출을 통해서 대공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래서 정부지출을 늘려야만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럼 이제 내가 처음 자네와 통화할 때 각하에게 수요를 늘려야 한다고 말한 이유를 이해하겠구먼."
지수는 처음 케인즈가 자신과 우연히 통화를 했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케인즈는 자신을 각하라고 지칭하면서 투자수요를 늘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지수도 케인즈가 방금 전까지 했던 모든 이야기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화이트와의 논쟁
각국의 환율 정보를 보다가 지수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모든 국가들이 미국 달러와 환율을 비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미국이 강대국이긴 하지만 무슨 경제적 논리가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지수는 케인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케인즈 선생님 왜 미국 환율이 전 세계적으로 기준 환율처럼 쓰이고 있나요? 혹시 그 사정에 대해서 아시나요?"
"이 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도서관에서 월간지인 뉴캐슬 타임즈의 1945년 12월호 30페이지를 찾아보게. 그 잡지의 인터뷰 내용이 자네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설명해줄 것이야."
지수는 지역도서관에 찾아가 잡지를 찾아봤다. 그 잡지에는 정확히 케인즈의 인터뷰 내용이 있었다. 기사의 제목은 브레튼우즈 조약과 영국의 미래였고 케인즈와 크리스라는 기자가 문답한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었다.
기자: 저는 현 우리나라 최고의 경제학자이신 케인즈씨에게 얼마 전 브렌트우즈 협상의 결과와 영국의 세계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케인즈: 이 일은 단지 경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국제 정세가 얽혀 있는 문제이지요. 물론 국제 정세도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현실이니까. 사람들이 내가 화이트와의 논쟁에서 졌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와의 논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세계 경제가 미국 중심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어떻게 세계 경제가 미국을 위주로 흘러간다는 것이죠? 미국은 지금도 충분히 경제 대국이고, 그래서 지금 미국을 위주로 세계 경제를 재편한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케인즈: 모든 사람이 기자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브렌트우즈 회의의 중요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외환 문제에 대해서 저는 외환결제의 중심기관을 설립해서 미국과 함께 관리하기를 원했지만, 미국 대표인 화이트의원은 미국 위주의 기금을 만들어 관리하는 미국중심의 구상안을 내놓았었고, 또 그는 제 자유변동환율과 다르게 달러 위주로 환율을 고정화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달러를 금본위제로 하기 원했었고, 여러 가지 미국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미국위주의 구상이었고, 모든 것이 미국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 어째서 미국위주의 기금이 문제이고, 또 달러로 환율 고정화하는 것이 문제인가요? 지금 설사 미국 달러가 기축 통화로서 이용한다고 해도 그들은 얼마든지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35달러에 1온스입니다.
케이즈: 그것이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사실 회의 당시 세계 각국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빠져서 전체를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화이트의원이 제시한 안에 대해서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았고, 미국의 안대로 통과가 되었습니다. 이제 미국 통화는 미국통화 뿐만 아니라 세계의 통화가 되었습니다. 이제 달러는 국제결제통화입니다. 이제 미국은 2차세계대전후 새롭게 펼쳐지는 세계경제에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입니다. 이제 영국은 해가 지는 국가로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기자: 그렇다면 금본위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금을 달러로 바꿔준다고 선언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가 금만 있다면 국제 통화로서 달러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회원국들을 대상으로는 기준 환율을 일정하게 적용할 것이라 했습니다.
케인즈: 물론 금이 달러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세계 금의 70%는 미국에 있습니다. 또 달러는 미국 내에서 통화를 조절할 것입니다. 즉 미국이 세계 통화량을 조절할 것이고, 그리고 내가 진짜 염려하는 것은 앞으로 올 미래에 이 제도가 미국에 의해서 어떻게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바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이 앞으로 20세기의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렇다면 IMF나 세계은행의 설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결국 미국의 국익에 이익이 될 일입니까? 설립 취지는 세계 경제를 위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케인즈: 물론 설립 취지는 그렇지만, 미국의 자본 위주로 돌아가게 될 IMF나 세계은행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결국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될 것입니다. 어쩌면 먼 미래에 많은 국가들이 미국 자본의 은행에 빚을 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기사의 마지막은 기자 크리스의 풍요로운 19세기를 보내던 대영제국이 20세기에는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미국에 양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루즈벨트에게 쓴 편지
경제학자로서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다
지수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해지고 있었다. 결국 지수는 케인즈에게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고, 케인즈 역시 지수의 공부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에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때는 1932년 봄이었어. 나는 내 이론을 실제 정책으로 펼쳐 보고 싶었었지. 당시 나는 고전 경제학파와의 논쟁에서도 사실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실제로 영국에서는 나의 이론이 정책적으로 반영되지 않았었어."
"그 반영되지 않은 이론이란 것이 어떤 것이지요?"
"영국에서 나는 대공황에 대한 고전경제학자들과의 논쟁에서 그들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정책을 이야기했었지. 나를 인정하는 일부 학자들이 있었지만 대세를 이룬 고전경제학자들이 차지한 정치계에서 나의 이론이 발을 딛을 곳이 없었어. 그래서 나는 당시 미국 민주당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루즈벨트에게 한통의 편지를 썼지. 루즈벨트는 하버드 대학에서 여러 번 나와 같이 공부한 적이 있고 그의 아내 역시 영국출신으로 예전부터 나와 안면이 있던 사이였어. 그래서 나는 영국에서 루즈벨트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지."
친애하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10여년 전 당신과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토론을 했던 것을 잊을 수 없어서, 당신이라면 저의 이론을 이해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의 대공황에 대해서 몇 가지 제안 드리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도 미국 경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도 또한 미국에서 지내면서 미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공장 창고에는 상품이 넘치고 캘리포니아 오렌지는 사는 사람이 없어서 땅에 묻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상품을 약탈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땅에 묻혀 있는 오렌지를 파서 먹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봤을 때 저는 많은 공급량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도 이전의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이론은 세이의 법칙에서와 같이 수요는 단지 공급에 종속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의 이론은 공급이 수요에 종속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대공황의 위기에서 전 세계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실 고전 경제학파들의 이론이 만들어진 당시의 시대에는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생산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시대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이런 이론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 안에서의 대량 공급은 수요와의 불일치가 언제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시장은 언제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업의 문제에 있어서도, 고전경제학파들은 언제나 노동은 공급이 늘어나고 줄어듦에 따라 실제적으로 임금이 변화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임금은 떨어지기 힘들고 이 임금의 하방 경직성 때문에 실질적으로 임금으로 실업을 조절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자율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리는 화폐적 현상으로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축은 소득에 따라서 달라지고, 투자는 이자율의 높낮이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축과 투자는 일치될 때만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불균형 상태로 남게 되지요.
결론적으로 제 생각은 이런 자유방임주의의 이론은 현대 경제에서는 많은 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가 시장경제에 간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과잉 생산을 억제하고 실물 소비를 증가시키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공황의 원인은 공급이 아니라 수요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경제 주체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유효 수요의 부족에 대해서 보완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재정지출을 정부는 계획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단기간에 결실을 만들 수 있는 사업들, 철도 사업 같은 곳에 우선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목적은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1932년 3월 8일 케인즈로부터
에필로그
한국에서 이륙한 지 12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교수가 탑승한 비행기는 영국의 런던공항에 착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은 긴 시간을 여행하느라 다들 지친 기색이었고 어떤 사람들은 아직 긴 여행의 시차에 적응을 하지 못했는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창밖에 펼쳐지는 런던 시내의 풍경을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하지만 이교수는 이 멋진 풍경을 절대 놓칠 리가 없었다. 비록 자신이 처음 영국에 올 당시의 풍경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그의 두 눈으로 하늘에서 런던 시내를 바라보는 그 감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아름답게 펼쳐진 런던을 바라보면서 비행시간 내내 고민하던 세미나 행사 때 발표하는 마지막 결말에 대한 고민도 쉽사리 해결되는 듯했다.
그것은 바로 이교수가 처음 경제학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영국이란 나라를 선택한 것처럼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는 결코 선택의 문제를 피해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 때문에 선택의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은 이 세상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결코 사장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맺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제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서 케인즈라는 한 시대가 낳은 학자는 우리에게 좋은 친구가 될 거라는 문구도 넣고자 했다. 대학시절 케인즈와 나누었던 경제학 이야기들 그리괴 런던 시내를 바라보면서 맺었던 주제 발표에 대한 마지막 결론. 이교수는 모든 자료를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어보면서 생각했다. 그 생각은 자신이 올해 첫 강의를 학생들에게 할 때 제시했던 시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이교수 스스로도 이제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일종의 만족감이었다.
인간은 결코 선택의 문제를 피해서는 살 수 없다라는 의미를 전하고자 했던 이 시의 메시지가 자신의 주제 발표 후 세미나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길 바랐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쓰면서 그는 조심스럽게 마침표를 찍고 모든 내용을 자신의 개인용 컴퓨터 속에 있는 자료함에 저장시켰다.
선택의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은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직접 피부에 와 닿게 해 주는 사람은 바로 케인즈와 같은 위대한 학자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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