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이 시대 가장 똑똑하고 부유한 이들이 자행하는
약탈적 머니게임을 폭로한다!”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책. 이 책은 출간 즉시 아마존 종합 베스트 1위, 「뉴욕 타임스」 종합 베스트 1위, 「파이낸셜 타임스」 ‘2014 올해의 경영서’ 후보로 선정된 책으로, 초단타매매(High Frequency Trading)라는 그들만의 수법으로 거액을 챙겨온 월스트리트 대형 투자은행들의 은밀한 실상을 고발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0만 달러가 넘는 고액 연봉과 보너스, 안락한 삶을 버리고 뛰쳐나와 부패로 물든 월스트리트에 ‘공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주식 거래소를 세우게 되는 한 무리의 월가 사내들을 차례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약탈적 행위임이 분명한 초단타매매의 숨겨진 작동원리를 폭로하고, 일반 및 기관 투자자들의 손해를 재물로 삼아 이득을 취하고 있는 월가 트레이더들과 대형 은행의 흑막을 흥미진진하게 파헤친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11명의 도둑들이 모여 카지노를 터는 영화 <오션스 일레븐&&이 떠오른다. 각각 역할을 맡은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가 한 명씩 전개되고, 그들이 결국 한데 모여 ‘엄청난 일’을 벌이는 이 영화 같은 논픽션은 소설보다도 더 숨가쁘게 읽히며 끝까지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독자들이 과연 책을 끝까지 읽었는가, 중간에 읽다 말았는가’를 평가하는 “호킹지수”에서 금융시장을 다룬 어려운 주제임에도 『위대한 개츠비』에 버금가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만 봐도 이 책의 흡입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마이클 루이스
세계 최고의 논픽션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 미국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경제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살로먼 브라더스에서 채권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이후 저널리스트로서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등에 글을 썼으며, 시사주간지 『스펙테이터』(The Spectator) 미국판의 편집인, 『뉴리퍼블릭』(The New Republic)의 주필로 지냈다. UC 버클리 대학교에서 방문교수로 있었으며 현재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부메랑』 『머니볼』 『눈먼 자들의 경제』(공저) 『빅 숏』 『패닉 이후』 『라이어스 포커』 등이 있다.
■ 역자 이제용
중앙대학교와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삼성증권, 소시에테제네랄, IBK투자증권에서 국제금융과 파생상품, 자기자본투자 업무 등을 담당했다. 글밥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현재 바른번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당신이 경제학자라면』(공역)이 있다.
■ 역자 곽수종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캔자스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캔자스주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근무했다. 또 미국 베이커 대학교 경영대학원, 노던아메리칸 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선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MBN의 『생방송 매일경제』, YTN <곽수종의 생생경제&&와 SBS CNBC <오프닝 벨&&을 비롯하여 여러 방송에서 경제전문가로서 활동했다.
■ 차례
프롤로그_ 당신이 알고 있던 주식시장은 없다
1장_ 은밀한 케이블 매설 작업
빠르게, 더 빠르게 | ‘속도’에 가격을 매기다 | 완성된 케이블망
2장_ 금융시장이 낳은 어둠의 자식, 초단타매매 HFT
브래드에게 일어난 문제 |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주식 | 시장이 조작되고 있다 | 쌓여만 가는 의문들|1,000분의 1초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 | ‘토르’의 탄생
3장_ 상상을 초월하는 초단타매매의 실체
월스트리트를 꿈꾼 통신 기술자 |8,000만 달러로 줄인 100만 분의 1초 | 그들은 어떻게 선행매매를 할 수 있었나 | ‘약탈자’에 맞설 ‘영웅’의 등장 | 완성되어 가는 음모의 퍼즐
4장_ 시작된 약탈자들과의 전쟁
100퍼센트 합법적인 절도 행위 | 주식시장을 붕괴시킨 범인의 정체 | 월스트리트 최고 은행의 어두운 비밀 | 월스트리트를 향한 선전포고
5장_ 러시아인의 코드 절도 사건
초단타매매의 세계에 빠져든 세르게이 |골드만 삭스 내부의 초단타매매 회사 | 코드 다운로드의 결말 | 연방 교도소에 갇힌 프로그래머
6장_ ‘옳은 일’을 위한 험난한 여정
위험하고 무모한 선택 | 월스트리트의 로빈후드 | 모든 것은 ‘탐욕’에서 시작되었다 | 판도라의 블랙박스 | 시간을 ‘늦추기’ 위한 노력 | 초대형 은행들과의 대결
7장_ 골리앗과 마주 선 다윗
무너진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 전쟁의 서막이 오르다 | 돈키호테가 된 브래드| IEX를 음해하는 세력들 | 마침내 드러난 약탈 행위의 전모| 시스템을 공격하다 | 골드만 삭스의 선택 | ‘신뢰’가 불러온 변화의 시작
8장_ 끝나지 않은 전쟁
죄가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 이상한 재판, 이상한 구속
에필로그_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힘
플래시 보이스
당신이 알고 있던 주식시장은 없다
월가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
대부분 그렇듯 나도 주식시장의 동락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사람이지만, 처음부터 주식시장에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 나는 그 당시 직장인 살로몬 브라더스의 주식영업·트레이딩 부서가 있는 원 뉴욕 플라자의 40층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한때 모든 게 다 괜찮은 듯 보이던 미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한순간 22.61%나 사라져버렸는데도,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시장이 폭락하는 동안 월가의 상당수 브로커들은 매도주문을 내려는 고객들을 피하기 위해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았다. 월가 사람들이 신뢰를 잃어버렸던 게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금융당국에서 대응책을 내놓았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하던 일을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도록 규제를 바꾸는 방안이었다. 1987년의 주식시장 폭락은 결국 컴퓨터가 사람들을 완전히 대체하도록 만드는 변화의 시초가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약하게 시작되었던 그 변화는 해가 갈수록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10년간 금융시장이 너무도 빠르게 변해온 탓에 우리가 생각하던 금융시장의 모습은 더 이상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금융시장의 모습 속에는 아마도 인간이 주인공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는 TV의 화면 밑으로 주식시세가 계속해서 흘러가고, 색깔별로 구분된 재킷을 입은 에너지 넘치는 남성들이 거래소 플로어에 서서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이제 옛일이 되었고, 그런 장면이 그려내던 세계도 사라졌다.
뉴욕증권거래소나 시카고에 위치한 여러 거래소의 플로어에는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지만, 그들은 더 이상 금융시장을 주도하거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이제 미국 주식시장의 거래는 뉴저지와 시카고에 위치한 철통같은 보안장치로 둘러싸인 빌딩 안의 블랙박스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그 블랙박스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이제 케이블 TV의 화면 밑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주식시세는 주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극히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블랙박스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하여 대중들에게 알려진 정보는 불분명하고 신뢰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조차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언제, 왜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당연히 일반 투자자들로서는 알아야 할 최소한의 정보조차도 얻기 힘들다. 투자자는 자신의 TD 아메리트레이드나 E 트레이드 또는 수왑 계정에 로그인하여 특정 주식의 종목기호를 입력하고, 매수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는 자신이 컴퓨터 키보드의 키를 누르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단언컨대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만약에 안다면, 키를 누르기 전에 다시 생각해보았을 테니까.
금융시장이 낳은 어둠의 자식, 초단타매매
브래드에게 일어난 문제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붕괴될 때까지만 해도, 브래드 카츄야마는 그 시스템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캐나다왕립은행(Royal Bank of Canada, 이하 RBC)은 세계에서는 아홉 번째로 큰 은행일지는 모르지만, 월가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편이었다. RBC는 안정되고 비교적 도덕적이었으며, 미국인들에게 부실한 서브프라임 대출을 하거나 무지한 투자자들에게 서브프라임 파생상품을 파는 따위의 유혹에 휘말리지 않는 은행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쨌든 미국의 금융업자들이 생각해냈던 그 드문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을 RBC의 경영진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2002년으로 돌아가서, 브래드가 24살일 때 그의 상관은 월가에서 RBC의 입지를 넓히기 위한 대대적 진출의 일환으로 토론토에서 일하던 브래드를 뉴욕으로 보냈다. 안타깝게도 그 대대적 진출은 거의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월가에서 지낸 처음 몇 해 동안 브래드는 미국의 기술주와 에너지주를 거래했다. 브래드는 자신이 신뢰하는 시장에 대해 남다른 심오한 시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런 시각이 효과를 발휘한 덕분에 그는 20여 명의 트레이더를 이끄는 주식 트레이딩 팀장으로 승진했다.
브래드 카츄야마의 인격과 그의 직업 사이에는 상충되는 면이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브래드는 자신의 기질이나 취향, 세계관, 성격은 그대로 지키면서 월가의 트레이더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월가에서 보낸 처음 몇 해 동안은 그가 옳은 듯 보였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면서도 브래드는 월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탓에 브래드는 시스템이 그에게 하려는 짓에 대해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주식
브래드의 어려움이 시작된 때는 RBC가 칼린 파이낸셜이라는 미국의 전자 주식 트레이딩 회사를 1억 달러에 사들인 후인 2006년 말이었다. 브래드가 보기에 캐나다의 경영진들은 칼린이나 전자 트레이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지나치게 서둘러 그 회사를 인수했다. 브래드가 알고 있는 그들은 전형적인 캐나다 방식으로 금융시장의 큰 변화에 늘 더디게 반응해왔던 사람들이었다.
칼린을 사들인 그들은 단기간에 합병과정을 거쳤다. 그 소동 속에서 브래드는 RBC의 문화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한 무리의 미국인 트레이더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합병 다음 날 한 여직원이 브래드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여기 멜빵을 한 어떤 남자가 손에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걸어다니고 있어요."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칼린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레미 프롬머였으며, 어쨌거나 그는 품위 있는 RBC 사람이 아니었다. 세차게 방망이를 휘두를 때마다 제레미 프롬머는 캐나다인의 감성을 상대로 안타를 날렸다. RBC의 남자들은 신중하게 말하고 예의 발랐지만, 칼린의 사내들은 성격 급하고 시끄러웠다.
브래드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RBC는 세계무역센터 근처에 사무실에 있던 브래드와 그의 미국 주식 트레이딩 부서 전체를 미드 타운에 있는 칼린의 빌딩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브래드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브래드는 캐나다의 경영진이 전자 트레이딩을 왜 도입해야 하는지, 그게 도대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전자 트레이딩을 미래 전략사업으로 결정해버렸다는 분명한 인상을 받았다.
제레미 프롬머가 브래드의 삶에 들어온 바로 그 시기에, 공교롭게도 미국 주식시장은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RBC가 최첨단이라고 생각한 그 전자 트레이딩 회사를 사들이기 전에는, 브래드의 컴퓨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갑자기 먹통이 되어버렸다. 칼린의 기술 일부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 브래드는 자신의 트레이딩 화면을 신뢰했다. 브래드의 트레이딩 화면에 주당 22달러의 인텔 주식 매도물량 1만 주가 보이면, 이는 곧 브래드가 주당 22달러에 인텔 주식 1만 주를 매수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키를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2007년 봄 컴퓨터 화면에서 주당 22달러의 인텔 주식 매도물량 1만 주를 확인하고 브래드가 키를 누른 순간, 매도물량은 사라졌다. 트레이더로 일해온 7년간 브래드는 늘 책상 위의 컴퓨터 화면에서 시장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제 화면에 보이는 시장은 허상이었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트레이더로서 브래드의 주 업무는 대량매매를 하려는 투자자와 상대적으로 매매단위가 적은 일반 투자자를 이어주는 역할이었다. 어떤 투자자가 IBM 주식 300만 주를 블록세일(일괄매각)하고자 하는데 시장에는 100만 주의 매수세만 있는 경우, 브래드는 전체 주식을 일괄매수하여 곧바로 100만 주는 팔아버린 다음, 나머지 200만 주는 몇 시간에 걸쳐 기술적으로 시장에 분할 매도했다. 그런데 만약 브래드가 실제 시장상황을 모른다면, 블록세일의 적정가격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던 브래드는 이제 그의 트레이딩 화면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시장위험을 판단할 수 없으니 기꺼이 시장위험을 떠안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브래드는 원인 모를 컴퓨터 오작동을 겪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기술지원부에 전화를 했다. 기술지원부 사람들이 대게 그렇듯이, 그들은 브래드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고 대뜸 추측해버렸다. 브래드는 자기가 한 일이라고는 키보드의 엔터키를 누른 것뿐이라고 그들에게 설명했다. 엔터키를 누르는 데 실수하기란 쉽지 않다.
사용자의 실수보다 더 복잡한 문제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좀 더 높은 문제해결 단계로 넘어갔다. 그들은 칼린을 인수할 당시 RBC로 온 개발자들을 보냈다. 그들 역시 브래드에게 컴퓨터가 아니라 그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아, 네. 한 번 살펴보도록 하죠. 그러고 나서 그들은 가버렸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브래드는 몇 차례를 전화를 했으나,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냥 그들을 내버려두었다.
문제는 일정한 패턴으로 발생했다. 즉 브래드가 화면에 나타난 시세에 따라 반응하려는 순간, 시세가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브래드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브래드의 팀에서 일하는 RBC의 주식 트레이더 모두 똑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게다가 브래드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RBC가 증권거래소에 지불하고 있는 수수료 규모가 갑자기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07년 말 브래드는 트레이딩 계정의 실제 실적을 평소 실적 혹은 트레이딩 화면에 나타난 시세대로 거래가 이루어졌을 경우의 실적과 비교해보았다. "손실과 수수료를 합치면 그 차이는 1,0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우리는 거액의 손실을 보고 있었던 거예요."
브래드가 2002년 뉴욕에 도착했을 때, 모든 주식시장 거래의 85%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이루어졌으며 모든 주문은 사람에 의해 처리되었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은 주식은 나스닥에서 거래되었다. 나스닥이나 뉴욕증권거래소, 또는 BATS, 다이렉트 엣지와 같은 새로운 경쟁자들의 거래소는 매칭엔진(matching engine)이라 불리는 프로그램을 탑재한 컴퓨터 서버를 모아놓은 곳이 되었다. 거래소 안에서는 이제 말이 필요 없어졌다. 컴퓨터에 종목을 입력하여 거래소에 주문을 넣으면 그 주문은 거래소의 매칭엔진으로 보내졌다. 기존에 월가의 대형 은행에서 기관 투자자들을 상대로 주식영업을 하던 사람들의 업무는 바뀌었다. 이제 그들은 투자자가 주식시장 주문을 넣기 위해 사용하는 알고리즘, 또는 은행이 고안한 암호화된 트레이딩 기술을 팔았다. 그런 트레이딩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부서들을 전자 트레이딩 부서라고 불렀다.
그것이 바로 RBC가 정신없이 칼린을 인수했던 이유였다. 대량으로 거래되는 블록세일에서 매수자와 매도자를 이어주는 경우처럼, 여전히 브래드와 같은 트레이더의 역할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동시에 거래소들은 수익을 올리는 방식을 바꾸어 갔다. 2002년 거래소들은 주식시장 주문을 넣는 월가의 모든 브로커들에게 1주를 매매할 때마다 동일한 고정수수료를 내도록 했다. 컴퓨터가 사람을 대체하자, 시장은 단지 속도만 빨라진 게 아니라 더 복잡해졌다. 거래소들은 놀랄 만큼 복잡한 수수료 및 리베이트 체계를 제시했다. 그 체계는 결정자-수용자 모델(maker-taker model)로 불렸으며, 월가에서 만들어낸 것이 대부분 그렇듯 거의 모든 사람이 이해하지 못했다. 가령 애플 주식을 매수하려고 하는데, 호가가 400-400.05달러에 형성되어 있다고 하자. 만약 당신이 단순히 400.05달러에 주식을 매수했다면, 그것은 스프레드 교차(crossing the spread)에 해당한다. 스프레드 교차를 한 트레이더는 수용자(taker)로 분류된다. 그렇게 하는 대신 만약 당신이 400달러에 애플 주식 매수주문을 넣었는데 누군가 그 호가를 따라와 400달러에 당신에게 주식을 매도했다면, 당신은 결정자(maker)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거래소는 수용자에게서 주당 몇 센트의 수수료를 받는 반면 결정자에게는 그보다 적은 금액을 리베이트로 지급하여 그 차액을 챙겼다. 스프레드 교차를 거부한 사람은 모두 시장에 일종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라는 애매한 논리에 근거해서 말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예를 들어 뉴저지주 위호켄에 위치한 BATS 거래소는 삐딱하게도 수용자에게 리베이트를 주고 결정자에게서 수수료를 받았다.
2008년 초 브래드 카츄야마는 이 모든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저는 모든 거래소가 우리에게 고정수수료를 부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전 이렇게 말했죠. 세상에, 우리가 거래를 하면 누군가 돈을 준다는 말이야?" 영리하게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 브래드는 어떤 거래소든지 그들이 하려는 거래에 가장 많은 리베이트를 주는 쪽으로 주식 주문이 들어가도록 RBC의 모든 트레이딩 알고리즘을 짜 놓았다. 그 당시 그에 맞는 거래소는 공교롭게도 BATS 거래소였다. 브래드가 주식을 매매하면서 BATS 거래소가 주는 리베이트를 챙기려 하는 순간, 시장의 물량은 사라져버렸고 호가는 그에게서 달아났다. 돈을 받기는커녕, 훨씬 더 많은 돈을 잃게 되었다.
왜 어떤 거래소들은 수용자에게 리베이트를 주고 결정자에게서 수수료를 받는 반면, 다른 거래소들은 수용자에게서 수수료를 받고 결정자에게 리베이트를 주는지, 브래드는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거래소로 주식시장의 주문을 보내는 월가의 브로커들을 더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거래소마다 수수료가 제각각이고 수수료 체계도 자주 바뀐다는 점이었다. "왜 수용자에게 리베이트를 주지요? 또 결정자가 되어 기꺼이 수수료를 내려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왜 그렇게 할까요?"
시장이 조작되고 있다
이제 브래드가 이끌고 있는 주식 트레이딩 부서는 미국 주식시장에서 제대로 거래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980년대 월가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다시 일어날까 봐 부서원들이 염려하며 잔뜩 지치고 우울해하는 것을 브래드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008년 가을, 브래드는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앉아 있을 때, 미국의 금융시스템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돈을 다루던 방식 때문에 시장에서 혼란이 발생했고, 시장의 혼란은 삶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제 브래드에게는 각종 병이 끊이질 않았다. 2009년 초 결국 브래드는 월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저에게 맞는 직업이 전혀 아니었어요." 브래드는 월가에 머물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브래드가 RBC를 좋아했던 이유는 RBC가 그에게 그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라고 강요한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RBC나 시장, 아니면 그 둘 모두 브래드에게 다른 누군가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 무렵 RBC가 스스로 입장을 바꾸었다. 2009년 2월 RBC는 제레미 프롬머와 결별했고, 브래드에게 프롬머를 대신할 사람을 찾을 것을 지시했다. 마음 한 구석은 이미 그곳을 떠나 있었지만, 그래도 브래드는 월가 곳곳에 있는 후보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본적으로 전자 트레이딩에 대해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 중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브래드는 떠나려던 마음을 되돌려 그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날이 갈수록 시장 안에서 인간의 직접적인 영향은 줄어드는 반면, 기계의 영향력은 늘어났다. 물론 인간이 기계를 움직이지만, 그들 중 기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는 죽 트레이더로 일했습니다. 트레이더로 일하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돼버려요.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으니까요. 이제 저는 한 걸음 물러서서 처음으로 다른 트레이더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죠." 브래드에게는 좋은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 위치한 크게 성공한 헤지펀드인 SAC 캐피탈에서 주식을 거래했다. SAC 캐피탈은 미국 주식시장에서 늘 한 발 앞서 나가는 것으로 유명했다. 만약 시장에 대해 브래드가 모르는 것을 아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바로 SAC 캐피탈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느 봄날, 브래드는 기차를 타고 그리니치로 가서 친구가 거래하는 것을 지켜보며 하루를 보냈다. 이내 브래드는 자신의 친구가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를 비롯한 대형은행들이 구축해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RBC와 똑같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즉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시장은 더 이상 진짜 시장이 아니었다. 브래드는 친구의 주식을 매매하기 위해 키를 눌렀고 시장은 그에게서 달아나버렸다.
그 문제는 브래드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미국 주식시장을 보고 있을 때, 즉 전문 트레이더들이 보는 화면에 나타난 숫자들이나 CNBC 화면 아래로 지나가는 시세표를 보고 있을 때, 그들은 허상을 보고 있었다. "그때가 바로 시장이 조작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어요. 저는 그것이 기술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으며, 답은 바로 그 기술 속에 감춰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술의 어느 부분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죠.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려면 결국 그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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