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 패러독스

   
김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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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리브로
   
14000
2012�� 04��



■ 책 소개
일상을 지배하는 경제 문제, 기본 원리의 이해만으로충분하다!

우리가 경제적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경제학의 기본 원리 및 개념 30가지를 익숙한 사회 현상, 역사적 사실 및 우화로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풀어낸 책이다. 즉 반복되는 경제 불황과 실업의 원인 및 대응 정책, 조세 감면 정책의 파장, 노동자와 경영진에 적합한 보수 책정, 주식 투자및 파생금융상품의 가격 변동 원리, 환차익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환율 변동의 원리, 대주주의 경영 지배를 배제하는 기업의 지배 구조 등 관련주제를 통해 오늘 우리 사회를 작동하는 경제 원리를 알기 쉽게 짚어준다.

■ 저자 김대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독일의 금융 회사에서 이코노미스트와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일했고, 러시아와 불가리아의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가르쳤다.한동안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고, 한때 서울경제신문에서 국제 뉴스와 정치 뉴스를 다루기도 했다. 현재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재직 중이다. 

■ 차례
1장 일상속 경제 이야기
진보와 보수, 결국 중간에서 만난다 ― 중간투표자정리
오스트리아인의 목욕으로 헝가리인의 식수가오염된다 ― 외부효과
단일 화폐 사용이 그리스의 위기를 키웠다 ― 최적통화권 이론
경영자의 임금, 적정선을 구할 수 있는가 ―노동가치 이론
왜곡된 고용 시장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 역선택
개미의 삶에서 잃은 것은 무엇일까 ― 평생소득가설
금융위기는 검은 백조의 출현 현상이다 ― 부채슈퍼사이클 이론
꼴찌도 최대로 행복할 수 있는 사회 ― 최소의 최대화원리

2장 시장과 정책에 관한이야기
비교우위를 잃은 산업의 종사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무역의 이익
보이지 않는 손을 멈추게 하는 것들 ―수요와 공급의 법칙
불가리아 택시를 타며 담합을 그리워했다 ― 담합
동해보복(同害報復)은 경제적 균형성을 가지고 있을까 ― 내쉬균형
세율을 낮추면 정부 수입이 증대된다? ― 공급주의 경제학
정부의 주유소 운영이 기름 값을 낮출까 ― 정부의실패
소액주주인데 경영 지배권이 있다 ― 배당권과 지배권의 분리
대우그룹은 왜 무너졌나 ― 최적자본구조 이론
4대강 사업은국민소득을 증대시켰는가 ― 재정승수
독일 정부는 왜 인위적 경기 부양책을 경계할까 ― 필립스 곡선
미래를 전망하는 두 개의 시선 ―적응적 기대와 합리적 기대
대학 교육, 시장논리로만 접근해야 하는가 ― 공공재

3장 금융생태계 이야기 
10년 후의 10억을 지금 끌어 쓴다면 얼마인가― 돈의 시간가치
돈의 액수와 개인의 만족감은 비례하지 않는다 ― 기대효용 이론
나이 들면 주식 투자 비중을 줄여야 할까 ― 대수의법칙
환율 차익으로 불황을 잊은 기모노 트레이더 ― 구매력 평가설
주가 변동은 단지 우연의 산물인가 ― 주식 베타
버핏은페이스북의 주식을 샀을까 ― 가치투자
선물·옵션 금융 파생 상품의 위험성 ― 주식 옵션
이자율 0%, 버낸키 총재의 도박 ―화폐수량설
시중 통화량에서 허수는 얼마일까 ― 통화승수
인간의 합리성은 익숙함에서 시작된다 ― 위험과불확실성





베짱이 패러독스


일상 속 경제 이야기

개미의 삶에서 잃은 것은 무엇일까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개미는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하며 겨울에 먹을 음식을 비축해둔다. 반면 베짱이는 햇볕 아래 누워 노래만 부르며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추운 겨울이 닥치자 먹을 것이 없어진 베짱이는 개미에게 찾아가 구걸하지만 개미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먹을 것을 못 구한 베짱이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고생만 조금 하다가 말았는지 아니면 음식을 전혀 구하지 못해 굶어 죽었는지는 이야기마다 조금 다른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에서는 베짱이의 최후에 대한 부분은 언급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야기에 따라서는 베짱이가 정말로 굶어 죽기도 하는 모양이다. 베짱이의 최후가 어쨌건,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열심히 일해서 저축하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한다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개미와 베짱이의 삶으로 제시하는 교훈에는 몇 가지 논리적 취약점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남들 놀 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는 개미도 그 일생에서 무언가 잃은 것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무조건 너희도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라라고 말하기보다는 개미가 손해 보는 것과 베짱이가 손해 보는 것을 비교해보았을 때 베짱이가 손해 보는 것이 더 크니, 너희도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라라고 말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축은 왜 필요한가

남들 놀 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는 개미는 두 가지 점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첫째로 여름 내내 개미의 소비 수준은 베짱이의 소비 수준보다 낮다. 베짱이가 햇볕 아래 누워 노래를 부르며 여유로운 소비 활동을 하는 동안 개미는 추운 겨울에 대비하여 뜨거운 햇볕 아래 쉼 없이 먹거리를 모으고 쌓아두는 저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로 개미는 고생스레 비축해둔 음식이 필요 없게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겨울이 항상 추울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겨울이 의외로 따뜻하다면 베짱이는 겨울에도 햇볕 아래 누워 노래를 부르며 개미를 비웃을지 모른다. 이런 일이 생기면 개미는 정말 허무할 것이다. 혹은 겨울이 오기 전에 개미가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개미가 열심히 일해 쌓아둔 음식을 여름 내내 놀기만 한 베짱이가 가져다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저축이 필요한 이유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할 때 효용의 볼록성이라는 개념과 소비의 평활화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난해한 개념은 아니다. 효용이란 개인의 만족도를 나타내는데, 맛있는 것을 먹고 재미있는 일을 하면 만족도가 높아지고, 춥고 배고프고 놀지도 못하면 만족도가 낮아진다. 햇볕 아래 누워 노래를 부르는 베짱이의 효용은 높지만 땀 흘리며 일하는 개미의 효용은 낮다. 반대로 겨울에 베짱이의 효용은 매우 낮아지고 개미의 효용은 높아진다.


그런데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고 재미있는 일을 한다 해도 처음에는 좋지만, 지속하다 보면 그다지 좋은 줄 모르게 된다. 즉 만족도가 떨어진다. 그러니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한꺼번에 몽땅 먹으면 맛이 없고, 재미있는 일도 오래 지속하면 재미가 없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어떤 것을 즐길 때 처음에는 효용이 크지만 나중에는 그만큼의 효용을 얻지 못하는 것을 효용의 중간 부분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효용의 볼록성, 즉 효용이 볼록하다고 하는 것이다.


효용이 볼록한 경우 맛있는 음식을 한 번에 많이 먹거나 재미있는 일을 한 번에 오래 하는 것은 경제적이지 못한다. 그러니 좋아하는 그 어떤 것도 나누며 즐길 줄 아는 것이 만족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개미와 베짱이의 경우에 여름과 겨울의 소비를 비슷한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효용 수준을 높이는 방법이다.


저축, 일생 동안 소비의 평활화를 이룬다

소비 수준이 높았다 낮았다 하는 것을 피하고 항상 비슷한 수준으로 평평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것을 소비의 평활화라고 한다. 베짱이는 소비의 평활화를 이루지 못한 반면 개미는 소비의 평활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소비의 평활화를 달성하려면 개미처럼 저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득이 많을 때 저축해서 쌓아두었다가 소득이 적을 때 이를 소비해야 소비의 평활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니까 왜 저축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경제학에서는 효용이 볼록하기 때문에 소비를 일정한 수준에 유지하는 것, 즉 소비의 평활화가 필요한데, 소비의 평활화를 이루기 위해 소득이 많을 때 소득이 없을 어느 날을 대비하여 저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개미는 여름에 음식을 저축해두었다 겨울이 되면 이것을 먹고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과는 조금 다른 저축 패턴을 가지고 있다. 철에 따라 저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더 정확히는 생애 주기에 따라 저축을 한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젊을 때는 저축을 하고,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게 되면 젊었을 때 모아둔 돈으로 살아가게 된다.


저축은 소득과 소비의 차이로 결정된다. 소득 중 소비하지 않은 부분이 저축이 된다. 소득 수준은 생애 주기가 변하면서 0 - 저 - 고 - 저의 양상을 보인다. 어렸을 때는 전혀 소득이 없다가 사회 진출 후 시간이 지나며 점차 증가하지만, 은퇴 후 다시 낮은 수준이 된다. 소득이 0 - 저 - 고 - 저의 양상을 보이는 반면 소비는 대체로 저 - 저 - 중 - 중의 양상을 보인다. 어렸을 때 소득이 전혀 없다고 소비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은퇴 후에 소득 수준이 떨어졌다고 해서 소비 수준도 똑같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소득의 변화와 관계없이 소비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소비의 평활화 때문이다. 소득이 낮을 때 소비를 줄였다가 소득이 높을 때 소비를 늘리는 것보다는 소비 수준을 평탄하게 유지하는 것이 삶 전체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소비 수준을 완벽하게 평탄화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는 소비 수준이 조금 낮고 나이가 들어서는 소비 수준이 다소 높아진다. 그리고 소비 수준을 완벽하게 평탄화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얼마나 소득을 얻을지, 또 얼마나 오래 살게 될지도 알아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소비 평탄화를 추구하므로 그 결과를 나타나는 소비 패턴은 근사적으로만 평탄하게 된다.


평생소득가설이란 무엇인가

시카고 대학의 교수 밀튼 프리드만은 사람의 일생에 걸친 소비 평활화 추구 과정을 평생소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평생 소득이란 개인이 평생 동안 벌게 되는 소득을 모두 더한 값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소비 수준을 결정할 때 먼저 자신의 평생 소득을 계산해보고 장차 얼마나 살 것인가, 즉 잔여 수명을 따져본 다음에 평생 소득을 잔여 수명으로 나눈 값을 소비액으로 결정한다고 한다. 물론 평생 소득과 잔여 수명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산에 상당한 오차가 있을 테고 이를 감안해 평생 소득을 잔여 수명으로 나눈 것보다는 조금 더 작은 수준에서 소비가 결정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해마다 각 개인이 얼마나 소비하는가는 그해의 소득 수준이 아닌 평생 동안 벌게 될 소득의 예상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프리드만의 생각이었다. 경제학에서는 프리드만의 이 같은 생각을 평생소득가설이라 부른다.


평생소득가설에 따르면 경기가 일시적으로 좋아져 소득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소비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다. 일시적 소득증가는 평생소득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소비를 증가시키지도 않는 것이다. 소득은 증가하는데 소비는 증가하지 않으므로 소득과 소비의 차이인 저축이 증가하게 된다. 그러니까 일시적 소득 증가는 저축 증가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경기가 일시적으로 나빠지면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난다. 일시적 소득 감소는 평생소득을 감소시키지 않으므로 소비에는 변화가 없고 저축만 감소하게 될 것이다.


프리드만은 거시경제학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프리드만의 평생소득가설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는가에 대해서는 비판적 견해가 많다. 경기가 일시적으로 좋아지면 소비에는 변화가 없고 저축만 감소한다는 예측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경기가 오르고 내림에 따라 소비도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생애 주기에 따라 소득이 변할 때는 소비를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의 경기가 좋아지거나 나빠질 때는 소비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경기가 나빠졌을 때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소득이 줄었을 때 소비 수준을 이전처럼 유지하려면 저축을 줄이거나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주식, 채권 등 자산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자산을 처분해 현금화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경기가 나쁠 때는 자산들의 가격도 낮아질 수 있고, 이럴 때 자산을 팔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혹여 돈이 금융 자산이 아니라 부동산 등의 실물 자산에 묶여 있다면 자산을 현금화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소비 수준을 줄이지 않기 위해 모아둔 돈을 쓴다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자산을 처분하거나 돈을 빌리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은 금융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프리드만의 이론은 이러한 현실이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시장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금융시장에서 자산을 처분하고 돈을 빌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물론 금융시장이 발달하면서 거래 비용이 낮아지고 돈을 빌리는 것도 비교적 쉬워지긴 했다. 그렇다고 거래 비용이 적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득이 줄어들 때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소득과 소비가 함께 움직이는 또 다른 이유는 미래 소득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찾을 수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 또 언젠가는 경기가 다시 좋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경기가 나빠졌다가 회복되는 대신 상태가 더 나빠져 장기 공황에 빠질 수도 있고,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영영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경기가 나빠진 상황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특히 나쁜 경기가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까지도 대비하게 된다. 최악의 상황이 닥쳐서 직장을 잃고 앞으로 수 년간 아무 소득 없이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시장과 정책에 관한 이야기

비교우위를 잃은 산업에 구제책은 있는가

백화점에 갈 때마다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옷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백화점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바지 하나가 수십만 원, 재킷 하나가 백만 원을 넘어가는 것은 정도가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똑같은 옷이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백화점 가격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불만은 더욱 커진다.


옷 값뿐만이 아니다. 어쩌다 와인 매장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보면 이만 원, 삼만 원은 싼 편이고 십만 원 이상의 와인도 즐비하다. 와인을 마시지 않고 살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똑같은 와인을 유럽과 북미에서는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왠지 불공평하다는 느낌이다.


자유무역, 소비자의 희생을 줄인다

똑같은 물건을 외국에서 살 때보다 우리나라에서 살 때는 더 높은 값을 지불해야 하는 이유는 국내 시장이 외국 시장과 통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산 제품을 우리나라로 들여올 때 우리나라 정부에 관세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세율은 품목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 그 결과 관세가 높은 경우 혹은 관세가 높지 않다 할지라도 수입 물량이나 수입 업체의 수가 제한되어 있는 경우라면 해당 제품의 국내 판매 가격은 외국에서의 판매 가격에 비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외국에서의 판매 가격과 국내에서의 판매 가격에 차이를 만드는 관세나 수입 물량 제한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무역장벽이라고 하는데, 마치 외국산 제품이 쉽게 통과하지 못하도록 국경에 장벽을 쌓아놓은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무역장벽에 높을수록 무역의 양은 줄어들고 해당 제품의 국내 판매 가격도 높아지게 된다.


나는 외제 물건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상관 없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역장벽의 영향은 국산 제품만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비켜 갈 수 없다. 무역장벽으로 외국산 제품이 시장에 공급되지 않으면, 그것을 대체하는 국내 제품의 경쟁이 그만큼 약해지고, 그때 국내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다. 그러면 국산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높은 값을 지불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화점 옷 값이 국산, 외제 가릴 것 없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경쟁의 중요성은 비행기를 탈 때 종종 체감하게 된다. 한번은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베이징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적이 있다. 모스크바에서 인천까지 바로 오는 직항기가 있었으나 모두 만석이었기에 베이징을 경유하게 됐다. 모스크바에서 베이징까지 가는 비행기와 베이징에서 인천까지 가는 비행기는 동일한 항공사 소속이었다. 그런데 두 비행기의 내부 시설은 너무도 달랐다. 모스크바에서 베이징까지는 8시간 가까이 걸리는 장거리 루트인데도 기내 좌석에는 그 흔한 개인용 모니터도 설치되지 않았고, 객실도 상당히 누추해 보였다. 반면 베이징에서 인천까지는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단거리 루트인데도 좌석마다 개인용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고, 객실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장거리 루트보다 단거리 루트에 더 나은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은 왜일까? 물론 경쟁 때문이다. 모스크바와 베이징 사이의 구간은 이용객 수가 적고 운항 편수도 많지 않아 주로 러시아와 중국의 항공사들이 비교적 경쟁 없이 운항하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과 인천 사이의 구간은 다르다. 운항 편수가 많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 경쟁이 비행기 티켓 가격을 낮추면서도 서비스의 수준을 높게 만들었다. 결국 시장 경쟁 약화가 소비자의 손실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역장벽은 국내 시장의 경쟁을 약화시킨다. 경쟁 없는 시장에서 국내 기업은 품질 향상 없이도 제품에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어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소비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 중 하나인 무역의 이익은, 국제 무역이 참여하는 모든 국가에게 이익을 준다는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졌다. 사실 삶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한 국가에서 직접 만들려고 하면 극히 비효율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다. 각 국가의 여건에 따라 잘 만들 수 있는 품목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품목들도 있으니, 잘 만들 수 있는 물건을 집중 생산하고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도록 하여 그것을 서로 교환한다면 결국 모든 물건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각자가 옷도, 음식도, 집도 직접 만들려 한다면 생활수준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를 잘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다 잘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잘하는 것 하나를 선택하여 집중하고 그 외의 것들은 다른 사람과 교환을 통해 얻는 것이 더 현명하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논리를 비교우위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비교우위란 절대적 기준이 아닌 상대적 기준에 바탕한 우위의 개념으로, 비교적 남들보다 잘하는 것에 대해 사용하는 말이다. 요리를 비교적 잘하면 요리에 비교우위가 있고, 운동을 비교적 잘하면 운동에 비교우위가 있다. 이때 요리를 정말 잘하는가, 운동을 정말 잘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본인의 다른 능력과 비교했을 때 요리 능력이 비교적 우수한지, 운동 능력이 비교적 우수한지가 기준이 된다.


누구나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든 일에 서투르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 비교적 덜 서툰 것이 있다면, 그 분야에 비교우위를 인정할 수 있다. 요리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노래도 못 부르지만 이 세 분야 중에서 요리가 조금 덜 처지는 편이라면 요리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모든 분야에서 비교우위를 가진 사람도 없다. 모든 것을 다 잘한다는 사람도 비교해보면 조금 더 잘하는 것이 있고 조금 덜 잘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잘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무역의 이익은 각자에게 비교우위가 있는 일을 특화하고 다른 필요한 것들은 교역을 통해 얻을 때 서로에게 득이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국가 간 교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각 나라가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려고 하기보다 비교우위가 있는 몇 분야를 선정해 특화하고 나머지는 다른 나라와 교역을 통해 조달하는 것이 국부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업에 비교해 자동차와 선박, 전자제품을 만드는 데 비교우위가 있다면, 이 분야를 특화하는 것이 국부를 빠르게 늘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생태계 이야기

환율 차익으로 불황을 잊은 기모노 트레이더

환율과 일몰일가의 법칙

시장 가격과 관련해 일물일가의 법칙이 이야기된다. 동일한 물건은 어디에서나 동일한 가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마트에서 사과 한 상자를 5만 원에 팔면 그 바로 옆에 있는 홈플러스에서 파는 사과 한 상자의 가격은 5만 원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과의 질이 비슷하다면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어느 한편이 과다한 가격을 책정한다면 누가 그 사과를 사겠는가. 이것이 일물일가의 법칙이 성립하는 이유이다. 뉴욕 맨하튼의 32번가에 있는 코리아 타운에는 한국 식당이 밀집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음식 가격이 경쟁적으로 책정되어, 뉴욕 중심지 치고는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니다. 이곳에서 설렁탕 한 그릇 가격이 10달러를 조금 넘는데, 서울 시내 중심지 명동에서는 보통 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1달러를 천 원 조금 안 되게 계산했을 때 서울 명동의 설렁탕 값과 뉴욕 코리아 타운의 설렁탕 값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렁탕의 특성상 뉴욕 코리아 타운의 설렁탕과 서울 명동의 설렁탕이 품질에서 큰 격차가 생길 이유가 없다. 그러니 비슷한 품질의 설렁탕은 비슷한 가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일물일가의 법칙에 비추어 볼 때 적정한 가격을 이룬 것이다.


물론 뉴욕 코리아 타운의 설렁탕 가격이 서울 명동의 설렁탕 가격에 비해 몇천 원 더 비싸다고 해서 몇천 원 싼 설렁탕을 먹기 위해 뉴욕에서 서울까지 14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설렁탕을 먹으러 가는 횟수를 조금 줄이겠다는 심리적 작용을 일으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렁탕 값이 너무 비싸지면 아마 뉴욕 사람들은 설렁탕을 먹지 않고, 근처 일식당 초밥이나 혹은 이탈리아 파스타로 대체하여 식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뉴욕의 설렁탕 값이 서울의 설렁탕 값보다 조금 더 비쌀 수는 있겠지만 가격 차이를 크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원화의 대 달러 환율이 1,000원보다 크게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는 없다.


설렁탕을 예로 들어 일물일가의 법칙을 얘기했지만, 그것은 다른 모든 재화에도 적용된다. 실제 환율이 일물일가의 법칙에 의해 정해지는 환율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일물일가의 법칙에 의해 환율이 정해진다는 이론을 경제학에서는 구매력 평가설이라고 한다. 구매력은 화폐 한 단위로 물건을 얼마나 살 수 있는가를 나타낸다. 구매력 평가란 1달러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과 1달러를 원화로 바꾸었을 때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동일하다는, 즉 달러의 구매력과 원화의 구매력이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말이다.


만일 달러의 구매력과 원화의 구매력이 동일하지 않다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우선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사람들은 가격이 낮은 곳에서만 물건을 사려고 할 것이다. 달러의 구매력이 더 높다면 사람들은 미국에 있을 때만 물건을 사고 한국에 있을 때는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원화가 생길 때마다 달러를 사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지속되다 보면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나 혹은 사고자 하는 달러의 양이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달러의 가치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달러의 가치가 높아지면 1달러를 원화로 바꾸었을 때 더 많은 원화를 받게 된다는 것이고, 그러면 1달러를 원화로 바꾸었을 때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의 양도 늘어나게 된다. 즉 원화의 구매력이 커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결국 원화의 구매력과 달러의 구매력은 같아질 것이다. 구매력 평가가 회복되는 것이다.


일본 기모노 투자자, 해외 채권으로 수익을 거두다

한동안 일본의 주부들이 외환 투기에 열을 올린 적이 있었다. 1990년대부터 일본은 저(低) 성장기에 진입했고 이자율은 매우 낮은 수준에서 결정됐다. 돈은 많은데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부들은 가계 저축으로 쌓인 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몰랐다. 주식이 크게 오르는 것도 아니었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은행에서 높은 이자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투자처로 찾아낸 것이 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일본 주부들이 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내 이자율이 워낙 낮다 보니 외국 정부에서 주는 얼마 안 되는 이자도 상대적으로는 높은 수익률이라고 생각했고, 또 여기에 덤으로 일본의 화폐인 엔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투자 수익은 더욱 높아졌다. 엔화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은 외국 화폐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고, 외국 국채를 팔고 받은 돈을 엔화로 바꾸었을 때 더 많은 엔화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거래에 워낙 많은 주부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러한 거래를 하는 사람들을 기모노 트레이더라고 불렀다.


그런데 경제학자의 입장에서는 기모노 트레이더가 돈을 번다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는 현상이었다. 기모노 트레이더가 돈을 번다는 것은 이자율 평가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자율 평가를 따르면 이자율이 높은 나라에서 돈을 빌려준다고 해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없다. 이 나라 통화의 가치가 떨어져 빌려준 돈을 돌려받고 이를 자국 통화로 바꾸었을 때는 큰 이익을 남기지 못해야 한다. 하지만 기모노 트레이더의 경우 외국 국채를 팔고 받은 돈을 엔화로 바꾸었을 때 매우 큰 이익을 남겼다. 이자율 평가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한동안 왜 기모노 트레이더가 큰 이익을 남기는가의 문제가 경제학자들을 괴롭혀왔으나, 몇 해 전에 이 문제는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저절로 해결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008년에 국제 금융 위기를 전후해 엔화의 가치가 크게 오르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계속 기모노 트레이더를 따라 하던 사람들은 큰 손해를 입었다. 이자율 평가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엔화뿐 아니라 다른 통화도 이자율 평가가 예측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기모노 트레이더를 따라 하던 사람들은 5년 이상 벌었던 이익을 1,2년 만에 다 날려버렸다. 물론 운이 좋았던 일부는 상황이 바뀌기 전에 빠져나갔겠지만 말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론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학 이론을 완전히 무시하다가는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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