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트 라인

Fault Lines: How hidden fractures still threaten the world economy

   
라구람 G. 라잔(역자: 김민주·송희령)
ǻ
에코리브르
   
23000
2011�� 02��



■ 책 소개
골드만삭스·파이낸셜타임스 선정 2010년 올해의 비즈니스도서!


금융 위기의 원인이계층 간 소득 불균형의 심화와 미국 정부의 과도한 신용 제공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위기의 상황과 미래를 예측하는 책.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의심화와 미국 정부의 과도한 신용 제공은 다른 여러 원인과 서로 얽혀 있는데, 그 원인들 하나하나를 저자는 단층선, 즉 폴트 라인이라칭한다.

미국의 교육 불평등과 의료 보장 제도 미비가어떻게 금융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독일ㆍ일본ㆍ중국 등의 정책적 선택이 어떻게 미국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미국 정책을 왜곡하는지설명한다. 그리고 금융 위기를 가져온 원인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 해야 할 인적 자본?안전과 안전망의 확대 등을 위한 제언, 그리고 G-20의개선, IMF의 개혁, 글로벌 경제 지배 구조 개혁, 중국 문제 등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국제적으로 실천해야 할 일들도 자세히 제시한다.

■ 저자 라구람 G.라잔(Raghuram G. Rajan)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를 역임했다. 현재 시카고 대학교 부스경영대학원 에릭 글리처(Eric J. Gleacher) 석좌교수이며,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이다. 지은 책으로 『시장경제의 미래(Saving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가 있다. 2003년에는 미국금융협회가 40세 이하 금융경제학자 중 최고 석학에게수여하는 피셔 블랙 상(Fischer Black Prize)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설문 조사한 세계 경제위기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 역자 
김민주
 - 현재 경영컨설팅 회사 (주)리드앤리더 대표이사이자 비즈니스 사례사이트 이마스()의 대표 운영자이다. 서울대학교와 시카고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한국은행과 SK에너지에서 근무했으며,건국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2011 트렌드 키워드』『경제법칙 101』『시티노믹스』『하인리히 법칙』『로하스 경제학』『앞으로 3년, 대한민국 트렌드』『커져라 상상력 강해져라마케팅』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깨진 유리창 법칙』『그레이트 리셋』『노벨경제학 강의』『지식경제학 미스터리』『왓츠 넥스트』『마케팅 거장에게오늘을 묻다』 등이 있다.

송희령 -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시통역대학원 영불과를 졸업하고, 15여년 동안 경제 관련 회의에서 동시통역사와 번역사로 일했다. 현재 캐나다에서 통?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시티노믹스』가 있으며,옮긴 책으로는 『은밀한 갤러리』『지식의 공유』『스톨 포인트』『지식경제학 미스터리』『극단적 미래예측』『몰링의 유혹』『지미추 스토리』 등이있다.

■차례
감사의 글
머리말

01가계 대출로 국민의 입을 막아버리자
02 경제 성장을 위한 수출
03 무분별한 외채 도입
04 취약한 안전망
05 하나의버블에서 또 다른 버블로
06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될 때
07 금융권의 리스크 베팅
08 금융 개혁
09 어떻게 해야미국에서 기회를 늘릴 수 있을까
10 꿀벌의 우화를 재현하고 있는 오늘날 세계 경제

맺음말

찾아보기





폴트 라인


머리말

2007년의 금융 위기가 바로 경기 침체로 이어지자 많은 경제학자들은 방어 태세에 돌입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번 위기로 정부 당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를 과장해서 특별하게 볼 필요는 없으며, 부동산 위기나 외국 자본 도입으로 인한 금융 위기는 과거에도 얼마든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이번 위기가 과거에 발생한 금융 위기와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 금융 위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금융 제도 내에서 발생했다는 데 동의한다. 도대체 규제 기관과 감독 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시장 원칙은 어디에서 한눈을 팔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자기 보존을 위한 민간 기업의 생존 본능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자유 기업 정신에 의거한 제도가 총체적으로 망가져버렸단 말인가? 이번 위기가 어느 개도국에서 발생한 그저 그렇고 그런 위기였다면 위와 같은 질문은 절대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이번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해볼 때 쉽게 답을 찾으려 하거나 아무 답이나 갖다 붙이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번 위기를 촉발한 폴트 라인(fault line), 즉 지진 유발 단층선은 전 제도에 걸쳐서 포진해 있다. 이번 위기는 어느 특정 인물이나 특정 제도에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훨씬 폭넓은 인물과 조직이 이번 위기 유발에 가담했다. 물론 그들 가운데에는 국내 정치인, 외국 정부, 나 같은 경제학자 그리고 여러분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집단적으로 미쳤거나 무슨 병에 걸려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 각자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인센티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분명히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가 점점 쌓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 결과에 우리의 이익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 이익에 충실하려 했던 우리 각자의 행동이 모여 세계 경제를 위기의 벼랑으로 몰고 갔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기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파악해 그 문제를 시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


다행히 이번 위기를 통해 우리는 폴트 라인에 대해 훨씬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 폴트라인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책 전체를 통해 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고 한다. 물론 이번 위기의 원인을 단 한 가지로 집어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만큼 미래의 위기 예방책을 단 한 가지만 집어서 제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단순화시켜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는 폴트 라인이라는 비유적인 용어를 이 책에서 계속 사용할 것이다. 폴트 라인은 지질학 전문 용어이다. 지각은 거대한 바다와 대륙으로 이어진 텍토닉 플레이트(tectonic plate)라는 지각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아래 맨틀이 움직이면서 서로 다른 판들이 접촉하거나 서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진다. 서로 다른 판들이 접촉하거나 부딪힐 때, 판의 끝 쪽이 부서지거나 꺾이면서 엄청난 압력이 발생한다. 그 압력으로 발생하는 것이 바로 지진이고, 지진이 발생하는 그 판의 접촉면을 우리는 폴트 라인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 책에서 지구 경제가 어떤 판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판들이 어떻게 서로 충돌해 폴트 라인을 형성하며, 그 폴트 라인이 어떻게 금융 위기를 촉발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려고 한다.


지구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가는 첫 번째 종류의 폴트 라인은 국내의 정치적 압력, 특히 미국에서 발생한 압력 때문에 형성된다. 거의 모든 금융 위기는 정치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위기를 파헤쳐 들어가면 그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정치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발생한 금융 시장 과열 문제를 해결하고, 금융 시장 균형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 두 번째 종류의 폴트 라인은 각자 다른 패턴으로 성장해 온 국가들 사이의 무역 불균형 때문에 형성된다. 세 번째 종류의 폴트 라인은 이 무역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 재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서로 다른 금융 제도가 접촉할 때 형성된다. 특히 미국이나 영국처럼 투명하고 계약 중심적이고 제삼자 간 거래를 중시하는 금융 제도가 나머지 세계 대부분 국가의 덜 투명한 금융 제도를 지원하거나 반대로 그 국가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을 때 폴트 라인이 발생한다. 서로 다른 금융 제도는 운용 원칙도 다르고, 정부의 개입 형태도 다르다. 그런 만큼 이 서로 다른 제도가 접촉하게 되면 상대편 금융 제도의 기능이 왜곡되는 현상을 일으킨다. 이 세 종류의 폴트 라인은 모두 금융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우리가 최근 겪은 금융 대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종류의 폴트 라인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가계 대출로 국민의 입을 막아버리자

소득 불평등의 심화

무엇보다 임금 비중이 큰 미국인 사이에서 소득 격차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소득 상위 10퍼센트에 속한 고위 소득자-다시 말해서 전체 국민의 9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 계층-의 임금 증가율은 1975년에서 2005년 사이 하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소득자의 임금 증가율보다 65퍼센트가량 더 높았다. [이 차이를 우리는 흔히 90/10 편차(90/10 differential)라고 부른다.] 정확히 설명하면, 1975년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의 평균 소득과 하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의 평균 소득을 비교한 소득 10분위 배율(상위 10퍼센트의 평균 소득을 하위 10퍼센트의 평균 소득으로 나눈 수치-옮긴이)은 3이었다. 이 두 계층 간 평균 소득 격차, 즉 소득 10분위 배율은 2005년에 이르러 5 이상으로 증가했다. 소득 증대는 상위 10퍼센트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한 10퍼센트 소득층과 중간층 사이의 소득 격차는 그렇게 심하지 않은 반면, 중간층과 상위층 사이의 소득 격차는 매우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90/10 편차가 존재하는 이유를 보면, 상당 부분 경제학자들이 대학 프리미엄(college premium)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기인함을 알 수 있다. 1980년 이래로 고졸자의 임금에 비해 대졸자의 임금은 훨씬 빠른 폭으로 상승했다. 2008년 인구조사국(Census Bureau)이 실시한 현재 인구 조사(Current Population Survey) 결과에 따르면, 고졸자의 평균 임금은 2만 7963달러였다. 반면 대졸자의 평균 임금은 4만 8097달러-고졸자보다 72퍼센트 정도나 높다-였고, 전문직 관련 학위(의대 졸업장인 MD 또는 MBA 같은 학위) 소지자의 경우, 평균 소득은 8만 7775달러나 되었다. 최상위권과 최하위권 간 90/10 편차의 원인이 확실히 대학 프리미엄에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서민용 주택을 건설하라

1990년대 초 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미국인 수가 점점 증가했다. 그러자 정치권은 신속한 효과를 낼 수 있는-결과가 나타나려면 수십 년이 걸리는 교육 개혁보다 훨씬 더 빨리 효과를 볼 수 있는-조처를 모색한다. 그렇게 해서 정치권이 찾아낸 해답은 저소득 계층을 위한 서민용 주택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대책을 세우면서 정치권이 염두에 둔 것은 패니와 프레디였다.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HUD(주택도시개발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분야에 더 많은 자금이 투여되도록 패니와 프레디에 대한 지원 자금을 더욱 확대했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패니와 프레디는 한층 큰 모험을 단행했다. 심지어 이 두 업체는 정부에 주주들에게 큰 위험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요청, 즉 저소득 계층을 위한 대출 비율을 올려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리하여 1995년 패니와 프레디의 전체 자본에서 저소득 계층 대상 대출은 42퍼센트로 증가하고, 2000년(클린턴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는 이 비율이 50퍼센트까지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패니와 프레디가 모기지 대출을 받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무분별하게 대출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HUD는 패니나 프레디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려 이 두 업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


미국 주택 붐의 특징

FRB가 실시한 소비자재무조사(Survey of Consumer Finances)는 1989년에서 2004년 사이 모기지 상환 연체에 시달리는 저소득 계층 가구 비율이 두 배 증가했으며, 신용카드 사용액을 제때 갚지 못하고 연체에 빠진 저소득층 가구 비율도 75퍼센트나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고소득 계층(소득 상위 25퍼센트에 해당하는) 가구의 경우, 모기지 상환이나 신용카드 연체 비율이 오히려 약간 감소했다. 다시 말해서, 부채의 급속한 증가 현상이 전체 인구 중에서도 저소득 계층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저금리 열풍을 타고 주택 구입 붐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크게 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붐은 서브프라임이나 Alt-A 같은 시장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절대 주택 융자 대출을 받지 못했을 빈곤 계층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차별된다. 저소득 계층의 주택 가격이 특히 더 상승했으며, 떨어질 때도 훨씬 더 크게 하락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주택 붐은 다른 나라와 결정적으로 차별화된다는 것이 실제로 여러 연구 결과 밝혀졌다.


미국 저소득층은 소득이 전혀 늘지 않은 상황에서 가계 주택 융자가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소비를 실제로 할 수 있었다. 그 대출이 아니었다면 감히 상상조차 못할 소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이러한 대응책을 특히 더 강력하게 도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권, 즉 국회가 양분되어 소득의 직접적인 재분배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반면, 주택 금융 방식에서는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뿐만 아니라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는 신흥 시장의 경우를 보면,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해 대출 정책을 활용하는 경향이 특히 눈에 띈다. 미국 역사상 오늘날과 같은 소득 불평등 심화 현상이 나타난 것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였다. 역사적으로 유사한 대응책이 반복되기는 했지만, 근래에는 정치적 대응책이 적당한 선에서 머물지 않고 너무 멀리 가버렸기 때문에 금융 대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취약한 안전망

다른 선진국과 달리 미국 근로자들은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깊어지면 먹고살 방법이 없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복지에 대한 투자를 기피해왔다. 그 결과 실업 급여를 포함한 국가 안전망이 매우 취약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상황 변화에 신속하고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되었다. 회사 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은행은 대출을 해주지 않았고, 벤처 자본도 투자한 신생 회사의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할 경우 곧바로 자금을 빼버렸다. 기업은 언제라도 문을 닫을 수 있고, 그 회사의 자산을 청산해 더 유용한 분야에 재투입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는 회사를 새로 설립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리고 실업 급여 지불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새 직장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바로 이런 절박한 상황 덕분에 1990년 이전에는 경기 후퇴가 와도 생각보다 회복이 빨랐다. 평균적으로 생산은 경기가 저점을 찍고 나서 2분기 이후면 회복되었고, 고용은 8개월 후면 제자리로 돌아왔다. 물론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제 회복 정책을 동원하곤 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경제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비록 길지는 않더라도 은행, 기업, 그리고 근로자들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1990∼1991년의 경기 불황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지되던 이 공식을 깨고 말았다. 예전처럼 경기 후퇴기를 거쳐 생산 성장률은 급속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고용은 그렇지를 못했다. 1991년의 경기가 저점을 찍은 후 생산이 원상회복되는 데는 3분기가 걸렸지만, 고용을 회복하는 데는 23개월이 걸렸다. 2001년의 경기 후퇴 시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그 이유는 생산은 불과 1분기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고용이 회복되는 데에는 무려 3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기는 회복되었는데, 고용은 회복되지 않았던 것이다.


선진국의 역사를 볼 때 미국이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부분은 바로 실업 급여이다. 1989∼1994년의 기간을 대상으로 실시한 다국적 연구 결과, 미국의 실업 급여는 금액 수준에서 유럽대륙 대부분의 국가보다 낮을 뿐만 아니라-미국의 경우 실업 급여가 이전 임금의 평균 50퍼센트를 보장해주는 반면, 프랑스는 57퍼센트, 독일은 63퍼센트까지 보장해주었다-수령 기간도 훨씬 짧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테면 미국은 실업 급여가 평균 6개월 동안만 지급되는 반면, 프랑스는 3년 동안, 독일은 일자리를 다시 찾을 때까지 무한정으로 지급되었다. 이 연구가 발표된 후 독일은 실업 급여 수령법을 개정해 수령 기간을 1년 6개월로 줄이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대신 이전 월급 대비 실업 급여 비율을 대폭 인상했다.


미국에서는 가뜩이나 시원찮은 실업 급여 안전망에 구멍까지 뚫려 있었다. 전체 근로자의 90퍼센트 이상이 실업 급여 대상에 해당되지만, 막상 실업자가 되었을 때 실제로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중 40퍼센트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실직의 고통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국민 의료 보험이나 저렴한 개인 의료 보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책상 직장 의료 보험 제도를 도입한 회사에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그 결과 의료 보험은 대부분 직장 위주로 가입되어 있다. 따라서 실업자가 예전과 동일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보통 몇 배나 더 지불해야 한다. 기적적으로 개인 의료 보험에 가입할 능력이 된다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흠잡을 만한 병력이 있을 경우 보험 가입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건강만큼은 자부하다 뒤늦게 문제가 발견되어 보험 가입을 거부당하는 사례를 보면서 미국의 직장인 대부분은 자신에게도 언제 그런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처럼 직장이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불안하고, 또 실업자가 된 사람은 직장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더 큰 불안을 느낀다.


임의적 경기 부양책의 문제점

미국 사회의 취약한 안전망은 다양한 문제를 초래하는데, 특히 고용 없는 회복 현상이 나타날 때는 세 가지 문제가 추가된다. 그 중 첫 번째 문제는 정부 부양책이 주먹구구식으로 도입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강력한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 개인적 불안감이 커지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정치인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그 압력은 또다시 임의적인 부양책을 양산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두 번째 문제는 사회 안전망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고용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적으로 경기 부양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세계 나머지 국가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한데, 즉흥적인 경기 부양책과 더불어 정치적인 의도로 통화 부양책을 길게 끌고 갈 경우 미국 경제의 장기적인 건강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으며, 그러한 정책이 금융 산업계의 방만한 사고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버블에서 또 다른 버블로

중앙은행의 가장 이상적인 정책은 잠재 성장률을 계속 유지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논리적인 분석으로 추측은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잠재 성장률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경제 구조가 바뀌면-예를 들어, 경제를 지배하는 주력 산업이 바뀌면-잠재 성장률도 바뀔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잠재 성장률을 찾는 길잡이로 중앙은행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은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율이 상승하면 경제가 제한 속도를 초과한 것으로 해석하고, 반대로 인플레율이 떨어지면 경제가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물론 통화 정책은 시차를 두고 그 효과가 나타난다-지금 도입한 금리 변화 정책의 효과는 잘해야 몇 달 후에나 나타난다. 이런 사실을 감안해 중앙은행은 어떤 정책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유발할지 최대한 정확하게 예측해 (일반적으로 2∼3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장래 인플레율이 목표치에 도달하고, 그 결과 잠재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도록 미리 정책적 조율을 시도한다.


닷컴 버블 붕괴에 대한 대응책

2000∼2001년 나스닥(NASDAQ) 지수가 무너지고, 이로 인해 경기 후퇴가 초래되자 FRB는 꾸준한 금리 인하 조치를 통해 시장 붕괴 상쇄 효과를 유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2001년 1월 6.5퍼센트였던 금리는 계속 내려가 2003년 6월에는 무려 1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졌다. 1971년 변동 환율 제도를 도입한 이래 FRB 금리가 이렇게 낮은 수준으로 유지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경제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눈치챘고, 더 낮은 금리로 모기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주택 구매에 뛰어들었다. 가계의 주택 구매가 늘어나자 저금리로 이미 충분히 혜택을 받은 주택 건설 산업은 더욱 가파르게 성장했다.


생산성 증대와 더불어 기업 생산도 계속 늘어났다. 그러나 국민과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기다리는 것은 바로 고용이었다. 불행하게도 그토록 기대했던 고용 증대 효과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기대와는 반대로 제조 업체와 서비스 업체는 계속적으로 해고를 단행했다. 건설 분야에서 새롭게 고용이 증대되었지만, 다른 산업 분야에서 양산된 실업 사태를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하여 생산 증가가 재개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시점 그리고 경기 후퇴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인정된 시점인 2003년 6월에 이론상 낮아야 할 실업률은 반대로 최고조에 달했다.


예상과 달리 인플레율은 낮고 실업률은 높은 현상이 발생하자 경제 건전성 유지를 모토로 내세우는 FRB는 금리를 계속 낮게 가져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실 실업률은 높은 반면 물가 상승률은 매우 낮자 벤 버냉키를 비롯해 FRB 고위 책임자들이 우려한 것은 디플레이션이었다. 당시 상황을 분석해보면, 경제가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수요가 극도로 낮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생산 업체들이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생산적으로 구조 재조정을 단행하고 임금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3년 중반에 이르자 인플레와 실업 정책만 빼고 정부가 도입한 모든 경제 조처는 기대했던 효과를 가져왔다. 미국 내 수요는 급증했다. 미국 수요의 해외 의존도가 지극히 높음에 따라 미국의 무역 적자는 수요 증감의 측정 도구로 활용되곤 하는데, 당시 무역 적자 폭은 계속 확대되고 있었다. 이처럼 국내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미국 내 고용, 즉 제조 산업에서 고용이 증대되지 않고 있던 이유는 중국·일본 같은 국가들이 달러화에 비해 자국 통화 시세를 일부러 약하게 유지했고,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서의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그러한 정책의 시정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FRB는 글로벌 경제에 부양책을 제공해 세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도왔다. 문제는 FRB의 조치 덕분에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고용이 급속하게 늘어난 반면, 정작 미국에서는 고용이 증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FRB는 2004년 6월이 되어서야 드디어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FRB가 칼을 빼들어 금리 인상 조치를 단행하자 변동 금리 모기지 이자와 더불어 고정 금리 모기지 이자도 상승했다. 당연히 주택 수요는 급락했고(이와 더불어 패니와 프레디도 모기지 유동화 증권, 즉 MBS에 대한 구매를 줄였다), 집값은 상승세를 멈췄다. 이 상황에서 처음 특별 선전 가격으로 저금리에 모기지 대출을 받았던 저소득층 주택 구매자들은 같은 조건으로 재계약을 못하게 되고, 결국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해 상환 부도를 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압 주택은 계속 증가했다. 그러자 집값은 하락하고, 이제까지 미국 경제를 이끌어온 붐의 방향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당시 FRB의 개입은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조금만 더 일찍 개입했더라면 그렇게 산더미 같은 버블이 쌓이지도 않았을 테고, 그 버블이 터지며 국가 전체가 그렇게 심각한 고통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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