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자들의 바이블

The capitalist's bible

   
그레첸 모겐슨(역자: 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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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갤러리
   
18000
2011�� 01��



■ 책 소개
자본주의는 변화무쌍하다.오랫동안 현상을 유지하지 않고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얼굴을 달리해 경기침체, 공황, 재앙에서 살아남았고, 호황과 성장의 시기를 거치면서성공해왔다. 

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을 말하는 ‘자본주의진화사전’이자, 자본주의의 핵심개념을 설명하는 ‘자본주의 상식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으로, 「뉴욕타임스」의 수석경제기자인 그레첸 모겐슨이들려주는 변화무쌍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관한 입문서이다.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그리고 우리의일상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준다. 책의 뒷부분에는 자주 쓰이지만 잘 정의되어 있지 않은 용어들을 정의한 "자본주의용어사전"을 부록으로 실었다. 

■ 저자그레첸 모겐슨
세인트올래프대학에서 영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보그」「포브스매거진」「월스매거진」 등의 저널리스트와 에디터를거쳐 현재 「뉴욕타임스」의 수석경제기자로 활약 중이다. 2002년 퓰리처상(저널리즘 부문 출입처보도상)을 수상했고, 1998년과 2009년비즈니스와 금융 부문의 뛰어난 언론인에게 수여되는 제럴드 롭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The Woman"s Guide to the StockMarket』(공저), 『Forbesⓡ Great Minds of Business』 등이 있다. 

■ 역자 이진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및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0년 코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량경제학과 응용거시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싱가포르국립대학교와건국대학교를 거쳐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 차례
1장 자본주의를여행하는 우리를 위한 안내서 
2장 자본주의 오디세이 : 새로운 시작을 향해 
3장 자본주의 사회의 셀러브리티 열전 
4장스페이스 오페라, 자본가들의 출사표 
5장 자본주의의 살아있는 시체들 
6장 전 세계의 자본주의 
7장 자본가들의 서재
부록 - 자본주의 용어사전




자본주의자들의 바이블


자본주의 오디세이 : 새로운 시작을 향해

우리가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때는 그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업의 성격이자 경제학의 성격이다. 모든 것은 움직이며, 어디선가 시작되어 어딘가로 향한다. 자본주의는 살아있고 적응할 줄 안다. 그 적응성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위대한 점이다.


현대의 자본주의가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자본주의는 과거의 성공과 실패에 대응하는 식으로 형성되었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많은 것들처럼 그것이 지금 최종 형태나 이상적인 형태를 이루지 않았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렇게 생명력이 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자로 참여하거나, 다음 세대의 자본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현대를 구동하다

19세기 말엽 6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가 두 사람이 가혹한 선전(propaganda)전쟁에 갇혀 있었는데, 그 결과는 현대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동되는가를 결정하게 되었다. 니콜라 테슬라(Nicola Tesla)는 한때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의 뉴저지연구소에서 조수로 일했는데, 에디슨과 서로 다른 과학적 이론과 스타일로 인하여 결별하게 되었다.


1887년, 테슬라는 교류실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기체계를 완성하고 특허권을 획득했다. 에디슨은 이를 (이제 막 가정용 및 산업용 용도로 투자하기 시작한) 자신이 만든 직류체계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했다. 에디슨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테슬라의 아이디어를 공격했다. 테슬라와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는 사형선고를 받은 도끼살인마 윌리엄 키믈러의 전기의자 처형에 개입했다. 두 사람은 감전이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이라는 키믈러의 주장에 동조했고, 반면 에디슨은 교류(전기의자 작동에는 교류가 사용됐다)의 위험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건으로 보고 주정부의 처형방식에 동조했다. 일은 에디슨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전기의자는 작동부터 문제가 생겨 8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키믈러는 사망이 선고되기도 전에 불이 붙어버렸다.


직류-교류 싸움에서 대중적인 측면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테슬러와 웨스팅하우스는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불을 밝히는 계약을 따내는 성공을 거두었다. 1893년 5월 1일, 대통령 그로버 클리브랜드가 스위치를 올려, 12대의 1천 마력짜리 발전기를 작동시켰다. 10만 개가 넘는 백열전구가 전시회의 하얀 건물을 화려한 불빛 속에 수놓았다. 2천500만 명 이상이 테슬라의 작품인 이 하얀 도시를 방문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미국 전력의 80퍼센트 이상이 교류로 작동했다.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의 전기에 대한 추가적인 계획이 더 이상 계승되지 못한 것은 불운한 일이다. 멀리 떨어진 장비를 구동시키는 데 전기도 라디오 파장처럼 무선으로 운송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한 이 발명가는 수년 동안 방출되는 전력을 만들고자 애 썼으나,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했다.

 

신용카드 위기

1929년 10월 뉴욕증시는 폭락했다. 이 사건은 많은 미국인들이 무엇이든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첫 번째 경보였다. 그 후 3년 동안 경제는 하염없이 낙하했다. 대공황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유럽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는 데 일조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장기적인 뉴딜(New Deal) 개혁프로그램을 받아 들였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공황이 끝난 것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군비지출의 증가가 맞물렸기 때문에 무엇이 이 기간을 끝나게 했는지 정확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유럽이나 아시아와 달리 미국의 제조업 기반은 전쟁통에도 살아남았다. 덕분에 미국은 세계를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물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냉전의 시작으로 무기와 비행기의 생산이 크게 늘었고, 특히 전자공학과 같은 새로운 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이 촉진되었다.


미국 정부는 세계경제를 재건하는 데 적극적이었고,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그리고 개방경제를 장려하는 여타 국제기구들을 후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백만 명의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와서 가정을 꾸리고, 집을 사고, 현대적인 미국 중산층에 맞는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제대군인원호법(GI Bill)은 수만 명의 퇴역군인들을 대학에도 보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활력을 얻어가는 서비스산업에서 직장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1956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블루칼라 노동자보다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수가 더 많아졌다. 이러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후반까지 신용은 일상생활에서 이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1950년, 드디어 신용이 일상생활로 찾아들었다. 다이너스클럽에서 발행한 카드가 그 변화의 시초다. 회원제 식당에서 카드로 식대를 지불하고 나중에 카드사에 한꺼번에 정산하는 방식을 채용한, 이른바 신용카드의 탄생이다. 소비자들에게 카드 사용을 장려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점을 깨달은 카드사들은 수백만 장의 카드를 남발해 발행하는 신용카드 투하의 방식으로 카드 사용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과제

21세기,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경제체제가 되었다. 구소련은 연방이 붕괴하면서 시장경제로 전환한 반면, 충실한 공산국가인 중국 정부는 강력한 공산주의의 핵심을 견지하면서 자유시장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유형의 자산을 중시하던 세계가 점점 더 무형의 자산으로 그 초점을 이동하고 있다. 온라인상의 음악파일 공유와 싸우는 음반산업 종사자나 불법복제된 영화와 싸우는 영화산업 종사자는 물론, 특허나 저작권의 기간 연장을 획득하려는 대기업의 로비스트까지, 모두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글로벌경제는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견뎌냈지만,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 석유파동, 서브프라임 위기, 2007년에서 2009년에 이르는 미국발 금융위기, 그리고 글로벌 경기침체에 직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셀러브리티 열전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는 나란히 성장해왔다. 수백 년 전의 미술가와 작곡가는 그들의 작품에 서명도 하지 않았고, 작품에 대한 권리(저작권)는 왕에 의해 부여되거나, 특정집단에 압류되기 일쑤였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에 대한 관심은 개인의 복지에 대한 관심과 자아성취의 기반으로 같이 발전했다. 역사상 위대한 자본가에 대한 이야기 속에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게임에서 승리해 성공한 사람들을 다룬다. 그렇다고 무일푼에서 거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만 다룬다는 것도 아니다. 한 컴퓨터 천재의 창업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시작하든 위대한 자본가들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을 일궈냈다.


자본주의도 변화하는 기술과 사회 조건들에 반응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해왔다. 이 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학자들은 자본주의를 정의하고, 비판했다. 이들과 친해진다면 당신은 자본주의의 이론과 실무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통해 일련의 유명한 자본가들의 철학적 업적, 그리고 아이디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로부터, 그리고 그들이 공유했던 것으로부터 우리는 경제적인 운명을 만드는 가치 있는 교훈을 얻는다. 혁신적인 기업가들로부터 고전경제 철학자들, 무자비한 사업가들까지 그들의 개인적 여정은 자본주의의 핵심을 만든다.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 1839~1937)

이름 자체가 박애주의자이자 부자 기업가와 동일시되었던 존 록펠러는 미국 역사에 있어서 석유회사의 성공과 1911년 그의 회사의 반독점적 해체로 중요한 인물이다. 카네기처럼 그도 헌신적인 박애주의자였다. 순회판매원이었던 아버지 빌 록펠러와 어머니 엘리사는 여섯 아이를 키우며 존에게 감리교 신앙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16세의 나이에 회사에서 경리업무를 하는 첫 직업을 가졌을 때 그는 (아마도 그의 어머니나 목사에 의한 감명으로) 십일조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평생 이 약속을 지켰다. 경리 일은 기업을 경영하기 위한 좋은 첫 출발이었고, 8년 후 그와 동료는 클리블랜드에 석유정제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남북전쟁 기간 동안 희망적인 성장을 이어나갔다.


1859년 친구와 함께 상사회사(商事會社)를 설립하고, 1863년 부업으로 클리블랜드에 정유소(精油所)를 설립한 것이 번창, 1870년 자본금 100만 달러의 주식회사 형태를 갖춰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했다. 이 회사에 록펠러가 사장으로 취임, 타사의 흡수 및 운임할려계약(運賃割戾契約) 등의 방법으로 급속히 사업을 확대해나갔다. 1882년에 스탠더드오일의 지역 자회사들로 이루어진 지주회사로서의 스탠더드오일 트러스트가 형성되었다.


1899년 오하이오의 주 법원으로부터 셔먼 독점금지법(반트러스트법) 위반 판결을 받은 스탠더드오일은 지주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던 뉴저지 주에 지주회사를 설립하여 실질적으로 석유업계의 지배를 계속함으로써,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유전과 정유소를 소유한 거대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1911년 미국 연방대법원으로부터 반독점법 위반으로 해산명령을 받고 해체되었다. 그후 록펠러는 재계에서 물러나 자선사업에 몰두했다. 1890~1892년 시카고대학 설립을 위해 6천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고, 그 후에도 3억 5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록펠러는 이때도 계속해서 십일조를 내고 있었는데, 이는 일요일 헌금상자에 집어넣는 봉투 수준이 아닌 엄청난 규모의 액수였다. 그는 조언자를 고용하여 박애활동을 지도받았고, 돈이 필요한 상황을 찾아내 기부를 실천했다. 그는 스펠만대학(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을 위한 대학으로 확고한 노예폐지론자인 그의 처가의 이름을 딴 학교)의 설립을 도왔다. 또한 상당한 금액을 의료연구를 위해 떼어두었는데 이것은 피를 뽑는 식의 비과학적인 의료로부터 DNA와 백신을 발견하는 진보를 이루었다. 20세기 초의 이러한 의료 르네상스는 마치 산업혁명의 걸출한 진보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던 것과 같은 식이다. 록펠러 의료연구기관(오늘날 록펠러대학)은 1901년 뉴욕에 설립되었다. 12년 후에 세워진 록펠러재단은 엄청나게 많은 연구·교육기관을 설립하거나 자금을 주었는데, 질병연구의 주요한 기관인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이 여기에 포함된다.



스페이스 오페라, 자본가들의 출사표

자본주의는 개인주의와의 밀접한 관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인간미를 발견하기 어렵다. 현대 자본주의는 어떤 신비로운 과정을 통해 완성된 상태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변화하며 발전해왔다. 작은 통신회사가 디지털통신계의 거물로 자리를 잡기도 했고, 명문 하버드대학을 중퇴한 컴퓨터광이 세계에서 가장 큰 소프트웨어회사를 세웠다든지, 공산주의를 수호하는 중국이 21세기에 자유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을 거친 이야기들이다. 이런 모든 변화는 살아남고 번영하기 위한 단 한 가지 이유로 받아들여졌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성공을 중세의 토지상속처럼 자손에게 물려주는 헨리 포드식 제국승계 방식이 아니라, 영속적 기업활동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맡은 바 책임을 못하면 자리를 잃을 위험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회사가 운영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설립자들의 유산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자본주의는 중간계급의 성장을 가져왔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세대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가지게 된 것은 20세기 이전에는 들어본 적조차 없는 일이었고, 이것은 자본주의 덕분이다.


스타벅스(Starbucks)

스타벅스의 초창기에는 음료인 커피가 아니라 관련 장비와 원두를 팔았다. 제리 볼드윈(Jerry Baldwin), 지브 시글(Zev Sigel), 고든 보커(Gorden Bowker) 이 동업자들에게 커피란 집에서 즐기는 것이지 밖에서 사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1982년 스타벅스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확장을 생각하며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와 손을 잡았는데, 당시의 그는 밀라노에 여행을 갔다가 본 이탈리아식 커피전문점이 미국에서도 강력한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슐츠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세 동업자들은 별 반응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일지오날레(IL Giornale) 커피체인을 창업했다. 1985년의 일인데, 체인사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스타벅스는 일지오날레에 합병되고, 회사는 스타벅스커피(Starbucks Coffee Company)로 이름을 바꿔 전 세계로 눈을 돌렸다.


스타벅스는 매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집과 직장 사이의 다리가 되기를 꿈꾼다. 고객들을 반기는 따뜻한 분위기로 내부를 장식하고, 몇몇 지역에서는 무선인터넷을 서비스한다. 내부에 흐르는 음악과 조명은 고객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스타벅스에 오래 머물며,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스타벅스를 경험하는 대가는 저렴한 편이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피음료는 4달러 이상이고, 가볍게 즐기는 스낵과 샌드위치류는 5달러 이상의 가격이 매겨져 있다. 어떤 경제전문가들은 스타벅스에서 소비하는 금액을 라떼효과라고 부르는데, 이는 최신유행을 좇기 위해 소득의 일정부분을 소비하는 것으로, 1인당 연간 약 1천200달러 정도 된다고 추산한다. 재테크를 위한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무심코 들르는 커피전문점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조언하는 전문가들도 나올 지경이다.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오늘날 존슨앤드존슨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제약회사 중의 하나로, 57개국에 250개 이상의 회사로 이루어져 있다. 존슨앤드존슨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천 종의 제품들에는 실제 모든 이들의 구급상자에 기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밴드에이드, 타이레놀, 리스테린, 로게인, 수다페드, 베이비아스피린, 펩시드, 니코덤, 니코레트 외 수십 종이 있다. 존슨앤드존슨은 1932년 이래 꾸준히 판매증가세를 보여왔다.


1982년 가을, 시카고에서 7명이 청산가리가 묻은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죽었을 때 존슨앤드존슨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사망과 타이레놀 사이의 관계가 밝혀지자마자 즉시 생산과 광고를 중단하고 3천만 병을 회수·폐기했으며, 가해자에게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조사 결과, 생산과정에서 독극물이 주입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누군가 진열된 선반에서 뚜껑을 열어 청산가리를 주입하고 다시 포장해서 진열장에 돌려놓은 것이었다. 타이레놀 살인자는 끝내 잡지 못했다. 1년도 채 안 되어 타이레놀은 손대면 증거가 남는 방식의 새로운 젤캡(gel cap) 방식으로 개발했고, 3중 포장 용기에 제품을 넣었다. 이로써 존슨앤드존슨은 재빠르게 시장점유율을 회복했고, 이들이 고안해낸 안전장치는 이후 업계의 기준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살아있는 시체들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재앙, 아시아를 넘보다

모든 자본주의의 재앙이 미국발은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경제적 재앙이 반복되는 양태를 보면 자본주의국가들이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는 종종 통화위기라고도 불리는데,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국제통화가 부족하여 궁극적으로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강제당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환율이 고정되어 있는 나라(관리통화)는 통화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더 높다. 제1세대(고전적인) 통화위기 모형은 한 나라의 경제적 기초여건의 악화가 위기의 중심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 반면에, 제2세대(자족형) 통화위기 모형은 튼튼한 경제적 기초여건에도 통화위기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1997년에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금융전염(financial contagion) 방지를 토론하는 와중에 국제적인 공포가 증가하면서 일어났다. 금융전염은 A국이 고통받을 때 B국의 경제가 느끼는 효과를 의미하는 글로벌한 경제용어다. 이 전문용어는 날씨처럼 작동하는 글로벌경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폭풍우가 계속 이어지면 1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장소에서도 한참 뒤 폭우가 오는 것처럼 말이다. 날씨로 설명해보면 밴쿠버의 천둥이 항상 보스턴의 천둥을 야기하지는 않지만, 어디에선가는 무언가를 의미할 것이다. 그들은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그들의 수로는 같은 강과 바다로 이어진다.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보기 위해 이 복잡한 체계를 공부하는 것도 좋은 도전이 될 것이다.


금융전염

일부 연구자들은 한 나라가 금융전염으로 통화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전염은 정확히 과거 기적을 이룬 아시아경제가 조용히 하강함에 따라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이 우려하는 것이었다. 과거 타국에 대한 금융지원은 일종의 개화된 이익추구 행위였지만, 당시 절체절명의 아시아 국가들을 도와주는 것은 어떤 미래의 보상과 관계없이 세계 최고의 관심사였다.


1944년 브레튼우즈협의에서 설립된 국제조직인 국제통화기금(IMF)은 거의 모든 유엔가입국들이 참여했으며, 아시아 금융위기로 영향 받은 나라들을 위한 여러 지원-개혁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금융지원이 주요 목적이고, 지원을 받는 나라는 일반적으로 워싱턴합의를 반영하기 위해 자국의 법과 제도를 개혁해야만 한다. 워싱턴 합의는 통상규제 철폐, 민영화, 낮은 관세, 무역자유화, 세제개혁, 그리고 국제자본주의 경제질서 참여에 적합한 경제정책을 요구한다.


국제통화기금은 아시아 국가들에 재정적자를 줄이고, 이자율을 올리며, 은행 관련 규제를 바꿔 통화가치를 보호하고, 투자자를 안심시키는 개혁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감독기구를 만들어 제공한 자금이 과거에 종종 그랬듯이 특정 그룹이나 친인척으로 새지 않고 원래 예정했던 곳으로 전달되는지를 확인했다. 요점만 보면 이 아시아 국가들은 구제자금을 얻기 위해서 서구화되어야만 했다.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 요구는 실업 급증, 기업 파산, 산업 몰락, 부동산 폭락을 초래했다. 시민과 관리들의 분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 결국 많은 이들이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 참여하려는 열망을 위기의 시작으로 간주하고 비난했다.


미국경제는 아시아 붕괴의 영향을 받았지만 두려워했던 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 국제통화기금의 구제자금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직 우리는 어떤 것도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아시아위기가 저축은행위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과 유사하게, 아직 느껴지지 않은 반향이 있을 수도 있다.


미국과 여러 다른 나라에서 투자자는 선진국에 비해 개도국들이 위기에 더 취약하고 정부의 책임감이 덜하다는 인식으로 현재의 경제상태와 상관없이 개도국과의 거래를 꺼린다. 충격은 유가와 다른 원자재가격의 폭락을 초래해서 러시아의 1998년 금융위기를 야기했는데, 러시아 수출의 80퍼센트는 가격하락으로 직접 영향 받았다. 남미의 위기가 뒤를 이었고, 국제적인 붕괴의 우려가 지속되어서 당시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이 구제자금의 조정을 통하여 막아주리라고 믿었다.


그 후로 아시아 경제는 위기 이전만큼은 못하지만 대부분 회복했다. 중국과 인도는 방대한 저임금 노동력을 가지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큰 경제상대로 떠올랐다.




자본가들의 서재

자본주의는 아주 많은 것을 포함한다. 그 안에서 어떤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애덤스미스 같은 고전적 이론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고, 갤브레이스나 케인스 같은 다소 최근의 이론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마르크스나 슘페터가 제안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비평을 읽고 싶을지도 모른다.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인 소스타인 베블런은 노르웨이에서 이주한 농민의 아들로 예일대학 출신의 철학박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민 2세라는 이유로 취직난을 겪었으며, 도시와 농촌 간의 생활격차에 따른 차별을 체험했다. 시카고대학에서 14년간 교편을 잡고 여러 대학의 교직을 역임했으나, 1926년 은퇴한 후 가난하게 살다가 죽었다.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를 이용하여 진화경제학의 개념을 개발했다. 그의 핵심 아이디어는 1899년 저술한 『유한계급론』에 묘사되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상류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없이 행해진다"고 하는 과시적 소비를 지적하며, 여가에 대한 제도적· 경제적 연구를 선보였다. 베블런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우리가 공유하는 사회의 과거에 근거한 강력한 동력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노동을 피할 수 없어 떠안는 것은 하층계급에게 그리 경멸스럽게 여겨지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을 삶의 한 유형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효율적인 노동으로 얻는 명성에 자부심을 갖는데, 이 명성을 얻기 위한 노력이 그들에게 유일한 경쟁이다. …(중략)…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금전적으로 우월한 계급이다. 이들에게 근검절약의 동기가 있다. 금전적 경쟁의 부차적인 요구가 압도적으로 커서 그 동기는 아무런 효과가 없게 된다. 이러한 경쟁의 부차적인 요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생산활동의 포기다.


부와 권력을 가진 것만으로는 존경을 얻기에 부족하다. 존경은 스스로 보일 때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부와 권력은 분명하게 보여야 한다. 부의 전시는 인간의 존재감에 영향을 주고, 그 영향력을 생생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현 상태에 만족을 느끼게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낮은 문화수준과 하찮은 근무환경으로부터 벗어나 점잖은 주위환경을 가질 때, 편안함도 느끼고 자존감도 높아진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나 습관적인 품위의 기준에서 억지로 벗어나는 것은 주위사람들이 인정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의 존엄에 대한 모욕이다."


『산업조직론(The Organization of Industry)』

조지 스티글러(George Joseph Stigler)는 신자유주의의 기수이자 영향력 있는 시카고학파의 주요 인물인 미국의 경제학자로, 산업조직론·정보경제학·규제경제학 발전에 기여했다. 1982년 발행된 『산업조직론』은 스티글러가 20년 넘게 써온 23편의 수필모음집이다. 그는 산업구조, 시장기능, 정부규제의 원인과 효과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업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완전경쟁의 중요한 조건은 한 부문의 최대 기업이 판매에 있어서 작은 비중을 갖는 것으로, 그 결과 산업군 내에 수많은 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기업들은 독립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많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합의를 깨고 몰래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더 이익일 때 그렇다.


여러 수치들은 (완전)경쟁이 비인간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경제적인 경주에서 1천 명 또는 1만 명의 주자가 있고, 각자는 노력에 상응하는 가격을 얻는다. A 기업의 재산은 B 기업에 일어나는 일에서 독립적이다. 농부1은 농부2의 수확이 엉망이 된다고 해도 이익을 얻지 않는다. 완전경쟁의 요점은 시장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분산하는 것이다. 판매량을 제약하여 가격을 올릴 수 있는 힘은 매우 넓게 분산되면 효과적으로 제거된다.


완전경쟁의 세 번째 조건은 시장참여자들이 사고파는 것에 대한 정보를 완벽하게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판매자가 다양한 구매자들이 얼마를 지급할지를 안다는 가정(혹은 그 반대)은 하나의 시장으로 양측을 모은다. 완전경쟁의 이런 조건들은 하나의 가격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한다. 그리고 이 가격은 구매자나 판매자에 의해 아주 미미한 영향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완전경쟁의 정의는 한 판매자가 직면하는 수요곡선은 무한대로 탄력적이다 또는 한 구매자가 직면하는 공급곡선은 무한대로 탄력적이다 라고 표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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