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3년 이상 중국 곳곳을 누비며, 진실을 숨기려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때론 싸워가며‘세계 최대 수출국’이라는 중국의 화려한 면면 뒤에 숨겨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과 극심한 환경오염, 서구 기업의 강도 높은 가격 압력 등경제발전의 어두운 이면을 들추어냈다.
이 책은 출간 후 중국 본토에서 판금 조치를 당했다. 대신 세계 각자의 독자들에게 ‘중국을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프린스턴 대학교 우드로우 윌슨 스쿨의 앤 마리 슬러터 교수는 가장 뛰어난 중국 관련서세 권 중 하나로 이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 저자 알렉산드라 하니
미국 워싱턴 DC에서태어났다. 학창시절부터 아시아 정치와 경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97년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 대학교 대학원에서공부하며 일본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입사해 중국·일본·영국을 담당했고, 2003년부터는 중국 특파원으로 파견됐다.현재는 홍콩에 살고 있다. 저서로 『차이나 프라이스』가 있다.
■ 역자 이경식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희대 대학원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타샤 스토리』『욕망하는 식물』『컨닝, 교활함의 매혹』『유전자 인류학』『안데르센자서전』『의학사의 이단자들』『벌거벗은 여자』『카사노바 자서전: 불멸의 유혹』『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법의학과 과학수사』『프로파일링:범죄심리와 과학수사』『발칙하고 기발한 사기와 위조의 행진』『차이나 프라이스』 등 다수의 번역서를 냈다.
■ 차례
옮긴이의 말
서문 - 교묘한 함정
제1장 자본주의 실험
제2장 별 다섯 개짜리공장
제3장 개발의 그림자
제4장 골드러시
제5장 바쁜 사람들
제6장 817호실의 여자들
제7장 기업의 사회적책임
제8장 딜레마
제9장 중국 가격의 미래
주석
찾아보기
차이나 프라이스
서문 - 교묘한 함정
중국 광저우(廣州)로 가는 기차와 비행기는 일년에 두 번, 두 주 동안 외국인들로 만원을 이룬다. 광저우에는 거대한 컨벤션센터가 두 개 있는데, 외국인들은 아침마다 그중 한 개를 골라 셔틀버스를 타고 달려간다. 이들을 중국까지 달려오게 만든 유일한 원인은 바로 ‘중국 상품의 값싼 가격(China price(이하 ’중국 가격‘으로 옮긴다.-옮긴이)이다.
컨벤션센터 안에는 수천 개의 회사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중국산 제품을 진열해놓고 무역상들을 기다린다. 이곳에는 스웨터, 목욕 용품, 기포 욕조, 전동 드릴, 식기, 휴대폰, SUV 차량, 플라스틱 조화, 싱크대 등 없는 게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선진국에서 만들 경우 발생하는 원가의 절반 심지어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가격으로 구매자를 유혹한다.
지난 몇 년에 걸쳐 ‘중국 가격’은 세계 제조업의 지형을 바꿔놓았고, 중국이 차기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반면 전 세계 노동자 수백만 명은 실업자로 전락했고, 이는 국제무역 관계에서 뼈아픈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수억 명 중국 사람들의 삶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변화했다.
중국 가격은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파나마에서 100명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가짜 약. 그 정체를 추적한 결과, 중국에 있는 여러 화학공장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에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수많은 애완동물이 죽었는데, 이 역시 중국제 동물 사료의 밀단백에 독성 화합물이 첨가되었기 때문이었다.
해로운 화학약품으로 오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미국은 중국에서 양식한 특정 해산물들의 수입을 금지했다. 중국산 장난감, 타이어, 게다가 치약도 현재 정밀하게 조사하는 중이다. 그리고 미국의 태평양 연안에는 아시아에서 밀려온 수많은 오염물질들이 쌓이고 있다. 이 중 상당량이 중국에서 버려진 것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실직과 제품의 위험성 말고, 중국의 제조업이라는 거대한 괴물에 대해서 우리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의 목적은 중국 제품이 가지고 있는 싼 가격의 이점이 사실상 얼마나 커다란 비용을 초래하는지 밝히는 것이다. ‘중국 가격’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들은 어떻게 해서 그처럼 제품을 싸게 만들까? 이 싼 제품에 대해 그들은 또 우리는 어떤 비용을 치를까? 그리고 이 싼 가격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실험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기까지는 중국 제품의 가장 열성적인 고객 가운데 하나인 미국 덕이 컸다. 2차대전이 끝난 뒤로 미국 정부는 수입품이 미국인의 가정까지 쉽게 도달할 수 있도록 줄곧 노력해왔다. 부분적으로, 미국 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정부는 수입 관세를 대폭 낮춰 세계 의류 산업이 일어나는 데 도움을 주고, 나아가 미국의 제조업자들이 해외로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78년 중국이 30년 가까운 고립을 끝내고 세계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즈음, 미국 소비자들에겐 자기 신발이나 옷 그리고 아이들 장난감에 외국 상표가 붙어 있는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미국의 제조업자들은 길고 긴 싸움을 해야 했다.
중국의 공장들은 조용하게 세계 경제에서 자기 자리를 잡았다. 중국의 제조업 제품 수출은 1980년대 말부터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전체 수출 총액 가운데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5년 49.5퍼센트에서 1993년 81.8퍼센트로 증가, 24퍼센트라는 놀라운 증가세를 보였다. 이 시기 텔레비전이나 전화기 등 가전제품 수출이 급격하게 증가한 탓도 있지만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주역은 장난감이나 스포츠용품, 신발, 섬유, 의류 등이었다.
1992년 미국은 중국의 전체 수출액 가운데 3분의 1을 수입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1978년만 하더라도 중국의 대미 수출 비중이 불과 몇 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월마트도 1993년부터 중국에서 제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중국과 미국의 상호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중국으로서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돈이 중요했다. 직접투자를 하든 생산공장에 제품을 주문하든 어쨌거나 해외에서 돈이 들어오길 바랐고 또 거기에 의존했다. 그리고 전 세계 국가들은 값싼 중국 제품에 길이 들었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지방정부들은 앞다투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나섰다.
이와 함께 뻔뻔스럽고 퇴폐적인 상업문화가 중국 남부지방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다. 경제특구를 승인했던 베이징의 고위 관료들도 이렇게 될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경제특구로 지정되었으며 규모에 있어서도 첫 번째를 달렸던 선전은 1980년대 중반이 되면서 사회주의 국가 중국인들에게 타락의 휴식처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이트클럽, 마사지방, 도박장 그리고 온갖 불법적인 금융 거래가 판치는 자본주의적인 놀이터로 변모했던 것이다.
별 다섯 개짜리 공장
월마트가 설정한 윤리적 기준에 맞추어 제품을 생산하는지 그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찾아온 월마트의 이사는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인 선전의 한 공장을 찾아가 그곳을 빠르게 돌아본 후 공장이 “상당히 좋다”라고 말했다. 관리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사를 인근 음식점으로 데려가 점심을 대접했다.
사실 음식점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사장 소유의 또 다른 공장이 있었다. 이곳은 월마트의 감사관이 전혀 알지 못하는,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되는 곳이다. 공단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공장은 정부에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다. 작업장에 안전설비도 없고, 종업원은 의료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법률로 정한 노동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한다. 임금은 월급이 아니라 일당으로 계산해서 받는다. 월마트에 납품하는 전체 물량 가운데 40퍼센트가 이 공장에서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월마트에서 파견된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이 공장을 본 적이 없다. 공식적으로 이 공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에 있는 수많은 수출품 제조업체들은 요동치는 제품 가격에 휘둘리는 와중에 공격적인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바이어들로부터 주문을 따내면서 어렵게 지탱해나간다. 경쟁자들은 서로의 장점을 베낀다. 경쟁이 한 제품에 수익을 잠식하고 나면, 다른 제품으로 옮겨간다. 모든 생산 분야에서 제조업체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은 바이어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선택 범위가 그만큼 넓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조업체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다. 쥐꼬리만한 수익에 만족하면서 힘겨운 시기를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월마트의 감사관이 방문했던 공장의 주인은 유진 챈이다. 월마트는 1990년대에 납품업체들을 상대로 자기들이 정한 윤리 기준을 잘 지키겠다는 서약을 받기 시작했다. 이 기준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노동시간 준수와 안전설비 마련, 노동법에 규정된 최저임금 지불 등이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기업들은 당국 정부가 정한 노동법을 어기지 말라고 요구한다. 한 공장이 납품업체로 선정되려면 이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했다.
챈으로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조항은 노동시간이었다. 법률을 어기지 않고 월마트가 정한 납품 일자에 맞출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길게 이어지는 초과노동과 성과급 지불 규정 때문에 챈의 공장은 중국의 노동법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그는 원래 공장에서 서류 위조를 지휘하는 한편 은밀하게 근처 다른 공장 건물의 한 층을 세냈다. 그리고 최소한의 설비를 갖춘 다음, 일할 사람들을 모았다. 물론 기꺼이 법으로 정한 시간 이상 일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보험도, 노동계약서도 없었다. 이 공장은 당국에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이나 안전과 관련된 번거로운 구속도 없었다. 게다가 세금도 필요 없었다. 문서나 기록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챈은 자기 사업명부에 등재되지 않은 그 공장을, 월마트는 물론이고 미국의 소매유통업체에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철저히 비밀로 했다.
월마트의 감사관이 본 공장을 중국에서는 ‘오성 공장’이라고 부른다. 별 다섯 개짜리 호텔만큼 시설이 좋다는 뜻이다. 때로는 ‘모델 공장’이나 ‘전시 공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오성 공장’의 사촌인 등록되지 않은 공장은 ‘검은 공장’ 혹은 ‘그림자 공장’이라고 부른다. 그곳은 기본적으로 도급 공장이다. 미국이 보다 싼 가격을 좇아서 중국 공장에 아웃소싱을 하듯이, 중국 공장도 동일한 이유로 다른 공장에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다.
현재 챈이 생산하는 물량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정부 당국 및 월마트가 존재조차 모르는 곳에서 생산된다. 이런 유형의 도급은 전 세계 제조업 현장에선 일상적이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공장에서 잘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비효율적인 부분을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면 비용이 절감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주문자 측에서는 자기가 받는 제품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보장받을 수 없다. 도급이 이루어지면 원료나 부품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사용이 금지된 화학물질이 첨가되거나 안전시설 및 장비가 없는 상태에서 작업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아웃소싱 전문가인 미들러는 이렇게 말한다. “직접 보지 못하면 품질 관리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감시를 철저하게 해도, 제품이 다른 곳에서 생산된다면 무용지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챈이 보기에 이런 주장은 허무맹랑한 소리일 뿐이다. 그림자 공장 덕에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 최대의 자원인 ‘장시간 힘든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친다는 점에서 챈은 자기가 중국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제품을 주문한 기업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노동자를 가혹하게 착취하는 공장을 따로 몰래 운영하는 것도 이런 삶의 방식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유일한 게임의 규칙이라는 거죠.”
개발의 그림자
덩원핑과 탕만전 부부는 광동성에 있는 보석공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 이 부부가 사는 곳은 중국의 남부 해안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쓰촨성 서부지역에 있는 두 사람의 고향과는 2,25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 부부는 중국인 이주노동자의 꿈을 이루며 살았다. 시골에 집을 샀으며, 아이들에게 새 옷을 입혀서 학교에 보내고, 미래를 대비해 돈을 모아두었으니 말이다. 여태까지 살면서 이보다 더 멋진 적은 없었다. 이런 흐뭇한 생각을 하면서 부부는 사원증을 챙겨들고 함께 출근길에 나섰다.
그 뒤로 여섯 달도 되지 않아 덩원핑은 규폐증 진단을 받았다. 규폐증은 원석을 가공할 때 나오는 미세한 가루가 폐에 축적되어 생긴,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이었다. 덩원핑은 직장에서 쫓겨났다. 부부는 어떻게든 병을 고쳐보려고 평생 모은 돈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부부는 보석공장으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 싸웠고, 판사는 그가 다니던 공장의 사장에게 3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몇 달 뒤 덩원핑은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여덟이었다.
중국에서 제조업이 활기를 띠며 번성했지만 사람들의 건강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중국의 1,600만 개 회사에서 일하는 2억 명 이상이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2005년 말 기준으로 중국에서 발생한 직업병 관련 사건의 총 누적건수는 66만 5,040건이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약 90퍼센트인 60만 6,891건이 사람을 허약하게 만들어 결국 말라죽게 하는 폐질환을 통칭하는 진폐증이었다. 진폐증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광산 노동자에게 자주 나타나는 흑폐증과 덩원핑의 목숨을 앗아간 규폐증이다.
중국에 있는 수백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직업병에 매우 취약한 상태다. 중국의 직업병 희생자 가운데 약 90퍼센트가 이주노동자로 추정된다. 이주노동자는 대개 가장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을 한다. 이들이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는 법률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노동조건을 명시하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들은 보통 위생시설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산다. 이처럼 열악한 주거 환경은 산업혁명 시절 영국 도시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핵과 콜레라, 천연두 등의 질병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이주노동자의 작업 환경 역시 이들을 상해와 질병으로 내모는 요인이다. 수출품을 만드는 공장들은 대부분 작업 분량에 따라 임금을 지불한다. 얼마나 일을 빨리 그리고 많이 하느냐에 따라 자기가 받는 임금, 즉 고향에 보낼 수 있는 돈의 액수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안전장구조차 생산성을 높이는 데 방해가 되는 물건으로 여긴다.
관료적인 절차, 작업장을 정밀하게 검사할 인적 자원의 부족,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다 아우르지 못하는 사회보장제도 등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보호를 받기 어렵다. 또한 주민등록상 거주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아 공식적 의료보험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법의 집행력이 허약해서 산업재해 발생 비율이 높긴 하지만, 사실 산재에 대한 중국의 법률 자체는 매우 분명하고 엄격하다. 중국에서 경제개혁이 시작된 이후 도입된 산재 관련 기준은 꽤 포괄적인 편이다. 직업병 예방, 진폐증의 예방 및 치료, 직업병과 산재 진단, 산재 관련 보험 가입 등에 관한 여러 조례들이 마련되어 있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노동쟁의 소송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한 비율은 4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1997년이 되면서 승소 비율이 50퍼센트를 넘어섰다고 미시건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중국의 법과 정치를 전공하는 메리 겔러허 교수는 말한다. 공산주의 사회답게 중국에서는 노동분쟁 시 판사들이 노동자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지침이 마련되어 있다. 이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약자라는 전제가 확고부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가 완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현재 해안지역에서는 제품 생산원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어서 많은 기업인들이 아직 산업화가 덜 이루어진 내륙지역으로 서둘러 공장을 이전하는 상황이다. 이런 지역에서는 제도나 관행이 아직도 여전히 기업 편이다. 중국 정부가 경제성장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칼자루를 쥔 쪽은 여전히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이다.
중국은 노동자가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채널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격렬한 노동자의 저항 혹은 폭동이 자주 일어날 것이다. 재산 압류에서 환경오염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걸쳐 일상적으로 저항이 일어나, 베이징은 사회적 안정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노동자나 다른 불만 계층에게 보다 큰 발언권을 주면서도 이들을 확실하게 장악해야 하며, 또한 경제성장을 지속시켜야 하는 중층적 요구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중국 가격의 미래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노동집약적인 소비재 제품의 가장 유력한 생산국으로 우뚝 섰지만 동시에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투자자들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오면서 수익률은 떨어지고 원자재 가격에서부터 인건비와 전기료까지 모든 것이 올랐다. 경제성장의 필연적인 결과로, 지난 30년 동안 중국이 노동집약적인 제품의 생산자로서 누려온 유리한 위치가 점차 잠식당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수십 년 동안 중국의 노동집약적 제품 생산에 영향을 미칠 요소들이 어떤 것일지는 이미 분명해졌다. 상승하는 임금과 원자재 가격, 더욱 커지는 노동조합의 압력, 더욱 높아지는 소송 위험, 줄어드는 노동자, 품질과 안전에 시비를 거는 외부 압력 그리고 더욱 줄어드는 수익률 등이 그런 요소들이다.
물론 중국과 세계 다른 국가의 임금 격차는 아직도 크다. 중국은 앞으로도 수 년 간 미국이나 유럽의 임금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임금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장들이 최저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기업주들은 다른 산업 분야와 다른 지역의 임금상승으로 인해 점점 거센 시장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중국산 제품의 수출 가격 상승은 이미 일부 바이어들의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았다. 비록 여전히 외국인 직접 투자금의 대부분은 중국으로 들어가는 상황이지만 베트남과 인도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기업도 중국을 완전히 떠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중국은 여전히 제조업 부문에서 경쟁력이 막강하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건 산업 클러스터다. 몇몇 노동집약적 제품의 경우 모든 생산업체가 중국으로 들어와 있다. 그래서 부품이나 기계 수리점 그리고 원자재 등이 모두 공장에서 한두 시간 거리 안에 무리를 지어 형성되어 있다. 의류 산업처럼 리드타임(제품을 기획하는 데서부터 완성품이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 혹은 발주에서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옮긴이)이 짧은 산업은 이런 클러스터가 마련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중국보다 모든 영역의 가격이 낮은 나라도 클러스터 효과가 나타나려면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13억 소비자들이 존재하는 중국 내수 시장의 유혹도 만만치 않다.
중국이 저가품 생산 부문에서 확보했던 지배적인 지위를 고가품 생산 부문에서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느슨한 법 진행, 넘쳐나는 미숙련 노동력 그리고 단기적 번영이 첫 번째 산업 발전단계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숙련된 기술, 혁신 그리고 마케팅 및 현대적 금융 경영에서의 섬세한 기술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산업으로 이전하려는 단계에서 위의 요소들은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점차 높아지는 사회적 불안, 무역 긴장, 초과 생산시설 그리고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놓고 정부는 수출 의존적인 경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 앞에 놓인 과제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법 체계를 개선하는 일이다. 노동자와 일반 시민의 건강과 안전과 생계를 희생하면서 저질러지는 공무원과 기업가의 유착을 끝장낼 필요가 있다. 법 체계를,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도구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장과 광산에 대한 감독을 근본적으로 확대해 노동법과 환경법 위반 사실을 적발하고 단호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국은 직업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의료보험 제도, 특히 시골의 의료보험 제도는 중국에서 발생하는 엄청나게 많은 산재 노동자에게 충분한 혜택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정비되어 있지 못하다. 아울러 중국은 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데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중국이 근본적인 개혁에 나선다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이 정도의 개혁을 하는 데만도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외국인 투자자들을 처음 중국으로 유혹했던 요소들 가운데 하나인 끝없이 보충되는 풍부한 노동력이 이제는 중국이 노동 및 환경 분야를 개선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모두 중국 정부가 제대로 마음 먹고 달려들기만 하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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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비록 책임은 중국 정부에 있지만 이에 비해서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책임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도 있다. 우리가 30달러짜리 DVD 플레이어와 3달러짜리 티셔츠를 원하는 한 중국의 보석공장에는 여전히 먼지가 가득 차 있을 것이고, 불법 탄광은 계속 생겨날 것이고, 열여섯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노동자가 자정이 넘도록 공장에서 일할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중국 가격의 당사자들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