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

대한민국의 새로운 증후군으로 등장한 "명품소비 증후군"을 신랄하게 분석한 책이다.여고생부터 중산층 직장인, 상류층 주부까지 심층 인터뷰를 실시하여 "왜 명품을 소비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사치하려는 소비자 욕망의근원을 유형화하여 분석하고, 사치욕망을 조건화하는 사회적 여건을 드러냄으로써 소비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다. 또한 사치의 문제점을되돌아보고, 더욱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한 논의를 제시한다.

■ 저자 김난도
현재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아는 남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행정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한국정책학회 학술상과 2006년 서울대학교교육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서울대에서는 <소비자 행태&& <소비 트렌드&& <소비 사회&& <소비자와시장&& 등의 과목을 강의하며, 삼성전자 등 기업에서 <소비자 지향적 경영전략&& <소비의 메가트렌드&& <유비쿼터스등 신기술과 소비자행동&& <솔루션 비즈니스의 개념과 전략&& 등의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현재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의「소비자 리포트」()편집위원과 소비자 정책포럼 간사를 맡고 있으며, 조선일보의 고정 칼럼니스트이다. 저서로 『소비자 정보론』(공저), 『공공가정 경영론』(공저),『합리적 선택과 신제도주의』(공저) 등이 있으며, 연구논문으로는 「소비합리성의 개념에 대한 연구」 「소비자소외의 개념에 대한 연구」「디지털폐인과 가상공간의 신소비문화」 「저출산 시대의 소비트렌드」 「인터넷중독의 실태와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 「게임중독과 디지털 폐인문화」,「소비의 도상해석학」 「소비자 안티사이트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 차례
1부 사치 소비의 심리학 
1. 사치의도시에서 길을 잃다 
2. 사치품의 가격구조 

2부 사치소비의 유형 
3. 사치소비의 유형
4. 과시형 사치 
5. 질시형 사치 
6. 환상형 사치 
7. 동조형 사치 
8. 사치의 결과

3부 사치 권하는 사회 
9. 사치품 마케팅
10. 대중매체 
11. 신용카드 
12. 정부 
13. 소비가 점령해버린 우리 삶 

4부 사치에서 삶으로 
14. 행복한 삶이 명품이다 

주석 
참고문헌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

1부 사치소비의 심리학
사치의 도시에서 길을 잃다
명품(名品)이라는 단어는 원래 ‘훌륭하기 때문에 이름이 난 물건’ 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술품에 주로 사용하며, 상품에 대해 사용할 때에는 만든 이의 장인정신이 살아 있어 예술작품으로 대접을 받을 만한 경우에 붙이는 말이 명품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명품을 고가의 해외 유명 패션의류잡화 브랜드를 지칭하는 말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고가품이면 무조건 명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명품 차, 명품 학습지, 명품 여행 등의 예에서 보듯이 “비싸더라도 품질이 고급이다”라는 의미이거나, 심지어는 ‘비싸면 무조건 명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간지에 “이젠 사과도 ‘명품’ 시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하고, 34평형 아파트 분양광고에 ‘명품’이라는 단어가 동원됩니다. WBC 한일전에서 수비수가 보여준 멋진 장면은 ‘명품 수비’라는 말로 포장되었습니다. 이제는 세상 어느 것에 ‘명품’이란 말을 붙여도 그럴듯해 보입니다.

외국어에는 ‘명품’의 이러한 의미를 직접 나타내는 단어는 없습니다 영어로는 luxury goods, high-end products, premium products 정도가 가장 비슷한 어휘인데 이는 사치품, 고성능품, 고가품 등의 의미로 보통 대량생산하는 상품에는 붙이지 않는 용어입니다. 일본에서도 ‘名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는 장인?명인이 만들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의 고가 패션 브랜드를 ‘명품’이라고 부르는 용례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사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명품’의 의미가 이렇게 변화한 것은 사치품에 대한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해당 상품의 마케팅이 본격화한 것과 관계가 깊습니다. 사치품?고가품이라는 용어가 주는 거부감을 줄이고, 소비자들의 선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명품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했던 것입니다. 마케팅을 위해 변화된 의미의 ‘명품’이라는 용어를 언론이 그대로 인용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재와 같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에서는 명품이라는 용어 대신 사치품?고가품?고급품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다만 직접 화자의 말을 인용할 때, 고유명사로 쓰이는 경우, 다른 곳에서 인용해 올 경우, 혹은 분명하고 생생한 의미의 전달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에 한해 예외적으로 작은따옴표를 붙여 ‘명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명품 소비자’라고 하면 여성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패션관련 사치품들은 여성들이 더 선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치의 대상품목이 다양하기 때문에, 사치가 여성에게 더 심각하다는 선입견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더구나 패션관련 사치품 소비에 국한하더라도 백화점의 고급구두 매장에서의 남성용 고급 구두와 여성용 고급 구두의 매출액은 거의 같습니다. 사치는 성별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특별한 부유층들의 전유물이었던 사치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치품의 주 소비주체가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왜곡된 소비 평등화의 또 다른 단면입니다. 젊은이들의 소득은 그리 높지 않음이 분명한데도 이들은 최고의 ‘명품 선호자’들입니다. 고급품 전문 백화점의 전체 고객 중 2,30대 소비자의 비중은 50퍼센트를 넘습니다. 상대적으로 소득은 적은데 눈은 높다 보니, 유명 브랜드의 상표를 구매하기 위해 하루 세끼 라면만 먹으면서 버티는가 하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부 사치소비의 유형
사치 소비의 유형
소비의 근본적인 출발은 ‘필요’입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음식을 소비하고, 교통수단을 소비하고, 의복을 소비합니다. 사치도 물론 소비의 일종입니다. 누구라도 기왕 소비할 거라면 비싸더라도 좋은 물건을 사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경제능력이라는 제약조건이 따라붙는다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자신의 경제규모에 맞추어 소비해야 합니다.

실제로 사치품을 유통하는 분야에서는 훨씬 간명하게 소비자를 구분합니다. 사치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고객을 Old Money, New Money, Fake Money의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전통부자(Old Money)들은 스스로 노력하여 돈을 모은 노년층이 대다수이고, 소비행태는 무척 검약합니다. 전통부자들은 사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사치품을 유통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상대입니다.

신흥부자(New Money)는 전통부자의 2세들과 비교적 단기간에 부자가 된 사람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벤처사업가, 증권관련 종사자, 단기간에 성공한 사업가, 인기 연예인처럼 아직 젊지만 짧은 기간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통부자들과는 달리 소비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좋은 물건을 써왔고, 해외 유학 등을 통해서 고급 브랜드에 대한 지식과 이해(brand literacy)가 높기 때문에 ‘명품’을 구매하는 것을 즐겁게 생각합니다. 재력과 소비성향을 고루 갖춘 신흥부자들은 사치품 유통업계의 주된 고객층입니다.

가짜부자(Fake Money)는 돈이 없지만 신흥부자의 소비를 흉내내는 사람들입니다. 주로 20~30대의 젊은 세대가 많습니다. 부자도 아니면서 사치품을 구입하려고 하니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돌려가며 쓰거나, 계?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합니다. 유흥업소 취업 등 일부 염려스러운 방법으로 소비자금을 마련하느라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것도 이 계층입니다. 대개 평소에 점찍어둔 하나의 물건을 구입하는 ‘일품명품주의(一品名品主義)’ 쇼핑을 합니다.

정작 부자들은 검소한데 신흥부자와 가짜부자들은 왜 사치하는가.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사치품에 눈길을 주지 않고 분수에 맞는 검소한 소비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일부 가짜부자들은 돈도 없으면서 신흥부자를 흉내내려고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일부 소비자들의 ‘명품’ 선망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 먼저 소비를 일으키는 심리적 동기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치의 심리적 동인인 과시?질시?환상?동조와 우리 마음의 버릇인 계층 민감?평등지향?나르시시즘?집단의식을 순서대로 서로 결합시키면 과시형?질시형?환상형?동조형의 네 가지 사치의 유형이 생겨납니다.

사치의 유형화

물론 각 유형들이 서로 확연하게 상호배타적인 것은 아닙니다. 과시-질시-환상-동조와 같은 인간의 감정들이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고, 여러 가지 마음의 버릇들도 서로 단선적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소비자에게 이 네 유형의 동기가 동시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유형화는 어떤 소비자가 어떤 유형인지를 판별해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치라는 소비행위의 감정적 동인?공포?사회적 영향 등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동조형 사치
동조형 사치란 준거집단, 즉 주위의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스타가 사용한다는 이유로 덩달아 고가품을 구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준거집단을 따라가려는 ‘동조’가 기본적인 감정의 동인이 됩니다. 인간은 모방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동조는 매우 원초적인 인간행동의 원천입니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 특히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강한 중?고등학생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동조가 사회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질 때 무엇이 ‘유행’한다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우리나라는 유행 정도가 아니라 ‘열풍’이 자주 부는 나라입니다. 언론들이 즐겨 사용하는 ‘명품 열풍’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사치도 하나의 유행이자 열풍입니다.

마음의 버릇: 집단의식과 경쟁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조성향이 높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그냥 높은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응집적인 동조를 보이곤 이내 사라지는 ‘열풍’을 보일 정도입니다. 한 번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치 전염병에 걸린 듯이 나라 전체를 휩쓰는 바람을 맞게 됩니다. 로또 열풍, 주상복합아파트 열풍, 해외여행 열풍 그리고 ‘명품’ 열풍에 이르기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뜨거운 바람이 자주 불어닥칩니다. 이런 사회적인 열풍 현상을 이용하여 탕수육 전문점, 조개구이전문점, 실내낚시터처럼 인위적으로 ‘바람’을 일으켜 영세한 가맹점주만 울렸던 악덕 체인점 사업자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도 있습니다. 이처럼 빠르고 강한 사회적 동조성향은 집단의식과 경쟁의식이라는 마음의 버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좋은 엄마들  딱 그렇게 몇 명만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거 외에 떼 지어서 만나는 게 별로인 것 같더라고요. 왜냐하면 친구는 편하잖아요. 친구는 내 사정을 잘 아니까 이런 명품에 의존 안 해요, 별로……. 근데 그런 엄마들하고는 항상 경쟁이 되잖아요. 애도 경쟁이고 자기도 튀어야 되잖아요. 제가 볼 땐 한심한데……, 그래서 명품을 더 사고 옷도 그러는 것 같아요. 제 느낌에…….”
- 중산층 40대 전업주부

우리는 전통적으로 집단 속에서 자신을 규정해왔습니다. 산과 계곡이 많은 지형적 조건과 협동을 중시하는 농업에 주로 종사한 여건이 이러한 집단의식을 발달시켜온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남편’ ‘우리 집사람’ 하는 말을 거리낌 없이 써서 외국 사람들을 헷갈리게 합니다.

영어의 we나 our는 ‘너와 나의’ 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한국에는 ’집단혼‘의 전통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는 외국학자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개인주의적 가치인 정직보다는 공동체적 가치인 의리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집단은 개인보다 중요하고 강한 응집력을 가지며, 각 구성원들이 느끼는 집단에의 소속 욕구는 커집니다. 개인은 혼자 있을 때보다 집단 내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그만큼 집단 의존적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의 버릇들을 일컬어 집단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강한 집단의식은 남과 달라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부르고, 이 강박관념은 한층 더 강화된 동조성향을 낳습니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매우 치열한 경쟁사회라는 점입니다. 만화가 이원복 교수는 치열한 경쟁의식을 거리의 무질서한 간판들을 통해 지적합니다. 질서정연하고 통일된 서양의 얌전한 간판들과는 달리 우리 상점의 간판은 크고, 현란하고, 무질서합니다. 이는 “남에게 뒤지면 죽는다”는 처절한 경쟁의식의 발로라는 것입니다. 한대(寒帶)에서 열대(熱帶) 기후를 아우르는 뚜렷한 사계절만큼이나 수시로 변화해온 우리 사회에서 잠시라도 경쟁에서 처지면 영원히 진다는 의식이 팽배해져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의식은 소비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납니다. 일단 한 상품이 뜨면 품목을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구입합니다.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나 스팀 청소기는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에서 훨씬 더 잘 팔린다고 합니다. 한 집이 사면 금방 소문이 나고, 조만간 아파트 한 동 전체가 들썩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치품은 광고보다 입소문에 더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과외교습이나 학습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뒤져서는 안 된다” “달라서는 안 된다”는 의식은 우리에게 절체절명의 삶의 표준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동조의 문제는 동일시나 내면화의 문제를 넘어서는 절박한 과제로 대두되었습니다.

3부 사치 권하는 사회
사치품 마케팅
다양한 마케팅 활동 중에서 특히 사치품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사치품 시장이 각광을 받으면서 명칭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는데, 프리미엄 마케팅, 프레스티지 마케팅, 럭셔리 마케팅, 하이엔드 마케팅, VIP마케팅, 귀족 또는 부자 마케팅 등이 사용되고, 언론에서는 흔히 ‘명품’ 마케팅이라고도 합니다. 최근에는 어느 자동차 광고를 인용하여 1퍼센트 마케팅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사치품 마케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 원래 사치품 마케팅은 고급 자동차, 의류, 골프?콘도 회원권 등의 품목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금융(Private Banking), 아파트, 여행, 전자상거래, 가전제품 등 거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치품 제조사들의 전략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누구나 선망하지만, 아무나 살 수 없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누구나 선망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잘 계산된 커뮤니케이션에 입각한 ‘신화’가 필요하고, 아무나 살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는 ‘희소성’의 유지가 필요합니다. 사치품 제조사의 성공담이란 결국 이 두 가지 마케팅 요소의 성공적인 결합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사치품의 이미지는 단순한 제조국 이미지나 브랜드 이미지를 넘어서는 신화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신화는 4단계를 거쳐 만들어집니다.

신화창조 1단계: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동일시
우리가 알고 있는 패션 사치품의 상품명(브랜드)들은 대체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출신 대표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이처럼 브랜드와 디자이너를 완전히 동일시시키면 우리는 품질 좋은 ‘공산품’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작품’을 걸친다는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신화창조 2단계: 디자이너의 천재적 예술성 강조
기왕 ‘작품’을 걸칠 것이면 천재적인 예술가의 작품이 좋겠지요. 유명한 ‘명품’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파리, 밀라노, 런던 패션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해 주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는 성공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데뷔하자마자 기존 패션의 상식을 뒤엎는 혁명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거기에다가 ‘고아원에서 시작한 코코 샤넬의 인생’이라든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지아니 베르사체’처럼 디자이너 개인의 파란만장한 탄생이나 비극적 죽음과 같은 요소가 더해지면 그 효과는 더욱 극적으로 됩니다. 혹은 그 가계(家系)의 전통을 통해 소비자는 미켈란젤로를 보듯이 디자이너를 보게 됩니다. 물론 사치품 애호가들은 “그들이 그만큼 천재적이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명품’ 반열에 들게 된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모든 천재적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인 브랜드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치품은 미적 완성을 성취하는 예술품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입니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예술성은 그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이룬 이후에 사후적(事後的)으로 내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화창조 3단계: 장인정신과 수공예
사치품마다 ‘철저한 장인정신의 산물’임을 자랑합니다. 물론 장인정신은 좋은 것이겠습니다만, 요즘처럼 치열한 경쟁시대에 웬만한 장인정신 없이 물건을 만들어 파는 기업은 없습니다. 장인정신으로 말하자면 수많은 연구개발 비용을 들여 품질 혁신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도 이들 못지 않습니다. 사치품에 장인정신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장인정신이 사치품 제조사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따라서 장인정신이 ‘그들만’의 미덕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인정신과 더불어 강조하는 것이 수공예입니다. 사람들이 수공예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정생산’ 되기 때문입니다.

신화창조 4단계: 다이애나 왕비도 이것만 썼다는데……
사치품 마케팅의 마침표는 “누구누구도 이것만 쓴다”로 찍힙니다. 대개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사용한 바로 그 물건, 재클린 오나시스가 즐겨 입는 외출복,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이것 아니면 신지 않았다는 구두 등등의 수식어가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유명인이 사용했다는 특정 상품을 사용하면 자신도 그와 동류가 된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왕비가 썼으니 품질만큼은 의문의 여지가 없겠다든지, 나도 헵번과 가방만큼은 같은 것을 쓴다든지 하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 단계를 거쳐 사치품의 신화는 완성됩니다. 잡지에서나 책에서나 사치품을 소개할 때면 항상 해당 브랜드의 연혁설명이 나옵니다. 디자이너 하나하나의 ‘스토리’ 마다 드라마틱하고 모두 다른 것 같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그 구조가 똑같습니다. 이러한 신화를 완성하면 ‘누구나 선망하는’ 물건을 만드는 데는 성공한 셈입니다. 치밀하게 계산되고 정교하게 제작되어, 막대한 물량공세를 펴는 광고에 의해 소비자들에게 주입됩니다. 현재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사치품은 몇몇 대기업에 의해 제작?유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점력은 광고에 의존하는 바가 큽니다. 광고는 소비자의 인식과 태도를 바꿔놓을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경쟁을 배제하고 독점 거대화의 촉진제 구실도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광고비는 잠재적인 경쟁자들이 경쟁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효과적으로 통제합니다. 막대한 광고비 지불능력이 이미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자들의 수준에 독점적 마켓파워가 그대로 남아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사치품은 잘 팔리더라도, 대량으로 생산하지 않습니다. 그래야만 비싼 가격을 오래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품의 수요가 있다고 해도 대량으로 생산하지 않고 희소성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수요가 변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공급의 감소가 가격의 상승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희소성의 상품이 비싼 가격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단지 수요-공급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제품의 희소성은 부유층의 차별화 욕망을 확실하게 해소해줄 수 있는 무기가 됩니다. 아무리 고품질의 신화적인 제품이라도 여러 사람이 가질 수 있으면 부유층의 불안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치품이 품질이 문제가 아닌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사치품 제조사들이 수작업을 고수하는 것은 단순히 고품질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넘어 상품에 디자이너의 인격을 불어넣고, 대량생산이 부유층에게 줄 수 있는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것입니다.

좀 제품도 고가이고요. 그러다 보니까 흔하지가 않은 것 같아요. 또 나만이 가질 수 있다는 그런 것도……. 애엄마 말로는 백이 있는데 몇 개월 기다려야 한다고…….”
- 상류층 30대 기혼 직장인 남성

희소성은 광고나 유통단계에서도 지켜집니다. 사치품 브랜드들은 대체로 세일을 하지 않고, 광고도 한정적인 매체에서만 실시합니다.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나 실제로 사치품 유통업자들이 전하는 실상을 들어보면, 우리가 세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 이른바 ‘노세일 브랜드’로 알고 있는 사치품들도 모두 세일을 합니다. 재고가 남으면 그 상품도 어떻게든 ‘치워야’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미지 관리를 위해 공개적인 세일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4부 사치에서 삶으로
현대 예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문구가 표현하고 있듯이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때때로 하면서도 끊임없이 더 많은 소비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소비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더 좋은 소비를 삶의 목표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사치는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질적 풍요가 삶의 목표라고 하더라도 사치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일수록 돈은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의 의미가 중요할수록 자신의 물질적 행복감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합리적으로 지출을 배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물질주의자’입니다. 사치는 특정한 일부 품목에 가용한 자원의 대부분을 지출하게 만듦으로써 부를 늘릴 수 있도록 투자하고, 다른 사람을 돕고, 다른 필수적인 품목에 대한 소비의 기회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사치는 물질주의자에게도 적(敵)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소비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소비가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소비대상물에 대한 목적 자체가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① 자기의 소득수준에서는 얻을 수 없는 대상을 소망하지 않아야 하고(최적성 조건), ② 그 소망을 형성하는 데 있어, 외부적인 영향에서 자율적이어야 한다는(자율성 조건), 두 조건을 들 수 있습니다. ‘명품’ 소비가 자신의 경제적 범위를 넘기 때문에 최적성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조건화된 소비욕망이어서 자율성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합리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사치하려는 목적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가의 사치품을 구매하기 앞서, 자신의 소비욕망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 나는 왜 이 상품을 원하는가? - 기능 때문인가, 디자인 때문인가, 상표 때문인가, 유행 때문인가, 혹은 누군가도 이것을 가졌기 때문인가? 이 브랜드가 붙어 있지 않아도 나는 이것을 구매할 것인가?
* 이 상품의 가격은 합리적인가? - 나의 소득을 고려할 때 적절한 선택인가? 이 물건의 품질과 내구성을 고려할 때 적절한 선택인가? 동종의 국산품과 비교했을 때 적절한 선택인가?
* 이 상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 얼마나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이 상품을 사용할 수 있는가?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 다른 비용이 들지는 않는가? 혹시 이것에 맞추기 위해 다른 물건을 추가로 구입해야 하지 않는가? 유행주기나 신제품 출시주기 등을 고려할 때 곧 낡은 물건이 될 가능성은 없는가?
* 이 상품은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인가? - 이 상품을 살 돈으로 다른 일을 했을 때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이 상품의 구매가 친구나 가족에게 당당한가? 혹시 더 싸게 샀다고 주위 사람에게 가격을 속여야 하지 않는가?

소비자들이 합리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치를 소비자 개인들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가치관이 정립되기도 전인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이미 무차별한 광고에 노출되고 소비만능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이 사치 중독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치는 소비자들만의 전적인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사치가 만연한 것에는 기업, 대중 매체, 정부, 신용?경제제도가 모두 한꺼번에 얽혀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개인적인 변화와 더불어 사회 전체적인 대응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쇼핑 이외의 것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문화적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적절한 여가 및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인 기반이 절실합니다.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할수록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쇼핑이 주는 기쁨이 아닙니다. 한 아이가 진정 행복한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고급 상품이 아니라 친구와 새로 사귀는 법, 자연과 교감하는 법, 사람을 그리워하는 법, 역할을 바꾸어 놀이하는 법 그리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감성을 적실 줄 아는 법입니다. 이것은 비단 어린이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인이 된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행복의 조건들입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